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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아이돌'이란 말이 일본에서 언제 나왔는지 정확하진 않지만 내 기억으론 아마 2004년 가네하라 히토미와 와타야 리사가 각각 <뱀에게 피어싱>과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으로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하면서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데뷔 당시부터 이 젊은 두 여성 작가를 세트로 기억한 사람이 많았을 것인데 (나를 포함해) 그로부터 3~4년이 지난 지금 이들이 가는 길과 추종자들의 성격은 많이 달라졌다.
와타야 리사는 이르게 얻게 된 유명세로 인한 나름의 우울기와 슬럼프를 겪은 듯하고 (어디까지나 들은 얘기였으나 두번째 소설 <꿈을 주다>를 읽고 그런 인상이 더욱 확실해졌다) 그에 반해 가네하라 히토미는 원래부터 타고난 성격에 '작가'라는 타이틀이 더해짐으로써 그 행보가 더 거칠 것 없어졌다는 인상을 받는다.
<아미빅>을 읽고 느낀 것은 가네하라 히토미가 분명히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승전결을 지닌 소설로서의 구성력은 <뱀에게 피어싱>이 조금 더 위일지 모르나, <아미빅>의 문장들에서는 이전 작품들에서는 느낄 수 없던 '속도감'이 보인다. 어떻게 하면 이런 글이 나오나 싶을 정도로 흐트러진 잡문, 핑퐁처럼 주고받는 짤막한 대화, 그 속에서 긴장감과 질투, 시기, 집착, 자학, 도취 등의 적나라한 감정들이 쓰나미처럼 몰아친다. 그리고 그것들의 뒤에는 '작가'로서의 가네하라 히토미가 있다.
궁금해진다. 실제 그녀 옆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을까?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이런 글을 쓰게 만들었을까? 이렇게 자신의 감정의 밑바닥까지 끌어내는 칼 같은 글쓰기 방식은 어디서 나온 걸까?
어디까지가 작가 자신의 경험인지, 심리인지, 읽는 이로서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가네하라 히토미는 맨몸으로 작품과 독자에 부딪히는 몇 안 되는 작가 중 하나라는 것이다. 나는 그녀가 이제 주목받는 신인작가의 틀을 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녀가 앞으로도 정말 오랫동안, 계속해서 자신을 뛰어넘는 작품들을 써주면 좋겠다. 그것이 결코 대중의 사랑을 받지는 못하더라도, 그녀에게 몇 배 이상으로 공감하는 독자들을 위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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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세상이 미쳐간다.
사람들은 내게서 저마다 다른 모습과 역할을 요구하고, 내가 완벽하게 여러 개의 가면을 쓰길 바란다. 그런데 내가 미치거나, 죽지 않고 살 수 있겠니?
나도 미치고 싶다. 가네하라 히토미처럼. 아미빅의 이 가슴 시릴 정도로, 애처롭고, 그러나 강렬한 이 주인공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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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이 난해한 소설을 다 읽었다. 뿌듯함이 밀려와야 하거늘 왠지 더 목마르다고 하면? 마치 흥미를 가지고 지켜보던 tv의 리얼리티쇼가 중간에서 끝나버리는 느낌인 것 같기도 하고...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아쉽다. 끝없이 이어질 것 같던 착문의 의미도 파악하지 못 한 채 끝나버리다니. 그렇다고 결코 아미빅을 이해하기가 쉬웠다는 것은 아니다. 너무 리얼한 그녀의 머릿속을 읽고 난 후 잠시 멍한 상태였다. 상상력의 붕괴가 내 머릿속에서도 일어나려고 한다. 상상해보시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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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인가? 세번째인가? 어쨌든 처음은 아니다, 이 작가의 작품을 읽는 것은... 이전에도 그런 기억이지만 이 책 역시 별다른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무척이나 독특하다... 인물 자체도 이야기 자체도... 그래서인지 처음에는 지루하게 느껴졌던 이 책을 아주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들의 심리는 이해하기 힘들다... 책을 모두 읽고 난 이후에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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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네하라 히토미, 그와는 두번째 만남이다. 작년 여름이었던가. 굉장히 찌는 듯한 더위에, 여행을 떠나기 바로 몇 시간 전까지 안절부절하며 읽었던 책이 바로 <뱀에게 피어싱>이었고, 그게 그와의 첫 만남이었다. 일본 소설을 그리 즐기지 않던지라 좀처럼 찾아 읽지 않기에, 어떤 경위로 읽게 되었던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엄청난 충격에 머릿속이 황폐해진 기분이 들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내용도 비교적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 소설이 엄청나게 싫었던 건 아니지만, 다시 만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가네하라 히토미를 다시 접하게 되면서 이상스레 설레는 기분이 들었다. 이미 얕게나마 그를 접했던 전력이 있기에 엄청날 것이라는 건 짐작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당기는 마음을 접을 수가 없어 마침내 펼치게 되었던 것이다. 제목에서부터 착착 당기는 느낌이 오지 않는가. 상당한 망설임 끝에 다시 접했던 그는 <뱀에게 피어싱>에서 풍기던 문체나 분위기가 비슷하면서도 묘하게 달랐다. 그리고 그 다름이 오히려 나에게 더 깊고 은밀하게 채색되었다. 첫작에서 느꼈던 약간의 찝찝함은 가시고, 오히려 야릇한 성숙함이 더 짙어진 것이다. 무엇보다 약간의 역겨움도 느껴졌던 첫작과 다른, 뇌를 관통하는 듯한 찌릿함이 물씬 다가온다. 덕분에 책을 읽고 난 뒤로 한동안 넉다운 된 상태였던지라, 서평을 쓰려고 마음 먹게 된 기간도 평소보다 길어졌다. 나름의 찬사를 늘어 놓긴 했지만, 일단 <아미빅>은 첫작에 비해 이해가 어려운 소설이다. 이전에 비해 서사적 측면을 쳐내고 심리적인 측면을 섬세하게 표현했고, 서사적으로는 순차적이지만 의식의 흐름에 기대어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화자가 정신착란을 겪고 있기에 독자가 동화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더불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노 저어 오오'하는 식의 문학적인 표현보다 현실적이면서도 독특한, 혹은 난해한 묘사를 통해 내면 심리를 표출하고 있다. 하지만 한 번 동화되기 시작하면 그의 우울마저 전염되어 오는 중독성은 실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다. 앞서도 말했듯 화자는 정신착란을 겪고 있는데, 나의 짧은 지식을 통해 좀더 세부적으로 살펴 보면 그는 섬망을 겪고 있다. 착란 당시의 상황을 기억하지 못 하는 점이나 알코올 중독을 겪고 있다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 그는 아주 심한 정신병을 앓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착란은 정신병에서도 꽤 중증의 상태이며, 그 중에서도 섬망은 정신착란에서 가장 중증의 단계이다. 이처럼 심한 정신병을 앓고 있지만, 그는 이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하려 한다. 이런 상태에서 겪는 자기혐오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그를 괴롭힌다. 자신은 물론이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일까지 혐오한다. 착란 상태에서 컴퓨터에 남겨 놓은 착문은 그 도를 더욱 심하게 만들어 몰아 세운다. 그의 행동이나 소설 속의 문장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이다. 더군다나 가네하라 히토미 본인도 인터뷰를 통해 이 소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고백한 바 있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소설에서 쓰여지고 보여지는 것들은 이를테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겪었을 법한 괴로움과 우울을 표현한다. 다만 깊이가 빈도가 남다를 뿐이다. 가네하라 히토미는 그 본능적이고 근원적인 고독을 너무나 잘 표현해 냈다. 때로는 엽기적이고, 또 비현실적인 문체나 상황을 통해, 정제하지 않고 거친 내면을 그대로 보여 준다. 덕분에 그를 다시 보게 되었다. 더, 알고 싶어졌다. 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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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네하라 히토미의 세 번째 장편소설이다. 그 유명한 <뱀에게 피어싱>과 두 번째 소설 <애시 베이비>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으나 호평과 혹평이 공존하는 그녀 소설에는 늘 호기심을 갖고 있었다. 호불호가 강하단 건 그만큼 자기 개성이 강하다는 걸 테니까.
아미빅-아메바의, 아메바로 인한. / 아크로바틱한 자기중심주의가 뇌를 침식해 일어나는 상상력의 붕괴. 앞의 뜻은 사전적 의미이고, 뒤의 글은 이 책에 달린 부제목이다. 처음 몇 페이지는 무척 혼란스럽다. 띄어쓰기와 구두점이 무시된, 마치 정신분열증 환자의 중얼거림 같은 글. 주인공은 작가다. 몽롱한 채로 홀린 듯 이런 글을 쓸 때가 많다. 그녀는 밥을 먹지 않는다. 영양제와 약간의 야채 절임, 물만으로 버틴다. 몸무게는 30킬로그램 조금 넘는다. 그녀에게는 애인이 있다. 그 애인은 약혼녀가 있다. 애인은 잡지사 편집자이고, 약혼녀는 파시티에다. 그녀는 자기 자신이고 싶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몸도 마음도 감정도 어느 것 하나 얼버무리고 싶지 않다.
그녀는 남과 자신을 구분지으려는 욕망으로 스스로 착란에 빠지곤 한다. 착란에 빠지지 않고는 남과 융화하고픈 욕구를 억누를 수 없으니까. 그녀의 삶은 자학적이고 파괴적이다. 극심한 자기애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애인에 대한 사랑조차 자기애적이다. 보고 싶고 만지고 싶고 그립지만 정작 만나면 아무런 감정이 없다. 보고 싶고 만지고 싶고 그리운 그 감정을 사랑하는 것 아닐까. 그녀는 가까이 두기에는 너무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떨어뜨려 놓고 모른 척 하자니 너무 자극적이다. 그런 여자는 늘 외롭다. 그리고 그 외로움까지 포함한 자기 자신을 너무 의식하며 살기에 세상과 융화할 수가 없다. 자기 외의 다른 모든 것이 하찮기에 외롭고, 외롭다. 대개는 누구나, 마음 한 가운데는 자기만의 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실생활에서 그 섬에 거주하기를 원하며 실제 실천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세상에 묻어가지 못하는 사람을 우린 "미쳤다."고 한다. 미친 건 세상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우린 그렇게 말한다. 그래야 세상에 묻어가는 나를 정당화할 수 있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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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에게 피어싱을 재밌게 읽어서 기대에 차 읽었기때문이지도 모르지만..
책을 읽는 내내 '그래서? ' 라는 말이 계속 떠올랐다.
어찌보면 난 참 단순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렵게 포장한 책들은 잘 이해가 안된다. 이책 역시 그렇다고 말해야할까?
정신분열인건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작가의 세계가 드디어 진화를 시작했다는 추천평도 좀 이해가 안된다.
이렇게 무슨말인지도 모를듯한 말들을 잔뜩 늘어놓으면 진화하는건지?
아무튼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법이고, 나같이 단순한 사람으로선 정작 작가가 무슨말을 하려는건지 당췌 이해가 안간다.
너무 심오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읽는 내내 그만읽고 싶단 생각이 드는 책이랄까
뭐그렇다...
'아미빅'은 아크로바틱한 자기중심주의가 뇌를 침식해 일어나는 상상력의 붕괴를 의미한다는데..그말도 뭐...ㅡ.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