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4)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75%
  • 리뷰 총점8 25%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10.0
  • 50대 9.0
리뷰 총점 종이책
나는 문자기반의 문화가 좋기만 한데..
"나는 문자기반의 문화가 좋기만 한데.." 내용보기
창비의 특별기획 "공부의 시대"는 각자 자기분야에서 자신만의 길을 걸어온 다섯 명의 강사가 공부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열강을 했다고 했다. 그 강연에서 미학자 진중권은 '디지털시대 무엇을 공부할 것인가?' 라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요즘 들어 인문학이 위기를 맞이했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사 심심찮게 들린다. 구체적으
"나는 문자기반의 문화가 좋기만 한데.." 내용보기

창비의 특별기획 "공부의 시대"는 각자 자기분야에서 자신만의 길을 걸어온 다섯 명의 강사가 공부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열강을 했다고 했다. 그 강연에서 미학자 진중권은 '디지털시대 무엇을 공부할 것인가?' 라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요즘 들어 인문학이 위기를 맞이했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사 심심찮게 들린다.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위기이고, 왜 위기를 맞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과거와 비교해서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항상 위기론은 그것에 기대어 덕을 보려는 사람들에 의해 유포되고 과장되기 마련이다. 혹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 것을 두고 위기라 한다면 그것은 어떤 방법으로 조사했던 간에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또한 눈앞에 보이는 한가지 이유만을 가지고 전체를 평한다면 그것 역시 침소붕대가 아닐 수 없다. 위기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왜 위기인지를 따져야 공감할 수 있고 또 그 해결책을 찾을 수 있지 않나 싶다.

 

진중권은 이런 인문학의 위기라는 것에 대해 그 원인을 거시적인 사회변동과 미디어 패러다임의 변화에서 찾고 있다. 영리활동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은 순수한 학문들이 그 가치가 평가절하되어 점점 사라져 가는 것은 거시적인 사회변동의 결과이다. 예전에는 순수학문이라는 것이 그 명맥을 유지했지만 지금은 들어보지도 못한 학과들이 수두룩하다. 이름만 들어서는 무엇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인지 감을 잡기도 힘들다. 이처럼 시장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사회로의 변화가 순수학문에 대한 위기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현대사회는 디지털 사회이다. 과학기술과 미디어의 발전으로 맞이한 디지털시대는 소통하는 방식마저도 문자커뮤니케이션에서 영상커뮤니케이션으로 바뀌었다. 그 결과 문자에 기반을 둔 의식이 무너지고 영상적 의식, 주술적 의식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사람들은 책 보다는 영상에 더 친숙해진 것이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문자문화의 대표격인 인문학이 설 자리를 잃었다는 것이다. 아니 영상문화시대에는 문자문화시대와 요구되는 질문과 해법이 달라야 함에도 그러지 못했다는 말이 더 맞는 말이 아닐까 싶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인문학도 당연히 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 새로운 인문학은 현대의 문화가 과거처럼 텍스트가 아니라 사운드와 이미지 위에 서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디지털 생활세계에서 제기되는 새로운 물음들을 찾아내어 그것에 적극적으로 대답할 준비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디지털시대의 인문학으로 존재론, 인간학, 사회학을 새롭게 풀어 놓는다. 현실을 대하는 대중의 존재론적 태도 자체가 변한 것에 기초하여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더불어 현실의 본질이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농담으로써의 철학과 같은 '파타피직스'의 개념으로 디지털존재론을 설명한다. 또한 현대는 자본주의 성격자체가 생산자본주의에서 소비자본주의로 바뀌었다. 그는 이렇게 바뀐 소비자본주의가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만나면서 기호자본주의, 미적자본주의, 혹은 유희자본주의의 형태로 전개되고 있다며, 디지털 인간학을 '호모 루덴스'의 부활로 풀어낸다. 마지막으로 디지털 사회학은 매체로 인해 변화한 사회에서는 그 이론도 새로 구성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본주의 성격의 변화는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인간관계의 양상, 특히 자본과 노동의 관계가 달라짐을 의미한다며, 그는 이를 노동이 유희가 되는 사회라는 키워드로 설명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디지털사회는 어느 시대보다도 창의성이 강조되고, 또 강요되는 시대라는 것이다.

 

이처럼 창의성이 강요되는 사회에서 인문학은 어떤 기능을 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그는 인문학이 이제는 해석학에서 제작학으로 변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문학이 디지털 테크놀로지라는 공학적 프레임을 받아들였다면 그것은 이미 알게, 모르게 텍스트의 해석에서 콘텐트의 제작으로 성격이 변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과학의 연구가 전통적인 인문학의 분야까지 침투하는 것을 위기로 볼 것이 아니라, 새로운 도약을 위한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으로 보는 우리의식의 변화를 주문하고 있다.

 

나는 디지털시대를 살고 있지만 서도 아직은 서툴기만 하다. 휴대전화도 없었던 옛날이 더없이 그립기만 하다. 마지못해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또 인터넷을 통해 블로그를 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아날로그적인 삶을 꿈꾸고 있다. 그래서 책만큼은 전자 책이 아니라 종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사회는, 생활은 점점 더 디지털화 되고 있다. 지금까지는 비록 책을 통해서, 그리고 문자기반의 문화를 통해서 삶을 성찰하고 더 나은 삶이 무엇인지를 고민하지만 조만간 바뀌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공부할 것이 더 늘어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k*****1 2016.07.22. 신고 공감 6 댓글 12
리뷰 총점 종이책
진중권의 테크노 인문학의 구상: 공부의 시대
"진중권의 테크노 인문학의 구상: 공부의 시대" 내용보기
'진중권' 작가 알림 신청을 해두었기에 이 책이 나왔다고 문자를 받았다. 동네 도서관에 신청해서 우선 대출해 읽었다. 강연 내용을 글로 푼 책이라 구어체로 써 있어서 쉽게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미디어 아트"처럼 진중권 교수님이 편집한 책이나 미학을 다룬 책 여러 권을 이미 읽었기 때문에 이번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도 비교적 익숙했다. 게다가 1학기 때 대학원에서 "신교수
"진중권의 테크노 인문학의 구상: 공부의 시대" 내용보기

'진중권' 작가 알림 신청을 해두었기에 이 책이 나왔다고 문자를 받았다. 동네 도서관에 신청해서 우선 대출해 읽었다. 강연 내용을 글로 푼 책이라 구어체로 써 있어서 쉽게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미디어 아트"처럼 진중권 교수님이 편집한 책이나 미학을 다룬 책 여러 권을 이미 읽었기 때문에 이번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도 비교적 익숙했다. 게다가 1학기 때 대학원에서 "신교수매체론"을 들으면서 가까운 미래를 잘 살기 위해 지금 청소년 세대는 무엇을 어떻게 배워야 하는가, 또 지금 청소년 세대는 우리와 사고 구조가 어떻게 다른가에 대해 고민하며 학습에 이용할 수 있는 테크놀로지 자체에 대해 배웠기 때문에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여러 문제 의식에 공감이 되었다.  

 

진중권 교수님 책을 읽어오면서 나도 새로운 미디어를 향유하고 있는 현대인의 지각 방식이나 사고 방식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궁금해지곤 했다. 예를 들어 책을 읽던 세대에 비해 영화를 즐겨보는 요즘 사람들은 잘게 잘라 편집한 영상에 익숙해 있어서 지각이나 사고도 파편적으로 잘라서 하느라 집중력이 흐트러지기 쉬운 인간으로 변하고 있는지에 대해 궁금하다. 뇌 과학 연구로 밝혀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요즘 청소년들은 기성세대에 비해 집중력이 부족하다'는 경험적인 심증이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호모 코레아니쿠스" 같은 책에서 이미 수 년 전에 이미지 세대와 문자 세대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다. 다시 구술, 이미지 세대가 돌아온다는 통찰이 흥미로웠다. 그의 예언?대로 지난 수 년 동안만 해도 문자보다 이미지와 영상이 훨씬 중요한 매체로 여겨지고 있다. 책보다 영상이 더 익숙한 세대는 지각과 사고 방식이 어떻게 변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내용이 있어 다소 길지만 옮겨둔다. 책 읽는 이들은 역사를 선형적으로 파악하고, 영상 세대는 시간이었던 역사를 공간으로 파악한다. 또한 옳고 그른 사실이었던 역사를, 픽션이 섞여도 괜찮으니 재미 '있어야 하는' 이야기로 파악한다.  

"매체가 의식을 재구조화한다고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문자로 의식을 구성한 사람과 영상으로 의식을 구성한 사람은 사고방식 자체가 다릅니다. 문자문화 세대에 속하는 저 같은 사람은 세계를 알고 싶으면 책을 읽어야 했습니다. 책 속에 든 정보는 앞에서 뒤로, 시작부터 끝까지 선형적으로 수용되죠. 문자세대는 선형적 시간관념에 따른 역사주의적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간은 과거로부터 흘러와 현재를 거쳐 미래로 날아갑니다. 우리는 시간의 이 비가역적 흐름 속에서 역사적 사건의 의미를 찾지요. 문자문화의 역사주의적 의식은 '과거 피억압자의 기억을 오늘에 기념하고, 현재의 우리를 희생하여 후세에게 더 정의로운 사회를 물려주는 것'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합니다. '우리가 지금 하는 이 모든 희생이 텔로스(telos), 즉 언젠가 인류가 도달할 이상사회를 통해 보상을 받는다'는 의식이죠.

요즘 젊은이들에게 이런 의미의 역사의식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선형적, 역사적, 계몽적 의식을 가진 우리 세대는, 책으로 '배운' 우리가 민중을 계몽하여 함께 더 정의롭고 자유로운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아주 낯선 생각이죠. 요즘 세대에게 너희들에게 역사는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사극의 배경이죠'라고 대답할 겁니다. 미래는 무엇이냐고 물으면 아마도 'SF의 배경'이라고 대답하겠죠...

우리에게 '히스토리'(history)인 것이 젊은 세대에게는 '스토리'(story)인 겁니다. '역사'에서는 참, 거짓을 따지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역사 왜곡'을 그토록 경계하는 거죠. 반면 '이야기'에서 참, 거짓은 중요한 게 아닙니다. 과거에는 거짓말하는 자를 나쁜 놈이라 불렀죠. 요즘 나쁜 놈은 거짓말하는 자가 아닙니다. 오늘날 죄인은 거짓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루한 사람입니다. 다른 건 다 용서해도 지루한 것만은 용서 못 한다는 거죠. 설사 거짓말이라도 재미만 있으면 된다는 겁니다. 참이냐 거짓이냐의 구도가 재미있냐 지루하냐의 구도로 변해버린 겁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역사적' 의식과 구별되는 젊은 세대의 '서사적' 의식입니다. 영상세대는 시간에 대해서도 비선형적 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비가역적이었던 시간이 클릭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29-31쪽.

"과거의 영상과 디지털 영상은 성격이 전혀 다릅니다. 가령 영화나 텔레비전의 영상은 관객에게 일방적으로 전달됩니다. 관객은 영상 속에서 전개되는 사건에 개입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사건을 앉아서 '운명'으로 경험하게 됩니다. 반면 컴퓨터의 영상은 다르죠. 그것은 쌍방향성을 허용합니다. 때문에 영화와 텔레비전을 보고 자란 세대는 일단 영상을 보면 뒤로 물러나 어떤 일이 벌어지나 구경을 하려 합니다. 하지만 태어나면서부터 컴퓨터 게임을 한 세대는 영상을 보면 달려들어 조작하려 듭니다.

과거의 정치가 대중을 일방적인 동원의 대상으로 여겼다면, 디지털 시대의 정치는 대중을 능동적이며 적극적인 '플레이어'로 만들어야 합니다..." 139-140쪽.

 

대학생 때부터 슬슬 뇌과학에 관심이 생겨(혹은 그 시기부터 뇌과학이 유행하면서 책이 쏟아져 나왔기 떄문에 접근성이 좋아져서) 관련 책을 읽어오고 있었다. 보이지 않던 마음을 눈으로 보여준다니 얼마나 매력적인 학문인가. 인간의 도덕 판단과 행동에 대해 관심이 많은 도덕 윤리 교육계에서도 당연히 최신 신경과학 연구 흐름에 관심이 많아서 석사 파견 때 '인성교육'을 다루는 수업에서 뇌과학계 권위자인 가자니가의 "왜 인간인가" 같은 책을 읽었다. 이번 2학기에는 '뇌'에 대한 강의 두 개를 신청해두었기 때문에 기대하고 있다. 요즘은 '융합'을 유행처럼 말하고 있는데 아래와 같은 저자 주장처럼 철학(예를 들어 현상학)과 인지과학, 신경과학은 주고 받을 수 있는 지점이 많을 듯하다. 근대에 문과와 이과가 전혀 다른 분야인 듯 철저히 구분을 해두었지만 이제는 경계를 없애고 넘나들며 서로에게서 배워야할 때다.  

"이를 뒤집으면, 인간의 의식과 심리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철학이 인공지능 실험에 모델을 제시해줄 수가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거꾸로 과학 실험은 시뮬레이션을 통해 이제까지는 불가능했던 철학적 명제의 진위 검증을 가능하게 해줍니다. 최근의 인공지능 연구를 지켜보자면, 마치 철학사가 다른 방식으로 반복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인공지능은 인지능력을 넘어 인간의 감성과 감정 능력을 시뮬레이션하는 데까지 나아가고 있습니다. 인공지능 연구자들은 현상학 연구에서 많은 것을 참고할 수 있을 겁니다..." 115쪽.

 

 

인간에게 꼭 필요한 질문들을 담은 좋은 인문학 콘텐츠를 현대인이 익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테크놀로지 미디어라는 그릇에 잘 담아내자고 저자는 주장한다. 자신이 "미학 오디세이" 초창기 때부터 '이 책은 텍스트와 이미지가 함께 이야기한다'고 줄곧 강조했듯이. 나도 그 생각에 동의한다. 올해는 '사회문제해결실천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결과물을 '멀티미디어 보고서'로 받겠다고 선언했다. OECD DeSeCo 프로젝트에서도 주장했지만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 기술은 미래 핵심 역량 중 하나라는데 동의하기 때문이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나의 좋은 아이디어를 타인에게 잘 전달하는 기술이 필요하고 당분간 가까운 미래에는 이를 적절한 프레젠테이션 도구, 이미지, 영상 등에 녹여내서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을 많이 사용하게 될 테다.

"인문학 분야에서 저의 작업 역시 이 미디어적 전회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제가 하는 인문학의 세가지 주제도 그 프레임 안에서 얻어지죠. (1) 디지털의 존재론(ontology), 즉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현실의 개념을 어떻게 바꿔놓고 있는가? (2) 디지털의 인간학(anghropology), 즉 디지털 혁명 이후 사회의 이상적 인간형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 (3) 디지털의 사회학(sociology), 즉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인간이 협업하고 소통하는 방식을 어떻게 바꿔놓고 있는가? 바로 이 세가지 문제영역이 제가 현재 중점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주제들입니다." 60쪽.

YES마니아 : 플래티넘 o****2 2016.08.26. 신고 공감 3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인문학의 미래
"인문학의 미래" 내용보기
대학에서 가르쳐봤자 기업에서 쓸 수 있는 인재를 못만드니 또 가르쳐야한다. 차라리 그럴바에야 내가 대학을 인수해서 가르치는게 돈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가 인ㅇ순학 위기의 출발점이라 생각한다. 인문학의 위기는 대학이 자기 역할을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위기다. 이야기를 참 재밌게 풀어가신다. 디지털시대의 인문학을 어떻게 접해야하는지 해법을 가르쳐준다. 인간
"인문학의 미래" 내용보기

대학에서 가르쳐봤자 기업에서 쓸 수 있는 인재를 못만드니 또 가르쳐야한다.

차라리 그럴바에야 내가 대학을 인수해서 가르치는게 돈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가

인ㅇ순학 위기의 출발점이라 생각한다.

인문학의 위기는 대학이 자기 역할을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위기다.






이야기를 참 재밌게 풀어가신다.

디지털시대의 인문학을 어떻게 접해야하는지 해법을 가르쳐준다.

인간을 가장 오래 연구한 학문인 인문학의 현재 처한 윅치와 앞으로 나갈 방향을 논의한다.






TV 나오시는거 가끔 봤지만 토론 듣지는 못했는데 지금 교수님 글을 읽으니 후회된다.

제 개인적으로 인문학의 위기를 다르게 봅니다.






제목 : 미즈노교수와종로피맛골이야기


지금은 일본으로 돌아갔지만 생글생글 잘 웃던 미즈노교수가 방송에 잘 나오던 시절이 있었다.
사람들이 스튜디오에 모여서 토론하던 곳에서 미즈노교수는 "저희 일본에서는 자식이 사업자금이 부족해 시골 부모님에게 가 가만히 있으면 말을 안해도 부모님이 알아서 주십니다. 또 연인들끼리도 사랑한다는 말을 안해도 다 압니다." 했던 것으로 주억난다. 그 말에 주변사람들은 "에! 그게 뭐야 말을 해야지" 하며 어이없어 했다.







이야기가 좀 다를진 몰라도 18세기 프랑스에선 자신의 문화의 우수성을 차등화하기 위해 `야만'이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타문화를 자신의 문화적 시각으로만 해석하려는 극단적인 예가 '야만'이라는 단어다.

12세기 한국과 일본에는 모두 무신정권이 같은 시기에 등장한다.

청기백기게임의 원형도 알고보면 운동회때의 청백전이 아니라

백강전투후 400년동안 일본에 존재했던 시대가 헤이안시대다

수도를 두 번씩이나 옮긴 간무천황이 794년에 헤이안쿄(교토)를 도읍으로 정착시킨후 1185년에 이르러서야 미나모토가문이 다카모리왕의 손자 다이라씨와 전장에서 맞붙었을때 서로를 구별하기 위해 한쪽은 등에 홍기를 꼽고 한쪽은 등에 백기를 꽂은데서 청백전이 유래한다.

이로인해 다이라씨가 궤멸하고 군사,경찰,행정권이 미야모토노 요리토모에게 넘어간다.

이 때 시작된 또 하나의 풍습이 있는데 무신정권의 호화로운 요리인 가이셰키요리와 승려들의 공양음식인 쇼진요리가 합해져서 현재의 일식요리의 원형이 탄생되기도 한다.

이런 전통이 1868년 메이지천황의 시대가 도래할 때까지 700년 동안 무신들이 전국에서 할거하는 전국시대가 계속된다.







우리나라에 군청단위가 있다면 일본에서 군청단위에 영주가 있어 그곳의 무사집단과 농민집단이 하나가 되어 서로 경쟁하는 시대를 그들은 700년이나 지속되어 유전자에 각인된다.

만일 거기속한 사람이 자신의 불만이나 억압에 대한 표출을 하게되면 그곳 집단에 해를 끼쳐 단결에 해가된다하여 자신의 욕구불만을 자신의 내부로 내면화하는 문화가 뿌리를 내려 지금도 일본에선 제일 심한 욕이 우리가 잘아는 '빠가야로'라는 바보란 말이 제일 심한 욕이다.

어느 기자가 그런다 한국과 일본의 고소고발 사건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난다고 이건 단순비교가 아니라 원인을 역사적 유래를 놓고 비교해야 알 수 있는 것이다.

나라마다의 문화를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는건 무리가 따를 때도 있다.

그럼 한국욕의 발원지는 어디인가 '바보'는 욕도 아니다 그냥 애칭 정도일까







조선은 600년동안 양반중심의 중앙집권제가 뿌리를 내린다.

서민들은 자신에게 가해지는 멸시와 천대를 뒤에서 욕으로 푸는걸로 해결한다

결론적으로 한국은 외부의 억압으로 인해 생기는 불만을 욕으로 푸는 문화를 발달시키게 되었고 일본은 외부의 억압으로 인해 생기는 불만을 내면화하는 문화가 발달하게 된다.

조선은 사대부의 나라다 사대부의 발원지를 보자.

진,송시대이후 사대부라는 명칭의 직업은 비록 달랐지만 농,공,상과 같이 섞여 살았다가 후대에와서 사대부들이 곧 문벌이 높은 집안을 가리키게 되었다. 그들이 사는 곳은 농,공,상과 완전히 구별되도록 서로 섞여 거주하지 않게 된 것이다.

압구정도 중국 송나라의 정승 '한충헌'이 황제를 새로 세운 공을 세운뒤 압구정이라는 정자를 지은후 벼슬을 버리고 갈매기와 함께 논다는 겸손의 뜻이 원형이다.

그 압구정이 조선으로 넘어와 '계유정난'을 기획한 한명회가 갈매기압으로 불리던 강남의 땅에 정자를 지은후 그곳의 뜻이 서민들에 의해 누를압으로 바뀌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게 된다.








발원지를 알면 재미있는 것들이 많다.

한강의 발원지도 오대산 '우통수'와 태백 황지의 창죽동의 검룡소를 발원지로 보기도한다.

여기는 귀한 곳이기에 잘 보존되고 있다.

그럼 지금 한국은 발원지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문화유산은 또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있을까

안압지,불국사,석굴암,첨성대,무녕왕릉,고인돌,장군총등 거의 다인 문화유산은 모두 귀족이나 왕족들을 위한 유산이다.

그럼 우린 이런 문화유산을 정말 잘 지키고 있을까

우리는 약간이라도 불편하거나 보기 싫으면 싹쓸어버리고 다시 짓는 일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








종로의 피맛골,중앙청,명성황후생가담,창덕궁산책로,천재시인 백석과 길상사 자야여사가 사랑을 나누던 집, 올림픽 메인스타디움과 국회의사당을 지은 건축가 김수근의 집도 싹 밀었다.

이제껏 나온 문화유산중 95%인 서민들의 유일한 유산 한국에 욕이 왜 많은지를 알려주는 유일한 증거가 종로의 '피맛골'이다.

우리는 지금 전통과 낙후를 구분못하는 혼돈에 빠져 있지않은지...

가난의 잔재를 지워버리고 싶었던 구시대적 발상이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의 판단을 흐리고 있는 것일까








1392년 조선은 개국했고 그 시절 숭례문을 만들게된다.

숭례문은 한명회의 계유정난때도 있었고 임진왜란떄도 있었고 흥선대원군시절에도 있었고 김영삼대통령이 치적이라고 내세우는 우를 범하며 중앙청을 부술때도 있었지만 69세 노인에 의해 크게 훼손되었고 그 노인은 국민들의 비난을 받으며 감옥으로 향했다.

종로의 피맛골은 1392년 조선의 개국시절 서민들에 의해 자생적으로 생기게된다.

피맛골은 한명회의 계유정난때도 있었고 임진왜란 때도 있었고 흥선대원군시절에도 존재했고 김영삼대통령이 치적이라고 자랑하며 중앙청을 부술때도 있었지만 한 정치인의 야망에 의해 원형이 크게 훼손된 후 국민들은 그 정치인을 지지하며 청와대로 보내자고 한다.

몇몇 정치인의 생각만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도시를 통째로 바꾸려는 발상 이제는 좀 바꿀떄도 되지 않았을까

외국에서는 모짜르트생가 베토벤 생가에서 외국정상들과 칵테일 파티를 한다는데 왜 한국은 야만의 시대에 살아야할까

 

 

 

참고도서 몇권만 추려서 권한다

 

서울, 북촌에서

 

좋은 길은 좁을수록 좋고, 나쁜 길은 넓을수록 좋다

 

일생에 한 번은 독일을 만나라

 

세계는 기다리지 않는다

 

내사랑 백석

 

맨큐의 경제학 페이지230 (역사적건물의 외부효과)

 

구석구석 찾아낸 서울의 숨은 역사이야기

 

자미원88

YES마니아 : 플래티넘 이달의 사락 s*****6 2022.09.26.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디지털 시대에 무엇을 공부할 것인가 [진중권의 테크노 인문학의 구상]
"디지털 시대에 무엇을 공부할 것인가 [진중권의 테크노 인문학의 구상]" 내용보기
산업사회에서는 노동과 여가가 공간적, 시간적으로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노동은 공장 안에서, 작업 시간 안에 이루어지고, 여가는 공장 밖에서, 공장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중략) 정보화사회에서는 노동과 여가가 시간적, 공간적으로 명확히 구별되지 않습니다. 클릭 한 번에 근로 모드에서 오락 모드로 갔다가, 부장님 들어오시면 다시 클릭 한 번에 다시 근로 모드로 되
"디지털 시대에 무엇을 공부할 것인가 [진중권의 테크노 인문학의 구상]" 내용보기

산업사회에서는 노동과 여가가 공간적, 시간적으로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노동은 공장 안에서, 작업 시간 안에 이루어지고, 여가는 공장 밖에서, 공장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중략) 정보화사회에서는 노동과 여가가 시간적, 공간적으로 명확히 구별되지 않습니다. 클릭 한 번에 근로 모드에서 오락 모드로 갔다가, 부장님 들어오시면 다시 클릭 한 번에 다시 근로 모드로 되돌아올 수 있지요. 디지털 시대에 노동의 수단과 오락의 수단은 일치합니다. 오늘날 대중은 컴퓨터로 일하고, 컴퓨터로 놉니다. (pp.91-2) 


초등학교 시절 우리 집 안방에는 구형 컴퓨터 한 대와 <컴퓨터 일주일만 하면 전유성만큼 한다>라는 책이 있었다. 나와 동생은 틈만 나면 그 책을 읽으며 컴퓨터 하는 방법을 익혔다. 요즘 초등학생들은 어떨까? 우리 자매처럼 책으로 컴퓨터를 '공부'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젓가락질을 익히듯 간단한 컴퓨터 조작법쯤은 금방 익히고 한글을 배우기도 전에 스마트폰을 자유자재로 다루게 될 것이다. 


이십 년 전만 해도 컴퓨터 입문서가 베스트셀러였지만 지금은 컴퓨터 입문쯤 갓난아기도 할 수 있고 블로그로 마케팅하기, 유튜브로 돈 벌기쯤 되지 않으면 책도 못 낸다. 이렇게 급속도로 기술이 발전하는 디지털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공부해야 할까. 미학자 진중권은 이 책에서 디지털 시대에 필요한 인문학 공부의 모범을 보여준다. 저자에 따르면 '인문학의 위기'는 비단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저자가 조사차 방문했던 독일의 베를린 자유대학에서도 고전문헌학과가 없어질 예정이다. 


인문학의 위기는 미디어 패러다임의 변화에 따른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영상 매체와 디지털 기술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문자보다 영상을, 장문(長文)보다 단문(短文)을 선호하게 되었다. 콘텐츠 또한 진실보다는 허구라도 재미있는 것을 추구하게 되었고, 자연히 히스토리(history)보다는 스토리(story)의 가치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인문학을 계속할 수 있을까. 저자는 인문학을 하나의 스크립트로 보는 시각을 갖춰야 한다고 설명한다. 앞으로는 인문학이 텍스트로서가 아닌 사운드 또는 이미지와 결합된 형태로 이용될 가능성이 높다. 인문학 팟캐스트의 범람이 이를 증명한다. 인문학은 또한 변화한 현실에서 주제를 찾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미 있는 것'만 연구 대상으로 삼지 말고, '아직 없는 것'을 상상해야 한다. 최근 팩트(fact)와 픽션(fiction)이 결합된 팩션 사극이 인기를 끄는 것이 그 예다. 


디지털 시대에 중요한 것은 기술적 상상력이다. 기술적 상상력은 '이미 있는 것'이 아니라 '아직 없는 것'을 떠올리는 능력이다. '아직 없는 것'을 상상하기 위해서는 놀이가 중요하다. 하위징아가 말한 '호모 루덴스'가 복귀하는 것이다. 일과 놀이가 구분되지 않는 것이 고민이었는데, 저자가 정보화사회에서는 노동과 여가가 명확히 구별되지 않는다고 하니 마음이 놓인다.

이달의 사락 j****y 2016.10.1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