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1)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0%
  • 리뷰 총점8 10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0.0
  • 50대 8.0

포토/동영상 (1)

리뷰 총점 종이책
사기장이 글로 빚어낸 또 하나의 작품, <신의 그릇>
"사기장이 글로 빚어낸 또 하나의 작품, <신의 그릇>" 내용보기
1592년 일본을 통일하고 재정비하여 힘을 기른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오랜 준비 끝에 조선을 침략한다. 7년에 걸쳐 계속된 임진왜란은 엄청난 물질적 피해를 입혔고, 난세의 영웅들을 탄생하게 했으며, 일본을 깔보던 조선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다. 임금이 제 목숨 부지하기 위해 피난을 갈 때 민초들은 의병을 일으키며 조선땅을 지켰으나, 수많은 백성들이 왜인의 칼에 귀와 코를 베였
"사기장이 글로 빚어낸 또 하나의 작품, <신의 그릇>" 내용보기

1592년 일본을 통일하고 재정비하여 힘을 기른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오랜 준비 끝에 조선을 침략한다. 7년에 걸쳐 계속된 임진왜란은 엄청난 물질적 피해를 입혔고, 난세의 영웅들을 탄생하게 했으며, 일본을 깔보던 조선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다. 임금이 제 목숨 부지하기 위해 피난을 갈 때 민초들은 의병을 일으키며 조선땅을 지켰으나, 수많은 백성들이 왜인의 칼에 귀와 코를 베였고 강제로 일본으로 끌려갔다. 그중에는 유학자나 사기장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칼이 지배하는 사무라이의 나라 일본에서는 사발에 말차를 타서 마시는 행위를 일정하게 규격화한 다도가 성행했고, 다도에서 조선사발은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그중에서도 이도다완(황도)를 으뜸으로 쳤는데, 이는 황도가 일본 다도 미학과 완벽하게 어울린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일본내 이도다완의 숫자는 손에 꼽힐 정도였고, 그것을 소유한다는 것은 다도를 중시하는 일본 귀족에게 있어 최고의 자랑이었다. 

이도다완이 조선에서는 흔하리라 생각했던 그들은 이도다완에 대한 욕망에 조선을 침공했지만, 예상과 달리 이도다완을 구하기는 힘들었다. 왜인들이 조선에서 흔히 쓰는 밥그릇인줄 알았던 황도는 사실 제사 때 조상에게 밥을 올리는 제기이고, 본래의 용도가 끝나면 재기는 깨어버리는 관습 때문에 민가에서는 황도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몰랐던 일본인들은 황도를 찾기 위해 무덤을 파헤치고 왕릉까지 도굴하는 만행을 저지르는가 하면, 조선의 사기장들을 닥치는대로 일본으로 끌고 갔다.

그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사기장에 의해 조선 도자기의 고급기술이 일본내에 전해지게 되었고, 일본의 도자기 기술은 현저히 높아졌으며, 그결과 도자기 산업이 성행하게 되었다. 더불어 조선 사기장들이 완성한 중국 백자를 서양에 수출해 부를 축적하기 시작한 일본은 그것을 밑거름 삼아 경제대국으로 나아갈 발판을 마련했다. 일본이 임진왜란을 왜 '도자기 전쟁'이라고 부르는지 그제서야 이해가 됐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왜구들이 조선을 침략했다는 소문이 들린지 얼마 지나지 않아 김해의 사기장인 신석 부자의 집에도 왜병들이 들이닥친다. 왜장은 무력으로 그들의 도자기를 약탈해가면서 신석 부자에게 앞으로 이도다완을 포함해 자기들을 위한 도자기를 만들어 바치라고 명령한다. 할아버지를 구하고자 어쩔 수 없이 그 명령을 수락했지만 왜병을 위해 제기를 만들어줄 수는 없다. 전쟁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백성들은 궁핍해져가지만 다행히 사기장에게 관대한 왜장 덕분에 신석 부자는 왜병들의 주문장대로 도자기를 구워주고, 그 대가로 곡식이나 금붙이를 받아 굶주린 백성과 의병들에게 나눠준다.

이순신 장군의 선전으로 전쟁의 막바지에 이르자 본국으로의 철수를 앞둔 왜인들의 노략질은 극에 달한다. 젊은 사기장인 신석 또한 그의 도예기술을 탐하는 왜장에 의해 일본으로 끌려간다. 다행히 조선의 도자기를 흠모하는 주군에 의해 사무라이 도공으로 책봉되어 순탄한 생활을 시작한다. 여전히 주군의 주문장의 요구에 맞춘 그릇을 빚고 정해진 기한 안에 상납품들을 완성해야 했지만, 천한 사기장로 천대받았던 조선에 비하면 실력에 따라 녹봉과 영토를 하사받고 장인으로서 대우받는 일본에서의 생활은 그리 나쁘지 않다. 그런 까닭에 신석과 달리 자진해서 일본으로 건너온 조선 사기장들도 있다. 그럼에도 그의 마음은 언제나 현해탄 너무 부모님이 계시는 조선에 머무른다.


전쟁의 끝이 보일 무렵 신석은 그의 도예기술을 탐하는 왜인에 의해 강제로 일본으로 끌려가고, 조선의 도자기를 흠모하는 주군에 의해 사무라이 도공으로 봉해져 비교적 순탄한 생활을 시작한다. 비록 주문장의 디자인대로 정해진 기일 안에 그릇들을 완성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긴 했지만 그의 그릇들은 인정을 받았고 그가 다스리는 마을 고려촌은 더욱 풍요로워졌다. 그리고 더 나은 대우와 생활을 위해 자진해서 일본으로 건너왔거나 신석 자신처럼 전쟁중에 억지로 끌려온 여러 조선 사기장들과 교류하고 합동하여 이국땅에서의 숱한 어려움을 헤쳐나간다.

자신을 가로막는 숱한 어려움을 헤치고, 일본의 조선 사기장들과 교류하며 끊임없이 연구에 몰두하는 동안 신석은 사기장으로서의 명성을 얻고 일본에서 자리잡았다. 그러나 그에겐 여전히 풀어야 할 두 가지의 숙제가 있다. 하나는 조선땅으로 돌아가 부모님의 안부를 찾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가 일본으로 끌려온 이유이자 사기장으로서의 평생의 숙원이며 마지막까지 그의 발목을 잡는 신의 그릇, 바로 이도 다완인 '황도'를 완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것을 향해 발걸음을 떼어놓는다.



책의 앞머리에는 도자기로는 최초로 일본의 국보로 봉해진, 신의 그릇이라 불리는 이도다완(황도)에 대한 일본 미학자의 평이 실려있다. 그는 이도 다완은 조선의 밥공기로 아무렇게나 사용되던 잡기로 일본 차인(茶人)들이 아니었다면 조선에서는 그 아름다움을 인정받지도 못한 채 사라졌을 거라고, 그러니 이도다완은 일본인에 의해 완성된 거라고 평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전통사발을 만드는 사기장이자 이책의 저자는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한다.

일본 미학자의 말처럼 황도(이도다완)는 아무렇게나 막 쓰는 잡기가 아니라 제기이다. 황도는 조상을 향한 마음으로 그것을 빚은 조선 사기장의 예술혼이 담겨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또한 황도가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지 않는 것은 그것의 아름다움을 인정받지 못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조상을 향한 마음을 담은 신성한 제기는 사용 후 깨어버리는 관습 때문이란다.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평하는 일본의 평가도 안타깝지만, 작가는 일본의 저런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우리의 모습에 더욱 진한 아쉬움을 표한다.


저자는 이도 다완에 대한 이런 숨겨진 사실을 밝히고자 오랜 세월 자료를 모았고, 그것을 마침내 한 편의 소설로 완성했다. 전문작가가 쓴 글이 아닌 만큼 그의 글은 단순하고 소박하다. 이야기를 이루는 크고 작은 사건들은 긴장감을 즐길 틈도 없이 너무 쉽게 해결되어 버리고, 중간중간 등장하는 깜짝 사건들은 대개 결말을 짐작할 수 있다. 애초에 <신의 그릇>은 독자를 놀라게 할 만큼 치밀한 계산이나 화려한 반전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신의 그릇>은 그동안 다뤄지지 않았던 도자기를 현직 사기장의 시선으로 그려냈으며, 우리나라의 도자기 기술이 일본에 전파된 결정적인 계기인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일본에 끌려갔던 수많은 조선 사기장의 고단한 삶과 예술에 대한 열정, 그리고 일본의 자랑으로 추앙받는 황도(이도다완)의 숨겨진 진실을 찾아내 널리 알렸다는 점만으로도 큰 의미를 가지는 소설이다. 처음엔 시큰둥했던 소설이 마지막으로 치닫을수록 가슴이 뻐근해져 왔던 것은, 이 소설이 조선 막사발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십여 년의 세월 동안 선조 도예가들의 발자취를 더듬은 작가의 열정에 기인했기 때문이리라.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저자는 다시 한 번 이도다완을 언급한다. 이도다완의 대부분은 영남 민가에서 제기로 사용하던 황도-멧사발과 보시기-지만 그 그릇에는 '이도'라는 일본 성이 붙어 있다고, 조선 사기장의 혼이 깃들여있는 그 그릇에 이제는 제 이름을 찾아주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렇게 독자를 향해 이야기한다. 참고로 조선의 사기장을 일본에서는 도공이라고 불렀단다. 처음 안 사실이었다. 저자는 신석을, 그리고 자신을 언제나 '사기장'으로 명명하고 있다. 작가의 바람처럼 도공이 아닌 사기장이, 이도다완이 아닌 황도가 우리에게 익숙해질 그날이 어서 오길 바라본다.






+ 주절주절

이책을 읽고 난 뒤 백과사전에서 임진왜란을 검색해 보았다. 당시의 전쟁 상황에 대한 기나긴 설명은 이렇게 마무리 되어 있었다.
- 일본은 조선침략의 결과로 조선으로부터 금속활자에 의한 인쇄술을 처음으로 도입하게 되었고, 포로로 잡아간 도자기 기술자에 의해 획기적으로 요업(窯業)을 일으켰으며, 약탈하여 간 많은 서적은 성리학(性理學) 등 그들의 학문에 크게 기여하였다. (두산백과사전 중)






t****9 2008.06.2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