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은규 작가를 알게 되었던 것은 『알바 패밀리』라는 작품을 통해서였다. 웃프다는 표현이 딱 맞는 소설로 기억된다. 오늘 우리 한국사회 민중들의 무너진 경제구조를 오롯이 보여주었던 작품. 아무리 성실하고 부지런히 일해도 가난을 벗어나기 힘겨운 아이러니를 유쾌한 필체로 그려냈던 작품으로 기억된다.
바로 그 고은규 작가의 단편소설집을 만나게 되었다. 『오빠 알레르기』라는 다소 유쾌한 느낌을 주는 제목의 소설집이다. 도합 7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유쾌하지 않다. 고단한 삶의 무게 위에 가벼움을 덧입혔던 그의 문체에서 가벼움을 싹 빼낸 것 같은 느낌의 단편들(물론, 몇몇 작품은 유쾌함이 살며시 덧입혀져 있기도 하다.).
읽는 내내 마음이 무겁다. 때론 슬프고, 때론 답답하다. 마치 단편 「엔진룸」에 등장하는 세 모녀가 세간을 버릴 수 없어 좁은 집에 가득 채워 넣고 짐들 속에 끼여 살며 느꼈을 그 답답함이 가슴을 짓누른다. 각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힘겨운 인생이 소설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오늘 우리네 삶에 가득한 삶이기 때문에 그렇다. 주인공들이 아무리 용을 써도 벗어날 수 없는 삶의 고단함과 운명의 가혹함이 오늘 우리네 것과 별반 다르지 않기에 그렇다.
평생을 힘겹게 일했음에도 삶을 나아지게 하기보다는 조금씩 삶의 공간을 줄여야만 했던 아버지의 무력함은 오늘 우리네 곁에 있는 아버지들의 무력감이기도 하겠다. 운동권 오빠의 의문의 실종과 그 지난한 기다림에 지쳐가는 가정의 모습 역시 우리 민족의 현대사가 낳은 괴물 같은 현실이다.
돈이 있다고 안하무인, 버르장머리 없는 ‘꼰대’ 어른들의 모습을 우린 여전히 심심찮게 보게 된다. 돈 몇 푼 빚 때문에 사채업자에게 시달리다 결국 「상자 어두운 상자」에 누여졌음에도 자기 신세를 깨닫지 못하는 이지숙은 오늘 우리 누이이며 딸이다. 죽음조차 끊을 수 없는 빚의 굴레에 갇혀 있는 인생들 말이다.
소설들은 고단하고 힘겨운 삶, 삶의 무게에 짓눌려 허덕이는 우리네 인생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래서 답답하고 먹먹하고 아프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더욱 고마운 소설집이다. 우리네 인생의 아픔을 외면치 않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네 인생이 그렇다. 때론 막다른 골목에 가로막히기도 하고, 먹먹함과 울분을 삼켜야만 하기도 하며, 풍랑에 이리저리 비틀거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린 그 길을 비틀거리며 걸어가야 한다. 비록 희망 없는 삶이라 할지라도 여전히 희망을 품고 말이다. 「딸기」 속의 환희가 그렇게 활짝 웃듯이 힘겨움 가운데 미소를 지으며 말이다.
“엄마 사주고 싶다. 저거.” “예쁘다. 근데 비쌀 것 같다.” “그치?” “언니, 옷 살 돈 있어?” “지금은 없지만 이젠 돈 많이 벌 수 있을 거야.” 환희가 활짝 웃었다.(222쪽, 「딸기」)
과연 환희는 예쁜 옷을 엄마에게 사줄 수 있게 되었을까? 활짝 웃던 웃음이 그 이름처럼 진정한 기쁨 환희가 될 수 있을까? 여전히 힘겹다 할지라도. 그렇게 되길 믿어보며, 책을 덮는다. |
|
‘고은규’라는 작가 이름을 보았을 때 얼핏 남성작가일 것이라고 지레짐작을 했었다. 그런데, 작품을 보다보니 대체로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어서 여성작가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고, 결국 포털사이트에 검색까지 해보고 여성작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오빠 알레르기>라는 책제목에서 여성작가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나중에 하게 되었는데...)
책에는 모두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전반적으로 내 입맛(?!)에는 맞아서 읽고 난 후 뭔가 깔끔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작품이 보여주는 내용은 그렇게 즐겁거나 희망차거나 하지는 않다. 오히려 힘들고 어려운 일상을 견디는 모습에 더 가깝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힘겨운 이유에는 전반적으로 1980~90년대, 그러나 민주화운동기를 지나온 사람들의 모습이 비쳐지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일단 표제작인 <오빠 알레르기>부터 그러하다. 오빠라는 단어가 캠퍼스에서 금기시되는 시대를 살아온 이들에게 ‘오빠’라는 단어에 대한 거부감이 주인공을 통해 보여준다. 또한, <딸기>는 가족에서 오빠가 사라져서 가족 전체가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 했던 이야기를 담았는데, 오빠의 부재가 시대적인 상황 아래 벌어진 일임을 유추하게 만들고 있다.
한편, <차고 어두운 상자>는 제목만큼이나 차고 어두운 내용을 보여준다. 빚에 허덕이는 주인공의 처지가 처절하다. 그리고 그 처절함은 <명화>에서도 이어진다. 첩이 자식으로 태어나 이복언니의 불행을 옆에서 지켜보다가 스스로 무너지는 한 여성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유부남을 좋아하다가 스토커가 되어버린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맥스웰의 은빛 망치> 또한 우울하기 그지 없다. <엔진룸>에 등장하는 자매의 일상 또한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니,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야기마다 온전히 힘겨운 내용들뿐이다. 남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유일한 작품 <급류타기>도 힘겨운 내용면에서는 다른 작품들과 흡사하다.
이처럼 내용들이 보여주는 우울함과는 별개로 작품에 대해서는 산뜻함을 느끼게 되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가령, <딸기>에서 어른들 세계에서 나타나는 자본과 권력의 함수관계가 교실 앞문이 세계 열리거나 뒷문이 조심스럽게 열리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아이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 것인지 은유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장면은 문체로서도 흥미롭고, 구성도 재미있다는...그래서 아마 전체적으로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
|
언제가 부터 여기저기서 '오빠 ,오빠...' 하면서 부르는 소리가 난다. 아마 20살의 봄부터 들리기 시작한 것 같다. 그 당시 나는 그 소리가 너무 듣기 싫었다. '아무 남자나 모두 다 저희들 오빠야! 도대체 오빠가 몇개야.' 여기저기서 오빠들은 자신들을 부르는 소리로 알고 뒤를 돌아다본다.
남자들은 오빠라는 호칭에 사족을 못쓰는 것 같다. 그 호칭을 듣는 순간 본인 스스로 여자에 대한 보호본능이 유발되기도 하고 여자들의 콧소리에 이용당하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생각이 부족한 듯하다. 어쩌면 여자들이 더 영악하게 남자의 힘이나 능력이 필요한 순간 그 호칭을 사용해서 남자를 옹골차게 이용하는 것만은 맞다고 본다. 남성성을 일으키게 하는 단어의 힘은 참으로 놀랍다.
작품 딸기에서 오빠는 집안의 기둥이자 유일하게 든든한 장남이건만 부모를 실망시키며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주인공인 '나'는 그에 대한 기억만큼은 한없이 따뜻하고 다정스럽다. 기나긴 기다림에 모두 지쳐 몸은 살던 곳을 떠나지만 오빠에 대한 기억만큼은 그 옛날 그 자리에 영원히 남겨있다. 카라멜을 받아든 하얀 손과 함께..................
혼자남겨진 명화의 삶을 보면서 인간에게 혼자라는 단어가 사람을 얼마나 쓸쓸하게 하고 무기력한 인생으로 몰고 가는지 독자에게 절절하게 다가온다. 옆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힘이 되고 살아가는 이유가 된다는 노래가사를 떠올리면서 내 옆자리에 있는 그 무심한 인간들에게 다시한번 마음을 곱게 써야 하나 생각하게 한다.
고은규 작가의 소설 속의 인물들은 밝고 경쾌한 코드라기보다 어둡고 상처입은 사람들이다.
책 뒤에 쓰여진 작품해설은 이해하기에 조금 어려웠다. 차라리 없는 편이 좋지 않을까.......................라는 조심스런 생각을 해본다. |
|
여러 단편들이 담겨있는 고은규 작가님의 신간.
"트렁커"책의 느낌이 너무 좋아서 과연 이번 책에는 어떤 글들이 실려있을지 궁금했다.
"오빠 알레르기"라는 표제작이 소설집중 가장 처음 등장하는데
무엇인가 이전 작가님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기존에는 따뜻함, 정, 가족, 뭉클함, 감동등의 단어들이 생각났다면
첫 등장한 단편 "오빠 알레르기"는 꼰대,운동,여성,권위,죽음등의 단어들이 눈에 들어오고 느껴진다.
왜 그렇게 "오빠"라는 단어에 알레르기처럼 반응할까 싶었는데
그 이면에 인간관계가 놓여있었다.
"차고 어두운 상자" 단편은 읽는내내 음울한 분위기에 취해 읽으면서도 어떤 배경인지
예측못하고 있었다가 마지막에 그 의미를 알고는 엄청 놀랐다.
그녀의 인생은 왜 그렇게 계속 허덕여야했는지, 희망없이 그대로 끝나버려서,
뭐라 느낄새도 없이 끝나버린 그녀의 인생이 참 허무했다.
"맥스웰의 은빛 망치"도 "딸기", "명화"도 모두 인간, 죽음과 관계된 그리 만만치 않은 단편들이다.
특히 "엔진룸"의 단편은 평범하던 언니의 뒤늦은 일탈과 평범함을 추구하는 동생의 이야기를 따라가다가
엔진룸에서 발견된 고양이를 보고는 잠시 멍했다.
엔진룸에서 나오기위해 발버둥쳤을 고양이와 결국엔 나오지 못하고 죽어버린 고양이가
어쩌면 언니와 동생을 닮은 거 같아서 씁쓸했다.
이렇게 모든 단편들이 하나같이 인간관계, 상실, 죽음, 아픔등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 모든 단편들을 아우를 수 있는 이야기가 제목으로도 느껴지는 "급류 타기"가 아닐까 싶다.
영훈의 아내 지연은 불안증세를 보이며 아이를 지우려하고, 후배 경식의 아버지는 자살을 하는등
영훈은 최근에 장례식장을 여러번 드나들며 죽음을 바라본다.
그리고 말한다
"세상살이가 위험과 장애가 널려 있는 급류 타기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제목인 급류 타기처럼 많은 사람들이, 아니 어쩌면 모든 사람들이 아슬아슬하게 인생을 헤쳐나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중에서는 급류에 휘말려 오도가도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어떻게든 급류를 뚫고 나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다시는 못 돌아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인생의 급류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묵직한 느낌을 주는 책이였다.
|
|
고은규 작가님의 책은 예전에 <알바 패밀리>를 읽은 적이 있다. 먹고 살기 위해 온가족이 알바를 하는데, 여러 문제로 힘든 상황을 통통 튀는 문체로 표현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웃으면 안 되는데 피식 웃게 되는, 문장이 매력적이었다. 읽은 지 오래 되서 정확히 기억하는 건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그랬던 것 같다는 느낌이 아직 남아있다. 그래서 고은규 작가의 신작이라고 하니까 이 책도 그 책처럼 재밌지 않을까 생각해서 읽게 됐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재밌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책이 재미없었다는 게 아니라, 담고 있는 주제가 너무 무겁다. 이야기는 매력적이었다. 어두운 이야기지만 내 취향에는 맞았다.
<오빠 알레르기>는 총 7개의 단편을 모은 책이다. 그 이야기들 중 하나의 제목이 오빠 알레르기.... 7개의 이야기는 모두 죽음, 결핍된 삶과 상실, 고통 등과 연결되어 있다. 7편의 이야기 중 개인적으로 인상 깊게 읽은 건, ‘차고 어두운 상자’, ‘엔진룸’, ‘급류타기’이다. 아, ‘명화’도 좋았다. 읽으면서 얼마나 한숨을 쉬었는지 모르겠다. 숨을 죽이고 읽다가 갑갑한 마음에 숨을 토해냈다가.
‘차고 어두운 상자’에서는 빚에 허덕이는 주인공을 만날 수 있고, ‘엔진룸’에서는 록 밴드를 쫓아다니는 언니를 찾아 헤매는, 한 직장에서 열심히 일해도 원하는 집 하나 마련할 수 없는 가난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 주인공을 만날 수 있었다. ‘급류타기’는 삶에서 균형을 잡으려 애쓰지만 자꾸 바닥으로 쓰러질 것만 같은 한 남자, 영훈을 만날 수 있었다. 급류타기를 제외하면 화자가 다 여자였는데 이 이야기는 남자가 주인공이라 더 뚜렷하게 기억에 남는 것 같다. 삶이 위험과 장애가 널려있는 급류타기와 같다는 말이 아팠고, 영훈의 주변 상황이 너무 암담해 가슴이 답답해졌다. ‘명화’는 또 어떤가. 이복 언니와 부모님을 모두 잃은 명화의 이야기가 너무 슬펐다.
주인공들을 위로해주고 싶었는데, 갑자기 언젠가 어떤 책에서 본 ‘위로의 말을 건넨다는 게 위로를 ‘하는’ 사람의 마음만 달래는 것일 뿐, 위로를 ‘받는’, 고통 속에 있는 당사자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라는 문장이 생각나 멈칫했다. 그 문장을 본 뒤로 나는 누군가를 말로 위로한다는 게 그냥 내 마음 편하자고, 내 마음 달래자고 하는 짓인 것 같아 항상 망설여졌다. 그저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그래도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말해주고 싶었다. 낙관적이고 희망적인 메시지를 던져줄 순 없겠지만 내가 지금 당신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 있다고, 집중하고 있다고.....꼭 말해주고 싶었다. |
|
오빠 알레르기 고은규 소설집
오빠 알레르기라는 조금은 우스운 제목과는 달리
오빠알레르기 외에 다른 이야기들 모두 흥미로운데
딸기라는 이야기는 보는 내내 왜 딸기 일까 하는 생각과
|
|
전혀 알지도 못했던 것들이 한꺼번에 다가올 때가 있다. 페이스북에서 누군가가 이 책의 일부를 인용해놓은 것을 보고, 책의 제목도 특이해서 기억에 남았는데 얼마 후에 직접 책을 읽을 기회가 생겼다. 책의 제목이 되기도 한 <오빠알레르기>를 비롯해서 <차고 어두운 상자>, <맥스웰의 은빛 망치>, <엔진룸>, <급류 타기>, <딸기>, <명화>, 이렇게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읽다보니, 작가의 스타일이 좀 느껴진다. 대체로 1인칭 주인공 시점이 많았고 여성 화자가 많았다. 그리고 첫 문장이 굉장히 강력하다. 어떤 내용일지 호기심을 끌어내는 데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다.ㅎ
주인공들은 특별할 것이 없는,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사람들이다. 다만 좀더 상처 받은 사람들이라 해야 하나? 아니면 좀더 짠한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 해야 하나? 그런데 이 세상에 상처 받지 않고 짠하지 않은 인생을 사는 사람이 있나? 그런 사람은 없다는 대답을 가정한다면 이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지금 우리의 이야기이다.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르는 어지러운 세상에서 '급류타기'를 하는 것처럼 간신히 서서 버티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오빠 알레르기>를 읽으면서는... 절로 웃음이 났다. 내 얘기 같아서.ㅋㅋㅋㅋㅋ 책에서 표현한 것처럼 '알레르기'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나도 오빠가 아닌 사람에게 오빠라고 부르는 게 참 듣기 싫더라. 그게 뭐 남성의 보호를 받고 싶어하는 여성의 보호기제라 생각되어서 등의 거창한 이유는 아니고. 뭔가 오글거린달까. 특히 나이 많은 사람이 오빠라고 부르는 건 정말 너무 간질간질한... 그래서 나는 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는 혈연관계의 진짜 '오빠'를 제외하곤 오빠라는 말을 쓸 일이 거의 없었는데 만약 지금 당시의 '오빠'들을 우연히 만난다고 해도 '오빠'라고 부르지는 못할 것 같다. 선배님이나 선생님 등으로 부르지 않을까 싶다.ㅎ 오빠 아닌 오빠들에게 오빠라고 쓰는 상황에 대해 내가 이렇게 민감한 건 지나친 일인가. 17쪽 나도 남자지만 오빠가 낭만으로 포장될 때가 있다는 걸 부인하지 못하겠어. 선배라고 부르던 어떤 후배가 어느 날 오빠라고 불렀는데, 이상하게 걔한테 잘해주고 싶고 보호해주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거야. 웃기지? 걔는 내 보호 아래에 있어야 할 것 같고 나는 걔보다 힘이 세져야 할 것 같은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그 관계는 동등한 게 아니잖아. 후배와 나는 관계의 균형을 잃은 게 아닌가 싶다. 29쪽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는 말을 많이 했거든. 자기가 믿었던 게 다 허방 같다는 거야. 여성성을 포기해야만 남자들과 똑같지는 않더라고 비슷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대. 34쪽
<차고 어두운 상자>의 주인공은 빚 독촉을 받고 있는 대필 작가. 그녀 인생에 빚은 떼려야 뗄 수 없었던 숙명과도 같은 것. 그래서 그녀의 죽음을 확인시켜준 것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사채업자였다. 사회에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학자금 대출이다 뭐다 빚으로 시작하는 요즘 세대의 슬픈 현실이 자꾸 떠올랐다. 그래서 사랑도 할 수 없는.... 삼포세대, 오포세대의 단면 아닌가.
습이 가진 가방과 구두와 넥타이와 머플러는 그가 지금껏 지녀왔듯 앞으로도 버리지 않고 오래 사용할 것 같았다. 나는 습의 연인이 되어 그의 곁에서 조금씩 낡고 허름해져도 좋을 것 같다는 감상에 빠져들곤 했다. 나는 첫눈에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감정이 오래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못 견디게 피로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함께 있을 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고독해졌다. 59쪽 가난이 권태를 불러왔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헤어진 이유는 그래서 가난 때문이다. 62쪽
<맥스웰의 은빛 망치>의 주인공은... 이 소설이 주인공의 입장에서 서술되는 게 아니라면, 밖에서 그녀를 바라본다면, 사실 정상은 아닌 여자다. 이별을 인정하지 못해 (다른 여자와 결혼한) 전 애인을 찾아가고 그것도 모자라 그의 아내를 때리고,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임을 만들어서 모임 회원의 전 애인을 단체로 스토킹하고 결국 그 사람이 자살까지 하게 만들고... 정신적 결핍이 너무도 확실하게 보이는데, 그녀 스스로는 자신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바람은 집착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좀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이것도 역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낯선 여자의 목소리는 질량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무겁고 단단한 공깃돌 같은 음절들이 마룻바닥으로 투두둑 흩어지는 듯했다. 79쪽 여자는 혼잣말을 했다. 현실도 그래.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 잘 모를 때가 있잖아. 81쪽 여자는 자신만 세상에서 외따로 존재하는 것 같았다. 누군가와 따뜻한 밥을 같이 먹고 싶었다. 언제나 그 누군가는 X여야만 했다. 여자는 자신의 바람이 집착일 리 없다고 믿어왔다. 99쪽 이 책의 소설들이 재미있는 건 이런 거다. 소설이 주인공의 관점에서 서술되다보니, 한 인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너무도 다른 거다. 주인공은 다른 사람을 이상하다 생각하는데, 주인공 주변 사람들은 주인공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엔진룸>도 그러했다.
주인공이 같이 탄 줄 모르고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 이야기를 들은 주인공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며 깜짝 놀라는데. 주인공의 행동을 보면 이웃 아주머니들의 수다가 얼토당토하니한 말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실제 자신의 모습이 아닌 상상 속의, 가상의 자신을 만들어 놓고 거짓말을 하며 집을 보러 다니는 걸 보니.. 내가 아는 누군가가 떠올랐다.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간혹 이상적인 또 하나의 자신을 만들어놓고 그 안에서 자기 만족을 하는 것 같은. 하지만 그게 탄로나도 자기 잘못은 아니다. 그렇게 됐다고 자기합리화를 한다. 네가 알아? 어쩔 수 없는 일들에 대해서. 너같이 예쁜 손톱을 가진 여자는 알 수 없는 일들이 있어. 그건 누구의 잘못 때문도 아니야. 어쩌다 그렇게 됐단 말야. 어쩌다 보니……. 135쪽
<급류타기>의 화자는 남자이다. 이 책의 소설들 가운데 유일하게 화자가 남성이고 결혼했다. 나머지 책의 주인공들은 결혼도 안 했고 애인도 없고 돈도 없는 사람들.. 소설의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암울하다. <맥스웰의 은빛 망치>에서도 자살하는 사람이 있고 이 소설 <급류타기>에서도 자살하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는 사람도 있다. 주인공의 처남은 엘리베이터 문이 열려 그냥 들어갔는데 엘리베이터가 와 있지 않아 떨어져 죽었고 주인공의 누나는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는데 지하철이 들어올 때 취객이 밀어서 죽었고... 주인공이 일하는 회사는 농약 회사인데 툭하면 농약을 마셨으니 해독제를 보내라는 전화가 온다. 이토록 우리는 수많은 죽음에 노출된 채 살고 있고 죽음의 위험을 감수하며 살고 있다. 그게 현실이라고.....
누군가 주검을 대하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고 했다. 그동안 얼마나 잘못 살아오고 있었던가, 살아온 날들을 뉘우치게 된다고 했다. 영훈의 생각은 달랐다. 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도처에 깔려 있는 위험들이 그의 눈앞을 어지럽혔다. 마치 세상살이가 위험과 장애가 널려 있는 급류 타기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복되면 죽는다. 광고 속 급류 타기는 경쾌한 레포츠지만, 현실 속 급류에 휘말리는 건 놀이가 아니다. 144쪽
요즈음 영훈은 안전선 안에 서서 지하철을 기다릴 때마다 매우 자주 누나가 생각났고 그리고 누군가 자신의 등을 밀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154쪽
<딸기>는 흔치도 않은 '딸기 알레르기'를 가진 주인공의 이야기인데.. 이 소설의 '딸기 알레르기'도 그렇고 <오빠 알레르기>의 '오빠 알레르기'도 그렇고. '알레르기'가 과거의 아픈 기억으로 인한 정신적인 상처가 만들어낸 질병이라는 점에서 이걸 읽으니 딱 내 친구가 생각났다. 꽃게나 새우 등 갑각류 알레르기가 있었던 내 친구. 집이 지방이었던 그 친구는 공부 때문에 서울에 사는 이모집에 잠깐 얹혀살았단다. 하루는 식탁에 간장게장이 올려져 있기에 먹었는데. 이모가 그건 자기 딸이 먹을 거였다고 왜 네가 먹냐며 눈치를 주었다고. 그 일이 있은 후에 게, 새우 알레르기가 생겼다. 어린 나이에 얼마나 서러웠으면.... 나는 그해 봄부터 딸기 알레르기가 생겼다. 어떨 때는 딸기만 생각해도 살갗이 발갛게 부풀었다. 해마다 봄은 오고 약도 듣지 않는데 딸기는 세상에 나온다. 손등이, 팔뚝이, 목 주변이 만개한 꽃으로 뒤덮여 꼭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즈음 알레르기가 멈춘다. 그때마다 입 안 가득 매캐한 최루가스 냄새가 난다. 239~240쪽
<명화>에서도 그렇지만, 이 책에서는 '집'이 굉장히 중요한 의미로 계속 등장한다. 그런데 그 집들은 하나같이 낡았고 금이 갔고 정전이 되고 방음이 안 되고 냄새가 나고, 수시로 최루탄이 떨어지고... 안락하지 않다. 위태로운 우리의 삶과 같다. 그래서 더 좋은 집을 찾아다니고(<엔진룸>의 주인공) 지금 집을 떠나고 싶어하지만(<명화>의 언니) 여의치 못하다. "명화야, 언니는 이 집을 떠날 거야. 이 집을 떠난다는 건 나에게 새 삶이 시작된다는 거야. 나, 좋은 마음을 갖고 살 수 있을 거 같아. 정말 아무도 안 미워하면서." 253쪽
하지만 이 소설들을 읽으면서 자꾸 생각하게 된다. 그래, 우리는 모두 이런 삶을 살고 있지. 나만 그런 건 아니야. 작가의 말처럼, 작가가 구축해 놓은 세상 속에서 태어난 인물들을 통해 독자는 조금 위로를 받는 듯하다.
|
|
매일 매일 반복된 일상 속에서 때로는 어떤 사건이 발생하게 되면, 그 사건은 또다른 문제로 이어지게 된다. 특히 누군가의 죽음이라던지, 상처,고통이 반복되어서, 현실 속에서 돌이킬 수 없는 무슨 일이 생기면 그것으로 인하여 한 가정이 파괴되고 오랜 고통과 아픔 속에서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치는 경우가 있다. 때로는 남의 일처럼 보이는 것들이 내 일이 될 때 우리는 흔들리게 되고, 정망의 늪에 빠진다. 소설은 그렇게 우리 주변에 생길 수 있는 일곱가지 이야기를 7편의 단편 소설에 녹여 내고 있다. 서울대에 다니는 오빠.그 오빠는 집안의 자랑거리였다. 하지만 그 오빠는 가족이 원하는 그런 오빠는 아니었다. 공산주의에 빠져 학업과 동떨어진 일을 하게 되고, 아빠는 그 오빠를 빨갱이라 부르며 찾아다니는데 모든 걸 걸고 있다. 데모를 하는 곳에 있는 오빠의 모습...최루탄이라는 것에서 느껴지는 그 고통은 주인공이 그대로 느끼게 한다. 여기서 낡은 관습에 머물러 있는 아빠와 그 관습을 깨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싶어하는 오빠..그 두사람의 가치관의 차이를 그려낸 이야기가 바로 <딸기> 였다.. |
|
제목부터 조금 특이하다 생각이 들면서 호기심이 생겼다. 지금은 아니지만 어릴 때 복숭아를 먹고 알레르기 증세가 있어서 알레르기라는 단어에 왠지 모르게 몸이 근질 거리고 좋지 않은 느낌이 들었었다. 그럼에도 다른 이들이 추천을 하기도 하고 나는 잘 모르는 작가였지만 이미 그의 글을 읽은 이들은 다음 작품도 매우 궁금해 할만큼 관심을 가지고 있는 작가라 궁금했었다.
오빠 알레르기, 차고 어두운 상자, 맥스웰의 은빛 망치, 엔진룸, 급류타기, 딸기, 명화 책에는 책 제목과 같은 이야기를 포함해 총 7개의 단편이 담겨져 있다. 각각의 이야기들을 읽으며 사실 뭔가 자꾸 불편하고 씁쓸한 느낌이 들었는데 아마도 소설속에서 너무나 현실적인 모습들을 그것도 굳이 보고 싶지 않은 모습들을 보아서 였던 것 같다. 사실 이야기들이 밝지도 않고 마무리가 개운하지도 않다. 그럼에도 책을 읽으면서는 자꾸 그 안에 숨겨진 내용들이 궁금하고 끝이 난 뒤에도 뭔가가 더 있을 것 같은 느낌에 한동안 혼자서 상상을 하기도 하며 책 속에 빠졌었다.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긴 호흡이 아니라서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었고 등장인물들의 상황이나 배경등이 현실과 닮은 부분이 많고 그들의 일부 모습들에서 나의 모습들도 찾을 수 있어서 공감되는 부분들도 있었다. 그들의 결핍이라 보여지는 모습들에서 개인적인 문제들뿐 아니라 사회적 문제로서의 관점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용등이 마치 누군가의 실제 모습들을 진술하는 것처럼 자신이 본 것, 자신의 생각등을 그대로 전달하여 날 것의 느낌도 많이 났는데 때로는 너무 적나라한 모습에 무섭기도 두렵기도 한 감정이 들기도 했었다.
개인의 생각, 가족이나 다른이들과의 관계, 집, 죽음 등. 한 번쯤 고민하게 되는 것들이지만 책속에 인물들을 보면서는 더 어두운쪽으로 깊숙히 생각해보기도 했다.
단편들 중 책제목과 같아서 이기도 하지만 어머니가 하셨던 말씀이 떠올라 '오빠 알레르기'란 내용이 제일 흥미롭게 느껴졌다. 어렸을 적 티비를 보면서 드라마나 다큐에서 결혼한 부부사이에 아내가 남편에게 오빠라는 호칭을 쓰는 장면을 나올 때면 엄마는 말도 되지 않는다며 무슨 친오빠랑 결혼한 것도 아닌데 왜 저러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인상을 찌푸리셨다. 내 생각엔 굳이 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여자본인보다 나이 많은 남자에게 오빠라고 하는 것이 당연한것 아닌가 했었다. 그래서 아기일때도 이웃집 또래 남자나 여자에게 오빠, 언니라고 부르게 하는 것 아닌가 하고 말이다. 오빠라는 단어에 남자들이 뭔가 더 듬직해지고 싶고 보호해주고 싶고, 애교를 받은 것처럼 기분이 좋아진다는 건 나도 어느정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물론 가끔 여자들 중에도 오빠라는 호칭을 이용해 자신의 이득을 취하기도 하고 뭐랄까 잠재적인 연인의 관계, 썸처럼의 느낌을 이용하려 하는 것도 있는것 같다.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이 있다보니 무엇이 정확하다 할순 없지만 이 이야기를 들으며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기도 했다. |
|
고은규 작가의 작품들은 언제나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소설에서 다루는 문제가 결코 가볍지 않음에도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솜씨가 남달라서였을까, 무거운 느낌 속에서도 웃으면서 우리의 짐을 덜어놓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이번 작품도 그런 그의 성향이 드러나지 않을까 기대하며 읽었는데 전작들과는 무언가 다르다. 이 책에 실린 일곱 편의 이야기들은 전작들과는 달리 삶의 무거움이 그래도 전해지면서 침울한 기분이 들게 한다.
일곱 편의 작품들 중에서도 <차고 어두운 상자>는 제목이 주는 느낌이 그대로 전해지는 작품이다. 납치되어 차고 어두운 상자의 갇힌 주인공은 ‘습’을 애타게 기다리지만 그녀를 찾아온 것 그녀를 어두움 속으로 더욱 깊이 끌어당기는 ‘빚’일 뿐이다.
이 소설이 특히 가슴에 와 닿았던 이유는 나도 그녀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벗어나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더욱 깊이 빠져들었던 그 어둡고 어두웠던 ‘빚’이라는 구렁텅이. 결코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과거이다.
문제는 그런 구렁텅이에서 빠져 나오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아니, 그런 구렁텅이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이들이 더욱 많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나 혼자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가난의 대물림, 빚의 대물림.
이런 어두운 세상에는 빛이란 결코 찾아볼 수 없는 환상 속의 산물인 것일까? 모든 이들에게 골고루 빛을 비출 수 없을 만큼 세상은 어두운 곳일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지금도 여전히 살아가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말이다.
누군가는 아파하고, 누군가는 힘겨워 무너져 내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어딘가에는 우리를 이끌어줄 희망의 빛은 존재하지 않을까? 그럴 거라고 굳게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