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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코프스키의 '서정적 장면들', 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
"차이코프스키의 '서정적 장면들', 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 내용보기
안나에서 오네긴으로 넘어왔습니다. 지난 겨울의 리바이벌이군요. 안나 카레니나는 그렇다 치고 겨울마다 오네긴이 생각나는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오네긴은 늦가을이나 초겨울, 11월의 스산한 쓸쓸함이 어울리는 작품인데 이상하게 겨울이 되면 더 새록새록 생각이 나거든요. 아니 그보다는, 렌스키의 아리아 때문인 것 같아요. 다른 계절에는 발레 영상을 돌려보다가도 겨울에는 꼭 렌
"차이코프스키의 '서정적 장면들', 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 내용보기




안나에서 오네긴으로 넘어왔습니다. 지난 겨울의 리바이벌이군요. 안나 카레니나는 그렇다 치고 겨울마다 오네긴이 생각나는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오네긴은 늦가을이나 초겨울, 11월의 스산한 쓸쓸함이 어울리는 작품인데 이상하게 겨울이 되면 더 새록새록 생각이 나거든요. 아니 그보다는, 렌스키의 아리아 때문인 것 같아요. 다른 계절에는 발레 영상을 돌려보다가도 겨울에는 꼭 렌스키가 오페라에서 부른 노래를 듣게 되니까요.


가지고 있는 영상이 몇 개 없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중 가장 손이 자주 가는 것은 르네 플레밍과 흐보로스토프스키가 주역을 맡은 2007년 메트 영상입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바리시니코프가 공연에 대해 소개하는, 반갑고 선덕거리는 장면이 들어 있기도 하고요. 


발레가 함축적이기 때문에 좋아하기는 하지만 발레와 비교해 오페라의 매력은 인물들이 각자의 목소리를 가지고 또 그렇기 때문에 발레에선 유추해서 이해해야 할 상황들을 오페라에선 노래를 듣는 것으로 해소된다는 것이죠. 


예컨대, 발레는 타티아나가 왜 그렇게 책을 끼고 사는지 원작을 읽지 않으면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데 비해 오페라에선 라리나 부인이 젊었을 때 사촌인 알리나 공비의 영향으로 리처드슨의 소설을 읽으며 설레는 사랑을 꿈꿨노라고 노래합니다. 오페라 관객들이 리처드슨이 어떤 작가인지는 모를지라도 타티아나가 어머니를 빼닮은 딸임을, 라리나 부인은 그래서 활달한 올가보다 타티아나를 근심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장치가 되는 것이죠. 






르네 플레밍의 노래도 아름답지만 이 작품은 흐보로스토브스키에게 집중하면서 보게 되는데, 1막과 2막이 시작될 때 회한에 찬 사내의 표정이나, 타티아나의 고백을 물리칠 때나 렌스키와 화해하고 싶지만 자존심 때문에 그의 결투를 싸늘하게 받아들이는 장면 같은 것은 냉미남 흐보로스토브스키이기에 납득시켜주는 장면들이라 더욱 그렇습니다. 2막에서 3막으로 넘어갈 때, 무대의 막이 내려오지 않은 채 렌스키의 시신이 치워지고 무대 위에서 오네긴이 옷을 갈아입으며 타티아나와의 재회가 이루어지는 무도회에 참석하기 위해 옷을 갈아입는 장면에서도, 흐보로스토브스키의 무심하고 냉엄한 표정은 오네긴이 실제 인물이라면 그런 표정을 지었을 것 같고요. 


반면 라몬 바르가스는 사람 좋은 호인으로 보이는 그가 성마르고 열정적인 렌스키라는 걸 납득하기 위해선 눈을 감고 노래를 듣는 편이 낫습니다. 노래는 더없이 아름다우니까요. 오페라를 감상할 때, 그러면 안 되지만, 쓰러져 죽어가는 미미가 고도 비만의 늙은 소프라노이거나 할 때 감정이 깨져버리는 일이 종종 있지요. 


오페라의 렌스키는 어제 만나고 헤어진 올가를 오늘 다시 보고도 가슴이 뛰는 로맨티스트로 원작에서보다 훨씬 달콤하고 사랑스러운, 또 그래서 더욱 감수성도 예민한 사람인데, 어떻게 보면 이 작품의 렌스키는 안나 카레니나의 레빈 같아요. 사회성 부족에 우울하고 무뚝뚝한 그 구혼자 말입니다. 그러나 죽음을 예감한 렌스키의 마지막 아리아를 부르는 바르가스의 목소리는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원작의 번역보다 오페라 가사의 번역이 좀 더 감상적이지만, 사실 원작에서 렌스키의 나이가 불과 18세로 설정되어 있다는 걸 떠올린다면 더 유치하고 감상적이지 않은 게 놀라올 정도지요. 여름엔 발레로 보게 될 작품이니, 겨울 동안 노래나 많이 들어두어야겠습니다.








편지를 쓰는 타티아나의 노래 "Puskai pogilabnu ya, no pryezhde" 




렌스키의 마지막 노래 "Kuda, kuda vy udalilis" 




타티아나와 오네긴이 함께 부르는 마지막 장면의 이중창



i******e 2013.01.20.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