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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의 첫 정착 농격 문화는 바다리 문화다. BC 5000~ BC 3800년 사이의 문화다. 이집트에서 발견된 유물은 이 시대의 것을 포함한다. 1920년 경에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책에 소개된 BC 5천년경의 바다리 문화의 유물은 모두 해외로 반출되어, 르부르박물관과 대영박물관에 있다. BC를 말할 때 1천단위를 넘어가는 시대의 유물을 상상해보기는 어렵다. 농경이 신석기 BC 8천년에 싹트고, 금속 사용이 BC 6천년경에 시작되면서 BC 5천년부터는 이시대까지 보존이 가능했던 유물을 남긴 것이다. 이집트의 역사를 말할 때 이집트는 나일강 상류로 지도상에서는 아래 부분에 해당하는 상이집트와 지도상에서는 윗부분이지만 나일강 하류에 해당하는 하이집트 부분으로 나뉜다. 상하 이집트와 각 부족으로 분열되어 있던 시기에 상이집트에는 <미이라>의 스콜피언 킹의 모델이 되는 왕이 등장하고, 그 뒤로 나르메르가 상하 이집트를 합쳐 첫 통일 왕조를 세운다. 멤피스는 첫 통일 왕조의 수도다. 이 때가 선왕조시대라 불리우는 시대이고, 그 중에서도 0왕조다. 0왕조는 BC 3150에서 BC 3050 년까지 계속되었다. 우리는 이집트의 유적이 발굴될 당시 유럽의 패권을 쥐고 있던 강대국들에 흩어진 이집트의 고대 유물들과, 상하이집트에 남아있는 유적지들을 방문하면서 선왕대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그 장구한 이집트의 역사를 차근차근 비교적 상세히 펼쳐보게 된다. 어떤 면에서 보면 역사란 남겨진 기록과 유물, 유적을 바탕으로 재생한 추측에 불과하다. 거기에는 분명 누락된 역사의 조각들이 여러 역사가들의 상상력 혹은 정치적 목적에 의해 이어붙여지면서 왜곡된 사실이나 허구가 존재한다. 말이 전하는 것은 믿을 수 없지만, 물건은 최소한 존재 자체가 거짓말이 될 수 없다. 유물을 누가 어떻게 해석하건 간에 그것이 있다는 것과 그것이 어떤 상태로 남겨져있다는 것만큼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남겨진 유물은 박물관에 가야 볼 수 있고, 남겨진 유적은 폐허가 된 유적지를 돌아봐야 볼 수 있지만 아무 것도 알지 못한 채 박물관과 유적지를 돌아봐봤자 그 유적이 말해주는 것들을 들을 수는 없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박물관을 돌아보는 것보다는 여러 박물관에 흩어져 있는 유물과 유적지들을 시대별로 그 유물에 얽힌 역사적 사실과 함께 책으로 읽어보는 일이 더 유익할 수 있게 만든 책이다. 물론 작은 사진으로 보는 것과 실제 모습을 가까이서 들이다보는 것은 큰 차이가 있겠지만, 사진을 찍을 때는 찍는 사람의 관점이 남아있다. 우리가 관람객으로서 빠듯하게 짜여진 여행의 다음 일정을 위해 휘리릭 보고 떠나는 것보다는 어떤 유물이 던져주는 메시지를 어떻게 읽을 지에 대한 자신만의 시각을 가진 저자의 시각이 반영된 사진으로 설명과 함께 제공된 문맥을 함께 읽고 볼 때 더 많은 것을 얻을 수도 있다. 7천년의 역사 중, 이집트 고유의 토착 민족이 왕족이 되어 고유의 고대 이집트 문화를 지킨 것은 대부분의 BC 시대다. BC7세기 이집트를 정복한 누비아의 흑인 왕조인 쿠시 왕조와 그 이전에 왕족간의 혈연으로 파라오가 된 리비아 계열의 왕조가 집권하기도 했다. 이후 몇 세기에 걸쳐 계속된 페르시아의 침략과 지배를 그리스 용병에 의지하다가 끝내는 알렉산더가 페르시아를 멸망시킴으로써 알렉산더가 페르시아를 접수했을 때, 이집트 왕조는 막을 내리고 헬레니즘 시대로 편입된다. BC343년에 이집트와 페르시아가 맞붙었을 때 양쪽 선봉은 모두 그리스 용병이었다고 한다. 그리스 용병들은 돈만 주면 싸웠고, 더 강한 용병을 더 많이 고용한 쪽이 이기는 거였다. 이렇게 이민족과의 싸움에서 독립적 세력을 갖지 못한 이집트의 마지막 토착 파라오 (넥타네보2세)는 누비아로 도망가서 망명정부를 세우지만 그 이후의 기록은 없다. 이후 지난한 AD의 모든 세기를 다 이방인의 통치 하에 있었고, 이집트인이 통치하게 된 것은 1952년의 일. 2200여년간 스스로를 남에게 맡겼던 셈이다. 이집트의 왕조의 역사를 시간 순서대로 비교적 상세하게, 가능한 한 모든 왕조의 관계를 빠짐없이 기록하면서 해당 왕들의 유물과 유적들을 방문하며 당대에 일어났던 일들을 다시 조명하는 방법으로 기술되어있다. 역사책이면서 기행문이기도 한 이 책은 문체가 조금 독특한 ~어요 체로 되어 있는데, 자칫 딱딱해질 수 있는 역사를 부드럽게 말하는 식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그런 방법을 쓴 것 같은데, 내게는 조금 집중에 방해가 되었다. 왕위 쟁탈전 어느 나라에서나 영웅이 있기 마련이고, 믿어지지 않는 신화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저자는 이집트가 강력한 모계사회라서 왕의 정통성을 위해 정비가 아들을 낳지 못하면, 정비의 딸과 결혼한 사위가 파라오가 되었다고 말한다. 아니 모계사회라면 딸이 파라오가 되어야지 왜 전혀 피가 한방울도 섞이지 않은 사위가 엉뚱하게 파라오가 되는 것인가 라고 생각되어지기도 하지만, 그 딸이 다시 아들을 낳으면 다음 세대에서는 아들이건 딸이건 적자가 혈통을 잇게 함으로써 길게 보면 정통성이 생기는 게 맞는 거 같긴 하다. 그래도 내가 왕가의 딸인데, 엉뚱한 남편이 파라오가 되는 일을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신왕국 시대(BC 1570년~BC 1069년)의 하트셉수트는 투트모스 1세의 정비 태생의 딸로, 남자 형제들이 모두 죽자, 유일한 계승자가 된다. 왕가의 야화는 유교국가인 우리나라에서도 흥미진진한데, 뜨거운 햇볕 강렬한 모래 사막 위에 헐벗은 통치자들이 형제자매부모사이 가리지 않고 결혼하는 고대 이집트라면 어땠을까. 짧게 짧게 나오지만 언제나 어느 왕조에서나 반복되는 왕위 쟁탈전과 그에 따르는 음모와 계략은 서늘하다. 투트모세1세의 서자인 투트모세 2세는 취약한 정통성을 강화하기 위해 투트모세1세의 정실의 딸 하트셉수트와 결혼(남매끼리)하지만 일찍 죽는다. 후궁이 낳은 어린 아들 투트모세 3세가 제위에 오르자, 물을 만난듯 공동통치를 내세우고 정권을 쥐고 흔들던 하트셉수트는 나일강 건너 카르나크 아몬대신전과 일직선으로 연결된 파라오의 장제전을 짓고 스스로 파라오가 된다. 하트셉수트의 치세에 이집트의 국력은 강했고 그 어느 때보다 번영했다. 투트모세3세 역시 서자라 정통성 문제를 극복하고자 하트셉수트의 딸이자 자신의 배다른 남매인 네페루네와 결혼한다. 하지만 네페루네는 일찍 죽고, 하트셉수트가 죽은 후, 그녀의 모든 흔적을 역사에서 지운다. 장제전을 청소하고, 하트셉수트의 조각상을 파괴하고 그녀를 새긴 부조를 지우고(이 책에는 이렇게 나와있는데 나무위키에 찾아보니 다른 의견도 있다. 일부러 부수지는 않았다는 의견도 있는 듯), 그리고 나서 복수하듯 해외 원정에 나섰다. 18년간 휴가를 가듯 매년 레반트와 팔레스타인으로 원정을 떠나, 무려 350개의 도시를 굴복시켰다. 이러한 왕위 쟁탈과 정통성 확보를 위한 혈통간의 결혼은 계속된다. 아버지와 딸 사이는 물론 어머니와 아들 사이에서도 일어난다. 그 극단을 보여준 예가 친아들 프톨레마이오스 10세와 결혼한 클레오파트라 3세다. 이 일은 고대 이집트에서도 없던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와 시리아의 셀레우코스 왕조의 클레오파트리의 결합 이후 벌어진 왕위 계승 스토리는 너무나도 복잡해서 다시 정리를 해야겠다(희망사항)
(하트셉수트의 장제전, 룩소르) 세계로 흩어진 투트모세 3세의 오벨리스크 위대한 문명은 그 규모에서 압도한다. 그러나 너무나도 많은 유적과 유물이 해외로 반출되었고, 도굴되었고, 파괴되었다. 우리나라의 유물도 일본과 각지로 반출된 것이 많지만, 이집트의 경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화려한 유물들을 세계 각지로 흩어보냈으니 국민들이 얼마나 원통하고 억울할까 싶다. 특히 오벨리스크의 경우 그렇게 커다랗고 높은 탑이 어떻게 세계 각국에 흩어졌을까가 의문이다. 양엄마며, 고모며, 장모였던 하트셉수트에 대한 강한 복수심으로, 하트셉수트가 세운 오벨리스크를 가리며 세운 네 개의 오벨리스크는 세계 각국에 뿔뿔이 흩어졌는데, 하나는 357년 로마 콘스탄티우스 2세때 알렉산드리아로 옮겼던 것을 390년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콘스탄티노플 전차 경기장 가운데로 옮겨 현재는 이스탄불에 가면 볼 수 있다. 다른 두 개는 18세기 이후 런던의 템즈강에 하나, 뉴욕의 센트럴 파크에 보내졌다. 정복왕 투트모세 3세가 지금도 세계를 정복중이라는 저자의 말이다. 손자 투트모세 3세가 만들다가 죽자 4세가 완성한 오벨리스크는 로마로 갔다. 로마의 전차 경주장인 키르쿠스 막시무스에 세워졌는데, 이후 1588년 경에 교황 식스투스가 산 지오반니 광장으로 옮겼다. 신석기에서 BC3150년까지의 선왕조 시대는 바다리 1기, 2기와 나카다 1기 2기 3기로 분류된다. BC3150년부터 BC 2686년까지는 초기왕조시대로 분류되는데, 이 때 상형문자가 등장한다. 0왕조에 전갈왕과 나르메르가 통치하고 이어 나르메르의 아들부터 파라오 일곱명이 아비도스를 수도로 다스리던 시기가 1왕조(BC3050~BC2890)다. 이후 파라오 다섯명이 다시 멤피스를 수도로 통치한 이백년이 2왕조(BC2890~BC2686)이다. 우리로서는 상상도 못할 까마득한 옛날 3천년 경에 이미 문자가 쓰였고, 또렷하게 남아있는 조각과 부조, 상형문자들은 신비감을 넘어 경외감을 불러 일으키기 충분하다. 이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 3왕조부터 6왕조까지 피라미드가 지어지던 시대를 고왕국 시대다. BC2686년부터 BC 2181에 해당된다. 피라미드의 등장은 3왕조 2대 파라오(BC2668~2649)에 이미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렇게 까마득한 시대에 이미 상상도 못할 규모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제작하고 온갖 유적과 유물을 남기기 시작했으니 이후 이민족이 지배하기 전까지 계속된 25세기의 찬란한 이집트 문명은 끝이 없이 계속된다. 허무한 게 있다면, 이렇게 많은 내용을 이렇게 오랫동안 읽었으나, 기억에 담지 못하고 잊혀지는 것이다. 470여쪽으로 책의 두께에 비하면 페이지수는 그렇게 많지 않은 편이며, 사진을 많이 담고 있어 텍스트 역시 그렇게 많지 않지만 엄청나게 많은 사실이 요약 압축되어 있기 때문에 대용량의 두뇌를 필요로 한다. 고로 하루에 읽을 수 있는 양이 제한된다. 시간도 엄청 걸리고. 좋은 책이다. 두고두고 5천년전의 고대 도시로 언제든 책만 펼치면 여행할 수 있는 책이다.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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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외에 이집트 문명을 만난 건 영화 「미이라」에서였다. 고대 이집트 파라오의 정부였던 아낙수나문과 그의 신하였던 임호텝의 사랑과 황금의 유물을 찾아 떠나온 탐험가들이 죽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장교와 박물관 사서의 모험이야기를 다루었던 영화였다. 꽤 무서웠고 오래도록 잔상이 남아 많은 사람들에게도 사랑받았던 영화였다. 그 영화때문에라도 이집트의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졌었다. 재작년에는 파라오에 관련된 미술품을 설명한 『이집트 미술』을 읽었고, 이번엔 유물로 이집트 문명을 설명하는 책이었으며 그 전 책에 비해 사진 자료와 풍부한 설명이 있는 작품이었다. 읽는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그만큼 유익한 책이었다.
'파라오 Pharaoh'라는 말은 원래 그리스어이며, 이집트어 '페르-아 Per-aa(큰 집)'에서 나온 말이다. 처음엔 궁궐을 뜻하다가 신왕국 시대를 지나면서 궁궐에 사는 왕을 나타내는 용어로 자리잡았다고 한다. 수많은 유물들에서 만나는 파라오는 그들의 권력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긴 가발, 길다란 가짜 수염, 머리 장식. 그리고 남성은 한 발을 앞으로 내딛는 모습을 표현했다. 이집트 하면 생각나는 것이 피라미드와 미라, 스핑크스인데 스핑크스를 어떤 의미로 만들었는지 볼까. 스핑크스 얼굴에 파라오의 얼굴을 조각해 넣었는데 이는 태양신 숭배의 진정한 수호자 역할과 권력의 정점에 오르려는 파라오의 마음이 담겨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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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나 세계의 어느 나라나 그 나라의 유물이 도굴꾼에 의해 유실되는 경우가 많았다. 과거 우리 나라의 유물이 도굴꾼들에 의해 도굴되어 외국으로 유출되었듯 이집트의 유물도 마찬가지였다. 피라미드가 도굴꾼들의 표적이 되자 무덤의 장소를 피라미드에서 계곡으로 옮긴 것이 그것이다. 그곳을 '왕들의 계곡'이라 불렀고 도굴을 막기 위해 계곡으로 무덤을 옮겨 무덤의 위치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다. 이는 투탕카몬의 무덤이 숨겨져 나중에 발견되었던 이유와 비슷하다. 가장 깊숙한 곳에 무덤이 있었기에 도굴꾼들을 피할 수 있었고 많은 부장품들을 건질수 있었다.
과거 신라시대의 왕조를 보면 자신 친척들간의 결혼이 있었듯 이집트 왕실 또한 파라오의 순수한 혈통을 중시해 근친혼이 성행했다는 걸 볼 수 있었다. 아들과 어머니 혹은 동생, 딸과도 결혼해 권력이 바뀌는 것을 방지하고자 했다. 어쩌면 이렇게 근친혼을 할수 있겠나 싶지만 우리나라의 신라시대에도 있었을 뿐 아니라 중세 유럽의 합스부르크 왕가에서도 근친혼을 했었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근친혼 때문에 주걱턱을 갖게 된 것은 벨라스케스의 그림에서도 잘 나타나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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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하면 생각나는 것이 또 하나 있는데 바로 「클레오파트라」라는 영화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만들어져 개봉된 영화로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주연한 영화인데, 내가 보았는지는 확실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영화의 몇 장면이 기억나긴 하는데, 내가 보았다기 보다 몇몇 장면이 생각나지 않는가 싶던데, 책에서는 클레오파트라에 대해서도 다룬다.
이집트를 정복한 알렉산더에 의해 알렉산드리아 시대로 넘어오게 되는데 이때가 헬레니즘 시대이다. 카이사르에 의해 클레오파트라 7세와 15살 어린 남동생 프톨레마이오스 14세가 결혼하게 되는데 카이사르는 클레오파트라와 연인 관계를 유지하지만 공화당 원로원에 의해 암살을 당한다. 자신의 동생이자 왕인 프톨레마이오스 14세를 죽이고 안토니우스에게 접근한다. 그동안 아름다운 미모를 가진 이를 가리켜 클레오파트라라고 칭했지만 미모보다 지혜와 치밀한 전략이 더 빛났던 여인이라고 저자는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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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역사서에서도 있었던 것과 같이 권력을 위해서라면 남편과 아내 혹은 동생, 부모등을 죽이는 건 예사였다. 이렇듯 많은 죽음들이 있었기에 파라오들의 무덤인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미라등의 장례문화가 발전했는지도 모르겠다.
이집트를 이루는 근간인 신의 이야기에서부터 그리스와 로마 시대를 거쳐 이슬람 시대를 이루는 이집트의 문명을 유물로 만나볼 수 있는 유익한 책이었다. 유물은 그 시대를 나타내는 역사적 산물이며 문화를 나타낸다. 파라오는 갈색을 왕비는 우윳빛 피부로 나타냈던 것처럼 그 특유의 문화에서 이집트 문명을 배웠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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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로 읽는 이집트 문명...파란만장 이집트 역사를 한 눈에?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답게 이집트 문명은 유구한 역사 속에서 살아숨쉬고 있었다. 그동안 익히 알고있던 피라미드 유적지, 미라, 파라오등은 지금도 세계인의 관심과 주목을 받으며 끊임없이 발길을 재촉하게 만들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저자 김문환은 오랜 기자 생활로 취재와 탐방, 그리고 방대한 자료를 통해 이집트 문명을 알기쉽게 설명하고 있다. 특히 우리 역사와 비교해 가면서 이해를 돕는다. 정통성 명분을 위해 일차적으로 부모와 자식 간의 결혼이 일반화되었던 사실등 유교적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대목을 자연스럽게 그럴 수 있다고 이해시키고 있다. 이집트 문명은 토착 이집트인과 더불어 팔레스타인, 메소포타미아에서 온 서아시아 세력, 서쪽 리비아 사막에서 온 베르베르, 남쪽 나일강 상류에서 온 흑인, 유럽에서 온 백인, 중앙아시아에서 온 유목 민족, 아랍 민족등이 거쳐가며 다양한 흔적을 피라미드에 담았다. 종교적으로는 전통 이집트 종교인 태양신 숭배사상과 그리스 로마 신, 기독교 신앙, 기독교에서 분파된 콥트교, 이슬람의 침입에 의한 이슬람교등 다양한 종교의 각축장이었다. 나일강의 범람으로 농경문화가 일찍이 발전하였으며, 정신세계를 지배한 신앙으로 태양신, 사후 세계로 영생을 추구한 미라, 피라미드등은 문명 발상지로서의 다양한 기록과 유물, 유적을 남겨 놓았다. 그런데 이같이 유구한 역사이다보니 자연스럽게 이민족의 침입이 잦았고 이로 인해 유물의 도굴, 빼앗김이 많았다. 현재 이집트 유적은 런던 대영박물관, 파리 루브르 박물관, 베를린 이집트 박물관, 로마등 세계 각지로 흩어져 있다. 한 마디로 서구 열강의 침탈 각축장이었음을 볼 수 있다. 이집트의 마력은 피라미드, 미라 중심이던 고대문명을 거쳐 알렉산더 대왕의 원정이후 헬레니즘 문화, 카이사르, 안토니우스를 상대로 헬레니즘을 지키기 위한 클레오파트라의 몸부림, 동로마 제국을 몰아낸 이슬람 세력, 몽골을 막아낸 맘루크, 수에즈 운하의 개통과 베르디의 개선행진곡 아이다 등은 지금도 주목받고 있다. 재미있는 용어 몇 가지를 설명하고자 한다. 이집트의 어원은 Ai-gy-pros(아이-기-프토스)에서 BC3세기 활약한 고대 이집트 역사가 마네토가 수호신 프타의 신전 후트카 프타를 그리스어로 바꾸는 과정에서 Egypt가 탄생(P.47)한다. 아멘의 기원은 고대 인도 산스크리트어의 아움(Aum)은 물론 기독교의 ‘아멘’도 아몬에서 나왔다. 이집트에 와 있던 유대인들이 배워서 ‘강한 긍정’을 의미하는 단어의 어원으로 사용한다(P.53). 스핑크스는 18왕조 7대 파라오 아멘호테프 2세를 기리기 위해 높이 4.25미터, 길이 8미터, 무게 80톤으로 만든 석회암 조각(P.47)인데 태양과 관련된 천문학적 자료를 토대로 스핑크스를 만들어 태양신 숭배의 절정에, 그리고 권력의 정점에 자신을 올려놓았다. 이후 카프레는 정의와 진리의 수호자로 자신을 스핑크스에 새겨 아버지 쿠푸와 이복형 제데프레를 뛰어넘으려 했다(P.115). 마스타바는 대개 부부합장이나 가족묘의 성격이 커서 한 가족의 사후세계 행복을 지켜주는 공간(P.133)으로 관을 놓는 현실과 공물을 바치는 성역소로 나뉘었다. 미라는 방부제인 몰약이라는 뜻에서 썩지 않는 시신을 가리키게 된 포르투갈어 미라(Mirra)가 일본어 미이라(ミイラ)를 거쳐 우리에게 들어왔다(P.163). 투탕카몬은 9살에 등극, 18살에 죽었다. 유전질환으로 고생했고 이집트 역사에서 미라의 상상력을 극대화시키는 파라오로 가장 완벽한 상태의 미라로 발굴(P.237)된 것이다. 한편, 피라미드, 스핑크스와 함께 이집트 문명을 상징하는 유물로 투탕카몬의 미라에 씌워져 있던 황금 마스크(P.250)를 들 수 있다. 파라오라는 말은 그리스어인데 원래 이집트어 페르-아(큰집)에서 나온 말이다. 처음에는 궁궐을 뜻하다가 신왕국 시대를 지나면서 궁궐에 사는 왕을 나타내는 용어로 자리잡는다(P.267). 이집트 탐방의 대명사로 기자 피라미드와 룩소르 카르나크 신전, 왕들의 계곡, 누비아 아부심벨 성전을 든다(P.293) 사자의 서는 1842년 독일 고고학자 렙시우스가 지은 표현으로 죽은 사람의 책이라는 뜻이다. 죽은 사람이 저승에 가서 영생을 얻는 방법을 적어놓은 글(P.341)이다. 샤바카 스톤은 1.37미터 크기의 검은색 현무암으로 멤피스 주신 프타의 천지창조론을 담은 유일한 유물(P.357)이다. 한편, 프톨레마이오스 5세 즉위 9년을 맞아 전국의 신관들이 모여 멤피스에서 회의를 열었던 기록을 정리한 로제타스톤은 높이 114센티, 폭72센티, 두께 28센티, 무게 762킬로그램의 회색 화강암(P.427)으로 그리스 문자와 이집트 문자 2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1799년 알렉산드리아 동쪽 로제타에서 발굴했고 나폴레옹과 넬슨의 싸움, 영국의 승리로 대영박물관으로 가져간다. 신왕국 시대는 20여년, 고왕국 시대 이전은 50~200년까지 이집트 역사가 차이가 나는 이유는 동양의 경우 60년을 주기로 연도이름이 있어 갑자년 이라면 전후 사정을 고려해 연대 환원이 용이하지만 고대 이집트는 이것이 없었기에 연구자에 따라 연대 측정 진폭이 생긴(P.271) 것이다. 한반도의 5천년 역사 속에서 고대사의 경우 이렇다할 유물이 많지 않고 중국등 주변 강대국의 역사에 편입되다보니 내세울 만한 유적 역시 변변찮은 가운데 이집트 문명을 대하고 보면 우리와 상황은 다를지라도 역시 약소국이었던 지라 서구 열강의 각축장으로 문화재 침탈, 수난의 파란만장 역사가 현재에 이르고 있음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하지만 세계유산으로 확대 해석하는 편이 낫겠다는 논리도 다분히 작용하고 있음을 배제할 수 없다. 그들 스스로 지켜낼 수 없었고 후손이 선조들의 유물을 파괴하고 다시 활용하는 등 악순환이 반복되는 역사가 되풀이되는 걸 보았다. 결국 이민족의 침탈에 의한 유물, 유적의 도난, 도굴, 발굴은 어쩔 수 없는 또 하나의 희생양이자 이를 기회로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이집트 문명의 도도함이 엿보인다. 유물, 유적을 통해 이집트 문명을 이해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기꺼이 추천한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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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책 리뷰입니다. 이 책의 경우에는 정말 애정이 듬뿍 담긴 리뷰가 될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후술할 몇가지 특성으로 인해서 좀 당황한 책이기는 합니다. 다만 그렇다고는 해도 매력이 없다고는 말 할 수 없어서 말이죠.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이집트 이야기이니 말입니다.
그럼 리뷰 시작합니다.
한동안 고대 문명에 관해서 정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피라미드 이야기도 같이 하게 되었고, 결국에는 아즈텍과 마야 문명 이야기까지 넘어가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정말 중학교까지는 매우 즐겁게 지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다만, 중학생이 지나가, 고등학생이 되자 점점 더 고대 문명에 관한 관심이 떨어졌던 것이 사실입니다. 매력은 있었지만 공부에 치였고, 제가 선택한 것은 이과였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제 삶의 안정을 찾고 보니 다시 그 과거에 대한 흥미가 돌아오게 되었죠. 그 시작을 어떤 책으로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정말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고대 이집트에 대한 책은 정말 많기는 하지만, 흥미 위주의 책이 정말 많고, 또한 아이들용으로 나온 것들이 대다수라는 사실입니다. 좀 괜찮다 싶으면 책이 절판이거나, 아니면 구하기 힘든 경우가 대다수이고 말입니다. 게다가 정작 읽어보면 너무 어려운 영역으로 넘어가서 오히려 흥미를 잃어버리게 만드는 경우도 상당히 많은 편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쉽게 접근하면서도 어느 정도 깊이를 가진 책을 찾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이번 책의 경우에는 위에 설명한 사항에 매우 효과적으로 부합하는 책입니다. 기본적으로 고대 이집트에서 근대까지를 거의 다 다루는 책인 동시에, 각 시기에 관하여 의외로 자세한 서술을 가진 책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어려운 이야기로 번져가는 것이 아닌, 나름대로 가벼운 이야기를 가져가는 면들도 있기도 한 것이죠. 덕분에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고대 이집트에 관하여 지식을 필요로 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편입니다. 책에서 전반적으로 다루는 것은 아무래도 우리가 신화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이집트라는 곳입니다. 지금의 현대 이집트를 먹여살리고 있는 그 고대 이집트의 여러 유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죠. 이 유물들은 각 시대를 표현하는 시대상의 한 단면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생활상이나 종교적 특성을 매우 잘 보여주기도 하죠. 이 책에서 주로 다루는 것은 바로 유물이라는 지점입니다. 아무래도 증거에 관해서 주로 접근하는 면모를 가져가고 있는 상황이 되는 것이죠. 고대 국가에 관해 이야기를 하는 데에 있어서 유물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앞서 말 했듯, 유물은 그 시대의 생활상이나 종교적인 면, 사회적인 면의 단면을 볼 수 있게 하니 말입니다. 이집트는 그 고대 유물이 매우 독특한 곳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거대한 유적도 꽤 있는 편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다만, 시각적으로 매우 강렬한 느낌을 주지만, 이에 관해 알아가고자 하면 오히려 이야기가 너무 복잡해지는 경향도 꽤 있는 편입니다. 다행히 이 책의 경우에는 생각보다 그 복잡한 이야기를 잘 피해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 선택에 관해서 약간 놀라운 문체 선택을 한 면도 보입니다. 보통 해당 계통의 도서들은 전문성을 주요 골자로 하기 때문에 상당히 딱딱한 문체를 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야기의 엄밀성과 전문성에 관해 확실히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이야기가 어려운 데로 흘러갈 거라는 매우 쉬운 지표가 되기도 하죠. 하지만 이 책은 책을 최대한 쉬운 문체로 서술하고, 동시에 존대어로 진행을 함으로 해서 좀 더 편안한 느낌을 주려고 합니다. 다만 초반에는 약간 당황스러운 것은 사실입니다. 아이들 책에서 읽어봤던 그 문체가 나오니 말입니다. 하지만, 담고 있는 내용이 쉬운 것은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이집트에 대한 여러 왕주에 관해서 서술을 하고 있고, 이 왕조들의 특성과 관련된 유물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해서 진행하는 식입니다. 이 속에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진행이 되는데, 두서 없이 진행 되는 것이 아니라 의외로 상당히 내밀한 면을 정리 해서 진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유물만 가지고 멋지다 라는 표현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 생활과 벌어졌던 일에 대한 문헌적 사실과 추측을 같이 사용하고 있는 상황이죠. 이 서술의 가장 매력적인 면은, 이야기가 말 하고자 하는 바에 따라 사실을 엄밀하게 기술하면서도, 나름대로의 방향성을 만들어주는 묘미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기본적으로 독자가 이해해야 하는 면들이 있는 상황이고, 이에 관해서 자세한 면을 가져가는데, 동시에 받아들이기 매우 쉽게 이야기를 구성하는 데에 성공한 것이죠. 덕분에 책의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데에 있어서 역시 매우 편안하게 다가오는 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역사의 순서에 관해서 어느 정도 벗어나는 경우에는 그 이유가 설명이 되기도 합니다. 그만큼 이야기가 외부로 나가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 지점들은 그만큼 더 중요한 면이라는 것을 역설하기도 합니다. 역시나 매우 효과적인 면을 드러내고 있는 상황인, 동시에 이 과정에 관해서 재미있게 서술하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게다가 여러 가지 다른 이면에 관해서 역시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다양성 역시 꽤 많은 편이기도 합니다. 중간중간에 내부적으로 여러 유명한 면들 역시 이야기 하는 특성을 보이기도 합니다. 특히나 미라 만드는 법이라던가, 스핑크스에 관한 여러 가지 일화들, 그리고 복원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상황이 되기도 하죠. 이야기가 여러 가지 면들을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서, 중간중간에 나오는 상디에 관한 조금 다른 이야기들은 책이 루즈해지는 것에 관하여 어느 정도 벗어나는 면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 덕분에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에 좀 더 편안한 느낌을 주기도 하는 것이죠. 결론적으로, 일부러라도 한 번 읽어볼만한 책입니다. 고대 이집트에 대한 관심은 있으나 무슨 책으로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분들에게 이 책은 정말 더할 나위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알기는 하지만, 좀 더 많은 설명이 필요하다는 분들에게도 상당히 좋은 책이라고 생각이 들죠. 물론 그냥 심심풀이로 읽으려고 쉬운 책을 고르려 하시는 분들에게도 상당히 잘 다가오는 책이라고 말 할 수 있을 듯 하네요.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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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9쪽을 보실께요
휴, 오래 달여왔어요. BC 5000년 선사 시대 바다리 문화기의 농사용 망태기와 지모신 조각부터 시작해 2011년 이집트 민주화 혁명까지 7000 년의 이집트 역사를 통사적으로 일별했습니다. 단순히 피라미드나 파라 오, 미라만 알고 있던 이집트 역사와 문명을 꼼꼼히 뜯어보니 참 다양한 민족과 세력이 복잡다단하게 개입돼 있네요. 토착 이집트인뿐 아니라 팔 레스타인과 메소포타미아에서 온 서아시아 세력, 서쪽 리비아 사막에서 온 베르베르, 남족 나일 강 상류에서 온 흑인, 유럽에서 온 백인, 중앙사 시아에서 온 유목민족, 아랍민족까지 다양한 세력이 이집트 문명의 중심 에 서 있었습니다. 전통 이집트 종교에서 그리스 로마 신들, 기독교, 기독 고에서 갈라진 콥트교, 이슬람교까지 .......
사진과 지도 그리고 역사 연표를 마음껏 볼 수 있습니다. 이 얘기보다는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들어있던 479쪽을 먼저 보여드리고 제가 느 낀 점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이집트에 대해 성의 있고 마음을 어느 정도 담아서 쓴 이야기라고 생각됩니다.
42쪽 이집트인들은 천체의 움직임을 살펴 달력을 만들었어요. 가장 밝 은 별, 시리우스가 열쇠였답니다. 시리우스는 매일 동쪽 지평선 에서 떠올라 서쪽으로 져요. 시리우스가 태양이 떠오르기 직전 동쪽 지 평선에 나타나면 나일 강의 범람이 시작된다는 것을 고대 이집트인들은 알았어요. - 나일 강의 풍요를 상징하는 조각. 제3중간기, 파리 루브르 박물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참 많은 사진 속에 유물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사진이나 내용은 직접 책에서 보시는 것으로 하고요. 다른 흥미있는 이야기를 몇 개 더 적어보겠습니다.
87쪽 10만 명이 20년간 3교대로 작업한 산물 쿠푸 피라미드의 외관은 어떻게 마무리 했을까요. 지금은 떨어져 나 갔지만 피라미드 외벽 전체에 흰색 석회암을 붙였습니다. 그러니 천문 학에 과학기술을 총동원한 기념비적 건물인 쿠푸의 마그눔 오푸스 는 햇빛을 방아 종일 반짝였죠. BC. 5세기에 이집트를 직접 방문해 피라미드를 본 헤로도토스는 쿠푸 피라미드를 건축하는 데 10만 명이 20년 동안 3개월씩 교대로 일했다고 기록했습니다. 노예나 전쟁포 로를 동원한 강제노역이 아니라 임금 노동자들이 작업한 결과물이래요.
97쪽 복원한 배는 길이 43.3미터에 폭 5.9미터, 무게가 무려 45톤이랍니 다. 4000여 년 뒤인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로 타고 간 산타마리아 호는 길이 23미터에 너비 7.5미터였어요. 놀랍게도 태양의 배가 두 배 가 까이 길어요. 산타마리아호처럼 유선형인 쿠푸 태양의 배도 나일 강 항 해가 아니라 원양 향해용이죠. 배의 이물과 고물은 파피루스 줄기처럼 생겼어요.
125쪽
5~6왕조 피라미드의 쇠퇴 5왕조 마지막 파라오인 우나스 재위 시기에 굶주린 베두인족을 묘사한 조 각에 힌트가 있어요. 지쳐 맥없이 주저않아 있는 베두인족의 얼굴을 보 세요. 바짝 말라 앙상하게 드러난 갈비뼈가 보여요. 대기근이 덮쳤어요.
훌쩍 뛰어 213쪽으로 가봅시다.
18왕조 3 태양왕 아멘호테프 3세의 대번영
그런 멤논이 아멘호테프 이름을 차지하게 된 것은 2000년 전이에요. 어느 때부터인가 아멘호테프의 좌상 두 개 중 북쪽 상에서 새 벽이면 신음소리가 들린다는 거에요. 아마도 사막에서 해 뜨는 새벽이나 석양이 내려앉을 무렵 온도차가 급격히 커지면서 생긴 소리일 테지요. 헬 레니즘 말기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그리스인들은 생각이 달랐어요. 마 치 멤논이 아킬레스의 창에 맞아 죽으면서 어머니 에오스를 부르는 소리 같다고 해서 멤논의 거상이라는 이름을 붙였지요.
이집트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 -중략-
250쪽에는 황금 마스크가 나옵니다.
피라미드, 스핑크스와 함께 이집트 문명을 상징하는 유물은 무엇일 까요? 바로 투탕카몬의 미라에 씌워져 있던 황금 마스크에요. 무게 10.23 킬로그램에 길이가 54센티미터죠. 순금에 바다 파랑 청금석 , 하늘 파랑 터키석, 붉은 홍옥수(카닐리언)로 장식했어요. 청금석은 아 프가니스탄, 홍옥수는 인더스 강 유역에서 나는 보석이니까 국제 무역의 결과인 셈이죠.
266쪽
파라오 76명을 기록한 아비도스의 왕 목록
초대 파라오 나르메르에 이어 그이 아들 호르 아하를 비롯한 1왕조 일곱 명, 8대까지 파라오로 표현해요. 뒤로 2왕조 9-14대, 3왕조 15-19대, 4 왕조20-25대, 5왕조 26-33대, 6왕조 34-39대, 7-8왕조 40-47대, 9왕 조 48-56대, 11-12왕조 57-65대, 18왕조 66-74대, 19왕조 75-76대의 파라오를 적었습니다. 제1중간기의 7-8왕조 파라오 이름을 기록한 유일 한 자료이지만 10왕조와 제2중간기가 빠졌지요.
286쪽에 다주실과 투트모세 1세 오벨리스크 카르나크 신전
사진이 나옵니다. 볼만합니다.
298쪽 약간 가슴 아픈 이야기 이집트는 1960년 소련의 지원 아래 댐 공사에 들어가는데 이에 앞서 1959년 유적을 살리기 위한 국제모금이 시작됐어요. 기금이 4000만 달러 모이 자 1964년 고고학자, 엔지니어, 중장비 기술자 등이 힘을 모아 유네스코 깃발 아래 아부심벨 이전 작업에 착수합니다. 원래 위치에서 위로 65미 터 올리고 뒤로 200미터를 물려서 아부심벨을 옮기는 대여사죠. 아부심 벨 신전의 암벽을 평균 20톤 크기로 자르고 위에서부터 들어 올려 해체 한 후 예정된 위치로 옮겨 반대로 바닥부터 쌓았어요. 1968년, 4년 만에 공사가 완벽하게 끝나요. 아부심벨이 이집트만이 아닌 인류 문화유산으 로 거듭난 거죠.
이집트 신전과 신관, 의식에 대해 304쪽부터 330쪽짜기 적혀있습니다. 관심있는 분은 여기만 주로 읽어도 좋을 듯
354쪽 약간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어 적어봅니다.
누비아 흑인 25왕조 중왕국에 이어 신왕국 18왕조의 투트모세 3세가 나일 강 상류에 나 파카를 건설하고, 19왕조의 람세스 2세가 아스완 남쪽에서 아부심벨을 만 드는 등 누비아는 이집트에 종속됐었죠. 하지만 그 이전 고왕국 시대나 BC 10세기 이후에는 독립적인 지위를 누렸어요. 특히 제3중간기 21왕 조가 상이집트의 대신관 체제와 하이집트의 파라오 시대로 양분되자 흑 인들은 나파타를 수도로 쿠시 왕조를 세워요.
364쪽 페르시아의 이집트 공격과 26왕조의 종말
396쪽 클레오파트라와 카이사르 그리고 안토니우스
클레오파트라 7세와 카이사르
카이사르가 후계자로 유언장에 지목한 열여덟 살자리 애송이 옥타비 아누스는 발군의 지도력과 교활함, 잔인함을 한껏 발휘해요. -중략-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열연한 영화 속 클레오파트라는 검은 머리였 죠. 실제 클레오파트라는 그리스 혈통의 백인 금발이었습니다. 그녀와 안토니우스의 후손들은 어떻게 됐을까요. 옥타비아누스는 프톨레마이오 스 15세를 BC 30년에 죽여요. 카이사르의 계자 권리를 요구할 수 있는 인물이었거든요.
414쪽에 헬레니즘 시대의 3대 발명가 이야기가 있습니다.
433쪽부터 천재 샹폴리옹의 업적 적혀있고요
453쪽에는 시나이 산과 불타는 떨기나무 예배당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455쪽에는 세인트 헬레나와 세인트 카트리나 이야기가 적혀있고요.
475쪽에는 수에즈 운하의 준공과 오페라 아이다의 탄생 이야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는 479쪽에서 마무리를 짓습니다.
조금, 살짝 맛만 봤는데도 숨가쁘네요. 그리고 이집트 왕조 이후 현재의 이집트에 대한 이야기까지 아주 정밀하게 묘사하지는 않았지만 거의 빼뜨리지 않고 서술햇다고 보입니다.
그리고 곳곳에 배치한 사진들이 압권이고요. 이집트에 대해 기본 상식 이상을 가지고 싶 다면 여러 번에 걸쳐 읽어볼만하다고 판단이 드네요. 우엣든 두 번을 살펴보았지만 지나치 3번째 보기에서는 천천히 좋아하는 분야를 읽을 예정입니다. 숙제를 위한 리뷰만으로 끝 내기에는 내용이 볼만해서요.
이 리뷰는 서평단에 선정되어 증정받은 책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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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우리들이 사는 현재를 이해하기 위함이다. 이집트 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 인더스 문명, 황허 문명을 4대 문명으로 들고 있는 이유는 강을 중심으로 문명을 발달시킨 곳이기 때문이다. 고대 이집트 문명은 기원전 3,000년경부터 기원전 332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점령하기까지 3천년간 존재했다. 이들이 남긴 찬란한 유물은 신비로움 그 자체였다. 이들은 신성문자, 신관문자, 민중문자를 사용했다고 전해지는데 1799년 나폴레옹의 이집트 침략 부대에 의해 발견되고 1822년 프랑스인 이집트 학자인 장 프랑수아 샹폴리옹이 해독한 로제타스톤의 존재로 오늘 우리는 대부분의 이집트 문명의 역사를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선왕조 시대부터 이슬람 시대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역사와 각 시대에 존재했던 유물 사진을 통해 흥미진진한 역사 여행을 떠나보는 책이다. 역사라면 딱딱하고 지루할 것이라는 편견은 잠시 접어두어도 된다. 저자의 서술도 친절하게 설명하는 방식이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이집트를 대표하는 유물 중 하나인 스핑크스와 피라미드는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는데 그 당시 이집트인의 최첨단 건축 기술과 노력의 산물이고 피라미드 안에서 발견된 보물 중 가장 유명한 투탕카멘의 황금가면은 1922년에 처음으로 발견되었는데 파라오의 무덤에 묻힌 각종 유물과 벽화들은 이집트의 문명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농경문화가 일찍이 발달하였고 이는 전세계 박물관에 흩어진 유물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바다리와 나카다 농경문화기를 선왕조시대라 불리우는데 조각술과 외국인이 등장하며 기린이 뛰어다니는 벽화가 그려진 그 당시가 기원전 3,150년까지의 시대였다. 건축술 못지 않게 조각술도 발달하여 서기 차림의 왕자는 매우 정교하고 사실적으로 조각해냈다. 파피루스를 들고 있는데다 살아있는 표정, 늘어진 뱃살과 손동작까지 전혀 과장되지 않은 실제 모습과 흡사하다. 머리색과 피부색까지 칠해져 있는데 작자 미상으로 남은 이 조각상은 기원전 2,600년에서 2,350년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걸 어떻게 만들었지? 기원전이라고 해도 전혀 기술이 떨어졌을 것이라는 무지를 깨뜨리게 만든다. 이 책은 고대 이집트의 시대별 유물을 아우르며 잘 정리해냈다. 또한 이집트 문명이라면 궁금해할만한 것들도 곳곳마다 자세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스핑크스의 비밀이나 미라와 장례의식의 변화, 이집트 신전과 신관, 의식은 역사교육에 중요한 부분이다. 찬란하게 꽃피웠던 이집트 문명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직도 이집트의 신비로움은 그대로다. 기원전 2874년경 이집트에서 1년이 365일인 달력이 만들어졌다고 전해지는데 이집트의 태양력을 카이사르가 기원전 45년경 로마에 도입하면서 현대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이 자리잡게 되었다. 현재도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고고학자들에게 사랑받는 문명일 듯 싶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 : 레이더스>에도 등장하듯 제국주의 시대와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전문 도굴꾼부터 제국주의 약탈자에 의해 파헤쳐졌다. 그 결과 런던 대영박물관과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이집트보다 더 많은 유물들이 전시된 것은 아닐까? 안타깝게도 약탈해간 유물들이 반환되지 않고 이집트 문명이라는 별도의 전시관 형식으로 박제된 것이다. 이 책은 이집트 문명의 전체 맥락을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강력추천하는 책이다. 다수의 유물 사진이 수록되어 있고 고대 이집트의 전 시대를 관통하며 이슬람 시기까지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오랜 자료수집과 발품 덕에 우리는 이렇게 훌륭한 역사책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역사에 관심을 가질수록 세계관이 넓어지고 편견이 무너진다. 우리가 아는 지식이 전부가 아니다. 어쩌면 현재 우리들보다 훨썬 더 명석하고 지혜로웠을 것이다. 표지에 실린 전차를 봐도 알 수 있듯 기원전에 이미 바퀴와 양궁, 경마 기술이 존재했듯 알면 알수록 재미있는 것이 바로 역사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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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유물로 읽는 이집트 문명-화려한 유물들, 그 아름다운 빛
우리나라와 먼 거리때문인지 상대적으로 이집트 문명은 우리에게 낯선 문화이다. 인류 최초 문명 발생지 중 하나인 곳이건만 투탕카멘과 파라오, 피라미드, 클레오파트라, 미이라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집트에 대해서 별로 얘기할 것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집트의 오랜 역사와 신비하면서 잔인한 신화, 화려한 문명과 황금빛으로 가득한 유물들은 전 세계의 수많은 소설가에게 엄청난 영감을 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뱀파이어 소설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로 시작하는 '앤 라이스'의 소설도 뱀파이어 탄생의 기본 배경을 이집트로 하고 있을 정도이다.
가장 유명한 이집트 신화 '오시리스 이야기'에서 최초의 왕 오시리스와 그의 누이 '이시스'가 결혼하여 왕국을 다스리는 내용은 은밀하면서 신비로운 상상력을 불러 일으키고, 이 둘을 시기한 오시리스의 동생 '세트'가 잔인하게 형을 죽이고 그 시체마저 14조각으로 토막낸 이야기는 엄청난 경악과 함께 강한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이집트 신화는 그 뒤의 이야기도 흥미롭기 그지없다. 게다가 지혜와 현명함, 아름다움 등을 모두 갖춘 여신 '이시스'는 다른 서양 여신들의 기원이라고도 한다. 다른 신화와 달리 이집트 신화에서는 여신의 힘이 매우 강력하다. '이시스'는 남편과 함께 이집트 땅을 훌륭히 다스렸을뿐 아니라 남편이 위기에 쳐했을 때 적극적으로 행동한다. 현대여성들만큼이나 진취적으로 표현되는 여신이기 때문에 다양한 소설에서 주인공으로 나오기도 한다. 이 무수한 상상력의 기원, 이집트. 이 낯설고 신비한 땅에는 어떤 새로운 이야기들이 묻혀 있을까?
<아스완 하이 댐 건설로 수몰된 필레 섬에서 옮겨 온 아질키아의 이시스 신전. 아스완>
나처럼 <유물로 읽는 이집트 문명>의 저자 또한 이 사막으로 싸인 이집트의 아름다움에 반해 버렸나보다. 특히 세계 7대 불가사의에 속하는 카이로 근교 기자의 쿠푸 피라미드 앞에 섰을 때. 아직 이집트를 여행해 보지 않았지만 나도 그처럼 아스라이 피어오르는 피라미드의 모습에 빠져드리라는 것을 안다.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이라는 '한비야'씨의 책 덕분에 용기를 얻은 저자는 과감히 이집트 카이로행 비행기표를 끊는다. 도착하자마자 걱정이 앞선 그는 한국으로 돌아갈까 고민했지만 곧 이집트의 마력에 빠져들고 만다. 피라미드와 미라에 담긴 신비로운 역사와 알렉산더덕분에 부흥한 헬레니즘 문화, 로마 남성들을 상대로 이집트 땅을 지키기 위해 머리와 몸으로 열심히 고군분투한 클레오파트라까지.
거대하고 비옥한 나일강 덕분에 일찌기 발전한 이집트의 농업. 이 덕분인지 단군과 웅녀가 있기 훨씬 전에 이집트 문명은 엄청난 발전을 이뤘고 치수사업, 달력 등 농업과 관련된 수학이 발전한다. 또한 세계 최대의 피라미드 '푸코피라미드'까지 세워진다. 매우 정밀한 길이와 각도로 이뤄진 이 피라미드는 전세계인을 놀라게 하여 세계 7대 불가사의에 들어가기도 했다. 태양에 가깝게 다가가기 위한 노력이었을까? 뜨거운 태양을 향해 우뚝 세워진 이 피라미드들은.
놀라운 것은 지금껏 본 유적과 유물도 놀라운데 이것이 고작 고왕국 시대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만큼 이집트 문명은 깊고 방대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번 여름을 이국적인 유물과 함께 나고 싶다면 이집트 문명에 빠져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