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스컴이 잘 발굴하지 않았으나, 이면우는 개인적으로 주목하는 글쓴이로서 <과학사 과학철학/지구과학=""> 분야에서 크게 기대하고 있다. 고등학교 시절, 식당에서 그와 개인적으로 뼈있는 학술적 농담도 주고받았거니와 나중에 논술시험용 교양함양으로 들었던 "과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짧은 강의는 아주 인상적이었으니까. 고등학교 지구과학 선생으로 와서 연구하던 그는 '일본유학파'였다. 이후 모 교대 교수로 갔다고 소식을 들었다. (참고로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 이면우 교수와 동명이인관계이니 헷갈리지 말자. 저 이면우 공대 교수는 센세이셔널한 책으로 유명하다.) 단지 개인적 친분이 주목의 계기일까 ? 아니다. 서점에서 비잉 둘러보면 비전있는 이공계 서적이 그다지 보이지 않으며, 댖다수 양서가 번역서인 현실에서조차 '생기발랄한 번역가'가 잘 보이지 않아서다. 그 중에서도 이면우는 특히 독보적이다. "천재수학자들의 영광과 좌절", "천재과학자들의 숨겨진 이야기", "중국의 과학과 문명"‥ 잘 읽히는 대중서냐, 아니면 깊이 있는 양서냐. 그는 균형을 잘 맞추고 있다. 게다가 이공계 계열의 필자 중에서도 '소장파'에 속한다. '독재자 뉴턴'은 주입식 과학교육이 빚어낸 뉴턴의 우상화에 대한 치료제이다. 당시 영국 과학계에 군림하던 뉴턴이 어떻게 파벌을 조성하여 연구성과를 가로채고 자신의 명성을 높이려 하였는지 인간적인 면모를 적나라하게 두 사람의 서간문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사람의 더러운 측면이 따져보면 가장 인간적이지 않은가 ? (욕망, 시기, 질투, 탐욕‥)플램스티드와 그레이, 예전에 읽었던 어린이 위인전에서는 그들은 '뉴턴을 시기하는 멍청한 과학자'로 설명되어있었는데‥ 인용과 증명이 정확한 이 책을 읽어보니 "뉴턴이야말로 정치교수나 마찬가지였던 인물이고, 플램스티드와 그레이는 희생자구나"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물론 고발서로만 끝나지 않는다. 단지 숭앙받는 위인의 어두운 측면만을 얘기한다면 선정주의에서 더 이상 진보가 없다. 이 책은 '뉴턴'이 역설적으로 영국 과학계의 퇴보를 가져온 경위를 에두른다. 자기에게 따르는 동료들의 권력을 보장해주면서, 자신과 경쟁하거나 혹은 성과가 더욱 대단한 라이벌에게는 비겁한 보복을 행함과 동시에, 타인의 성과물이 더 나은데도 불구하고 자기 방식만을 고집함으로써(ex. 미분적분) 어떻게 영국과학계의 발전을 늦게하였는지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이는 정반대로 탄압받았던 플램스티드와 그레이의 '연구'가 후대에 어떻게 꽃피웠는가하는 후일담으로써 대조적인 미담으로 마무리지어진다. 즉 과학계의 '스캔들'사이다. 그것도 스포츠 신문 같이 킬킬 웃고 즐기는 게 아니다. 이공계를 꿈꾸는 사람이면 자신과 무관하다고 생각할 '권력', '투쟁'의 속성을 깨닫는 차원에서라도 이 뉴턴의 '다른 면모' 엿보기는 통과의례로서 알맞다. 하지만 문제는 번역이다. 제자로서 감히 지적하긴 그렇지만‥ 그는 산문체로 이뤄진 다른 과학서적 번역은 기막히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문학장르처럼 서술된 이 책만은 어색한 번역으로 일관하여 안타까웠다. 수동태가 그대로 드러난 '직역체'부터 뭔가 어색한 '어휘' 사용. 설익은 편집으로 등장인물 이름의 혼동‥. 뉴턴의 이면을 엿보는 것도 뜻깊지만, 무엇보다 서간문에 기초한 다큐멘터리같은 책인만큼 "영어문체"는 생동감있게 아름다운 우리말로 살려야하지 않았을까 여간 아쉽지 않다. 원서로는 기막힌 명작이 '서투른 번역'으로 망가진다는 것‥ 책을 아끼는 사람들의 가슴이 멍든다. 의아스러운 것은 이면우는 탁월한 번역가였는데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참고로 천재 과학자들의 숨겨진 이야기, 중국의 과학과 문명은 무난한 번역이다) 이면우 교수가 재번역판을 내놓길 희망한다.과학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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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클라크-스티븐 클라크 지음 / 이면우 옮김 / 몸과 마음
중세의 어둠에서 과학의 찬란한 빛으로 인간의 이성을 깨우치게 한 밀레이엄적 인물! 이것이 바로 사과와 만유인력의 법칙으로 유명한 아이작 뉴턴경의 앞에 붙는 수식어이다. 그런데 이 위대한 과학자에게 독재자라는 가혹한 수식어가 붙었다. 나는 이 사람이 워낙 많은 영향을 끼쳐서 다른 과학자들은 설 자리가 없었기에 이런 수식어가 붙어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독재자 뉴턴은 이 책에서 정말 독재자의 모습 그 자체였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은 그 이후 달과 행성에 관한 이론에 대해 연구를 하지만 스스로 막다른 벽에 부딪혀 좌절하고 만다. 하지만, 그는 이 모든 원인을 플램스티드에게 돌린다. 플램스티드를 선생님으로 모신 그레이 역시 뉴턴의 적이었다. 그런데 이 세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물론 내용을 보면 이 세 사람 이외에 우리가 아는 핼리나 여러 군주도 등장한다. 하지만 독재자의 모습은 플램스티드와 그레이에게 보여준 뉴턴의 모습이었기에 이들의 관계가 가장 중점이 된다. 영국 왕립학회의 회장과 영국 왕립 천문학자, 염색업자의 표면적 직업만 살펴보자. 왕의 후원을 입고 있었던 뉴턴은 당시 이 두 사람을 잡고 흔들 수 있는 권력을 남용했다. 그들이 과학을 위한 삶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으나, 개인적인 원한 관계를 들어 뉴턴은 그들의 논문을 말살하고 과학전 진보를 이룰 수 있는데도, 오히려 몇 십 년이나 퇴보시켜버린다. 어떤 사람이 과학을 개인의 명성과 권위의 토대로 사용했다면 우리는 그를 과학자라기보다 비열한이라고 꼬집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위대한 뉴턴이라면 우리는 많은 혼란을 가지게 된다. 물론 뉴턴이 과학사에 있어서 중요한 발견을 한 것과 그것들의 이론을 정립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귄위로 다른 과학자들의 입지를 줄여나가고 자신에게 아첨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과학제국을 만들어버린다. 플램스티드와 그레이는 이런 권위와 압제에 대해 격렬하게 반박하는 방법보다 과학자의 양심으로 꾸준히 자신들의 실험과 관찰에 심혈을 기울이고 그 노력의 결실을 뉴턴이 죽고 나서야 인정받게 된다. 힘의 논리! 이것은 예전 약육강식이나 중세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위대한 사람의 업적이라고 해서 그 작업들만이 그 실험들만이 그 해석이 정석으로만 받아들여진다면 우리는 더 이상 과학적 진보를 이루어낼 수 없다. 위대한 사람들의 이론은 절대적 진리라고 말 할 수 있지만, 그것은 동시에 ‘위험한 편견과 고정관념’으로도 불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런 위험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고쳐나가면서 과학은 진정한 발전을 이루어나가며 인류에게 진리의 빛을 안겨주는 것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