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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로부터 바라본 혁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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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의 「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1848년에서 1849년까지의 혁명연대기에서 비교적 중요한 각 편들은 불과 몇몇 장을 제외하고는 다음과 같은 제목을 달고 있다 : 혁명의 패배!” 그러나 혁명의 패배가 비단 1848년에서 1849년까지만의 이야기인가? 혁명은 늘상 패배해왔고, 그것의 한때나마의 승리마저도 실상은 가장 큰 패배였음이 역사적으로 확인된지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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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의 「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1848년에서 1849년까지의 혁명연대기에서 비교적 중요한 각 편들은 불과 몇몇 장을 제외하고는 다음과 같은 제목을 달고 있다 : 혁명의 패배!” 그러나 혁명의 패배가 비단 1848년에서 1849년까지만의 이야기인가? 혁명은 늘상 패배해왔고, 그것의 한때나마의 승리마저도 실상은 가장 큰 패배였음이 역사적으로 확인된지 오래이다. 이렇게 혁명은 패배했으며, ‘역사는 종말했다’.

 

그래서 좌파들조차 이제 혁명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한다. 혹은 이상주의적이라고 혹은 낭만주의적이라고 한다. 우리는 이상주의와 낭만주의에 그쳐선 안되며, ‘과학적’으로 ‘성공가능한’ 운동을 벌여나가야 한다고 한다. 실상 우파 뿐만 아니라 좌파 마저 갖고 있는 혁명에 대한 이러한 비관적인 입장들은 혁명에 대한 패배적 인식을 그 근저에서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 『히드라:제국과 다중의 역사적 기원』의 저자들은 ‘패배/승리’의 이분법적 구도에서 벗어나 혁명을 바라본다. 역사를 아래로부터 바라본다면, 혁명은 오로지 승리만을 위한 목적론적 운동이 아니다. 그것은 온갖 억압과 부자유에 맞선 삶의 과정 자체이다. 책에 나오는 반란과 혁명의 주인공들이 노예들, 선원들, 해적들, ‘장작패고 물 긷는 자들’ 등등 이라는 점을 생각해보자. 이 들은 수없이 죽고 수없이 패배하지만 ‘히드라’의 머리처럼 다시 일어난다. 만약 승리만을 염두에 두었다면, 그리하여 패배에 크게 상처입었다면,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오히려 그들이 처한 조건이 그들의 삶을 혁명적인 것으로 만들었던 것이 아닌가? 또한 여기에 어떠한 영웅주의가 들어설 자리가 있는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인데― 이것은 저 때의 저들만의 이야기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이 책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히드라’의 여러 머리가 상징하는 저 반복에 있다. 소멸과 생성의 반복. 저들의 혁명과 지금 우리의 운동은 같은 목에 자라난 서로 다른 머리이다. (이 책의 부제는 ‘제국과 다중의 역사적 기원’이다!) 『히드라』는 혁명은 패배할 수 있지만 혁명적 주체성은 결코 소멸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책을 덮고 난 지금, 저들의 살아있는 웃음소리가 생생하게 들리는 것은 아마도 이 때문일 것이다.

l****l 2008.04.29. 신고 공감 3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자본주의에 쿨하게 맞섰던 선배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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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드라>는 원제처럼 '숨겨진 역사'를 들추는 책이다. 그 속에는 그동안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사람들, '역사'의 범주에 들지 못했던 생생한 에피소드들이 담겨있다. 거기다 방대한 자료들과 그림들, 그리고 특히 당대 마이너리티들의 생생한 구술을 읽고 있자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몇 백년 전의 사람들의 목소리가 큰 따옴표로 인용되어있다니! 그것을 발굴해 낸 저자들과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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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드라>는 원제처럼 '숨겨진 역사'를 들추는 책이다. 그 속에는 그동안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사람들, '역사'의 범주에 들지 못했던 생생한 에피소드들이 담겨있다. 거기다 방대한 자료들과 그림들, 그리고 특히 당대 마이너리티들의 생생한 구술을 읽고 있자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몇 백년 전의 사람들의 목소리가 큰 따옴표로 인용되어있다니! 그것을 발굴해 낸 저자들과 그것을 한국어로 옮긴 역자들에게 경의를 표하게 될 정도다.

 

칭찬이 너무 과했나? ^^; 하지만 이 책은 날로 잔인하면서도 교묘해져가는 자본주의 속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역사란 무엇인가'를 고민해 본 사람이라면 꼭 한번 읽어봐야 할 책이다.  

 

이 책은 제목부터가 걸작인데, 이 책을 관통하는 <히드라 vs. 헤라클레스>라는 대결구도는 아주 탁월한 비유가 아닐 수 없다. 그동안 헤라클레스가 '영웅'에 '완소남'이었다면, 히드라는 한낱 '괴물'이며 '비호감' 캐릭터이지 않았던가. 그래서 '멋진 캐릭터도 많은 왜 하필이면 악의 화신같은 히드라냐'고 불평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렇다면 아마도 그것은 우리가 늘 헤라클레스의 입장에서 신화를 읽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역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주인공으로 설정된 영웅에 동화되어 신화를 읽듯이, 어느샌가 이식되어버린 권력의 시선으로 역사를 읽어왔다.

 

여기서 상기해야할 것은 헤라클레스가 히드라를 죽이지 못했다는 점이다. 목을 쳐 내면 거기서 두 개의 머리가 나고, 그래서 결국 목을 불로 지졌지만 끝내 죽이지 못했다. 다만 바위로 머리를 눌러놨을 뿐. <히드라> 속의 혁명적 주체들은 이런 점에서 히드라를 꼭 닮아있다. 지배자들은 헤라클레스처럼 그들의 목을 쳐냈고 그들은 쓰러졌다. 그러나 한 사람 한 사람의 인물들은 죽었을지 몰라도, 그 투쟁의 강렬한 흐름들은 결코 죽지 않았다.히드라가 한번도 죽은 적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자본이라는 헤라클레스는 혁명적 히드라가 죽었다고 사람들을 속이고 있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은폐하고 있다. 그런데 <히드라>는 혁명적 히드라의 목소리와 삶을 복원해냄으로써 지배자들의 거짓말을 폭로하고 있다. <히드라>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한 발짝 더 나아간다. <히드라>는 지배자들에 의해 은폐된 밑으로부터의 역사를 복원했을 뿐 아니라, 혁명에 대한 지배적인 시각을 전복한다.

 

역사를 지배자들의 것으로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혁명을 영웅담으로 해석하는 것에 익숙하다. 그러나 아무리 혁명의 역사를 다룬다 하더라도 그것이 특정 인물들의 것으로 환원된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헤라클레스의 시선으로 바라 본 혁명사, 즉 혁명에 대한 반혁명적 해석일 뿐이다. <히드라>에서는 그동안 계몽과 지도가 절실한 존재들로 묘사되었던 노예들, 여성들, 이단들이 주체로서 당당히 모습을 드러낸다. 소위 '무지몽매한' 그들이 보여준 자기조직화와 민주주의, 평등, 그리고 삶에 대한 진지하고도 재기넘치는 태도는, '고매하신' 귀족들, 정치가들, 학자들의 설교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값진 것이다.    


이처럼 <히드라>는 지배권력, 엘리뜨주의자, 전위적 혁명가 모두에게 날리는 통쾌한 펀치이다. 자본주의에 쿨하게 맞섰던 선배들의 이야기를 되뇌이며 '한 방 날릴' 준비를 해야겠다. ^^

 

d********2 2008.05.01.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