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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국가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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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국가의 부활고모리 요이치 외4인/ 김경원책담/2016.7.8. 일본의 아베 정권은 평화 헌법 9조를 고쳐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려고 다각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미국은 대국화 되어가는 중국을 억제하고 동아시아의 전력균형을 맞추기 위하여 일본의 아베정권을 부추기고 있다. 같은 전범국인 독일은 이웃 나라에 전쟁 배상은 물론 전범 재판을 통해 잘못한 죄인들을 끝까지 처벌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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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국가의 부활

고모리 요이치 외4인/ 김경원

책담/2016.7.8.


일본의 아베 정권은 평화 헌법 9조를 고쳐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려고 다각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미국은 대국화 되어가는 중국을 억제하고 동아시아의 전력균형을 맞추기 위하여 일본의 아베정권을 부추기고 있다. 같은 전범국인 독일은 이웃 나라에 전쟁 배상은 물론 전범 재판을 통해 잘못한 죄인들을 끝까지 처벌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아시아 여러 나라뿐만 아니라 유럽의 피해국에도 말도 안 되는 적은 배상액으로 할 일을 다 한 양 처신하고 있다. 이는 냉전시대로 접어들어 소련에 대한 아시아의 군사 견제력이 약화 되자 일본을 지원하여 미국이 일익을 담당하게 만들면서 이웃 국가에 대한 전후 배상을 제대로 해주지 않았을 뿐 아니라 배상문제를 지렛대로 삼아 아시아 여러 나라를 일본의 소비시장으로 만들어 경제 부흥의 발판으로 삼았다.


<전쟁국가의 부활>은 3차 아베 정권이 ‘군사대국’으로 나아가기 위해 어떻게든 제정하려고 하는 전쟁법제의 속내와 그 위험한 본질을 낱낱이 파헤치고 있다. “헌법 개악의 전략, 전쟁국가 체제의 구축 과정, 아베의 사상적 배경이 되는 우익 단체와의 관계, 재계와의 관련성, 과거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역사인식을 통해 아베 정권의 ‘야망’을 밝히고, 나아가 그 야망을 저지하고 무너뜨리기 위한 운동을 제안하고 자 한다.(p.14)” 이런 취지에서 5명의 평화헌법 수호 단체의 장들이 뜻을 모아 엮은 책이다. 헌법9조를 지키는 풀뿌리 시민단체 ‘9조의 모임’사무국장이며 사회운동가 고모리 요이치. 역사교육자협의회 위원장이며 군사사 분야의 권위자 야마다 아키라. 시민단체 ‘어린이와 교과서 전국네트 21’사무국장 다와라 요시후미. 평화, 민주, 혁신의 일본을 지향하는 전국모임’대표간사 이시카와 야스히로. 전시포로 연구회 공동대표로 일본 전후보상운동의 대표 지식인 우쓰미 아이코. 등이 그들이다.


우선 책을 읽다가 오류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모를리 없는 내용을 잘못 표기한 곳이 있기 때문이다. 누구의 오류였든 이런 오류는 범해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에서 일부를 옮긴다. “북한은 부산까지 내려왔다. 인천에 상륙한 맥아더 장군은 남북의 허리를 잘라 승리를 거둔 다음 38도선을 넘어 단숨에 북으로 진격했다.(p.45)” 낙동강이라면 모를까 부산이라는 지명을 버젓이 수정하지 않고 책으로 나왔다는 것은 저자뿐만이 아니라 번역을 한 사람이나 출판사도 무책임한 처사라 생각한다. 발견 즉시 시정하길 바란다.


“1992년 역사학자 요시미 요시아키는 군위안소 설치를 지시한 공문서 여섯 점을 찾아내 공개했다. (<아사히 신문> 1992년 1월 11일자) 다음날 당시 내각관방장관 가토 고이치는 일본군의 관여를 인정하고 다시 다음 날인 13일에 사죄의 담화를 발표했다. 미야자와 기이치 총리가 한국에서 일본군 ‘위안부’문제를 공식 사죄한 일은 공문서 발견이 영향을 미친 것이다. (p.55)” 그러나 “1996년 6월에 결성된 ‘밝은 일본 국회의원연맹’의 사무국장 대리를 맡은 아베신조는 일본군 ‘위안부’문제가 모든 중학교 역사 교과서에 실린 것에 대해 ‘위안부는 매춘부’라는 캠페인을 벌였다. 나아가 일본군 ‘위안부’나 난징대학살을 서술한 교과서를 공격하면서 해당 교과서 회사에 삭제를 요구하는 운동을 전개했다. 그 활동의 귀결이 바로 지금 3차 아베 정권에서 실시하는 ‘교과서 검정 강화’라고 하겠다.(p.58)” 그런데도 제대로 된 사과를 듣지 않고 어물정하게 위안부 문제를 매듭지은 박근혜 정부는 역사적 사실을 바로잡지 못한 역사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일본은 이미 군사대국이다. “세계 군사비 순위에 비추어 본 일본의 군사비 지출 추이를 통해 우리는 2000년대 이후 일본이 언제나 세계 6위 이상을 차지해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군사비를 보면 일본은 결코 ‘군사소국’이 아니다. 액면으로 말하면 이미 ‘군사대국’이라고 할 수 있다.(p.77)” 그런데도 계속 군비를 증강하고 있다. 그 수법을 보자. “해상자위대는 ‘휴가’형에 이어 2015년 3월에 DDH ‘시라네’형(5,200톤, 헬리콥터 3대 탑재)의 대체함으로 ‘이즈모’형(19,500톤, 헬리콥터 14대까지 탑재가능)1번 함을 이미 취역시키고 있다. 배수량은 3.75배로 증가했다. 함정의 대형화는 원거리 진출(해외파견)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함이다. 그 때문에 구형이 물러나는 대신 대형의 신형이 취역한다. 이런 경향은 다른 종류의 군함에서도 비슷하게 엿보인다.(p.88)” 이렇게 하여 군사 대국으로 우뚝 서서 세계의 바다를 누비고 있다.


일본의 평화 헌법에 의하면 자위대를 해외에 파견하는 것은 불법이다. 그러나 미국과 이익이 맞아 떨어지면서 미국의 비호 하에 자위대를 해외에 파견 하고 있다. 그것도 날이 갈수록 그 규모나 무장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소해정 파견과 평화유지군 참가 이후에 자위대가 휴대한 무기를 보면, 해외에 파견된 군사력의 질적 변화를 알 수 있다. “최초의 캄보디아에서는 권총만 휴대했지만, 그다음 모잠비크에서는 권총과 소총을 휴대했고, 르완다와 시리아의 골란 고원에서는 권총, 소총, 기관총을 휴대하는 등 차츰 중무장으로 변해갔다. 나아가 권총, 소총, 기관총에 더하여 무반동포, 개인 휴대 전차탄, 경장갑기동차, 장륜장갑차까지도 휴대하고 ‘인도 부흥 지원’을 목적으로 걸프전쟁에 자위대를 파견한 일은 종래의 평화유지군 파견에 비할 때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훨씬 대규모라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p.95)”이와 같이 군사대국으로서의 위상을 높이는 일에 적극적인 일본이다.


“아베 정권을 군사대국화로 내모는 힘은 단순하지 않다. 독자적인 세계전략에 의거한 미국의 요청, 자유로운 활동 영역을 늘리려는 일본 재계의 염원, 군비 증강을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로 활용하려는 일본과 미국의 군사 및 우주 산업계의 노림수도 있다. 다른 한 편으로는 이런 요청을 통째로 받아들이며 일본의 전통과 역사를 오로지 야스쿠니 사관으로만 환원시키려는 아베 정권의 사상적 문제도 있다.(p.178)” 아베 신조는 입으로는 무라야마 담화나 고노담화를 계승한다고 말하면서 끊임없이 일본군 ‘위안부’를 부정하고 있다. 또한 자신의 ‘전후 70주년 담화’안에 ‘국책의 잘못, 침략과 식민지배, 통절한 반성, 진심으로 사죄’ 같은 핵심어의 기입을 거부하고 있다. 이런 모습은 아베의 역사 인식과 아베 정권의 성격에 뿌리를 두고 있다.


“구미 제국의 식민지 지배라는 세계 질서 위에서 열린 연합국의 전쟁 재판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전제로 한 재판이었다. 상해임시정부의 대일 선전포고는 인정받지 못했고, 1910년 대한제국 합병을 ‘불법’, ‘무효’라고 주장한 한국과 북한의 주장도 연합국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p.273)” 일본은 국민 생존에 필요한 식량도 없었고 필요한 원료도 생산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미국의 원조 없이 아시아의 배상 요구를 어느 정도 충족시키면서도 일본의 생산력을 높이는 지불 방식으로 고안해 낸 것이 바로 노역, 생산물 공여, 가공 배상이라는 방법이었다. 존 포스터 덜레스에 따르면 이는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등과 오랫동안 의견을 교환한 결과 도출해낸 방법이라고 한다. “이리하여 중국, 한국과 북한에 대한 전쟁 처리는 한구석으로 밀어 놓은 채 대일평화조약은 조인되었고, 같은 날 일미안전보장조약이 채결되었다.(p.274)”


배상을 뒤로 미루면서 시간이 지나자 상황이 바뀌었다. “냉전체제가 격해지자 미국의 점령 정책이 바뀌었다. 일본의 비무장화에서 경제적 자립으로 초점이 옮겨가기 시작했다. 배상징수는 1948년에 에드윈 폴리가 제출한 안의 4분의 1가량으로 줄어들었다. 2차 도쿄재판의 구상도 포기했다.(p.276)” 이렇게 하여 전범국인 일본은 전쟁배상금이나 전범처리는 유명무실해 졌다. “아시아가 불만을 품은 이러한 경제협력 방식의 배상은 일본의 경제 부흥에 도움이 되었고 무역 확대로 이어졌다. ‘한국전쟁 특수’ 이후에 얼어붙은 일본의 경기를 살려낸 것은 1960년대 ‘필리핀 특수’ 등이었다. 경제협력 방식에 의한 배상 지불은 사람들에게 일본의 아시아 침략이나 가해로 인한 배상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지 못했다.(p.278)”


안보를 통해 미국에 찰싹 매달린 일본은 지금 일미동맹 강화를 구실로 내세워 전후의 평화주의를 내던지려고 한다. 한편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재판은 ‘승자의 재판’이라고 하며 도쿄재판 사관을 부정하면서 ‘범죄자가 아닌 전쟁범죄자’를 모시고 있는 야스쿠니 신사에 각료들이 참배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 인식으로 인해 한국이나 중국과의 긴장관계가 계속되고 있다. “3차 아베 정권의 노림수는 명백하다. 앞의 가이드라인 개정 때와 마찬가지로, 정부 사이에 합의를 먼저 해놓고 사후적으로 전쟁법제를 국회에서 억지로 밀어붙여 통과시키려는 심산이다. (p.23)” 이러한 상황을 직시하여 우리의 대처방안을 모색하여 국가와 국민이 하나가 되어 미래를 개척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k******4 2024.05.09. 신고 공감 8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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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국가의 부활 | 고모리 요이치 외(지음) | 김경원(옮김) | 책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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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국가의 부활 | 고모리 요이치 외(지음) | 김경원(옮김) | 책담             이 책은 3차 아베 정권이 ‘군사대국’으로 나아가기 위해 어떻게든 제정하려고 하는 전쟁법제의 속내와 그 위험한 본질을 낱낱이 밝히고, 전후 70년이라는 역사적 과정 속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다시금 살펴보고자 한다. 다시 말해 헌법 개악의 전략 전쟁국가 체제의 구축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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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국가의 부활 | 고모리 요이치 외(지음) | 김경원(옮김) | 책담

 

 

 

 

 

 

이 책은 3차 아베 정권이 ‘군사대국’으로 나아가기 위해 어떻게든 제정하려고 하는 전쟁법제의 속내와 그 위험한 본질을 낱낱이 밝히고, 전후 70년이라는 역사적 과정 속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다시금 살펴보고자 한다. 다시 말해 헌법 개악의 전략 전쟁국가 체제의 구축 과정, 아베의 사상적 배경이 되는 이익 단체와의 관계, 재계와의 관련성, 과거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 전쟁을 미화하는 역사 인식을 통해 아베 정권의 ‘야망’을 밝히고, 나아가 그 야망을 저지하고 무너뜨리기 위한 운동을 제안하고자 한다.

 

우리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아베 정권의 폭주와 그것에 맞서는 국민적 풀뿌리 운동이 한창인 가운데 각 장을 쓰게 되었고, 각자 운동의 현장과 관계를 맺으면서 글을 써나갔다. 막대한 희생을 치른 침략 전쟁을 두 번 다시 일으키지 않겠다는 결의를 전 세계에 알린 것이 바로 일본국헌법, 특히 그 중에서도 전문前文과 9조이다. 전후 일본의 참모습을 뿌리째 뒤흔드는 아베 정권을 향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헌법이 부여하는 권력의 담지자로서, 또한 멋대로 휘두르는 권력을 심판하는 주권자로서 스스로를 재정립하고 있다. 젊은 세대들도 단체들과 연대하면서 매주 국회 앞 시위에 나가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 책은 국민적 운동을 더욱 나아가게 하고 전쟁법제를 폐기하도록 압력을 가해 전쟁하는 나라가 되는 것을 저지하는 데 미약하게나마 보탬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머리말 중에서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일본의 역사와 정치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래서일까. 이 책에도 한국과 관련된 이야기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이 책에 수록된 이야기들은 그동안 언론매체를 통해서 접한 주제도 있고, 전혀 낯선 이야기도 많았다. 누구나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글이기에 1장부터 5장까지의 본문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해나가는 방식으로 이 리뷰를 작성하고자 한다. 아무래도 내가 잘 모르는 주제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사족을 달아봤자 군더더기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형식은 책에 나온 이야기 순서에 따르기로 하겠다.

 

저자(고모리 요이치 · 야마다 아키라 · 다와라 요시후미 · 이시카와 야스히로 · 우쓰미 아이코)들은 아베 정권이 추진하는 일본의 우경화와 군사대국화의 흐름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또 일본 군국주의자들과 거대자본 그리고 군사자본이 아베 정권의 배후들과 어떻게 연계되어 있는지 낱낱이 밝히고 있으며 헌법학자들과 손을 잡고 전쟁법 폐기를 위한 풀뿌리 운동을 전개해나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들려주고 있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을 다섯 명의 저자가 각각 한 챕터씩 기록해 놓은 책이다. 1장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1장 군사대국을 노리는 아베의 개헌 전략 | 고모리 오이치

내각관방장관이자 신당 사키가케의 대표였던 다케무라 마사요시는 “아베는 일본의 평화주의를 통째로 뒤바꾸려고 한다”고 말하면서 안보법제의 본질은 “해외에서 무력을 행사하지 않는 일본이 무력을 행사할 있는 나라가 된다”는 점에 있다고 했다. 민주당 고문이자 재무대신이었던 후지이 히로히시는 아베 정권의 비정상적인 대미종속성에 대해 “미국은 군사적·경제적 짐을 우리가 대신 떠맡아주기를 바라고 있다. 이런 식으로 간다면 일본은 진정 잘못된 길을 걷게 될 것이다”라고 비판하며 전쟁법제를 정면으로 반대했다. 일찍이 자민당 간부였거나 정부 관계자였던 사람들이 이토록 강한 어조로 아베 정권을 비판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사실을 얼마나 많은 자민당과 공명당의 지지자들에게 전달하느냐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베 정권이 이처럼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힘으로 밀어붙이려고 하는 상황 속에서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부채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위헌인 전쟁법제를 폐기하자는 의견의 일치를 통해 그들을 얼마나 운동으로 이끌 수 있느냐 역시 중요하다.

 

다음으로, 당파를 넘어서 자기 지역 국회의원들의 사무소로 직접 찾아가 이 사태를 호소하는 데 힘쓸 필요가 있다. 여러 헌법학자가 명시적으로 위헌으로 판단한 위헌 입법에 찬성하는 것은 유권자이자 주권자인 국민에게 등을 돌리는 배신 해우이이며 국민의 주권을 유린하는 일이라는 것을 그들에게 철저하게 유념시킬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전쟁접제의 본질과 국민의 목소리를 책임지고 보도하도록 매이매일 매스컴에 요구해야 한다. 각 지역에서 집회, 강연회, 학습회 등을 개최할 때에는 반드시 그 지방의 신문사와 방송사 측에 연락해 의식적으로 취재를 요청하고 관련 보도가 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pp.17~63)

 

2장 일본의 군사력, 자위대에 관하여 | 아마다 아키라

자위대는 1950년 경찰예비대 발족, 1952년 보안대 발족을 거쳐 미소 냉전을 배경으로 1954년 자위대 설립 이래 부단하게 장비 증강이 이루어져왔다. 또한 육상 병력의 추이를 보면 미소 냉전의 직전과 함께 계속 증대하던 자위대는 냉전 종료 후에도 그렇게까지 상당한 삭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라크전쟁 때까지는 완만하게나마 양적 감소, 부대의 축소화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78면) 그동안 국제 정세는 ‘미소 냉전 → 긴장 완화 → 미소 재냉전 → 미소 냉전 종결 → 지역 분쟁 및 대테러 전쟁’으로 결동적인 변화를 겪었다. 하지만 행상자위대 군함의 총 톤 수는 오로지 상승일로였다. 즉 해상 자위대의 소해정을 처음으로 해외에 파견한 걸프전쟁 때부터 오늘날까지 약 1.5배가 늘어났다. 현재 자위대의 성격 전환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해상자위대이다. 그중에서도 헬리콥터 탑재 호위함의 대형화는 자위대의 하드웨어 선행이라는 성격 전환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애초부터 헬리콥터 탑재 호위함은 미소 냉전 시대의 산물이다.  

 

걸프전쟁 이후 미국의 요청에 의한 ‘국제적 공헌’이 자위대에 맡겨진 중요 임무가 되면서 명확한 시나리오(소프트웨어)가 국민적 합의를 얻지 못했는데도 일본 정부는 자위대의 해외 파견 능력을 향상시키고자 했다. 미소 냉전의 종결로 인해, 미국의 군사력을 보완하면서 극동에서 소련의 군사력을 막아낸다는 자위대 존립의 대전제가 붕괴된 이후부터 자위대는 점차 성격이 변해갔다. 냉전의 종식에 따라 미국은 핵전략을 근간으로 삼았던 소련과 전면적 대결을 벌이는 상황으로부터 ‘거의 동시에 발생하는 두 가지 대규모 지역 전쟁’에 대처하는 쪽으로 전략을 옮겨갔다. 군사비의 삭감에 따라 미국은 해외에 나가 있던 부대를 대폭 축소했지만 유일하게 재재일 미군과 제7함대는 지극히 미온적으로 전력을 삭감했다. 일미안보조약과 일미지위협정에 근거한 일본이 주둔 경비 부담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개헌한다고 전쟁이 일어난 것은 아니다’라는 개헌옹호론은 오늘날 세계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본질을 간과하고 있다. 왜냐하면 현대의 전쟁이란 단독으로 일본이 이웃 나라에 쳐들어간다거나 이웃나라가 일본에 쳐들어오는 것이라기보다는 미국이 세계 어디에선가 벌이는 전쟁에 일본이 군사동맹에 의해 동원되는형태로 일어날 가능성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민당의 개헌 초안에 나타난 그들의 목표를 냉정하게 간파하면서 이미 교육계에 나타나고 있는 개헌 선취 상황을 분석하고 그들에게 대항해가야 한다. 그것은 점점 더 선취 상황을 분석하고 그들에게 대항해가야 한다. 그것은 점점 더 국민적 차원이나 지방자치단체의 차원에서 권위주의, 강권주의, 그리고 상호 감사와 상호규제를 물리치는 운동으로 이어질 것이다. 또한 전쟁수행에 가능한 국가제로 나아가는 것을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억제하는 길이 될 것이다. (pp.65~112)

 

3장 아베 정권을 지지하는 우익 단체의 의도와 실태 | 다와라 요시후미

아베 총리가 자민당 간사장이었던 2005년 총선거 때, 우정민영화에 반기를 들었다가 당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보낸 ‘자객’ 후보에 의해 낙선한 에토 세이치라는 인물이 있다. 아베 총리는 주위의 반대를 물리치면서까지 그를 복당시켜 2차 아베 정권 때 총리보좌관으로 삼았다. 에토 세이치는 지금은 고인이 된 전 농수산장관 나키가와 쇼이치와 함께 우익 의련에서 활동해온 아베 총리의 맹우였기 때문이다. 일본회의는 난징 사건이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사실이 아님’, ‘날조’, ‘중국과 한국의 반일 선전’ 등이라고 공격해왔다. 일본회의와 역사 인식을 함께하는 일본화의 의련 등 우익 의련의 구성원이 정권의 중추를 담당하면서 일본과 국제사회의 마찰은 거세지고 있다. 아베 총리는 입으로는 무라야마 담화나 고노 담화를 계승한다고 말하면서도 일본군 ‘위안부’를 부정하는 발언을 되풀이하고 있다. 또한 자신의 ‘전후 70주년 담화’ 안에 무라야마 담화의 골자인 ‘국책의 잘못’, ‘침략과 식민지 지배’, ‘통절한 반성’, ‘진심으로 사죄’ 같은 핵심어의 기입을 거부하고 있다. 이런 모습은 아베 총리의 역사 인식에서 유래하는 동시에 아베 정권의 성격에 뿌리를 두고 있다.  

 

아베 총리와 아베 정권, 그리고 그들을 떠받치고 있는 자민당 등 일본 정치가드의 역사 인식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자민당, 정부, 문부성이 일본의 침략 전쟁과 가해의 역사적 사실을 은폐하고 왜곡해온 것을 먼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는 정치가뿐 아니라 일본인의 역사인식에도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해왔다. 1993년 7월 총선거에서 처음 당선된 아베 신조는 2006년 9월, 겨우 13년 만에 자민당 총재와 일본 총리의 자리까지 올랐다. 그러나 불과 1년 만에 신병을 이유로 정권을 내던지더니 다시 5년 반 뒤에 총리 및 총재로 부활했다. 그사이 극우 정치가의 역사 인식을 갖게 되기까지 그는 어떤 교육과 훈련을 받았을까? 이 점을 알기 위해서는 아베 신조가 첫 당선을 이루어내고 극우 정치가로서 훈련을 받아온 ‘종전 50주년 국회 결의’ 무렵에 벌어진 정치 상황과 자민당의 움직임을 먼저 점검할 필요가 있다.

 

잘 알려진 일이지만 아베 신조의 부친은 자민당 간사장, 국회대책위원회 위원장, 자민당 정무조사회 회장, 자민당 총무회 회장, 관방장관, 농림대신, 통산대신, 외무대신 등을 역임한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郎라는 인물이다. 또한 모친은 A급 전범 용의자였던 기사 노부스케 총리의 딸이므로, 말하자면 아베 신조는 기시 노부스케의 손자이다. 아베 신타로의 부친 아베 간은 무소속으로 중의원 의원을 세 차례 역임했다. 처음으로 중의원 선거에 출마했을 때에는 ‘금권 부패 타파’를 내걸었고(이때는 낙선했다), 아시아태평양전쟁이 개시된 다음 해인 1942년 총선거에서는 도조 히데키의 군벌정치나 익찬 선거를 비판하며 무소속, 무공천으로 당선된 반골의 정치가였다.

 

아베 신조는 세이케이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미국 유학을 거쳐 고베제강소에 입사했다. 그는 조부인 기사 노부스케를 가장 존경하는 정치가로 꼽으며 할아버지의 DAN를 계승했다고 주장한다. 1982년에는 고베제강소를 퇴사하고 당시 외무대신이었던 부친 아베 신타로의 비서로 정계에 입문했다. 그리고 부친이 세상을 떠난 후 1993년 7월 총선거에서 부친의 지지 기반을 이어받아 야마구치현 4구에서 첫 당선의 개가를 올렸다. 하지만 그가 처음으로 당선한 총선거에서 자민당은 역사적인 패배의 고배를 마시고 권좌에서 물러났다. 그해 8월 9일 비非 자민당의 호소카와 모리히로 연립 정권이 발족했다. 호소카와 총리는 8월 10일 기자회견에서 아시아태평양전쟁에 대해 “나 자신은 침략 전쟁이었고 잘못된 전쟁이었다고 인식하고 있다”고 발언하며 역대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침략 전쟁임을 인정했다. 아베 신조가 의원이 된 직후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고노 담화가 나왔고, 호소카와 총리의 ‘침략 전쟁 발언’이 나왔다. 이러한 상황은 아베 신조가 극우 정치가의 길로 들어서는 중요한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pp.113~176)

 

4장 군사대국을 향한 재계의 염원과 딜레마 | 이시카와 야스히르

아베 정권을 군사대국화로 내모는 힘은 단순하지 않다. 독자적인 세계 전략에 의거한 미국의 요청, 자유로운 활동 영역을 늘리려는 일본 재계의 염원, 군비 증강을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로 활용하려는 일본과 미국의 군사 및 우주 산업계의 노림수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요청을 통째로 받아들이며 일본의 전통과 역사를 오로지 야스쿠니 사관으로만 환원시키려는 아베 정권의 사상적 문제도 있다. 

 

오늘날 아베 총리가 좋아하는 말을 빌리자면 ‘전후 체제의 전환’을 지향한다는 말이다. 개헌은 이미 자명한 일로 치부하고, 헌법 문제의 초점을 개헌의 시시비비가 아닌 개헌의 구체적인 ‘방식’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제사회의 기대나 해외 수요라는 말은 기본적으로 미국 정부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는 ‘현행 헌법’을 포함한 ‘역사적 틀’의 불충분함을 문제 삼고 있다. 그러면서 지금은 국제사회에서 ‘주체성’을 발휘할 수 있으며 국제 사회의 과제에 대해 ‘신속한 대응’을 할 수 없다고 진단하고,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통치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일본이 걸어온 길을 진지하게 돌이켜보면서 과연 평화 외교의 노력이 충분했는가, 불충분했다면 어떤 장애 때문이었는가 하고 묻는 일이 필요하다.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이라크전쟁 등등 일본이 군사적으로 한쪽의 ‘주체’였던 역사도 있다. 그렇다면 그러한 ‘관여’는 세계 평화에 얼마나 ‘공헌’할 수 있었을까? 이런 현실적인 문제가 검토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여기에는 그런 관점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한마디로 분쟁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평화적’으로 참여한다고 해도 분쟁이 이미 발생한 경우에는 자위대의 ‘주체적 관여’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명확하게 밝히는 일이 헌법의 수정이라는 형태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이를 군사대국화라고 받아들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경계의 문구가 있기는 하지만, 실로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은 군사대국화의 길이 바로 그것이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통해 군사대국화의 길로 질주하는 아베 정권의 움직임에는 일본경단련을 비롯한 재계의 의향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는 사실을 똑똑히 알아차릴 수 있다. 아베 정권이 군사대국화의 길을 걷도록 내모는 힘은 단순하지 않다. 세계 전략에 의거한 미국의 요청도 있고, 그것에 응함으로써 자유로운 활동 영역을 확보하려고 하는 글로벌 기업화한 일본 재계의 요망도 있으며, 또 군비 증강을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로 활용하려는 일본과 미국이 군사 및 우주 산업계의 노림수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요청을 통째로 받아들이는 동시에, 일본의 전통과 역사를 오로지 야스쿠니 사관으로만 환원시킴으로써 강권으로 ‘아름다운 나라 일본’을 창출하려는 아베 정권의 사상적 문제도 있다. 이 글에서 소개된 재계 지도부의 군사대국의 방침이 반드시 재계 전체의 완전한 합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런 점에서 일본경단련 국제경제보부가 2015년 1월에 발표한 ‘경제 외교의 양상에 대한 설문 조사 결과’는 매우 흥미롭다.  

 

재계 사람 모두가 군사대국화를 강력히 원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야스쿠니 사관으로 인근 국가들과 관계가 나빠지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이 점에도 주의를 기울이면서 일본이 평화의 나라로 나아가는 길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pp.177~235)

 

5장 일본의 패전 처리와 아시아 | 우쓰미 아이코

전후 70년, 어물쩍한 사죄와 반성으로 문제의 해결을 미루어왔던 악순환을 벗어나 아시아의 피해자들에게 과거의 역사적 과실을 인정한 ‘깊은 반성’을 표하고 사죄한 다음, 개인적 배상을 시행하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과거 대전에 대한 반성은 패전 직후인 1945년 12월 6일 제국의회 결의에서도 언급한 바 있다. 그것은 바로 <전쟁 책임에 관한 결의>이다. 

 

중국이나 한국이 ‘적극적 평화주의’라는 말에 숨겨진 아베 정권의 본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과거의 기억 때문만은 아니다. ‘깊은 반성’에서 배제당한 쓰라린 역사적 체험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도쿄 재판에서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다루어지지 않았다. 더구나 피해 당사국은 샌프란시스코 강화회의에 초대받지도 못했다. 침략 전쟁의 역사적 청산을 논의하는 회의에서 피해를 입은 나라는 의견도 표명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배제당해 참석할 수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 후 두 나라 사이에는 평화조직이 체결되었지만, 그것은 각각의 피해국은 참가할 수 없었던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의 틀 안에서 체결된 것이었다. 어째서 아직껏 아시아의 피해자들은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는가? 피해 국가를 배제한 강화회의에서는 무엇을 논의했고 결정했는가? 누구와 강화를 맺었는가? 한국이나 중국의 역사 인식을 둘러싼 긴장이 계속되는 지금, 냉전 전후 처리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 이런 문제들을 생각해보자.  

 

일본은 미국, 영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국과 패전 처리를 해왔다. 연합국에 의한 전쟁범죄의 추궁은 도쿄재판, BC급 전범 재판으로 끝났고,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으로 미국 등 서방 국가들과 화해가 성립했다. 그러나 이것은 일미보안조약과 일체화한 미국의 세계 전략에 따른 ‘화해’였다. 여기에는 한국, 북한, 중국과의 화해나 청산은 배제되어 있었다. 식민지 지배를 어떻게 청산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겨진 ‘화해’였다.(293면) 평화조약 체결 후 일보은 아시아 국가들과 개별적으로 국교 회복을 교섭해왔다. 중화민국, 대한민국, 그리고 중화인민공화국과도 국교를 회복했지만 북한과는 오늘날까지도 과거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 전후 처리의 이중 구조는 동아시아에 긴장 상태를 낳았다. 전후 70년, 어물쩍한 사죄와 반성으로 문제의 해결을 미루어왔던 악순환을 벗어나 아시아의 피해자들에게 과거의 역사적 과실을 인정한 ‘깊은 반성’을 표하고 사죄한 다음, 개인적 배상을 시행하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pp.237~294)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해 보면, 1장에서는 아베 정권이 현재 진행하려고 하는 전쟁법안인 안보법제에 어떤 위험한 내용이 들어 이는지, 그리고 왜 그것이 패전 70주년을 맞이한 해에 국회에 제출되었는지를 역사적으로 해명했으며, 2장에서는 무기 체계와 설비의 확충을 선행시킨 다음 거기에 발맞추어 법률, 제도, 조직 같은 시스템을 꾸리고, 또 거기에 대응해 가치관과 인재 양성이 진행된 199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는 일본의 모습, 즉 ‘전쟁하는 나라 만들기’의 특질을 역사적으로 분석했고, 3장에서는 아베 신조라는 정치가의 내력과 일본의회를 중심으로 한 극우 조직의 관계를 살펴보면서 1차 아베 정권이 역사적으로 예를 찾아볼 수 없는 극우 정권인 점을 파악했다. 나아가 왜 2012년 이후 2차, 3차 아베 정권이 부활할 수 있었는지를 극우 조직과 정치가의 연관성을 통해 해명하고 현 정권의 위험성에 경종을 울렸다.

 

이어 4장에서는 재계의 최고의사결정기관이자 재계의 의사를 수행하는 기관이기도 한 일본경단련의 문서를 소개하면서 일미동맹 아래 ‘해외에서 전쟁할 수 있는 나라’를 지향해온 21세기 일본 재계의 속내를 구체적으로 파헤쳤으며, 5장에서는 전후 70주년이라는 해를 맞이해 과거의 침략 전쟁을 미화하고 역사를 부인하려는 아베 신조라는 정차가의 자세를 비판했다. 또한 일본의 전후 처리는 한국, 북한, 중국에 대한 식민지 지배의 침략 전쟁의 책임을 청산하지 않은 화해였다는 점을 고발하고, 진정한 의미의 깊은 반성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pp.307~309)

 

흥미진진한 추리소설을 읽고 난 기분이다. 각 챕터마다 발가락 끝에 힘을 잔뜩 물리게 하는 이야기들로 가득했다. 제목에서 풍기는 이미지와 달리 딱딱하거나 지루하지 않았다. 이웃나라 일본의 모든 정치인들이 갈등의 폭을 좁히고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미래를 만들어 가면 좋겠다. 평화주의자들의 노력이 결코 헛된 수고에 그치지 않기를 바라며 책장을 덮는다.

 

-2016.7.26. 포스트모던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m****0 2016.07.26.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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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국가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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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국가의 부활>은 3차 아베 정권이 ‘군사대국’으로 나아가기 위해 어떻게든 제정하려고 하는 전쟁법제의 속내와 그 위험한 본질을 낱낱이 파헤치고 있다. “헌법 개악의 전략, 전쟁국가 체제의 구축 과정, 아베의 사상적 배경이 되는 우익 단체와의 관계, 재계와의 관련성, 과거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역사인식을 통해 아베 정권의 ‘야망’을 밝히고, 나아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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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국가의 부활3차 아베 정권이 군사대국으로 나아가기 위해 어떻게든 제정하려고 하는 전쟁법제의 속내와 그 위험한 본질을 낱낱이 파헤치고 있다. “헌법 개악의 전략, 전쟁국가 체제의 구축 과정, 아베의 사상적 배경이 되는 우익 단체와의 관계, 재계와의 관련성, 과거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역사인식을 통해 아베 정권의 야망을 밝히고, 나아가 그 야망을 저지하고 무너뜨리기 위한 운동을 제안하고 자 한다.(p.14)” 이런 취지에서 5명의 평화헌법 수호 단체의 장들이 뜻을 모아 엮은 책이다. 헌법9조를 지키는 풀뿌리 시민단체 ‘9조의 모임사무국장이며 사회운동가 고모리 요이치. 역사교육자협의회 위원장이며 군사사 분야의 권위자 야마다 아키라. 시민단체 어린이와 교과서 전국네트 21’사무국장 다와라 요시후미. 평화, 민주, 혁신의 일본을 지향하는 전국모임대표간사 이시카와 야스히로. 전시포로 연구회 공동대표로 일본 전후보상운동의 대표 지식인 우쓰미 아이코. 등이 그들이다.

 

우선 책을 읽다가 오류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모를리 없는 내용을 잘못 표기한 곳이 있기 때문이다. 누구의 오류였든 이런 오류는 범해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에서 일부를 옮긴다. 북한은 부산까지 내려왔다. 인천에 상륙한 맥아더 장군은 남북의 허리를 잘라 승리를 거둔 다음 38도선을 넘어 단숨에 북으로 진격했다.(p.45)” 낙동강이라면 모를까 부산이라는 지명을 버젓이 수정하지 않고 책으로 나왔다는 것은 저자뿐만이 아니라 번역을 한 사람이나 출판사도 무책임한 처사라 생각한다. 발견 즉시 시정하길 바란다.

 

“1992년 역사학자 요시미 요시아키는 군위안소 설치를 지시한 공문서 여섯 점을 찾아내 공개했다. (<아사히 신문> 1992111일자) 다음날 당시 내각관방장관 가토 고이치는 일본군의 관여를 인정하고 다시 다음 날인 13일에 사죄의 담화를 발표했다. 미야자와 기이치 총리가 한국에서 일본군 위안부문제를 공식 사죄한 일은 공문서 발견이 영향을 미친 것이다. (p.55)” 그러나 “19966월에 결성된 밝은 일본 국회의원연맹의 사무국장 대리를 맡은 아베신조는 일본군 위안부문제가 모든 중학교 역사 교과서에 실린 것에 대해 위안부는 매춘부라는 캠페인을 벌였다. 나아가 일본군 위안부나 난징대학살을 서술한 교과서를 공격하면서 해당 교과서 회사에 삭제를 요구하는 운동을 전개했다. 그 활동의 귀결이 바로 지금 3차 아베 정권에서 실시하는 교과서 검정 강화라고 하겠다.(p.58)” 그런데도 제대로 된 사과를 듣지 않고 어물정하게 위안부 문제를 매듭지은 박근혜 정부는 역사적 사실을 바로잡지 못한 역사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일본은 이미 군사대국이다. 세계 군사비 순위에 비추어 본 일본의 군사비 지출 추이를 통해 우리는 2000년대 이후 일본이 언제나 세계 6위 이상을 차지해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군사비를 보면 일본은 결코 군사소국이 아니다. 액면으로 말하면 이미 군사대국이라고 할 수 있다.(p.77)” 그런데도 계속 군비를 증강하고 있다. 그 수법을 보자. “해상자위대는 휴가형에 이어 20153월에 DDH ‘시라네(5,200, 헬리콥터 3대 탑재)의 대체함으로 이즈모(19,500, 헬리콥터 14대까지 탑재가능)1번 함을 이미 취역시키고 있다. 배수량은 3.75배로 증가했다. 함정의 대형화는 원거리 진출(해외파견)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함이다. 그 때문에 구형이 물러나는 대신 대형의 신형이 취역한다. 이런 경향은 다른 종류의 군함에서도 비슷하게 엿보인다.(p.88)” 이렇게 하여 군사 대국으로 우뚝 서서 세계의 바다를 누비고 있다.

 

k******4 2017.05.02. 신고 공감 3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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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국가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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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국가의 부활고모리 요이치 외4인/ 김경원책담/2016.7.8.sanbaram   일본의 아베 정권은 평화 헌법 9조를 고쳐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려고 다각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미국은 대국화 되어가는 중국을 억제하고 동아시아의 전력균형을 맞추기 위하여 일본의 아베정권을 부추기고 있다. 같은 전범국인 독일은 이웃 나라에 전쟁 배상은 물론 전범 재판을 통해 잘못한 죄인들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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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국가의 부활

고모리 요이치 외4/ 김경원

책담/2016.7.8.

sanbaram

 

일본의 아베 정권은 평화 헌법 9조를 고쳐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려고 다각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미국은 대국화 되어가는 중국을 억제하고 동아시아의 전력균형을 맞추기 위하여 일본의 아베정권을 부추기고 있다. 같은 전범국인 독일은 이웃 나라에 전쟁 배상은 물론 전범 재판을 통해 잘못한 죄인들을 끝까지 처벌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아시아 여러 나라뿐만 아니라 유럽의 피해국에도 말도 안 되는 적은 배상액으로 할 일을 다 한 양 처신하고 있다. 이는 냉전시대로 접어들어 소련에 대한 아시아의 군사 견제력이 약화 되자 일본을 지원하여 미국이 일익을 담당하게 만들면서 이웃 국가에 대한 전후 배상을 제대로 해주지 않았을 뿐 아니라 배상문제를 지렛대로 삼아 아시아 여러 나라를 일본의 소비시장으로 만들어 경제 부흥의 발판으로 삼았다.

 

전쟁국가의 부활3차 아베 정권이 군사대국으로 나아가기 위해 어떻게든 제정하려고 하는 전쟁법제의 속내와 그 위험한 본질을 낱낱이 파헤치고 있다. “헌법 개악의 전략, 전쟁국가 체제의 구축 과정, 아베의 사상적 배경이 되는 우익 단체와의 관계, 재계와의 관련성, 과거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역사인식을 통해 아베 정권의 야망을 밝히고, 나아가 그 야망을 저지하고 무너뜨리기 위한 운동을 제안하고 자 한다.(p.14)” 이런 취지에서 5명의 평화헌법 수호 단체의 장들이 뜻을 모아 엮은 책이다. 헌법9조를 지키는 풀뿌리 시민단체 ‘9조의 모임사무국장이며 사회운동가 고모리 요이치. 역사교육자협의회 위원장이며 군사사 분야의 권위자 야마다 아키라. 시민단체 어린이와 교과서 전국네트 21’사무국장 다와라 요시후미. 평화, 민주, 혁신의 일본을 지향하는 전국모임대표간사 이시카와 야스히로. 전시포로 연구회 공동대표로 일본 전후보상운동의 대표 지식인 우쓰미 아이코. 등이 그들이다.

 

우선 책을 읽다가 오류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모를리 없는 내용을 잘못 표기한 곳이 있기 때문이다. 누구의 오류였든 이런 오류는 범해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에서 일부를 옮긴다. 북한은 부산까지 내려왔다. 인천에 상륙한 맥아더 장군은 남북의 허리를 잘라 승리를 거둔 다음 38도선을 넘어 단숨에 북으로 진격했다.(p.45)” 낙동강이라면 모를까 부산이라는 지명을 버젓이 수정하지 않고 책으로 나왔다는 것은 저자뿐만이 아니라 번역을 한 사람이나 출판사도 무책임한 처사라 생각한다. 발견 즉시 시정하길 바란다.

 

“1992년 역사학자 요시미 요시아키는 군위안소 설치를 지시한 공문서 여섯 점을 찾아내 공개했다. (<아사히 신문> 1992111일자) 다음날 당시 내각관방장관 가토 고이치는 일본군의 관여를 인정하고 다시 다음 날인 13일에 사죄의 담화를 발표했다. 미야자와 기이치 총리가 한국에서 일본군 위안부문제를 공식 사죄한 일은 공문서 발견이 영향을 미친 것이다. (p.55)” 그러나 “19966월에 결성된 밝은 일본 국회의원연맹의 사무국장 대리를 맡은 아베신조는 일본군 위안부문제가 모든 중학교 역사 교과서에 실린 것에 대해 위안부는 매춘부라는 캠페인을 벌였다. 나아가 일본군 위안부나 난징대학살을 서술한 교과서를 공격하면서 해당 교과서 회사에 삭제를 요구하는 운동을 전개했다. 그 활동의 귀결이 바로 지금 3차 아베 정권에서 실시하는 교과서 검정 강화라고 하겠다.(p.58)” 그런데도 제대로 된 사과를 듣지 않고 어물정하게 위안부 문제를 매듭지은 박근혜 정부는 역사적 사실을 바로잡지 못한 역사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일본은 이미 군사대국이다. “세계 군사비 순위에 비추어 본 일본의 군사비 지출 추이를 통해 우리는 2000년대 이후 일본이 언제나 세계 6위 이상을 차지해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군사비를 보면 일본은 결코 군사소국이 아니다. 액면으로 말하면 이미 군사대국이라고 할 수 있다.(p.77)” 그런데도 계속 군비를 증강하고 있다. 그 수법을 보자. “해상자위대는 휴가형에 이어 20153월에 DDH ‘시라네(5,200, 헬리콥터 3대 탑재)의 대체함으로 이즈모(19,500, 헬리콥터 14대까지 탑재가능)1번 함을 이미 취역시키고 있다. 배수량은 3.75배로 증가했다. 함정의 대형화는 원거리 진출(해외파견)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함이다. 그 때문에 구형이 물러나는 대신 대형의 신형이 취역한다. 이런 경향은 다른 종류의 군함에서도 비슷하게 엿보인다.(p.88)” 이렇게 하여 군사 대국으로 우뚝 서서 세계의 바다를 누비고 있다.

 

일본의 평화 헌법에 의하면 자위대를 해외에 파견하는 것은 불법이다. 그러나 미국과 이익이 맞아 떨어지면서 미국의 비호 하에 자위대를 해외에 파견 하고 있다. 그것도 날이 갈수록 그 규모나 무장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소해정 파견과 평화유지군 참가 이후에 자위대가 휴대한 무기를 보면, 해외에 파견된 군사력의 질적 변화를 알 수 있다. “최초의 캄보디아에서는 권총만 휴대했지만, 그다음 모잠비크에서는 권총과 소총을 휴대했고, 르완다와 시리아의 골란 고원에서는 권총, 소총, 기관총을 휴대하는 등 차츰 중무장으로 변해갔다. 나아가 권총, 소총, 기관총에 더하여 무반동포, 개인 휴대 전차탄, 경장갑기동차, 장륜장갑차까지도 휴대하고 인도 부흥 지원을 목적으로 걸프전쟁에 자위대를 파견한 일은 종래의 평화유지군 파견에 비할 때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훨씬 대규모라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p.95)”이와 같이 군사대국으로서의 위상을 높이는 일에 적극적인 일본이다.

 

아베 정권을 군사대국화로 내모는 힘은 단순하지 않다. 독자적인 세계전략에 의거한 미국의 요청, 자유로운 활동 영역을 늘리려는 일본 재계의 염원, 군비 증강을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로 활용하려는 일본과 미국의 군사 및 우주 산업계의 노림수도 있다. 다른 한 편으로는 이런 요청을 통째로 받아들이며 일본의 전통과 역사를 오로지 야스쿠니 사관으로만 환원시키려는 아베 정권의 사상적 문제도 있다.(p.178)” 아베 신조는 입으로는 무라야마 담화나 고노담화를 계승한다고 말하면서 끊임없이 일본군 위안부를 부정하고 있다. 또한 자신의 전후 70주년 담화안에 국책의 잘못, 침략과 식민지배, 통절한 반성, 진심으로 사죄같은 핵심어의 기입을 거부하고 있다. 이런 모습은 아베의 역사 인식과 아베 정권의 성격에 뿌리를 두고 있다.

 

구미 제국의 식민지 지배라는 세계 질서 위에서 열린 연합국의 전쟁 재판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전제로 한 재판이었다. 상해임시정부의 대일 선전포고는 인정받지 못했고, 1910년 대한제국 합병을 불법’, ‘무효라고 주장한 한국과 북한의 주장도 연합국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p.273)” 일본은 국민 생존에 필요한 식량도 없었고 필요한 원료도 생산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미국의 원조 없이 아시아의 배상 요구를 어느 정도 충족시키면서도 일본의 생산력을 높이는 지불 방식으로 고안해 낸 것이 바로 노역, 생산물 공여, 가공 배상이라는 방법이었다. 존 포스터 덜레스에 따르면 이는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등과 오랫동안 의견을 교환한 결과 도출해낸 방법이라고 한다. “이리하여 중국, 한국과 북한에 대한 전쟁 처리는 한구석으로 밀어 놓은 채 대일평화조약은 조인되었고, 같은 날 일미안전보장조약이 채결되었다.(p.274)”

 

배상을 뒤로 미루면서 시간이 지나자 상황이 바뀌었다. “냉전체제가 격해지자 미국의 점령 정책이 바뀌었다. 일본의 비무장화에서 경제적 자립으로 초점이 옮겨가기 시작했다. 배상징수는 1948년에 에드윈 폴리가 제출한 안의 4분의 1가량으로 줄어들었다. 2차 도쿄재판의 구상도 포기했다.(p.276)” 이렇게 하여 전범국인 일본은 전쟁배상금이나 전범처리는 유명무실해 졌다. “아시아가 불만을 품은 이러한 경제협력 방식의 배상은 일본의 경제 부흥에 도움이 되었고 무역 확대로 이어졌다. ‘한국전쟁 특수이후에 얼어붙은 일본의 경기를 살려낸 것은 1960년대 필리핀 특수등이었다. 경제협력 방식에 의한 배상 지불은 사람들에게 일본의 아시아 침략이나 가해로 인한 배상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지 못했다.(p.278)”

 

안보를 통해 미국에 찰싹 매달린 일본은 지금 일미동맹 강화를 구실로 내세워 전후의 평화주의를 내던지려고 한다. 한편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재판은 승자의 재판이라고 하며 도쿄재판 사관을 부정하면서 범죄자가 아닌 전쟁범죄자를 모시고 있는 야스쿠니 신사에 각료들이 참배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 인식으로 인해 한국이나 중국과의 긴장관계가 계속되고 있다. “3차 아베 정권의 노림수는 명백하다. 앞의 가이드라인 개정 때와 마찬가지로, 정부 사이에 합의를 먼저 해놓고 사후적으로 전쟁법제를 국회에서 억지로 밀어붙여 통과시키려는 심산이다. (p.23)” 이러한 상황을 직시하여 우리의 대처방안을 모색하여 국가와 국민이 하나가 되어 미래를 개척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k******4 2016.07.25. 신고 공감 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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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국가의 부활 - 고모리 요이치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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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취하면서 엔저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아베 정권은 일본의 오랜 경제적인 장기 침체를 벗어나기 위하여 안간힘을 다하고 있는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지만, 일본의 개헌을 통하여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로의 변화를 추진하고 있기에 이 점이 더욱 우려스럽게 느껴지게 된다. 실제 일본의 침략을 받은 우리나라는 물론이거니와 중국과 날선 대립을 하고 있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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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취하면서 엔저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아베 정권은 일본의 오랜 경제적인 장기 침체를 벗어나기 위하여 안간힘을 다하고 있는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지만, 일본의 개헌을 통하여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로의 변화를 추진하고 있기에 이 점이 더욱 우려스럽게 느껴지게 된다. 실제 일본의 침략을 받은 우리나라는 물론이거니와 중국과 날선 대립을 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일본의 우익 세력들이 추진하는 군사 대국화가 아닐까 생각된다. 심지어 그러한 세력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아베 신조가 일본의 수상으로서 그러한 움직임을 적극적으로 이끌고 있다는 점과 미국의 지지로 인하여 점차 그들의 의도대로 흘러가는 것이 더욱 걱정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일본의 정책에 대하여 우리의 외교 정책은 그 한계가 드러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중국처럼 적극적인 실력 행사를 통하여 일본에 반감을 보이지 못하고, 미국과의 동맹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형식적인 반대의 제스처를 취하고 있는 것이 전부이며, 이것이 일본의 우경화 정책에 대하여 제동을 걸기에는 역부족이 아닌가 생각된다. 또한 우리 대다수의 국민 역시 일본에 대한 전통적인 반감을 들어내고 현재 일본의 상황을 바라본다면 구체적으로 아베 정권이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 것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부분에 대하여 한번쯤 생각해봐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전쟁국가의 부활>은 아베 정권의 이러한 우경화 정책에 반대하는 일본인의 시각에서 쓰여진 책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우리가 이 책을 통하여 현재 일본의 흐름을 익힐 수 있기에 적절한 책이 아닌가 생각된다. 


 '아베 저격수 5인의 기록'이라는 부제처럼 실제 이 책은 5명의 일본인에 의하여 쓰여진 책이다. 이들 5명은 각각의 관점에서 아베 정권의 개헌을 통한 자위권 확대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다각적으로 아베 정권에 대하여 살펴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고모리 요이치 교수의 경우 '9조의 모임'이라는 풀뿌리 단체들을 통하여 시민운동을 전개함으로써 아베 정권이 나아가고자 하는 바를 시민들에게 자각시키고 있으며, 야마다 아키라 교수는 현재 일본의 군사력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어떻게 변모하고 있는 지에 대하여, 다와라 요시후미는 일본의 우익 단체에 대한 고찰, 이시카와 야스히로는 군사화에 따른 재계의 입장, 우쓰미 아이코 교수는 전후 일본의 침략 역사에 대하여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각각 분리되어 있는 내용으로 보일 수 있지만, 아베 신조가 우익의 영향을 받아서 침략의 역사에 대한 부정을 주장하고, 이를 바탕으로 일본의 군사화는 과거 침략을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의 국력에 걸맞는 재무장임을 천명하고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아베 정권에서 추진하고 있는 정책의 대부분이 바로 일본이 전쟁국가로의 부활을 가능케 하기 위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역사 교과서에 침략의 역사를 삭제함으로써 국민들의 인식을 다잡고, 강력한 일본이라는 기치하에 개헌의 여론을 형성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상세히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최종적으로 아베 정권의 목표는 바로 일본의 헌법 9조의 조항에 대한 개헌을 통하여 그들이 염원하는 바를 이루려는 것이다.


 일본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 평화를 성실히 희구하고, 국권의 발동에 의거한 전쟁 및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영구히 이를 포기한다. 이러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육해공군 및 그 이외의 어떠한 전력도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 역시 인정치 않는다.

 노벨 평화상 후보에도 거론되는 일본 헌법 9조의 조항으로 인하여 일본은 근본적으로 전쟁을 할 수 없는 국가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6.25 전쟁으로 인하여 자위대가 창설되었으며, 동서 냉전의 해체로 인하여 미국과의 긴밀한 관계를 바탕으로 미국의 군사 작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하여 점차 재무장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베 신조는 자신의 외할아버지이자 A급 전범인 기시 노부스케의 영향을 받아 우익에 대한 철저한 신념을 바탕으로 다시금 일본의 무장을 법적으로 추진하기 위하여 개헌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최근 참의원 선거에서 아베 신조는 개헌에 필요한 정족수를 확보한 상태이다.)


 <전쟁국가의 부활>은 단순히 감정적으로 일본의 아베 정권을 우려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던 우리에게 다양한 시선에서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또한 일본 내부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아베 신조의 정책에 대하여 우려를 하고 있으며, 적극적으로 비판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다소 안도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책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름 불편한 진실도 찾아볼 수 있다. 우리를 비롯한 주변 국가들이 아베 정권의 우경화 정책에 대하여 반대하는 것은 과거 일본의 침략의 역사에 따른 우려감에서 비롯되었다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아베 정권의 정책에 반대하는 일본인도 이와 동일한 것일까?


 유사시 법제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일미군사동맹을 전제로 삼는 이상, 더구나 미국이 언제나 능동적으로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나라인 이상, 실질적으로 무엇을 기준으로 '유사시'라고 인정할지에 대한 권한이 일본 측에 없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일본(일본 국민)은 진정으로 적인지 아닌지 잘 모르는 대상이라 하더라도 미국이 적이라고 판단해 무력공격을 감행하면 거기에 끌려가야 한다.

 - p. 98 ~ 99 -

 이 대목을 살펴본다면 일본의 재무장은 일본 스스로를 위한 무장이 아니라 미국에 종속된 상황에 대한 우려감을 피력하고 있다. 이것은 결국 단순히 일본이 헌법에 명시된 항목을 지키기 위하여 아베 정권의 정책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주도하에 일본이 휘둘릴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대목이다. 이는 결국 이들이 아베 정권의 정책에 반대하는 이유 역시 그들 나름의 이익에 의한 것임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우려하는 점과는 분명히 다름을 깨닫게 된다.


 결국 <전쟁국가의 부활>은 아베 정권이 취하고 있는 우경화 정책이라는 상황하에 놓인 일본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현재 일본의 상황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러한 흐름을 깨닫게 해주고, 또한 진정으로 아베 정권이 얻고자 하는 바와 이를 반대하는 일본 내부 세력이 추구하는 바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 아닌가 생각된다. 단순히 반일감정으로 대응하기에는 너무나 위험스러운 현재의 일본의 상황을 감안한다면 이 책의 내용들을 다시 한번 떠올릴 필요가 있으리라 생각된다.


< 이 리뷰는 출판사 책담의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 >

g*******7 2016.07.29. 신고 공감 2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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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국가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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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국가의 부활>은 3차 아베 정권이 ‘군사대국’으로 나아가기 위해 어떻게든 제정하려고 하는 전쟁법제의 속내와 그 위험한 본질을 낱낱이 파헤치고 있다. “헌법 개악의 전략, 전쟁국가 체제의 구축 과정, 아베의 사상적 배경이 되는 우익 단체와의 관계, 재계와의 관련성, 과거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역사인식을 통해 아베 정권의 ‘야망’을 밝히고, 나아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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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국가의 부활3차 아베 정권이 군사대국으로 나아가기 위해 어떻게든 제정하려고 하는 전쟁법제의 속내와 그 위험한 본질을 낱낱이 파헤치고 있다. “헌법 개악의 전략, 전쟁국가 체제의 구축 과정, 아베의 사상적 배경이 되는 우익 단체와의 관계, 재계와의 관련성, 과거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역사인식을 통해 아베 정권의 야망을 밝히고, 나아가 그 야망을 저지하고 무너뜨리기 위한 운동을 제안하고 자 한다.(p.14)” 이런 취지에서 5명의 평화헌법 수호 단체의 장들이 뜻을 모아 엮은 책이다. 헌법9조를 지키는 풀뿌리 시민단체 ‘9조의 모임사무국장이며 사회운동가 고모리 요이치. 역사교육자협의회 위원장이며 군사사 분야의 권위자 야마다 아키라. 시민단체 어린이와 교과서 전국네트 21’사무국장 다와라 요시후미. 평화, 민주, 혁신의 일본을 지향하는 전국모임대표간사 이시카와 야스히로. 전시포로 연구회 공동대표로 일본 전후보상운동의 대표 지식인 우쓰미 아이코. 등이 그들이다.

 

 

k******4 2016.12.28. 신고 공감 1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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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전쟁국가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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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일본의 올바른 지식을 가진 교수 및 시민단체 소속의 평화주의를 옹호하는 5명의 지식인이 군국주의를 꿈꾸는 아베 정권에 대항하여 2015년 여름에 10만인파와 함께 일본 국회의사당을 봉쇄하고 ‘평화헌법 수호’를 외쳤던 시위와 반대운동에 대한 실상을 기록한 것입니다.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 용인을 골자로 한 안전보장 관련 법안(신법 1, 기존법 개악 10)을 2015년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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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일본의 올바른 지식을 가진 교수 및 시민단체 소속의 평화주의를 옹호하는 5명의 지식인이 군국주의를 꿈꾸는 아베 정권에 대항하여 2015년 여름에 10만인파와 함께 일본 국회의사당을 봉쇄하고 ‘평화헌법 수호’를 외쳤던 시위와 반대운동에 대한 실상을 기록한 것입니다.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 용인을 골자로 한 안전보장 관련 법안(신법 1, 기존법 개악 10) 2015 5 14일에 결정하고, 다음 날 15일에 국회에 상정하였다. 헌법 연구자들까지도 이 전쟁법제 안을 폐기해야 된다고 주장하였고, 중의원 헌법심사회에서도 헌법학자 전원이 위헌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또한, 다양한 분야의 학자와 연구자들 약 7000여명이 전쟁법제에 반대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습니다. 또한, 헌법 9조를 무력화 하려는 아베 정권의 폭거에 저항하는 시민 수만 명이 항의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베의 군국주의는 계속 진행형이라 합니다.

 

책에는 총 6개의 대 주제로 구분되어 있으며, 5명의 저자가 각각 본인의 전문적인 지식을 배경으로 많은 자료와 함께 아베의 개헌 전략, 일본의 군사력, 우익 단체의 의도와 실태, 재계의 염원과 딜레마, 패전 처리와 아시아와의 관계에 대한 5가지의 내용을 모아서 구성하였으며, 마지막에는 전쟁법 반대를 위해 결성한 ‘9조의 모임’사무국에 대한 내용과 활용 방향에 대하여 다루고 있습니다. 책의 핵심은 아베의 야망을 담은 첫 번째 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2000년대 초반 유엔헌장을 위반한 이라크 전쟁의 참여부터 부당한 군사력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한국에서 접해보지 못한 내용들이 담겨 있으며, 이런 내용들이 일본 내부에서 나왔다는 것이 놀라웠고, 이런 내용을 한국에서는 국민들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이유가 더 궁금해졌다. 진정 언론은 어디에 있는지 또 다시 의문이 들었습니다.

 

현재 일본은 미국이 전쟁을 하는 국가에는 우방으로서 협력 한다는 지침의 명목 하에 전세계 어디나 자위가 아닌 공격의 목적으로 군사력을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확보된 상태입니다. 유일하게 일본을 깔보는 나라인 대한민국은 좀 더 분석적으로 냉정하게 국제적 군사 흐름을 파악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옛 조상인 선조와 고종 시대의 실수면 충분한 교훈이 되리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b*****s 2016.07.2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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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국가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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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국가의 부활>은 3차 아베 정권이 ‘군사대국’으로 나아가기 위해 어떻게든 제정하려고 하는 전쟁법제의 속내와 그 위험한 본질을 낱낱이 파헤치고 있다. “헌법 개악의 전략, 전쟁국가 체제의 구축 과정, 아베의 사상적 배경이 되는 우익 단체와의 관계, 재계와의 관련성, 과거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역사인식을 통해 아베 정권의 ‘야망’을 밝히고, 나아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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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국가의 부활3차 아베 정권이 군사대국으로 나아가기 위해 어떻게든 제정하려고 하는 전쟁법제의 속내와 그 위험한 본질을 낱낱이 파헤치고 있다. “헌법 개악의 전략, 전쟁국가 체제의 구축 과정, 아베의 사상적 배경이 되는 우익 단체와의 관계, 재계와의 관련성, 과거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역사인식을 통해 아베 정권의 야망을 밝히고, 나아가 그 야망을 저지하고 무너뜨리기 위한 운동을 제안하고 자 한다.(p.14)” 이런 취지에서 5명의 평화헌법 수호 단체의 장들이 뜻을 모아 엮은 책이다. 헌법9조를 지키는 풀뿌리 시민단체 ‘9조의 모임사무국장이며 사회운동가 고모리 요이치. 역사교육자협의회 위원장이며 군사사 분야의 권위자 야마다 아키라. 시민단체 어린이와 교과서 전국네트 21’사무국장 다와라 요시후미. 평화, 민주, 혁신의 일본을 지향하는 전국모임대표간사 이시카와 야스히로. 전시포로 연구회 공동대표로 일본 전후보상운동의 대표 지식인 우쓰미 아이코. 등이 그들이다.

 

k******4 2017.12.2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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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국가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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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차, 2차 대전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는데 그중에 많은 수가 민간인이었습니다. 인명을 살상하는 무기들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군인, 민간인 가릴 것 없이 수천만명이 피해를 입었고, 당시의 비인간적인 행태도 하나둘씩 밝혀지고 있습니다. 전쟁을 일으킨 주요 당사국은 독일과 일본이지만 이들은 서로 상반된 입장을 보이고 있네요. 현시대의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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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차, 2차 대전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는데 그중에 많은 수가 민간인이었습니다. 인명을 살상하는 무기들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군인, 민간인 가릴 것 없이 수천만명이 피해를 입었고, 당시의 비인간적인 행태도 하나둘씩 밝혀지고 있습니다. 전쟁을 일으킨 주요 당사국은 독일과 일본이지만 이들은 서로 상반된 입장을 보이고 있네요. 현시대의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일으킨 전쟁은 아니지만 독일의 경우 끊임없이 과거사에 대한 반성을 하면서 피해자들에게 보상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일본은 피해 사실조차 축소, 왜곡하면서 사과를 요구할 때마다 외교적 수사에 불과한 말로 피해를 입은 국가들에게서 항의를 받고 있네요.


'전쟁 국가의 부활' 은 2차 대전에서 패망한 이후 다시 군국주의로의 방향 전환을 위해 꿈틀대고 있는 일본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핵심 쟁점은 일본은 군대를 가지지 않고 다른 나라와 전쟁을 하지 않도록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9조인데 최근에 헌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이에 대한 5명의 학자들의 의견을 빌려 비판하고 있습니다.


일본 젊은이들은 근현대사에 대해서 잘 모른다고 합니다. 실제로 중국에서 엄청난 수의 사람들을 살상한 난징 대학살이나 점령국의 여자들를 납치해 강제로 군 위안부를 만든 것도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모른다고 하네요. 엄청난 사건임에도 모른다는 사실에 이해할 수 없지만 실제로 오랫동안 역사 교과서에서 내용이 빠져 있었다고 합니다. 명확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불리한 사건들은 일부러 넣지 않거나 왜곡하고 있는데 그나마 양심적인 사람들의 수십년간의 노력에 의해 교과서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하네요.


우리도 세계 흐름과는 반대로 역사 검정 교과서를 국정 교과서로 되돌리고, 특정 출판사의 경우 왜곡으로 많은 비판을 받으면서 일선 학교에서 교과서로 채택하지 않고 있는데 다행히 일본도 이와 같은 교과서의 채택률이 낮다고 합니다. 하지만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간접적인 지원을 하거나 다양한 압력을 행사하고 있어서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네요.


최근에는 아베 총리가 정권을 잡으면서 극우적인 분위기로 많이 바뀌고 있다고 합니다. 그 중의 하나는 헌법 개정입니다. 2차 대전에서 패망한 이후 다른 나라와 전쟁을 하지 않도록 명시되어 있지만 이를 축소하거나 폐지함으로써 세계의 분쟁에 뛰어들 수 있도록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는 과거 군국주의의 부활을 연상케 하네요. 전국적으로 극우 정치인과 단체들이 헌법 9조를 폐지하려고 하고 있지만 자발적으로 헌법을 지키려는 풀뿌리 모임들도 만들어지면서 다행스럽게 현재는 헌법 개정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조금 더 높다고 합니다.


직접적으로 일본의 피해를 겪은 나라들은 이러한 일본의 변화가 달가울리 없습니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다고 하지만 이미 각종 분쟁 지역에 자위대를 파견하면서 직간접적으로 분쟁에 참여하고 있네요. 아직은 양심적인 목소리를 내는 개인이나 단체들이 많지만 어떤 지도자가 권력을 잡고, 외부 상황이 어떻게 변하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일본은 어떤 길로 나아가게 될지 결정이 될 것 같습니다. 가까운 이웃나라인 만큼 일본의 변화는 우리에게도 큰 여향을 미치는데 오늘날 일본의 사회적인 분위기를 알 수 있어서 도움이 되었습니다.

p***s 2016.07.2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