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생활에 풀었다면 명치를 맞고도 남았을게야. 업무의 고단함을 믹스커피 한잔으로 겨우 달래는 동료에게 환경이 어쩌고 텀블러가 어쩌고 하는 더럽게 피곤한 인간, 지가 사면 생필품 남이 사면 과잉소비라하는- 자기평가는 의식있는 사람이지만 남이 보기엔 내로남불인 인간, (그래서 그 훌륭한 만화인 ‘미생’도 일단 무엇이든 팔고 봐야하는 종합상사의 목적의식을 이해 못해서 온전히 감상 못하는 인간) 그런 ‘나같은’ 인간에게는 아주 착착 맞아떨어지는 글들이어서 킥킥 웃게되고 속이 뻥 뚫리는 독서였습니다.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며 화내는 법’ 한국판 같달까요. 같은 유형 인간이라면 읽으세요. 우리라고 이렇게 살고싶겠습니까. 그런데 눈에 보이고 맘에 걸리니 어쩌겠어요. 나만 이상한게 아니라는, 나보다 쬐끔 더 한 사람도 있다는 위안이라도 받아봅시다 |
|
유럽에 간 빌브라이슨, 파리에 간 아사다 지로 이후 최고로 웃긴 책이다. 5권 더 사서 지인들에게 연말 선물했다. 제목만 처음 보았을 때는 그러하니 뭘 하지말자는 뜻인 줄 알고 구매의사가 0이었는데, 읽다보니 그게 그 뜻이 아니라서 흐믓했다.그래, 명치란 맞는 것보단 때리는 것이 맛이다. 나이 40이 되고보니 짤없이 기성세대이다. 사회가 이 지경인 것에 대해, 이 때껏은 비판과 비난의 역할이었다면 지금부터 만들어 가는 사회의 꼴에 대해서는 나 자신은책임을 져야하는 역할이다. 20살 남짓 30 즈음 젊은 사람들은 나의 시절과 닮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우리를 지칭하던 이름과 그들을 지칭하는 이름부터 다르다. 이름. 주어진 것일 지언정 한 이름으로 불리우면 우리의 정체성은 길들여지기 마련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어떤 이름을 주었던가? 그들은 그 이름으로 결국 어디에 이를 것인가? 교수라는 이름은 오염된지 오래이지만 이 정도 글을 써낼 수 있는 사람이 교수라는 자리에 남아있기에 희망이라는 것을 가져볼 수 있다. 내가 학교 다닐 때 나의 교수님이 이런 속마음 고민을 가지고 있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나는 좀 더 나은 대학 생활을 하지 않았을까? 그 때에 우리 교수님들의 진심이야 다르지 않았겠고 오히려 더욱 뜨거운 바도 있었겠지만 왠일인지 그 분들은 다소 수줍었던 것 같고, 이런 책을 내는 결의 인간형이 아니었던 듯 하다. 나는 이지원 교수의 제자였던 적은 없으나, 이런 교수 한 명쯤 학교에 계시다면 마음 한 구석 기댈 언덕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물론 정작 그 상황이고 보면 엄청 짜증내고 귀찮아할지도 ^^ 분노해서 당신 자신을 까는 척 하면서 이 따위로 미화하지말라며 들이 받을지도 ㅋㅋ 아! 만약 이러하다면 나같은 인간은 이 책을 중고서점에서 양껏 구해다가 공개화형을 시켜버릴지도!! 그래,이 정도까지는 아닐 것이다. 그렇게 믿기로 선택했다. 그래야 이 갑갑함 가득한 세상에 숨이라도 쉬고 살지. 그래야 이 답답함 세상에 희망이라는 작은 창을 하나라도 더 내지. 여튼,모처럼 배가 째지게 웃으며 보았다는 것만으로 매우 만족!을 줄만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