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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일의 시작이 서서히 밝혀지기 시작한다. 누가 왜 무슨 이유로 오래 전 코끼리 방에 있었던 아이들의 사진을 전했던 것일까. 그것은 분명 내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협박이 가미된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그렇게 협박을 해서 이익이 되는 당사자는 누구인가라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다. 전반적으로 편지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기 때문에 경찰이라던가 형사 캐릭터는 부각되지 않는다. 공식적으로 사건이라고 접수된 것도 없으니 말이다. 단지 이 사건을 해결하려는 청부업자가 있을 뿐이고 그 외에는 콩슬룬 고아원과 관련된 인물이 드러날 뿐이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역시나 그녀가 받았던 한 통의 편지 때문이었다. 호주에서 보내진 한 통의 편지는 수신자가 잘못 설정되었다. 그녀가 보냈던 편지를 받아야 하는 사람은 고아원에 없었고 그래서 다른 사람이 그 편지를 받았던 것이다. 편지를 받은 그 사람은 대체 그녀가 말하는 아이가 누구인지를 찾아서 자료 조사에 돌입한다. 그 모든 것을 그대로 묻어 두었더라면 차라리 다행이었을까. 여기에서 이 책의 1권에 등장했던 해변가에 죽은 채로 누워 있었던 그녀가 누구인지 알게 된다. 하지만 그녀가 왜 그런 모습으로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해야 했는지는 드러나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말이다. 그 모든 것의 전모도 역시나 드러난다. 그 사건이 왜 어떻게 일어났는지 그들의 관계가 어떤 사이인지를 알게 되면 헉 하는 소리를 내게 된다. 이 모든 것을 꽁꽁 숨겨 놓기 위해서 그리도 지루하게 끌어왔느냐 하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2권에 들어서면서 사건이 계속적으로 발생을 한다. 죽음도 일어난다. 그러면서도 무언가 느슨한 느낌은 계속적으로 들어왔는데 1권에 비해서는 확실히 조금 당겨진 텐션이 느껴지기는 한다. 그마저도 없었더라면 2권에 대한 기대마저 없었을뻔 했다. 이 책은 원서를 그대로 번역한 것이 아니다. 원서를 영어로 번역했고 그 영문판을 번역한 중역본이다. 그래서일까 직접적인 번역본보다도 훨씬 더 촘촘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 말이다. 번역본은 역시나 어느 정도의 한계점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코끼리 방에 있었던 다섯 명의 남자아이와 두명의 여자아이. 그것을 계속 강조하는 이유가 있다. 이름을 강조하는 이유가 있다. 그 아이들 중의 한명이 바로 그녀의 아이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제목이 암시하는 바 일곱 번깨 아이가 누구냐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그리고 유명인들은 실수를 아이를 가졌고 그 아이를 버렸다. 콩슬룬에. 그리고는 그 고아원을 후원했다. 모든 비리는 거기에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었을까. 콩슬룬 고아원이 그렇게도 많은 후원과 든든한 비호를 받았던 것은 말이다. 지금의 덴마크의 고아원은 이렇지 않을테지만 말이다. 낙태와 유기. 어느 것이 더 잘못이라고 딱히 말할 수가 없다는 것이 더 슬픈 현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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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을 읽고 어쩌다보니, 한참 뒤에 2권을 읽었습니다.
첫 장면에 등장했던 '해변의 여인 살인 사건'은 거의 잊혀졌고, 마리가 왜 다른 여섯 명의 아이들에게 집착하는 건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아이들은 콩슬룬 고아원 밖으로 입양됐고, 마리만 남겨졌습니다. 물론 마리도 콩슬룬의 마그다 원장님에게 입양되었으니까 완전히 버려진 건 아닙니다.
하지만 냉정한 마그다 원장님이 마리에게 진짜 엄마 같은 사랑을 주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기형적인 얼굴과 몸 때문에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했던 마리에게 유일한 친구는 막달렌뿐.
비록 소설이지만 고아원에서 생애 첫 시기를 보낸다는 것, 그리고 입양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아픔인지 아주 조금은 이해할 것 같습니다. 유독 입양아들의 어두운 면을 부각시킨 면이 있지만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절대 모를 진심을 보여준 것만은 확실합니다. 우리는 아기가 태어날 때, 생명의 신비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만약 그 아기가 자신을 낳아준 엄마, 아빠의 얼굴조차 모른채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면 그건 삶의 중요한 한 조각을 잃어버린 것과 같습니다. 절대로 완성되지 않을 퍼즐처럼. 아무리 퍼즐을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 없다면 그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지 않을까요.
마리는 미스터리한 일곱번째 아이를 찾으려 했습니다. 그래서 여섯 명의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몰래 관찰했습니다. 마리는 자신의 인생을 꿈꾼 적이 없어 보입니다. 콩슬룬 안에 살면서 다른 사람의 인생만 좇은 것 같습니다. 왜 이토록 집착할까. 그것이 도대체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이 마지막에 가서야 뚜렷하게 보였습니다.
2001년 9월 11일, 해변에서 발견된 죽은 여인 그리고 뉴욕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과 함께 무너진 수많은 사람들.
세상을 떠난 모든 이들의 명복을 빕니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것은 모두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곱 아이들의 삶을 보면서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축복받으며 태어나지 못했지만 행복하지 않을 이유는 전혀 없는데, 그들 중 누구도 행복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언제 어떤 식으로 죽음을 맞이할 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살아 있는 동안 후회없이 사랑했으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책을 덮고나니 생각이 많아지는 소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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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분량 내내 무거운 분위기로 끌고 가다 드디어 이 2권 끝에서 마무리가 되긴 하네요. 1권 리뷰에서 말한 대로, 고아원 출신인 여러 성인들은 어느 날 갑자기 자신들에게 날아온 의문의 편지를 받고 그 발신자의 신원, 그 와중에서 알게 된 수수께끼의 다른 인물 그 정체 등을 캐고, 아울러 자신을 낳아 준 친부모가 누구인지, 오랜 세월 동안 베일에 갇혀 있던 수수께끼를 풀어 나가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담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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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2권임에도 속도감은 떨어진다. 좀 더 빠른 전개로 결말로 달려갔더라면 2권에서 쾌감이 더 느껴졌을 텐데 그 부분이 부족했다. 이미 소설 초반에 고아원의 알려지지 않은 아이가 누구인지는 짐작이 쉽게 간다. 뭔가 이야기를 꼬아서 이를 추리해가는 분위기를 만들려 했지만 그러기엔 등장인물들의 심리에 몰입하는 부분이 적었다. 왠지 추운 겨울에 고아원에서 벌어진 일이라기엔 온도감이나 긴장감이 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유럽의 추리소설은 다른 나라의 소설과는 다른 느낌이라 새로운 책을 읽은 듯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