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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2번씩 지리산자락을 간다. 시댁이 경상도 함양이기 때문이다. 증조할머니꼐서 그곳에 혼자 계시기 때문에 여름휴가철엔 다른 곳에 휴가를 가더라도 휴가 끝무렵엔 할머니를 찾아 뵙는다. 그리고 할머니 생신이 있는 겨울철에도 그 곳을 찾는 것이 일상이 되어 버린지 15년이다. 그래서 지리산은 언제나 친근한 산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내가 느껴본 지리산은 무더운 여름과 매서운 추위가 있는 겨울뿐이었다. 하지만 지리산 편지에는 사계절이 나온다.
벚꽃이 핀 봄이면 지리산에 봄이 찾아온다. 그리고 더운 여름, 낙엽지는 가을, 추운 겨울, 그리고 다시 산수유를 볼 수 있는 봄이 온다. 그 사계절의 변화를 이원규시인은 고스란히 온 몸으로 그것을 느끼니 얼마나 행복한 사람일까 하는 부러움에 내 마음 한 구석 시샘이 난다. 하지만 부러운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급박하게 하루, 일주일, 한달이 가는 쳇바퀴와 같은 서울생활에서는 지리산 속의 여유는 없다. 그저 밝은 햇살에 눈을 떠서 아스팔트를 밟고 자동차 매연으로 매캐한 도로를 지나 건물들이 즐비한 나의 일터로 간다. 둘러봐도 산이라고는 멀리 뵈는 남한산성이 고작이다. "그래도 남한산성을 바라 보는 것도 사계절을 느끼지는 하는구나" 그런 생각이 지리산 편지를 읽고나서 든 생각이다.
문득 이번 할머니댁에 가면 지리산에 한 번 올라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십수년을 다니면서 처음엔 지리산을 곧잘 올라가곤 했었는데 지금은 올라가는 것이 귀찮은 건지 차를 타고 한참을 내려간 여독 때문인지 산에 오를 생각을 하지 못했다. 가끔은 내려가는 것이 귀찮을(?) 때도 있었는데 이렇듯 아름다고 행복한 지리산에 가는 것도 내 복이려니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이번 여름엔 작은 오토바이를 빌려 타고 삼진강 자락과 지리산을 돌아보고 싶은 충동도 느껴진다. 그게 쉽지 않다면 할 수없이 차로 돌아보는 수밖에....섬진강은 가 본 적이 없어서 이원규시인처럼 나도 그 곳에 가서 이원규시인이 둘러 보았을 강을 보고 싶다. 마음이 평온해 지는 그건 글들을 읽게 된 것이 참 행복한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에 이원규시인이 우리에게 당부를 하는 대목이 나온다. 정말 휴가철이면 사람이 안 들어있는 산이나 계곡이 없다. 인산인해를 이룬다는 말이 꼭 맞다. 먹으러 떠나 휴가처럼 사람들은 먹어대기만 한다. 그리고 지리산에 쓰레기가 쌓인다. 그러니 먹을 것은 간소하게 가져오라는 시인의 부탁에 웃음이 난다. 발만 담그고 세제로 머리는 깜지 말아달라는 시인의 부탁에 수긍도 간다. 올해부터는 나서부터 시인의 부탁을 꼭 지킬 것을 다짐해 보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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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규님이 표현한 '절망의 아수라장' 치열한 세상의 한가운데서 이 책을 만났습니다. 별 생각없이 내 앞에 온 책이라 이토록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리라고는 예상치 못했습니다. 원래 서평에는 하다. 문체를 쓰는 저이지만, 이 책의 서평은 저도 모르게 존대를 하고 있었네요. 이원규님이 저에게 보낸 '우체통도 우체부도 거치지 않은 화살편지'에 답장하는 마음이 되어버린 겁니다.
이원규님은 시인이라고 합니다. 지리산에 11년동안 첩거하여 살다보니 지리산 시인이라고도 불리우고 있답니다. 철새처럼 그 일대를 떠돌면서 집 하나없이 지리산 전체가 나의 집입네~하시며 그렇게 자연의 일부마냥 잘 먹고 잘 살고 있다고 하십니다. 책에는 봄,여름, 가을,겨울을 거쳐 다시 봄까지 지리산의 절경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으로 씌여져 있습니다. 한살한살 나이 들면서 무뎌졌던 내 감수성도 시인과 함께하는 시간이다보니 꾸물꾸물 고개를 드는것도 느껴졌습니다.
'당신은..일반적인 사람들이 말하는 소위 잘나가는 사람은 절대 아닙니다. 세상앞에 그리고 그 속 사람들 앞에 우뚝 선 리더도 아니한데.. 그런 사람들의 산문집을 읽었을때보다 왜 당신의 말을 듣고있다보니 제 스스로가 이렇게 보잘것 없다는 생각을 갖게 할까요?' 이 책을 읽는내내 제 머릿속에 든 생각이었습니다. 마치 자연인냥 살아가는 이원규님이 자연이라고 스스로 인정하고 그 거대한 자연의 위대함 앞에 숙연해지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숨가쁘게 돌아가는 각박한 세상속에서 이런 분들이 계시기에 한번쯤, 정말 한번쯤은 나를 돌아보고 내 주위에 살아있는 자연을 돌아보게 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책을 읽고 있는동안 저는 참 행복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곧있을 여름철 어떤 휴가 보다도 제 마음에 촉촉한 단비같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책을 읽는 내내 진정한 '무소유'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정답인지는 알수 없지만, 아둥바둥하는 세상속에서 이원규시인이 마냥 부러운 것은 왜 일까요.. 내 욕심을 내려놓고 자연의 일부처럼 살아가는 일.. 이런게 아닐까요
"세상사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능동적으로 잘 맞이해야 또 잘 보낼 수 있습니다. 봄을 잘 맞이한 이는 어느새 봄을 배웅하면서도 <봄날은 간다> 노래를 부르며 탄식조의 애상에만 젖지 않습니다. 그 자신이 이미 온몸 그대로 봄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먼저 봄이면 송이송이 꽃이 피듯이 마침내 그대도 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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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에 <길을 지우며 길을 걷다>를 읽고, 이후 두 번째 만나본 이원규 시인의 산문집이다. '발로 쓴 편지'라기에, 발에 펜을 끼우고 썼단 말인가?, 발로 타자를? 이라는 엉뚱한 상상을 했음이 살짝 부끄럽다. 저자는 자신의 몸이 바로 움직이는 붓이요 펜이라는 것을 느끼고, '온 몸이 하나의 붓이 되어 한 발 한 발 힘찬 획을 그으며 걷다 보면 그것이 한 편의 시가 되고 편지가 되는 것'이라 하여, '발로 쓴 편지'라는 표현을 썼다. 온 세상을 거대한 원고지 삼아, 온 몸을 하나의 붓 삼아, 한 획 한 획 적어 전해오는 이 편지에서는 지리산 자연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여여하시지요?'라는 안부 인사와 함께, 향긋한 지리산의 봄 향기를 먼저 전해주며, 이어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봄, 이렇게 다섯 장으로 나누어 글을 싣고 있다. 각 계절마다 계절적 특성으로 그 계절에 피는 꽃이나 그 계절의 지리산 혹은 모든 자연의 모습 등을 보여주기도 해서, 비록 하룻밤 만에 읽은 책이나 마치 일년을 저자와 함께 보낸 느낌이 든다. 봄에는 그와 함께 지리산에서 매화향에 가득 취하고, 황어회에 소주 한잔을 곁들이고, 여름에는 불륜의 밤꽃 냄새를 맡으며 '불륜'이라는 화두에 대해 이야기하고, 가을에는 단풍나무며 붉나무도 좋지만, 그 보다 더 아름다운 단풍, 황금빛 들녘을 감상하고, 겨울에는 춥고 배고프고 힙겹고 외로운 겨울산의 희디흰 정신을 배워본다.
이렇게 자연을 배경으로 해서, 이원규 시인이 들려주는 맑고 깨끗한 이야기를 읽으며, 내 마음도 책과 함께하는 이 순간이나마 정화되는 느낌. 이런 책이 나는 좋다. 영혼이 맑아지는 느낌을 주는 이런 책이. 특히 기억에 남은 이야기가 있다. 산골 마을에서 결혼 후 60여년을 함께 살면서 금강혼식(은혼식, 금혼식 다음에 금강혼식이 있음을 이 책을 통서야 알았다.)까지 치룬 노부부. 할아버지를 먼저 떠나보내고 매일 할아버지를 모신 고구마밭 근처에 올라가 조용히 할아버지를 '만나고' 돌아오는 할머니에게 시인이 전해 준 시 한 편에 가슴이 찡했다. 할머니도 그 시 한 편에 많은 위안을 얻으셨을 것이다.
이 책과의 만남을 내 인생의 좋은 '인연'으로 가슴에 잘 담아두며, 이 세상에 인연은 있어도 악연은 없다는 시인의 말이 떠오른다. ...악연은 잘못된 만남이 아니라 한 하늘 아래 살면서 아예 만나지도 못하는 것. 결국 인연과 악연의 그 무서운 갈림길은 우리 마음속에 있습니다. 아직은 가지 않은 길, 내내 가지 말아야 할 길 - 악연의 길을 가기엔 인생이 너무나 짧습니다. 내 인생에서 앞으로 펼쳐질 모든 만남을 다 소중한 인연으로 간직해야겠다. 악연이었다면 애당초 나와 만나지지도 못했을테니. 사람으로 인해 힘들어지는 마음을 일순 잠재워주는 소중한 가르침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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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당도할 나의 편지는 이름하여 '화살 편지'입니다.'로 시작하는 지리산은 작가가 얼마나 지리산에 대한 얘착이 강한지, 여실히 보여준다. 얼마나 지리사의 소식을 전하고 싶으면 '화살'이라는 맹목적인 단어를 사용했을까?.. 사실 이원규라는 시인자체도 '빨치산'이라는 시로 기억하는 정도인 내게는 그야말로 화살처럼 내 가슴에 안착한 신선한 바람이다. 고프고, 아프고, 외롭고, 슬픈날들을 벗삼아 스스로 '청안 청락(靑安靑樂)하기위해 찾은 지리산에서 세상사가 무엇인지 깨달음을 얻고 , 스스로 행복함을 전도하고자, 꽃피는 봄날에 글을 쓰는 시인을 상상하며, 이글을 읽어 내려갔다. 시골에서 자랐다 해도, 산을 거의 가 본적없는 내게 작가의 지리산은 그야말로 무릉도원이다. 구례군의 드넓은 논들에 핀다는 자운영꽃을 찾아 나도 인터넷을 서핑했고, 바이크를 타고 흘러간 그곳에 재첩만 알고 있는 나에게, 섬진강은 꿈과 사랑도 함께 선물해 주었다. 오월 지리산의 푸른빛을 자랑하기 위해, 실상사 수월암의 연관스님이 운서주굉이 쓴 [죽창수필]을 선역한 [산색]의 두 문장을 소개한다 '날샌말은 채찍 그림자만 보고도 내달린다. 송곳이 살갗에 꽂혀서야 알아채는 것은 둔한 말이다. '(본문 59쪽) 푸름을 푸르게 보지 못하고 사는 우리 현대인들이 갑자기 불쌍해 지는 대목이다. 글 중에서 얼마전에 작고하신 권정생 선생님에 대한 글은, 날 다시한번 가슴저리게 한다. 평생을 다섯평짜리 낡은 집에서 종지기로 살다간 권정생 선생님의 얼어붙은 '하느님의 눈물'은 지리산 골짜기 따스한 기운으로 녹여줄듯, 따스한 대목이다. 넓디 넓은 지리산이야기는 내게 잠시의 휴식과, 느림의 평안을 가르쳐 주었다.
-'과정으로서의 길을 생략하고, 길이 집이라는 사실을 외면한채 집착과 욕망으로서의 집만 존재할 때 오히려 우리는 자주 길을 잃게 됩니다.'-(본문 128쪽)
현대인의 앞만 보고 달려감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잠시 자연의 흐름에 그냥 나를 내 맡기는 나그네가 되라 하는 글 같다. 이 글을 읽으면서 갑자기 쿠바의 혁명을 위해 바람처럼 살다간 체 게바라가 생각났다. 체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바이크가 나오는데, 작가도 바이크 하나에만 의지하여, 지리산을 거의 바람처럼 타고 다녔다고 한다. 혁명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나라를 위해, 인간을 위해, 단지 가슴아픈 인생을 구제하기 위해 나를 버린 체와 작가가 동일시 되는 것은 짧은 내 감상때문 일 것이다. 엄마가 집을 떠난 자식에게 이르듯 너무나 따스한 글로 우리를 지리산으로 이끌어준 시인에게 감사한다. 쏟아지는 많은 자기 개발서나, 계획서 , 성공담으로 가득찬 책들의 호우속에서 잠시 바람을 피하듯, 기분 좋은 나들이를 하고 온 기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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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연을 닮아간다. 하루만 시간을 내어 산에 가면 푸름의 느낌으로 몸과 마음이 변하는 것을 느낀다. 지리산에 사는 저자 이원규씨는 매일 지리산과 함께한다. 그래서 그는 지리산과 닮아있다. 자연의 소박한 미를 닮았고 각박하지 않음이 닮아있다.
요즘들어 부쩍 서류철이 싫어진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 보면 네 번째 별에서 기이한 사람을 만난다. 어린왕자가 만난 사람은 실업가이다. 실업가로 나오는 그 사람은 하늘 높이 떠있는 무수히 많은 별들을 세는 일을 한다. 마음의 작은 여유도 없이 성실히 일만 한다. 그는 54년 째 그저 별만 셀뿐이다. 행복을 느끼지도 않고 웃지도 않으며 사랑을 하지도 않고 하물며 방황을 하지도 않은 채, 그저 일할뿐이다. 가끔 서류철을 정리하다 보면 내가 그 실업가가 되어 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우울해 진다. 이런 면에서 지리산편지의 저자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형식적인 서류에 얽매이지 않아서 행복해 보인다. 무소유의 역리를 느끼는 그이기에 누구보다 풍족해 보인다.
마음의 풍족함이 물씬 느껴지는 산문의 글들은 조금은 '시'와 닮아있다. 시인의 산문집이기에 산문에서도 '시'의 향기가 났다. 곳곳에는 실재로도 시 몇 편이 실려 있어서 읽는이의 감흥을 도왔다. 책 서두에 발로 쓴 편지라는 구절이 나온다. 발로 쓴 책인만큼 그의 체험이 곳곳에 담겨 있다는 말이다. 이 책처럼 머리와 손으로 쓴 책들 말고도 발로 쓴, 귀로 쓴, 눈으로 쓴, 심장으로 쓴, 아랫배로 쓴(?) 글이 많이 나왔으면 한다.
갑자기 지리산에 가고 싶다. 천왕봉 일출을 보러 가고 싶다. 노고단 푸른 바다를 보러 가고 싶다. 반야봉 저녁 노을을 품으러 가고 싶다. 불일폭포의 물방망이를 맞으러 가고 싶다. 벽소령 눈 시린 달빛을 받으러 가고 싶다. 처녀림 칠선계곡에 가고 싶다. 연하봉의 벼랑과 고사목을 보러 가고 싶다.
하지만 저자는 지리산에 올 수 있는 자의 자격을 엄격히 제한한다. 지리산에 오려거든 '삼대 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올 수 있다. '이슬의 눈'을 갖고 와야한다. '온몸으로 달아오른 절정'으로 가야 한다. 또는 '아무 죄없는 나무꾼으로 와야한다.' 등의 조건이 붙는다. 하지만 시의 끝에 나온 구절은 서두의 조건들을 다른 부조건으로 일제히 말소시킨다.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 언제나 첫 마음이니 // 행여 견딜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행여 견딜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그곳에서 나도 발로 편지를 써보고 싶다. 산의 기운을 받아 써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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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 가 본적이 없어서 사실 이 책을 보면서 지리산의 내음이라도 맡아볼까 하는 심정으로 읽어보게 되었다. 표지에는 <지리산 편지>라고 씌여져 있는 멋드러진 글씨 아래로, <봄이 오는 길목에 서서 그대의 안부를 묻습니다>라고 적혀있고 저자인 <이원규 산문집>이라고 적혀 있었다. 산문집을 대하는 것도 실로 오래전 기억이라 생소한 느낌이 들었다. 요즘들어 아이의 엄마로 살다보니 내 책이라고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들이 주로 많았던 것 같다. 시나, 에세이, 수필 같은 장르의 책 보다는 흥미위주로 단편적인 추리소설을 더 선호했던 것 같아서 오랜만에 접하는 산문집에 대한 느낌이 색다르게 전해져 왔다.
책은 지리산의 봄으로부터 시작한다. <여여하시지요?>라는 생소한 문구로 안부를 묻는 첫 부분을 시작으로 섬진강의 매화 소식부터 전해주고 있었다. 매화의 고운 사진과 함께 <봄의 전령 황어떼가 섬진강을 거슬러 올라야 비로소 매화꽃이 핀다>고 하며 <매화는 산수유꽃을 부르고, 산수유꽃은 제비꽃과 벚꽃을 부르고, 벚꽃은 복사꽃과 철쭉꽃을 부르니 마침내 지리산은 완령한 봄날입니다>라고 한 부분이, 지리산의 꽃 소식을 알수 있게 해 주는 구절이라 마음에 와 닿으며 가보지는 않았지만 지리산에 피는 봄꽃을 느끼게 해 주는 대목이었다. 그렇게 지리산의 봄의 자연으로 시작된 산문집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또 봄이라는 계절이 느껴지는 자연의 이야기가 참 마음에 와 닿는 언어들로 나열되어 마음에 와 닿았다. 자연 이외에도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등장하고, 하느님의 눈물을 볼 줄 아는 유일한 사람으로 이야기하는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님의 삶, 산중 암자의 이야기 등 종교를 초월해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읽는 이로 하여금 부담을 덜어주는 것 같았다. 특히, 장마가 끝난 지금 시기와도 맞아떨어지는 시점에서 읽어본 <한센인>의 슬픔에 대한 구절이 마음에 깊이 박혔다. ’보리 문디’의 어원에 대해 읽어내려가다보니, 편견때문에 겪어야 하는 그들의 고통도 전해져오는 느낌을 받았다.
지리산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느껴볼 수 있는 자연이 주는 느낌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저자가 전해주는 이야기가 경쾌하기도 하고, 묵직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마음에 와 닿는 이야기가 많은 것 같다. 책을 주로 밤에 고요한 시간에 읽다보니, 더 가까이에서 저자의 삶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도 전해져왔다. 어찌보면 극히 개인적인 부분도 있었지만, 지리산에서 살아가고 있는 삶을 보며, 욕심도 없고 꾸밈도 없이 소박한 삶이 잔잔하게 읽는 이에게 부담감이 없이 전해질 듯 하다. 사진도 간간히 들어 있어서 지리산에 가 본적이 없는 나에게도 지리산 내음을 조금이나마 맡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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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목소리 아무리 생각해도 낮은 목소리, 사랑의 귓속말이 세상을 바꿉니다. 크고 빠르고 높은 목소리는 일시적인 긴장과 공포를 유발할 뿐 마음 깊숙한 곳까지 도달하지 못합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낮고 느린 목소리로 속삭이면, 뜨거운 입술이 닿기도 전에 귓불의 솜털들이 바르르 한쪽으로 쏠리다가 일어서고, 그러는 사이 사랑의 최면술은 시작되는 것이지요. - 이원규의《지리산 편지》중에서 - * 사람을 바르르 떨게 하는 힘, 그 깊고 그윽한 힘은 큰 목소리에 있지 않습니다. 작고 낮지만 진심이 담긴 사랑의 목소리에 있습니다. 낮은 목소리를 회복하는 것이 사랑을 회복하는 길입니다. 진정한 마음이 담기면 아무리 작은 귓속말도 사람을 떨게 하고 세상을 떨게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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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기 바랍니다. 다만 등산(登山)은 말고 입산(入山)하러 오시길. 등산은 인간의 정복욕과 교만의 길이지만 입산은 자연과 한몸이 되는 상생(相生)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경쟁하듯이 지리산 종주를 하다 보면 보이는 것이라곤 앞 사람의 발꿈치뿐이지요. 하지만 입산의 마음으로 계곡의 바위들을 타고 흔적도 없이 오르는 사람에게는 몸속에 이미 지리산이 들어와 있습니다. 유정무정의 뭇 생명들이 곧 나의 거울이자 뿌리가 되는 것이지요. 저자의 전작 '길을 지우며 길을 걷다'에서 발견했던 등산에 대한 글중에 기억나는 구절이다. 이 글을 읽고지금까지 내가 산을 찾았던 행위는 그야말로 등산이었다는것을 깨닫게 해주던 구절로 기억된다. 이 후 나는 산을 찾을때마다 저자의 이 구절을 생각하며 운동을 위한 등산을 지양하고 마음의 여유을 찾는 입산을 하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본문 중간중간 평화롭고 아름다운 자연과 일상의 풍경이 담긴 사진을 수록하였다. 이 책은 5부 50꼭지로 구성되어 있으며 계절의 흐름을 따라 서술되었다. 한 편 한 편 의 글들에서 중요한 화두 하나씩을 던져주고 있다. 그것은 하찮은 미물에서 시작하여 우리가 흔히 만나는 꽃이나 나무, 산이나 강이나 돌을 비롯하여 그 어느 것 하나 우리와 연결되지 않는 것이 없으며, 누구나 정복해야 할 것은 마음속 욕망의 화산(火山)이지 몸 밖의 산이 아니다라는것을 깨우치게 해주는 것으로 그의 글들은 읽는이로 하여금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힘이 있음을 느낀다. 이 책은 지리산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이원규 시인이 《길을 지우며 길을 걷다》 이후 4년 만에 출간한 산문집이다. 홀연 지리산으로 들어가 빈 집과 절방을 옮겨다니며 십여년째 살고 있는 저자는 낙동강 1,300리와 지리산 850리를 두 발로 걷고 걸어 쓴 글들을 담고 있으며 세상을 등지고 지리산으로 들어간 것이 홀로 안분지족의 삶을 누리기 위한 현실도피가 아니었음을 토로하고 있다.
그는 서문에서 안타깝게도 세상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스스로 행복하다는 사람을 만나기가 참으로 어려웠다고 밝히고 있다. 인생은 고해라지만 모두들 어려운 생활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안타까웠다고 한다. 그의 지리산편지는 바로 속도전에 정신 없는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한 호흡 쉬어갈 수 있는 여유를 줄 수 있을것 같은 글들이다. 화려한 미사여구로 감수성 짙은 글을 쓰기보다는 척박한 현실을 온 몸으로 부대끼며, 살아 뛰는 날 것의 언어를 쏟아내었던 저자의 글들에서 잠시라도 평화를 느끼시길 권해드리고 싶다.
낮은 목소리 아무리 생각해도 낮은 목소리, 사랑의 귓속말이 세상을 바꿉니다. 크고 빠르고 높은 목소리는 일시적인 긴장과 공포를 유발할 뿐 마음 깊숙한 곳까지 도달하지 못합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낮고 느린 목소리로 속삭이면, 뜨거운 입술이 닿기도 전에 귓불의 솜털들이 바르르 한쪽으로 쏠리다가 일어서고, 그러는 사이 사랑의 최면술은 시작되는 것이지요. (본문중에서)
망덕포구를 향해 걷고 또 걷다가 닷새 만에 막 피어나는 매화꽃, 눈빛 선연한 그대를 만났습니다. 섬진강 매화나무 아래 쪼그려 앉아 그대의 안부를 묻습니다. 여여하신지요? _본문 <섬진강 첫 매화가 피었습니다> 중 14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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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섬진강 첫 매화가 피었습니다. 망덕포구를 향해 걷고 또 걷다가 닷새 만에 막 피어나는 매화꽃, 눈빛 선연한 그대를 만났습니다. 섬진강 매화나무 아래 쪼그려 앉아 그대의 안부를 묻습니다. 여여하신지요? <<지리산 편지>> 산문 첫 편의 앞부분입니다. 시작이 마음에 듭니다. ’여여하다’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읖조리는 느낌이 무척이나 기분 좋습니다. 사전을 찾으니 ’여여하다’ 는 1. 초목이 무성하다. 2. 위엄있게 느릿느릿 움직이는 태도가 있다..라고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위 문장에서의 뜻은 아닌 듯합니다. 아마도 위의 뜻은... 변함없이 항상 똑같다..라는 것일 테지요. 지리산에 입산한 지 10여년이 되신 이원규님이 지리산을 벗삼아 길을 곧 집처럼 여겨 2만리를 걷고 배를 타고 4만리, 모터사이클로 50만 킬로미터를 누비는 동안 느끼고 깨달은 것이 모두 담겨져 있는 듯한 책입니다. <<지리산 편지>>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봄으로 이루어져 있어 지리산의 아름다운 모습이 계절마다 어떻게 변해가는지 알 수 있고, 그에 따라 이원규님은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시인이라는 직업을 살려 곳곳에, 풍경이나 자신의 마음에 딱 맞는 시를 골라 써 넣고 그 시를 풀어주시기도 하고, 친분이 있는 시인들의 이야기나 주변의 동물 이야기 등을 읽으며 정말 편안하게, 하지만 진심으로 슬픔, 기쁨, 행복, 고통..등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인연은 있어도 악연은 없다고 하네요. 전 악연은 있다고 믿는 사람이었는데, <악연은 없습니다.>라는 장을 읽으니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소중한 만남을 스스로 망쳐놓고 자기 합리화를 하는 것이라고요. 다시 반복하거니와 아무리 생각해도 이 세상에 악연은 없습니다. 행여 악연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다만 잘못 살았다는 것의 반증일 뿐입니다. (101p) <<지리산 편지>>를 읽고 나니 나도 걷고 싶어집니다. 이원규님처럼 걷는동안(이원규님이 걸으셨던 이유는 "생명평화"라는 이름의 순례단에서였지만) 나의 짐과 고민을 훌훌 털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아서 나도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걷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하지만, 이 책을 읽고는 절로 걷고 싶어졌습니다. 아마도 세속의 짐 같은 건 내려놓고 훌훌 떠나 자유롭게 사시는 이원규님의 삶을 들여다보고 따라하고 싶어진 것이겠지요. 부러웠습니다. 저도 언젠간 그렇게 훌훌 털고 떠날 수 있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