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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중국의 시험지옥 | 미야자키 이치사다 지음 | 전혜선 옮김 | 역사비평사
시험의 부정행위는 어디에서부터 유래했을까. 그건 물어보나마나 옛날하고도 아주 먼 옛날 과거시험의 출발과 동시에 시작되었을 것이다. 오죽했으면 시험지옥이라는 말이 다 나왔을까. 여기서 시험지옥이 상징하는 것은 단순히 부정행위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당시 과거시험에 응시한 가족이 있는 집안에서는 거사를 치르듯 온 집안 식구들이 총동원되었으니 그 또한 지옥이었을 것이다. 그때는 집안일을 돌보던 하인들까지도 따라 나서서 응시생의 무사안일을 책임졌다. 하인들의 역할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이다. 또한 고을 사람 중에서 학식은 있되, 벼슬길에 오르지 않은 가난한 양반들도 그때만큼은 인기절정이었다. 그들이 왜 인기가 많았는지에 대해선 여기에 밝히지 않겠다. 이처럼 지체 높은 사대부 명문가 도련님의 과거시험은 평범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과거시험 응시자 전원이 집안에 하인을 두고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집에서 시험 장소까지 당연히 혼자 움직여야했다. 곰곰 생각해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인간들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준 것은 정신보다 물질인 것 같다. 경제력이 어느 정도 뒷받침 되어야 남들보다 한 발 앞서서 성공가도를 향해 달릴 수도 있고, 뛸 수도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물론 집안에 하인을 두지 못한 평민들의 경우엔 시험에 응시원서를 낸 당사자만이 시험장에 참가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불리했겠는가. 모든 면에서 말이다. 오래 전부터 읽어보고 싶었던 <과거, 중국의 시험지옥>이 역사비평사에서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구매 신청해서 읽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이 책에서 인상 깊게 읽었던 ‘향시 시험’ 중에서 긴 여운을 남긴 ‘시험관 부정사건’과 관련된 글을 몇 줄 발췌해서 올려본다. 오늘날 우리의 현실과 비교해서 읽어보면 정신이 오싹해 질 것이다. 그러면서 머릿속에 대형 물음표가 뜨게 될 것이다. 만약 우리 주변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광경을 목격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이 같은 배임죄에 대한 판결은 지극히 엄중했다. 정고관인 백준은 사형, 동고관 포안도 사형, 부정 사형, 부정 합격한 나홍역과 그를 위해 움직인 지인관리 역시 사형, 그리고 동고관 정정계의 아들도 사형을 선고받았다. (중략) 사형된 사람 가운데 정고관 백준은 1품 대관, 지금으로 따지면 국무총리급의 거물이었기 때문에 이 사건은 전국에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 뒤 과거 관계자들이 숙연하게 몸가짐을 바로 함으로써 한동안 시험을 두러싼 폐해가 종적을 감추었다고 한다. 이렇게까지 하지 않고서는 시험장의 기강을 바로잡을 수 없다는 사실은 대단히 슬픈 일이다. (122~123)” -2016.7.28. Ⓒ 심은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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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는 관리 등용을 선거라고 일컫는데, 시험에는 여러 종류의 과목이 있었으므로 ‘ 목에 따른 선거’ 그것을 줄여 부르는 ‘과거’라는 단어가 당 대에 성립했다. 그다가 송 대에 이르러 과목이 진사 하나로 좁혀졌으나 여전히 과거라는 단어를 사용했으며 이렇게 과거로 통칭하는 풍조가 청조 말년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이렇듯 과거라는 제도는 원래 천자가 귀족과 싸우기 위한 무기로서 고안되었지만, 그러한 임무는 대략 다음 시대인 당 대 300여 년 동안 거의 완수되었다.
과거는 천자가 모처럼 널리 일반 백성에게 문호를 열고 인재를 구하는 일이기 때문에 이에 응하여 마음껏 재능을 펼쳐보는 것은 남자 일생일대의 거사라고 할 만하다. 이는 곧 편한 일자리를 얻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기도 하였다. 당시 중국에서는 관리가 되는 것이 부와 명예를 다 갖는 직장이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고 그 때문에 넓었던 문호도 점차 줄어든 것이라고 한다. 경쟁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과거에 대한 이미지가 퇴색해 갔다. 경쟁이 심해질수록 승부의 판가름에는 단순한 개인의 능력보다 개인을 둘러싼 환경이 더 크게 작용한 것이다. 이러한 관습은 중국이나 한국이나, 예나 지금이나 할 것 없이 큰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일한 수준을 보이는 경쟁자라면 가난한 자보다는 부자가 유리했고, 무학력의 부모보다는 지식계급의 집안에서 태어난 쪽이 유리했고, 변두리 시골보다는 대도시에서 자란 쪽이 유리했다고 한다. 그 결과 문화가 지역적으로 점점 편중되고 부의 분배 역시 점차 불공평해졌다고 한다. 중국은 예나 지금이나 땅도 넓고 인구도 많은 나라다. 그 가운데 가장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고 재능도 풍부한 사람들이 모여서 필사적으로 경쟁을 펼치니 과거는 갈수록 어려운 시험이 되었다. 시험지옥이 생겨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일 정도였다고 한다. 이렇게 과거시험을 치르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경쟁은 아기가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된는 말이 있을 정도로 치열했으며 시험 볼 때 부정행위도 엄청 심했다고 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왜 사람들은 시험에 대한 강박감과 압박감에서 쉽게 해방되지 못 하는 것일까. 자신이 아는 만큼 답하고 결과를 기다리면 좋을 텐데, 그렇지가 않으니 부정행위를 해서라도 원하는 결과를 얻으려는 사람들 때문에 과거에 합격을 해도 실력을 온전히 믿기는 어려웠던 것이 아닐까. 어떤 일에서나 규율을 지키고 정도에서 벗어나지 않은 것처럼 중요한 것은 없을 것이라는 걸 이 책을 통해서 배웠다. 순수 국가의 인재를 뽑아서 천자의 일을 보조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서 실시했던 과거시험이 결국은 부와 명예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을 하였고 그것은 다시 원래의 취지를 백팔십도 바꿔 놓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던 것이다.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욕심이 늘상 일을 그르친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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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지옥이라는 곳을 살아간다고 말하고 있다. 동양권에서는 공부하는 관점이 다른듯 하다.서양과 다른 관점으로 보다보니 좀 더 어려운 시험으로 우리를 수련하는 기분이라고 할까 ...그런 관점의 차이를 인지하고 언제나 옳고 틀림을 이야기하기 보다는 관점을 정확히 알고 다르게 인식하는 것이 다른 듯 하다. 역사에서 기존과 다른 것을 시작하는 것을 우리는 잘 알지 못할수 도 있다 하지만 과거제가 처음 만들어질 당시 그것은 세계에서 찾아볼수 없는 유래라는 것이고 진보된 이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역사속에서 과거제는 그냥 어렵고 그들만이 시험보는 과정들이 제한된 내용이라는 것이기에 좀 더 객관적으로 설명되는 책들을 통해 과거제라는 것을 궁금하기 때문에 이책을 통해서 과거제를 순서대로 객관적으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과거제가 시작된 6-7세기 무렵부터 수백년간은 관리가 되는 방법오에 재물을 늘수 있는 방법도 있고 명예도 챙기고... 그렇기 때문에 경쟁적으로 과거를 보기 위해 몰려들고 그 때문에 넓었던 문호가 좁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개인의 능력을 넘어서 승부는 개인이 둘려쌓인 능력외에 환경이라는 것이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객관적이고 공평했던 일들이 점점 불공평해지는 일들이 생긴다.
그러니 중국에서도 이러한 일들이 생기는 것도 시험 지옥이다. 현재와 다른 입시 지옥이라고 할수 있는 그 과정들을 세세히 말하고 있다. 서론에서 대략적인 지옥을 시험공부를 필두로 시작해서 현시 그리고 부시 원시 ,세시등등 과거 시험에 대한 자세한 시험 과정들을 세세히 나열을 하면서 그 과정들을 이야기 하듯이 풀어가고 있으면서 그 중간 재미나는 이야기들을 일다보면 과거제가 이리 숨은 이야기가 많은 줄 몰랐다.
시험 날짜 잡는 연우부터 밤을 새면서 적은 답안지그리고 복잡다단한 채점 방식들이 어찌보면 객관적으로 출중한 인재들을 찾아내기 위한 기준들이 아닌지...그리서 과거시를 통해 단계적 발전적인 단계가 어찌보면 힘든 과정들을 수련을 통해 성장하는 단계라고 할수 있는 듯 하다.
그래서 과거보다 수준이 높은 시험 제도를 통해 단계적으로 높은 시험을 통해 통과를 해야 하고 그것으로 수준은 높아간다. 어찌보면 특별한 재능이 잏는 사람들이 떨어지긴도 한다고 하는 약점을 지니기도 했기에 그것을 보완하는 시험또한 있었다, 목적에 따라서 이름이 붙는 시험들이 있다. 이것처럼 떨어지는 자는 과거에도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좁은 문을 통과하는 그러한 것이 쉽지는 않다. 이러한 과거제의 단점과 장점을 객관적으로 쉽게 설명하기란 쉽지 않지만 역사속에서 알지 못했던 이면들을 이책을 통해 조금은 알수 있는 과정을 볼수 있다. 청나라까지 1300년동안 이어진 관리 등용시험을 통해 개인의 능력을 선발하여 귀족사회를 무너뜨린 제도를 이야기 하는 것으로 진보된 내용을 조금을 알수 있고 접근할수 있었다.
좁은 문의 통과 과정을 보고 느낄수 있는 그리고 현대의 시험과도 후기에 조금은 객관적으로 접근하는 것도 약간의 도움으로 시험에 대한 위로를 받을 수 있다.
심사 부터 선발되는 성적 발표... 결코 현재에서도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긴 하지만 견디고 과거에도 그러했음을 인식했으니 힘내어서 공부해 볼 만하다. 그대보다 좀 더 확률적으로 통과할 영역들이 더 많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정보가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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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담없는 쪽지 시험이든 인생이 걸린 시험이든, 시험은 우리를 긴장하게 한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서 생각해보아도 당대의 사람들에게 부담감을 주는 것이 시험이었을 것이다. 옛날의 시험은 어땠는지, 그 시대의 사람들은 어떻게 시험을 치렀는지 생각에 잠기다보면 궁금한 생각이 가득해진다. 막연하게 상상만 하다가 관둔 것이지만, 중국의 과거제도에 관해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되었음을 알고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의 과거 시험을 살펴보는 것은 중국역사의 한 단면을 보는 방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과거, 중국의 시험지옥》을 보며 시대적 특징을 훑어보는 시간을 보낸다.
이 책의 지은이는 미야자키 이치사다. 1901년 일본 나가노 현에서 태어나 1995년 타계했다. 일본의 동양사학자로, 중국의 사회,경제,제도사에 탁월한 연구 업적을 남겼다. 평생 교토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후학을 양성하고 연구와 집필을 계속했다. 특히 정년퇴직 뒤 많은 독자가 중국사에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문장에 심혈을 기울인 대중 역사서를 펴냈다. 이 책은 중국과거제에 대해 최대한 객관적으로 세상에 소개하려는 목적으로 집필한 것이다. 사실이야말로 그 무엇보다도 설득력이 있다는 생각에 될 수 있는 대로 냉정하게, 가급적 공정한 입장에서 과거제도와 그 실상을 묘사하려 노력했다고 한다.
1300년에 걸쳐 이어진 과거제도, 중국의 시험제도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고 그와 관련된 자료도 풍부하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특히 세계적으로 볼 때 시험제도의 창설과 유지를 위한 노력은 중국에서 먼저 시도되었다고 하니, 과거 제도의 장점을 파악하고 공부를 해두는 것은 과거의 역사를 공부하고 보다 나은 미래로 향해가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일이다.
저자는 일본의 시험지옥 해소에 뭔가 기여를 한다거나 묘안을 내놓으려는 등의 목적을 갖지 않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사실을 전달해주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오히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입시제도의 모습을 떠올리기도 하고, 과거제도에서 이런 점은 효과적이었다는 것을 인식하기도 할 것이다. 아무래도 현재의 모습과 비교하며 분석이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지금보다 혹은 지금처럼 피를 말리는 고통이 있었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중국의 시험지옥인 과거제도를 상세하게 살펴보는 시간을 보냈다. 이 책을 통해 옛 중국인들의 시험 공부, 수험장의 분위기, 시험의 종류, 시험 과정 등을 살펴본다. 선입견을 깨고 생각보다 흥미로운 점을 많이 발견했다.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 책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점이다. 옛 사람들도 소책자에 빼곡히 적어서 컨닝페이퍼를 만들어 부정행위에 사용했는데, 사람 사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쉽게 휴대할 수 있도록 아주 작게 만들어졌다는 점이 인상적이고, 심지어 속옷에도 사서오경을 빽빽이 적어 입장하기도 했다고 하니, 문득 지금의 컨닝페이퍼 아이디어가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역사는 생성과 소멸로 흘러가는 것인가. 과거제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에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진보된 이념을 갖고 있었다는데,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장점만을 갖고 지속될 수는 없나보다. 하지만 과거의 뛰어난 점을 되살려 고찰해보면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의미를 되살릴 수 있을 것이다.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는 데에 버거움을 느낀다면 그저 옛날 중국의 과거제도에 대한 궁금증을 푸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책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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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중국의 시험지옥>
제목만 봤을 때 처음에는 참 지루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과 함께
과거에 대해서 책 한 권을 쓸만한 이야기가 있나라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내가 알고 있는 과거가 다가 아닌가보다하면서 뭔가 깊이 있는 이야기를
알고 싶었기에 자연스레 손이 가게 되었던 책.
참 신기했다.
아무튼 일본 작가들도 참 대단하다 싶었다.
이 책은 말 그대로 과거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과거가 이루어졌는지를 다루고 있다.
내가 단순히 알고 있는 과거에 대한 것을 춘향전 같은 영화 속에서 궁궐 앞에 꿇어앉아 선비들이
먹을 갈아 글씨를 써 내고 나가면, 뒤에 일등한 사람은 장원급제라고 하여 큰 잔치를 치루었다는
정도인데, 이 책을 보니 과거가 그리 단순한 것은 아니었다는...
일단 과거는 지나치게 귀족주의로 흘러가서 귀족들의 오만 방자한 태도를 보지 못한 천자가
자신의 힘을 강화하고 귀족들의 권리를 뺏기 위해 만든 제도라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시험을 통해 인재를 뽑아서 천자의 임명과 파견으로 관리하면, 귀족의 힘이
약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목적으로 시작한 과거는, 겉으로 보기엔 누구에게나 기회를 열어준 평등사상의 기초가
되는 제도이긴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부정부패도 있었고
또한 과거를 준비하는데 우리돈으로 3억 정도가 들었다고 하니 쉽사리 아무나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또한 차례에 나와 있지만 과거는 우리가 아는 것처럼 시험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학교시라는 현시, 부시, 원시, 세시를 거쳐서 과거시라는 과시, 향시, 거인복시, 회시, 회시복시,
전시, 조고까지 엄청난 단계를 거쳐야 하는 시험이었기 때문에
여기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기 위해선 정말 대단한 암기력과 노력이 필요한 시험이었다.
그래서 제목 역시 '시험지옥'이라고 붙일 수 밖에 없었을 듯...
했는데 중간중간 옛날 이야기와 비슷한 이야기들이 등장하면서 나름 읽는 재미를 주었던 책이라
그리 지루하게만 읽지는 않았던 것 같다.
특히나 과거에 합격하려면 평상시 덕을 쌓고 나쁜 일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사람들의 믿음이
반영된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참 재미도 있었고, 그 당시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었다.
또한 이런 사진들로 과거의 여러가지 모습들을 보여주는데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커닝페이퍼의 모습도 재미있었고..
심지어는 속옷이나 버선에도 빽빽하게 적어갔다는...
저렇게 칸막이로 된 작은 공간에 판자 같은 걸 3개 꽂아서 의자, 책상, 짐 올려 놓는 곳으로
사용하면서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안에서 밥을 해 먹어가며, 밤을 새워가며 시험을 쳤다
하니 정말 시험치는 날도 힘들었겠다 싶었다.
과거 날의 풍경을 상상만 해도 정말 대단했겠다 싶었다. 중국의 인구수를 생각해보면
실로 장관(?)일 수 밖에 없겠다라는 생각이...
어쨌거나 저렇게 힘들어 친 시험에 장원급제를 하더라도 완전히 출세해서 잘 먹고 잘 살기는
그리 쉽지 않았다 하니, 당시 사람들의 생활이 얼마나 고단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여전히 시험지옥에 살고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이 과거제 이야기를 들려주면 조금은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
유럽보다 시작은 아주 선진적이었다는 과거제도. 하지만 낡을 대로 낡은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결국은 서양보다 뒤처지게 된 역사 이야기를 읽으면서
끊임없이 변화, 발전하는 모습 역시 중요하겠구나 싶었다.
별 생각없이 읽었다가 많은 걸 생각하게 해 준 요 책.
시간이 되면 다시 한 번 더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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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후기] "과거 ; 중국의 시험지옥" - 중국 수나라 때부터 시작되어 청나라까지 이어진 관리 등용 시험 -
지은이 : 미야자키 이치시다 옮긴이 : 전혜선 펴낸곳 : (주)역사비평사 발행일 : 2016년 7월 7일 초판1쇄 도서가 : 14,800원
올해는 9월부터 2017년도 대학입학 수시전형이 시작된다고 합니다. 저 역시 고3 수험생 자녀들을 두어서 남의 일만은 아닌데요. 하지만 제 학창시절 때처럼 학력고사와는 전혀 다른 입학전형 방식인데다가 어찌나 다양한 방법들이 있는지 설명을 들어도 쉽게 이해가 되질 않더군요.. 뭐 세간에는 "조부모의 경제력과 엄마의 정보력, 그리고 아빠의 무관심"이 입시 성공의 조건이란 우스개도 있다는데 위안을 삼아봅니다.ㅋㅋ 이러한 입시 지옥의 상황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제 생각엔 "과거제도"가 그 시초가 아닐까 싶었죠. '과거제도'는 중국에서 시작되었고 고려 광종때 우리나라에 도입되었다고 역사시간에 배웠긴 했지만 자세한 내용은 몰랐었습니다. 그러한 "과거"에 대해 사료와 연구를 통해 분석 해설한 책자가 일본에서는 오래전인 1945년도에 출간, 1963년에 증보 간행되었는데 이번에 우리나라에도 번역 출간되었답니다. 그 도서의 제목은 <과거 ; 중국의 시험지옥>입니다.
[ 조선시대 과거제 재현 행사(경희궁) ]
저자는 1901년 출생하여 1995년 타계한 일본의 동양사학자입니다. 이 분 역시 일본의 입시 지옥 현장을 목도하고 언제부터 "입시지옥"이란 단어가 쓰여졌는지 궁금했다고 하는데요. 그 자신은 입시지옥이란 단어를 뼈저리게 느낀 세대는 아니었지만 궁금해 알아보니 전후 대학입학이 어려워지자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고등학교,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중학교, 중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소학교, 소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유치원까지 연속해서 경쟁이 벌어지게 되면서 입시지옥이란게 생겼더랍니다. 일본은 패전이후 때 벌써 입시지옥이 시작되었었군요.. 아무튼 이 분의 저작물을 살펴 보면 주로 중국사가 많은 편인 것 같습니다..
책은 <머리말>, <과거제 흐름도>, <서론>, <시험공부>, <현시 ~ 제과>, <맺음말>, <후기>, <과거연표>, <해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내용들이 한편의 학구적 논문을 보는 것 같더군요. 중국의 과거에 대해 세세한 것까지 파고 들어 분석 연구하였고 그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일본인 특유의 집요함이 느껴질 정도로요..
중국의 과거제도는 수나라 때인 587년에 처음 성립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당시 지방의 유력 귀족들이 주(州)를 단위로 지방정부를 형성했었기에 아무리 제왕의 권력이더라도 그들을 통치하기가 어려웠다는데 있답니다. 그러한 지방토착세력들을 약화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수나라의 문제는 지방관아의 고급관리는 모두 중앙정부에서 임명하여 파견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고쳤다는데요. 그러다 보니 중앙정부에서는 항상 관리를 파견할 수 있는 관리 유자격자들을 보유할 필요가 생겼고 그를 충당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 "과거제"랍니다. 이 제도는 당시로선 혁신적인 제도개혁이었다는군요. 당시까지는 신분세습이 당연시되는 봉건사회였기에 과거제를 통해 신분 상승을 할 수 있다는 자체가 그렇다는 것이죠. 물론 노비와 같은 하층계급은 대상이 아니었고 일반 양민이 과거를 통해 중앙관료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갈수록 점점 과거제를 통한 입신양명의 문호는 좁아지고 경쟁은 더욱 심해지게 되면서 합격의 판가름에는 개인의 능력보다는 개인을 둘러싼 환경이 더 크게 작용하게 되었답니다. 같은 능력을 가졌더라도 부자집안 또는 지식계급 집안의 자녀가, 변두리보다는 문화적으로 앞선 대도시에서 자란 자녀가 훨씬 유리하더라는 얘기죠. 지금의 우리나라 교육현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얘깁니다...
책의 핵심 내용은 책 앞부분에 나오는 한장의 도표로 <과거제 흐름도>가 그것입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이 도표를 다시 찾아 보니 그 흐름이 한 눈에 팍 들어오네요. 핵심사항을 이렇게나 일목요연하게 도표로 요약한 걸 보면 저자분도 수험에 대한 내공이 보통은 아닌신 듯 보입니다.ㅎㅎ
"과거"는 아래 도표에서 알 수 있듯이 크게 <학교시(學校試) 또는 동시(童試)>와 <과거시(科擧試)>로 구분됩니다.
"학교시"는 원래 "과거"에 들어가지 않는 시험이지만 명나라때부터 과거에 앞서 치르는 예비시험과 같은 성격으로 추가된 것이라 합니다. 이 시험은 국립학교에 입학하기 위한 시험으로서 여기에는 현에서 치뤄지는 "현시(縣試)", 부에서 치러진 "부시(府試)", 본시험이라 할 수 있는 "원시(院試)"의 3단계 시험을 거쳐 "원시"에 합격하면 <생원(生員)>이라는 관리에 준하는 학생 신분을 취득하게 됩니다. 그리고 생원을 대상으로 치루는 학력시험 성격의 "세시(歲試)"라는 시험이 있었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학교시>가 바로 지금의 "대학입시"와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과거시"는 바로 관리 등용을 위해 학교에서 양성한 인재중 선발하기 위한 시험을 말한답니다. 송나라 이후 "과거"는 3단계 형식이었다는데요. 지방에서 "향시(鄕試)"를 치르고 향시를 통과한 자들을 모아 중앙정부에서 "회시(會試) "를 실시한 다음 천자가 직접 주관하는 "전시(殿試)"에서 최종적으로 합격자를 결정했답니다. 하지만 후대로 오면서 이 3단계 본시험에 딸린 소시험이 계속 추가되면서 청나라때에는 7단계나 되었다네요. 아무튼 "향시"에 합격하면 "거인(擧人)"을, "회시"에 합격하면 "공사(貢士)"을, "전시"에서 합격하면 "진사(進士)라는 학위를 수여받는다 합니다. 이 <과거시>는 지금으로 말하자면 "국가고시"와 같은 것이겠지요.~
중국은 인구 대국답게 과거의 규모도 TV 사극에서 보던 우리나라의 과거와는 비교가 안되는 규모인 것 같습니다. 책에는 각 단계별 시험장소에 대한 내용 설명과 함께 사진이 수록되어 있는데요. 시험장이 무슨 거대 농장 인삼밭 같아 보입니다.. 이러한 "과거시" 수험장을 "공원(貢院)"이라고 하는데요. 각 성의 성도에 상설 건물이 있는데 그 "공원"안에는 딱 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독방이 벌집처럼 수만개가 모여 있답니다. 위에 나오는 우리나라 과거제 시험장의 모습과는 완전 딴판이죠.. 게다가 공원에 한번 들어가면 시험이 끝나는 날까지 아무도 출입을 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시험장에서 밥을 지어먹어가며 답안지 작성을 했다네요. 더욱 놀라운 것은 시험중에 급사하는 거자(수험생)이 발생하면 시체를 거적에 말아 담장밖으로 내던졌다고 합니다. 그외에도 많은 내용들이 나오지만 이정도만 쓰겠습니다..
최근 국가고시를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하고 검사장에까지 오른 진모 검사장이 부패혐의로 한창 뉴스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까도 까도 끝없이 나오는 부패의 실상이 참 놀라울 뿐인데요. 사법고시와 행정고시를 합격하고 연수원도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한데다가 공직자 해외연수중 하버드대 로스쿨 수료와 뉴욕주 변호사 자격증까지 취득, 더구나 검사중에서도 가장 우수한 평가를 받는 자만이 갈 수 있다는 주요 보직들을 두루 거친 사람이라던데... 참 개탄스러울 뿐입니다. 책에도 이러한 사례가 발생하는 연유를 설명하고 있는데요. 과거를 위한 수험의 기본은 "암기"라는 것입니다. 어려서는 "천자문"에서부터 "사서오경", 수많은 역사서와 문학집, 경전들을 기본적으로 숙지하고 있어야 하고 그것을 교본삼아 시나 문장을 잘 지어야 과거에 합격할 수 있다는거죠. 그러다보니 인성의 함양보다는 지식과 수험의 요령만을 터득한 자가 합격하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였고, 인물됨됨이나 품행은 개차반이더라도 시험만 잘보면 관료가 될 수 있었다는게죠. 그들중 일부가 자신은 수백수천만명 중에서 선발된 엘리트라는 의식과 함께 자기가 가진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 사익을 추구하는 부패관리들이 점염병처럼 점차 퍼져나갔다는 것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관리들은 그러하지 않았겠지만요...
이래저래 "과거"라는 책을 읽고나니 여러가지 주변 상황들이 대입되어 생각하게 되네요.^^ 이 책은 읽어 보면 "과거"에 대해서는 더이상 검색해 볼 필요가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참 자세히 수록되어 있습니다. 아.. 생각해 보니 이 책은 중국의 과거제를 일본의 학자가 조사,연구,분석,해설한 내용이기에 우리나라 고려,조선시기의 과거제도와는 조금 다를 수도 있을 것 같네요.. 하지만 '과거'란 제도의 기원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거나 궁금하신 분은 이 책 읽어보심 만족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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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최대의 기쁨이 네 가지 있다고 한다 久투逢甘雨 他?遇故知 洞房華渴夜 金榜掛名時 오랜 가뭄 뒤에 내리는 단비 먼 이국에서 옛 친구를 만났을때 신방에서 화촉을 밝힐 때 진사로 보기 좋게 급제했을 때 지금으로 부터 1400 여년전인 수나라 대에서 처음으로 과거를 실시한 목적은, 이를 통해 전대의 세습적인 귀족정치에 타격을 입히고 천자의 독재권력을 확립하는 데 있었다. 수나라가 창립2대 만에 망하고, 당나라가 성립했고 당태종(이면서 거의 당의 시조 황제인) 이세민이 고구려 안시성에서 발리고 돌아갔으니 그 때 보다 대략 50년 정도 전이 과거가 시작한 때이다. (수문제 이전에는 지방의 귀족들의 자녀들은 자동으로 중앙에서 관리가됨 ) 이후 중국왕조의 권력이 강화되면서 과거제도는 정교화되고 수직적으로 다층적 위계가 생겼다. 가장 지방에서 치러지는 향시, 그리고, 중앙정부의 감독하에 성 단위에서 실시한 거시로 크게 나눌 수 있다. 학교시도 어려웠지만, 3년에 한 번씩 각 성의 성도에서 일제히 실시하는 향시부터가 본격적인 과거시를 의미한다. 향시는 지방에서 성도로 올라와서 수험장에 들어간 뒤 2박3일 동안 잠을 자며 치른다. 시험을 치르고 잠자는 곳은 벌판에 독서실보다 작은 공간으로 출입문도 달려있지 않아, 8월이었음에도 밤이면 사무치게 추웠다고 한다. 과거제는 수, 당시대에는 단순하였으나, 점차 인쇄술이 보급되면서 학생들의 수준이 올라감에 따라 많은 시험을 보는 제도로 복잡해졌다. 아래는 ‘청’나라 시대에 고도화된 과거제 흐름도이다.
과거시험의 주된 내용은 중국 유학의 고전인 4서와 5경이다. 사서는 ::논어::, ::맹자::, ::중용::, ::대학::이고, 오경은 ::시경, 서경, 주역, 예기, 춘추::이다. 하지만, ‘중용’과 ‘대학’은 ‘예기’의 두 편을 독립시켜서 별책으로 만들어서 뺀다면, 1. 논어 : 11,705자 2. 맹자 : 34,685자 3. 주역(역경) : 24,107자 4. 서경 : 25,700자 5. 시경 : 39,234자 6. 예기 : 99,010자 7. 좌전 : 196,845자 --- 합계 : 431,286자 보통 가장 기본적인 이 경전들의 본문은 암송을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하루에 200자 씩 외운다면 약 6년이 걸리는 수준이다. 일단 암송이 완료되면, 이제 그 몇 배에 해당하는 주석을 읽고, 본문의 일부가 시험에 나왔을 때를 대비하여 해답작성법을 배운다. 그 외에도 경전, 역사서, 문학서들이 있는데 문학서는 단순히 읽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토대로 스스로 시나 문장을 만들수 있어야 한다. 이 때문에 진지하게 이런 공부를 하고자 한다면 머리가 웬만큼 좋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다면 도중에 질려버릴 것이다. 일단 한 차례 읽기를 배운 학생은 선생님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자리 로 돌아와 방금 배운 내용을 복습한다. 책을 보면서 소리 내어 읽기를 30번, 그런 다음 책을 덮고 암송하기를 30번,이렇게 다 합쳐 100번을 읽고 나면 어지간히 머리가 나쁜 학생이 아닌 다음에야 암송해버린다. 처음에는 하루에 20~30자밖에 외우지 못하지만 점점 익숙해지면 100자 200자까지 외울 수 있다. 그러면, 중국의 수험생들은 언제부터 공부를 시작하게 될까? 어머니들은 아이를 임신하게 되면 아이가 잘되기를 바라며 공부를 위한 태교를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다만, 그것은 사내아이를 낳았을 때만 의미가 있는 것으로, 딸아이를 낳는 경우 집안에서 무시받으며 쓸모없는 취급을 당했다. (아시아는 남녀차별에 대한 기원이 오래되었다.) 과거제는 누구나 응시할 수 있는 개방적인 제도였다. (물론 남자에게 한해서) 다만. 실제로 과거에 응시 하는 남자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만인이 평등하게 과거에 응시할 권리를 행사할 수 있었다고는 말할 수 없는데 거기에는 경제적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국가가 주관하는 개별 시험에 대해 따로 수험료를 받지 않았지만, 학당에서의 수업료, 거시를 보기위해 왕복한 왕복여비, 숙박비 외에 시험관 에게 줄 사례비, 담당관리에게 줄 축의금이 필요했으며 연회를 여는 데 필요한 연회비나 교제비등을 다 합할 경우, 이 때 발생하는 총 비용은 현재 수준으로 환산시 약 3억원에 해당된다고 한다. “원래 세상은 처음부터 불공평하므로 괜히 중국의 ‘과거’ 탓만해서는 안된다. 교육의 기회균등원칙이 인정되고 있는 현재에도 세계 각국에서 국민 개개인이 똑같이 평등하게 교육을 받을수 있는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 보면 과거가 만민에게 문호를 개방했다는 말에는 과장이 들어가 있다. 다만, 과거가 가진 훌륭한 장점은 시험이 매우 공평하게 치러졌다는 점이다. 원래 시험이라는 것은 그 효과에 일정한 한계가 있는 듯하다. 중국이 신교육제도를 받아들이는데 과거제도는 오히려 방해가 되었기 때문에 청조는 1904년 5월 과거제도를 폐지하게 된다. <재밌는 이야기> 앞서서 말했듯이, 향시를 볼때 2박3일동안 수험생은 수험장에 갇힌 채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총 동원해서 답안지를 작성한다. 그러다가, 정신을 너무 몰입하면 미친 사람이 되기도 하고, 헛 것을 보기도 한다. 헛 것을 보는가 안보는 가 여부는 평소에 그 선비가 얼마나 자기 자신을 절제하고 도덕적 소양을 지켰는지에 달려있다고도 한다. 아래의 이야기는 전해져내려오는 이야기지만, 당시 향시를 보는 자세와 관리가 되려는 사람의 자세에 대한 기대를 엿볼 수 있다. 황월이라는 선비가 향시를 치르기 위해 수험장에 들어왔을 때 황월은 아리따운 전통 복식을 입은 여인이 수험장을 어슬렁거리는 것을 보았다. 머리가 산발하여 있는 것 외에는 아름다운 여인이 었다 . 그 여인은 황월을 보자, 대신이라고 불렀다. 귀신은 때로 미래를 볼 수 있기 때문에, 귀신이 ‘대신’이라고 불러준다면 그는 시험에 합격함은 물론이요, 대신까지 이를 수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여인은 어떤 이의 이름을 대며 그 사람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내 고향 친구다. 확실히 이 안에 있기는 한데, 무슨 볼 일인가?” "수치스러운 이야기이긴 하나 들어보시면 연유를 아실 겁니다 부디 들어주십시오. 저는 어느 사람의 땅을 빌려서 먹고사는 소작인의 딸이였습니다. 그는 어쩌다 우연히 저를 보고 반하여 어떻게든 후처로 삼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아예 상대를 하지 않았습니다만 너무 나도 열성적으로 제의를 하는지라 무심코 정에 이끌려 교제를 시작했고 어느새 아이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그의 태도가 돌변하여 저를 모른 체하더니 결국 그토록 굳게 약속한 것을 헌신짝처럼 저버리고 다른 곳에서 후처를 들여버렸습니다. 제 아비도 저를 걱정한 나머지 여러 차례 담판을 지으러 갔지만, 그는 전혀 상대해주지 않았습니다. 도리 어 저를 질책 하기까지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제가 직접 갔습니다 하지만 문지기가 들여보내주지 않았습니다. 몸을 의지할 데가 없어 진 저는 끝내 목을 매 자살했습니다. 그 짐승 같은 놈이 진짜 증오스럽습니다. 저는 이제부터 그를 죽이러 갈 작정입니다. 제발 상관 하시지 말고 모른 척해주십시오." "정말 사연을 듣자 하니 층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오. 이야기만 들은 나조차 화가 치미는 구려. 하지만 무엇을 감추겠소. 그는 나의 친구라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부디 그를 봐줄수는 없겠소? 그대가 말하는 것은 내가 그를 대신하여 뭐든 약속해주겠소. 우선 그대를 그의 본부인 으로 삼도록 해 보겠소. 정식 결혼을 한 것으로 해서 결혼 사례금은 그대의 아버지 쪽으로 넉넉히 보내도록 하겠소. 그리고 지금의 후처가 만약 아들을 낳으면 그를 그대의 아들로 삼읍시다. 만일 내 친구, 또는 그의 아들이 출세한다면 그대는작위를 받을 수도 있소생각이 바뀌어서 이제부터 지켜본 뒤 내 체면도세워줄수는없겠소?’ 황월이 필사적으로 설득하자 여인은 잠시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말했다. "이것도 전생 으로부터 비롯된 인연 이겠지요 그러면 대신 님께 맡기겠습니다.” 여인이 받아들이자 황월은 근처에 있던 그 아무개를 불러왔다. 아무개는 여인을보고 낯빛이 변해서 황월의 무릎 아래로 쭈그리고 앉아 머리를 감추려 했다. 황월이 아무개를 힐문하자 그저 용서해달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황월이 여인과 약속한 조건을 설명해주자 아무개는 이빨을 달그락달그락 맞 부딪치면서 그렇게 하겠노라고 답했다. 여인이 드디어 화를 풀고 말했다. "이것으로 층분합니다. 대신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일이 어디까지 커 졌을지 모릅니다. 덕분에 저도 성불할 수 있게 됐습니다." 여인은 이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이후 황월도 아무개도 그 시험에서 보란 듯이 합격했고, 그 다음 시험도 모두 통과하여 나란히 함께 진사, 또 대관이 되었다. 그리하여 망령이 되었던 여인도 작위를 받는 영광을 누렸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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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관료제가 훌륭한 성과를 거두어 갈 때즈음, 역시나 그 관료제의 과거시험을 악용하는 이들이 있었으니 그들도 결국 당시 사회 시스템에 한 몫을 차지한 이들이라 할 수 있겠다. 어느때나 별볼일 없는 소위 흙수저들에게 기댈 수 있는 등용문 역할을 훌륭하게 감당하였던 과거가 어떻게 악용되어 갔는지, 그리고 사람들은 이 관거제를 어떻게 받아들였고 어떻게 준비하였는지를 심도깊게 다루었던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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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건 '어? 이거 중국의 과거시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데?' 였다. 어차피 우리문화나 사상에 많은 영향을 미친 중국이었으므로 우리와 비슷한면이 무척 많을거라 생각은 하긴 했지만, 역시 과거제도에 대한 이야기도 읽으면서 중국이야기 같은 느낌이 크지 않았다. 뭣보다 과거제도 그냥 인재등용문이라는 가벼운 생각을 했었는데 워~ 진심 제목말마따나 시험지옥이구나. 무슨 시험을 한번으로 끝내는게 아니라 서너번을 보냐? 진심 것도 공원 어딘가로 하루밤 들어가서 거기 기거하며 밥까지 지어가며 시험을 치뤄냈어야 하다니.... 대단하네. 일단 나라가 크니 사람이 많이 모여 그렇게 해 내는게 이해가 가면서도 놀랍기도 하다. 그런데 어찌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선비들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하는 마음이 자꾸만 들었다. 뭔가 다른점이 있다면 우리는 양반입네 하는 사람들만 과거시험에 응시할 수 있었던 신분제도가 확실했던 것에 비해 중국의 과거시험은 그런 차별점은 없었다는 거다. 오히려 귀족자녀들은 세속되는 관직으로 인해 과거시험을 치를 일이 없었고 귀족세력이 아닌 평민이나 하층민이 과거시험을 치뤄 진사에 오른다니.... 이거 뭔가 새로운데??
하지만 결국 이 책에서도 얘기하고 있듯이 공부만 할 수 있는 계층은 극히 제한이 된 터라, 생계를 유지하며 공부해서 과거시험을 본다는 건 정말 쉬운일이 아닌지라 어느정도 가정의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러고보니, 우리나라 옛날 이야기 같은 것도 보면 정말 찢어지게 가난하면서도 과거시험에서 장원급제 할거라고 책만 디립다 파는 양반들이 수두룩해서 가정은 나몰라라 했던 이야기들을 많이 본 것도 같다. 선비는 책을 읽고, 안사람은 밥을 지으려 하나 쌀 한톨 없는 상황. 그래서, 삯바느질로 끼니를 연명하고 어쩌고 하는 이야기. 크, 역시 공부도 때가 있기도 하지만 먹는걱정(?)에서 풀려나지 않는 이상 책만 파고 있는 상황은 녹록치 않은 것이다.
시험의 단계는 또 어찌 이리 복잡한지..... 근데 읽을수록 과거제도에 대해 꽤 호기심이 생겼다. 심지어 이 책은 일본사람이 썼는데도 중국의 과거시험제도에 대해 너무 자세하고 구전으로 전해오는 이야기까지 풀어낼 정도였는데 아무리 우리나라와 중국의 과거제도가 비슷했다고는 하나 그래도 다른점이 분명 존재할텐데, 우리나라 과거제도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 책이 없나 한번 찾아보고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과거제도의 이야기를 보면 엄청나게 엄격하고 어디에서도 불법적인 거래를 발견 할 수 없을 듯 한데, 인간이란 참.... 어디에서고 헛점을 찾아내 뒷거래를 한다는 사실이다. 부탁받은 자의 글씨조차 알아보지 못하도록 일부러 필사까지해서 시험답안을 매긴다고 하는데도 어찌그리 교묘하게 뒷거래로 합격점을 주는 건지...... 이런 부정한 방법에 머리는 진심 잘 돌아간다.
나름의 제도는 완벽했으나 세상 모든일에 완벽이 존재치 않으니 부정부패가 만연했었다는 이야기는 씁쓸함을 전한다. 그대로 정말 제도 그대로만 시행되었다면 이처럼 완벽한 방법도 없었을터였는데.... 물론 불필요한 몇단계의 시험은 정말 좀 사람을 지치게 한다. 오죽하면 사람들이 미쳐 나오는 일까지 있었을까. 그때나 지금이나 시험지옥은 어디에서나 존재하는 구나. 공부하기 싫은 것도 존재하고....ㅋ 그래도 음(?)에 대한 욕망 뭐 그런것에 대한 처벌이 좀 강했나보다. 시험전 그런일들을 저지르면 염마왕이 벌하신다 믿고 ... 뭐 그런 신적인 이야기도 있으니...
여튼, 알지 못했던 뒷이야기부터 과거시험의 이야기를 자세히 알게 해준 고마운 책이다. 이런 역사이야기 너무 재밌다. 물론 반복적인 단계때문에 뭐가 뭔지 복잡해서 헷갈리는 부분이 없진 않았지만..... ㅠ.ㅠ;; 그래도 이런 역사관련 책은 굿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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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대 1. 5000대 1. 공무원이 되고자 하는 열정들이 매년 수치로 기록된다. 성공하고자 하는 간절함은 숫자보다 더 거대하리라. 합격과 낙방. 죽을 만치 힘든 터널의 끝을 보냐 안 보냐의 차이같다. 어떤 이는 터널 끝에 쭉 뻗은 길을 발견할 것이다. 그리고 어떤 이는 터널이 결국 끝나지 않는 동굴이었다는 걸 알게 될 것이고. 이 터널이 무엇인가. 1400여년 간 지속되어 온 지옥, '과거'이다. 미야자키 이치사다는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이 글을 완성지었다고 한다. 징병 통지서가 오면 언제든지 죽을 각오를 한다는 마음으로 적었단다. 세상에 뭔가 이로울 만한 것을 남기고 죽어야 겠다는 각오였다. 생각해보면 이상하다. 지난 날의 시험 기록이 오늘날 우리에게 무슨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나. 그가 말했다시피 중국의 캐캐묵은 제도를 캔다고 해서 일본의 시험제도의 문제점을 해소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하지만 시험 지옥 '과거'는 우리에게 객관적 지표 이상의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 죽을만큼 무언가에 매달려 얻어내야 했던 성공의 의지, 가족을 부양해야 했던 옛 선인의 부담감, 죄를 짓고 살면 아무리 천운을 타고 났어도 삶의 중요한 타이밍에서 실수할 수 있다는 오랜 지혜같은 말들은 우리들에게 난(難)이라는 공통적인 키워드로 공감을 이끌어낸다. 취업난, 입시난, 창업난. 난으로 넘쳐나는 세상에 우리도 살고 있다!
(출처 : 다음블로그 '콩지의 중국 여행기') 손바닥보다 더 작은 컨닝책, 빼곡히 글이 적힌 버선도 모자라 혹시 만두 안에도 쪽지를 넣어놨을까 식사하는 도시락의 만두까지 쪼개 만두소를 조사하는 웃기지도 않은 일이 벌어진다. 엄중한 감시를 통해 보내도 매년 숨겨서 들어가는 책의 분량은 책방 하나의 분량이다. 어떻게든 시험에 붙어 꽃길 좀 걸어보겠다는 당찬 의지가 느껴진다. 아아, 능력이 안돼 슬픈 짐승이여. 그런데 이 시험장에선 웃기지도 않은 일들이 벌어진다. 과거 시험은 자신의 재능과 지식만을 시험하지 않는다. 평소 쌓아온 덕과 인품까지도 시험의 대상이 되는 곳이다. 고대 중국인들에게 시험장은 귀신이 자유롭게 출입하여 인성을 시험하는 곳이라고 믿기도 했다. 그런데 이 인성 시험은 오늘날 연예인의 이미지 메이킹보다 더 무섭다. 네티즌은 모르는 게 있는데 귀신은 모르는 게 없는 탓이다. 고향에서 아랫도리 잘못 놀려서 처녀 신세 망친 놈은 반드시 죽는다. 붓을 잡아도 죽고 잠들어도 죽고 답을 적어도 죽는다. 무조건 죽는다. 어느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섬뜩한 대사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고 한다. 오호 깨소금이다. 오늘날에도 적용되었으면 참된 공무원들이 많이 배출되었지 않을까하는 일말의 기대마저 생긴다. 짝짝. 동아줄은 하나고, 사람은 천 명이다. 살기 힘들어질수록, 밥그릇 수가 적어질수록 사람은 각박해지고 더 치열해지기 마련이다. 과거는 사람들의 과열된 경쟁을 보여주는 객관적인 지표였다. 그 날의 그들이 소나 돼지가 잘 것 같은 우리 속에 쳐박혀 시험을 치뤘듯, 오늘날의 우리도 닭장 만큼 작은 독서실에서 합격이라는 목표 하나만으로 달리고 있는 중이다. 이것은 중국만의 역사는 아니다. 또한 멍청한 역사를 반복하고 있는 현 시점을 논하자는 의미로 보자는 것도 아니다. 여전히 삶은 변치않게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같은 길만 바라볼 수 밖에 없는 딱한 처지일지라도, 그것이 내 삶의 유일한 길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들이 수천, 수만명이 모이는 자리가 바로 과거시험장이다. 온기 대신 눈물 열 방울, 땀 스무 방울로 만들었을 그 자리에 대해 궁금하다면 중국역사를 담은 <과거, 중국의 시험지옥>을 읽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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