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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경숙, 「빈 집」
소리를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 여자가 있다. 그녀는 기타 치는 남자를 좋아한다. 그가 소극장에서 기타 연주회를 할 때, 그녀는 기타 연주가 끝나는 마디마다 어김없이 박수를 쳤다. 쉬지 않고 박수를 치는 여자가 신기해 그는 연주회가 끝난 후 극장을 빠져나가는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 두 사람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된다. 그녀는 기타 소리를 듣고 박수를 친 것일까? 빌라 윗방에서 들려오는 커다란 망치 소리를 듣지 못할 정도로 그녀는 소리를 전혀 듣지 못한다. 그게 의아해서 그는 그녀에게 기타 소리는 어떻게 듣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당신 손가락이 기타 위에서 소리를 냈어요.”(183쪽)라고 그녀는 대답한다. 귀로 들을 수 없는 소리를 그녀는 눈으로 듣고 있다. 눈으로 소리를 보고 듣다니? 이런 일이 가능하기나 한 것일까? 귀가 먹은 베토벤은 교향곡을 만들었다. 소리를 듣지 못해도 마음속으로 소리를 느낄 수는 있다. 그녀는 기타 줄을 오가는 그의 손가락을 보며 소리를 상상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가 치는 기타 소리를 마음으로 듣던 이 여자가 어느 날 아무 말도 없이 그의 곁을 떠난다. 그는 그녀가 떠나는 걸 알면서도 붙잡지 않았다. 그는 때가 되면 스페인으로 가려고 한다. 그에게 스페인은 일상을 넘어선 자리에 있다. 반복되는 일상을 벗어난 자리에 스페인이 있다. 꿈을 꾸는 자리라고 표현해도 좋다. 돌려 말하면 그가 꿈꾸는 스페인은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어디에로 없는 세상을 어떻게 갈 수 있을까? 그래서 그는 스페인으로 가는 날을 항상 미룬다. 겨울에는 다음 봄을 기약하고, 막상 봄이 오면 여름을 기약한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다. 마음속에 품은 스페인은 흘러가는 시간을 먹으며 살을 찌운다. 그녀를 만나기 전에 그가 만난 또 다른 여자는 “당신의 기타 소리를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함을 느낍니다.”(182쪽)라고 말하며 그를 떠났다. 소리를 듣지 못하는 여자 또한 기타 소리만으로는 부족했던 것일까
그녀가 이삿짐을 실은 차를 타고 떠난 날 밤, 그는 그녀가 없는 빈 집을 찾아간다. 낮에 건물 뒤에 숨어서 그녀가 떠나는 걸 그는 분명히 확인했는데도, 그는 빈 집에서 들려오는 작은 소리 하나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녀가 기르던 고양이 점박이가 어둠 속에서 그를 맞는다. 점박이가 선반 위로 뛰어오르자 편지봉투가 끼워져 있는 책 한 권이 떨어진다. 봉투 속에 편지가 있다. 그녀가 남긴 편지다. 차마 이야기할 수 없는 진실을 사람들은 글로 남긴다. 그녀도 그런 것일까? 그녀는 편지에 그를 떠난 이유를 두통 때문이라고 썼다. 그녀는 단 한 번도 그에게 머리가 아프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그런데, 두통이라니? 단순히 머리가 아픈 거라면 그녀가 굳이 그를 떠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돌려 말하면 그녀의 두통은 그와 상관이 있다는 얘기다. 도대체 그는 어떻게 행동했기에 그녀를 두통에 시달리게 했을까
그쪽에겐 기타줄 위에서 춤추듯 움직이는 그쪽 손가락을 보고 있으면, 내 귀에는 그 손가락들이 내는 소리가 들린다고 했지만 사실은 아니었어요. 나는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이제 나는 그 무슨 대가를 치러도 좋으니 단 한번만이라도 그쪽 손가락이 가는 자리에서 새어나오는 진짜 소리를 듣고 싶다는 지독한 욕망이 싹텄어요. 그 소리 속에 사랑하고 욕망하고 후회하며 살아가는 인간생활이 다 담겨 있을 것만 같았어요. 나는 그날부터 두통에 시달렸어요. 그쪽의 손가락이 튕기는 소리를 한번만, 한번만 내 귀로 듣고 싶어한 그 순간부터요. 어제는 한줌 먹은 알약을 토해냈어요. 의사는 내가 마음속으로부터 아무 생각을 하지 말아야 된다고 했어요. (185쪽)
그녀는 애초부터 소리를 듣지 못했다. 소리를 듣지 못하니 소리를 듣고 싶은 욕망 또한 없었다. 기타 연주회에 가면 그저 박수를 쳤다. 자신이 치는 박수소리조차 들을 수 없지만, 손과 손이 맞부딪치는 느낌이 좋아 박수를 쳤다. 그러다가 기타를 치는 그를 만났다. 기타 줄을 옮겨 다니는 그의 손을 보며 소리를 느껴보려 했지만, 들리지 않는 소리가 들릴 리는 만무했다. 그를 향한 사랑이 깊어질수록 그가 치는 기타 소리를 듣고 싶은 욕망 또한 강해졌다. 머릿속으로 그린 상상의 소리는 그녀를 더 이상 만족시키지 못했다. 단 한번만 기타 소리를 듣고 싶었다. 그냥 기타 소리가 아니다. 그가 치는 기타 소리다. 불가능한 일을 꿈꾸는 순간 그녀는 지독한 욕망의 바다로 빠져든다. 마음으로 갈무리할 수 없는 욕망은 몸으로 뻗어 나간다. 소리에 대한 집착이 커질수록 그녀는 머리가 부서질 듯한 고통에 휩싸인다. 욕망을 내려놓지 않으면 이 끔찍한 고통으로부터 헤어 나올 수 없다.
참을 수 없이 머리가 아픈 날이면 그녀는 바로 앞에 있는 그조차 알아보지 못했다. 울거나 웃으면 두통은 입 모양이 만들어지는 쪽으로 왈칵 쏠려 그녀를 더 깊은 고통 속으로 내몰았다. 그에게 왜 말을 하지 않았느냐고? 그녀의 두통은 오로지 그녀만이 치료할 수 있다. 두통은 마음의 병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소리를 들으려는 지독한 욕망을 내려놓는 일은 그녀 자신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견디다 못한 여자는 그 지독한 소망을 내려놓는다. 그 순간 머리가 편안해진다. 참으로 알 수 없는 게 사람의 몸이고 마음이다. 소리에 대한 욕망을 내려놓은 그녀는 이제 그를 떠나야 할 때가 왔음을 직감한다. 그의 곁에 있으면 소리를 듣고 싶은 지독한 욕망은 다시 도질 것이다. 예전에 그를 떠난 여자는 기타 소리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지만, 그녀는 기타 소리를 놔야 하기에 그를 떠난다. 그녀에게 기타 소리는 그가 상상한 ‘스페인’과 같은 맥락에 들어 있는 셈이다.
스페인에 빠진 그는 그녀의 이런 마음을 전혀 몰랐다. 그는 손을 보고 소리를 듣는다는 그녀 말을 아무 의심 없이 믿었다. 그녀의 마음을 헤아릴 사이도 없이 그는 손가락을 더욱 맵시 있게 놀릴 생각만 했다. 자기 마음에 빠져 다른 이의 마음을 보지 못하는 나르시스라고 표현하면 어떨까? 그는 스페인을 상상하며 그녀를 만났다. 스페인으로 가는 날이 그녀와 헤어지는 날이라는 걸 그는 마음속에 새기고 또 새겼다. 떠날 날을 마음에 품고 만나는 연인의 마음을 세심하게 들여다볼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그녀는 세상의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고 느껴지던 날 금은방에서 반지를 샀다. 귓속의 깜깜한 칠흑을 위로해 준 그 반지를 그에게 줄 정도로 그녀는 그를 깊이 사랑했다. 그가 스페인을 생각하며 그녀를 만날 때에도, 그녀는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들으려는 지독한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왜 달라졌을까? 처음 그녀가 그의 손가락을 봤을 때 그녀는 그의 손가락 움직임만 보고서도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했는데, 무엇이 그 소리를 넘어 그녀로 하여금 한번만,이라는 원을 품게 하였을까. 그의 손가락은 그의 슬픔을 타고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그러나 봄이 오면 혹은 여름이 오면 가을이거나 겨울이 오면 다시 또 봄이 오거나 여름이 오면 가을이 오면 혹은 겨울이 오면 가볼지도 모를, 스페인의 고성과 폐허, 아란후에스나 알함브라 궁전에서 펼쳐질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그의 추억을 연주했다. 거위와 생쥐와 어미쥐와 고양이와 망치 소리를 상대로 기타를 뜯는 그의 모습은 고즈넉했으나, 그의 손가락은 그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음량을 어느 순간 넘어가고 있었다. (203쪽)
그녀가 없는 방안에서 그는 기타 줄을 퉁긴다. 처음에 그녀는 그의 손가락 움직임만 보고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했다. 이 상태로 만족했다면 그녀는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을까? 무엇이 그 소리를 넘어 그녀에게 소리에 대한 집착을 불어넣은 것일까? 그녀는 그가 바라보는 곳을 더불어 바라보고 싶었던 것일까? 상상 속에서 느끼는 감각이 아니라 지금 바로 이곳에서 진짜 감각을 느끼고 싶었던 것일까? 그는 기타 소리를 타고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스페인으로 나아간다.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스페인의 추억이 그의 손가락을 타고 방안에 울린다. 혼을 실어 타는 기타 소리에 젖은 흰순이(여자를 따라갔다가 돌아온 고양이)가 먼저 잠이 들고, 이어 점박이가 잠든다. 제 욕망에 상처를 입고 떠난 여인을 위한 이별곡은 세상 모든 생명들을 잠재우는 자장가가 된다. 어머니가 들려주는 소리와 같은 자장가. 그의 소망대로 이 소리는 그녀의 귓결, 그 어두운 속에까지 닿을 수 있을까?
이 소설은 전라남도 광양의 한 국도에서 일어난 교통사고를 알리며 마무리된다. 이삿짐을 실은 트럭이 눈길에 미끄러져 가로변의 미루나무를 들이받고 추락했다. 운전기사는 중상을 입었고, 이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는 사망했다(흰순이는 그래서 집으로 돌아온 걸까?). 죽은 여자가 그녀인지 아닌지는 여기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가 소리의 한계를 넘어서는 바로 그 순간에 텔레비전에서 이십대 여자의 죽음을 알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대목이다. 그가 가고 싶은 ‘스페인’이나, 그녀가 들으려 한 ‘기타 소리’는 죽음과 이어진 공간이거나 소리인지도 모른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곳이 있고, 듣고 싶어도 듣지 못할 소리가 있다. 모든 동물을 아늑한 잠에 빠뜨리는 기타 소리로 그는 스페인을 체험하고 죽음을 체험한다. 어쩌면 그녀일지도 모를 이십대 여자의 죽음은 이리 보면 죽음을 넘어서 탄생하는 예술의 자리를 에둘러 드러내는지도 모른다.
신경숙의 「빈 집」은 기형도가 지은 「빈집」이라는 시를 모태로 하고 있다. 시인은 사랑을 잃고 시를 쓴다. 기타리스트는 사랑을 잃고 기타를 친다. 시가 사랑을 잃은 시인의 고통을 이미지로 표현한다면, 소설은 사랑을 잃은 기타리스트의 아픈 마음을 이야기로 구현한다. 시인은 장님처럼 더듬거리며 마음의 문을 닫는다고 쓰지만, 독자들은 시인이 닫은 마음의 문을 주저 없이 열어젖힌다. 신경숙은 가여운 사랑을 빈집에 가둔 시인에게 사랑을 잃은 기타리스트의 은은한 기타 소리를 들려준다. 누구나 사랑을 하고 또 누구나 이별을 한다. 누구나 마음속에 빈집 한 채는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기타를 치는 그는 사랑을 잃고 나서야 비로소 사랑은 연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뒤늦게 확인한 편지처럼 깨달음은 언제나 사랑이 끝난 후에 오는 법이다. 그래야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사랑이 펼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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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은 내 기억에 늘 감성이 줄줄 흘러넘치는 여성스러운(!) 작가였다. 그녀는 왜 그렇게 진지한 것인가. 글마다 단 한 번의 오차도 없이 그 진지함과 성실함이 답답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농담도 없고 유머도 할 줄 모르고 그렇다고 냉소적인 데가 있나, 지적 유희를 즐길 줄 알길 하나. 그냥 여성적인 감성이 간혹은 감상적인 데까지 가 버려 늘 부담스럽게 여겨지던 작가였다. 슬픔에 침잠하고 고통이나 아픔 앞에서도 가만히 내면으로 들어앉아 버리는 작가, 그것이 그 동안 내가 느낀 모습이었다. 단편 몇 개 읽은 게 다인데도 그 포스가 이 정도였다. 어쩌면 작가가 마음속 깊이 간직한 슬픔과 아픔이 글을 통해 그대로 내게 전해져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너거 어메조차 나한티 어째 그르케 말을 안허냐고 답답히서 살지를 못허겄다고 해도 나는 암말도 안허는 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무기였다. 말이 무서웠지야. 천지간에 양친도 없는 사람이 허는 말을 누가 듣기나 허겄나 싶기도 허더라. 근디 그것이 병이 되야서 돌아왔는갑다…… 안 글면 어쩌서 내가 이렇다냐?’
그런 생각은 이 작품집을 읽고 나서 좀 바뀌었다. 어쩌면 그 동안 내가 너무 단편적인 선입견을 가지고 그녀를 대하지 않았나 하는 후회가 든다. 이 작품집, <오래전 집을 떠날 때>는 친구가 선물해준 헌책이었다. 새로 나온 책, <리진>을 읽기 전에 다시 한 번 그녀에 대한 생각을 모아보자고 읽기 시작했다. 물론 작품들 모두 꽤 오래된 작품들이고 몇 개는 이미 읽은 작품들이었다. 작품집 자체도 이미 십년도 더 된 작품집이지만, 그래도 그 동안의 편견을 좀 더 씩씩한 쪽으로 바꿀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이젠 맘 편히 <리진>을 읽으러 갈 수 있겠다.
오래된 책이지만 그냥 넘어가긴 아쉬우니 그래도 간단한 감상만 적어보자. <감자 먹는 사람들> <벌판 위의 빈집> <모여 있는 불빛> <오래전 집을 떠날 때> <빈 집> <마당에 관한 짧은 얘기> <전설> <깊은 숨을 쉴 때마다> 등 여덟 편의 작품이 실려 있는 이 작품집은 전체적으로는 신경숙표 감성의 결정판이라고 볼 수 있겠다. 덤으로 신경숙표 전설의 고향(!)도 있었는데, 비오는 날 밤에 읽다가 으스스해 둑는 줄 알았다. <벌판 위의 빈집>, <오래전 집을 떠날 때>와 <빈집>이 참 스산했다. 다시 읽은 <마당에 관한 짧은 얘기>는 예전에 읽을 땐 그 의미를 다 파악하지 못했던 것 같다. 설렁설렁 읽어서였겠지만 다시 읽으면서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어서 의외로 맘에 들었다. <모여 있는 불빛>이 시골과 가족 얘기여서였는지 의외로 따스하고 정겨운 느낌이었고 <깊은 숨을 쉴 때마다>는 여성적인 감성과 삶의 긍정에서 씩씩함이 느껴져서 좋았다. 아픔을 간직한 나도, 쌍둥이 동생을 잃은 처녀도, 두 달에 한번 피를 갈러가도 내처 엎어지면서도 자전거를 배우고 베란다에 꽃을 피우고 이별 선물로 문주란 씨앗을 주는 소녀를 통해서 더 강한 인생의 씩씩함을 배우는 게 아닐까.
신경숙에게 있어 여전히 소설은 그녀를 견디게 해주는 것일까 궁금해진다. 그 동안 그것이 내게 부담스러운 감성이듯 느껴졌으므로. ‘그녀는 어느 자리에서 말했었다. 내 소설이 무언가를 변화시킬 힘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게 있어 소설이란 우선 나 자신을 견디게 해주는 것이다, 내 마음속에 기른 헛것들을 더 이상 가두어놓을 수가 없어 문장으로 풀어내고 있을 때, 그때만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을 잊는다고,고.’ 그녀는 <모여 있는 불빛> 속 소설가 그녀를 통해 이렇게 밝혔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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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 시인의 <빈집>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들어진 단편이 기억에 남는다. 신경숙씨의 동명의 제목을 가진 단편소설 <빈집> 역시 정말로 뛰어난 수작이다.
개인적으로는 신경숙의 소설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고 기형도 시인을 기르는 추모작품집에 실린 작품인데, 작가는 이 시를 소재로 정말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탄생시켰다.
책에 관련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언젠가 우연한 기회에.. 은희경 작가가 이상 문학상을 수상할 때 시상식에서 신경숙씨도 멀리서 뵈었는데, 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구석자리에서 조용한 침묵으로 서있었다. 그 고요함이 그녀의 소설과 너무나 닮아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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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에 관한 이야기이다. 먼저 소설속 화자의 상실 그리고 아버지의 상실, 편지의 수신자가 될 윤희 언니의 상실, 옆 병실 아주머니의 상실, 어렸을 적 동네의 또래 중 식모였던 유순이의 상실, 어느 날 우연히 만난 음반기획자의 일행인 중년의 남자의 상실...... 이들의 상실은 사기꾼에게 당한 물질적인 손실이 아닌 바로 병이나 죽음에 의해 아끼는 이들을 잃은 슬픔이다. 아버지, 어머니, 남편, 아들, 딸...... 화자는 존재에 대해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멀리서 보면 나는 하나의 실루엣에 지나지 않겠지요. 비가 내리는 병원의 창가에 서 있는 하나의 어두운 실루엣." 나를 하나의 실루엣으로 자각하며, 주변인들의 죽음은 하나의 구체적인 시각과 청각의 이미지로 표현한다. "마음이 적요로워 지더니 기차의 강철바퀴 소리. 철거덕 철거덕 쏜살같이 달려오는 기차의 강철바퀴소리..." 난 아직 가까운 이의 죽음을 접해보진 않았다. 그래서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해 보지 않았지만, 상실에 대한 두려움은 내가 가족과 떨어져 있을 때, 날 따라다녔던 것 같다. 어릴 적 기억을 떠올려보면, 가끔 엄마 아빠가 나와 동생만을 두고 볼 일을 보러 외지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행여 사고는 나지 않을까, 만약 그래서 나와 동생만이 남게 된다면 하고 무서운 생각을 해 본적이 있다. 그런 생각은 이상하게도 하지 말아야지 하면 더 뚜렷해졌고 잊으려고 하면 자꾸 튀어나왔다.
언제나 함께 할 것 같던 존재의 상실에 대한 슬픔과 허탈함, 그것이 특히 병이나 생각지도 못한 사고일 때는 남은 이에게 더욱 감당하기 힘든 고통과 시련을 준다. 특히 '감자먹는 사람들'은 가까운 존재 그 중에서도 아버지를 중심으로 밀었다. "병약한 근친이 풍기는 이 초라하고 가련한 냄새를 언닌 알고 있을 것 같아요, 목덜미…… 탄력이 빠져나간 자리에 검버섯이 핀 얼룩덜룩한 피부와 마주칠 적이면 황황해지는 마음을 어쩐지 언니는 알고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소설 속에서 우연히 만난 중년의 남자의 말 "사랑이란 그렇게 말이 많은 게 아니야. 못해준 것만 생각나는 것이 사랑이라구. 그걸 당신이 알기나 해?" 아.버.지. 아버지와 무척 많이 싸웠다. 어릴 적 아버지는 무섭고 엄한 존재였다. 감히 그 앞에서는 물도 함부로 못 마실 것 같은 엄청난 존재였는데, 내 몸이 커지고 머리가 크면서, 바라본 아버지는 갈수록 초라했고 나와 맞지 않았고 자랑스런 모습이 아닌 답답한 존재로 여겨졌다. 그래서 대들기도 하고 건방지게 행동했다. 그땐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당연하다 생각했는데, 지금은 왜 이리도 미움의 대상이었던 아버지께 못한 것만 생각나는지, 이제, 그 미움은 아버지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사랑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이 소설을 읽으며 요즘 어금니 때문에 고생하는 아버지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렇게 미운 '아버지가 만약 이 세상에 없게 된다'면 하고,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본다. 삶이 가져다주는 것 중 우리가 물리칠 수 없는 절대의 상실이 있다는 것을 조금씩 알아가기에... [인상깊은구절] 나는 내게 나쁜 일이 생길 적마다 마음속으로부터 저버린 사람들을 생각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별 잘못도 없는 그 사람을 그렇게 저버려서 내가 이런 시련 앞에 섰구나, 생각하죠. 도저히 납득이 잘 되지 않는 일들 앞에선 특히 그래요. 내가 그때 그 사람을 저버렸지 때문에 이런 벌을 받는구나, 생각하면 그때서여 그 납득되지 않는 일이 받아들여지지요. 비겁한 화해인 셈입니다. |
| 직업이 가수인 화자와 그녀를 둘러싼 주변과의 이야기, 특히 아버지와 관련된 이야기이다. 병실에 누워계신 아버지와 그를 간호하는 그녀, 인간은 누구나 한번쯤은 죽음과 맞서게 되어 있다. 자신의 죽음을 맞이하기 전까지는 바라지 않는 것이지만, 관계맺고 있는 사람들의 죽음을 경험하게 된다. 죽음이라는 것은 현재에서의 사라짐을 뜻한다. 그러면, 삶은 또한 어떠한가. 감자먹는 사람들에게서는 서민적인 평범한 사람들, 소시민들의 소박하고 간촐한 삶, 각자각자 나름대로 애쓰며 사는 삶을 엿볼수 있다. 누구에게나 삶은 소중한 법이다. 감자먹는 사람들에서 나오는 아버지와 어머니, 화자, 그리고 유순이, 언니 등은 모두가 각각 제식으로 애쓰며 사는이들이다.잔잔한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단편이며, 신경숙 작가의 글은 사람의 마음을 끌어들이는 신기하고도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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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먹는 사람들, 벌판 위의 빈집, 모여 있는 불빛, 오래전 집을 떠날 때, 빈집, 마당에 관한 짧은 얘기, 전설, 깊은 숨을 쉴 때마다" 신경숙씨 소설은, 너무나 일상적인 얘기들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소설로 옮기는 대단한 작품이라 나는 늘 평한다. 특히나, 이 책에 담긴 소설들을 신경숙 소설들 중 내가 가장 아끼고 아끼는 단편들이 담긴 책이다. 가족에 관한 얘기들, 차마 버리고 살 수 없는 고향에 대한 기억들, 서로 다른 일상속에서 조금씩 잊혀져가는 사람들에 대한 얘기. 그녀의 글은 늘 편하다. 그리고 일상속 어딘가에 누구나 가지고 있는 마음속 이야기들을 담고 있어서 늘 마음의 위안으로 삼아 나는 글읽기를 행하곤 한다. 집이며 마당, 가족, 이루지 못한 사랑 등 그 끈끈한 정들을 담아 집을 떠나 있는 내게 더욱 그것들에 대한 간절함을 가지게 만들곤 한다. 결코 현대적이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결코 구시대적이지도 않은 그녀만의 독특한 소설세계. 너무나 닮고 싶은 작가이고 글이다. [인상깊은구절] 내가 잊고 있던 사람들은 지금 어디서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까. 가끔 사람의 일이 물길같이 느껴진다. 산꼭대기에서 함께 흘러내려오지만 굽이굽이마다의 샛길에서 헤어지고, 한번 헤어져 흐르기 시작하면, 다시 만나기는 어려운 곳으로, 서로 모르는 곳으로 흘러가는 물길. 한때 가까이 지내다가 이제는 못 만나게 된 몇몇의 얼굴들이 떠올랐다. 그들이 남긴 눈물, 허전한 걸음걸이, 뒷목의 점이나, 나와는 상관없는 반지가 끼여 있던 손가락. 감당할 수 없었던 부탁이나, 내 마음을 슬프게 하던 흰머리, 연결 안 되는 말들, 지켜지지 않은 약속들, 회색 손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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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씨의 중편들이 이 책에 가득 담겨져 있다. 개인적으로 장편의 소설을 가장 좋아하는 편이지만 신경숙씨의 소설만큼은 그런 내 취향에서 예외로 생각된다. 중편 속에서 느껴지는 신경숙씨의 소근거림이 좋다.
'깊은 숨을 쉴 때마다'는 신경숙씨가 무심코 제주도로 떠나 그곳에서 한달 가량을 묵으면서 그 생활을 잔잔하게 그려놓았다. 이 소설 에서 작가 스스로가 주인공이 되어 그 속에서 보여지는 사람들, 혼자의 여행에서의 다가오는 느낌을 말하고 있다. 우연히 한 호텔에 묵게 되면서 만나게 되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한 처녀, 그리고 그 처녀의 베란다에 꽃을 피울 씨앗을 가져다 주며 아무와도 말을 트지 않는 처녀에게 다가가는 말라깽이 소녀, 그곳에서 처음으로 배워보는 피아노 소리... 글을 쓰지 않고 지내다 작가도 모르는 사이에 원고 마감일이 다가온 것을 느끼곤 그 곳에서 그려오는 아버지의 존재, 그리고 자신을 닮지 말라는 어머니의 말씀... 허구를 나타난 글이 아닌 작가 자신의 마음이 그대로 담겨 있어서 이 소설을 읽고 있을 때 내 마음 역시 잔잔해질수 있었던 것 같다.
신경숙씨는 말한다. 책 표지만 가려도 자신의 글이라는 것이 표가 난다고, 자신을 닮은 글을 쓰고 싶지 않지만 어김없이 그 글은 자신의 글이였다고... 작가는 버리고 싶어하는 그 자신만의 그 소근거림이 좋아 나는 신경숙씨의 소설을 읽고 있다. [인상깊은구절] 언젠가 어머니께서 먹음직스럽게 푹 익은 갓김치를 둑에서 꺼내오며 그 중의 한 줄기를 손가락으로 집어 내 입속에 넣어주려고 하는데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젓가락으로 먹을래요. 터무니 없이 왜 그 장면이 떠올랐던 것인지, 왜 갑자기 그때 어머니가 참 쓸쓸하셨겠다,는 생각이 그때야 들었던 것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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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언니의 집에서 발견을 해 읽게된 소설집. 이 소설집을 읽으면서 존재의 고리... 삶에 있어서의 태도... 맹목적이지 않으나 한편으론 추정적이기까지 한 이 소설집은 나에게 한동안의 나 자신을 반성하게 했다. 특히 나에게 있어 가슴 속 깊이 정화를 시켜준 작품이 '감자먹는 사람들'이었다. 가장 처음에 읽었음에도 불구 하고 그냥 그렇게 가슴속에 고이 묻어나 있었다. 나의 마음에 왜그리도 올가미처럼 남아서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는지 얼마전에 다시 읽어보았을 때 나는 개달았다. 바로 아버지... 그 존재에서 오는 희열과 아픔... 그리고 후회... 나에게 아버지라 함은 거의 신과 같은 존재였다. 언제나 내가 원하는 건 무엇이든지 해 주었으니... 하지만 그런 아버지의 투병생활과 나의 불안정한 직장생활... 그리고 찌들어 가는 삶에 있어서 이 소설은 나에게 잠시나마의 대리만족과 작긴하지만 행복을 주고 있다. 특히 편지 형식의 글이어서 그런지 내용의 이해가 쉬웠고 아버지 대한 화자의 입장표명도 잘 나타난것 같았다. 이 소설이 내게 가져다 준것은 아주 크지만 소설의 소재는 아주 사소했다. 사소함에 나는 두발 두손을 다 들은 것이다. 그리고그녀의 작가적 역량에 대해 다시금 깊이 생각 하게 되었다. [인상깊은구절] 편지는 오지 않는다. 날마다 여자는 대문은 쳐다보고 있었으나 아무 소식도 닿지 않는다. 폐허의 거리를 내다보며 남자의 편지를 기다리는 여자는 고뇌의 소용돌이 속에 빠진다. 왜 이렇게 늦어지는가, 생각하던 여자는 생긋 웃으며 막 돌아온 그가 바깥에서 신발이라도 벗는 듯 화닥닥 벽장 속으로 숨는다. 소식을 보내지 않아 나를 애태운 만큼 나를 찾게 하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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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집을 떠날때는 96년도에 읽은 책이다. 그리고 내가 무척이나 아끼는 책이다. 신경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었을 이 책의 내용은 잔잔하고도 아름다움, 그러면서도 무언가 아롱지는 아쉬움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 보이지 않는 아름다운 것들을 다루는 작가의 섬세함에 감탄할 따름이다. 이 책 속에는 단편, 중편의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는데 무엇보다도 내가 좋아하는 소설은 역시 전설 인 것 같다. 아무리 읽어 봐도 그 전설에 대한 이야기는 내 마음 속 깊이 남겨져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자꾸만 보게 되는 책인 것 같다. 아름다운 이 가을 신경숙의 전설을 만나보기 바란다. 그리고 헤어졌지만 아름다운 사랑의 기억에 젖여들기를 바란다. [인상깊은구절] 사직동 가는 길에 우연히 집 한 채를 보았다. 적산가옥 좁은 뜰에 아름드리 사과나무 한 그루가 심어져 있었다. 머리를 위로 말아 올려 금색 핀으로 목덜미 뒤에 고정시킨 늙은 여인이 그 아래서 졸고 있었다. 오월이었던가. 여인이 읽다 떨어뜨린 얇은 책 위로 사과꽃이 지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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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책을 잘 읽지 않는지라 이 책이 아니었다면 신경숙의 소설 같은 것을 읽게 되는 일은 없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책을 단숨에 읽어내린 후에 도서관에있는 그녀의 소설을 모두 빌려서 읽고 말았다. 이 책과 만나게 된 계기는 매우 황당하면서도 즐거운 경험이었다. 일학년 시절 내가 자주가던 술집에(그 집의 이름은 술과의 전쟁이었고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제목과 가게가 잘 어울리는 집이었다) 안쪽에 들어가면 마루를 올린듯한 작은 방이 있는데 여기에 80년대 학번의 선배님들까지 있던 날이었다. 매우 즐거운 밤이 었고 술에도 많이 취해 있었는데 그러다 마루 밑에 손을 넣었더니 이 책이 손에 집혔다. 그 다음날 정신을 차려 읽어보니 뭐야.. 아주 재밌지 않은가.. 개인적으로 자신의 일, 혹은 아니더라도 일기처럼 들뜨지 않은 문체로 담담한 글을 좋아한다. 신경숙의 글은 그런 글이었다. 아직도 이 책을 생각하면 그 때, 그 시절의 기억이 떠오른다. [인상깊은구절] 편지는 오지 않는다. 날마다 여자는 대문은 쳐다보고 있었으나 아무 소식도 닿지 않는다. 폐허의 거리를 내다보며 남자의 편지를 기다리는 여자는 고뇌의 소용돌이 속에 빠진다. 왜 이렇게 늦어지는가, 생각하던 여자는 생긋 웃으며 막 돌아온 그가 바깥에서 신발이라도 벗는 듯 화닥닥 벽장 속으로 숨는다. 소식을 보내지 않아 나를 애태운 만큼 나를 찾게 하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