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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토 - 실존과 존재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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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존재한다. 그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존재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눈에 보이는 형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만져지고 느껴지고 향기로도 존재를 어느정도 파악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물들이 존재하는 것과 인간이 존재하는 것은 동일한 것일까? 동일하지 않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더 많으리라 예상된다. 단번에 그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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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존재한다. 그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존재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눈에 보이는 형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만져지고 느껴지고 향기로도 존재를 어느정도 파악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물들이 존재하는 것과 인간이 존재하는 것은 동일한 것일까? 동일하지 않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더 많으리라 예상된다. 단번에 그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대표적으로 인간은 사물과 다르게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느끼고 행동할 수 있다. 이를 두고 '생명이 있다'라고 말한다. 인간도 생명이 있고, 동물도 생명이 있다. 식물도 생명이 있다고 말한다. 사물은? 사물은 '존재'하지만 '생명'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생명에는 어떤 '정신적인 작용'과 '움직임'이 동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에게 영혼이 있다고 말한다. 아직도 구분하기가 쉽지 않지만 육체와 영혼은 생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시대에 따라서 육체와 영혼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랐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플라톤은 물질세계를 넘어서는 고차원적인 정신세계, 곧 이데아의 세계를, 스토아철학자들은 영혼조차도 원자로 이루어진 하나의 물질임을 주장했다. 너무 멀리 가지는 말아야겠다. 점점 생각할 수 있는 범위 바깥으로 사고가 넘어가는 것 같다.


  사르트르에게 '존재'는 '실존'보다 앞설 수 없는 것이었다. 다시말해 그 유명한 실존주의 철학을 대변하는 '실존이 존재에 앞선다'라는 말이다. 존재 자체가 우연이고 부조리이기 때문에 의미와 필연성은 당연히 존재 자체보다 우선일 수 없다라는 뜻을 내포한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유신론적 실존주의'와 달리 '무신론적 실존주의자'이다. 신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의 본질은 결정될 수 없고, 존재는 무(無)자체라는 이야기다. 이 개념을 한 번에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일이다. 그의 실존주의 철학이 가장 잘 드러난 <구토>에서도 주인공 앙트완 로캉탱의 존재에 대한 근원적 고민이 이어지지만 온전히 그 사상을 받아들이기에는 어려움이 느껴진다.  


내 생각, 그것이 '나'다. 그래서 나는 멈출 수가 없다. 나는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한다. 그리고 나는 생각하기를 멈출 수가 없다. 지금 이 순간조차도. 그것은 무서운 일이다. 내가 조재한다는 것은 내가 존재하는걸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내가 갈망하는 저 무(無)에서 나 자신을 끌어내는 것이 바로 나, '나'다. 존재하는 것에 대한 증오와 권태가 '나를 존재시키는' 방법이며, 존재 속에 나를 밀어 넣는 방법인 것이다.  -130쪽


  세계대전 이전까지는 인간의 이성에 대한 신뢰와 능력에 대한 믿음이 시대를 지배하고 있었다.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접고 탐구의 대상으로 관찰하기 시작한 것도 이러한 믿음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세계대전을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에 대해 회의가 들기 시작하면서 시대는 또다른 사상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그런 시대의 흐름가운데 장 폴 샤르트르와 같은 실존주의자가 등장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실존주의는 인간 존재에 대한 '불안'과 '우연', '홀로 남겨짐'에서 시작한다. 후에 그는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라는 책을 발간하기도 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휴머니즘은 공산주의자들이 말하는 휴머니즘과 다르다. 책에서도 마르크스주의자(독학자)와의 대화에서 휴머니스트들을 비판하는 내용이 로캉탱의 생각을 빌려 표현된다. 


구름처럼 많은 다른 휴머니스트들도 있다. 맏형처럼 형제들 위에 허리를 굽히면서 책임감을 느끼는 휴머니스트 철학자, 인간을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휴머니스트, 인간을 이상적으로 사랑하는 휴머니스트, 인간의 동의를 얻어 인간을 구원하려는 휴머니스트, 새로운 신화를 창조하려는 휴머니스트, 낡은 신화에 만족하는 휴머니스트......그들은 저희들끼리 서로 증오한다.   -153쪽 


  사르트르가 휴머니즘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이유는 '허위'와 관련이 있다. 소설 속 독학자가 로캉탱을 동경의 눈으로 바라보다가 휴머니스트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적대적으로 돌아서는 대화속에서 그의 생각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독학자는 로캉탱을 향해 인간 혐오주의자가 아니냐며 비난하기에 이르고 인간을 사랑해야 하고 자신은 모든 인류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로캉탱은 '인간을 사랑할 수도 미워할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결국, 독학자는 어린소년들에게 추행을 저지르는 모습을 보이며 그 허위를 드러내게 되고, 사르트르가 생각하는 인간본질이 점차 우위로 나타난다. 


  사르트르는 사회주의자는 아니었지만 마르크스의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베트남전쟁을 반대하는 반전운동을 펼치기도 하고, 프랑스의 공산당에 동조하는 글을 써 동료들과 멀어지기도 한다. 평화를 유지하기위해 일부 폭력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하게된다. 그 과정에서 알베르트 까뮈와의 관계가 완전히 틀어지기도 한다. 그가 말하는 실존적 휴머니즘은 인간 본성, 즉 존재에 선재하는 본성을 거부하고 인간 스스로 초월적인 목표를 추구하며 부단히 노력해야 함을 주장한다. 그 어떤 것도 인간을 인간 자신으로부터 구원할 수 없다는 사상. 실존주의. 사르트르는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가 추구했던 인생의 목표와 방향, 그리고 구원의 의미가 무엇이었을지 궁금해진다. 그는 생의 마지막에서 만족함을 얻었을까? 자신의 삶은 구원받았다고 생각했을지 무척 궁금해진다 




s********8 2013.10.28. 신고 공감 1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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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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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트르하면, 실존주의의 대표 인물 중 한명이며 노벨문학상 수상을 거부를 했다 정도가 떠오른다. 그러나 정작 이 소설로 수상자로 추대된지는 몰랐다. "존재와 무"나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의 둘 중에 하나가 아닐까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냥 주워들은 말로 실존주의하면 키에르케고르, 하이데커를 입으로 떠들기는 해도, 인간은 본질보다 실존이 앞선다는 실존주의의 개념은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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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트르하면, 실존주의의 대표 인물 중 한명이며 노벨문학상 수상을 거부를 했다 정도가 떠오른다. 그러나 정작 이 소설로 수상자로 추대된지는 몰랐다. "존재와 무"나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의 둘 중에 하나가 아닐까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냥 주워들은 말로 실존주의하면 키에르케고르, 하이데커를 입으로 떠들기는 해도, 인간은 본질보다 실존이 앞선다는 실존주의의 개념은 내 머리속에서는 흐리멍텅하다. 내가 날 봐도 잘 모르고 떠드는 것 같다. 


소설로서의 "구토"는 음식으로 치면 강냉이같다. 맛있지도 않고 맛없지도 않고 그냥 계속 손이 간다. 소설속 주인공이 그냥 글을 써간다고 하듯이 그냥 계속 읽게 된다.


존재의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 우연인지 필연인지, 우리는 지각할 수도 알 수도 없다. 종교관으로 보자면 필연적인 의미가 있다고 말하겠지만 이는 믿음에 의한 것이지 이성이나 오성에 의함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존재가 무목적성의 우연의 산물이라면 존재 자체는 부조리할 수 밖에 없고 이런 존재의 부조리는 구토를 유발할 것이다.


연금과 이자로 살아갈 수 있는 유한계급인 "로캉탱", 남을 별달리 이해하고 싶어 하지도 않고 혼자의 고독에 쌓여 있는 것 같지만 그렇다고 그 고독이 치열해 보이지도 않는다. 어찌보면 돈 걱정할 필요없는 주인공이 권태스럽게 세상을 바라보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단순한 권태가 아닌 존재함에 따르는 슬픔(?)이 느껴진다. "로캉탱"이 앞으로 어떤 삶을, 어떤 길을 걸어갈지 이 소설에서는 알 수 없다. 그냥 "있다"로만 존재할 뿐일지…


철학적인 주제를 담고 있는 소설이라 감상이 쉽지 않다. 어쩌면 "존재와 무"를 읽고 다시 봐야할지도 모르겠다.


7/12/2013

a***k 2013.07.12.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