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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의 미래는 안정된 직장을 갖지 못한채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나’의 인생의 회고록이다. 이 소설에서는 ‘나’가 자신의 불행한 인생을 일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감정의 고조없이 무심하게 표현함으로서 서술자의 무심함이 독자로 하여금 대신 억울하게 해주는 효과를 주는 것이 특징이다. 나는 ‘나’의 이 무심함이 독자에게 주는 효과와 더불어 ‘나’의 무뎌짐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무뎌짐은 슬픈 감정이다. 그 감정에 너무 많이 노출된 나머지 그 감정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적응해버린 것이다. ‘나’는 너무 많은 불행을 겪으면서 고통에 무뎌졌다. 이것은 ‘나’의 불행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했다. 서점 알바를 하는 ‘나’는 어느날 수상해보이는 남성 두 명에 의해 담배 심부름을 온, 어딘가 불안해보이는 소녀를 만난다. ‘나’는 그런 소녀와 남성 둘 사이의 이질감을 느꼈으나 고민끝에 그 일을 무시하고, 소녀는 실종된다. 소녀가 실종된 후, ‘나’는 서점 지하 창고에 연결된 터널을 의심하지만 관리인에게 터널이 허구라는 말을 듣고 터널의 진위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망치를 든다. 터널이 있는 것과 없는 것, 둘 중 무엇을 더 두렵게 여겼는지 생각하던 ‘나’가 곧 망치를 내려놓고 도시락을 먹는 장면에서 이 소설의 상징성이 나타난다고 생각했다. 나는 서점의 지하 터널이 ‘나’의 희망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았다. ‘나’는 소녀가 거기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갖지만, 희망의 진위여부도 파악하지 않은 채 현실로 복귀한다. ‘나’는 ‘희망’을 찾을 힘도 의욕도 없이 현실을 살기 바쁜 무심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의 이 무심함은 희망에 대한 무심함으로 보이기도 했다. 희망을 가진 사람들은 불행에 무뎌지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불행에 무뎌지기 위해 희망을 버리는 쪽을 택했다. 희망의 존재를 알았을 때의 기쁨을 느끼기 보단 희망이 허구였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고통을 피하기 위한 일종의 방어 기제인 것이다. ‘나’가 모든 감정에 무심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소녀의 실종에 대해 억울함을 느낀다. ‘나’가 느끼는 억울함은 ‘나’의 무심함에 대한 변명이었다.‘ 하지만 소녀의 어머니에게 ’나‘가 왜 그렇게 무심했는지에 대한 변명은 한마디도 전해지지 못한다. 그것은 마지막, ‘나’가 가끔, 아주 가끔 소녀에 관한 기사를 찾아보는 것과 같이 일말의 죄책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뿐, ‘나’의 하루는 별 다를거 없이 여전히 가끔 수치스럽게 흘러갔다. ‘나’는 나 하나 살기도 벅찬, 가난하기 때문에 사랑도 할 수 없고 아기도 낳을 수 없는, 비정규직이기 때문이다. ‘나’의 미래는 별 변화없이 똑같이 불행하게 흘러가고 변화할 가능성 조차 보이지 않는다. ‘양’의 미래는 변화가 없다. 나는 미래가 변화하기 때문에 미래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양의 미래는 미래가 없고, 미래가 없기에 더 슬픈 소설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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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황정은 작가는 처음 접한다. 여러 유명한 작가도 많고 베스트셀러 작가도 많지만 이 작가는 참 많은 상을 받아서 내심 궁금했다. 팟케스트 방송을 통해 들었던 그의 목소리는 상당히 끌리는 것이었고, 정말 문학가다운 분위기가 느껴져서그 공명이 오랫동안 귀가를 맴돌았다. 다만 그의 소설은 전혀 읽어보진 않았지만 이번 기회를 빌러 꼭 읽고 싶었다. 오늘 받아서 아직 읽기 전이지만 상당히 기대된다. 대략 보았을 때 문장스타일이 독특해 보인다. 대화체가 많고 쉬운듯 어려운듯 짧지만 호흡이 긴 문장들... 뭐 모두 읽어봐야 알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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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을 보고 사서 보려고 구입했다 열어보고 좀 당황했습니다. 소설이라서 당연히 이펍 파일이라고 생각했는데 피디에프네요. 이북 리더기에서 보기 불편해서 애쓰다가 결국 패드로 봤네요. 미리 확인하지 못한 제 실수입니다. 내용은 단편답게 짧고 뒤에는 영어 번역본이 있습니다. 도입부가 마음에 듭니다. 서점에서 일하는 주인공이네요. 마지막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