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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작가를 한 사람 더 알게 되었다. 다른 책이 읽고 싶어져서 검색했는데 없다. 왠만한 한국 작가라면, 그리고 이정도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라면 79년생이 이 책 한권 밖에 없다는 게 좀 이해가 되지 않는데.. 옥화는 (중국내 조선족으로 추정되는)가정주부인 화자에게 같은 교회에 다니는 탈북여성이 쌈지돈을 빌려달라며 시작된다.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도 아닌데다, 한국으로 떠난다는 소문이 있어서 사실상 받지 못 할 돈이다. 고민하던 그녀에게 교회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탈북여성의 몰염치함과 불성실 등을 고하며 그녀를 더 혼란스럽게 한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쌈지통장에서 돈을 인출해서 탈북여성에게 돌려주지 않아도 좋다며 준다. 그런 그녀를 보던 탈북여성은 한 번 더 보자고 제의하고, 그 만남에서 탈북여성이 속내를 털어놓으면서 이야기는 절정을 맞는다. 주인공은 탈북여성을 보면서 과거 노총각 동생의 마누라감으로 데려온 20대초반의 탈북처녀 '옥화'의 가출을 떠올린다. 비리비리한 노총각 동생의 마누라로 와준게 고마워서 '나'의 가족은 옥화에게 갖은 호의를 다 베푼다. 그렇게 서로 좋은 관계가 되었다고 생각한 어느 시점에 '옥화'는 거실에 있던 돈을 들고 사라진다. 그리고 '나'에게 남긴 편지와 마지막 통화... '나'는 옥화의 담담한 모습 속에서 상당한 도덕적 혼란에 빠진다. 그리고, 이 혼란은 속내를 털어놓는 탈북여성과의 대화를 통해 어느정도 해소되는 것 같다. 보통 탈북자에 대한 상상은 단조롭다. '타자화'되기 쉬운 개념인셈이다. 이 책은 그런 '탈북자'라는 틀에서 벗어나 있을 법한(또는 있었던 것들을 재구성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탈이념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작가노트에 적힌 누군가를 도우려 했다 문우의 지적을 받으며 충격을 받았던 경험이 결국 소설의 메시지를 결정한 것 같다. 그 메시지는 가진자의 입장에서 누군가를 동정하는 것보다 그 사람에게 공감하고 친구가 되어주는 것이 진정 '도움'이라는 것 같다. 좋은 느낌을 주는 메시지다. 짧지만 좋은 책이다. 술술 읽히는 문체와 독특한 문제의식, 그리고 무엇보다 끝까지 책을 놓지 못하게 하는 긴장감이 좋았다. 작가의 다른 작품이 정말 기다려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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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페이지..검정과 빨강의 경계선에 있는 표지를 보면서 문득 우리가 느끼는 북한을 상징하는 느낌을 처음 받게 됩니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편견을 이 책의 표지를 통해서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책은 113페이지로 이루어져 있지만 실제
이야기는 40페이지 정도의 분량입니다.그안에 담겨진 조선족과 탈북 처녀 그리고 우리가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함께 그려 나가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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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지 방송에서도 탈북자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어렵지 않다. 심지어는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등장한다. 탈북자라는 말도 이제는 새터민이라는 말로 바꿔부르기까지 한다. 그러나 우리가 쉽게 접하는 화려한 모습들과는 달리 어두운 구석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독자들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누구를 비난하고, 사회를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가진 마음 깊은 곳에 대한 이야기를 던져주고 결정은 완전히 독자들의 몫으로만 남겨두고 있다... 소설의 구성은 화자인 조선족 여인 홍이와 그녀의 남동생과 함께 살았지만 말없이 떠나버린 탈북여성인 옥화, 그리고 또다른 탈북여성인 그여자의 이야기로 꾸며진다. 대한민국의 국민의 입장에서 조선족이나 탈북자이거나 같은 민족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들을 동류의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그러나, 조선족은 우리와 같은 핏줄이지만 중국인일수 있으며, 그들이 살고있는 땅에 자리잡고 그들의 정체성을 이루어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어쩌면 미국에 이민가서 살다가 미국 국적을 취한 그들과 큰 차이가 없다. 단지 환경의 차이가 있을뿐.. 그러나 탈북자들은 자신의 정체성이 있던 곳을 떠나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야 하고, 동시에 정체성과 더불어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곳을 찾아 끝없이 방랑해야 하는 이들이다. 그러기에 조선족과 탈북자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차이점을 홍이라는 여자의 눈을 통해서 드러내 보이고 있다. 조선족들이 일자리 알선이나 도움에 대하여도 고마움을 못느끼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지만, 홍이는 한국에서 수년간 일하고 돌아온 시형의 말을 빌려서 그들의 심정을 표현하고 있다. "자기편이 아닌 땅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불안함"이라고 표현한다. 조선족이 한국에 적응하지 못하고 돌아가는데, 과연 탈북자들은 쉽게 적응할 수 있을까? 이 근원적인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사회는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 것인가? 우리가 탈북자들을.. 조선족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벽을 허무는데 어떠한 모습으로 다가가야 할지 깊이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저 말하나 새터민으로 바꿔 부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진정 그들을 대하는 마음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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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출판사에서 출간되는 <K-픽션> 시리즈의 9번째 책은 조선족 작가인 금희 작가의 『옥화』란 책이다. 분량이 단편이라 하기엔 조금 긴 듯하고, 중편이라 부르기엔 조금 짧은 듯한 분량인 이 책은 조선족 작가의 눈으로 바라본 탈북민과 조선족 간의 비슷한 듯하면서도 서로 다른 입장 차이에 대해 풀어내고 있는 소설이다.
조선족이건 탈북민이건 이들은 모두 우리의 ‘동포’라는 테두리 안에 들어 있다. 동포란 말은 말 그대로 형제자매란 의미. 하지만, 실상 이들에게는 우리의 형제라는 의미보다는 철저한 ‘타자’에 불과하지 않을까. 아울러 우리에겐 모두 타자로 여기는 이들 역시 서로 간에 철저한 타자임을 이 소설을 보여준다.
탈북민인 ‘여자’와 옥화(주인공 홍의 올케였던 여인)는 조선족의 도움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아니, 오히려, 이들의 시선은 자신들을 마음 깊은 곳에서 돕지 않는 그들. 그리고 도움의 손길을 펼치더라도, 마치 여유로운 삶 가운데 조금을 시혜를 베푸는 듯 도와주고, 또는 도움에 생색이나 내려는 그런 모습으로 바라본다.
반면, 이들을 ‘동포’라는 동질성을 가지고 돕는 주인공 홍의 입장에서 그 도움은 결코 여유로운 삶 가운데 쉽게 돕는 것이 아니다. 힘겨운 삶 가운데서 돕는다. 아울러, 그렇게 돕는 홍의 시선에 도움을 받는 ‘여자’나 달아나버린 옥화의 모습은 솔직히 달갑지 않다. 왜냐하면 이들은 마치 도움 받음을, 그리고 홍의 입장에서는 베풀어야 함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홍은 기독교인 집사. 그렇기에 더욱 교인은 베푸는 삶을 살아야 마땅하다고 여기는 도움 받는 이들의 시선이 부담스럽다. 자신들 역시 남들이 겉에서 보는 것처럼 여유로운 삶이 아닌, 하루하루가 힘겹게 살아가는 삶이기에.
한편, 교회공동체 내의 사람들에게도, 조선족 마을 공동체 사람들에게도, 그리고 주인공 홍에게도 부담스러운 존재이자, 뻔뻔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여자’의 입장에서도 남들에게 밝힐 수 없는 커다란 상처와 아픔이 있고, 또한 남모를 고민이 있다. 단지 더 나은 삶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지금 당장 도움의 손길을 뻔뻔함으로 무장하고 받고 있을 뿐.
또한 탈북자들의 시선으로 볼 때, 여유로운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는 조선족 역시 궁핍한 삶을 살아간다. 뿐더러 이들 역시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대한민국 땅에서 일하며 온갖 서러운 시간들을 보내며, 절대적 타자로 살던 사람들이다.
그러니, 이 소설을 통해, 작가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타인의 눈으로 볼 때에는 이해되지 않고, 쉽게 판단해 버리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각자의 삶을 들여다보면 남들이 알지 못할 아픔이 있고, 그런 삶의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는 삶의 이유가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 아닐까 싶다. 그러니, 나의 시선으로 남을 쉽게 판단하지 말자.
게다가 도움을 주는 입장에서의 자세 역시 돌아보게 한다. 도움의 손길은 순수한 의도로 펼쳐야 함을. 도움을 받는 이들의 반응은 생각하지 말고, 어차피 도움을 주고자 함은 상대의 상황이 더 나아지길 바라는 것 아닐까? 그러니, 나의 도움으로 상대가 나아졌다면 그것으로 그만이라 여기자. 아울러, 도움을 통해, 자신의 얼굴에 금칠을 하려는 자세 역시 지양해야 할 것이다. 이는 소설 속의 최 권사가 그렇다. 주인공 홍이 바라보는 최권사는 언제나 순수한 마음으로 남 돕기를 즐거워하는 모습처럼 여겨지지만, ‘여자’의 입장에서 겪게 되는 최권사는 자신의 도움으로 도움을 받는 자의 삶의 자세를 주관하려는 모습이다. 아울러 작가의 표현대로라면 틀을 내는 모습이다(거들먹거리는 몸가짐). 겸손을 가장한 교만한 모습을 말이다. 이런 모습이 혹 오늘 우리의 모습은 아닌지 작가는 질문한다.
우리가 이런 작품들을 통해, 극중의 누구를 판단하고 비방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마땅치 않은 삶의 자세를 보이는 인물들이 소설 속에 있다면, 그들의 모습이 혹 오늘 나의 모습은 아닌지 돌아봄이 필요하다.
참, 이 소설은 조선족 작가의 글이기에 단어 가운데 몇몇 단어들은 우리에게 많이 낯선 단어들이 있다. 그런 단어를 찾아 그 뜻을 알아가는 재미도 이 소설이 주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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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홍'은 성실한 교인으로 그리고 작은 사업을 꾸려나가며 사는 평범한 사람이다. 어느 날 그녀에게 같은 교회를 다니면서 알게 된 탈북자 여성이 급전을 부탁하는 일이 생긴다. 그다지 친하지도 않으면서 거리낌 없이 도움을 바라는 그녀의 행동에 '홍'은 망설인다. 그리고 문득 떠오르는 한사람이 있었으니, 그녀의 이름은 옥화였다.
동생의 좋은 인연이 되어 부족하나마 알콩달콩 지낼 줄 알았던 옥화는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졌다. 주위 사람들에게 씁쓸한 기억의 말뚝을 박고서.
여기에도 저기에도 속하지 못하는 주변인을 다룬 소설은 이제껏 재일교포의 이야기로만 만나봤다. 가네시로 가즈키나 유미리, 사기사와 메구미와 이양지 같은 작가가 쓴 소설 말이다. 그 속의 주인공은 내가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아픔과 고민을 겪는 존재들이었다. 나는 내내 서울이라는 좁은 땅덩어리를 벗어난 적이 없었으니까.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 그들의 소리를 듣는 다는 간접체험은 내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탈북자 여성의 비참한 속얘기로 '홍'은 망치로 한대 얻어맞은 듯 흔들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어려운 환경에 처한 탈북자가 자신의 '핏줄'이라서 자연스럽게 드는 측은한 끌림의 더께가 그녀에 대한 몰이해로 이어졌음을 자각하는 '홍'. 이해할 수 없었던 만큼 원망의 크기도 컸었던 옥화에 대해, 홍은 탈북자 개인의 고유성에 관해서는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책을 덮고 나니 하나의 숙제를 떠안은 기분이다. 나와는 다른 사람들을 온전히 이해하는 방법 말이다. 작가는 탈북자라는 특수 계층을 포괄적으로 다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계층을 벗어나 인간에 대한 이해에 절실함을 느꼈다. 어쩌면 그것이 나 자신을 바로 아는 현명한 답 또한 내줄 것 같기도 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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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과 중편소설의 중간쯤으로 생각해도 될듯한 수량의 내용을 살펴보며 예전에 생각했던 조선족과 탈북민들의 처우에 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조선족이건 탈북민이건 또는 해외의 교포이건 '한민족'이며 '동포'라는 개념을 서슴없이 사용하고 그들을 바라보지만 실상 우리가 하는 행태는 한민족과 동포를 말 그대로 생각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는 모습을 너무도 자주 많이 보고나니 정말 우리가 한민족이고 동포가 맞기는 한가라는 의문이 들고 심한 자책감이 들기도 한다. 이 책 '옥화'는 조선족과 탈북민의 존재를 우리가 어떤 인식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심지어 조선족 사회에서 조차 탈북민들이 어떤 처우를 받고있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동포이지만 동포랄 수 없는 그들의 외곯수 같은 행위는 하나같이 조선족 사회의 골치거리처럼 드러내 놓고 탈북민을 폄하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정작 탈북민들은 인도의 천민들처럼 조선족 사회의 도움에 대해 '그딴거 따위'라는 식으로 당연함을 넘어 상대의 감정을 극도로 헤집는 만연을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조선족 사람들과 탈북민들의 삶의 행위들은 온전히 우리의 시각안에 자리한 내안의 나와 또다른 나라는 자기애의 발로라기 보다는 나와는 동질성이 전혀 다른 별개의 타자의 삶 이라는 의식을 여실히 보연주고 있어 탈북민들이 조선족 사회에 정착하지 못하고 한국사회를 기를쓰고 오고자 하는 근본적 동인으로 자리하게 된다. 그러나 탈북해 한국에 발을 디딘들 그들 역시 우리에겐 내 안의 또다른 나라는 자기애에 충실한 모습보다는 전쟁의 상흔으로 비춰진 또 다른 타자의 모습이고, 우리 동포가 아닌, 아무것도 아닌 존재들로 인식됨으로 해서 한국행을 결행하는 또다른 많은 탈북민들의 근심거리가 되고도 남음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데올로기로 인한 불협화음이 한나라의, 한민족의 정신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명확하게 바라 볼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우리가 생각하는 조선족과 탈북민들의 삶에 대해 우리는 타자화된 인식이 아닌 진정한 우리의 동포로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더욱 껴안아 주고 함께 살아갈 방도를 찾는것이 왜 이리 힘든 일이 되었을까 생각해 보는 귀중한 시간을 갖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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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픽션 시리즈도, 이 책의 저자 금희도 익숙한 이름이 아니다. 아니, 좀 더 솔직하게 말하면 둘 다 이번에 처음 들어보았다. 저자 금희는 중국 지린성 조선족 동네에서 성장한 후 2007년 <개불>로 윤동주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K 픽션 시리즈는 현대 한국 문학을 이끌어나가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전 세계에 알리려는 의도로 시작했다고 하는데 현재까지 12권이 출판되었다. K 픽션 시리즈는 한영 대조로 된 책이기에 영어 공부하는 데에도 상당한 도움이 된다.
<옥화>는 탈북자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러고 보니 탈북자를 조명한 소설도 처음이다. 그것도 조선족 사회에서 살아가는 탈북자에 관한 이야기이다. 상당히 독특한 소재에 궁금증이 점점 커져갔다.
이 작품은 조선적 여인 홍의 시선으로 바라본 탈북자들의 이야기이다. 홍은 같은 교회에 다니는 탈북 여자가 한국으로 가기 위한 경비로 돈을 빌려달라고 하자 고민에 빠져든다. 그러면서 이전에 자신의 올케였던 옥화가 떠오른다. 어머니가 동생의 처로 데려왔던 옥화. 하지만 그녀는 어느 날 동생과 가족을 버리고 도망가 버린다. 탈북 여자의 모습에서 옥화가 떠오른 홍은 탈북 여자에 관한 여러 이야기들을 듣는다. 일자리를 소개해주어도 제대로 일도 하지 않고, 여기저기 사람들에게 돈을 빌리고, 하지만 주변의 도움에 고마워하기보다는 고까워한다는.
그런데 탈북 여자가 한국으로 떠나기 전 홍을 만나러 왔을 때, 홍은 얼마나 자신이 그녀를 제대로 알지 못했는지를 깨닫는다. 아니, 어쩌면 탈북 여자뿐 아니라 그녀의 올케였던 옥화에 대해서도. 그저 탈북자들에 대한 선입견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는 것을.
홍의 문제만은 아니다. 나 역시 그녀와 똑같은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탈북자에 대해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동남아에서 온 근로자들에 대해서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가난하고 나와는 다른 계층의 사람이라고. 이 얼마나 오만한 생각이었는지. 정말 부끄러웠다.
“한 사람이 어떻다는 거이는 하느님만 아시디, 딴 사람들은 다 모른다는 거이요”(p.68)
탈북자들을 소재로 쓴 소설이지만 그 안에는 평범한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어쩌면 너무나 쉽게 저지르는 잘못에 대해 들려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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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떠났다. 아니, 떠났다고 한다."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여자는 누구일까? 옥화일까, 했는데, 옥화를 닮은 탈북자이다. 외모뿐만 아니라 홍의 성의를 받아들이는 태도 또한 닮았다. 게다가 떠나는 스타일까지.. 그러나 밑의 문장들을 대하는 순간, '닮았다'라는 것도 홍의 편견일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는 머 목사가 맨날 말하는 믿음이란 게 어떤 거인디 그딴 거 잘 모르는데, 기래도 이거는 압네다. 한 사람이 어떻다는 거이는 하느님만 아시디, 딴 사람들으는 다 모른다는 거이요. 안 기래요, 집사님?" -p. 68~ 69
하느님만 아시는 것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한 사람이 어떻다고 판단하는가? 성의(사전적 의미: 정성스러운 뜻)라는 것도 그렇다. 내 마음속에서도 온갖 감정이 요동치는데(정성이 덜 들어갈 수 있다는 의미다.), 나의 성의를 어떻게 무시할 수 있냐며 상대방을 비난하는가?
섣부른 동정이 때론 비난보다 못할 수가 있듯이, 이 이야기에 대해서도 어떤 섣부른 결말을 내릴 생각은 없다. 우리는 모두 삶이라는 과정을 거쳐 가고 있는 인간일 뿐이니까. 또한, 우리 모두에게 있어서 시초에 똑같은 영혼이 주어졌다는 것을 상기하고 나면 후천적으로 보태지는 약간의 빛깔과 껍질에 대해 도무지 동정이나 비난 같은 것을 할 수가 없게 되는 법이기도 하다. 어떠한 경우에도 '은혜'란, 사람이 사람한테 베푸는 것이 아니며, 진정한 '선행'은 자신의 행위를 인식하지 못할 때 가능한 것이며, 사람이 사람한테 줄 수 있는 것, 그리고 마땅히 주어야 하는 것은 '존중'뿐임을 새삼 깨닫는다. -p. 90 창작노트
작가의 의도대로 이 이야기의 결말이 명확하지 않다. 홍은 실컷 여자, 그리고 옥화에 대해 생각하고는 분주한 아침을 시작하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먹고살아야 한다는 것처럼..
『옥화』..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독특하고, 가벼운 것 같으면서도 무거운 소설이었다. 조선족 작가 금희.. 소소한 이야기를 세심하게 직조하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고(특히 심리 묘사가 뛰어났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의도대로 제대로 하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녀에게 줄 수 있는 것, 그리고 마땅히 주어야 하는 것, 그녀를 '존중'한다. 기회가 되면 그녀의 다른 작품도 읽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