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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북이 갈라져 이념대결을 한지도 70년이
지났다. 도대체 자유민주주의는 무엇이고, 사회민주주의는 무엇이길래
이토록 오랜 시간 동안 대립하고 있는 것일까? 대한민국은 자유 민주주의를 채택하였고, 북한은 사회민주주의를 채택 하였다. 아이러니 하게도 북한의 공식
명칭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으로 우리와 같은 민주주의 채택하고 있다.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이므로 자유와 평등을 기본으로 하여 국가를 유지하고, 북한은 사회 민주주의 이므로 개인의 자유보다 사회적 발전을 우선시 하여 국가를 유지한다. 때문에 개인의 사적 소유는 부정하고, 공동 생산 개념만 있어 공산주의인
것이다.
이런 이론을 공부한 적이 없어서 인터넷을 통해 사회주의에 대해 알아 보았다. 사회주의는 2 가지 종류가 있다고 한다 첫째. 민족해방(national liberation) – 한국사회의 주요 모순은 한국민중과 미국중심의 제국주의 및 그 예속세력(기득권)의 모순으로 규정하고, 미국의
제국주의 기반으로 하는 식민성을 극복하기 위해 민중이 주체가 되는 혁명을 통해 제국주의 및 그 예속 세력을 몰아내고 민주정권을 수립해야 한다며, 고려연방(1국가 2정부)를 만들고 점진적으로 통일하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북한의 주체 사상을
지도이념으로 삼고, 반미자주화, 반파쇼민주화, 조국통일을 설정하고 있는 것이 NL 노선이고 둘째 민중노선(people’s democracy) –
한국사회의 성격을 신 신민지 국가 독점자본주의로 규정하고 노동자와 자본가 간에 계급 관계를 사회적 모순으로 정의하고, 이념은 marxism를 사용하고 있는 PD노선이라고 한다.
주인공 정사용은 중학생 신분으로‘인터내셔널가의
자유란 모든 사람이 향유하지 않는다면 특권에 불과하다.’는 구절 때문에 민청연맹에 가입하여 삐라를 뿌리는
등 좌익을 하다, 6.25가 발발하자 의용군에 자원 입대하여, 105
탱크 사단과 합류한다. 여기서 평소 흠모해 왔던 유경수 사단장과 본인 보다 한 살 많은
서울대 법대출신의 성의식과 신준희를 만난다. 그러나 포격으로 성의식과 신준희는 사망하고, 유경수 사단장을 구하다 본인은 눈을 다쳐 중공군 야전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완치하여 평양대극장 소도구실 관리하는
일을 한다. 여기서 인민배우 최영실을 만나 결혼을 하고, 딸
지숙을 출산하는 등 꿈 같은 결혼생활 10년을 맞았을 때, 당에서
남한에서 국회의원을 하고 있는 숙부 정희성과 상공회의소 부소장을 맡고 있는 사촌 형 정사철을 포섭하라는 지시를 받고 남파된다. 그러나, 숙부와 사촌들의 신고로 강제 자수(?)하고, 남한에서 아들을 낳고 정착을 시작한다. 북에 두고 온 아내와 딸 때문에 삶의 의욕이 없었는데 아들이 태어나자 적극적인 돈벌이에 뛰어 들어, 성공한 중견기업 사장이 된다. 그러던 중 정보부 요인이 북에 두고 온 딸의 사진을 가져와 딸 여부를 묻자 남한에서
포섭대상으로 삼을까 봐 아니라고 한다. 프랑스 출장 중에 최영실과의 결혼에 힘써줬던 리정선을 만나 가족
소식들 듣고, 내년 1월에 만나기로 약속하며 상권이 끝난다.
본문중 인터내셔널가와 민청연맹을 잘 몰라서 조회해 보았다. 인터내셔널가는 사회주의자들의 국제조직 사회주의 인터내셔널과 동시에 노동자계급의 국제주의
이념을 상징하고, 1871년 으젠 포티에가 지은 시에 1888년
피에르 드기테르가 곡을 붙여 탄생되었다. 1888년부터 세계 노동자의 노래로 자리 잡았고, 1943년까지 소련의 국가였다. 지금은 중국에서 불려지고‘국제가’라고 소개 하였다. ‘깨어라 노동자의 군대 굴레를 벗어 던져라, 정의는 분화구의
불길처럼 힘차게 타온다, 대지의 저주받은 땅에 새 세계를 펼칠 때, 어떠한
낡은 쇠사슬도 우리를 막지 못 해, 들어라 최후 결전 투쟁의 외침을,
민중이여 해방의 깃발 아래 서자, 역사의 참된 주인 승리를 위하여, 참 자유 평등 그 길로 힘차게 나가자, 참 자유 평등 그 길로 힘차게
나가자, 인터내셔널 깃발 아래 전진 또 전진’ 이런 내용이었다. 그런데 정사용이 이 인터내셜가의 ‘자유란 모든 사람이 향유하지 않는다면
특권에 불과하다.’라는 구절구절 때 민청연맹에 가입했다고 했는데 이 구절은 없었다.
민청연맹은 14~30세 미만의 근로청년, 학생조직체, 군인으로 구성되며, 당의 노선과 정책을 옹호, 대중에게 침투시키는 조선 노동당의 후비군 역할을 했다. 명칭은 북조선민주청년동맹 -> 세계민주청년연맹 -> 조선민주청년동맹 -> 조선민주청년연맹 -> 사회주의 노동청년동맹 ->김일성 사회주의 청년동맹으로 개칭되었다고 한다. 정체성이
확립되기 전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결정하는 것이 잘한 판단인지 아니면 친구 따라 재미로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
결정은 자신과 가족 모두에게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한다. 그나마
주인공 정사용은 권력자 숙부 때문에 사건이 매우 해피하게 해결된 케이스다. 하권의
이야기는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하다.
‘이데올로기’라는 말은
프랑스 철학자 드트라시가 처음 사용하였고, idea와 logik의
합성어로 관념의 과학적 인식을 뜻한다. 쉽게 말하면 세상에 대한 다양한 인식의 방법과 형태를 가지고
세계관, 가치관, 사상, 사고방식
등을 가져 바른 방향의 신념이나 의식을 가지는 것을 말한다. 때문에 이데올로기는 사회의 조직구성이나
목표설정에도 영향을 미치고, 개개인의 삶의 방향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결국 사회가 가진 문제점을 찾아 인식하고, 문제점을
극복하여 이상사회로 가기 위한 이념이나 사고가 이데올로기인 것이다. 이렇게 간단하게 설명이 되는데 이데올로기
하면 왜? 어렵게 느껴지지? 추상적이고 관념적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소수 지배층이 추종자들을 현혹시키기 위해 일부러 추상적이고 관념적으로 끌고 가는
것은 아닐까? ‘대중은 우매하다’는
플라톤의 말처럼 이데올로기에 다수의 국민을 묶어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끌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이것이 국가 발전에 큰 이바지를 할 수도 있지만, 잘못된 이데올로기는
국가를 전복시킬 수도 있다. 이에
우리는 우리가 추구하는 이데올로기가 옳은 것이지 그른 것인지 판단할 수 있는 사고를 가져야 한다. ‘검은 고양이든 하얀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덩샤오핑의 명언처럼 다수의 국민들은 행복하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 그런데
북한이나 우리나라나 국민들 보다는 지배층들이 훨씬 행복하고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모순에 빠져있다. 사실 이러한 모순을 바로 잡는 사상이나 신념이 이데올로기인데, 양쪽모두 모순이 있는 걸 보면 잘못된 이데올로기를 설정한 것은 아닌가 생각해볼 문제이다.
하권에서는 정사용이 북한의 가족을 데려와 happy ending으로 종결되던지, 이중 첩자가 되어 북한에 침투하다 잡혀 가족 모두가 곤경에 빠지는 unhappy ending으로 끝날 줄 알았는데, 뜬금없이 정사용을 심문했던 중앙정보부 요원 김경철이 하권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김경철은 15년 전 박정희의 차출에 의해 정보부에 들어와 중간 간부로 현재는 뉴욕 유엔 대표부의
영사로 근무 중이다. 김성수 국장의 부름을 받은 김경철은 상권의 주인공이었던 정사용의 사망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군 수사기관에 앞서 그의 자살동기와 북 정보기관과의 연관여부, 막대한 자금의 사용처나 행방을 찾으라는
지시를 받는다. 조사를 하다가 정사용과 최영실의 딸 정지숙이 무대에 서기 위해 리정선의 양녀로 들어 갔고, 정사용이
자연 아사하기 위해 단식원에 들어가 21일동안 단식을 한 그의 입장이 되어 많은 가능성을 타진해 본다. 그러나 김국장이 단식원에 찾아와 군 수사부 사령관과 중앙정보부장과 화해를 하여 더 이상 조사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단식원에서 김국장은 김경철이 정상적인 사고를 하다가 가끔 전혀 다른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심한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김경철은 한달 동안 휴가를 받아 개인적인 일을 정리하고, 리정선과 그의 남편을 협박하여 북한으로 망명하여, 최영실을 만난다. 정신분열증이 심해져 김경철이 정사용이 되어 버린 것이다. 김경철은 평양 정신병원에 입원했다는 에필로그로 소설은 끝을 맺는다.
소설은 뒤틀림이나 반전은 없었다. 편안한 일상을 써 내려가는 일기처럼 물 흐르듯 쓰여졌다. 어느 평론가가 실화 같은 소설이라고 해서 꼼꼼하게 읽어 보니, 주인공
정사용의 친딸 정지숙은 북한의 꽃 파는 처녀의 주인공이었던 홍영희라는 실존 인물이 모델이며, 저자의
재종누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쇼킹했던 대목이다.
정사용과 김경철을 통해 남북의 이데올로기의 대입시켰는데, 각각의 이데올로기에 대해 만족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분명 개인이 선택하여 정사용은 북으로 가고, 김경철은
남쪽의 정보원이 되었지만, 묵시적인 타인의 힘이 작용했다고 봐야 한다.
큰 반전은 없지만 so so,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은 반전과 뒤 틀림에 익숙하다 보니 이
소설을 밋밋하게 보았고, 저자가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정확하게 읽어 내지 못했다. 나중에 한번 더 읽어 보고 정확한 메시지를 확인해 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