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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향곡이나 일부 관현악곡 위주로 클래식 음악을 듣던 나를 피아노 음악의 세계로 끌어들인 장본인이 글렌 굴드였다. 대학생 시절에 학점을 쉽게 따기 위해 음악대학의 2학점짜리 음악감상 과목을 신청했는데 그 수업 중에 굴드가 연주한 골드베르크 모음곡의 일부를 듣고는 그 매력에 빠져들었다. 처음의 인상은 ‘뭔지 모르겠지만 특이한데 끌린다’였다. 피아노를 잘 모르던 나는 안면이 있던 음대생에게 이 곡이 어떤 곡인지 물어 곡명과 작곡 배경 등과 같은 기초 정보를 습득했다. 당시에는 같은 곡이라 해도 연주자 별로 해석이 다르고 그에 따라 주는 감상도 다르다는 정도를 충분히 이해할 정도는 아니라서 굴드라는 이름까지 잘 새겨둘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피아노 음악이 꽤 매력이 있어서 이런 종류의 음악을 찾아서 들어봐야겠다는 동기부여를 한 계기가 되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바흐의 음악에 마음이 쏠리면서 다시 굴드에게도 자연히 손이 가게 되었고 한동안은 굴드만 들었다고 할 만큼 자주 듣던 연주가가 되었다. 굴드에 관한 책이 나오면 역시 관심을 두게 된다. 이 책 역시 그런 관심에서 구입하게 되었다.
책은 글렌 굴드의 일생을 다루지 않는다. 그가 자신에게 맞는 피아노를 찾는 과정과 그런 피아노를 찾고 난 후 벌어진 일들을 다룬다. 아울러 굴드에게 맞는 피아노를 찾아주고 발견된 피아노를 섬세하게 조율해서 그의 연주가 최상으로 이루어지도록 도우려 했던 조율사들이 등장한다. 굴드를 사로잡았던 피아노, CD318도 또 하나의 주인공으로 나온다. 책의 원 제목인 A Romance on Three Legs의 세 개의 다리는 그랜드 피아노의 다리 세 개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굴드, 베른퀴스트를 위시한 조율사들, 피아노 자체의 세 주인공을 뜻하기도 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책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굴드이지만 나머지 두 주인공의 비중도 적지 않다.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 굴드는 꽤 이상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가 들려주는 연주가 아니었다면 정신 나간 사람으로만 비쳤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의 기행은 여러 가지였다. (구체적인 행동은 언급하지 않겠다.) 어린 시절의 생활 습관이 미친 영향도 있었을 테고 최상의 상태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려는 의지가 반영된 탓도 있었으리라. 피아노를 떼어 놓고 그의 생활만을 본다면 아마도 나는 그와 같은 공간에서 같이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 듯하다. 하지만 그의 이런 상태가 그가 들려주는 소위 굴드만의 음악을 창조하지 않았을까 한다. 모든 것의 차이는 디테일에 있다는 표현이 있는데 굴드에게도 이는 잘 어울리는 표현이다. 그의 행동 하나, 생각 하나하나가 지금도 살아있는 굴드를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통해 본 조율의 세계는 집에 놓인 업라이트 피아노를 조율하러 오던 조율사의 모습을 통해 이해하던 세계와는 엄청난 차이를 보였다. 이토록 섬세하고 조심스러우며 민감한 세계를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민감한 연주자들을 위해 조율하는 이들의 훈련 과정과 그들이 도달한 수준을 보면 우리가 듣는 피아노 연주 뒤에 놓인 조율사들의 힘과 가치를 뚜렷이 인식하게 된다. 연주자들로부터 받는 그들의 스트레스 또한 알게 되고. 제작된 피아노마다 다소 다른 소리를 내리라는 점은 그냥 추정할 수 있는 바인데 책에서 보여지는 피아노마다의 다양성은 상상을 넘어섰다. 피아니스트마다 피아노가 내는 소리에 대한 소구점이 다른데다 조율을 하고도 잠깐의 시간만 지나서면 소리가 흐트러지는 일이 생기기 때문에 조율사들이 계속 붙어서 조정을 해야 하는 점도 그렇다. 자신이 원하는 피아노를 끊임없이 찾아다니는 굴드의 모습은, 좋게 말해서 치열하다. 굴드가 연주한 바흐를 듣다보면 피아노 음색으로 하프시코드를 연주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그냥 논 레가토로 연주한다는 정도가 아니라 하프시코드가 주는 연주 특색인 건반을 누른 후 음이 지속되지 않는 점-즉 잔향이 부족하다는 점-까지도 연주에서 구현하려 했다고 느껴진다. 책에서 보면 굴드는 소리 자체가 그런 특성을 지닌 피아노를 오랜 기간 동안 찾고 있었던 듯하다. 터치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소리의 울림이 적은 피아노 말이다. 그 피아노가 스타인웨이에서 나온 CD318이었고. 다만 피아노의 세부 구조와 소리를 만들어내는 방식 등에 대한 설명은 실제 장면을 보지 않는 상태에서 무척 읽기 힘들었다. 업라이트 피아노의 구조도 잘 모르는 판국에 그랜드 피아노의 내부를 설명하는 장면들을 글로서만 이해하기는 나 같은 문외한으로서는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 영역이었다. 이 부분이 긴 점 역시 초반에 책장을 넘기는데 상당한 애로 사항이었다. (내용의 평점을 깎는 요소다)
이미 잘 알려진 바이지만 굴드와 CD318의 사랑은 오래 가지 않았다. CD318이 파손되는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 정도까지는 다른 굴드의 평전에서 읽어서 아는 정도였는데 어느 정도로 파손되었는지 세세한 사항이 책에서 설명되고 어떻게든 이를 살리고 싶어 하는 굴드와 그런 굴드를 도우려는 조율사들의 모습을 대하다 보면 마음이 아려온다. 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는 CD318을 계속 만져가면서 녹음을 했다는 내용은 이전에 알지 못했던 사항이라 굴드의 녹음 전집을 꺼내 녹음 소스를 확인해보려 한다. CD318의 파손 이후에는 당연히 다른 피아노로 녹음했으리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굴드의 이른 죽음에는 CD318과의 이별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하는 막연한 짐작을 해본다. 책은 굴드의 죽음 이후 CD318의 행방도 다루고 있다. 굴드가 사랑했던 CD318의 현재 위치를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의 장점 중 하나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책의 초반부를 넘기는데 애를 먹었다. 왠지 난삽하고 정리되지 않은 글을 대하는 느낌이었는데 그 이후로는 무리 없이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번역 수준은 몇 군데에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어 번역가의 명성을 생각해보면 모자란다는 평을 하게 된다.
글렌 굴드라는 인물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다면 을유문화사에서 나온 ‘글렌 굴드’와 모노폴리에서 나온 ‘나는 결코 괴짜가 아니다’를 참조해보기 바란다. 동문선에서 나온 미셸 슈나이더의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는 내용이 다소 난해해서 쉽게 권하게 되지 않지만 글렌 굴드에게 관심 있는 이라면 참조할 게 많은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