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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주인공의 섹스만큼이나 문화혁명의 인간 존엄성 압살에 대한 거센 역설의 변(辨)이다. 작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류롄’과 ‘우다왕’ 두 남녀의 치열할 정도의 육체에 대한 탐닉과 성애의 묘사는 환락이기에는 어둡다. 사단장 관사인 ‘1호 원자’의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적나라한 그네들의 행위는 작가의 소설적 장치에도 불구하고 인간본성의 회복이라는 지독한 목적성이 감추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주인공들은 작가가 추구하는 거대한 본질적 희구, 즉 ‘사랑과 인간 존엄성’의 회복이라는 가치에 뒤덮여 그들의 주인공으로서의 소설적 본질을 잃어버린다. 그네들의 사유와 행위는 근원적 목적을 대리하고 표현하는 중개자적 역할에 그치고 만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사단장이 집을 비운 2개월 동안 사단장의 젊은 아내 ‘류롄’과 원자1호의 취사담당 공무분대장 ‘우다왕’의 위험한 사랑의 이야기이며, 발가벗겨진 인간 본성을 통해 억압된 인민의 존엄성에 대한 발악적 외침이라고 까지 하고 싶다.
격정에 사로잡힌 류롄의 혼절을 묘사한 구절이다. 경험하기 힘든 섹스의 숨막힘과 활력의 거침없는 묘사는 이 작품이 우직할 정도로 일관되게 추구하는 인간본성에 대한 이해의 촉구이며, 이를 통해 사회주의 혁명의 기치 하에 숨겨지고 짓눌린 인간 존엄성에 대한 반발의 세기라 가늠할 수 있다.
서로 누구의 사랑이 더 무한하고 죽음을 불사할 정도인지, 문화혁명의 상징이자 사회주의의 공고한 정신에 대해 "못으로 뱃지에 새겨진 마오 주석의 코를 내리찍고, 마오 주석의 어록 다섯 글자 위에 붓으로 ‘자신의 사리를 추구해야 한다(要自私自利)’"고 조롱하기까지 한다. 그리곤 다시금 “한 마리 작은 새를 잡듯이 그녀를 붙잡아 두 다리를 바닥에 대고 ~ 中略 ~ 들 짐승 같은 성애 행위를 했다. ~ 中略 ~ 이번에도 그녀는 그의 몸 아래서 또 한 번 시원하게 목 놓아 울었다.”
이 작품의 소설적 매력은 다음에 있다. 즉, 혁명언어의 경전이자 무소불위의 금언인 마오쩌둥의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라는 연설제목에 부여한 의미의 이중성이다. 사단장 사택의 식탁 한가운데 놓여있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라는 팻말이 주인공 두 남녀의 성애를 알리는 도구로 사용된다. 바로 이 소설의 핵심 소재이자 주요 제재이다.
사회주의 혁명이 휩쓸어 버린 사회의 잔해로 남겨진 텅 비어버린 인간들의 상처 난 심장과 상실된 인간성에 대한 울먹임이 깊이 베어있다. 사단장의 젊은 부인인 ‘인민’을 위해 우다왕은 힘 닿는데(?)까지 성심껏 복무한다. 또한 장면마다의 상황에 따라 묘사되는 심리와 행동의 표현은 섬세함과 창의성, 그리고 그 디테일로 혀를 차댈 정도의 공감을 자아낸다. 질주하는 환락, 그 곳에 있는 성적 본질, 거대한 시류 속에 손상된 인간의 영혼에 대한 연민이 우다왕의 창백한 원망과 함께 서려있다. 인류의 뛰어난 작가의 한사람으로‘옌롄커’를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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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24를 뒤적거리다 보면 그냥 왠지 사고싶은 책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냥 무작정 구매한 책입니다. 사고나서 한 3달정도 그냥 책꽂이에 꽂아놨다가 (보통 한꺼번에 여러권 구입하다보니 한두권은 바로 읽고, 나머지는 책꽂이에 꽂아놨다가 좀 나중에 읽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책 잡은지 3시간 정도만에 다 읽어 버렸습니다. 책 자체가 그리 길지 않은 이유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재미가 있습니다. 사람의 본능(?)중에 하나가 다른 사람의 생활을 엿보는 것일텐데 ... 문까지 닫아걸고 불륜을 저지르는 두 남녀의 행각을 엿보는 것이니 어찌 재미있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불륜을 다루면서도,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에 대해 써내려가면서도 결코 저속하지 않습니다 ... 음 ... 내용이 그리 복잡한 소설은 아니다 보니 뭐 별로 더 쓸말은 없네요.
어쨌든 중국의 정치적 구호가 어떠니 사상이 어떠니 하는 정치적인 관점에서 이 책을 읽을수도 있겠습니다만 ... 그런 부분들은 다른 분들께서 리뷰에 다 써주셨고, 중국인도 아닌데다가 당시의 중국 정세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 못하는 입장에서 남녀의 사랑 앞에서는 어떤 정치적 구호나 이념도 무의미하다라는 정도 밖에는 솔직히 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
혹시 장만옥과 양조위 주연의 '화양연화'라는 영화를 숨죽이며 재미있게 보셨던 분들이라면 무조건 읽으십시오. 화양연화는 아직 보지 않으셨지만 이 책을 재미있게 읽으셨던 분들이라면 화양연화를 무조건 보시구요. 어떤 경우이던 또 하나의 '아름다운 불륜'을 만나실 수 있으실 겁니다.
하지만 소설은 소설 ... 결혼하신 분들 중 절대로 이런 불륜을 따라하진 마시기 바랍니다 ^^ 소설은 소설일뿐 따라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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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몇 번 갔다온 경험으로 마오쩌뚱에 관한 중국인민들의 절대적 신뢰는 아직도 유효했다. 오늘날의 중국을 세운 국부로써 그의 위치는 확고부동하다. 오늘날 중국의 지도자 역시 마오에 대한 신뢰를 거두지 않고 있다. 마오의 실책이라는 대약진 운동과 문화혁명은 중국인민들에게 정말 큰 고통을 안겨준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건국이라는 것에 모든것이 묻히고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마오의 실책에 대한 책들이 간간히 눈에 띈다. 장융의 대륙의 딸, 마오, 션판의 홍위병 이 책들은 마오시대를 정면 비판하고 그 속에 살았던 중국인들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마오>의 경우 감정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하지만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에서는 책의 배경이 문화혁명 당시라고는 하지만 문화혁명이라는 시대적 배경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단지 사랑을 방해하는 아니 사랑을 시작을 암시하는 도구로 마오쩌뚱이 희화화되고 있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라는 나무푯말이 일종의 사랑의 신호로 사용되고, 급기야는 한 번 무너진 마오에 대한 생각은 마오에 관한 석상, 사진, 인쇄물들에 대한 철저한 파괴로 이어진다. 마오의 눈에 못을 박는 장면에서는 정말 작가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오에 대해 이정도의 묘사까지 가능한 걸 보니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에도 표현의 자유(작가의 말로는 창작의 자유)가 완전 허용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창작의 자유가 허용될 뿐 중국인민들에게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바로 5금이라는 조치가 내려진다니 이것도 창작의 자유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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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금서(禁書)였던 책은 무언가 은밀한 오해가 따라붙는다. 사상이 불온하다거나 성애에의 탐닉에 치우쳐 있다거나 하는 체제 순응적이지 않은 파격이 자연 연상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금기에 대한 기대는 역설적이게도 호기심과 기대심리를 자극하기도 해,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그 책에 하나의 강한 인상을 심어주게 된다. 옌렌커의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도 이를테면 그런 소설이다. 출간 즉시 판금조치를 받았던 이력과 함께 강한 풍자성을 띠는 듯한 제목, 여기에 은밀한 욕망을 드러내 보이는 표지까지 합세해 읽기도 전에 다 알아버린 듯한 기분이 들게한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풍자와 상황적 아이러니라는 기법의 옷을 두르고 사회적 금기를 넘어선 두 남녀의 탐닉을 보여주고 있는 소설이다. 기법적인 기교가 소설이 다루고 있는 소재의 파격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한다면, 이 소설은 그저 욕망에 관한 외설이라는 오명까지 순순히 받아들여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짧은 소설은 마오쩌둥에 대한 담론 약간과 인민적 삶의 수칙 약간을 곁들인 성애의 묘사들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소설 속의 섹스는 하나의 장치가 아니라 소설을 구성하는 중요한 소재이며, 그 행위 하나하나가 서사를 이끄는 핵심이 된다.
그러나 사실 이 소설의 묘미는 이 노골적인 애욕을 당시의 시대정신 속에 녹여내 교묘하게 비틀어 표현한 수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공산주의 체제에서는 금기시되는 자본주의적인 욕망을 끌어내기 위해 작가는 대범하게 사상적 구호를 이용한다. 소설의 제목이자 소설적 갈등을 발생시키는 마오쩌둥의 유명한 혁명구호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나무팻말이라는 구체적 사물의 형상으로 소설의 도입에서부터 등장한다. 소설의 도입에서 이 팻말은 당연히 인물들의 투철한 사상을 드러내는 소품으로 기능한다. 사상의 깊이가 남다른 사단장을 만족시키는 우다왕의 투철한 혁명정신은 이 소품을 매개로 직접 제시된다. 그러나 곧 사단장의 부인 류롄에 의해 나무팻말의 용도는 전복된다. 처음에는 우다왕을 유혹하는 수단으로 바뀌는가 싶더니 점차 그 자체가 욕망의 촉발제가 되어간다. 팻말의 용도가 전이되는 순간, 소설은 인성과 혁명정신이라는 뚜렷한 대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한다. 억눌린 욕망이 표면화될수록 사상의 가치는 추락한다. 마침내는 마오쩌둥의 어록을 짓밟고 석고상을 산산조각내는 행위까지 서슴지 않게 된다. 소설은 이렇게 인성을 억압하기 위해 기능하는 팻말이 오히려 욕망의 촉발제가 되어가는 상황적 아이러니를 통해 혁명정신을 희화화한다.
이 아이러니는 사상의 공허함에 대한 통렬한 풍자로까지 나아간다. 류롄은 '인민을 위한 봉사'라는 구호를 이용해 우다왕을 침실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하는데, 이는 이후 류롄과 우다왕 모두에게 어긋난 욕망을 정당화하는 구실이 되어준다. 혁명과 도덕 정신을 다스리는 구호가 인성과 본능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된다는 것은 그 의미의 모순을 드러내는 동시에 사상의 모호함과 허구성을 지적한다. 작가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혁명정신의 정수를 보여주는 구호의 의미를 의도적으로 왜곡시켜, 오히려 왜곡된 현실을 꼬집고 있는 것이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결국 혁명정신에 반하는 본능과 욕망을 그려내고 있는 소설인데 그것이 명성만큼 원색적이지는 않다. 사회적 금기를 넘어선 욕망에의 탐닉은 파국적 결말을 예감하게 하지만, 인물의 결말이 비극적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드는 것은 우다왕과 류렌이 보여주는 관계의 깊이가 본능의 차원을 넘어선 까닭이다. 이들의 결합은 비록 충동적인 계기로 시작되지만 두 사람 사이에서는 정신적인 교감이 쉼없이 일어나고 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우다왕의 류롄에 대한 호칭변화이다. 우다왕이 최초로 류롄을 '누님'이라고 부르는 순간을 소설은 '두 사람 사이에 가로놓여 있던 만리장성과 산맥을 뒤집어버렸다'고 묘사한다. 이 명명법으로 인해 우다왕의 세계를 단단하게 둘러싸고 있던 혁명적 이성은 무너져내리고 심연의 욕망구조와 최초로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욕망을 추동하는 계기가 명명법에서 시작된다는 것은 공허한 욕망의 해소가 아닌 타자와의 완벽한 일체를 원하는 우다왕의 심리를 보여준다. 다시 말해 우다왕과 류롄의 결합은 동물적 욕망이 아닌 정신적 합일의 순간이자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인 것이다. 우다왕과 류롄의 행위를 통해 명명법으로 촉발된 관계의 시작에서부터 행위의 주도에 따른 관습적 관계의 역전을 거쳐, 육체를 넘어선 감정의 합일에 이르는 사랑의 모든 과정을 읽어낼 수 있다. 그래서 소설 속의 모든 성애의 장면들은 인간성에 대한 대유로 작용할 뿐 아니라 사랑이라는 주제의식을 구현하는 장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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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서두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爲人民服務(웨이 런민 푸우) 1.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2. 1944년 중국 최고지도자 마오쩌둥이 발표한 유명한 정치 슬로건 3. 개인의 행복보다 혁명의 대의와 사회 공익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지은이는 이 책을 이렇게 소개한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중국의 특수한 시대, 특수한 배경에서 일어났던 사랑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 시대는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세워진 영혼의 감옥이었지만 이런 감옥이 단지 중국인들에게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권력이 존재할 수 밖에 없고, 정치와 국가가 존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영혼의 감옥은 필연적으로 견고한 담장을 갖추게 됩니다. 이 보이지 않는 감옥의 담장 안이 바로 인간의 정신과 문화의 또 다른 아우슈비츠가 되는 것이지요(8쪽). 사단장의 아내인 류렌은 취사담당인 우다왕에게 질문한다. “자네의 가장 큰 이상이 뭐지 ” “공산주의를 실현하고 공산주의 사업을 위해 죽을 때까지 분투하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정색을 하고 묻는다. “자네의 가장 큰 이상은 뭐지 ” “승진입니다. 부대를 따라 아내와 아이의 주소를 도시로 옮겼으면 합니다(39쪽).” 공산주의 실현은 외부에 의해 세워진 감옥이었고, 승진과 가족의 도시 이주가 실질적인 인간 욕심이었다. 혁명의 대의가 아무리 높더라도 한 발짝 비켜서 바라보면 이기심의 발로이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시대의 흐름속에서 한 발짝 비켜서 지켜보면 개인 이기심이 출발의 근원이지 않을까? 우다왕에게 있어 인민을 위해 복무한다는 것은 사단장 사택에서 일하는 것이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가장 신성한 팻말이 마침내 남녀의 알몸 위에 얹혀 있는 장면 보면서 희비를 동시에 느낀다. 마지막 장면에서 우다왕은 사회로 나오게 된다. 인민을 위해 복무를 충실히 하여(사단장의 아내를 위한 애정 봉사?) 부대는 해체되지만 그는 유일하게 잘 된 인물이 된다. 그리고, 이것은 사회에 의해 덧칠되어져 나온다. “성심성의껏 인민을 위해 복무하기만 하면 인민이 여러분을 기억할 것이고 여러분에게 감동할 것입니다. 그러면 조직에서도 우다왕을 도와주고 보살폈던 것처럼 여러분을 돕고 보살필 것이며, 우다왕에게 직장을 배정하고 특수한 상황으로 간주하여 전역을 앞당겨준 것처럼 여러 병사들의 미래와 운명, 이상을 고려하여 사회주의 사업에 헌신할 수 있는 직장을 배정해 줄 것입니다(229쪽).”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마오쩌뚱의 말이 오히려 그 팻말을 모욕하고, 마오쩌뚱 동상과 초상화를 훼손하지만 결과적으로 사단장을 위해 철저히 복무한 것으로 간주되는 아이러니한 순환속에서 사랑은 이 모든 것을 포용한다. 마오쩌뚱의 신성한 혁명어록이 욕망의 신호로 대체되어 인간 정신의 자유를 표현하는 장면에선 혁명도 사회도 인간 본연의 정신 앞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 한국도 유신 독재와 군사정권의 선동적 구호 앞에 무참히 짓밟힌 인간 군상들이 수없이 많이 있다. 그리고, 아마 지금 시대에도 그런 기호들이 등장하고 있을 것이다. 747공약에 가리워진 빈부의 격차와 분배의 불균형. 성장을 위해 환율을 낮췄다가 되레 부메랑이 되어 가계를 폭격하는 수준이다. 수출업체들은 수출이 잘 되어 성장률에 기여할 지 모르지만 반대편의 대다수 서민은 그 고통을 오롯이 감내해야만 한다. 국가에서 외치는 이런 기호들이 어느 시대에나 있다. 우리는 그런 구호 뒤에 감춰진 의도를 파악하고, 휘둘리지 않아야 인간 자유의 본성을 누리지 않을까 이 소설을 보면서 다시금 느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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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국경이 없다고 한다. 나이도 뛰어넘고, 신분도 뛰어넘는 사랑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여자가 남자 잘 만나서 팔자잘고쳤다는 이야기는 어떤 사람에겐 질투의 대상이겠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자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어쨌거나 사랑의 기회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지는 것이니까. 그런데 이 책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를 읽으면서는 어째 서글펐다. 사단장의 아내를 사랑하는 우다왕도 불쌍하지만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상처를 줘 떠나보내야 하는 류렌이 더 불쌍했다.
불륜이고 뭐고 간에 어쨌든 개인의 자유의지에 따라 연애할 수 있는 사람들은 행복하다고 해야 하는 건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고통과 본능을 억눌러야 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한 고통일까. 가장 본능적인 감정인 연애를 하고 있는 우다왕 앞에서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같은 구호는 아무 의미도 없을 뿐이다.
중국문학에 더 관심이 생겼다. 이 책은 중국정부에 의해 판금조치가 된 것으로 유명하다는데 겨우 이 정도가 판금이라니... 엊그제 사드의 책이 번역출간되었는데 발매중지가 되었다는 기사를 읽어서인지 몇년전에 읽은 이 책이 생각나 한번 더 집어들었다.
언제 봐도 절절하게 인물들의 슬픔이 전해져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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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을 모르고 읽었는데, 내용의 전개에 따라 느낌이 다르게 다가왔다. 특히 마오의 상징물을 파괴하는 것을 보면서, 이 책의 내용의 함의를 내가 잘 모르겠구나 생각을 했다. 조직이 해체되는 모습을 보면서, 맨 마지막에 조직에 남아서 방황하는 모습이, 마치 지금의 내 모습 같아서 매우 우울했다.
첫번째 내용이 중국 사단장의 젊은 아내인 류렌이 관사에 취사 공무 분대장인 젊은 우다왕을 유혹하는 부분이다. 사단장이 젊은 여인을 유혹하면 큰 갈등이 없는데, 사모님이 사단장의 부하 직원을 유혹하는 것은 큰 갈등이 예고된다. 농민 출신인 젊고 성실한 부하 군인이 사단장 부인의 유혹을 거절하여, 인사상의 불이익을 당하기도 하고, 어쩌면 유혹을 받아들여 장기화 되면 이것이 사단장에게 알려줘 더 큰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이다. 통상적으로 비극으로 끝나는 것아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간단하게 젊은 부하인 우다왕의 과거가 소개된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가 힘들게 우다왕을 중학교까지 보냈다. 그래서 다행히 동네 서기 정도에 일을 하고, 선배의 부재로 좀더 큰 곳에서 대표로 참석한다. 이때 대표모임에서 그를 눈 여겨 본 사람에게 보여 그 집의 사위가 된다. 이제 다음 출세 코스는 군대이며, 군대에서 당원이 되고, 장교가 되어 가족을 도시로 보내야한다.
군대에서 주인공은 성실하게 근무를 한다. 하지만 승진의 기회는 잘 찾아오지 않는다. 겨우 당원까지 되는 과정에 성공하고, 근무 평가가 좋아서 사단장의 관사에서 근무하는 기회가 찾아와서 일을 하게 된다. 가야할 길이 뭔 사람이다. 처음에는 사단장의 아내의 유혹을 거절하지만, 바로 인사 조치가 내려온다. 결국 불륜을 받아들인다.
두번째 내용이 젊은 아내인 류렌과 공무 분대장인 우다왕의 불륜과 정사가 될 것이다. 내용이 길긴 한데, 뭘 표현하는지 잘 이해를 못 하겠다. 어쨌든 마지막 날이 다가올 때, 마오 주석의 석고상부터 초상, 어록 등을 훼손하는 장면이 나온다. 우리가 보기엔 별 거 아니지만, 그런 상징물을 훼손하는 것이 크게 두 사람의 사랑과 대비되어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문화혁명의 끝을 상징할 수도 있다.
마오의 대표적인 어록이 이 책의 제목인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일 것이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이 책에서는 인민에 대해서 자조적이고, 비꼬는 부분이 있다. 즉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것은 가까이는 상사인 사단장과 가족인 부인에게 복무하는 것이고, 좀더 들어가서는 사단장의 부인에게 성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세번째 내용은 사단의 해체이다. 정확하게 중국이 어떻게 군제를 개편하는 지는 잘 모르지만, 중국 해방군의 규모를 줄이는 것은 언젠가는 행해지는 일이다. 그래서 대표적으로 주인공이 있는 사단이 해체된다. 대부분의 군인들이 민간인으로 돌아가야 되고, 일부만 남게 되는 것이다.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군대에 입대한 목적이 출세를 위한 것이다. 승진을 하고 당원이 되고, 장교가 되어 가족을 도시로 보내고, 부를 획득해야 한다. 대부분이 이런 농민들 출신이다. 하지만 이런 사다리가 끊어지고 만 것이다. 군기가 유지될 수가 없고, 질서가 일을 리가 없다. 이 혼란기에 주인공은 사단장 부인과 헤어지고, 고향에 좋은 자리를 얻어 돌아온다. 대부분의 구성원들은 갈 곳 없이 쓸쓸하게 고향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에필로그 식으로 15년이 지난 장면이 나온다. 사단장의 이제 사령관이 되었고, 사단장의 부인은 사령관의 부인이 되었다. 중년이 된 우다왕의 류렌을 찾아가지만 만나지는 못하고 팻말만 보낸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이 책에서 상징으로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적힌 팻말이 사용된다. 원래의 의도는 마오의 어록이였고, 그래서 사단장이 가져와서 걸어 두었지만, 실제로는 소위 정사를 하자는 신호로 사용된다. 즉 성적 서비스를 서로에게 (즉 인민에게) 제공하라는 것이다. 마오의 권위를 많이 제거하고자 노력한 소설이다. 당연하게 금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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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이건 누가 들어도 공산당 구호인 게 확실한 이 말이 의미를 갖는 것은 마오쩌둥이 한 말이기 때문인데 그래서 이 말은 중국 사람들에게 남다른 의미를 지닐 게 분명하고, 특히 그게 중국정부가 대장정을 끝내고 공식적으로 권력을 잡고 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임을 감안하면 그 말이 가지는 함의는 남다르다. 이 소설은 그 시기가 배경이고 읽으면서 확인해보니 우리나라에 책이 나온 지 얼추 10여년이 되어기는 중이다.
사실 일요일 집에 있다가 굳이 도서관에 나오기 위해 샤워하고 머리까지 감아야 했던 것은 이 책에 대한 독후감을 적기 위해서였다. 이 블로그에 적는 것도 책의 줄거리나 읽으면서 느낀 감동 등이 나이를 먹으면서 오래가지 않고 금방 잊혀지기 때문인데, 그래서 잊기 전에 적어두려는 것이다. 아무튼 유튜브로 어제도 듣던 The girl from Ipanema를 듣다가 옆에 뜨는 메뉴 중에서 Amy Winehouse의 그 노래가 있길래 들었는데 마음이 무겁고 노래가 너무 슬펐다. 마치 이 책의 마지막 처럼...
줄거리는 간단하다. 스물일곱살 먹은 군인이 취사병이자 공무원(아마 제반 일을 맡아하는 듯)이 나이 많은 사단장의 부인이자 군인 출신 서른두살 사단장 부인과의 사이에서 몸을 통해 해방(하하 진짜로)의 과정을 겪는 것인데 결국 서로가 자신의 위치로 돌아가는데 세상과 격리된 관사 안에서 둘이 오로지 남자와 여자로만 지내는 시기에 대한 묘사를 보다보면 잠깐 며칠이나 한 두달 그런 시기가 인생에 있다면 나머지는 그 기억만으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책 제목인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것은 사단장 부인 류롄이 병사 우다왕에게 자신의 요구를 들어야 하는 이유로 들이미는 것이고 또 그에게 자신의 욕구를 드러낼 때 사용하는 명패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책에서 수시로 마오쩌둥의 이 말이 등장하는 것은 인간이 인간에게 성적으로 즐거움을 주는 것이야말로 어쩌면 진정한 인민을 위한 복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중에 서로 자신의 사랑이 더 크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마오쩌둥의 얼굴이 그려진 물품들을 부수고 마오쩌둥 선집을 찢으면서 그 당시 상황에서 반혁명분자로 몰릴 위험이 큰 일을 서슴없이 해나가는 것이야말로 진정 두려움을 물리치는 사랑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그런 사랑도 십오년이 지나 남자가 사령관의 부인으로 살고있는 여자를 만나러 갔을 때 나타나지 않고 편지로 '돈이 필요한 거면....'운운했을 때의 씁쓸함, 한편 작가가 지나치게 이상화하지 않은 현실을 보여주고 있구나 하며 안심이 되었지만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엔 동화처럼 그들이 오랫동안 서로를 그리며 살기바라는 마음을 짓밟힌 것 같다.
소설에서는 작가가 마치 변사가 "자 앞으로 보실 것은 ...... 그래서 그들은 ....했고"하는 식으로 설명하고 있어 이게 오히려 진짜 같았다. 그리고 예전에 본 마오쩌둥의 '실천론'인가 '모순론;인가의 책이나 '중국의 붉은 별' 등에서 본 관념적 말들이 사실은 인민의 삶에는 실제 영향을 얼마나 끼칠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하면서 동시에 예전 나를 포함한 순진한 사람들이 사상이나 관념에 사로잡혀 실제를 그것과 동일시했던 시절이 생각났다. 책이나 구호가 아니라 이 소설이 진짜 중국인들의 삶이었다.
오자는 146쪽에 하나. '고용함'이 아니라 '고요함'이 맞는 것 같다.
하나 덧붙이자면, 이 책 덕에 나는 '장삼이사'가 중국에서 시작된 말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마 중학교 때 한문을 배우면서 알게된 말일 것 같은 '장삼이사'가 왠지 내겐 어색했는데, 이 책에 나온 '장삼과 이사'라는 말을 보면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엔 김씨나 이씨, 박씨가 훨씬 많은데 왜 난데 없이 장씨가 끼어들었는지 생각해보니 중국에는 아마 장씨가 더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에 흔한 이씨 덕에 우리말인줄 알았더니, 이제야 그 말이 내게 자연스럽게 와닿지 않았는지 이유를 알게되어 흐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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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군 병사 우다왕은 출세하고 대도시 호구를 얻기 위해서는 군대에 가는 것이 제일 좋다는 예기를 듣고 입대한다. 입대해서 운 좋게도 지도원 눈에 띄어 사단장 딲가리, 아니 사단장 집 취사병이 된다. 사단장집에는 평생 혁명에만 몸을 바친 50살 사단장과 34살의 간호병 출신 류렌뿐. sex에 관심이 없는 사단장이 자리르 비우면서 류렌이 4살어린 우다왕을 유혹하고 신물나게 sex를 즐긴다. 체제에 답답함을 느끼고 둘은 마오의 책,조각,현판등을 부시면서 sex를 한다. 류렌의 도움으로 우다왕은 제대, 공장장으로...
에기 줄거리는 별로 없다. 비교적 다른 중국 작가들에 비해 내면의 갈등과 심리묘사 뛰어나다. 스토리는 영화 나인송즈처럼 밤낮으로 sex만 해댄다. 류렌의 외로움을 달래 주지만 .지금도 중국에서 가지는 프리미엄, 군인 군관구 사령관/당원에대한 프리미엄을 류렌은 포기 못한다. 한여름날의 정사. 마오의 어록, 중국해방군은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이 책이 판금이라는 데 별로 이유가.. 왜냐하면 중국지도자들은 독재와 언론을 통제햇지만 축재와 부정은 없다. 지방관리들이 그 짓을 하지. 그래서 중국이 강해지는 게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