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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을 서성이는 존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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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란은 이제 큰길로 접어들었다. 한기를 느끼고 몸을 떨었으며, 마스카라가 번진 시커먼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취객 몇과 늦은 귀가를 재촉하는 교복 차람의 학생들이 보였다. 화란은 입을 가리고 황망히 지나가던 여학생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달려들었다. 그러자 그 여학생은 비명을 질렀고, 겁에 질린 얼굴로 달아났다. 그날 밤거리를 헤매던 화란이 파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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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란은 이제 큰길로 접어들었다. 한기를 느끼고 몸을 떨었으며, 마스카라가 번진 시커먼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취객 몇과 늦은 귀가를 재촉하는 교복 차람의 학생들이 보였다. 화란은 입을 가리고 황망히 지나가던 여학생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달려들었다. 그러자 그 여학생은 비명을 질렀고, 겁에 질린 얼굴로 달아났다.

그날 밤거리를 헤매던 화란이 파출소로 연행될 때까지 누구도 화란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화란이 다가올까 봐, 화란이 자기 앞에서 쓰러질까 봐, 내심 불안에 떨며 몸을 움츠렸다. 행여나 화란과 시선이 마주칠까봐 종종걸음으로 달아났다. 되도록 멀리. 화란은 그런 존재였다. 우리 앞에서, 우리를 향해 쓰러져서는 안 되는. 하룻밤 심심풀이 욕망의 대상이거나 호기심의 주인공이 될 수는 있지만 어린 너의 친구, 너의 누나, 너의 동생이어서는 안 되는, 너희들 바깥을 서성이는 존재. (「화란이」, 62쪽 발췌)

 

위 작품은 지난해 월간지 <어린이와 문학>에 청소년 소설로 발표되어 큰 논란을 일으켰던 작품입니다. 긍정 반응도 있었지만, 작가도 밝히고 있듯이, “애들 이 정도는 아니에요” “성인용 삼류소설을 읽는 듯한 무안함” 같은 반응도 거세게 일었습니다. 그런 만큼 소재로만 보면 분명 거부감부터 생기는 것이 사실입니다. 화란이는 열 살 이후로 엄마를 본 적이 없습니다. 알코올중독자였던 아버지는 폭력과 폭언을 일삼다가 술기운이 떨어지면 가누지도 못하는 몸을 벌벌 떨며 잘못을 빕니다. 그러니 화란이가 있을 곳은 ‘바깥’밖에 없습니다. 바깥에서 남자애들과 혼숙을 하고, 친구와 함께 원조교제를 하며, 마침내 남자친구가 죽었다는 소식에 관계를 맺던 남자를 찌르고 ‘봉두난발에 입다 만 듯한 행색이었고, 허벅지를 타고 줄줄 피가 흐르’는 상태로 거리로 나섭니다. 그러나 이 작품을 소재가 아닌 작가의 의도로 읽으면 바깥에 존재하는 우리 아이들에 관한 지극한 관심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만 관심을 드러내는 방식은 「화란이」의 경우처럼 대부분 극단의 처지에 몰린 아이들을 내세웁니다. 바깥을 서성이는 존재들에 관한 관심이니 당연합니다. 이를테면 「구령대 아이들」은 점심시간에 구령대를 차지하는 일진 아이들을 다룹니다. 거친 폭력이 있는가 하면 담배와 욕설이 난무하지요. 그런가 하면 「자전거 말고 바이크」는 열다섯 살 아이들의 첫 키스와 관한 이야기입니다. 아울러「까망의 왼쪽 가슴」은 아이돌 그룹 멤버에 집착하는 소녀 이야기입니다. 또한 「서랍 속의 아이」는 금기의 성에 발을 담그게 된 아이에게 비슷한 경험을 한 상담교사가 편지를 쓰는 형식으로 전개됩니다. 자칫 소재주의로 떨어질 수 있는 것들인데 작가는 소재주의로 떨어지지 않습니다. 현장 취재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싶을 정도로 현실과 밀착되어 있으며 차분합니다. 그리하여 진짜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은, 바깥을 서성이는 존재들을 통하여 다음과 같은 호소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너는 더럽지 않아. 너는 어쩌지 못하게 두렵고 혼란스러웠을 뿐야. 어쩌면, 병태도 그랬을지 몰라. 생각해 봐, 사람의 마음속에는 수많은 서랍이 있다고. 그래서 한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서랍이 몇 개나 되는지, 그 서랍 안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다른 사람도 모르고, 자기 자신도 모르고. 그러니까 당연히 어떤 서랍을 열었을 때, 거기 알 수 없는 마음이 너를 기다리고 있다면, 당황하고, 혼란에 빠질 수 있어. 너는 그때, 그런 서랍을 열었던 거야. 아주 낯설고 두렵지만 때로 평화롭고 충만했던. 네가 더러워서, 나빠서 그랬던 게 아니라. 그래, 어떤 사람은 그 서랍을 열두 살에 열어 보기도 해. 하지만 어떤 사람은 열다섯 살에, 어떤 사람은 영영 열어 보지 않을 수도 있어. 그건 사람마다 다르니까. 자기 자신도 모르니까. 더러운 거랑은 상관없는 거야. 그건 그냥 어떤 마음이야, 너에게는 한없이 혼란스러웠던.” (「서랍 속의 아이」, 145-146쪽)


YES마니아 : 골드 g*******g 2009.03.0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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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안에서 만난 <화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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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우연이란 말을 싫어한다. 우연이란 말처럼 무책임하고 불성실한 말도 없다고 생각했다.   '세상에 우연이 어딨어? 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지..'   그런데 정말 '우연'이라는 그 단어 말고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생겼다. <자건거 말고 바이크(이하 자말바)>를 읽고, 아니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그 책안에 두번째로 실린 <화란이>를 읽은 그 다음 날 아침. 시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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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우연이란 말을 싫어한다.

우연이란 말처럼 무책임하고 불성실한 말도

없다고 생각했다.

 

'세상에 우연이 어딨어? 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지..'

 

그런데 정말 '우연'이라는 그 단어 말고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생겼다.

<자건거 말고 바이크(이하 자말바)>를 읽고, 아니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그 책안에 두번째로 실린 <화란이>를

읽은 그 다음 날 아침.

시내로 나가는 마을버스에 올라 탄 나는 빈자리를 찾아

2인용 의자가 있는 뒷쪽으로 걸음을 옮기다 "어머!"

하고는 자리에 서 버렸다.

앞쪽에서 봤을 때는 분명 빈 자리처럼 보였던 의자에

왠 여자애가 누워서 잠을 자고 있었다.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여자애는 깡통한 바지에 아랫배가

훤히 드러날 정도로 짦은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옷은 헝클어진 그 애의 머리카락처럼 지저분했고, 그 애가

신고 있던 스니커즈는 정말 때가 꼬질꼬질했다.

그 와중에도 멋을 부린 건지, 손톱에는 유치한 원색의 메니큐어가

발라져 있었지만, 세상모르고 버스의자에 누워 자는 아이를 돋보이게

하지는 못했다. 어쨌든 아이는 주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침잠에 빠져 있었다.

아이는 아무리 봐도 어디를 가기 위해 버스에 탄 것 같지가 않았다.

그냥 잠깐 졸음에 겨워 깜빡 조는 것 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아이는 비스듬히 늘어져 단잠에 빠져 있었다. 버스가 어디로 가든

아무 상관없이 말이다.  

등교시간은 이미 훨씬 지나버린 시간..그 화창한 오전의 버스 안에서

만나 아이는 정말 '우연'이었다.

 

전날 읽은 <화란이>의 강렬한 인상에 사로잡혀 있던

나는 그 애를 보는 순간 '화란이다!'하고 속으로 외쳤다.

다음 정류장, 그 다음 정류장에서 올라탄 승객들도 처음에는 자리가 빈 줄

알고 다가왔다가 애를 보고는 모두들 묘한 표정과 함께 자리에서 비켜섰다.

나는 내가 내릴 정류장까지 그애 뒷자리에 앉아 그 애를 찬찬히 내려다 보았다.

그리고 출근길의 승객들의 얼굴도 살펴보았다.

 

거리낌없이 출근 버스안에서 잠을 자는 아이처럼,

거리낌없이 그 아이에게 불친절한 표정을 날리는 승객들을 보며 생각했다.

당혹스러움. 놀람. 불쾌함. 비웃음, 황당함...승객들의 얼굴에 떠오르는

그 표정들이 바로 <화란이>를 향한 그 표정들이 아니었을까?

 

내가 만약 어젯밤 <화란이>를 읽지 않았다면 나 또한 거리낌없이 저들과

비슷한 표정을 날렸을 건데...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버린 나의 '시선'에 대해서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을

거다.   

그런데 <화란이>(?) 덕분에 난 그 애를 가만히 내려다 볼 수 있었다.

못 볼 것이나 본 것처럼 황급히 시선을 거두어 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너 어젯밤 뭐했길래 600원 내고 버스에서 잠을 자니?"

하고 말이다.

 

누가 읽어도,

읽기에 불편한 <화란이>.

그리고 읽은 후에도 불편한 <화란이>.

그건 어쩌면 내 안에 비밀리 가두어놓은 나만의<화란이>가

꿈틀거렸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버스에서 웅크리고 자는 아이를

'나와는 상관없는 아이'

'내 세계에서는 절대 존재할 수 없는 아이'

'내 가족 내 친구 중에는 절대 찾아 볼 수 없는 아이'로

내몰고 부담없이 비웃을 수 있는 저 어른들의 가슴마다 숨겨져 있는

그 <화란이>가 꿈틀거렸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m*****1 2008.05.0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