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끔 진지하게 던지는 말들을 주변 친구들은 단순 '엽기성 발언'으로 치부해 버리는 때가 많다. "너 높은 곳에 올라가면 왜 무서운 줄 알아? 자기도 모르게 뛰어내리고 싶은 욕망을 억제하기가 힘들어서야.", "사람들은 누구나 마조히즘적 성향이 있어. 제일 먹고 싶은 것을 맨 나중에 먹는 경우도 다 그런 거 아닌가?", "화장실 거울을 5분 정도 참을성 있게 보면, 가끔 다른 사람이 날 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지 않냐?" 혹시 일상 생활에서 나와 같은 생각을 한번쯤 해 본 사람이라면, 내가 지금 막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콘센트'라는 책을 꼭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일본 저널리스트 다구치 란디의 첫 소설, '콘센트'는 주인공 아사쿠라가 오빠의 기이한 죽음을 접하면서 시작된다. 그녀의 오빠 다카는 고립된 방에서 쇠약사(衰弱死)로 참혹하게 썩은 시체가 되어 발견된다. 아사쿠라는 평소에도 넋이 빠진 듯 사회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던 오빠를 회상하다가, 그가 생전에 콘센트에 대해 언급했던 것을 떠올리게 된다.
정신 세계나 심리를 다룬 많은 책들이 '결론은 독자에게 맡긴다'는 너그러운 명목 하에, 애매모호하고 자신 없는 서술을 반복하다가 끝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책은 매우 명료하다. 오빠의 죽음으로 아사쿠라는 샤먼(shaman)으로서 또 다른 정신 세계에 눈을 뜨게 된다. 이제까지 억눌러 왔던 자신의 '콘센트'로 인간의 정신 세계를 지배하는 중앙 컴퓨터를 연결하여 그 운영 원리를 터득하게 된 것이다. 반면, 다카는 자아가 약한 '콘센트'였기 때문에 자신을 숨기는 데에 능숙하지 못했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정신 세계에 영원히 머무르게 되었고, 그것은 이곳 세계에서는 '죽음'이라고 불린다. 재미있는 것은 많은 샤먼들이 콘센트에 접속하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며, 아무렇지 않게 타인과 섞여 지내고 있을 거라는 아사쿠라, 아니 작가의 생각이다. 사실은 우리 모두가 샤먼인 것이다. 어렵게 콘센트에 연결하게 되더라도 돌아오는 법을 알지 못하는, 숙련되지 못한 샤먼들이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미친 사람 취급을 받을까 두려워 한 손에 자신의 플러그를 들고 콘센트 주변을 서성이다 결국 이 세상에 남는 보통 사람들이다.
대학교 2학년 때 철학 수업을 들을 때, 무당 한 분이 오셔서 특강을 하신 적이 있었다. 모두들 하얀 소복에 단정하게 쪽진 머리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그 분은 하이힐에 투피스를 입은 세련된 20대 중반 여성이었다. 당시 한국의 샤머니즘과 정신 분석 철학을 접목하기 위해 독일 유학을 준비하고 계신다고 하셨다. '콘센트'의 아사쿠라를 접하면서 이 분 생각이 들었다면, 내가 너무 픽션에 빠져든 것일까? 이 책은 우리 머리 속에 흩어져 존재하는 생각들을, 마치 컴퓨터 회로를 해체 분석하듯 대담하고 논리적으로 접근한다. 그리고 정신 세계와 단절된 삶을 살고 있는 바쁜 현대인에게 자아에 감응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읽고 나면 뭔가, 세상의 비밀을 하나 알아낸 것 같은 뿌듯함이 느껴진다. 다구치 란디의 두 번째 작품은 '안테나'라고 한다. 하루 빨리 한국어 번역이 이루어져, 그녀가 제안하는 색다른 세계를 또 경험하고 싶다. 다른 세계에서 보내오는 전파를 그녀가 일깨워 줄 '나의' 안테나로 느껴보고 싶다.
[인상깊은구절] 지금 나는 그렇게도 싫어했던 시부야에 살고 있다. 이 거리에는 과거의 나 그리고 오빠 같은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모두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껍질을 쓰고 산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침입을 받고 만다. 나는 나나 오빠 그리고 그들을 '콘센트'라고 부르고 있다.
......자아가 약한 '콘센트'는 이 세상에서 광인이 되어 간다. 하지만 자아가 조금 강한 '콘센트'는 나처럼 자신의 진짜 모습을 감춘 채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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