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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 공부한당 1기로 입당하게 되어 <공부의 시대> 소책자를 받아 읽게 되었다. 사실 소책자를 받기 전에 예약판매 소식을 듣고, 강만길, 김영란, 유시민, 정혜신, 진중권 이 작가들의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읽을만한 가치가 있을거라 생각했다. 아마 이 책을 기다리는 다른 분들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그들이 이전 작품에서 보여주었던 가치관들이 있었기에 이 책을 더 기다리는지도 모르겠다. 소책자에 담긴 내용들을 중심으로 리뷰를 쓰고자 한다.
강만길 <내 인생의 역사공부> 역사라는 과목은 사실, 제대로 공부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한국사능력시험과 같은 다른 시험을 준비하면서 단순히 암기했을 뿐, 그 내용을 이해하고자 한다거나 역사를 돌아보며 미래를 내다보는 거창한 일은 생각 하지 않았다. 소책자에는 짤막한 인터뷰 두 편이 들어있었으나, 이 짧은 글에서 선생님의 역사에 대한 확고한 신념, 그리고 나만의 역사를 가지겠다는 야망, 그리고 세계사에서 나타나는 보편성과 상치되지 않으면서 우리의 역사를 다양하고 풍부하게 하려는 노력을 볼 수 있었다. 솔직히 소름이 돋았다. 그 분의 그런 소신과 확신을 보며 나도 어떤 일을 함에 있어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의 하루를 살아가기도 벅차는 날들을 보내고 있지만, 우리의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그것이 나의 현실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이 책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을 것 같다.
김영란 <책 읽기의 쓸모> 사실 김영란 전 대법관(작가라는 말 보다 여전히 이 말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의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를 읽으면서, 글을 자연스럽게 풀어가는 능력이 있어 새삼 놀라웠다. 왜냐하면 내가 생각하는 법조계인들은 말을 어렵게 하기로는 최고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한 번 읽어서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법조문부터 한 문장이 다섯 줄을 넘어가는 판례문까지.. 그들의 국어실력을 의심할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김영란 대법관의 글은 여전히 법조계인들이 쓰는 말투가 남아있긴하지만 그래도 글의 전개라던지 구성이 알차게 느껴졌다. 그 이유는 아마 그녀가 평소에도 책을 많이 읽어서이지 않을까 하고 추측해본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주제로 책을 낼리가 없지 않은가. 소책자에서는 그녀의 다양한 책읽기 경험이 나와있지 않아서 다소 실망스러웠지만, 그녀가 책을 읽을 때 어떤 점을 중점으로하는지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정식으로 판매가 되면 전문을 다 읽고싶은 욕심이 생겼다.
유시민 <공감필법> 유시민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기다려지는 책이었다. 그동안 <청춘의 독서>와 <어떻게 살 것인가> 등에서 그가 시민들과 소통하고자 했던 것들이 또 한 번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일까 기대가 컸다. 소책자에 실린 내용은 그가 이전 작품들에서 보여주었던 내용들과 크게 차이가 나는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인터뷰 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질문을 던져보고 또 그에 대한 답을 함께 생각해나갈 수 있어서 좋았다. 자칭 지식소매상 답게 그가 가지고 있는 많은 지식들과 다독(多讀)의 경험들, 그리고 특유의 논리적인 전개가 어우러져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민주시민으로서 가장 우선해야 할 공부는 무엇일까요?', '공부한 대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하지만 때로는 쉬운 길을 택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무엇을 기준으로 결정을 내려야 할까요?'와 같이 심오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읽기가 편하고 함께 그에 대한 답을 생각해보는 여유를 느낄 수 있었다.
정혜신 <사람공부> 정혜신씨는 2011년에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들을 위한 심리상담센터 '와락'을 만든것으로 나는 알고 있다. 그것이 내가 그녀에 대해 알고있는 전부였다. 그래서인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라는 프로필을 읽고, 나는 그녀를 너무 쉽게 판단한 것 같다. 정신과 의사니까 뻔한 말을 하겠지, 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큰 착각이었다. 직업을 떠나 그녀가 보여주는 삶에 대한 태도는 당연한 말이지만 놀라웠다. 그 중 몇 개를 적어보자면 '삶과 일상에 깊숙이 발을 딛고 살며 느끼고 생각하고 고민하는 과정이 사람과 사람 마음에 대한 진짜 공부라고 생각합니다.', '내 삶이 힘들 때 상담가를 쉽게 찾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말도 맞지만 세부적 분야의 고도의 전문가를 우러르기 전에 정상적인 허기처럼 찾아오는 내 삶의 문제들을 병이나 질환으로 인식하고 전문가에게 맡겨버리려 하고 있지는 않는지, 내가 내 일상의 주도권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와 같은 것이다. 요즘엔 좀 누그러들었지만 한때는 힐링을 외치며 자신의 문제를 누군가가 해결해주길 바라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의 문제는 아마 '문제'가 아니라 그녀의 말대로 '정상적인 허기'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해결 방법은 남들이 해주는 조언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사람들과 부딪히며 풀어나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전문을 읽으며 그녀가 말하는 '사람공부'를 더 알아보고 싶어졌다.
진중권 <테크노 인문학의 구상> 진중권에 대한 여러 가지 말들과 이미지들이 있지만, 나에게 그는 미학 전공자이다. <미학 오디세이>를 읽어서이기도 하고, 트위터나 TV등 다른 매체들을 접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다소생소했다. 미디어적 전회이나 인공지능 등 과학기술 분야에서 나올 법한 말들이 등장해서인지 모르겠으나 오히려 이 부분이 그의 인문학적 능력을 더 돋보이게 하는 것 같다. '인문학자들이 일을 잃기 전에 과학자들부터 일을 잃을 테니까요.'라는 글에서 그의 태연하고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마저 볼 수 있었다. 날로 발전하는 과학기술과 그것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더 가치를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공부의 시대'라는 타이틀이 무겹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여기서 '공부'라는 말은 학창시절 우리가 죽어라고 외우기만 했던 그 노동(?)이 아니라는 것은 다들 알 것이다. 서문에도 있듯이 공부라는 것은 세상의 겉과 안을 동시에 바라보는 일, 타인과 함께 사회를 고민하는 일이다. 당장 밥벌이도 하기 어려운데 이런 책을 읽으라는 것은 어쩌면 사치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밥벌이만큼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나 자신의 존엄성이 아닌가. 그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든 간에 나와 세상을 들여다보는 힘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사람들이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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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에서 공부의 시대라는 책이 나온 걸 책광고에서 보고, 글 쓰신 작가 분들을 다 좋아하는 지라, 바로 세트로 구입했습니다. 시험이나 취직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인생 공부, 나이 들어서도 나와 세상에 대한 바른 눈을 유지하기 위한 공부. 그런 공부를 위해서요. 책도 들고 다니기 버겁지 않고 지하철이나 버스에서도 잠깐잠깐 보기 좋게 잘 만들어져서 더 마음에 들고요. 이 책들 읽고 다시 한 번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아야겠다는, 세상에 관심을 더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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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공부법에 관한 책을 열심히도 읽었다. 노트 필기법, 예습 복습하는 법, 시험 기간 공부법 등등 공부를 잘하게 해주는 비법이 있다면 죄다 내 것으로 섭렵하고 싶었다. 공부를 잘하고 싶기도 했고, 옆에서 공부를 가르쳐줄 언니나 오빠가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 결과 나름 공부 잘한다는 소리를 들으며 학창 시절을 잘 보냈다. 학교를 졸업한 지금도 공부법에 관한 책에 눈길이 간다. 학창 시절과 다른 점이 있다면 성적을 올려주는 공부가 아닌 '다른 공부'를 원한다는 것이다. 창비 창간 50주년 기념 강연을 단행본으로 엮은 '공부의 시대' 시리즈를 읽으면서 내가 찾던 '다른 공부'의 모범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강만길, 진중권, 유시민, 김영란, 정혜신 등 각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분들의 공부법과 독서법을 알 수 있어 유용했다. 원로 역사학자 강만길은 역사학자로서 어떻게 공부했는지를 알려준다. 역사 공부의 목적이 수능 성적을 잘 받거나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당면 과제인 통일을 이룩하기 위해서라는 메시지가 묵직하게 다가왔다. 미학자 진중권은 인문학의 위기가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현상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인문학을 둘러싼 미디어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 이제 인문학은 스크립트로서 다른 미디어와 어떻게 결합할지를 연구해야 한다.
유시민과 김영란은 공부법보다도 독서에 초점을 둔다. 문과 글쟁이로 살아온 유시민은 최근 과학교양서를 열심히 읽는다.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넘어 생물로서의 인간의 본질이 궁금하고, 인간을 둘러싼 우주 전체의 구조가 궁금해졌다. 전방위 독서가로 나아가는 중인 유시민의 변화가 기대된다. 공부의 시대 시리즈 중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이 김영란의 책이다. 판사로 대법관으로 열심히 일하면서도 문학 읽기를 멈추지 않았던 김영란은 이 책에서 법관에게 문학 읽기가 무슨 쓸모가 있는지를 자세히 알려준다. 정혜신은 진료실을 벗어나 거리의 의사로 거듭나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심리상담 공부가 자격증 취득만을 목적으로 하는 세태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공부는 학교나 교실에서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요, 책을 읽어서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공부거리는 도처에 있고 스승과 학우는 어디에나 있다.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자극도 되고 위안도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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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역사공부에 재미를 붙여 한국사 강의도 듣고 역사 기행에도 참여하고 요즘 자격증이다 뭐다 이론 중심으로 공부하다보니 이해를 하기보다는 암기 중심으로만 공부하게 되는데 창의력을 겸비하는 공부를 할 수 있게끔 동기부여를 해주어서 얼른 이 책들을 읽어보고 적용을 해야겠다. |
그렇다면 인간은 대체 될 것인가- 라는 질문은 컴퓨터가 처음 등장했을 때 부터 시작된 원론적 질문으로, 사실 지금의 모습만 본다면 생각조차 안하고 있다가는 큰일난다, 정도의 대답을 생각해 본다. 본디 인간은 동물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무기가 생각하는 힘이었다고 생각하는데, 기계와의 경쟁에서도 인간이 낫겠다고 보이는 부분은 그정도가 아닐까 싶다. 무엇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무엇을 어떻게 왜 공부할 것인가. 생각 끝에 나오는 질문들을 우리는 기계에 넣는다, 그들이 아마도 더 나은 답안을 줄지도 모르니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떤 질문을 할 것인가이다. 기계는 알고리즘으로 생각을 하고, 인간은 (뭐 이건 또 철학의 영역과 겹치기는 하지만) 기 세팅된 알고리즘 뿐만이 아닌 다른 매카니즘으로 사고한다는 것이 통념이다. 인간의 사고는 개개인의 지식과 앎이라는 배경과 주변조건, 도덕 등을 포함한 외부 인지적 관념들이 이 매카니즘에 달라붙어 작동한다. 더 올바른 사고를 한다는 것, 더 옳은 질문을 던진다는 것. 아마도 '공부'가 큰 힘이 되어주지 않을까 한다. 지금 지금 우리 시대를 함께 살고 있는 석학들이 나와 함께 고민해준다면, 나와 함께 공부해준다면- 더더욱 즐거울 일이 아닐까 싶다. 우리 '공부'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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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에서 진행하는 '공부한당' 이라는 활동모임을 신청하여 『공부의 시대』 샘플북을 받을 수 있었다. 손바닥 만한 샘플 북이지만 책한권한권의 핵심 내용은 충분히 들어있었다. 이름 석자만으로도 믿고 경청하게되는 다섯분의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인터뷰 형식으로 샘플북이 진행되고, 창비블로그의 출간전 연재를 통해 책의 미리보기가 가능하다. 다섯명의 지성인들의 각기 다른 공부에 대한 조언들은 나를 공부의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 같았다. 특히 내 인생의 역사공부(강만길), 책 읽기의 쓸모(김영란)이 기억에 남았다. 여름에 어떤 공부를 하면 좋을 까 찾다가 한국사능력시험을 보기로 다짐한 후라 더욱 역사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와 역사공부를 통해 나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독서는 항상 어려운 부분이였다. 많이 읽고 싶지만 읽고 나면 기억에 남는 건 일부분 이고 제대로된 독서를 하고 있는 건가 항상 의문이 들었다. 지금은 독서모임으로 꾸준히 독서를 하게 되었고, 혼자 읽을 때보다 깊게 책을 대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무언가 부족함이 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김영란님은 오오에 켄자부로오라는 작가를 소개하며 천천히 꼼꼼하게 읽는다는 독서법을 제시하였다. 뒷부분이 궁금한 것도 있지만 참지 못하고 빨리 읽어버리고 완독 후 머리에서 더 빠르게 없어지는 책의 내용들이 아깝게 느껴졌다. 지금은 독서노트를 쓰면서 전보다 천천히 읽게 되었지만 공부의 시대의 책읽기의 쓸모 부분을 읽고 더욱 천천히 깊게 호흡하며 책을 봐야한다는 것을 느꼈다. 샘플북을 읽고 나니 더욱 한권의 책으로 5명의 공부를 읽고 싶어졌다. 맛있는 음식을 한입만 먹었는데 빼앗긴 기분이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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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출판 '창비'에서 발행한 <공부의 시대>라는 소책자를 받아 읽게 되었다.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공부의 굴레 안에 살아가는 우리지만 진지하게 그 내면을 성찰할 기회는 부족하지 않았나싶다. 이 책에서는 공부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1. 세상의 겉과 안을 동시에 바라보는 일 2. 더불어 나의 바깥을 이해하는 일 3. 타인과 함께 사회를 고민하는 일 4. 읽고 쓰고 말함으로써 참여하는 일 내가 하던 공부와 사뭇 의미가 다른 이 느낌이 나를 복잡하게 한다. 이런게 공부였구나..ㅠㅠ 내용 중 민주시민으로서 우선시 해야할 공부는 무엇이냐는 물음에, 유시민 작가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민주시민은 '생각과 이해관계가 다른 사람들과 평화롭게 어울려 살아갈 줄 아는 사람'을 말한다. 확고한 신념을 가진 민주시민이 되고 싶다면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를 믿어야한다. 나와 세상사이의 진짜 공부에 대해 고민해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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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참 좋아하는 창비. 사람마다 자신의 성향에 따라 좋아하는 출판사가 다르겠지?
그는 책을 천천히 읽는 힘이야말로 어렸을 때 익혀두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에 겐자부로는 40살부터 책을 천천히 읽는 연습을 했다고 한다. 그의 이야기를 인용하며 교수님도 40대가 넘어서야 빨리빨리 책을 읽어제끼는 습관을 탈피하기 시작하셨다고… 김영란 판사님 이외에도 가정의학과 역사, 인문학, 글쓰기 등에서 우리가 한 번쯤을 생각해 봐야할 문제들을 던지고 있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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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새며 책을 읽었습니다. 이 책이 그렇게 재미있었나? 하고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재미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책 내용에 절실하게 '공감'했기 때문에 손에서 놓을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책에서 김영란 전임 대법관은 어릴 때 부터 지금까지 '즐거움을 위한 쓸모없는 책읽기'(가령 문학 작품을 읽는다던지.)를 해왔다고 생각했으나, 결국 그러한 무용한 독서가 역설적으로는 삶을 성숙시켜준다는 점에서 유용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공부의 시대 기획에서 자신의 책을 <책 읽기의 쓸모>리고 지은 것일 테지요. 저는 그녀의 독서론과 삶에 대해서 공감하는 바가 많습니다. 어릴 때 부터 자신의 커리어와 무관한 문학을 읽어왔다는, 그래서 주변에서 걱정과 핀잔을 듣기도 했다는 그녀의 독서 인생과 저의 삶은 어찌나 비슷한지요. 저도 어릴 때 부터 철학 책에 관심이 많았는데요. 종종 '철학과가면 굶어 죽는다더라.'라는 주위 어른들의 염려 섞인 말을 듣고 자랐답니다. 그렇게 쌓아온 독서의 궤적이 결국은 무용하지 않았다는 점도 김영란님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었던 부분입니다. 그녀는 자신이 문학을 읽어온 덕분에 사람들 각자가 지닌 개별 특성을 예민하게 감지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김영란님이 '소수자의 대법관'이라고 불릴 정도로 소수자들의 인권을 배려하는 판결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문학을 읽으며 삶을 성찰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마치 제가 철학, 윤리학 책들을 통해 길러온 철학적 통찰이, 윤리적 감수성이 헛되게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 제 독서 인생이 많은 학생들의 공부를 돕는 학습 참고서를 쓸 수 있는 기반이 된 것처럼 말이죠. 2017. 1. 11일 수요일 새벽 5시 읽고 씀 주요 문구 쓸모있는 공부, 쓸모없는 공부 17p 그런데 생각해보면 저는 정말 전공에 쓸모가 없는 공부만 해왔습니다. 법률책 말고 다른 책만 늘 읽고 있다고 농담으로 말할 정도로요. 삼십년간 법을 다루는 직업에 종사하면서 제가 읽은 책을 제 직업에 써먹은 적이 거의 없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해온 공부는 제 직업과 제 전공에는 쓸모없는 공부하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인풋은 있는데 아웃푹은 하나도 안 되는 공부를 해온 셈이지요. 특히 저는 문학 관련 책을 많이 읽는데, 사실 법률가에게는 그 책을 써먹을 일이 전혀 없습니다. 판결문에 시를 인용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판결문에 소설의 한 구절을 인용하면 참 멋있을 텐데 우리 법원에서는 판결문을 그렇게 쓰지는 않지요. 그래서 저도 항상 궁금했습니다. 내가 왜 이렇게 쓸데도 없는 독서를 계속하는지. 생각해보면 슬픈 일이 있어도 책을 읽으면 다 잊어버리고 없었던 일이 되는 적이 많았습니다. 제게는 독서가 일종의 카타르시스, 즉 현실을 잊게 해주는 효과가 있었던 것이죠. 책을 읽으면서 힘든 일을 잊어버린다는 것만 해도 굉장히 쓸모이긴 합니다. 또 최근 와서 생각해보니 그 쓸모없는 책들을 제가 법률에 관한 책을 쓰는 데 써먹었더군요. 제가 읽어온 책들을 제 책에 많이 인용했거든요. 드디어 책에 투자한 시간과 돈을 조금이나마 회수했다고나 할까요? 그렇게 보면 전공이나 직업과는 상관없는 공부라도 어딘가 쓸모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제가 살아오면서 읽어온 책들을 통해서 '써먹지 않는 독서의 쓸모'를 찾아보려는 것이 오늘 제 이야기의 목표이기도 합니다. 문학적 재판관: 『시적 정의』 76p 누스바움은 이 개념을 끌어와, 공평한 관찰자는 "자신이 목격하는 사건에 개인적으로 연루되지는 않지만, 그들을 염려하는 친구로서 그들에게 관심을 갖는다"(160면)고 설명합니다. 관찰자로서 그는 자신의 개인적인 안전과 행복을 고려하지 않으므로 편향적이지 않지만, 그러면서도 자신의 앞에 있는 사람들의 처지를 자신의 것처럼 상상한다는 것이지요. 애덤스미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만일 자신이 그와 같은 불행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동시에 ---아마도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그 불행한 상황을 현재의 이성과 판단력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다면, 자신은 무엇을 느끼게 될지를 함께 생각(161~162면)한다는 것입니다. 애덤 스미스는 이를 '공감'이라고 말합니다. 세상을 바꾸는 상상: 『빼앗긴 자들』 83~84 pp 누스바움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정확하게 상상하여 사려깊게 측정하고, 나아가 그것에 관여하고 또 그것의 의미를 물을 수 있는 능력은 인간의 실상이 무엇인지 알고 또 그것을 바꾸어나가는 힘을 얻는 강력한 방법(195면)이라고 하면서 이와 같은 상상력이 없다면 재판관의 평가는 핵심을 벗어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나아가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한 상상력이 결여되면 결국 "기이한 화성인 같은 중립성"(191면)을 낳는다고도 합니다. (중략) 어슐러 르 귄이라는 여성 SF 작가가 그런 말을 했습니다. '진리는 상상의 문제다'라고요. 저는 이 말을 참 좋아합니다. 흔히 '아는 만큼 보인다'라고 하지만, 말을 바꾸면 '상상한 만큼 보인다'라고도 할 수 있지요. 저는 상상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상상이 없으면 '이미 있는 것'에 대해 공부하고 익히는 일밖에 남지 않을 테니까요. 물론 그것만 하기도 바쁜 세상이지만, 그러기만 해서는 세상은 바뀌지 않습니다. 무언가 더 나은 것에 대한 상상, 다음에 나아갈 행보에 대한 상상, 그것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이죠. 86~87 pp 오도니즘에 대해서 알아보기 전에 먼저 읽어야 할 것이 르 귄의 단편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바람의 열두 방향』(시공사 2014)이라는 단편집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의 앞부분에서 르 귄은 오멜라스가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한 곳인지 자세하게 묘사합니다. 삶의 여러 조건들이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갖추어져 있는 곳이지요. 그런데 바로 그곳의 아름다운 공공건물 가운데 하나에 창문도 없는 방이 있습니다. 널빤지 벽을 통해 들어오는 한줄기 희미한 빛만이 비치는 곳입니다. 먼지투성이인 그 방에는 어린아이 하나가 앉아 있습니다. 거의 열살쯤 되었지만 여섯살쯤 되어 보이고, 남자아이일 수도 있고 여자아이일 수도 있는 정신이 박약한 아이라고 소설은 묘사합니다. 아이는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 그곳에 갇혀 옥수수 가루와 기름 반그릇으로 하루를 연명합니다. 오멜라스 사람들은 모두 아이가 그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그곳에 있어야만 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오멜라스의 사람들은 모두 여덟살에서 열두살 사이에 그 아이에 대해 설명을 듣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간혹 젊은이들이 아이를 보러 오기도 하지만 그들이 해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누군가 아이를 그 지독한 곳에서 데리고 나와서 깨끗하게 씻기고 잘 먹이고 편안하게 해준다면 그날로 오멜라스 사람들이 누려왔던 모든 행복과 아름다움과 즐거움이 사라지고 만다는 계약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지하실 골방 안에서 벌어지는 죄악을 방기하게 만드는 이유인 것이지요. 지하실의 아이를 본 사람들 중에는 눈물을 흘리거나 분노를 느끼는 데 그치지 않고 그대로 집을 떠나버리는 이들도 ㅇ닜다고 합니다. 혼자서 오멜라스를 떠나 산으로 향한 이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은 바로 이들을 가리킵니다. 르 귄은 작가 노트에서 월리엄 제임스의 「도덕적 철학자와 도덕적 삶」이라는 글에 나오는 길 잃은 영혼에 대한 언급에서 이 글의 주제를 가져왔다고 썼습니다. "어느 외딴 곳에서 길 잃은 한 영혼만 고통을 당하면 그 낙원에 있는 수백만명이 영원히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설사 그런 식으로 제공되는 행복을 붙잡고 싶은 충동이 우리 안에 인다 할지라도 그러한 거래의 열매를 자신의 의지로 받아들여 얻은 행복이 얼마나 추잡한가를 스스로가 명확히 느끼는 것 말고 다른 무엇을 할 수 있을까?(452명)라는 문제의식이죠. 마리킁 쌘델도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공리주의를 반박하기 위해 르 귄의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나도 공리주의를 반박하기 위한 사례로 르 귄의 문학 작품을 들면 좋을 것같다! 나를 찾는 독서 107p 책을 읽는다는 것은 책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는 것입니다. 모든 책은 하나하나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고, 또 같은 책을 읽더라도 각자가 듣는 이야기는 다를 수 있겠지요. 그러므로 책을 읽는다는 것은 무한한 세상 속을 여행하는 일이면서 또한 보르헤스의 말처럼 나 자신을 찾는 일이기도 합니다. 나에 대해 기록한 단 하나의 책을 찾는 것 말이지요. 달리 말하자면 세상을 통해서 나 자신을 찾는 공부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인용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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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은 공부의 시대이지만, 사람이 공부만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이 바로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처음 만나는 생경한 것들을 나만의 경험이 아닌 다른 시각과 접근법으로 다가설 수 있는 새로운 공부의 방법일 것이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 중에서도 정혜신 박사님의 '사람공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세월호 유가족분들과 쌍용자동차 노조원 가족처럼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한 때는 관심을 가졌으나, 자신만의 상처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남들에게 자신의 상처를 보여주고 싶지 않아하는 현대인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누군가를 알아가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평생을 두고 공부해야 할 일이고, 온전히 알기 위해 자신을 낮추고 다가가는 방법만큼 우리에게 도움이 될 공부는 없겠지요.
정혜신 박사님을 실제 강연에서 본 것은 몇차례 되지 않지만, 누군가의 상처를 보듬고 안아주는 방법을 제대로 알고 계신 몇 안되는 분중에 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다른 책을 다 읽지는 못했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배우고, 어떻게 다가서야하는지 읽어봄직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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