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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신문 칼럼을 통해서 알게된 백문임씨의 논문(!)인 이 책은 생각보다 무겁고, (물론) 무섭고, 또 재미있었다. 의외로 짧고 젊은 역사를 가진 한국 공포영화가 유독 여귀를 매개로 한다는 것, 그 여귀의 활동상황이 시대별로, 관객의 역사 속에서 변화한다는 것이 새롭다.
어렸을 적에 이불 속에 숨어서 보던 "전설의 고향" 속 한에 서린 흰 소복의 귀신이 알고 보면 제도권 내에서의 화해를 원했고 이시대의 괴물로 재현되는 "링"의 사다코나 "장화,홍련"의 수미는 자기복제와 공포의 무한반복이라고 한다. (280쪽 압권!)
이론을 정리한 2장과 하나도 모르겠던 60년대 영화평인 3장을 버티면 4장에선 기다리고 기다리던 현대의 여귀들을 만날 수 있다. 어떤 젠더화된 비평으로 나의 이 묘한 공포영화 관심을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저자의 말대로 사회적, 역사적 트라우마나 낯선 여성의 괴물화된 신체를 보는 쾌감아닌 쾌감을 맛보는 것일 수도 있다.
논문이니만큼 문장이 꽤 어려운 부분도 많다. 하지만 내가 본 영화를 이렇게 "다르고" 또 "낯설게" 보고 읽을 수 있다는 것을 배우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저자가 드러내놓고 페미니즘을 외치지 않아서 덜 거부감이 생겼다. 하지만 여성관객(혹은 독자)가 느끼는 이 낯설지만 친근한 기분이 남성관객에도 전해질까 하는 의문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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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하면 나는 우선 어릴 적에 TV에서 본 '전설의 고향'이라는 프로그램이 떠오른다. 까만 밤, 안개 자욱한 산 속의 어느 곳, 생각지도 않게 공동묘지가 있고 뿌연 안개가 깔린 가운데 멀리서는 여우 우는 소리가 들리는 흉흉한 장면. 수많은 무덤 중 어느 하나가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수박 가른 듯 반으로 쩍 쪼개지면 자욱한 안개 속에서 스르륵 일어서는 하얀 소복을 입은 여자. 한달쯤 잠을 못 잔듯 눈가는 너구리처럼 다크서클이 또렷하고 피를 묻힌 듯 빨간 입술은 귀까지 이어진 듯 길게 찢어져 있다. 여차하면 흐흐흑 하며 구슬픈 울음소리를 내기도 하는데, 그 여자들은 어찌 그리 모델처럼 키가 크고 호리호리하던지. 게다가 누가 알려주지도 않았는데도 본능적으로 그녀들이 모두 '처녀'라고 알아챌 수 있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신기하기만 하다. 어쨌든 그 이미지와 '귀신'이라는 단어는 착 달라붙어서 지금도 그저 어디서 '귀신'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으레 '처녀귀신'의 모습이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왜 그럴까?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를 아무렇지 않게 보게 된 지금도, 소위 '공포영화'를 볼 때면 여러가지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가령 처녀귀신은 어떻게 그리 높은 나무들을 휙휙 날아 넘어다닐 수 있을까? 왜 낮에는 멀쩡한 처녀의 모습이었다가 밤만 되면 무덤을 파헤쳐 갓 죽은 사람의 간을 꺼내 먹을까? 왜 처녀귀신이 나타날 때면 갑자기 바람이 불고 촛불이 꺼질까?
궁금증들의 해답이 이 책 안에 있었다. 서두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은 공포영화의 특질을 그 핵심 형상인 여귀를 중심으로 규명하고, 근대 대중문화에서 '공포'의 코드가 지니는 의미를 살펴보고 있다."
저자는 먼저 공포란 어떻게 생겨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공포영화에 나오는 괴물이 두려운 이유는 그것이 '친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친밀한 것'이 억압되면 '두려운 낯섦'으로 변하는데, 이것이 바로 프로이트가 말하는 '일상생활에서 체험되는 불안하고 불쾌한 느낌'이다. 우리나라는 근대로 넘어오면서 '정상적'인 것을 권장하고 '비정상적'인 것을 배제하는 '과잉 억압'이 발생했고, 근대 가족 제도에서 여성의 삶은 '현모양처'에서 벗어나면 '비정상'적인 것으로 인식되었기에 공포영화라는 장르에서 '괴물'로 등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제3장 2절 '훈육의 서사에서 공포의 서사로-전근대의 귀신담과 공포영화'였다. 위에서 말한 궁금증뿐만 아니라 생각지도 못하고 있던 여귀의 내력과 본질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알게 된 부분이기도 하다. 책의 후반부에서 보여주는 현대 공포영화의 특성은 더욱 정밀하고 풍부한 시각을 제공한다. 고전 공포영화에서 정착한 여귀는 현대 공포영화에도 뚜렷이 나타난다. 특히 여귀가 이야기의 중심이 되지 못하고 (여성) 주인공이 여귀와 맺는 특별한 관계가 영화의 핵심적인 모티브라는 해석은 탁월했다. 여성 주인공과 여귀가 등장하여 교감하면서 소위 '페미니즘의 시대'이자 '소비의 시대'였던 1990년대 초중반의 상황과, 반성과 기억이 강제되었던 IMF 관리 체제, 그리고 급속한 신자유주의화 과정에서의 여성의 상황을 담론화하는 장이 바로 현대 공포영화라는 것이다. 삶의 모습만큼 다양한 공포영화의 소재, 변화하고 커지는 장르적 속성들, '원한풀기-복수'라는 단순한 구조를 넘어 현대 심리학과 범죄학의 영역까지 넘나드는 무수한 모티프와 현란한 영화 기법 탓에 하나의 맥락을 꿰기가 쉽지 않은 현대 공포영화에 대해 명쾌한 관점과 넓고 깊은 감상법을 제시한 책이다. 그리고 끝까지 여귀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놓지 않은 덕분에, 혹시 으슥한 골목에서 흰 소복을 입은 여자귀신과 마주친다면 인사라도 던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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