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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의 특별기획 "공부의 시대"는 각자 자기분야에서 자신만의 길을
걸어온 다섯 명의 강사가 공부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열강을 했다고
했다. 그 강연에서 미학자 진중권은 '디지털시대 무엇을 공부할
것인가?' 라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요즘 들어 인문학이 위기를 맞이했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사 심심찮게 들린다.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위기이고, 왜 위기를
맞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과거와 비교해서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항상 위기론은 그것에
기대어 덕을 보려는 사람들에 의해 유포되고 과장되기 마련이다. 혹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 것을 두고
위기라 한다면 그것은 어떤 방법으로 조사했던 간에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또한 눈앞에 보이는 한가지 이유만을 가지고 전체를 평한다면 그것 역시 침소붕대가 아닐 수 없다. 위기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왜 위기인지를 따져야 공감할 수 있고
또 그 해결책을 찾을 수 있지 않나 싶다.
진중권은 이런 인문학의 위기라는 것에 대해
그 원인을 거시적인 사회변동과 미디어 패러다임의 변화에서 찾고 있다. 영리활동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은 순수한 학문들이 그 가치가 평가절하되어 점점 사라져 가는 것은 거시적인 사회변동의 결과이다. 예전에는
순수학문이라는 것이 그 명맥을 유지했지만 지금은 들어보지도 못한 학과들이 수두룩하다. 이름만 들어서는
무엇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인지 감을 잡기도 힘들다. 이처럼 시장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사회로의 변화가
순수학문에 대한 위기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현대사회는 디지털 사회이다. 과학기술과 미디어의 발전으로 맞이한 디지털시대는 소통하는 방식마저도 문자커뮤니케이션에서 영상커뮤니케이션으로
바뀌었다. 그 결과 문자에 기반을 둔 의식이 무너지고 영상적 의식, 주술적
의식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사람들은 책 보다는 영상에 더 친숙해진 것이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문자문화의 대표격인 인문학이 설 자리를 잃었다는 것이다. 아니
영상문화시대에는 문자문화시대와 요구되는 질문과 해법이 달라야 함에도 그러지 못했다는 말이 더 맞는 말이 아닐까 싶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인문학도 당연히 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 새로운 인문학은 현대의 문화가 과거처럼 텍스트가 아니라 사운드와 이미지 위에 서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디지털 생활세계에서 제기되는 새로운 물음들을 찾아내어 그것에 적극적으로 대답할 준비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디지털시대의 인문학으로 존재론, 인간학, 사회학을 새롭게 풀어 놓는다. 현실을 대하는 대중의 존재론적 태도
자체가 변한 것에 기초하여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더불어 현실의 본질이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농담으로써의
철학과 같은 '파타피직스'의 개념으로 디지털존재론을 설명한다. 또한 현대는 자본주의 성격자체가 생산자본주의에서 소비자본주의로 바뀌었다. 그는
이렇게 바뀐 소비자본주의가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만나면서 기호자본주의, 미적자본주의, 혹은 유희자본주의의 형태로 전개되고 있다며, 디지털 인간학을 '호모 루덴스'의 부활로 풀어낸다.
마지막으로 디지털 사회학은 매체로 인해 변화한 사회에서는 그 이론도 새로 구성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본주의
성격의 변화는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인간관계의 양상, 특히 자본과 노동의 관계가 달라짐을 의미한다며, 그는 이를 노동이 유희가 되는 사회라는 키워드로 설명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디지털사회는 어느 시대보다도 창의성이 강조되고, 또 강요되는 시대라는 것이다.
이처럼 창의성이 강요되는 사회에서 인문학은
어떤 기능을 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그는 인문학이 이제는 해석학에서 제작학으로 변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문학이 디지털 테크놀로지라는 공학적 프레임을 받아들였다면 그것은 이미 알게, 모르게 텍스트의
해석에서 콘텐트의 제작으로 성격이 변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과학의 연구가 전통적인 인문학의 분야까지
침투하는 것을 위기로 볼 것이 아니라, 새로운 도약을 위한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으로 보는 우리의식의
변화를 주문하고 있다.
나는 디지털시대를 살고 있지만 서도 아직은 서툴기만 하다. 휴대전화도 없었던 옛날이 더없이 그립기만 하다. 마지못해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또 인터넷을 통해 블로그를 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아날로그적인 삶을 꿈꾸고 있다. 그래서 책만큼은 전자 책이 아니라 종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사회는, 생활은 점점 더 디지털화 되고 있다. 지금까지는 비록 책을 통해서, 그리고 문자기반의 문화를 통해서 삶을 성찰하고 더 나은 삶이 무엇인지를 고민하지만 조만간 바뀌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공부할 것이 더 늘어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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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작가 알림 신청을 해두었기에 이 책이 나왔다고 문자를 받았다. 동네 도서관에 신청해서 우선 대출해 읽었다. 강연 내용을 글로 푼 책이라 구어체로 써 있어서 쉽게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미디어 아트"처럼 진중권 교수님이 편집한 책이나 미학을 다룬 책 여러 권을 이미 읽었기 때문에 이번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도 비교적 익숙했다. 게다가 1학기 때 대학원에서 "신교수매체론"을 들으면서 가까운 미래를 잘 살기 위해 지금 청소년 세대는 무엇을 어떻게 배워야 하는가, 또 지금 청소년 세대는 우리와 사고 구조가 어떻게 다른가에 대해 고민하며 학습에 이용할 수 있는 테크놀로지 자체에 대해 배웠기 때문에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여러 문제 의식에 공감이 되었다.
진중권 교수님 책을 읽어오면서 나도 새로운 미디어를 향유하고 있는 현대인의 지각 방식이나 사고 방식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궁금해지곤 했다. 예를 들어 책을 읽던 세대에 비해 영화를 즐겨보는 요즘 사람들은 잘게 잘라 편집한 영상에 익숙해 있어서 지각이나 사고도 파편적으로 잘라서 하느라 집중력이 흐트러지기 쉬운 인간으로 변하고 있는지에 대해 궁금하다. 뇌 과학 연구로 밝혀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요즘 청소년들은 기성세대에 비해 집중력이 부족하다'는 경험적인 심증이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호모 코레아니쿠스" 같은 책에서 이미 수 년 전에 이미지 세대와 문자 세대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다. 다시 구술, 이미지 세대가 돌아온다는 통찰이 흥미로웠다. 그의 예언?대로 지난 수 년 동안만 해도 문자보다 이미지와 영상이 훨씬 중요한 매체로 여겨지고 있다. 책보다 영상이 더 익숙한 세대는 지각과 사고 방식이 어떻게 변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내용이 있어 다소 길지만 옮겨둔다. 책 읽는 이들은 역사를 선형적으로 파악하고, 영상 세대는 시간이었던 역사를 공간으로 파악한다. 또한 옳고 그른 사실이었던 역사를, 픽션이 섞여도 괜찮으니 재미 '있어야 하는' 이야기로 파악한다.
대학생 때부터 슬슬 뇌과학에 관심이 생겨(혹은 그 시기부터 뇌과학이 유행하면서 책이 쏟아져 나왔기 떄문에 접근성이 좋아져서) 관련 책을 읽어오고 있었다. 보이지 않던 마음을 눈으로 보여준다니 얼마나 매력적인 학문인가. 인간의 도덕 판단과 행동에 대해 관심이 많은 도덕 윤리 교육계에서도 당연히 최신 신경과학 연구 흐름에 관심이 많아서 석사 파견 때 '인성교육'을 다루는 수업에서 뇌과학계 권위자인 가자니가의 "왜 인간인가" 같은 책을 읽었다. 이번 2학기에는 '뇌'에 대한 강의 두 개를 신청해두었기 때문에 기대하고 있다. 요즘은 '융합'을 유행처럼 말하고 있는데 아래와 같은 저자 주장처럼 철학(예를 들어 현상학)과 인지과학, 신경과학은 주고 받을 수 있는 지점이 많을 듯하다. 근대에 문과와 이과가 전혀 다른 분야인 듯 철저히 구분을 해두었지만 이제는 경계를 없애고 넘나들며 서로에게서 배워야할 때다.
인간에게 꼭 필요한 질문들을 담은 좋은 인문학 콘텐츠를 현대인이 익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테크놀로지 미디어라는 그릇에 잘 담아내자고 저자는 주장한다. 자신이 "미학 오디세이" 초창기 때부터 '이 책은 텍스트와 이미지가 함께 이야기한다'고 줄곧 강조했듯이. 나도 그 생각에 동의한다. 올해는 '사회문제해결실천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결과물을 '멀티미디어 보고서'로 받겠다고 선언했다. OECD DeSeCo 프로젝트에서도 주장했지만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 기술은 미래 핵심 역량 중 하나라는데 동의하기 때문이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나의 좋은 아이디어를 타인에게 잘 전달하는 기술이 필요하고 당분간 가까운 미래에는 이를 적절한 프레젠테이션 도구, 이미지, 영상 등에 녹여내서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을 많이 사용하게 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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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가르쳐봤자 기업에서 쓸 수 있는 인재를 못만드니 또 가르쳐야한다.
참고도서 몇권만 추려서 권한다
서울, 북촌에서
좋은 길은 좁을수록 좋고, 나쁜 길은 넓을수록 좋다
일생에 한 번은 독일을 만나라
세계는 기다리지 않는다
내사랑 백석
맨큐의 경제학 페이지230 (역사적건물의 외부효과)
구석구석 찾아낸 서울의 숨은 역사이야기
자미원88 |
초등학교 시절 우리 집 안방에는 구형 컴퓨터 한 대와 <컴퓨터 일주일만 하면 전유성만큼 한다>라는 책이 있었다. 나와 동생은 틈만 나면 그 책을 읽으며 컴퓨터 하는 방법을 익혔다. 요즘 초등학생들은 어떨까? 우리 자매처럼 책으로 컴퓨터를 '공부'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젓가락질을 익히듯 간단한 컴퓨터 조작법쯤은 금방 익히고 한글을 배우기도 전에 스마트폰을 자유자재로 다루게 될 것이다. 이십 년 전만 해도 컴퓨터 입문서가 베스트셀러였지만 지금은 컴퓨터 입문쯤 갓난아기도 할 수 있고 블로그로 마케팅하기, 유튜브로 돈 벌기쯤 되지 않으면 책도 못 낸다. 이렇게 급속도로 기술이 발전하는 디지털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공부해야 할까. 미학자 진중권은 이 책에서 디지털 시대에 필요한 인문학 공부의 모범을 보여준다. 저자에 따르면 '인문학의 위기'는 비단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저자가 조사차 방문했던 독일의 베를린 자유대학에서도 고전문헌학과가 없어질 예정이다. 인문학의 위기는 미디어 패러다임의 변화에 따른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영상 매체와 디지털 기술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문자보다 영상을, 장문(長文)보다 단문(短文)을 선호하게 되었다. 콘텐츠 또한 진실보다는 허구라도 재미있는 것을 추구하게 되었고, 자연히 히스토리(history)보다는 스토리(story)의 가치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인문학을 계속할 수 있을까. 저자는 인문학을 하나의 스크립트로 보는 시각을 갖춰야 한다고 설명한다. 앞으로는 인문학이 텍스트로서가 아닌 사운드 또는 이미지와 결합된 형태로 이용될 가능성이 높다. 인문학 팟캐스트의 범람이 이를 증명한다. 인문학은 또한 변화한 현실에서 주제를 찾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미 있는 것'만 연구 대상으로 삼지 말고, '아직 없는 것'을 상상해야 한다. 최근 팩트(fact)와 픽션(fiction)이 결합된 팩션 사극이 인기를 끄는 것이 그 예다. 디지털 시대에 중요한 것은 기술적 상상력이다. 기술적 상상력은 '이미 있는 것'이 아니라 '아직 없는 것'을 떠올리는 능력이다. '아직 없는 것'을 상상하기 위해서는 놀이가 중요하다. 하위징아가 말한 '호모 루덴스'가 복귀하는 것이다. 일과 놀이가 구분되지 않는 것이 고민이었는데, 저자가 정보화사회에서는 노동과 여가가 명확히 구별되지 않는다고 하니 마음이 놓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