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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세계 10대 불량식품 선정에 대한 기사를 봤다. 짜고 자극적인 음식들이 다수 선정 됐는데, 그 원리대로 따지면 몸에 좋은 식품으로 선정 된 김치도 해당된다고 한다. 뭔가 아이러니컬한 느낌. 이런 걸 소위 동전의 양면 같다고 하던가. 철학은 이런 특성을 지닌 분야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철학에 대한 이야기는, 길을 걷다 “도를 아십니까?”라고 묻는 사람들과 비슷한 취급을 받는 것 같다. 도를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이나 도를 일상의 불편한 면으로 생각할 뿐, 그것으로 인해 우리 삶에 다가오는 긍정적인 면은 아예 보려하지도 않는다는 소리다. 일상의 -매사 철학적 시각은 좀 피곤하겠지만-단 한 면이라도 철학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습관을 하면 조금은 재미있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오늘 아침 눈을 떴을 때, 희한한 꿈을 꿨는데, ‘꿈을 꾼 나는 지금 깨어난 나와 동일 인물일까? 꿈속의 나와 지금의 나가 연장선에 있는 게 맞는 소리 아닐까? 그럼 꿈을 꾸지 않았다는 건, 내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소리인가?’ 이런 생각들이 물밀처럼 밀려왔다. ‘웬일이야, 내가 별 생각을 다하네.’ 이렇게 끝을 맺긴 했지만.
철학의 입문서라고 소문이 난, <소피의 세계>를 집에만 모셔두고 있는 내게 <철학 토크쇼>는 하나의 도전이었다. 책속 추천사를 좀 인용하자면, “소피의 세계가 철학의 역사를 중심으로 철학을 소개하고 있다면, 철학 토크쇼는 철학적 문제들을 중심으로 철학을 쉽고 친숙하게 소개하고 있다.”(480페이지) 딱딱한 철학서들에 비해 얇을지는 모르지만 그 내용은 그리 쉽지 않다는 건 자명한 사실! 부제의 일부인 ‘굳어버린 머리가 말랑말랑해지는’ 효과를 잠시라도 느껴볼 수 있었던 것 같다.
8가지 철학 토크쇼가 마련되어 있었다. 그 방대한 분량을 좀 더 잘 정리해 보려고 노력은 했으나 초짜가 해봐야... 나대로 간단히 정리해보자는 마음이 생겼다. 우선 <철학 토크쇼>는 소설의 형식을 빌려 썼다. 소크라테스가 대통령인 이데아월드에 벤이라는 소년이 내기의 대상이 되면서 철학에 대한 쌍방의 주장이 시작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에 반항(?)하는 인물로는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이 등장한다. 논리학, 언어학의 대가로 알려진, 그러나 그 이상은 모르겠다. 소크라테스에 대해서도 이름이야 워낙 유명해서 알지만 그 이상은... 여하튼, 이데아 월드의 철학자들은 감각적이고 현대적인 모습으로 종종 등장한다. 스포츠카를 몰고 나타난 플라톤이라든지, 테니스를 열심히 치는 니체라든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소크라테스와 비트겐슈타인은 벤이 철학으로 인해 그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왔느냐는, 조금은 원초적인 질문의 내기를 한다. 물론 벤은 둘이 이 내기를 했는지 전혀 모르고, 이데아 월드에서 8가지 철학적 문제들을 다른 주장을 가진 사람들을 통해 배운다. 그로 인한 결과는 어떻게 될까? 철학을 사랑할 수는 있다. 재미도 있다. 그런데 과연 철학이 우리의 삶을 사랑으로 가득 채울 수 있도록 변화를 줄 수 있을까? 그렇게 주장한 소크라테스 자신도 결국, 철학을 사랑했지만, 그로 인해 죽임을 당하지 않았는가. 그렇다고 비트겐슈타인이 주장하고 있는 철학은 쓸데없다는 건 너무 까칠한 반응 같다.
철학에서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내 몸을 기준으로 안과 밖, 이렇게 두 가지 세계가 존재하고 그 두 가지 세계에서 세세한 탐구가 좀 더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철학인 것 같다. 철학에 대해 친숙한 이들에게는 당연하게 들리겠으나, 이걸 발견한 순간 내 자신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첫 번째 토크쇼였던 ‘현상과 실재’는 몸 밖의 세상에 대한 탐구로 여겨지지만 개인적 판단으로는 사물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의 차이로 다가오는 것으로 여겨지기에, 결국은 내 몸 안에서 대상에 대한 인식의 문제라고 판단한다. 그렇게 따지면 현상과 실재의 구분도 ‘나’라는 존재에서 이루어지는 문제인 것이다. 우리가 소위 말하는 상식이라는 것이 이 현상과 실재에서는 조금 뒤틀린다. 24시를 기점으로 하루가 생성되고 소멸된다고 여겨지지만 그걸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는 게 과연 맞는 소리일까? 책을 읽었다고 하더라도 그 대답은 알 수 없다. 존재와 인식, 마음과 물질, 이런 식으로 상반되는 주장들이 줄기차게 등장한다. 두 번째 토크쇼였던 ‘존재와 인식’에서는 죽음에 대해 갑론을박을 했는데, 내 삶의 지침 중 하나가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다. 어쩌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 혹은 회피하고자 마련한 대안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상반된 주장들이 머리아프지만 너무나 그럴 듯하게, 매력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재미가 있었다. 한쪽 말을 듣다보면 ‘정말 그렇구나.’ 하다가도 어느 새 반박하는 이의 목소리에 흡입되고 만다. 정말이지 어느 한쪽을 듣기에 양쪽 모두에게 설득되기 충분했다. 이럴 때야 말로 오컴의 면도날을 적절하게 사용해야겠지만, 소용없을 때가 많고 골치 아프게 만들기도 했다.
우리 몸뿐만이 아닌 세상의 모든 것이 단순히 분자들의 결합이라고 생각한다면, 조금 서글플 것 같다. 내가 느끼는 기쁨, 슬픔, 등의 감정이라는 것도 뇌가 100% 좌지우지한다는 소리인데, 물론 뇌의 작용으로 눈물을 흘리고 웃음이 나오고 하는 건 사실이리라. 하지만 그것 뿐 일까. 나는 좀 관념론에 가까운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관념론의 모든 것이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가 다르다고 할 수도 없지만, 같다고 할 수 있는 명확한 증거도 없는 게 사실이니까. 거기다 비트겐슈타인 주장의 일부인 철학이란 말장난이라는 것도 원초적인 측면에서는 맞는 소리인 것 같다. 간단하게 생각해도 될 문제를 꼬아, 꼬아, 꼬아~~~ 놓았기 때문에! 비트겐슈타인은 그 모든 걸 언어에서 찾았다. 그런 잘못된 언어들을 바로잡으면 결국 철학문제란 없다는 판단이다.
소크라테스가 이야기한 “검토되지 않는 삶이란 살만한 가치”가 정말 없을까? 비트겐슈타인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일 수 없듯이, 소크라테스의 주장도 그런 부분이 있었다. 개인적 차이가 있겠지만, 우리의 주인공 벤은 어떻게 결론지었을까? 철학을 사랑하게는 된 것 같다. 그렇다면 철학이 그의 삶을 좀 더 윤택하게 만들었을까?
나는, 철학은 은근히 재미있는 학문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매사 모든 것을 철학적 시각으로 철저히 바라보는 건 좀 피곤할 것 같다. 자연스럽게 녹아든 일상의 철학은 대환영이다. <철학 토크쇼>의 강점이 그것이 아닐까 싶다. 위에서 -길어질까봐-언급은 안하려다..., 어떤 행위에 대한 잘잘못을 판단할 때, 그 판단에 대한 확신이 정말로 옳을까? 특히 윤리적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상식이라고 여겨지는 것이 정말 옳은 일일까? 한번쯤 자문해 보면 좋을 것 같다. 예를 들면, 소수의 희생으로 다수를 살릴 수 있다면 그럴 수 있겠느냐하는 점이다. 단순히 이익 문제가 아니라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말이다.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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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과학을 향한 외면의 농도는 나날이 짙어지고 있다. 학생들의 지원이 뜸해 몇몇 대학에서는 철학과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운 실정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철학 입문서는 꾸준히 출판되고 있다. 사람들의 무관심이 난해함의 고수라는 인문학 문제로부터 비롯되었다는 반성이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이 책도 그러한 시도의 일환으로 볼 수 있을 듯하다. 옥스퍼드를 졸업한 재원인 저자는 십대 소년 벤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십대들이 그러하듯 벤 역시 철학에 대해서는 조금의 관심도 지니지 않은 소년이었다. 그 평범함으로 인해 벤은 장기 집권해온 소크라테스와 그에 반대하는 비트겐슈타인 간의 내기에 초대받았다. 그렇게 발을 디딘 곳은 다름 아닌 이데아월드였다. 철저히 작가가 창조해낸 세계. 이데아월드는 죽은 철학자들로 그득한 곳이었다. 사람들은 명확한 답을 원한다. 그렇지만 철학에는 수십 혹은 그 이상의 길이 존재한다. 그 가능성을 모두 고려하는 것은 머리가 아픈 일이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는 대강 훑어보고 가장 편한 방법을 택하는 모양이다. 작가는 이데아월드라는 가상의 세계를 통해 다양한 길을 우리에게 제시해주었다. 솔직히 칸트와 데카르트 등 몇몇 외에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낯설었다. 하지만 그들의 의견은 모두 일리가 있었고, 그랬기에 반복해 읽더라도 어느 쪽의 편을 들어야 좋을지 판단이 잘 서질 않았다. 단순히 하루하루를 즐기며 살아오던 벤 역시도 나와 같은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러나 그 때마다 소크라테스의 비서이자 이데아월드로 벤을 인도하는 역할을 맡은 라일라는 스스로 생각해볼 것을 권유했다. 그런 라일라를 보면서 나는 잠시 우리나라의 교육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당장 입시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어야만 하는 상황에서 학생들로 하여금 자유로이 생각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일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과목이 마치 암기과목마냥 한 가지의 정답만이 인정되는 교육의 분위기에서는 철학이 존재하기가 힘들다. 굳이 사고하지 않아도 하나만 기억하면 되니 말이다. 벤은 쉼 없이 쏟아지는 질문으로 인해 골머리를 앓긴 했지만 결론적으로 소크라테스는 승리를 거두었다. 자신의 삶이 철학으로 인해 더 나아졌다고 벤은 말했다. 이와 같은 벤의 고백(?)은 어쩌면 저자의 바람일지도 모른다. 철학이 우리 인간의 삶의 질을 한 단계 상승시킨다는 자신의 믿음을 벤의 입을 빌려 표현한 것 같단 생각이 든다. 하지만 믿음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비트겐슈타인의 말처럼 벤은 하나의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이들이 벤처럼 철학에 발을 담그길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아니, 생산성을 중시하는 현대의 분위기는 철학의 설 자리를 점점 더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벤의 변화에 다소 냉소적이다 싶을 정도로 반응했던 벤의 가족들과 친구들의 모습은 다름 아닌 우리 사회가 철학을 대하는 시선이다. 아마 이 점은 저자도 충분히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을 <철학 토크쇼>라고 지은 것 역시 철학이 토크쇼처럼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갔으면 하는 염원에서였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벤은 궁금한 점이 있을 때마다 붙박이장 안으로 들어갔다. 수건더미가 다소 쌓여있긴 했지만 그 사실이 이데아월드로의 출입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은 아니었다. 내 방 어딘가에도 이데아월드로 통하는 문이 있었으면 싶은 생각이 든다. 언제라도 들어가볼 수 있는, 그래서 철학이 조금 더 가까이 느껴졌으면 싶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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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닐적에 철학자들이 나오는 윤리가 왜그리 어렵게만 느껴지던지... 지금 이책을 아마도 학창시절에 읽었더라면 철학이라는 사상을 좀더 쉽게 접근할수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책은 철학이라는 딱딱하고 머리아픈 사상을 재미있고 기발한 이야기로 구성하여 읽는독자들로 하여금 쉽게 이해하고 재미도 주어 철학을 좀더 친숙하게 우리에게 접근 시키고 있다. 말이 안될것 같은 스토리 이지만 억지스럽지 않은 자연스러운 재미에 읽는나도 철학이 주는 사유의 즐거움에 빠지게 했던 책이다. 책속에는 우리가 많이 알고있는 철학자인 소크라 테스와 비트겐 슈타인이 등장해 한소년인 벤워너를,철학적인 사유의 유혹에 빠드리고 관심을 가지게 하여 그의 삶을 예전보다 더 낫게 변화 시킬수 있는지...내기를 거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현실과 철학자들 사이의 연결통로가 붙박이장 안쪽 깊숙한 곳의 쌓여진 수건더미속의 좁은 통로라는 점에서 조금은 웃음을 자아내게 만들기도 하지만... 벤이라는 청년을 통해 철학적인 이념을 재미있게 토론식으로 이끌고 있는 점에서 책속으로 몰입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이책은 모두 여덟가지의 철학적 사유를 다루고 있다. 첫번째로 현상과 실재인데... 벤과 그를 안내하고 이끄는 라일라와 함께 '회의론자 보호수용소'라는 문을 열고 들어간다. 그곳에서 우리가 보는 사물의 실재존재와 허상에 대해 논하는데... 우리가 확신할수 있는것은 우리의 감각일뿐,그감각이 나타내는 대상이 아니라고 한다. 조금 어렵게 느껴지지만 내면을 파악해 조금만 생각을 해보면 의미를 알수있다. 두번째로 존재와 인식을 말하는데.. 이번에는 '삶과 죽음의 문제'라는 문을 열고 들어간다. 소크라테스가 "철학은 반대의 기술"이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철학적 사유는 항상 동전의 양면같이 반대적인 입장을 두고 공존한다고 한다. 삶과 죽음에서도 보면 '죽음은 우리의 관심사가 전혀 아니다.왜냐하면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을 뿐 아니라 우리가 더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을 때에야 죽음이 있는 것이니까."(126)라는 에피쿠로스의 말에서도 철학의 양면성이 부각되고 있다. 그리고 아마도 철학이라는 학문에서 제일 많은 반대의 기술을 갖고 논해야 하는 부분도 삶과 죽음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외에도 마음과 물질,자아동일성,윤리적 딜레마,언어와 개념,도덕의 보편성과 상대성,자유론과 결정론등 많은 철학문제를 제기하고 벤과 라일라가 생각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과정이 이어지고 있다.
'반성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다.'는 소크라 테스의 말처럼 철학적 사유에 있어 나자신의 되돌아보는 시간이 많이 주어지게 되는 학문이 바로 철학이다. 데카르트나 칸트등 책속에 등장하는 그들의 사유를 엿볼수 있는것도 이책을 읽는 재미가 있다. 이책은 철학적인 어려운 사상을 주입 시키기 보다는 일상으 생활과 유기적으로 연관지음으로서 좀더 재미있고 쓸모있는 접근법으로 독자들에게 다가오고 있다. 결국 벤이 철학은 재미있고 또 그것을 통해서 자신의 삶이 좋아졌다는 말을 함으로써..소크라테스가 이기게 된다. 누가 이겼느냐는 중요치 않다. 다만 철학적 삶을 통해 삶이 좀더 나아졌다면 그것으로 우리의 중심은 잃지 않은 것이다. 삶을 살면서 철학이라는 것이 크게 작용하지는 않지만 그것은 자연스럽게 우리와 호흡을 함께하고 있다고 한다. 딱딱한 교과서적인 철학을 떠나서 우리 일상생활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게끔 안내해주는 철학의 비타민같은 책인듯 하다. 제목그대로 우리들의 일상 이야기 자체가 철학인 것이다. 내삶의 아주 근본적인 문제를,,이책을 통해 좀더 자연스럽게 생각할수 있는 시간이 된것 같다. 철학이 그다지 어렵지 않게 느껴지는것도 이책의 큰 영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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