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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제껏 알고 있는 지구 온난화에 대한 모든 지식을 죄다 버려야 한다.”
상기 문구에 어느 정도 내가 그러했다. 그동안 접해왔던 기후 변화에 관한 책은 옛것을 바라고, 좀 덜 만들고 덜 쓰자, 그래서 우리 과학이 우리를 이만큼 풍요롭게 했으니, 이 지구 기후 변화를 해결하기 위해 열심히 연구 중이라 희망을 품어보자는 그런 책이었다면, 이 책은 불편한 그 진실을 그대로 까발리는 책이다. 그녀가 까발리는 진실에는 자본에 기생하는 과학이나, 여러 환경단체들도 포함되어 있다. (여타 기후 변화에 관한 책의 저자들도 알면서 용기없음에, 까지 못했을 수도 있고. 실제 그들의 싱크탱크들은 그들의 이기에 반하는 사람에게 가할 테러도 연구하고 있다)
참으로 불편한 진실은 지구 온난화의 주역은 탄소가 아니라, 자본주의다. 우리는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풍요로움은 화석 연료에 의함이라 도저히 이 연료에 벗어나는 건 불가능하다는 말을 누누이 들어왔지만, 실제로는 화석 연료에서 벗어날 방법을 똑똑히 알고 있다. <자유 시장>의 전략서에 포함된 모든 원칙을 깨부수고, 기업들의 권력 행사를 통제하고, 지역 경제를 재건하고, 우리의 민주주의를 탈환하면, 우리는 화석 연료에서 벗어날 수 있다. 또, 인간은 원래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존재라 이 <자유 시장>의 논리에 도전할 수 없다는 말도 자주 듣는다. 책 끝에서 저자는 거대한 힘에 도전하는 세계도처의 성공 사례를 들어 우리 힘이 하나로 집결만 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한다.
“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 자본주의 vs 기후 “
책에서 저자는 암울함만 전했을까. 분명 모든 것을 바꾼다 했다. 이대로 가다가 요동치는 지구로 바뀌거나. 우리 사회가 새로운 사회로 바뀌거나. 단순히 문명의 경종을 울리는 것을 말하는 책이 아니다. 지구 온난화는 바로 기회!!! 오늘도 성장과 불평등을 말하는 그들을 이겨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 평등주의와 공동체주의로 전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저자는 이 책을 집필하는 5년 동안 불임의 장벽을 넘어 우여곡절 끝에 출산하게 되는데, 그 과정을 책에서 녹아내었다. 인공으로 희생당한 자신의 몸이 지구와 닮았고, 나아가 신비로울 정도의 재생 능력을 가진 존재임을 깨달은 저자다. 출산과 연결된 깨달음에서 자본에 대한 저항하는 지금의 극히 작은 저항이 우리가 건설할 먼 미래의 주춧돌이 될 수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저자의 통찰은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된 불평등, 기본소득을 위한 외침, 어느 노동자들의 파업, LH사태, 가덕도 신공항 문제 등 모든 자본과 성장에 대항하는 운동이 이 기후 운동이라는 통찰에 내가 큰 망치를 맞은 것이다. 실제 난, 이전의 이 같은 지구 기후와 관련된 책을 읽으며 일개 1명인 내가 무엇도 할 수 없음에 허탈해했다. 그저 먹던 막걸리 겉면에 포장 비닐이나 잘 뜯어서 버리며, 지구 과학자들이 어서 무언가를 만들어 내겠거니 지내 왔던 거다. 책이 말하는, 자본에 기생하고, 자본에 또 다른 파괴의 길을 열어주고, 오염을 걷는다고 또 다른 오염을 하늘에 쏘아댈 궁리를 하는 그들에게…….
문득, 책머리를 들춰 본다. <토마에게>. 그렇구나. 저자는 인공을 딛고 이겨낸 아들에게 책을 바쳤다. 책은 암울이 아니라 희망이다.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고 희망을 품어보기 바란다. 지난밤, 때아닌 돌풍과 비바람에도 벚나무는 잘도 버텼다. 촉박하지만, 시간은 충분하다.
<집앞 도로에서, 새벽>
<진해 여좌천에서,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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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생산력과 기술은 나날이 발전하지만 자본주의 체제는 아무리 생산력이 발전하더라도 이를 제로섬 게임으로 만듭니다. 왜냐면 인류의 능력이 커지는 만큼 그 증가분을 모두 자본의 이윤으로 가져가려 하기 때문이지요. 더욱 암담한 현실은 자본은 이를 넘어서서 자연 그 자체도 착취하려 한다는 점입니다. 이제 자연의 착취는 한계점에 도달하고 있고, 이를 방치할 경우 인류의 생존이 위태로울 지경입니다. 저자는 강렬한 분노를 느끼지만 승리의 희망에 대해서는 다소 낙관적인 면이 있는 듯 합니다. 하지만 첨예한 투쟁이 기다리고 있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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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거의 3년 전에 이 책을 읽어본 적이 있다. 그때 좌파적 시각을 건강하게 반영하고 있다는 느낌을 단상으로 남겼었는데.... https://sarak.yes24.com/blog/ecotus/post-view/14728480 어쩌다 보니 번역본을 또 잡아보게 되었다. 그 사이, 기후와 관련된 국내 정책의 일부분에 밀접한 관련을 가진 일을 하고 있고, 현실의 업무와는 거리가 있는 이상적인 기준들을 종종 생각해보게 된다. 물론 이 책만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끄트머리에 카리 노가드란 사회학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부정론자들의 주장의 의미를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기후 변화를 부정하는 것은, 우리 인간이 비록 제대로 된 대응에 나서진 못한다 해도 기후 대응에 대해 공감과 연민, 그리고 근원적인 도덕적 의무감을 지내고 있음을 입증하는 증거라고 볼 수 있다. 반드시 그렇게 보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트럼프 집권 이전의 여러 현황들을 배경으로 한 내용들이고, 얄궂게도 지금의 상황도 유사한 것 같다. 그때도 '향후 10년의 중요성'을 매우 엄중하게 이야기를 했는데, 작년 IPCC 보고서도 동일하게 향후 10년을 얘기한다. 어쨌건 대략 10년 전 북미를 중심으로(그리고 그 밖에 세계 곳곳에서) 대두된 기후주의(다른 사람의 용어이긴 하지만) 중심의 각종 사회운동, 특히 반자본주의 운동의 재편의 논지를 나오미 클라인은 단호하면서도 간결하고, 설득력있게 설파하고 있다. 그것이 주장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있고, 현재 주변에서 그런식으로 기후정의 운동의 범위와 의미를 확대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 지금 주변의 흐름도, 그리고 이 책의 논지에서도 사실 논리적으로 명확히 '기후주의/기후정의 운동'이라는 용어가 정말 그 모든 것을 확실히 포괄할 수 있을 것인지를 설명하지는 못한다고 본다. 수십년 이전 부터 나름의 갈래로 맥을 이어오던 개별 운동이나 사상들, 그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고, 생태주의라는 식으로 말하면 원칙적으로 더 많을 것을 포괄할 수 있을 것 같은 사조의 명칭을 왜 '기후'로 교체하려고 하는 지는 쉽게 납득할 수가 없다. 다만, 앞에 언급한 인용문에서... 그렇게 봄으로써 가질 수 있는 의미를 나름 정세판단으로 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하면 동의할 수 있다. 필연적인 논리가 아니라 방편적으로 유용한 논리라는 입장을 기꺼히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반드시 그렇게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 그 결의를 보이는 것이라고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