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에서 알수있듯이, 이책에는 화가와 정원사가 나온다.그리고 그들은 대화를 한다. 그뿐이다. 아름다운 현상에 대한 묘사도 없고, 현란한 생에 대한 논쟁도 없다.그들의 대화는 너무나도 현실적이고 너무나도 사실적이고 참으로 밋밋하기도 하다. 그래서, 이책은 의미를 갖는지도 모르겠다. 시골의 젊은 화가, 그리고 이 화가의 정원을 돌보아 주는 퇴직한 정원사 아저씨의 대화가 처음에는 무슨 장난같기도 하다.꼭 필요한 행동에 대한 설명이 최소한의 지문형식으로 묘사되어있는것을 제외하고는 모든것이 대화로만 되어져 있다.책의 초반부에서는 이해가 안되기도 하고, 연결되어져 있는 대화들이 너무 평범해서 심심하기도 하다. 그러나, 바로 그것 아닌가..우리들의 삶이 말이다.누구나 특별해지기를 원하지만, 우리는 모두 평범한 길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삶속에서 모두 특별한 의미를 가진 하나의 개체들이다.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아무리 하찮을지라도 모두 전문가들이며, 아무리 못배웠을지라도 우린 모두 우리 인생속에서 철학자 들이다.바로 그점들을, 이책은 담담하고 편안하게 알려주는듯하다. 그들이 대화한 '버려도 될, 무심코 한, 부스러기 말들'과 그들이 행동한'부스러기 조각들'이 모여서 한권의 책이 되었듯이, 그리고 그 부스러기들은 결코 버려져도 될 부스러기 나부래기들이 아니었음을,정원사가 가꾸고 있는 정원과 흙속에서, 화가가 그리고 있는 그림속에서 그들은 최고의 인생가이며 철학자임을 알수 있듯이,,우리 모두 우리의 삶속에서 누구도 모방할수 없는 최고의 철학자임을, 그래서 조금더, 자신의 삶에 기쁨과 자긍심을 가져도 되지 않을까..이책은 그렇게 나에게 말해주는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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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그리고 우리는 살면서 대화하는 법을 잊고 살고 있는게 아닐까?
뭔가 거추장스러운것들을 생각하고 말해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면서 살고 있지 않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들게 했던 화가와 정원사..
국영철도에서 퇴직하고 현재는 어느 화가의 정원을 돌보고 있는 주인공 할아버지.. <이름은 까먹음="">
그는 말하는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가 일하는 그 집 주인인 화가역시 그와 대화하는걸 즐거워한다.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의 내용들 자체는 별로 특별한게 없다.
자신들이 경험한 평범한 꺼리들을 서로 주고 받을뿐이다.
물론, 그안에 주고 받는 내용들은 사실의 전달에서 그치는것이 아니라 , 그때 당시의 자신의 감정과 느낌들... 그리고 새로운 발견도 포함되어있다.
그들의 대화를 듣다보면 나도 모르게 행복해진다.
그 행복의 감정들은 무엇일까?
지루한 일상을 살면서 내가 잊고 살았던 것들을 돌아보게 하는힘..
그러고보면, 이들의 대화속에서 가장 부러운 점은 욕심없는 자의 따뜻함이라고 해야할까?
그들의 대화에 귀기울이다보면, 죽음에 관한 정원사의 태도가 눈에 띈다.
그에게 죽음이란 일상의 종결점이다.
약간은 무겁지만 마냥 슬프기만 하지도 않은 죽음에 대한 그의 자세....
위가 아닌 아래를 바라보면서 가지게 된 섬세한 관찰력..
길게 호흡하고 살면서 가지게 되는 삶의 통찰..
노인은 웃음 짓는다.
그리고 행복하다고 말한다.
갑자기 정원사의 적상추가 궁금해졌다.
지금쯤.. 적상추는 잘 자라고 있을까?
[인상깊은구절] 옛날엔 하늘, 천둥, 비, 꽃, 새, 사람이 먹는것. 이런게 다 이야기를 했지. 천둥은 큰 통을 굴리거나 화를 내는 신이었고, 눈은 거위 털을 뽑아 뿌리는 신이었어. 그리고 새는 곧 닥칠 계절이나 날씨를 알려주었지. 그런 식으로 사물들은 다 의미를 갖고 있었어. 요즘은 무슨일이 일어나도 전혀 이해를 못해. 더 이상 뭐가 뭔진 몰라. 채소? 그건 그냥 채소지. 포장되었을 때라야 뭔가로 보인다구. 사람도 마찬가지야. 포장된 상품이지...... "이름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