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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관련 소설, 드라마, 영화를 대체적으로 즐기는 편이지만, 더러 고개를 돌리고 싶은 경우가 생긴다. 그것은 죄를 밝히기 위해서 형신하는 장면이 나오는 때인데, 특히나 역모와 관련해서 취조하는 장면이 나올 때면 어김없이 채널을 돌리거나 눈을 감게 된다. 압슬형이나 불로 지지는 장면이 너무나도 참혹해서 눈을 들어보게 되질 않는다. 심지어 영화 '혈의 누'에서는 거열형을 집행하는 장면이 나와서 황급히 눈을 감아버렸던 적도 있었는데, '조선민중 역모사건'도 읽다가 추국 내용이 자세하게 설명돼 있어서 내내 심기가 불편해질 수 밖에 없었다. 역모내용보다도 저 잔혹하고 고통스러운 고신을 어떻게 견뎠을까. 저렇게 혹독한 고문을 당하게 되면 설사 죄가 없더라고 유죄하고 자백하게 되지 않을까. 고신 장면이 내내 머리 속에 그려졌으니.
'조선민중 역모 사건'은 재판기록인 '추안급국안'과 '조선왕조실록'에 실려있는 역모사건을 싣고 있는데, 그 대상자들이 전부 평범한 민초라는 점에서 지배세력에 대한 민초들의 저항을 읽어낼 수 있었다. 거병을 계획한 것 역모만을 담은 것 아니고, 궁궐에서 행해진 저주나 왕실 신분 사칭,흉서, 대궐 침입까지 포함하고 있는데, 그것도 사실로 드러난 것만이 아니라 무고사건도 싣고 있었다. '대명률' 형률에 따른 죄목으로는 모반대역,저주, 조요서요언(造妖書妖言), 난언(亂言), 무고, 대역부도(大逆不道)에 해당했다.
놀라운 것은 역모를 모의한 주체들이 토호세력이나 유배죄인, 명화적, 노비, 승려, 무당, 양인, 무사,궁녀 등등 그야말로 힘을 잃은 양반에서부터 천민까지 다양한 신분층이 반역행위에 가담하고 있었던 것이다. 후기로 갈수록 조선의 사회변동이나 신분제의 동요가 심해졌고, 정감록 같은 민간사상이 널리 유포되면서, 모반을 꿈꾸는 백성들이 늘어갔던 것이다.
이 책에는 역모를 처벌하는 법적 규정이나 조사과정이 조목조목 실려있는데, 그 처벌은 실로 가혹하기 이를데 없었다. 모반대역 죄인에게는 주동자나 동조자를 구분하지 않고 자백다음날 능지처사를 했고,아버지와 아들은 16세 이상이면 모두 교수형 15세 이하의 아들 및 어머니와 딸, 아내와 첩 등은 공신의 노비로 전락했다. 심지어 백부, 숙부, 형제의 아들은 모두 3천리 밖으로 귀양을 보내는 끔찍한 연좌까지 이루어졌다. 재산 몰수는 기본이었고. 이렇게 발각되는 순간 멸문까지 감수하면서, 온가족의 삶을 걸고서 역모를 도모할 정도라면, 그만큼 신념이 뚜렷하거나 왕조에 대한 반감이 뼈속까지 차올라 있었거나 세상이 달라지지 않으면 절대로 제대로 살 수 없을 것이란 절망감에 사로 잡혔던 것이었을까.
성리학에 기반했던 조선이 왕과 아버지와 스승을 동일시하면서 삼강오륜을 강조했던 것은 왕조에 대한 반역을 생각조차 못하게 봉쇄하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역적 죄인들을 친히 심문하는 왕들의 모습이 상상이 됐다. 실제로 광해군은 자주 친국에 나섰다고 하고, 불에 지지는 고문은 왕이 친히 볼만한 것이 아니라고 친국에 나서려는 왕을 만류하는 신하도 있었다고 하니, 추국과정의 반인간성, 성리학에서 그렇게 역설하는 인륜의 도리가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던 것일까.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왕조에 대한 충성심을 강조한다해도 변화하는 세상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세상은 변화하고 사람들의 생각도 변화하지만 그런 변화를 수용하지 못한다면 결국 그 낡은 틀은 깨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1894년 삼일천하 뒤 일본으로 망명한 김옥균 그는 상하이에서 홍종우에게 살해당해 싸늘한 주검으로 조선에 돌아왔다. 그런 김옥균에게 조선은 대역부도한 죄를 물어 그 시신을 능지처참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역모를 민심 이반과 저항의 조짐으로 읽어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던 조선. 여전히 가혹한 형벌로 다스리는 것으로 일관하며 변화를 이끌어가지 못했던 조선의 한계를 드러낸 단적인 사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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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모 사건 기록으로 살펴본 조선의 두 얼굴 2016년 가을 대한민국엔 변혁의 바람이 불고 있다. 촛불집회라는 외형으로 보이지만 그 속내는 권력의 핵심부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의식의 발로다. 혼란스러워 보이는 오늘의 정치정세는 바로 그 변혁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이다. 이런 저항의식의 발로로 권력의 출발점이었던 국민들의 힘에 의해 권력의 속성을 바꾸었던 경험이 우리에게 있다. 1987년 6월 항쟁이 바로 그것이다. 자신의 권력을 위임하고 일상을 수고로움으로 엮어가는 백성이 필요할 땐 그 힘을 되찾아 역사의 맥을 세운다. 2016년 가을, 지금 우리의 모습에서 힘을 확인하는 중이다. 이 책 ‘조선 민중 역모 사건’은 절대 권력에 반기를 든 민중이 어떻게 저항과 반란을 시도했는지 들여다본다. 이 책의 모태가 되었던 것은 ‘추안급국안’이란 기록물이다. ‘추안급국안’은 '추안 및 국안'이란 뜻이다. 이 기록은 왕명을 받고 수사를 개시하는 특별 사법기관인 의금부에서 만들어진 사건 기록이다. 추안은 일반적인 심문인 추문의 결과를 담은 문서이고, 국안은 고문이 수반된 심문인 국문의 결과를 담은 문서다. 이 ‘추안급국안’에는 1601년(선조 34)부터 1905년까지 약 300년간 각종 사건을 다룬 추안 331개가 담겨져 있다. ‘추안급국안’에 담긴 다양한 기록물 중에서 국가가 정한 “모반대역謀反大逆·저주咀呪·조요서요언造妖書妖言·난언亂言·무고誣告·대역부도大逆不道” 등 여섯 가지 죄목과 이에 해당하는 아홉 가지 사건의 전말을 살펴, 당시 민중의 저항과 반란의 담론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는 실세를 잃은 양반부터 무당·승려·노비·일반 양인·무사·궁녀 등 다양한 계층에서 시도한 저항과 반란을 조선왕조는 어떤 방식으로 통제했는지도 함께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 민중 역모 사건’에 실린 사건으로는‘모반대역’의 사건 길운절과 소덕유의 역모 사건, 거사패와 유배죄인의 역모 사건, 박업귀의 역모 사건, 명화적 이충경의 역모 사건과 ‘저주’사건으로는 인조 대 궁중 저주 사건을 살피며, ‘조요서요언’사건으로는 요승 처경의 역모 사건 ‘난언’사건으로는 차충걸의 난언 사건 ‘무고’ 사건으로는 어느 광인의 역모 고변 사건 ‘대역부도’오재영과 이성세의 대궐 침입 사건 등이 다뤄지고 있다. 나아가 이 책에는 [더 알아보기]라는 코너를 통해 추국과 관련되어 더 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추국과 추안 속 고신의 종류, 추국을 진행했던 의금부의 위상과 이 기록에 등장하는 죄인들은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 모반대역죄인의 재산을 몰수했을까 등의 추국과 관련된 여섯 가지 내용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의금부라는 국가기관에서 왕조의 존립을 위협하거나 유교 윤리의 근간을 해치는 작은 행위도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이 기록으로만 볼 때 권력의 시각에서 바라본 사건에 대한 기록물이라는 한계가 분명하게 있지만 이를 통해 당시 사회의 분위기를 역으로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