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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조선 말기 썩을 대로 썩은 세상이라지만 양반이라고 저렇게까지 무자비하고 파렴치한 일을 저지를 수 있었을까도 싶었다. 고관대작도 아니고 향반에 지주만 되도 저렇게 무법천지 사회가 유지됐다니 말도 안되지 했다. 그러다 지금의 현실을 보면서 저 생각을 바뀌었다. 저 시절에는 양반들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법치주의를 부르짖고, 선거로 대통령을 뽑는 지금 시민들이 시퍼렇게 눈뜨고 있는데도 권력이 시민을 사찰하고 있는 세상이니, 조선시대라면 양반 말이 곧 법이고, 하늘인 세상에서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겠구나하고. 미륵동 김승지와 탑골 박의관, 두 사람은 서로 앙숙이지만, 마을에서만큼은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인물이었다. 양반의 위세에 지주라는 지위 덕인데 특히 김승지의 횡포는 극을 달렸다. 여색을 밝히는 그는, 남의 아내라도 범하기를 서슴지 않았고 자신의 비위에 맞지 않는 마을 사람을 불러 매 타작 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런 횡포가 언제까지 탈이 없을 리가 있나. 김승지가 장쇠의 아내 금순이를 범하자, 금순이는 목을 매 자살하고 만다. 김승지는 장쇠가 자신을 죽이려 했다는 빌미를 붙여 장쇠를 죽이려 하지만, 김승지의 딸 미연의 만류로 장쇠는 겨우 목숨을 부지한 채 이내 마을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5년의 세월이 흐르고 충청도까지 동학 농민들이 일어서자 탐관 오리와 양반들이 벌벌 떨게 된다. 그리고 마을근방에서 장쇠를 목격했다는 말이 나오자, 마을 전체가 술렁거린다. 김승지는 안절부절 좌불안석이고.. 농민과 농촌에 대한 일관적인 사랑과 애정을 드러냈던 이무영, ‘농민’은 이무영다운 작품이었다. 이무영 작품은 농민이나 농촌을 계몽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는데 이 작품 역시나 그랬다. 조선 말 동학농민들이 일어섰을 무렵 조선 사회는 무너기지 일보직전이었다. 조선은 밖으로는 앞 다투어 진출하려드는 제국주의 열강에 시달렸고, 안으로는 집권자들은 세계의 변화와는 무관하게 자신들의 정권욕을 채우기 급급했다. 그리고 탐관오리와 양반들이 농민들의 고혈을 짜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 와중에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말과는 달리 농민들의 삶 또한 온전할 리가 없었다. ‘농민’에서는 무엇보다 등장 인물들의 다양한 성격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이들의 말을 통해 당시 백성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고, 동학 농민운동이 왜 일어날 수 밖에 없었고, 그것이 백성들의 호응을 얻을 수 밖에 없었던 정황을 짐작하게 한다. ‘세도가 있어야지...세도가...’(41쪽 자청해서 김승지네 종이 된 돌이) ‘자넨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니. 우리네 농군들이 농살 짓는다는 건 이해타산만 가지구는 못 짓거든. 그야 이해타산이 없으면 곰처럼 발바닥만 핥구 살겠느냐 이렇게 말을 하겠지만서두 농사란 하느님이 시키는 노릇이란 말야. 우리네 농군이 농살 짓는 것두 이 농살 지어서 나만 잘 먹으리라 하는 건 아니거든. 내가 먹든 누가 먹든 농사가 잘 돼야 우리네 인간들이 먹구 살 수가 있다 - 이런 생각에서 짓는 게지’ (101쪽 장쇠 부 치수)
‘정말여 어떻게 되든간에 한번 뒤집어엎기나 해봤으면 좋겠어. 어찌되든간에-상놈 된 죄로 양처럼 고분고분히 농사 지어 바치겠다, 질쌈 짜서 바치겠다, 술 담구어다 진상하겠다, 그 뿐인가 계집까지 대령하겠다-무엇이 부족해서 그 지랄야 ’(103쪽 칠성) ‘제가 아무리 세도가 좋다기로니, 설마 음지가 양지 될 때도 있겠지유. 무고한 백성들을 고영히 대추나무에 매달구 쳤으니 저두 한번 매달려봐야 할 거 아니여유?(135쪽 장쇠) ‘죽일 놈은 죽여 없애야 백성들이 살잖아유’ (137쪽 장쇠) 한 두 사람이 세상을 뜯어고칠라구 되는 게 아니란 말이야. 옳은 말이지. 허지만 이것을 몇 사람이 억지루 바루 잡을련다구 잡아지는 게 아니라, 세상 사람이 도무 다 그것이 잘못된 이치인 줄 알게만 되면 가만두어두 제절루 바로잡아지는 것이니라. 그러니 아예 남의 말만 듣구 그런데 뛰어들지 말아라. 만석꾼이 부자하구 정승은 하늘이 내는 법이니라. 세상일이란 순조루 해야지. (139쪽 치수) 치수는 소같은 인물이다. 농사를 천직으로 여기면서 묵묵히 일하며 분수대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순종적인 인물이다. 양반의 권세를 등에 업고 같은 농민들을 호령하려는 박쥐 같은 돌이, 그리고 대놓고 양반에게 저항하지는 못하지만 양반들에게 횡포에 분노하는 칠성 같은 농민. 아마 대부분의 농민들은 칠성이 같을 것이다. 잠잠히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폭발하는 휴화산처럼.
이들은 양반의 횡포를 겪으며 상민이라는 신분을 뼈저리게 체험하게 된다. 그렇게 장쇠처럼 양반을 물리치고 세상을 뒤엎자는 인물, 세상을 뒤엎어야 한다는 인물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농민들이 신분제의 폐해를 깨닫는 사이, 신분제로 인한 불합리를 느끼는 양반 또한 등장한다. 물론 이들의 자각은 생존과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삶을 위한 농민의 그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양반은 제 아내를 선택할 권리도 없는 것이다. 말처럼 생겼거나 코가 하나도 없거나 양반은 버려서도 안되고 다시 장기를 들어서도 안된다. 그러나 상사람은 얼마든지 제 아내를 고를 수 있고 골라 살다가도 마음이 맞지 않으면 얼마든지 헤어질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양반이요, 이것이 상사람이다! (151쪽 박의관 아들-일양 ) ‘나는 어째서 저 사람들과 같이 인생을 즐길 수가 없단 말인가? 이 거추장스러운 옷이며 의관을 벗어던지고 행전 대신에 정강이까지 깡통하니 걷어 올리고 철벅철벅 논바닥을 걸어볼수는 없을까?’(151쪽 일양) ‘그러면 어째서 난 양반이고 분이는 상것일까?’(179쪽 김승지 딸-미연) 그래 양반으로 태어나면 태어났겠지 멀쩡한 사람들을 잡아다 때리고 패고 주리를 틀고 곤장을 치고 해서 돈이다 땅이다를 뺏을 수 있는 세도란 어디서 생긴 것일까?(179쪽 미연) 양반인 일양과 미연 또한 양반이라는 신분이나 권력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있다. 특히 박의관의 아들 일양은 가문에 소속된 인물이 아닌, 자신 감정대로 사는데에 양반으로 지켜야할 법도가 걸림돌이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일양이 미연에게 연서를 보내고, 만나자고 하는 것을 보면 이것은 가문이 아닌 개인적인 삶을 추구하는 인물이다. 그런 점에서 근대성의 징후를 드러내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농민’ 장쇠가 체제를 뒤엎는 저항적인 성격을 지녔다면, 양반 ‘일양’은 ‘농민’에서 가장 근대적인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성격과 인물 유형을 살펴보는 것만해도 '농민'을 읽는 맛이 났다. '농민'에서 제기되는 갈등은 '신분'에 의한 것이었다. 그 갈등은 동학군이 등장하고, 농민들 또한 두 양반을 치죄하자고 몰려온 것에 이르러 최고조에 이르게 된다. 양반 지도자가 아닌 아닌 농민 스스로가 양반을 치죄하고 나섰다는 점에서 작품에서 '농민'이 새로운 사회를 여는 주체로서 부각되고 있다.
'농민'은 신분에 의한 갈등 속에서 양반에 대한 저항성을 드러낸 인물과 가문에 충성하는 인물이 아닌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삶을 추구하는 개인적 성격을 등장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그런 점에서 농민소설 이상의 역동성과 시대성을 담고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