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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세폴리스』 2권은 마르지의 유학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1권 끝에서 마르지의 부모님은 딸이 더 좋은 환경에서 자라길 바라는 마음에 이란에서 오스트리아로 보냅니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외국으로 혼자 보내진 마르지는 고통의 시간을 겪게 되죠. 너무 다른 문화를 가진 곳으로 던져지다 보니 적응을 위해서 많은 노력이 필요했고, 정체성의 혼란도 많이 겪습니다. "나는 이란에서는 서양 여자였고, 서양에서는 이란 여자였다. 내겐 정체성이 없었다. 내가 왜 사는지도 알 수 없었다."라는 말이 마르지의 심경을 너무나 잘 대변합니다. 결국 마르지는 자살 시도를 하기도 하고, 친구들과 함께 마약에 빠지기도 하고, 나중엔 노숙까지 하게 됩니다. ![]() 4년 반의 오스트리아 유학 생활을 마친 후 마르지는 다시 이란 테헤란으로 돌아와 가족의 품에 안깁니다. 사랑하는 부모님과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고, 이란의 전쟁은 끝이 났지만 여전히 마르지는 많은 혼란을 겪습니다. 특히 오스트리아에서의 삶에 대해 다 털어놓을 사람이 없어서 혼자서 끙끙 앓아야 했고요. 하지만 마르지는 이런 힘든 상황에 주저앉지 않습니다. 이란에서 여전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대학도 다니고, 결혼도 하고, 또 이혼도 하죠. 그리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성장한 마르지는 10년 전과는 다른 마음으로 이란을 떠나 프랑스로 향하며 책은 끝이 납니다. ![]() 이 책은 혁명과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이란과 이란 사람들, 그곳에서 태어나 완전히 다른 문화를 가진 오스트리아로 유학을 다녀온 한 소녀의 정체성 위기, 그리고 그의 성장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 상황을 직접 겪지 않았어도, 완전히 다른 시대와 다른 문화에 있는 사람이라도 이 책에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은 너무나 많습니다. 마르지가 겪어야 했던 많은 일들은 이란의 일이긴 하지만 또 한편으론 보편적으로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전쟁과 사람들의 죽음, 억압적인 사회, 성차별과 불합리한 사회구조 같은 것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를 다룬 책들은 물론 엄청 많지만 그 중에서도 『페르세폴리스』가 돋보이는 이유는 여성의 관점에서, 여성이기 때문에 더 겪어야 하는 많은 불합리한 일들과 고통을 낱낱이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이런 책을 읽으면서 저는 항상 여성의 목소리가 더 많이 퍼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곤 합니다. 세상의 수많은 마르지들이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만 있어도 그들의 삶은 틀림없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더 많은 마르잔 사트라피가, 더 많은 말랄라 유사프자이가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의 목소리를 더 많이 퍼뜨려야 합니다. 그래서 멀리 멀리까지 이들의 이야기가 닿아 결국 세상이 변할 수 있도록 말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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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을 다 읽고 글의 내용이 이해가 잘 안 되었다. 10살 소녀가 이슬람 혁명을 겪고 근본주의자들의 통치를 받은 부분 그리고 이라크와의 전쟁을 겪으며 커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이란의 역사에 대해서 지식이 미천해서 그런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잘 몰랐다. 반면 2권에서의 삶은 소녀 개인 삶을 통해서 자유를 쟁취하려는 부분이 그려져서 역사적 배경이 조금 모질라도 상대적으로 이해하기 쉽고 보는 재미도 있었다.
만화라고는 하지만 아트 슈피켈만의 쥐와 마찬가지로 마르잔 사트라피의 페르세폴리스는 쉽게 이해가 되는 글이 아닌 것 같다.
모두에 언급했지만, 1978년에서 1990년 초까지의 이란 역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독재왕정인 팔라비 왕조가 이슬람 혁명에 의해서 무너지고 이슬람 근본주의로 무장한 종교 지도자에 의해서 이란이 지배된다. 이슬람 근본주의는 이슬람 교리를 정치, 사회질서의 기본으로 삼아 이슬람교의 원점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는 운동이었다. 이란의 정신적 지도자 호메이니는 팔레비국왕이 정신적·물질적으로 기독교위주의 서방세계에 경도돼 있다며 반정부투쟁을 벌여 왕권과 신권을 하나로 합친 이슬람 국가를 세우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서방 세계의 도움을 받던 이라크는 종교적 문제의 갈등과 지역적인 이득을 얻기위해서 이란을 공격하고 이것이 8년 전쟁으로 이어지게 된다.
적어도 위에 언급한 내용정도의 배경지식이 있어야 왜 마르잔이 유학을 떠나게 되었고, 이란 사람들이 서방 세계에서 무시를 당하면서 살았는지에 대해서도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계기로 이란의 근대사와 페르시아로 불렸던 고대사에 대한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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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세폴리스 : http://blog.naver.com/ghost0221/60048222599 페르세폴리스 : http://blog.naver.com/ghost0221/60051797498
그림 소설 ‘페르세폴리스’ 2권은 1권의 마지막에서 가족과 헤어져 홀로 오스트리아로 향한 마르잔이 겪게 되는 이방인으로서의 외로움과 힘겨움과 함께 여성으로써 경험하게 되는 여러 육체적-정신적 변화들을 중심으로 2권의 전반부를 이끌어가고 있다.
여전히 야만으로 가득하고 종교적인 믿음만을 앞세우고 있는 지역 출신이라는 편견으로 가득한 시각을 접하며 많은 상처를 받게 되기도 하고, 마르잔의 여린-순진한 감수성을 이용하거나 혹은 제대로 알아주지 못하게 되는 상황을 겪게 되는 등 여러 힘겨운 시간들 덕분에 마르잔은 한층 강인해 지기도 하지만 반대로 많은 슬픔과 혼란 그리고 방황을 하게 되기도 한다.
다행히 마르잔은 그런 시간들 속에서도 무언가를 알기 위한 노력들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최악으로 향하지는 않았던 것 같고, 항상 어떤 교훈들을 찾아내고 있기 때문에 무너지지 않고 정신적-육체적인 고통 속에서도 결국 여러 도움과 함께 스스로에 대한(그리고 가족에 대한) 애정 덕분에 다시금 좌절에서 벗어나 이란으로 되돌아 갈 수 있게 된다.
간신히 건강을 회복하고 삶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아 이란으로 향하게 되지만 도착하게 된 이란의 모습은 마르잔이 떠나기 전의 이란과는 너무나 달라진 풍경으로 가득함을 금세 깨닫게 된다.
지나칠 정도로 경직된 종교적인 관점과 남성우월적인 시선과 함께 차이를 용납하지 않고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 완고하기만 한 사회를 경험하며 마르잔은 또다시 좌절하고 어디에도 마음을 놓을 곳 없이 그저 가족에게 위안을 찾을 뿐이고 뚜렷하지 않은 목적과 목표 속에서 자유를 찾게 될 뿐이다.
그런 정신적 방황과 혼란을 잠재우는 새로운 사랑은 마르잔으로 하여금 새로운 안식을 찾게 되지만 짧은 안식은 더 큰 고통과 후회만을 만들게 되고, 그 고통이 마르잔으로 하여금 성숙하게 되고 좀 더 자신을 존중하고 소중하게 만들지만 결국 그런 경험들을 통해서 마르잔은 다시금 이란을 떠나 자유를 찾아 새로운 각오로 유럽을 향하도록 만든다.
단순히 이란이라는 특수성으로 가득한 공간에서 삶을 살아간 여성에 대한 이야기로서만이 아닌 여성에 대한 보편적인 시선으로 사회구조가가 여성을 어떤 불합리함에 내몰리게 만들고 있는지를, 그런 위선과 편견 그리고 남성중심의 시각을 견뎌내고 이겨나가기 위해서 어떤 노력들을 기울여야만 할지를, 특수한 경험들을 통해서 보편성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서구의 왜곡된 시선과 편견으로 가득한 시선이 아닌 이란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한 시선으로 이란의 역사적 혼란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들어 좀 더 이란의 모습을 다양한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고 있다.
여성으로서만이 아닌 한명의 인간이고 인격체로서 자신을 소중히 대하고 아울러 다른 이들도 자신을 대하듯 존중해야 한다는 믿음 속에서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이 놀라운 작품이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제공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마르잔이 겪었던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서 얻게 된 소중한 깨달음들을 잘 눈여겨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게 된다.
여성주의 관점으로서도 민주주의에 대한 관점으로서도 그리고 편향되고 왜곡된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로서도 무척 소중하고 의미 있는 작품이었던 것 같다.
은은하면서도 통찰력으로 가득한 작품이었다. 또한 깊은 울림을 만들어내고 있기도 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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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잔은 1984년 너무 종교적인 이란을 떠나 개방적인 오스트리아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렇지만 오스트리아에서 소녀 혼자 살아가는 것은 너무 힘들다. 엄마의 가장 친한 친구 아줌마는 수녀들이 운영하는 기숙사에 마르잔을 곧바로 맡기고, 기숙사 수녀들은 지독한 인종 차별주의자에다 금지하는 게 너무 많다. 그리하여 마르잔은 수녀에게 ‘창녀’라고 말한 뒤 쫓겨난다. 친구 집에서 지내는 것은 기숙사보다 편안하다. 친구는 이미 18명의 남자랑 잘 만큼 성에 자유로워서 여러 명의 친구들을 불러 개방된 곳에서 함께 성 접촉을 하고 마리화나를 피운다. 마르잔은 유럽의 개방적인 삶 앞에서 길을 잃는다. 적응을 하면 할수록, 한편으로 스스로 더 자신의 문화에서 멀어져 가고, 부모님과 자신의 뿌리를 배신하고 있다고 느낀다. 그건 마치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규칙에 따라 게임을 하고 있는 것과 같았다.
친구 집을 떠나 잠깐 살았던 본게마인샤프트 공동 주거 공간에서는 동거인 8명 모두 남성 동성애자이고, 엄마가 오스트리아에 다니러 와서 찾아 준 새로운 집 주인은 편견 덩어리이며, 무엇보다 온몸과 마음으로 사랑했던 남자 친구가 다른 여자랑 자는 장면을 목격한다. 실연을 당한 마르잔은 깊이 절망한다. 이국땅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좋아해 준 사람으로 그의 사람 관계가 자신이 사람 관계와 거의 겹칠 만큼 의존하고 있었던 탓이다.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경험을 한 마르잔은 거리에서 지낸다. 쓰레기통에서 먹을거리를 찾아 먹고 꽁초를 주워 피우다가 마침내 피를 토하며 쓰러진다. 만약 밤에 기절했다면 냉혹한 추위가 남은 생을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행히 병원에서 깨어난 마르잔은 부모님과 통화한 뒤 이란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는다. 거기에는 자신을 전적으로 믿어 주고 존중하는 부모임이 계신다.
4년 동안 오스트리아에서 생활한 마르잔에게 조국은 너무 억압적이다. 베일부터 다시 적응해야 하고, 눈에 들어오는 근엄한 분위기와 장식에도 익숙해야 한다. 순교자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거대한 벽화와 거리 이름은 묘지를 연상시킨다. 그리고 오스트리아에서의 실패 경험이 발목을 잡는다. 우울증이 찾아와 자살을 시도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흘 만에 살아난 마르잔은 자신은 죽기 위해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고는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살자고 다짐한다. 최신 유행의 세련된 여자로 변신하고, 에어로빅 강사가 되며, 대학 시험을 쳐서 운 좋게 합격한다. 드디어 1989년에 대학생이 되지만 대학이라고 하여 억압적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리하여 대학 당국에 주최한 강연회에서 공개적으로 강연 내용의 모순을 지적한다. 그것은 용기 있는 발언이었고 스스로를 되찾는 한 계기가 된다.
남자 친구도 새로 사귄다. 부부가 아니면 공개적인 연애가 금지되어 있는 나라에서 2년 동안 남자 친구의 집이나 자신의 집에서 만난다. 마침내 남자 친구가 청혼을 하자 부모님께 이 소식을 알린다. 부모님은 흔쾌히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결국 성대한 결혼식을 마련해 준다. 그러나 결혼은 진정한 사랑의 결과가 아니었다. 부모님도 그것을 꿰뚫고 있었기에 흔쾌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니 마르잔이 이혼한다고 할 때 부모님은 순순히 받아들인다. 부모가 이때 나눈 대화는 그이들이 얼마나 깊이 마르잔을 사랑하는지 보여준다. 큰 감동이다. 그리고 그러한 부모님의 사랑은 결국 마르잔이 스스로 공부를 하러 프랑스로 떠나게 하는 밑거름이 된다. 첫 번째 출국은 부모님에 의해서였지만 이제는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어 떠나는 것이다.
- 마르잔 : 나는 프랑스로 갈 거예요! 곧 이혼할 거예요! - 아빠 : 그럴 줄 알았다! - 엄마 : 당신은 그럴 줄 알았으면서 이 결혼을 승낙하라고 일주일 동안 나를 괴롭혔어요? - 아빠 : 응, 하지만 만약 얘가 결혼하지 않았다면, 둘이 맞지 않다는 걸 절대로 몰랐을 거야. 모두 자기 나름의 경험을 하는 거지. - 엄마 : 배후 조정자! - 아빠 : 무슨 배후 조정? - 엄마 : 당신과 이야기 안 할 거예요. - 아빠 : 그래, 우리는 네가 내린 결정을 들으니, 정말 기쁘다. 이곳은 너와 맞지 않아. 우리 이란 사람을 억압하는 것은 비단 우리 정부만이 아니란다. 전통의 무게 또한 그렇지! - 엄마 : 혁명이 우리를 50년은 후퇴하게 했어. 이 모든 것들이 변화하려면, 여러 세대가 필요할 게다. 인생의 하나뿐이야. 게다가 넌 지금 24살이고, 네가 오스트리아로 떠날 때와는 다르지. 넌 이제 우리가 필요하지 않단다. (189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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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단순한 그림은 나쁘지 않으나 글씨가 너무 작게 인쇄되어서 보기가 힘든게 마음에 안듭니다.
삶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그린 것이 감동적이었지만 무엇보다도 주인공의 부모, 할머니의 진정 사람을 위하는 관점에서 딸, 손녀를 대하는 모습이 정말 감동적인 것 같습니다. 세상에 이런 억압적인 사회에서도 이렇게 인생을 바로 보는 부모가 있다는 것이 가슴 뭉클하네요. 주인공은 참 좋은 부모를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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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잔 사트라피의 <페르세폴리스>의 후속편. 질풍과도 같은 시기에 여러 가지 일을 겪고 결국 어린 나이에 이란을 떠나게 된 이후, 사트라피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고국을 떠나기 전에는 복잡하고 끔찍한 정치적 상황에서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주였다면 이란을 떠나 오스트리아로 오게 된 사트라피의 삶은, 이방인, 그것도 중동의 전쟁 지역에서 온 이방인으로서 외국에서 사는 것과 수만은 가치관의 충돌 속에 어느 정도 형성된 서구적 가치관을 가지고 이란에서 사는 것 사이의 괴리가 혼합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자의 자기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주가 된다.
온전한 이란인도 아니며, 그렇다고 이란의 후광을 없애고 온전히 유럽인이 될 수도 없는 반쪽 사람으로서 점점 더 자라가는 소녀와 숙녀 사이의 삶은 그녀를 그 또래가 그러하듯, 때로는 방종한 태도일 때도 있고, 때로는 포기한 듯한 체념에 빠져버릴 때도 있으며, 때로는 다 던져버리는 듯한 태도를 보이며 건강마저 해칠 정도가 될 때도 있었다.
유소년기의 경험이 숙녀로 변해가면서 자신의 인생을 꾸려야 하는 이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쉽게 보이지 않는다. 다시 이란에 돌아왔을 때 그녀는 그저 가족에게 머물뿐 많은 것이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다만 그녀로 하여금 주변인으로 머물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던 상황들이 되었을 뿐.
그러한 그녀의 자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결국 사랑이다. 연애에 자유롭지 않은 규율을 가진 나라에서 태어난 그녀가, 유럽에서 그리고 이란에서 사랑을 하게 되면서 유소녀 시절에는 가질 수 없었던 또 다른 새로운 경험을 통하여 많은 것을 배우게 되고 결국 그녀를 가장 크게 지탱해 주는 것은 가족과 그녀 자신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다시금 이란을 떠나 자신의 진정한 삶을 찾아 떠난다.
1편이 가족사와 국가사에 가까웠다면 2편은 순수한 개인사에 가깝다. 그래서 보다 더 그녀의 내면을 드러냈지만 공감은 좀 떨어진다. 결국 여자로서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은 남자인 내가 완전히 공감하기는 어려워서 일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이란을 떠나는 것을, 도전이라고 봐야 할 것인지, 아니면 도피로 보아야 할 것인지는 독자의 몫으로 남는다.
두 권의 책을 읽으며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끔 한다. 저자 자신이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 <쥐> 만큼이나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이 책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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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프랑스에 살게 되고 나서, 나는 친구들에게 이란에서 내가 보낸 시절에 대해 얘기하곤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TV를 통해 이란에 대한 단편적인 부분들만을 알고 있었고, 내 경험에 대해서 결코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항상 이렇게 말해야 했다. "아냐, 아냐, 이란은 그런 곳이 아니라구!" 난 20년 가까이 이란 사람으로 살았던 것이 그렇게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는 걸 납득시켜야 했다. 내가 선택하고, 살아 온 것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한다는 게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작가의 말
난 이란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사실 이란이라는 나라에 대한 생각 자체가 별로 없다. 그저 그 쪽에 있는 나라들은 '중동아시아'라는 이름 하나로 뭉뚱그려지고, 그 중에서도 미국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이라크라던가 오랜 세월 이스라엘 땅을 두고 싸워온 팔레스타인, 이슬람, 혹은 이슬람의 원리주의, 그리고.. 테러라는 단어만 떠오른다. 온갖 테러들이 벌어지는, 항상 전쟁이 일어나는 땅이라는 어렴풋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나에게 중동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이라크 정도로만 인식된다.
이란? 이란은 뭐, 이름은 들어본 나라지.
그렇다면 이야기를 잠깐 돌려보자. 페르시아는? 페르시아하면 참 부끄럽게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옛날 꽤나 열심히 했던 게임 페르시아 왕자다. 칼에 찔려 처참하게 죽은 왕자는 꽤나 충격이었는데 어쨌든 나름대로 재밌게 플레이했던 것 같다. 하지만 어쨌든 페르시아라는 단어에 대해서는 중동에 대해 연상되었던 많은 부정적인 이미지와 개념들이 떠오르지 않는다. 고대 제국 중 하나로서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다는, 오히려 기억하고 싶은 그들의 왕조이자 문명으로 기억된다.
그런데 알고보니 페르시아는 '이란이 1935년 마지막 샤(이란 국왕의 존칭)의 아버지인 레자 샤가 국호를 '이란'이라고 부르게 하기 전까지 보통 그리스식 명칭인 '페르시아'라고 불렸다'(1권, p.4)고 한다. 이럴수가, 페르시아가 이란이었다니! 그것도 불과 1935년 까지만 해도 페르시아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니! 이란은 그 얼마나 깊고 강대한 역사를 지닌 나라였던 것인가! 페르세폴리스라는 이름 역시 페르시아의 도시라는 의미를 가진 그리스어라고.
어쨌든 이런 이란의 사정을 잘 모른채 그저 항상 전쟁과 테러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나라라고 생각하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 작가 마르잔 사트라피는 이란이 결코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싶었다. 그것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자신의 직업을 살려 '만화'로 자신의 이야기로 그리면 된다는 것을 깨달은 그녀. 아트 슈피겔만의 <쥐>라는 작품처럼, 그렇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는 그녀. 그녀가 들려주는 이란의 세계는 어떠했을지, 책을 펼쳐보았다.
1권에서는 그녀의 어린 시절의 삶, 그리고 그 당시 혁명과 전쟁으로 인해 이란에 닥친 어려운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그녀와 그녀의 가족들을 담아낸다. 1979년, 이슬람 혁명이 일어난 뒤 베일(부르카)를 써야되는 현실, 끝없는 시위, 고문을 받거나 혹은 죽음을 맞이한 지인들. 그렇게 1980년대 당시의 이란의 상황을 소녀의 성장에 맞추어 그려냈다.
2권에는 부제가 붙어있다. '다시 페르세폴리스로'. 1권은 그야말로 주인공의 소녀 시절의 이야기였다면, 그 소녀 시절의 끄트머리에 그녀는 신변의 위협으로 인해 혼자 오스트리아와 프랑스로 떠나게 된다. 그렇게 도착한 유럽에서 그녀는 이방인이다. 이란 출신의 보수적인 여성. 사춘기를 맞이한 그녀의 반항, 그리고 자신의 정체감에 대한 방황으로 소녀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한 여성의 성장담이라고 해도 좋겠다.
그 모든 것이 아마 쉽게 받아들여지고 술술 책장을 넘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만화'라는 매체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묘사와 비유에 적당한 일러스트들은 상당히 매력적이기에 더 쉽게 마음에 와 닿았다. 확실히 작가는 이란의 모습을 쉽게 전달할 수 있는 매체를 선택한 것은 틀림없다.
그래서 어쨌든 책을 다 읽고 나면 내가 가지고 있던 이란에 대한 선입견을 없앴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니오'다. 아니 오히려 원리주의자들을 중심으로 한 이슬람 혁명으로 여자들은 모두 부르카를 써야하고, 온 몸을 덮어야 하며 뛰어다니면 몸의 굴곡이 드러나 남성의 성욕을 자극시킨다며 뛰지 말 것을 종용하다니, 이 얼마나 보수적이고 편협한 생각인지. 혁명과 그 혁명에 반하는 시위를 벌인 일이 벌어졌다는 것은 알 수 있었고, 그렇다한들 중동에 대한 인식이 굉장히 새롭게 다가오거나, 뭐 이런 것은 아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역시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어렴풋한 이미지들이 마냥 틀린 '선입견'인 것만은 아니었기 때문.
하지만, 이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되었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네'이다.
오히려 내가 더 눈길이 가고 더 공감하며 이 책에 몰입했던 것은 그런 이란의 실제 모습이 아니었다. 개방적인 부모님 덕분에 일찌감치 열린 사고를 가지게 된 그녀의 소녀 시절은 1권에서 주로 혁명과 시위와 전쟁 속에서 보내졌으니 그렇다 치고, 본격적으로 2권에서부터 시작되는 그녀의 성장담이 참 매력적이었다.
이란인으로써 유럽인들 사이에 섞이지 못하는 주변인으로서의 고통, 어렵게 어렵게 마음을 내어준 연인의 배신, 마약, 노숙, 방황, 유럽인들의 편견에 맞선 전쟁. 유럽을 다녀온 개방적인 사고를 가진 여성으로서 이란의 여성들에게 고스란이 녹아내리지못한 고통과 방황.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은가? 미국에서는 동양인으로, 한국에서는 미국인이라는 시선과 차별을 감내하는 많은 이들이 떠올랐다.
어쨌든 페르세폴리스는 상당히 매력적인 이야기이다. 중동이든 우리나라든 사람 사는 모습은 그렇게 다르지 않다. 종교와 배경과 사회적 인식이 조금 다를 뿐이다. 석유라는 풍부한 자원을 가진 나라라는 이유만으로 강대국의 시달림을 받아왔고, 그 때문에 우리들은 그들이 전쟁을 두려워하며 살아갈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나름대로 사랑을 하고 일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주인공의 결혼과 이혼에 대한 부모님들과의 대화는 상당히 유쾌할 정도다.
우리가 이란을 생각하는 것처럼 이란은 항상 전쟁의 폐허에 찌들어있는 나라는 결코 아니라는 것. 오히려 우리의 선입견은 다른 국가의 사람들이 한국은 여전히 '휴전중인 전시국가'라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들이 우리가 전쟁의 두려움에 떨고 있는 한국인이라 생각한다면, 그 생각은 우리의 현실과는 많이 동떨어져있지 않은가! 오히려 작가는 이런 메시지를 남기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네 말이 맞다. 한쪽의 광기와 다른 한쪽의 경멸 사이에서 우리는 선택할 수밖에 없지. -2권 p.172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
| 1년 넘게 나를 기다리게 했던 페르세폴리스 2권이 나왔다. 2권에서는 좀더 성장한 마르잔이 이란을 떠나 빈에서 성장하면서 겪게 되는 문화적 차이, 사회적 편견 등이 잘 나타나 있다. 1권이 이란의 상황을 많이 다루고 있다면 2권에서는 사춘기 소녀의 성장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그녀는 빈에서 이방인으로서 반항적인 삶을 살면서 이런저런 일을 체험하지만, 막상 빈에서의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이란에 돌아가서는 그곳에서도 자신이 이방인이라는 걸 느끼고 혼란스러워 하게 된다. 부모님도 그녀도 암울한 현실의 조국으로부터 벗어나길 바라지만 결국엔 가족과 조국의 품으로 돌아가 생활하게 되는 그녀가 안스러웠다. 나는 우리나라의 험한 꼴을 안보고 자란 세대라,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또 나에겐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다는게 또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요즘의 정치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항상 감사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님께도, 형제한테도,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한테도 잘 해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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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즐겨듣는 팟캐스트 중에서 지대넓얕이라는 팟캐스트가 있다. 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라는 긴 말의 줄임말인데, 여러가지 주제들을 깊이는 그리 깊지않지만 다루어주어 재미있게 듣고 있는 팟캐스트이다. 지난번에 이 팟캐스트를 듣다가 페르세폴리스라는 애니메이션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페르세폴리스는 이란을 배경으로 한 애니메이션이다. 이란의 경우 이슬란혁명으로 인해 종교적으로 많이 보수화된 나라로 알려져있다. 이 책은 이슬람혁명이 일어나던 시기에 그 시기를 살았던 어떤 여자아이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있다. 여자 아이의 입장에서는 그저 스쳐지나가는 일상이 상당히 큰 의미가 있다는 걸 생각하며 읽게 되었다. 억압이 점점 심해지는 그 시기에 주인공의 마음은 어땠을까 궁금하다. 나라면 그런 암흑의 시기, 갈수록 더 어두워지는 시기를 버틸 수 있었을까 생각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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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에 대한 리뷰는 따로 적었다. 여기 (http://blog.yes24.com/document/7585395)- 이란을 떠나 본격적인 십대를 지나면서 마르잔은 어떻게 자라나는지 나는 무척 큰 기대를 했다. 그녀를 맡아주기로 한 조조 아줌마가 돈 때문에 상황이 좋지 않아 그녀를 수녀들이 운영하는 기숙사에 들어가기 전까지. 아니 어쩌면 수녀들 속에서 ‘다름’을 올바로 이해받을 수 있다면 마르잔이 멋지게 성장할 수 있다고 믿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상한 예감이 자꾸 들었다. 학교에서 처음 사귀게 된 그룹을 보면서. 별난녀, 펑크, 두 명의 고아, 그리고 그 안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제3 세계의 소녀라니.
마르잔은 균형을 잃지 않고 선구자스러운 청소년기를 보내줄까? 요즘 아주 기운이 없는 것 같더라. 이란에서는 잘 나가는 공인 회계사였지만, 독일에서는 그저 터키 사람으로 보일 뿐이지. 우리 나이에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건 정말 힘들어. 전에 유럽 여행했을 때가 생각난다. 이란 여권만 보여줘도, 레드 카펫을 깔 정도였지. 그때 이란은 부자로 통했으니까… 지금은 국적만 보고 짐을 샅샅이 뒤져. 마치 우리가 모두 테러리스트인 양… 우리를 무슨 전염병 환자처럼 취급한다구.(p.53) 마르잔을 찾아온 엄마는 말한다. 이란에서 빛나는 누군가가 외국에 나와서는 힘을 잃은 외국일 뿐이라고. 한 때는 빛나는 문명으로(석유로?) 인정받고 대접받던 그들이 국적 때문에 홀대받는 것. 엄마의 말을 듣는 마르잔의 기분은 어땠을까. 그녀는 그렇지 않았냐고? 아니, 엄마가 털어놓지 못할 만큼.. 그녀도 많은 걸 겪었다. 어릴 때 직접 보아온 장면들, 전쟁의 잔혹함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를 해도 사람들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고 이란인이라서 무식하다는 모욕을 듣기도 한다.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마약에 손대고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 마리화나의 딜러로서 경력을 굳히게 된다. 이런! 그녀의 실망에 비할 수 있겠냐만은 나 역시도 기분이 묘했다. 내가 기대했던 선구자, 마르잔은 백일몽이었던 것 뿐인가. 뭐가 문제일까. 그녀를 잡아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을까. 그녀는 결국 몇 번의 사랑에 실패하고 지쳐 거리로 나가 버린다. 거리에 밤의 어둠을 이불삼아 잠들기를 몇 날. 그녀는 병원에서 눈을 뜬다. 나는 우리 가족 중 몇을 앗아간 혁명을 겪었고, 또한 조국과 가족의 품을 떠나게 했던 전쟁에서도 살아남았다. … 그런데 하찮은 연애담 때문에 인생을 마감할 뻔했던 것이다. (p.91) 남은 이야기들 속엔 마르잔의 찬란한 이야기가 있을까? 얼마나 그녀는 아름답게 떠오를까. 1권과 2권 각각의 역자가 다르다는 것이 뭘 의미할까. (신기하게 느껴졌다.) 같은 언어라도 소녀의 언어와 성인의 언어는 미세하게 차이가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러나 알 길이 없다. 해독 불가의 꼬부랑(?) 글씨로 느껴졌으므로.^^;; 선지자가 되기를 희망하는 소녀 마르잔은 관습적인 것에 쉽게 순응하지 않는 성향을 가지고 있었기에 소녀의 순수한 눈길 속에 담긴 이란의 정세를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지적으로 끊임없이 자라날 수 있게 그녀를 지지해주는, 무척이나 성숙하고 위엄이 있는 부모님(과 가족들)이 계시다. 반항적인 뜻을 품은 자녀를 가진 완고한 부모가 아니고, 혁신적인 뜻을 가진 부모에게 사회의 변화에 무딘 자녀가 있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지. (나도 한때 -지나치게 반항적인 청소년이었을 때, 그것에 소스라치게 놀라는 어른들의 반응에 얼마나 실망스러웠던지.) 엄마는 ‘용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1권 p.52)'고 말한다. 할머니는 ’언제나 네 존엄성을 잃지 말고, 자기 자신에게 진실해라(1권 p.156)'이라 말하며 안아준다. 마르잔에게 그런 따뜻한 기억조차 없다면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었을까. ‘두려움이 우리의 양심을 잃어버리게 한(2권 p.148)'다고 한다. 우리 역시 두려움 때문에 겁쟁이로 변했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전쟁의 잔혹함도 두려움이고, 낯선 나라에서의 경험들은 모두 두려움일 것이다. 살기위해 넘어온 나라에서는 이방인, 태어난 나라에는 ’외국인‘으로 취급받아야 한다면 우린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존재에 대해 어디에서도 날선 눈빛을 보내온다면? 마르잔이 이란을 떠나기 전 거울을 보며 다짐하던 말-스스로에게 항상 진실하겠다던 다짐이 떠오른다. 다른 누구도 대신해서 속을 채워줄 수 없듯이 오직 자신만이 해낼 수 있다. 이란의 역사와 사회에 대한 이야기가 신화처럼(?) 이어질 줄 알았다. (마르잔이라는 소녀가 선구자로 우뚝 서는 놀라운 신화를?! ㅋ)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나니 이 작품의 초점은 ‘이란’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란인 마르잔의 ‘성장기’?! 투박스러운 그림이지만 작가 마르잔의 삶이 진득히 우러나기에 진실되게 잘 읽힌다. 낯선 세계의 역사에 다가가는 책이라 생각해도 나쁘진 않지만 마르잔이 이란을 떠난 1984년 이후부터는 -다소 부족하므로-스스로 공부해야 한다는 점에 주의! 동명의 애니메이션도 만들어져 있다고 한다. 2007 칸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 2007 벤쿠버국제영화제 인기상 수상, 2008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 작품상 노미네이트까지. 경력이 화려한 이 애니메이션을 구해볼 수 있으면 좋겠다. (살아 숨쉬는 마르잔은 또 어떻게 말하고 행동할지.+_+) 기대하지 않았지만 몹시 흡족한 작품, 이 만화 특유의 화법에 반하기도 했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