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Keyword : 생일, 첫사랑, 풋사랑, 엉터리사랑, 항해사, 편지, 유교, 결혼, 반어법 Before 책 하나도 내 마음대로 골라서 못 읽는다면 참으로 슬픈 일이다. 동네에 북카페 성격의 서점 '마샘'이 들어온 이후, 책을 돈 주고 사서 보는 일이 드물어졌다. 돈도 돈이지만 책들이 너무도 많아 그 많은 책을 돈을 주고 일일이 살 필요를 못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주 공짜로 책을 보는 건 아니다. 서점에서 책을 읽으면서 아메리카노 한 잔씩은 주문하기 때문이다. 그런 행위가 바람직한 것인지는 채 세심하게 생각해 보지는 못했다. 그리고 네이버 카페에서도 책을 받아서 서평 쓰기를 하는 것으로 책값을 대신하는 방법도 있다. 그런데 이 방법으로 책을 읽는 것에는 약간의 부담이 있다. 흡사 기자나 작가가 마감시간에 쫓겨서 허겁지겁 글을 뱉어내야 하는 모양새로 알량한 서평을 강제로 써야 하는 압박감이 있는 것이다. 사고와 일상의 자유를 찾아 책을 읽는 것인데, 오히려 속박의 굴레를 뒤집어쓰는 듯한 느낌이라 영 개운치가 않다. 얼마 전에 초등학교 동창이 지인을 통해 책을 보내 왔다. 이 책을 서가에 꽂아 둔 후로 제목만 본 지도 꽤 되었다. 읽어야지 하면서도 손보다는 마음이 가는 대로 읽어야 진정한 책읽기라 변명하면서 그냥 지켜만 보았다. 그러다 드디어 그가 보내온 책 중에서 가장 두께가 얇은 소설 『엉터리 사랑』의 첫 장을 열어 젖히기로 한다. Reading 오랜 해외 살이에도 불구하고, 조국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대단한 친구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어디에 이러한 서정성을 감추어 두고 살아왔는지 흥미를 느끼게 하는 책이다. 그 이유는 책표지에 나와 있는 다음과 같은 글귀 때문이다.
이 문장에 공감하는 남자는 필히 지고지순한 여인네의 사랑을 믿는 사람일 것이다. 아니라면 자신이 만난 여인네들이 나 하나만을 사랑으로 여기기를 바라는 것일런지도 모르겠다. 저자에게 어찌 된 연고인지를 묻기보다는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해결될 문제이기에 첫 장을 넘기기로 한다. 생일을 맞은 민수는 문득 떠나간 시간들과 함께 다시금 예전의 그녀를 떠올린다. 민수를 과거의 추억으로 소환한 '냉기'의 정체는 무엇일까? 중학교 3학년의 민수의 첫사랑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사랑을 얻고자 공부와 신체 단련을 병행하게 된 민수. 이는 예지의 마음을 얻기 위한 노력이다. 하지만 그녀를 향한 민수의 마음만 커질 뿐, 아무런 진척이 없다. 그녀와의 사랑을 꿈꾸며 교회를 다니고 일기를 쓰고 책을 읽게 된 민수. 사랑은 이렇게 민수를 성장시켜 나간 것이리라. 하지만 첫사랑은 화려한 쓰라림으로 끝나게 되고, 민수는 타오르는 일기장과 함께 그녀에 대한 기억을 정리하게 된다. "누구나 첫사랑을 통해 타인에 대한 공감과 이해의 능력을 기르게 된다. 그리고 스스로를 이해하게 된다." "'착각'이라는 장애물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지구력과 담력이 필요하다."☞ 불행히도 어리석은 나 역시도 이러한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 비슷한 경험을 지니고 있다. 해양대에 진학한 민수는 몇 년이 지난 후 우연히 첫사랑 소녀 예지와 조우한다. 이때 그는 "사랑은 사랑스러움이 자취를 감출 때 성숙한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는다. 사랑은 사람을 명언 제조기로 만드나 보다. 두 번째 사랑은 첫사랑이 아닌 풋사랑이다. 진아의 일탈을 우연히 보게 된 민수는 그녀의 선물을 되돌려주며 관계를 청산한다. 첫사랑이 만들어 준 면역력으로 풋사랑의 아픔은 금세 회복된다. "가난은 강한 자립심으로 단련을, 허영에 물들지 않는 자제력을 주었다." 예지와 진아, 그리고 잠깐의 인연이었던 미경을 대신한 자리에 마음씨 고운 은주가 들어왔다. 수줍은 그녀의 고백은 민수의 마음을 흔들었지만, 민수는 예전의 풋내기가 아니었다. 그리고 부산과 여수를 오가며 둘의 사랑은 커지고, 급기야 결혼을 약속하게 된다. "Namaste" 항해사가 된 민수는 외국으로 긴 항해를 떠나게 된다. 둘 사이에는 여전히 편지가 오간다. 하지만 민수는 남존여비의 사상을 지닌 남자다. 은주의 사랑에 화답하기보다는 군림하려 했다.
긴 항해 동안 잠깐의 상륙은 선원들에게 있어서는 방종과 일탈의 시간이다. 3항사인 민수도 리스본에서 1타수와 갑판수 등 동료들과 어울리면서 비슷한 상황을 맞는다. 수컷 본능에 대한 시험의 순간이었다. "인간은 아침에 천사로 깨어나 악마로 잠이 든다"(석가모니) 항해를 마치고 돌아와 우연히 다시 만난 미경과의 대화는 육욕과 사랑의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된다. "사랑하고 후회하는 것이 사랑해 보지도 못하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낫다."(미경) 회사의 호출에 따라 급하게 다시 승선하게 된 민수는 은주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말을 한다. "내가 없는 동안에 나보다 좋은 사람 만나게 되면 나를 잊고 그 사람에게 가도 돼."(민수) 이 말로 인해 천사같던 은주는 커다란 상처를 받게 된다. 그러나 정작 민수는 그러한 사정을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떠난다. "낭만적이고 전설적인 삶보다는 평범하고 소박하여 가늘고 긴 삶을 살고 싶다."(민수) 민수는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면서 은주와의 아담한 꿈과 미래를 기대하였다. "진정한 여행이란 새로운 땅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찾는 것이다."(마르셀 프루스트) 민수는 선상생활 중에 독서를 통해 서양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넓은 안목과 높은 식견을 갖게 된다. 그러다 급기야는 신화 속의 여인들과 은주를 비교하기에 이른다. 1년 만에 돌아온 민수는 아픈 만큼 더 병들어 버린 사람이 은주라는 사실을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그는 1년 전처럼 자신만만하게 똑같은 실언을 은주에게 내뱉는다. 자신이 신봉하던 유교의 '남존여비'가 그의 발목을 낚아챈 셈이다. 그는 자기방식만 있었을 뿐, 여자로부터 사랑받는 법을 몰랐던 것이다. 그녀의 슬픔과 고독은 뜸해진 편지로 확인할 수 있었는데도 민수는 그저 자신의 계획에만 열중했을 뿐이다.☞사실 은주의 편지는 그녀의 학력에 비하면 꽤 높은 수준의 문장력이다. 문학적 수사와 이성적 논리가 함께 드러나기 때문이다. 'I envy nobody, everybody envies me(누구도 부러워하지 않고, 어느 누구도 나를 부러워하지 않는 것)' "슬픈 예감은 결코 틀리지 않는다."는 말처럼 은주는 결국 그의 곁을 떠나고 만다. 항해 중에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민수는 자꾸만 은주를 떠올린다. 그녀를 행복하게 해 주겠다는 다짐은 더욱 커져만 가는데·······. "주류는 돈을 위해서 일하지만 비주류는 삶을 위해 일한다." 어려움에 처한 배의 상황을 회사에 전했지만, 회사는 원래의 목적지인 일본으로 전속력 항해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비전문가들의 무지와 오만도 문제지만 선박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전문가들의 왜곡 행위와 비열함도 그에 못지않다는 게 선장이 인식하는 선박 회사의 현실이다. "한국의 기업에서 리더십 발휘란 오너가 바라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다행히도 선장은 분별력이 있는 인물이었다. 기상과 선박의 상황을 감안하여 안전하게 침로를 결정했다. "학교 안에서는 배운 뒤에 시험을 보지만, 학교 밖 인생은 시험을 본 뒤에야 배우게 된다. 그런데 틀렸던 답안을 자꾸만 틀린다." 은주와의 벅찬 재회를 기대하며 돌아온 민수를 기다리고 있는 건 그녀의 결혼 소식이었다. ☞마치 내 일인 마냥 듣고 싶지 않았던 가슴 쓰라린 소식이다. 다행히도 난 민수처럼 약혼자를 떠나보낸 안타까운 이별을 경험한 바는 없지만, 실연의 상처는 더디 아물고 오래도록 그 흔적이 남는 법이라는 것에는 깊이 공감한다. After 이 소설은 저자의 연애 이력이 각색되어 있다. 연애와 싸움은 제3자로서 구경하는 것이 더 재미있다. 그것들은 당사자들에게 있어 마음이든 육체든 기어이 생채기를 내야 끝나는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인간은 어쩌면 '매조히즘'의 본성을 버리지 못한다는 걸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결실을 통한 충만보다 결핍을 통한 상실이 우리를 더욱 오랫동안 설레게 한다는 건 슬프지만 사실이다. 소설을 읽는 동안 담백하기만 했던 나의 10대부터 지금까지의 삶을 자연스레 반추하게 되었다. 가정 환경 탓을 하기엔 너무도 많은 세월을 지나왔지만, 유별나게도 잔소리를 들으며 억압된 삶을 살았던 게 새삼스럽게 선명해져 온다. 이러한 환경은 소심함과 우유부단함을 강화시키고, 부정적인 예단에 집착하게 하였다. 그래서인지 소설 속 민수만큼 젊은 날이 다채롭지 못했다. 그런 게 늘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리고 한결같이 도도했던 그 시절의 그녀들도 애잔하기만 하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여인네들이란 늘 본능적으로 배려하는 남자보다는 강한 남자를 좋아하는 경향이 농후하다. 존중보다는 이끌어주는 남자를 선호한다. 이런 사실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지만, 다시 돌아가도 여전히 미숙할 거라는 사실에 또 한 번 좌절을 실감한다. 아무리 미욱했던 청춘이지만, 나에게도 운명적인 첫 사랑이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레마르크와 지드를 알게 해 주었으며, 빈센트를 조명한 돈 맥클린의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상실과 함께 충만을 가르쳐 준 고마운 존재였던 셈이다. 또한 그녀를 통해 소년이 남정네가 되어가는 과정보다 소녀가 여인으로 변신하는 과정이 훨씬 조밀하다는 것도 깨달을 수 있었다. 울퉁불퉁 어질어질한 청춘이었지만, 그래도 그리운 건 사실이다. 소설 속 민수도 소설 밖 저자와 우리들 모두 이것에는 이견이 없을 거라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