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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검은 머리 사람들의 세대가 될 것입니다.” -누에르족의 예언자 ‘웅은 뎅’- 노인들은 이 말을, 검은 머리의 아이들과 젊은이들이 흰 머리가 채 나기도 전에 살해당하기 때문에, 앞으로는 백발노인을 볼 수 없게 된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곧 예언은 사실로 나타나 수많은 ‘잃어버린 아이들’을 양산한다.
이 책의 배경이 되는 수단은 우리가 나일강의 나라로 잘 알고 있는 이집트의 아래쪽에 위치한 나일강이 시작되는 나라이기도 하다. 성서에서는 ‘구스’라고 명명되며, 그들의 역사는 성서의 역사보다 길었음을 알 수 있다. 수도는 하르툼, 다른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와 마찬가지로 서구 열강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을 이루었으며 여러 종족들이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만들어내며 공존하는 나라다.
그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종족은 아랍인으로 북부 수단지역에 자리하고 있다. 아랍인인 것을 보면 알다시피 종교는 이슬람교다. 이 책의 저자인 존 불 다우는 남부 수단의 한 종족인 딩카인으로 종교는 기독교다. 아프리카는 부족의 전통이 매우 강해 이웃 마을의 다른 부족과도 적대적인 경우가 많은데, 북부수단과 남부수단의 종교는 이러한 상황을 더 비극적으로 몰고 가는 매개체 역할을 하게 된다.
존이 태어난 1974년은 '아디스아바바 협정'으로 남북 수단이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는 듯하였다. 그러나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반까지 남부 수단의 자치권은 점차 약화되어 갔다. 정부의 남북 각 지역에 주둔한 군대를 순환근무 시키는 정책을 강행하려고 하자 남부 수단의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키면서 사태는 악화되었다. 상황은 더욱 심각해져 누메이리 대통령은 군복을 ‘젤라바’로 바꾸고 엄격한 이슬람법인 샤리아를 수단 전체에 선포한다. 수단의 ‘탈레반’ 정권이 들어선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의 경우 나라 전체가 이슬람인데도 불구하고 마찰이 심한데, 이 곳은 기독교, 각종 토속신앙이 나라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누메이리의 이러한 선포는 남부의 수단인민해방운동을 불러일으켜 결국 수단 전체를 내전의 소용돌이 속으로 끌고 들어가고 말았다.
내전의 소용돌이에서 태어나고 죽는 아이들 속에 ‘잃어버린 아이’ 존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느 날 존의 고향 둑 빠유엘의 오두막은 젤라바의 습격을 받게 된다. 무작정 뛰어 나가 목숨을 건진 존은 멀고 먼 피난길을 떠나게 되는데, 그 여정이 순탄하지 못함을 존의 담담하면서도 슬픈 글을 통해 확인 할 수 있다. 난민 캠프에서 난민 캠프로 이동하는 도중에 수단의 한 종족이 표범 가죽을 구하기 위한 미끼로 소년들을 사용하기 위해 납치한 일, 젤라바들의 기습을 피해 악어가 우글대는 길로 강에 뛰어 든 일, 이러한 상황보다 물과 식량이 없는 것을 더 무서워하는 일 등등 그들의 고통은 인간의 것이라고 하기엔 세상이 너무 가혹해 보이기도 하다. 그 험난한 여정이 끝없이 지속될 듯 보여, 보는 이로 하여금 먹먹함을 심어준다.
다행히 희망의 빛도 볼 수 있었다. 유엔의 활동으로 그들이 어느 정도의 식량과 물품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존과 같은 아이들 중에는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아이들도 생겨난다. 존의 대단한 점은 이러한 불운한 상황에서도 항상 희망을 잃지 않았다는 점이다. 교육을 통해 딩카인으로서 아프리카인들을 돕고자 했고, 머지않은 미래에 이루어 내게 된다. 난민들의 입국을 허용한 미국으로의 여정이 존에게 허락되었고, 존은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 미국에서의 생활을 성공적으로 해 나아간다.
그는 여기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아프리카의 내전에 대해 사람들에게 알리고, 그들에게서 많은 후원을 얻어내는 일 등을 적극적으로 모색한다. 자신은 ‘잃어버린 아이들’일지 모르지만, 신은 결국 자신을 찾아내었고 쓰실 것을 대비하여 그에게 기회를 주셨다. 이제는 수단의 모든 잃어 버린 아이들이 존에 의해 신은 더 많은 아이들을 찾아낼 것이라 믿는다.
『집으로 가는 길』, 『연을 쫓는 아이들』과 더불어 이 책의 소중한 점은, 그들의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점을 저자가 겪은 그들의 이야기로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알린다는 점이다. 이러한 이야기는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지만, 읽어야만 한다. 혹자는 우리도 살기 힘든데, 알지도 못하는 아프리카라니...라고 냉소를 머금을지 모르겠지만. 우리안의 인간다움이 그들의 아픔을 조금은 덜어내 줄 것이라고 믿기에 희망을 가져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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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모습은 살가죽만 앙상하게 남은, 그리고 영양실조로 배만 기형적으로 불룩한 비참한 실상을 그리고 그네들의 삶 근처에 얼쩡대며 눈물을 찍어대는 연기자들의 연민 섞인 체험기에 질려버리는 것이 고작인 것이 솔직한 식견 전부였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었다.
그들 나라에서 벌어지는 내전이 지니는 의미를 생각해 볼 겨를도 없었으며, 이러한 실상을 그네들의 굶주림과 관계를 지으려는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다. 또한, 난민촌에 대한 국제구호단체의 지원과 같은 행동의 절박함이 그저 먼 지역의 그렇고 그런 단지 또 하나의 다른 삶 정도 이상의 의미로 다가온 적이 없었다. 이 실화의 주인공인‘존 불 다우’의 그 참혹한 증언과 동족에 대한 사랑, 그리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또 다른 인간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면 아프리카‘수단’이란 나라는 검은 대륙의 그렇고 그런 나라중의 하나 이상이 아니었을 것이다. 수단 남부‘둑 빠유엘’의 평화로운 딩카족의 일상이 이슬람근본주의로 무장한 북부 수단 정부군의 무자비한 살상으로 파괴되는 장면으로 그의 기억은 시작된다. 열세살 딩카족의 어린 소년, ‘디에우’(존 불 다우의 어린시절 이름)의 생을 향한 피난의 대 장정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끝없이 넘나드는 고통의 연속으로 참담한 실상으로 그려지고 있다. 생을 위한 극한적 사투와 헌신적인 어른의 보호, 그의 형제와 부모, 이웃이 함께하는 동족(딩카족)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애정, 그리고 그들을 위한 재건과 평화, 인간적 삶의 지지를 위한 사명감이 전편을 진실이란 이름으로 흐른다. 잔인한 이슬람 정부군의 총부리를 피해 1600Km에 이르는 어린소년의 정글과 사막, 적대적인 종족의 살해 위협, 굶주림, 손상된 육체를 극복한 여정은 그의 말처럼 신(God)이 찾아주지 않았으면 불가능한 생존의 혈투였을 것이다. 그러나 정착한 에티오피아의 ‘피뉴두’난민촌 생활과 다시금 이어지는 외교적 박해로 인한 수천Km에 이르는 케냐 ‘카쿠마’까지의 난민행렬은 오히려 신이 버렸음직한 이들의 행렬이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미국의 수단난민 이민정책의 일환으로 ‘잃어버린 아이들’(The lost boys)과 함께 미국 시큐러스에 정착하는 일련의 과정과 미국사회의 인류에 대한 포용력이 저자에 의해 긍정적으로 기술되고 있기도 하다. 동족을 지원 할 수 있는 물질과 부를 창조 할 수 있는 기회의 나라로서, 그리고 수단의 현실을 이처럼 선명하게 전달 할 수 있는 기반으로서 미국은 그에게 분명 삶의 새로운 차원을 보여주고 있다. 여전히 많은 소년 소녀들의 회복 불가능해 보이는 빈곤의 고정화, 종교 갈등에 따른 종족간의 탄압으로 인한 무수히 많은 인종들의 절망적인 삶을 외면하기에 우리는 너무 이기적이고 탐욕스럽다는 자성을 회피하기 어렵다. 그네들 내전과 정전, 전쟁과 평화의 반복적인 황폐함을 떠나 이로 인해 인간적 삶의 작은 기대마저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우리의 작은 기여는 ‘존 불 다우’가 난민촌에서 그렇게 고마워했던 옥수수가루 한 컵, 버려진 자투리 천으로 만들어 입은 반바지처럼 생에 대한 긍정과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웅덩이에 고여 있는 물조차 없는 그 잔인한 굶주림의 고통이라도 벗어 날 수 있도록 인류에 대한 보다 넓고 깊은 시선을 갖게 한다. 감동을 넘어 한 인간의 정신적 승리에 경외감을 떨 칠 수 가 없다. ‘존 불 다우’의 남부 수단이 독립하고 그가 고향으로 귀환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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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헐벗고 굶주린 실상을 떠올릴때조차 수단이란 나라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특히나 몇년동안 우리뇌리에 깊숙히 박혀있는 에티오피아난민이 수단사람이었단 사실을 알아가며 나의 나라가 아니라는 생각에 참으로 무심했단 사실만으로도 너무도 부끄러워져왔다. 이 책은 남부의 존가랑을 중심으로한 수단인민해방군이 북부 정부군에 맞서 독립을 위한 투쟁을 벌여온 20여년의 시간동안 무수히 죽어간 수단사람들과 살기위해 앞만보고 달려온 존 불 다우의 이야기가 다큐멘타리형식으로 펼쳐져 있었다.
존 불 다우 그가 수단을 떠날수 밖에 없었던 이야기를 만나며 남과북의 대립이란 측면과 유엔이 개입되 평화 협상을 체결하는것까지 우리의 역사와 참으로 비숫한 면이 많음을 알게된다. 우리는 1950년 6.25전쟁이란 이름으로 다른 이념을 쫓아 3년의 시간동안 벌였던 전쟁의 상처를 아직도 수습하고 있는중이다.그 모습중 하나로 지난주말 다녀왔던 강화도 역사체험의 현장에서 남과 북의 이념사이에서 아무런 이유없이 무참히 죽어간 대량학살의 현장을 둘러보며 둘로 갈라진 현실에 참으로 아파하기도 했다.
수단내의 여러부족중 하나인 딩가족이 내전에 휩쓸린것은 1983년 처음 내전이 발생한후 4년여의 시간이 지난 1987년이었다. 한밤중의 고요를 가르는 총성과 함께 젤라바들이 습격해온 그날밤 존 불 다우는 친구의 아버지인 아브라함을 자신의 아버지로 착각하고 그의 뒷모습만을 좇아 어딘지도 모를곳을 향해 달린다. 그렇게 시작된 그의 생존투쟁은 1600km의 거리를 걸어 에티오피아의 피뉴듀난민캠프에 도착할때까지 숨이 넘어갈듯한 갈증과 배고픔의 연속이었고 어디에서 자신들의 향해 겨누게될지 모르는 젤라바들의 총부리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었으며 더욱 멀어지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더이상의 발자욱을 떼어놓고 싶지않은 고난의길이었다.
난민캠프에 도착 마음의 안정을 되찾아갈즈음 에티오피아까지 내전에 휩싸이면서 그들의 역경의 길은 다시 시작된다. 끝을 알수 없는 긴 난민의 행렬사이로 하루에 한번씩 물과 식량을 공급하는 유엔의 차량을 기다리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우리들의 엄마 아빠도 저런마음이었겠지 싶어져온다. 딩가족의 명예를 떠올리며 자신의 삶에 대한 긍정적인 사고를 놓치않았던 존 불 다우는 케냐의 카쿠마난민캠프에서 열여덟살의 늦은 나이에 학교생활을 시작하며 더욱 자신의 인생의 밝은 모습을 가꾸어 가게된다.
어떤 상황이든 어떤 처지에 놓여있던 삶에 대한 긍정적인 사고가 앞으로의 자신의 삶에 어떠한 모습으로 작용하고 있는지 여실히 알수 있었던 시간들로 미래는 스스로 준비하는 자에게 좋은모습으로 다가옴을 다시금 깨닫게도된다. 존 불 다우는 2001년 미국의 수단난민 이민정책의 수혜자가되어 부의 상징이며 모든것이 가능할것같은 꿈의 땅 미국 뉴옥의 시러큐스에 입성하게 된다
14년동안 전쟁의 고통속에서 희망을 잃지않았던 존 불 다우 그는 미국이라는 꿈의 땅에서 자신만의 힘으로 자립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수단난민들에 대한 바른생각을 할수 있도록 알리는 역활을 하기에 이른다. 17년의 긴시간동안 내전의 분쟁속에서도 삶에 대한 희망을 놓치않았던 한사람의 이야기를 만나며 더불어 살아가는 지구촌의 모습에 감사하며 평화가 정착된지 얼마안된 수단의 아픔을 이제라도 알게 해준 이 책에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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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나라이며 땅의 면적은 서부 유럽의 크기와도 거의 맞먹는 약 251만 km²이다.
1956년 영국으로 부터 독립했으며, 1969년 가파르 모하메드 누메이리가 쿠데타를 일으켜 수단의 중앙 정부를 장악하면서 군사정권이 들어섰다. 1971년 5월 유엔 난민 기구와 세계교회협의회의 도움으로 남부, 북부 대표들이 비밀 평화 회담을 가졌으며 1972년 2월, 양측은 공화제의 범위에서 남부 수단에 완전한 자치권을 주기로 합의함으로써(이 합의는 당시 회담장소여던 에티오피아의 도시 이름을 따서 '아디스아바바 협정'으로 불림) 총선거후 새로운 헌법이 제정되면서 1973년 5월, 수단은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이와 함게 위도 10도선 아래 있는 모든 지역으로 규정된 남부 수단은 오랜 염원이던 자치권을 얻었다. 북부 수단은 이슬람교를 국교로 선포했으나 시민들이 기독교 예배를 행할 권리마저 빼앗지는 않았다. 아디스아바바 협정이 체결되면서 평화의 시기가 도래했고, 그로부터 11년간 평화가 지속되었다. 존 불 다우가 태어난 것은 1974년이었으므로 평화가 막 자리 잡기 시작한 시기였다.
1987년 수단 내전이 일어나면서 이 책의 저자인 존 불 다우(John Bul Dau)의 힘들고 고된 피난생활이 시작되었다. 고향마을 둑 빠유엘에서 가족들과 헤어지고 이웃아저씨와함께 에티오피아 피뉴두 난민캠프까지 1600km가 넘는 길을 걷는 동안 수없이 많은 죽음의 공포에 떨어야 했으며 죽음을 목격하기도하고 구타를 당하면서도 이를 악물고 묵묵히 이겨나가는 모습은 참으로 애달펐다.
92쪽- '그가 잠시 생각하더니 컵을 꺼내어 자신의 오줌을 받았다. 그러더니 그걸 내게 건넸다. 나는 컵을 받아 그의 오줌을 마셨다. 오줌에선 아주아주 쓴맛이 났고, 다 마신 뒤에도 갈증이 전혀 가시지 않았다. 아브라함이 내 옆으로 와 앉았다. 나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중략- 진흙과 오줌 말고는 물 한 방울도 마시지 못한지 나흘째 되던 날이다. 그날은 죽기에도 좋아 보이는 화창한 날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걷고 있는데 기적과도 같은 일이 일어나다. 신이 우리를 물가로 이끈 것이다.'
난민 캠프에서도 한곳에 오래 정착하지 못하고 옮겨야만 했었다. 147쪽- '상황은 점점 더 나빠졌다. 머리 위의 태양은 계속해서 우릴 구워대고 잇었다. 소년들은 오줌이라도 마시려고 손에 컵을 들고 이 사람 저 사람 옮겨 다니며 오줌을 눠 달라고 애걸했다. 그때까지 오줌을 눌 수 있던 몇 안 되는 아이들은 애걸복걸하는 소년들의 청을 들어주었다. 나역시 그들의 은혜를 구걸했다. 하지만 내게 은혜를 베풀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컵에 담은 오줌을 마시는 소년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난민캠프에서 또 다른 난민캠프로 가는길은 어린아이들에겐 너무나 험난한 길이었다. 굶주림과 목마름, 체력의 한계에 시달리면서도 딩카인으로서의 긍지를 잃어버리지않고 굳세게 이겨나가는 모습을 읽어내려가면서 치솟아 오르는 화를 억누를수 없었다. '이들이 왜 이런 고생을 해야만하는가.'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누가 이들을 끝까지 지켜줄것인가' 온갖 생각이 물밀듯이 밀려오면서 육이오 전쟁때의 처참했던 모습과 같으리라고 생각했다. 난민캠프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여 2001년 미국에서 시행한 수단 난민 이민 정책을 통해 140여명의 다른 잃어버린 아이들(수단내전으로 가족들과 헤어지거나 고아가 된 아이들)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생활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생활하면서 전쟁으로 헤어졌던 가족들과의 만남도 가졌으며 어머니와 여동생과 함께 미국에서 생활할 수 있게되었을 때는 내 일처럼 기뻤다. 어느정도 자리가 잡혀 같은 딩카인 을 부인으로 맞아들여 지금은 딸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있다.
존 불 다우는 미국에서의 생활에 만족하지않고 수단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기로 결심하고 '잃어버린 아이들'의 교육과 정착을 위한 재단 설립과 아울러 고향 마을에 꼭 필요한 종합 의료 클리닉 건립등 다양한 계획을 수립하기위해 한걸음 한걸음 실천에 옮기고 있다.
전쟁이 없었더라면 존 불 다우는 14년 동안 가족 하나 없이 피뉴두와 카쿠마 난민 캠프에서 지내지도 않았을것이고, 미국이라는 나라에 정착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숫한 마음의 상처도 입지 않았을 것이다.
존 불 다우는 이렇게 말한다. "돌이켜 보면 나는 이곳에서 정말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 그들의 따뜻한 보살핌은 내가 미국이란 낯선 나라에서 새로이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 뿐만 아니라 잃어버린 아이로서 겪었던 수많은 일들에 대한 정신적인 위로도 되었다. 내가 어린 시절부터 목격한 무자비한 학살과 만행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긍정적인 믿을을 잃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국경, 인종, 종교도 초월한 채 서로를 돕고 인정하는 것을 보며 인간이 가진 선한 마음에 대한 믿음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내가 첫 직장을 다니며 출퇴근에 도음을 받던 때를 생각해 봐도 그렇다. 나는 교회 친구인 짐 호켄베리에게 한밤중에 전화해 도움을 청했다. 이제 나는 그런 요청이 예의에 어긋나는 일임을 알고 있으며, 오래전에 내가 했던 행동들을 떠올리면 당황스러운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동시에, 질문 한마디 없이 자신의 잠을 줄이고 가족과 함께할 시간을 희생하며 나를 도우러 달려와 준 사람들을 향한 감사의 마음을 주체할 수 없다. -----(중략)--- 나는 뜻하지 않은 외부의 힘으로 인해 평화롭고 안락하던 삶의 터전을 잃었던 사람이다. 그런 경험을 해 본 이라면 누구든, 미래를 마음대로 꿈 꿀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신께 감사할 것이다. 내가 미국에서 살며 느낀 이 나라의 가장 큰 강점은 이곳에서는 사람들이 자신의 소신에 따라 미래를 가꿔 나갈 수 있는 자유를 가진 것이다. ---(중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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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21세기는 과연 평화와 번영을 이룬 세상일까? 지구의 한편에서는 잘빠진 렉서스 세단을 타고 달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편의 지구에서는 올리브 나무 한그루만 있어도 온 세상의 행복을 다 가진듯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렉서스와 올리브나무'라는 베스트셀러가 보여주는 21세기의 세계화의 한 단면이다. 신이 찾은 아이들은 이러한 21세기의 모습을 가장 명확히 보여준다. 존 불다우라는 열세살 수단 소년의 기적이라고 밖에는 할 수 없는 19년간의 여정에 몇번이나 눈시울이 붉어졌다.
주인공 존 불다우는 운명의 장난인지 렉서스가 자동차라는 사실을 알 기회도 없이 올리브 나무 한그루로 행복할 수 있는 수단에 태어나 온갖 역경을 헤치고 첨단 문명의 결정판인 뉴욕에 와서 성공을 이루었다. 존 불다우야 말로 지구의 극과 극을 오가며 현대문명에 찌든 삶과 인간 본연의 자연적인 삶의 경계를 오가는 경험을 한 사람이 된것이다.
존 불다우는 과연 신이 찾아낸 사람일까? 신이 선택하신 사람임엔 분명한 것 같다. 어쩌면 신과 인간 천국와 지옥은 모두 한 세계에 공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구 안에서 나 같은 사람이 생각하기에 수단은 지옥이고 뉴욕은 천국일 수 있다. 그러나 존불다우에게도 그랬을까? 그에게는 어쩌면 수단이 천국이고 뉴욕이 지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하는 책이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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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찾은 아이들. 오랜만에 재밌게 읽은 책이다. 평소 수단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고 있었다. 내전때문에 위험지역으로 인식된다는 점 말고는... 이 책 덕분에 수단과 그 외 아프리카 지역의 역사를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의 주인공 존의 여정... 책 읽으며 두 번 눈시울을 적셨다. 존이 열세 살 때 헤어진 이후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할 때까지 그 생사여부조차 몰랐던 부모님의 생존을 확인했을 때. 존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끝내 믿으려 하지 않는 어머니의 모습이 너무나 마음 아팠다. 이 책을 읽고나서 선댄스 영화제에서 상받았다는 그 다큐멘터리 필름도 다운받아 봤는데, 존의 어머니가 미국에 존을 만나러 왔을 때 아들을 다시 만난 기쁨을 전통춤으로 표현하는 모습이 귀엽고 웃음이 나면서도 한편으론 가슴 뭉클했다. 그리고 존이 마지막에 수단 고향 마을에 현대식 병원을 지으려고 돌아갔을 때...아버지와 다시 만나 회포를 푼 다음, 어린 시절 매달려 놀던 꾸엘나무에 앉아 동무들과 그네를 타던 장면을 회상하며 누구에게랄것도 없이 "밀어줘"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존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회한이 모두 묻어나는 것 같아 또 한 번 눈시울을 적셨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삶의 진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불행 속에서도 왜 꿋꿋이 살아야만 하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과 해답을 함께 주는 책이었다. 또한 최악의 상황에서조차 삶을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 주인공 존의 여정을 통해 인간이란 연약하지만 한편으론 정말 위대한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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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시 다큐멘터리나 다큐 스타일의 영화를 즐겨보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특히 읽기가 편했다. 선댄스 영화제에서 대상을 차지한 영화를 책으로 옮긴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 정말 술술 읽혀졌다. 존이 1600km의 긴 피난길을 걸으면서 너무 목이 말라 눈물이 나오지 않는 장면, 오줌이라도 받아 마시고 싶은데 오줌조차 나오지 않아 너무 고통스러워 하는 장면을 읽을 때는 그 묘사가 너무나도 생생해서 내가 그 전장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지난한 과정을 거친 후 존과 친구들이 미국으로 옮겨가서 정작하게 되었을 때는 정말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 책의 끝부분에서 미국을 좋게만 이야기한 것은 아닌가 해서 조금은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사람의 의지라는 것이 얼마나 강한지, 그리고 그 의지로 얼마나 큰 것들을 이뤄낼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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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힘든 세월을 지나 여기까지 오길 얼마나 많은 시간을 얼마나 많은 과정을 겪었는지 하는 주변 사람들을 만나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을 보는 많은 이들은 그런 이야기 조차 한낮 투정거리일 뿐일 것이다라고 느껴질 것이다. 아프리카, 6대주 중에 제일 힘든 역사를 겪은 땅 아닌가? 내전으로, 그리고 여러 강국의 힘에 의해서 처잠히 밟혀진 땅, 아직도 다국화된 세계속에서 경제적인 문제로 여러 나라들에게 계속 저울질 당하고 있는 그 땅. 지금의 우리 젊은세대들을 전쟁이란것을 직접 느끼질 못했지만 다른 나라의 종교적 전쟁, 정치적전쟁, 경제적 전쟁으로 간접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들이지만 그 현실은 항상 참혹 했다. 아프리카 대륙내 수단에서의 존 불 다우가 내전으로 당했던 인생 역경을 지금에 와서 우리가 개인적 입장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여느때의 사건뉴스에서 보는 느낌과 다른 하나의 개인 한사람 입장에서 느껴보게 하는 계기를 갖게 해 주는 책인다. 지금의 현실에서의 나를 보고 감사하는 새로운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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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살 딩카족 소년 존 불 다우.. 1987년 수단 내전으로 전쟁을 피해 힘들고 고된 여정이 시작되는데 고향 마을 둑 빠유엘에서 에티오피아 피뉴두 난민캠프까지 1600킬로미터가 넘는 길을 걷는 동안 배고픔과 공포, 시시각각 다가오는 생명에의 위협속에서도 자신이 딩카인이란 사실과 딩카 고유의 긍정적이고 강인한 삶의 자세를 잊지않고 하루하루를 신으로부터 받은 선물이라 여기며 꿋꿋이 이겨나간다. 2001년 미국에서 시행한 수단 난민 이민 정책을 통해 140여 명의 다른 '잃어버린 아이들'과 함께 뉴욕 주 시러큐스로 옮겨와서도 수단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기로 결심하고 '잃어버린 아이들'의 교육과 정착을 위한 재단 설립, 고향 마을의 종합 의료 클리닉 건립 등 다양한 계획을 실천해 나가고 있다.. 평화로운 어린 시절을 보내지 못하고, 내란속에서 삶의 위협을 느끼고 살았으면서 자기자신을 생각하기보다는 서로가 서로의 가족이 되어 살아가는 딩카인들의 삶에서 자기자신만을 챙기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삶을 한번쯤 생각해볼짐한 글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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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 수단을 휩쓴 내전으로 가족도 없고 정착할 곳도 없는 아이들을 "잃어버린 아이들"이라고 부른다. 1987년 둑 빠유엘에 폭격이 시작되었을 때 존 다우는 아브라함을 아버지로 착각하고 그 뒤를 따라 도망친다.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젤라바(아랍계 군인)를 피해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따라 죽을 것 같이 힘든 길을 걸어간다. "정녕 신은 우리들을 버린 것일까" 존은 끊임없이 자문하며 젤라바의 공격을 피하여 죽을 고비도 여러번 넘기고 남민캠프에 도착한다. 그 곳은 집이나 울타리는 물론 사람들이 정착해 사는 곳이라는 흔적을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지만 안전한 장소에 오게 되어 얼마나 안도했던가. 하지만 존에게 내려진 시련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이들에게 피난처 제공과 유엔의 식량 전달을 허락했던 에티오피아도 내전에 휘말렸던 것이다. 군인들을 피해 길로 강을 건너 도망치던 난민들 중 많은 이들이 죽음을 맞았다.
존 다우는 카쿠마에서 희망을 느낀다. 열여덟 살에 초등학교 1학년이 된 것이다. 공부하는 것이 힘들고 어려웠지만 전쟁의 포화속에서도 존은 행복하다. 난민 캠프에 있지만 딩카족의 전통대로 살아가려고 애쓰는 아이들, 그 속에서 존은 미국 입국의 꿈을 키운다. 가족과 친척들 중 그 누구의 생사도 알 수 없는 존에게 미국은 입국을 허가하고 미지의 나라 미국에서 새로운 인생을 맞이한다. 미국에서 보는 모든 것들이 어리둥절한 존, 그러나 그는 눈을 빛내며 모든 것에 적응하며 살기 위해 노력한다. 그가 이런 혜택을 받는 것은 분명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시러큐스에서 열심히 살아간다. 이젠 존에게 시련은 없는 것일까. 존의 이야기는 영화로 만들어져 남부 수단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세계에 알려지고 생존해 있는 가족들도 찾게 되어 이젠 더 이상의 고통과 아픔은 없는 것 같다. 매일 밤 아브라함과 도망치는 그날 꿈을 꾸지만 딩카 족들이 모여서 행복하게 살던 옛 기억은 늘 가슴속에 남아있다.
존이 가게 되는 미국은 이 책에서 꿈의 나라로 여겨진다. 모든 기회가 열려져 있는 곳, 노력하는만큼 살 수 있는 곳으로 보여져 읽는 동안 조금 불편하다. 기독교에 대한 종교이야기도 남부 수단이 그렇게 되고 종교에 의지하여 희망을 보는 그들이기에 뭐라 말할 순 없지만 존의 이야기가 영화화 되고 책 또한 미국의 울타리 안에서 그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아 조금 아쉽게 느껴진다. 살아가는 것조차 힘에 겨웠을 그들에게 희망을 주고 행복을 다시 찾아준 미국이니 존에게는 물론 난민 캠프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 곳은 낙원일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낳고 자란 곳을 잊지 못하고 낯선 곳에서 생활하는 그들의 모습은 아무리 좋은 곳에 살지만 늘 고향을 그리워하기에 가슴이 아프다. 그래도 존이 살아 생전 자신의 고향에서 아버지를 다시 만날 수 있게 되니 행복이 그리 멀리 있는 것은 아니리라.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도 그들은 행복했다. 이들이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 한사람이라도 더 알아준다면 남부 수단인들은 앞으로도 희망을 잃지 않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