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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주된 국제 분쟁 양상이 정규군 간의 대결이었다면 현재의 그것은 불특정 민간인을 상대로 한 테러라고 봐야 한다. 전쟁이 아무리 사악한 현상이라고 하나 그 나름 규칙이란 게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비교전 비무장 민간인을 상대로 무력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예컨대 한국이 베트남을 상대로 사과를 한다면 그건 '전쟁에 참여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민간인에 대한 무고한 살상이 그 대상이어도 대상이어야 한다는 것.
여튼 이런 테러의 방지를 위해 세계 여러 나라가 발 벗고 나선다는 사실 자체야 나무랄 데 없다. 문제는, '테러' 자체가 무슨 생명력을 가지고 날뛰는 게 아니라 '구체적으로 누구에 의해 이뤄지는 테러'이며 그 준동 세력 자체를 제거해야 문제가 해결되는 건데, 이런 영화를 보면 여러 나라가 힘을 합쳐 '테러 제거'만 외치고 합의를 보면 뭐가 해결이나 될 듯한 억지 설정을 취한다는 데에 있다.
ISIS면 ISIS, 탈레반이면 탈레반, 이렇게 무슨 주제(객체?)가 정해져야 하는데, 영화에나 나오는 저런 형식만 요란한 행사는 그게 국제 간 합의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해 봐야 아무 실속이 없어서 안 이뤄지는 것이다. 감독(물론 이 감독뿐 아니라 다른 연출자들 포함)의 현실 인식 미진이나 무지로 인한 이런 억지 세팅은 여러 영화들에서 꽤 자주 보이는 편이다. 인터폴 있다고 국제 범죄 근절 안 되는 거나 마찬가지다. 인터폴 창립시 국가 원수들이 모여 성대하게 파티 열고 조인식 갖고 한 적 없다는 걸 돌이켜 보면. 만약 국제 연계를 통한 테러 방지 시스템 구축 정도가 의의라면, 그런 건 이미 지금도 유럽 여러 나라와 미국 사이에 작동되고 있다.
이 영화를 두고서는 그런 문제보다, 같은 사건을 여러 등장 인물들 간 시점을 달리하며 반복적으로 재현하는 게 지루하다는 비판이 있다. 대체로 이런 느낌은 스크린에서 보지 않고 재판매 매체를 통해 감상한 이들 사이에서 나오는 듯한데, 나 역시 극장에서 볼 때는 여튼 엄청난 스케일과 청각 효과 때문에 압도되는 느낌이었고, 뭔가 큰 화면에서 대형 재난이 벌어질 때 사람들이 동분서주하는 모습을 구경만 해도 그게 괜한 조바심으로 이어지는 게 인지상정이다(라곤 하나 내 기억으론 <볼케이노> 같은 걸 볼 때 그렇지도 않았던듯). 하긴 극장에서는 다큐를 봐도 뭔가 심각해지고 몰입이 되지 않던가.
반면 TV 등으로 봤을 땐, 사건이 앞으로 쭉쭉 나가질 못하고 같은 자리만 맴도는 게 답답하게 여겨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이 또 해대는 말이, '시도는 좋았다'이다. 뭐가 좋았냐면 (앞에서 말한 것처럼) 동일 사건이 여러 사람 눈을 통해 교차 조명되고, 이를 통해 평균 관객에게 '무엇이 과연 객관적 진실이었는지' 재구성하게 만드는 동기가 분명 있었다는 것. 그래, 이게 그처럼이나 '시도가 좋았다'면, 왜 '시도만으로' 모든 관객에게 호평을 이끌어내지 못했을까? 다시 말해, 뭐가 부족해서 저런 김 새어하는 반응들이 나온 거냐 이 뜻이다.
재난이 닥쳤을 때 장르의 공식은 그저 천하무적의 히어로가 기어나와 악당들을 다 때려잡고 질서를 수습하는 진행이겠는데 이 경로를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 우스운 건 본인 취향 수준도 별로면서 남들이 장르 전형에 열광하면 거기 동참은 못 하고 괜한 트집을 잡는 자가 꼭 있다는 사실이다. 아무려면 이런 재미 없는 영화에 대고, 장르 공식에 어긋나기만 했다는 이유로 혼자서 정직하게 열광이라도 한단 소린가? 뭐가 되었든 간에 재미없는 건 재미없는 것이다. 배우들(몇몇 조연)의 연기가 나빠서, 그러잖아도 진상의 재구성이 헷갈리는데 연기도 시원찮아서 뭔 소리를 대체 하는 건지 종잡을 수 없게 만들어 짜증나서일까?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고, 다만 몇몇 배우들이 참 연기를 못하기는 했다.
대형 테러의 한복판에서 정말 초인적인 존재가 다수 대중을 구원해 줄 수는 없는 만큼, 평범한 개인들이 선의와 지혜를 모아 난국을 타개하는 게 현실이기도 하기에, 이런 다중 시점 플롯은 기법상으로만 타당한 게 아니라 주제의식상으로 바람직하기까지 하다(어휴!). 그럼 도대체 뭐가 문제였나? 이 영화에는 어쩌면, 다른 헐리웃 오락물에서 즐겨 다뤄온 '대통령 보디 더블'이나 '스나이핑 서스펜스' 등, 이야기 형식이나 대형 스펙터클 말고도 관객의 흥미를 돋울 요소가 많이 끼어든 셈이다. 매력 요소가 서로 유기적 작용을 못 하고, 제멋대로 근본 없는 레시피 속에 각개약진을 하는 점이, 사연 만큼이나 보는 사람 정신 없게 만든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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