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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서 가장 즐거웠던 시기는 아무 근심걱정 없이 뛰놀던 초등학교 저학년 때이다. 특히 방학 때 시골에서 보낸 시간은 그 어떤 기억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최고였다. 지금도 가만히 그 때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고 입가에 저절로 미소까지 지어진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내 인생에서 즐겁지 않았던 시기도 초등학교 저학년 방학 때였다. 너무나 싫은 기억이라 무의식은 그 기억을 억눌러 평상시에는 떠오르지 못하게 만든다. 그 이유가 대체 뭘까? 왜 같은 시기의 기억인데 어떤 것은 떠올리고 싶어 하고 어떤 것도 잊으려고 노력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할머니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할머니는 자식들에게 받은 용돈을 아껴뒀다가 친척들 눈을 피해 내게만 몰래 쥐어주실 정도로 나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손자가 많았지만 유독 나만 더 아끼시고 예뻐해주시는 것이 사촌동생들의 시기와 부러움의 눈빛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할머니는 어머니와 달리 방학 내내 나를 자유롭게 놀게 해주시면서 내 투정까지도 다 받아주셔서 좋았다.
그러나 술만 드시면 사람이 달라지시는 것이 문제였다. 저녁 무렵에 얼큰하게 취하시는 날이면 귀한 손자에게 그렇게 술심부름을 시키셨다. 난 그게 너무 싫었다. 밤엔 무서워서 재래식 화장실조차 못가는 손자에게 무덤들을 지나야만 도착할 수 있는 가게에 술을 받아오라고 시키는 것이 이해가 되는가? 한밤중에 비포장 시골길을 아이 혼자서 귀신이 쫓아올까봐 두려움에 떨며 달리는 것을 상상해보라.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몸서리가 처진다. 그래서 난 지금도 한국공포영화는 무서워서 못 본다.
이 책은 저자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풍기는 한 가난한 가족에 관한 소설이다. 저자는 주로 과거 회상을 통해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가고 있는데 사물묘사나 장면묘사가 뛰어나 마치 주인공의 옆에서 같은 장면을 목격하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그리고 저자는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드러내 보여줌으로써 독자가 그 인물들의 심리를 보다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다만 5살 때의 과거를 회상하는 것인데 상황묘사나 길거리 이름, 그때 벌어진 사건 등을 너무 지나치게 자세히 묘사한 점이 일반적인 상식과 어긋나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 책은 총 4파트로 구성이 되어 있다. 지금부터 난 각 파트에서 내가 인상적으로 생각한 것 위주로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다.
첫 번째 파트인 '이야기꾼의 귀환'이라는 곳에서 내가 주목한 것은 주인공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가는 부자는 바로 우리야! 왠지 알아? 우리에겐 우리 가족이 있으니까."라고 말한 부분이다. 우리 집은 과거에 비하면 상당히 부유하다. 방도 다섯 식구가 각각 따로 쓰고 남의 눈치 안 봐도 되는 우리 집이 있다. 하지만 재정적으로 형편이 예전에 비해 많이 나아졌지만 심리적으로는 오히려 예전보다 행복하진 않다. 지금 우리가족은 같이 모여 있는 횟수도 적고 같이 밥도 먹지 않는다. 심지어 난 따로 떨어져 있기까지 하다. 가난하다가 부유해지면 엄청나게 행복할 것 같고 밥 안 먹어도 기분 좋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 만은 않다. 돈으로 편안함은 살 수 있지만 행복을 살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점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두 번째 파트인 '슈카의 종소리가 들려준 이야기'라는 곳에서 내가 주목은 것은 주인공이 "아빠는 우리에게 친구가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모양이었다."라고 설명한 부분이다. 전에 초등학교 동창 중에 한 녀석이 술자리에서 내게 예전 일을 이야기하면서 초등학교 2학년 때 내가 놀이에 끼워줘서 정말 고마웠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난 기억도 못하는 일인데 그 친구는 오랫동안 그 일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던 모양이다. 집이 가난해 항상 옷을 허름하게 입고 다녀 또래 친구들이 외면했는데 그때 내가 같이 놀자고 해서 너무나 기쁘고 고마웠던 것이다. 지금 그 친구는 영어강사로 활동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만약 주인공 소년도 나와 같은 아이가 손을 내밀어 같이 놀아주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세상을 삐뚤어지게 바라보지도 질 나쁜 녀석과 어울리지도 않았을지 모른다.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세 번째 파트인 '살기 위해 배워야 할 것들'이라는 곳에서 내가 주목한 것은 주인공이 "로페는 모든 아이들이 자신의 노예가 되어 자신마을 떠받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해괴망측한 괴물이었다."라고 묘사한 부분이다. 중학교 때 우리 반에도 이와 같은 녀석이 한명 있었다. 덩치도 상당히 좋았고 힘도 셌다. 게다가 공부까지 잘해서 하나의 세력까지 이루고 있었다. 이 녀석은 졸개처럼 부리는 녀석한테 하기 싫어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매점에 먹을 것을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키곤 했다. 그리고 마음에 들지 않는 녀석은 졸개를 시켜서 괴롭히거나 집단 왕따를 시키기까지 했다. 이런 녀석의 인생이 순조롭게 잘 풀리면 세상이 너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은가? 하늘은 다행히도 이 녀석에게 인생이 새옹지마라는 것을 깨우쳐주게 하려는 듯 대학에서는 왕따를 경험하게 해주었다. 이 경험으로 자신의 옛일을 반성했는지 그래서 사람들에게 배려라는 것을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최소한 어렸을 때처럼 행동했다간 사람들이 외면한다는 사실은 확실히 느꼈으리라 생각한다.
마지막 네 번째 파트인 '침묵으로 만들어진 집'이라는 곳에서 내가 주목한 것은 주인공이 "어쨌든 우리가 왜 그런 곳에 머물러 있었는지는 아무리 떠올려 보려고 해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고 말한 부분이다. 이 소설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회상을 위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그런데 희한한 점은 주인공 소년이 5살의 어린 시절 기억을 너무 세세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자잘한 기억들은 잘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장면에서는 기억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른 곳에서도 중요한 시점에 주인공은 "지금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라고 말하는데 이 또한 아이러니 하다. 어째서 주인공 소년은 상식에 어긋나는 기억을 하고 있는 것인가? 혹 주인공 소년도 나처럼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 좋은 기억과 맞물려 무의식이 그 기억을 억눌러서 그런 것이란 말인가? 저자는 독자가 이런 의문을 품을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서 글을 썼어야 했다고 본다. 이 점이 제일 아쉬움으로 남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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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녘의 책들중에서 일루져니스트 시리즈란게 있다. 제목부터가 마음에 와닿는데 살펴보자면 세계의 여러 작가들의 책을 모아놓은 것이다. 보통 번역해서 출판되는 외국소설 하면 고작해야 일본, 영미소설이 대부분인지라 생소한 나라의 작가들과 만나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고 각 나라마다 다른환경에서의 작가들의 의식이나 말하고자 하는바가 확연히 다름을 느끼게 해주는 이 시리즈에 관심이 갈 수 밖에 없다. 이야기꾼도 시리즈중의 하나로 스웨덴작가의 책이다. 스웨덴 작가의 책은 한번도 본 적이 없는터라 기대 반, 걱정 반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국민작가로 불리우고 있는 만큼 책에 대해서 실망 할 일은 없을 듯 하다.
스웨덴의 스톡홀룸 외곽지역. 가난한 노동자들이 살아가는, 그것도 보통 사람들이 꺼려하는 곳에 자리잡고 있는 무너져가는 집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누나, 나 이렇게 5식구가 살고 있다. 비록 힘든 생활이지만 서로를 위로하고 감싸안으며 행복하게 살던 가족에게 어느 날 집을 나갔던 아버지가 돌아온다. 나와 가족들은 오랜만에 재회한 아버지의 존재만으로도 너무나 기뻐하고 아버지 또한 여러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들로 우리를 즐겁게 해주었다. 이때의 행복은 영원할것만 같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밝았지만 곧이어 찾아온 보통 사람들의 영역에 발을 디딜 수 없는 이들의 가혹한 운명은 가족이라는 이름의 울타리에 금이 가게 만들고 행복했던 가족은 점점 불행이라는 구덩이속에 빠지고 마는데..
책 속에는 이야기꾼이라는 제목처럼 가족과 아버지와의 재회를 시작으로 무수히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져나온다. 정말 열심히 살아가는 가정에게 세상은 왜 이리 모질고 혹독한건지..작가가 고통과 불행, 행복과 기쁨은 결국 같은 나무에서 뻗어나온 가지마냥 떨어질 수 없음을 나타내려한건지는 몰라도 이럴땐 정말 세상이 원망스러움을 느낀다. 헌데 외국인데다 수십년전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가 왜 이리 가깝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책 속의 이야기들이 지금 우리의 현실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서일까..어려운 생활에다 밑으로 가라앉을수록 다시는 떠오를 수 없는 것처럼..세상에서 멀어지는것처럼 말이다. 책 속의 가족들은 작가에게나마 구원받을 수 있겠지만 현실의 우리들은 누구에게 구원받을 수 있을까..부디 그런일이 없기를 바랄뿐이다.
개인적으로 이야기꾼은 가볍지 않은 소설이라서 그 무게감탓에 책을 읽기가 상당히 버거웠다. 장르 소설의 경우는 가볍게 진행되는게 보통이라 읽히는 속도도 빠르고 대부분의 내용이 흥미위주라서 다 읽은후의 만족감이 빨리 찾아오는대신 금방 식어버리는데 이야기꾼의 경우는 무게감에 버거워하면서 천천히 읽히지만 만족감은 큰 것 같다. 마치 급히 달아올라 급히 꺼지는 보일러와 비록 더디지만 오랜시간 유지되는 온돌같다고나 할까..둘 모두 따뜻함에는 틀림없지만 그 차이는 분명하게 다가오는것처럼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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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일루져니스트 세계의 작가 시리즈에 푹 빠졌다. 아직 이 시리즈의 책을 많이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읽어본 몇 권의 책을 통해 그동안 별로 접해보지 못한 나라의 문학작품을 접하면서 크나큰 신선함을 느꼈다. 내가 한 나라를 알고 싶을 때 주로 쓰는 방법은 그 나라와 관련된 여행에세이를 보거나 그 나라의 소설을 읽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루져니스트 시리즈가 소개해주는 세계 여러 나라의 소설들은 내게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이 책 <이야기꾼>은 스웨덴 작가의 작품이다. 내가 스웨덴 소설을 읽어본 적이 있던가? 아마 없었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무척이나 특별하고 색다른 의미로 다가온 책이었다.
책의 표지에는 6인 가족의 모습이 그려져있다. 자그마한 궤짝 하나에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누나, 나 그리고 유형인듯 무형인듯 그림자처럼 나타난 아버지가 들어가 있다. 궤짝 안에서는 마치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오는 것처럼 이 가족들이 풀어놓은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고, 이 가정의 경제 수준을 짐작케 해주기라도 하듯 생쥐 한마리가 그들 이야기의 청중이 되어서 그림 하단에 조그맣게 자리잡고 있다. 이 책은 바로 이 가족의 이야기이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가족. 세상에서 제일가는 부자는 바로 우리야! 왠지 알아? 우리에겐 우리 가족이 있으니까.(p.63)' 이 행복한 가족의 이야기.
오랫동안 집을 떠나있던 아버지가 '무너져가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 집안에는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버지가 피리 소리로 뱀을 움직이는 마술사한테서 사왔다는 궤짝 속에 가족들에게 줄 선물뿐만 아니라 많은 이야기들도 담아왔던가 보다. 이 책은 그 아버지가 풀어놓는, 그리고 그 아버지의 아들이 풀어놓는 이야기들의 이야기들이다. (책을 읽으면서, 지금 읽고 있는 이 부분은 사실인가 그들이 만들어낸 이야기인가 헷갈리는 부분도 좀 있었다.) '행복한 가족'인듯, 혹은 '행복한 가족' 이야기를 만들어낸 듯도 한 이 가족의 이야기는 유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많은 생각에 잠기게 만든다. 스톡홀름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다는 저자의 철학가적인 면모를 느낄 수 있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 '나'는 다섯 살 때부터 글을 읽었다고 말한 '죄'로 바로 끔직한 악동의 표적이 되어 힘든 학교 생활을 하게 된다. 사실 '나'뿐만 아니라 이 가족 모두가 '칭송받아 마땅한 보통 사람들'로부터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다. 아버지는 온갖 재미있는 상상들로 '무너져가는 집'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방법들을 만들어 낸다. '나'를 아역 배우로 만들어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촬영을 하거나, 유명한 가수인 척 광장에서 노래를 해 돈을 모으거나, 어머니가 공중전화로 남들의 오해를 살만한 이야기를 풀어놓으면 공중전화 주위로 몰려드는 사람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거나...다소 엉뚱한 듯도 하지만, 꿈을 꿀 수 있기에 그만큼 행복할 수 있는 가족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러나 행복함 속에 계속해서 감도는 긴장감은 '행복한 가족'에 어울리지 않는 주정뱅이 아버지의 모습이 등장하기 때문이었다. 행복이 금방이라도 깨어져버릴까봐 조마조마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곧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다시 행복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이 가족. 이 가족의 실체는 도대체 무엇일까. '사람들은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히며 산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용도도 참으로 다양하다. 사람들은 자기만의 진실을 짜 맞추며 산다.(p.75,76)' 이 가족은 어떤 자기들만의 진실을 짜 맞추며 사는지, 이 책 속으로 한 번 빠져들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 책 속 좋은 글. - 좌절 없이 이루어지는 진보는 없어. 우리는 좌절의 과정에서 언제든지 무엇인가를 배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해.(1. p.183) - 모른다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하지만 배우고 싶어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나쁜 것이다. 아주 나쁜 것이다. 지식이 있는 자에게 세상은 열려 있다. 만약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라면 이것 하나만은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적어도 근면해야 한다는 사실.(1. p.219) - 꿈이란 꿈일 뿐이다.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꿈을 꿀 때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가! 그런 점에서 꿈이란 측정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한 가치고 이루어진 가능성이기도 하다. 꿈을 꾼다는 것. 언젠가 혹은 어느 날 실제로 이루어질지도 모르는 그런 가능성을 상상한다는 것. 얼마나 멋진 일인가? 꿈을 꾸는 시간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2. p.49) - 변신은 언제나 삶과 죽음에 맞닿아 있어. 무엇인가가 죽어야 무엇인가가 새롭게 태어나는 거지. (2. p.70,71) -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생각해보면 나도 한때는 모든 것을 이해하려는 미치광이들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이해할 수 없으면 이해할 수 없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것도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2. p.104) - 자기가 원하는 걸 보고, 자기가 원하는 걸 듣는 게 사람이야. 자기가 들은 걸 보고, 자기가 본 걸 듣는 게 사람이라고. (2. p.2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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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쉘 요한손이라는 스웨덴 국민작가의 자전적 소설 이야기꾼은 우리에게 무한한 감동을 준다. 나라가 다르고 문화도 다르지만 그속에서 느낄수 있는 사람들의 삶에 대한 감흥은 비슷하리라고 본다. 작가의 뛰어난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쉘 요한손 작품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출간되어 셀레임반 기대반으로 책을 읽게 되었다. 그리고 이 소설은 출간되자마자 스웨덴에서 베스트셀러로 자리를 잡았다고 하였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하루하루 살아가기가 힘겨운 노동자들이 살고 있은 스톡홀름의 미트솜마르크란센에 아버지가 돌아오게 되는데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제외하고 가족들은 아버지를 환영한다.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이야기꾼이 되어 기쁨으로 가득찬 집으로 만들지만 아버지의 감춰져있던 폭력성으로 인해 가족들은 고통과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그리고 아버지는 집을 떠남으로써 가족들은 다시 평안을 찾게 되었고 그후 아버지는 싸늘이 식어버린 시체가 되어버렸다.
과거 우리도 뉴스꺼리에서 폭력적인 남편에 대한 기사 매를 맞는 이야기가 들리더니 또 매를 맞는 남편의 이야기도 들린다. 폭력이란 가족을 저 깊은 불구덩이 속으로 밀어 넣는것과 같은 아픔을 느끼게 하는것이다. 이 세상이 폭력이 없어 지고 사랑이 가득한 가정이 되길 기원하며... 우리의 삶을 한번더 생각하게 하는 아름다운 책을 만나게 되어 기쁨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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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하자마자 스웨덴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이야기꾼'은 한 가족의 슬프고 고난하면서도 아름다운 삶을 다룬 쉘 요한손의 자전적 소설로 쉘 요한손이 서술자인 '나'로 등장한다.
스톡홀롬의 외곽지역에 '무너져 가는 집'의 거리가 있다. 그곳에는 노동자들이 가장 비참하고 궁핍한 생활을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 가까운 거리에 '무너져가는 집' 사람들에게 칭송받고 싶어하고 그들의 삶을 보며 위안받고 사는 '보통사람들'의 거리가 있다. 이 책의 시대는 1950년대부터 1990년까지를 그려내고 있는데 복지국가인 스웨덴에 이런 극과 극의 두부류가 몇십년전에 공존해 있었다는게 믿어지지가 않았다.
어느날 '무너져 가는 집'의 거리에 일곱 대양을 건너며 세상을 누비던 아버지가 긴 여행에서 가족의 곁으로 돌아온다. 오랜세월 아버지를 기다리던 에바누나와 나, 그리고 엄마는 무척 행복해 하지만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긴장한 눈으로 아버지를 바라 보기만 한다. 이 대목에서 아버지의 주정뱅이 복선이 깔려 있었음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돌아옴으로써 무너져 가는 집의 구석구석을 손보며 수리하고, 어머니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집안일에 전념하며 독서로 하루를 보내지만 아버지는 직장을 구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는다. 점점 힘들어지면서 아버지는 술만 마시면 어머니에게 폭력을 행사하게 되고, 에바와 나는 아버지가 가져온 궤짝에 숨어 귀를 틀어막고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며 이야기속에서만이라도 보통사람들이길 희망한다.
"삶이란 그저 그런 것이다. 대단한 의미를 지닌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뭔가 특별한 것을 기대할 만하지도 못하다. 그저 살아가면 되는 거다. 함께 살아갈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두려움과 불안에 떨면서도 어머니는 아버지가 남편으로 아이들의 아빠로 함께 하기를 희망한다. 아버지의 반복되는 폭력속에서도 어머니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아버지에게 깊은 애정이 담긴 말로 아버지의 기를 살려준다. 물론 아버지는 술을 마시지 않을때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남편, 자상한 아버지로 변하며 맘껏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흥미롭고 멋진 이야기를 끊임없이 가족들에게 들려준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머니와 에바, 나는 아버지의 폭력성을 잠시나마 잊고 이야기 속에 푹 빠져 든다.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요한손 가족은 엄마의 흔들리지 않는 신념과 가족을 향한 사랑으로 조금씩 나아지면서 보통사람들의 대열에 진입하려는 찰나에 또다시 아버지의 잠재돼 있던 폭력이 되살아나게 된다.
'삶이 힘겨운 것일수록 강인해지는 사람들, 꺽이지 않는 신념 덕분에 그들의 가혹한 현실은 아름다운 꿈속에 잠들 수 있다' 누구나 거쳐가는 죽음의 순간에 할머니와 어머니의 화해와 속죄의 눈물, 할아버지의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 가족으로부터 버림받고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는 아버지...결국 이들에게 살아갈 힘이 되어 주었던 것은 어머니의 독서열이란 생각한다. '무너져 가는 집'에 살지만 자녀에게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고, 도서관에 함께 가서 책을 대여해 오는 어머니의 노력 덕분에 끝없이 이야기가 샘솟고 이야기 속에 행복을 꿈꾸며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은 시대순으로 이야기가 배열되지 않는다. 처음에는 과거와 현재의 구분조차 되지 않는 '나'의 이야기 전개의 혼란스럽고 내용을 이야하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2편으로 넘어가면서 내 머릿속에서 이야기의 전개가 잡혀가기 시작했다. 이 책은 시간적 흐름으로 이야기를 이해하기 보다는 등장인물의 성격이나 심리를 중심으로 분석하고 이해하면서 읽어나가는게 좋을 것 같다. 등장인물의 삶이 내게는 모두 물음표로 남았지만 곱씹어 보면서 시간이 흐른후 내 인생을 되돌아 보면서 다시한번 이 책을 읽는다면 해답을 찾을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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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스웨덴 작가의 작품이다. 쉘 요한손. 스웨덴의 국민작가라고 한다. 스웨덴 작품은 처음 읽어보는 거였다. 스웨덴. 꿈의 나라. 복지 국가. 선진국. 이런 기대를 가지고 있어서인지 아마도 이 작품이 세련된 도시 이야기이거나 철학적이고 학문적인 내용일거라 생각하며 부담 없이 책을 펼쳤다. “뮈르딩 호수에서 뭉글뭉글 솟아나온 짙은 안개. 그 속에서 불쑥 한 남자가 튀어나온다. 저기 저 잔디밭 위에 서 있는 남자가 바로 나의 아버지, 요한 요한손이다. 내 기억 속 아버지의 첫 번째 모습.” 작품은 이렇게 시작한다. 일곱 개의 큰 바다 위를 건너 아버지가 돌아왔다. 어머니는 달려가 그의 품에 안겼고 에바와 ‘나’는 꿈에 그리던 아버지를 만난 것이 마냥 좋았다. 위층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내심 불안해 보였지만 딸과 손주들을 위해 그를 반갑게 맞이한다. 가족들의 재회는 보통 작품의 끄트머리쯤 해피엔딩을 위한 구절로 남겨두는데 이 작품에서는 시작을 알리는 장면이다. 뭔가 불안하고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 같다. 불안하고 부당한 면들이 점차 그 정체를 드러낸다. 이 행복한 가족은 스톡홀름에서 가난한 노동자들이 모여 사는 곳, 그 중에서도 그 곳의 ‘보통 사람들’이 적당히 거리를 두고 멸시하며 지켜보는 무너져가는 집에서 살고 있다. 요한손의 가족이 아무리 서로 사랑하고 행복해 해도, 또 할머니와 어머니가 책을 좋아하고, 성실해도, 아버지가 뛰어난 상상력을 가지고 가족들을 즐겁게 하고 무너져가는 집을 보수하여도, 아버지는 직업을 얻는 것이 너무 어렵고, 아이들은 친구를 만들 수가 없다. ‘보통사람들’은 끊임 없이 이들을 경계하며 조롱하고 아버지는 점점 좌절하며 술을 먹고 어머니와 아이들에게 폭력을 휘두른다. ‘보통사람들’은 이런 가족의 모습을 확인하며 즐기기까지 한다. 잔인하다. 언젠가부터 가족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집처럼 무너져가는 것처럼 보인다. 아버지는 자신의 아버지처럼 악마 같은 모습으로 가족에게 비치고, 어머니는 끊임없이 신에게 기도를 하며 자신의 삶을 힘겨워한다. ‘에바’는 알 듯 모를듯한 말과 행동을 하면서도 가족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나’는 아동보호소에 다녀온 후 나쁜 짓을 일삼으며 방황한다. 글이 진행되면서 스웨덴의 현대사를 엿볼 수 있었다. 가난하고 열악했던 노동자들의 삶이 사회 개혁가들의 노력과 시대의 변화를 통해 점차 나아지고, 국왕이 죽고, 우리에게 익숙한 현재 스웨덴의 모습으로 변모해가는 과정이 작품에 고스란히 녹아있었다. 역사 책보다 어쩌면 더 실감나게 그네들의 삶을 보고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책 두 권의 아리고 아린 이야기를 내 짧은 글에 모두 담을 수는 없지만 그 여운은 참으로 컸다고 말할 수 있다. 마치 이야기꾼의 이야기가 나를 휘저어놓고 간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곳곳에 줄을 그으며 그 문장을 읽고 또 읽고 하며 이해하면 이해한대로, 이해할 수 없으면 느낌 그대로 받아들이며 읽어갔다. 작품에서 에바와 ‘나’는 어른들의 말과 행동들을 보면서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이해한 것 같은 느낌을 여러 번 받는다. 책을 읽으면서 나 또한 그랬다. 꿈이나, 시간의 재배열 또는 상상과 사실은 뒤섞어놓은 방식으로 글이 진행되어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지만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와 할머니, 에바와 ‘나’.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냥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수수께끼 같은 경험이었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장을 읽고 난 후 그 가족들 생각에 한동안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로 구원을 받았기를 바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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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간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가끔 그런 생각을 할때가 있다. 살아가면 갈수록 더 강해져야 할 것 같은 의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삶의 연륜이란 것이 늘어가면서, 살아간다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삶이란 것은 도데체 어떤 것인가에 대해 물어보는 날들이 점점 더 줄어들어가는 것을 느낀다. 아니. 그런 것을 느끼지조차 못하고 살아간다. 그러다 문득, 이 책 같은 책을 읽으면서야 비로소 삶이란 것에 관해서 진지하게 잠시나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이 책은 무척 아름답다. 멋진 번역의 덕분에 두권에 이르는 책 전체가 시적인 흐름으로 읽혀진다. 책은 무척 고달픈 삶이란 것을 보기 드문 강한 주제로 다루고 있으면서도 동화를 읽는 것과 같이 부드러운 느낌으로 읽혀진다. 회상과 상상,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 내면의 이야기. 사람의 속에 있는 또 다른 사람의 이야기들이 엇갈리는 이 책은 무척 흥미로우면서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어머니와 오누이가 외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스톡홀름의 가난한 구역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지역에 다 쓰러져 가는 집에 세를 들어 살고 있다. 그 방 두칸짜리 집 중에서도 한칸은 세를 줄이기 위해 또 다른 사람에게 세를 주어야 하는 집이다. 어느날 어디선가 아버지란 존재가 그곳에 나타났다. 그리고 집안은 활기를 뛰고 집안은 또 우울에 잠기고, 몰락한다. 겨우 아버자가 그 집을 떠나고야 집은 겨우 보통사람들의 생활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언젠가 아버지는 얼어붙은 호수에서 얼어붙은 시체로 발견되었다. 간단한 줄거리이다. 그러나 그 줄거리가 이어지는 씨줄과 날줄은 그 가족의 구성원들에게 각기 다른 모습으로 받아들여진다. 희망으로 보여지기도, 마술같은 매력으로 보여지기도, 감옥에서 출감한 골치거리로 보여지기도, 기울어가는 집안을 일으켜세울 희망으로 보여지기도, 외롭기만 한 삶의 동반자로 보여지기도, 가정폭력의 주역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삶이란 원래 그런 것일 것이다. 삶이 가지는 모습은 다면적인 것이고, 어쩌면 이 책에 등장한 그 모든 것들이 다 사실일 것일수도 있다. 도대체 무엇이 사실일까. 이 책에 등장하는 긴 이야기 중 어느 부분이 전하는 내용이 사실일까. 글쌔... 나로서는 알길이 없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 책에 나오는 그 모든 이야기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다 사실이라고 하는 것이 아닐까.... 아니 무례하기도 하고 불한당같기도 하고, 선량하기도 하고 한없이 착하기도 한 그 사람이 모두 다 같은 사람이라고? 이 글을 읽는 당신의 나이가 충분히 들었다면 당신은 아마도 내 말에 동의할 것이다. 그리고 이 훌륭한 작가의 의사에도 동의할 것이다. 그렇다. 인생이란 다면적인 것이다. 그리고 한 사람의 여러가지 모습은 모두 사실이다. 비록 그 사실이라는 것들이 서로 정반대로 충돌하는 것들까지 포함하더라도... 세상에는 한가지의 진실만이 존재하지 않는다. 삶은 고달프고, 의미가 없기도 하다. 이 길고 지루한 가난하고 비루한 삶을 지속할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영원히 끝날것 같지 않은 그 긴 시간이 지나고 나면 때로는 놀랄것 같이 다른 삶의 기회가 찾아올 수 있기도 하다. 그것이 바로 삶이다. 아니 삶을 규정짓는 물질적인 조건이 변화하기 여렵다고 한다면, 다른 것은 어떨까... 예를들면 사랑이나 우정같은 것 말이다. 영원히 미워하고 증오하던 대상이 긴 새월이라는 무게가 벗겨지고 난 다음에 갑자기 그리움으로 느껴진다던지, 내가 그토록 벗어나고 싶어하던 그 시간들이 먼 시간이 지나고 난 뒤에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아쉬움으로 느껴진다는 그런 경험 같은 것. 이 책의 아버지는 뛰어난 이야기꾼이다. 그는 자신의 삶의 모습을 다양한 이야기로 표현한다. 그 이야기의 여러가지 모습들 중에서 어느것이 실제 그의 모습이었는지 독자인 우리들은 알수가 없다. 저자인 그는 알까. 내 생각에는 아마 저자 조차도 그의 삶의 진짜 모습을 알지 못했을 것 같다. 저자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저자가 아버지라는 인물을, 이 책에 생생하게 살아서 등장하는 사람들의 생명력을 글로 묶어서 박제화하기 싫어하기 때문일 것 같다. 저자는 이 책에 생명력을 불어넣으면서 아마도 이렇게 말했을 것 같다. 이 책의 여러가지 모습 모두가 당신들의 모습이다. 또한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 상상하고 바라는 모습들 모두가 그들의 모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왜나하면 책은 그 책을 읽는 사람들의 마음으로 들어가서 그의 이야기로 재탄생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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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꾼........최대의 이야기꾼이다.....
1층에 누나인 에바와 나 엄마가... 2층에 외할아버지와 약간의 사회주의적인 정치색을 띤 할머니가 살고 있다.. 어느날 나무 궤짝 하나를 끌고 아버지 요한 요한손이 온다... 엄마에게 아버지를 물으면 항상 아버지가 오면 물어보라고 한다... 에바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있지만 나는 아버지의 기억이 없다.... 엄마랑 에바는 열렬히 아버지를 환영하지만 난 그렇지 못하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그저 떨뜨름한 얼굴로 아버지를 반긴다...
아버지와의 만남은 떨뜨름에서 금방 친해진다...아버지는 나에게 무지 열정적이고 활발하면서 재밌는 이야기꾼이다... 엄마는 책을 아주 좋아하고, 많이 알구, 또 많이 읽는다.... 아버지는 책을 읽지는 않는다... 항상 약간 허황되면서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들을 이야기로 장황하게 떠벌리구 그게 곧 실현될 것처럼 연습하면서 계획한다
아버지랑 있음 항상 재미있다...엄마인 안나를 사랑하고 무너져 가는 집을 손질하고 그네도 만들어준다... 너무나 좋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다...
이렇게 이야기가 시작된다.. 하지만 아버진 술을 무지 좋아한다.. 술이 들어간 아버진 사람이 달라진다... 평상시엔 아주 재간꾼인 아버지가 엄마를 너무 사랑하는 아버지가 폭군으로 변한다....무지무지 난폭하게...
이책은 내가 어린시절을 기억하고 있는 걸 기억해 내어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그 기억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나도 모른다... 어떨땐 폭군인 아버지를 기억해 내기도 하고, 어떨땐 행복에 겨워 넘치는 우리집을 기억해내고, 또 어떨땐 반항적인 나를 기억해 내고, 세월이 흘러 변한 친구와 내 모습도 기억해낸다
1950년대의 스웨덴에서도 스톡홀름 외곽지역.. 보통사람들도 못된 사람들이 어떤지를 그려낸다... 술 먹고 폭군인 아버지를 기억해내기 보다는 책을 많이 읽어 우리들을 격려한 엄마와 행복한 면을 기억해 내고 싶어한다......
우리네 삶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사는 방식은 유럽이나 한국이나 같다는 것... 상처받은 남자들은 술의 힘을 빌어 자기의 힘을 과시하고 그 힘을 가족에게 풀어내는... 그래서 폭력과 후회와 용서가 순환되어지는.. " 애정과 고통은 언제나 한통속이다" 라는 말처럼 가족이라는 굴레에서 어쩌지도 못하고 상처를 안고 함께 살아가야 하는..........
보통 책을 읽으면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이 드는 책이랑 여운이 오래가서 글을 손으로 옮기지 못하는 책이 있다.. 이 책은 두번째 경우인 것 같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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