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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일 중 하나는,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 누군가에게 유괴되는 일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일이 로펌의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줄리아 크라운에게 일어나고 말았다. 그녀의 하나밖에 없는 딸, 다섯 살 안나가 누군가에게 유괴된 것이다. 그녀가 바로 알렉스 레이크의 소설 '애프터 안나'의 주인공이다.
이것만 해도 그녀에겐 충분히 지옥과 같은 상황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그녀가 당하는 고통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로펌 일이 그녀의 예상 보다 길어지는 바람에 그녀가 그만 안나의 학교에서 안나를 데려가야 하는 시간에 지각하고 말았는데, 하필이면 그 때 유괴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언론으로부터 무책임하고 태만한 엄마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써야 했다. 그동안 업무와 양육에 있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려 애를 썼는데도 불구하고.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직장에서는 그녀에게 클라이언트의 부름에 즉각 응하는 뛰어난 변호사가 되라고 요구하고, 동시에 가정에서는 딸의 부름에도 즉각 반응하는 완벽한 엄마가 되길 기대하고 있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게 불가능하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 기대치를 낮출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p. 21 ~ 22) 그녀의 고백대로 그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이것은 멀리갈 것도 없이, 바로 우리 주위의 일하는 엄마의 일상을 조금만 들여다 보아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이다. 직장과 가정 모두에서 완벽하라고 말하는 것은 한 인간이 부응하기에는 너무 무리한 요구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최선을 다했다. 안나를 데리러 가야 하는 시간에 늦었을 때는 아이에게 미안하고 스스로 무책임한 엄마 같아서 기분이 더럽기도 했다. 복도를 따라 내려가는 그녀의 발걸음이 조급하다. 좀 늦는다고 큰일이야 벌어지겠느냐마는, 그래도 딸을 제시간에 데리러 가지 못했다는 이 기분, 정말 더럽다.(p. 22) 하지만 그런 사정은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 그들에겐 그저 그녀가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하는 시간에 늦었고, 학교에 늦는다고 미리 연락하지 않은 사실(이것도 마침 그녀의 핸드폰 배터리가 떨어졌기 때문이었다.)만 보일 뿐이다. 그녀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언론은 다짜고짜 그녀를 영국의 위기를 초래하는 태만한 엄마의 대표적인 인물로 1면에 싣고, SNS를 비롯한 여론은 그녀를 미친 엄마, 무자격 엄마, 그리고 난잡한 엄마라는 막말의 별칭으로 조롱한다. 한 마디로 그녀는 결코 고의가 아니었던 지각으로 인해 공공의 적이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줄리아는 그런 엄마가 아니다. 그녀는 바람피운 적도 없고 안나를 두고 떠날 생각을 한 적도 없다. 하지만 지금 진실은 중요한 게 아니다. 지어낸 얘기지만 진실 역시 담겨 있다. 적어도 그녀는 이혼을 원한다. 그것 하나가 모든 혐의를 기정사실로 만든다. 그녀의 태만에 이 혐의가 더해져 이제 줄리아는 공공의 적이 되고 말았다. (p. 177) 이런 그녀가 의지할만한 사람이라고는 남편밖에 없지만 설상가상으로 남편조차 그녀의 편이 아니다. 그녀에게 연일 무지막지한 비난이 쏟아지는데도 남편은 그녀를 위해 변호할 생각조차 안한다. 오히려 그들과 같은 편이 되어 그들의 말이 다 맞지 않느냐고 그녀를 공박한다. 시어머니까지 가세해 그녀의 마음을 뒤집어 놓는다. 시어머니는 마치 미드 '위기의 주부들'에서 완벽에 대한 강박으로 가족과 이웃을 오히려 힘들게 만들던 브리가 나이가 들면 될 것 같은 모습이다.
기억하시려나요? '위기의 주부들'에 나온 이 브리를? 시어머니는 시아버지가 젊은 여자랑 바람이 나서 함께 사라져서 그런가 자식에 대한 집착이 여간 심하지 않다. 자식들을 자기 뜻대로 지배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녀는 그로 인해 자식들과 결혼한 며느리들을 조금도 탐탁지않게 여긴다. 결국 며느리와의 갈등으로 남편의 형은 시어머니와 깨끗하게 갈라섰다. 시어머니가 첫째 며느리에 대해 사람들에게 모함하고 다닌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시어머니였다. 마음에 안 들면 뒤에서 비열한 공격도 서슴지 않는 사람. 그런 시어머니의 공격을 이제 하나밖에 없는 며느리가 된 줄리아가 다 감내해야 했다. '지금 무슨 뜻으로 하시는 말씀이세요?' 줄리아는 이번에는 자신의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시어머니의 분노에 맞서는 분노다. '나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는 높단다. 하지만 네 평판은 썩 완벽하진 않잖니? 적어도 너를 잘 아는 이들 사이에선 말이다.(p. 141) 남편이라도 든든한 바람막이가 되어주었다면 결혼 생활이 괜찮았을 지 모른다. 하지만 남편은 거기서도 아무런 의지가 안되는 사람이었다. 그는 시어머니의 뜻대로 움직이는 '마마보이'였다. 무엇이 되었든 시어머니의 말이 옳다고 여기는 사람이었다. 그런 남자가 자기 편에 서서 시어머니와 싸워줄 리는 만무했다. 줄리아가 애초에 남편과의 이혼을 결심한 것도, 야망이 없어서라기 보다는 그런 데에 있었는지 모른다. 결코 자신의 편이 되어주지 않을 사람, 오히려 언제든 적이 될 수 있는 사람. 그런 남자를 어떻게 평생의 반려자로 삼을 수 있을까? 줄리아는 고립되었다. 사회도, 가족도 그녀의 편이 아니었다. 그런 그녀에게 유괴는 시작에 불과했다. 자신의 발 아래로 지옥의 입구가 열리는 시작. 물론 유괴 그것 하나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지옥이 되었지만, 마치 그보다 더한 고통이 있다는 듯이 유괴로 인한 여파가 그녀를 더욱 나락으로 빠뜨렸던 것이다. 그런데 중반에 뜻밖의 사실이 밝혀진다. 안나를 유괴한 범인의 진짜 목표가 바로 줄리아였다는 사실이. 아이가 가고 나면 너의 진짜 표적에게 관심을 줄 차례야. 아이 엄마 말이야. (p. 215) 바로 여기서 '애프터 안나'가 왜 유괴를 다루는 스릴러 소설로써는 다소 특이한 구성을 취했는지 그 이유가 암시된다. 그렇다. '애프터 안나'는 유괴물의 전형적인 전개 방식을 보여주지 않는다. 대부분 유괴를 소재로 다루는 소설들은 범인에게서 아이를 되찾는 과정에 집중한다. 그런 소설들에겐 꼭 나타나는 장면들이 있다. 범인의 연락을 초조하게 기다리는 것이라든지 다른 한편으로 단서를 쫓아 범인을 추적한다든지 또는 몸값 지불을 둘러싼 범인과 경찰들의 두뇌 싸움 같은 것. 그러나 '애프터 안나'에서는 이런 장면들이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애프터 안나'는 그런 수사 과정들에 무심하다. 잘 보여주지도 않는다. 소설의 카메라는 다만 줄리아를 담는다. 오로지 아이를 유괴당한 어머니의 심리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그녀가 느끼는 고통, 두려움과 절망 그리고 처절한 고독(줄리아 외에 등장하는 내면은 오직 범인의 것 뿐이다.). 더구나 '애프터 안나'에는 다른 유괴 소재 소설에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오로지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뚜렷한 차이점이 존재한다. 바로 유괴 당한 아이가 일주일만에 멀쩡히 살아서 돌아온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돌아온 이후의 이야기가 유괴 당했던 때의 이야기와 비슷한 분량으로 펼쳐진다는 것. 소설은 크게 전(before)와 후(afterward)로 나눠어져 있는데, 물론 이 '전과 후'는 안나의 생환을 기준으로 한 전과 후이다. 바로 이 '후'에서 안나가 무사히 돌아오고 난 뒤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유괴가 줄리아에게 고통의 극한이 아니라 더 커다란 아픔을 껴안기 위한 시작이었듯이, 딸의 생환 역시도 그녀의 고통을 끝내는 종지부가 되지 못했다. 오히려 딸의 생환을 기뻐할 여유도 없이, 더 커다란 고통과 위기 그리고 한층 더 끔찍한 진실과 마주해야 했다. 원래 아이 엄마를 노렸다는 범인의 말 그대로 말이다. 그 전과 후를 소설은 줄리아의 심리 묘사에만 일관되게 천착한다. 갑작스럽게 삶의 벼랑으로 내몰렸으나, 누구에게도 도움을 구할 수 없는 여성의 심리를 아주 세밀하게 담아내면서 관통하는 것이다. 사건의 긴박함이 아니라 심리의 긴박함이 있다. 이렇게 오로지 한 여인의 심리로 소설 전체를 일이관지(一以貫之) 하는 것을 보면, 이것이 작가에겐 무엇보다 중요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정말로 유괴는 다만, '슬램덩크'에 나오는 말마따나 슛을 잘하기 위해 거드는 '왼손'에 지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직장과 가정을 가진 한 여성의 심리를 극한으로 몰고가기 위한 왼손. 그렇다면 이 '일이관지(一以貫之)'는 무엇을 위한 것이었나? 작가는 왜 줄리아의 심리에 이토록 집중했던 것일까?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문득 경기도 안양시에 있는 한 대형 마트에서 얼마전에 일어난 폭행 사건이 떠오른다. 그것을 우리는 폭행을 당했다는 여성의 자녀가 자신의 SNS에 공개한 CCTV 영상으로 알게 되었다. 거기엔 마트에서 일하는 남성이 계산대에서 일하는 여성 직원의 머리를 다짜고짜 때리는 장면이 찍혀 있었다. 이것은 많은 네티즌의 공분을 샀다. 많은 이들이 남성을 거세게 비난했고 일부 네티즌은 남성의 신상까지 털었다. 하지만 뒤늦게 밝혀진 사건의 진실은 보이는 것과 전혀 달랐다. 남성은 지금까지 8년동안 마트에서 배달원으로 일해왔다. 그는 5급 지적 장애인이었지만 배달일을 하는 데엔 아무 지장이 없었고 주위 동료들과도 잘 지냈다. 그런데 영상에서 머리를 맞은 여성과는 그렇지 못했다고 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유 없이 자신을 무시하고, 배달 물품을 잘못 가져가게 하거나 고객이 요구한 사항을 알려주지 않아서 몇 번이나 헛걸음 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영상에 찍혔던 날도 그런 일을 또 당하여 순간 화를 참지 못하고 저지른 짓이라고 했다. 이렇게 사건의 내막은 달랐다. 현실엔 보이는 것 이상의 의미가 엄연히 존재했다. 최근 들어와 SNS가 활발해지면서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한 샤브샤브 체인점에서 일어난 임산부 폭행 동영상이나 '세모자 사건'들이 대표적인데, 그것도 진실과 가해자는 보이는 것과 아주 많이 달랐다. 하지만 이런 사건들을 두고 '아, 이런 오해해 버렸네.'하고 넘어갈 수 없는 것은 희생자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안양의 CCTV 사건에서도, 샤브샤브 체인점의 동영상 사건에서도, '세모자 사건'에서도 희생자가 있었다. 직장과 가게를 잃은 사람들이 있었고 신상이 공개 되어 수없이 쏟아지는 비난 메일과 5초마다 걸려오는 욕설 전화를 받았어야 했다. 줄리아도 희생자였다. 영화 '곡성'은 우리에게 현혹되지 말라고 하지만, 우리는 정말 쉽게 현혹된다. 하나의 동영상이 유포되면, 제대로 헤아리지도 않고 보이는 그대로 믿어 그것을 유포시킨 자의 의도대로 움직인다. 소설에서 줄리아가 당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작가가 이토록 줄리아의 심리 구현에 집착하는 것엔 소설 상의 재미를 넘어 사회적 의미가 있다고 보여진다. 정보화 시대로 접어 들면서 더욱 빈번하게 된, 함부로 타인의 삶을 재단하는 경향에 대한 신랄한 경고라고 말이다. 그 위험성을,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쉽게 사건과 사람의 겉모습에 현혹되는 지(무엇보다 나중에 밝혀지는 범인의 정체는 이러한 우리의 경향을 단적으로 지적하고 있다.)를 독자인 우리가 제대로 경험할 수 있도록 그는 이렇게 '유괴물'로써는 이례적일 정도로 독특한 구성을 취한 것이다. 소설에 투영된 작가의 마음이 너무도 선명하게 다가오기에, 읽고 나서 한번쯤은 나는 과연 쉽게 현혹되지 않는지, 그만큼 타인의 삶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단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예기치 않게 마음에 드는 작품을 만날 때가 있다. '애프터 안나'가 그랬다. 작가도 누군지 몰랐고, 대강의 설정만 보고 읽게 된 작품이었는데 너무 좋았던 것이다. 단 한 사람의 심리에 초점을 맞추지만 심리 묘사가 좋은 데다가 이야기의 흡인력도 뛰어나 손에서 책을 놓기가 어려웠다. 더구나 이 소설엔 범인의 정체에 대한 놀라운 반전이 존재한다. 그리고 기시 유스케의 '검은집'의 마지막 장면을 연상시키는 범인과 주인공 사이의 처절한 대결도. 끝까지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흔히들 '대중성과 깊이를 다 갖추었다'는 말을 하는데, 이 소설이 거기에 해당되지 않을까 한다. 읽고 나면 '알렉스 레이크'라는 작가의 이름이 뇌리에 각인될 것이다. 책날개에 저자에 대한 소개가 나와 있는데, 알려진 것은 영국 출신이며 현재 미국 북동부에 살고 있다는 것밖에 없으며 나머지는 베일에 싸여있다고 한다. 혹시 '은교'의 이적요가 그랬듯이 스릴러 대가가 다른 인물이 쓴 것처럼 내놓은 것은 아닐까? 어째, 작가마저 작품만큼 흥미로워진다. 얼른 다음 작품으로 만나게 되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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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으로 발간 소식 듣고 어제 구매해서 읽었어요. 아마 제가 1등일듯^^; 요즘 나오는 스릴러들 잔인하기만 하고 내실 없는 경우가 많은데 간만에 깔끔한 스릴러 하나 발굴한 것 같습니다.
내용을 보면 2인칭과 작가 시점이 교차되며 얘기가 진행됩니다. 사실 이런 장치, 이탤릭 하나하나에 작가의 절제된 위트가 숨어 있는 것 같아요. 다시 앞장으로 돌아가 그 의미가 뭘까 짚어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또 SNS가 얼마나 무서운지 한 번 더 느꼈는데요. 추잡한 인간 군상의 말로를 확실히 본 듯 합니다. '보여지는' 모습에 대한 무조건적인 맹신.. 범인의 광기보다 이런 식의 집단 광기가 더 오싹했던 것 같아요.
게다가 타인에 대한 공감이 전혀 안되는 것도 일종의 병이란 생각을 했어요. (그러니 유괴니 살인이니 하는 범죄가 벌어지는 거겠죠.) 심지어 이런 인간들이 계층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을 때... 그 비극에 희생되는 건 언제나 착하고 어린 (안나 같은) 약자라는 사실
어떤 인간들은 남을 잡아먹는 식으로밖에 살 수 없잖아요. 그건 미국이나 한국이나 똑같더라구요. 그래서 더 위화감 없이 독서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스포가 될까봐 내용을 말할 수 없는 게 아쉬운데ㅠㅠ 2/3 지점에서는 무서운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져 오들오들 떨면서 봤네요. 영화로 만들어도 이 장면은 정말 무서운 하이라이트가 될 것 같아요 ....
그나저나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역시 #영최암 누가 뭐래도 #영최암 올 하반기 유행어로 손색이 없을 말이었어요 ^^ 우리나라 식으로 바꾸면 #한최암 정도인데 '암x'는 좀 그러니까 '암덩이' 로 바꿔서 #한최암 이 어떨까 싶어요 주변 사람들한테도 이건 미리 스포하려구요 #한최암 #한최암 #한최암 완전 입에 착착 붙지 않나요^^
하여튼 제 주변 사람들도 얼른 이 책을 다 알아서 이 장면 저 장면 얘기 나눠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이런 좋은 책을 안 읽는다는 건 정말 말도 안되는데!!!!!!!! 이 마음 설명할 길이 없어서 답답!!!!!!!!!!
하여튼 제 별점은 ★★★★★ 였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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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괴된 딸이
7일만에 멀쩡하게 돌아왔다. 안도감도 잠시, 본격적 악몽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전 BEFORE : 이혼전문변호사 줄리아 크라운은 회의가 길어져 제시간에 아이를 데리러 가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핸드폰 배터리까지 방전되어 학교 측에 연락도 할 수 없었다. 뒤늦게나마 도착한 학교 정문 앞엔, 딸 안나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없다. 곧바로 경찰수사를 요청하고 줄리아 역시 주변을 탐색하지만 안나의 흔적은 쉽게 찾을 수 없다. 별다른 단서 없이 시간은 흘러가고, 줄리아의 속은 타들어만 간다. 딸을 잃어버렸다는 죄책감과 어쩌면 평생 딸을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 줄리아의 일상은 서서히 무너져 간다. 『 두 시간 동안 줄리아에게 가장 절박하게 필요한 것은 시간과 공간이었다. 동시에 모든 곳에 있고 싶었다. 그러지 않고는 안나를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런 일은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는다. 한 번에 겨우 두 장소에도 있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다. 이 지구 상에서 우리가 순간적으로 차지할 수 있는 공간은 고작 한 뼘이며, 들이쉴 수 있는 숨은 고작 한 줌이다. 그런데 지금 그녀가 차지하고 있는 한 뼘의 공간 속에 안나는 없다.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 <63페이지> 』 『 이는 이성을 넘어선, 주체할 수 없는 동물의 본능과도 같은 것이다. 야생의 세계에서 어미가 새끼를 보호하는 것과 같은 본능이다. 그런 선택으로 어미가 목숨을 잃을 수 있다고 해도 말이다. <67페이지> 』 안나 실종사건은 미궁에 빠진 유괴사건으로 영국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영국 전역을 들썩이게 한다. 처음엔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에 대한 동정심으로, 이후 점차 무책임한 부모에 대한 질타로. 딸 안나를 잃어버리기 전 줄리아는 남편 브라이언과의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고자 했다. 남편 브라이언에게 먼저 이혼을 요구했었는데, 이 사실 또한 언론에 보도되고, 심지어 결혼 전 줄리아의 사생활까지 폭로되면서 줄리아에 대한 여론의 비난은 더욱더 거세진다. 『 그들을 탓할 수도 없다. 어쩌면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서 부모탓을 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자기가 아이를 잘 키우고 있다고 확인받고 싶은 걸 수도 있다. 자기들은 부모 노릇을 제대로 하는 중이라고, 혹시 비슷한 상황이 생겨도 일을 저렇게까지 그르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고 싶은 거다. 자기들이라면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터이니, 자기 아이들은 안전한 거다. 세상일이라는 게 어차피 무작위라 자녀조차도 우리의 통제 안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느니 차라리 위기의 영국 타령이나 하면서 형편없는 요즘 부모를 비난하는 것이 나으리라. 무서운 발상이다. 자녀에게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사고를 사전에 막을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에 빠져 자기 자녀만큼은 안전하다고 자신을 세뇌하는 중인 것이다. <162페이지> 』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던 줄리아는 보드카와 수면제 두 알 정도만 삼키고 정신이 몽롱해지는 와중에 딸, 안나를 찾았다는 전화를 받는다. 『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안나를 찾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지금은 안 된다. 안나가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 만일 안나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 그때 가서 이 알약들을 삼키자. 그전에는 아니다. <220페이지> 』
후 AFTERWARDS : 딸, 안나가 실종 7일 만에 멀쩡히 돌아왔다. 조금 야위고, 지난 7일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만 빼곤. 딸이 무사히 살아
돌아왔다는 안도감도 잠시, 줄리아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낀다. 딸 안나에게 7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또한 유괴범이 아직까지 잡히지
않았다는 것과 왜 유괴범이 딸을 돌려보낸 것인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유아 유괴범의 경우 보통 두 가지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돈이
목적이거나 소아성애자이거나. 안나의 경우, 두 가지 모두 해당되지 않았다. 돌아온 안나로 인해 줄리아는 가정을 다시 회복시키고자 하나 남편
브라이언과의 관계는 더 악화되기만 하고, 시어머니 에드나와의 갈등 또한 최고조에 달하게 된다. 사랑하는 딸은 무사히 살아 돌아왔으나, 친정뿐 아니라 그 어느 곳에도 의지할 수 없는 줄리아.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또다시 시작되는 악몽! 소름 끼치는
올가미가 되어 줄리아의 목을 서서히 옥죄어 오는데...
베일에 싸인 베스트셀러 작가
'알렉스 레이크'의 작품 <애프터 안나>는 중간중간 유괴범의 행동을 관찰하고 마음을 읽는
화자가 등장한다. 마치 실행범과 교사자가 따로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들은 동일인물인가? 아니면 공모자들인가? 또한 유괴의 목적은 무엇인가? 읽는 내내 궁금증을 억누를 수 없었다.
그만큼 가독성도 좋았고, 무엇보다 딸을 잃은 엄마로서의 줄리아의 심리묘사가 압권이었던 작품이기도 하다. 서서히 무너져가는 줄리아의 일상과 실상은
아랑곳없이 그들 입맛대로 변질되어가는 여론몰이엔 나조차도 소름이 끼치곤 했다. 소위 마녀사냥이랄 수 있는. 한
개인의 삶이 검증되지 않은 채 무차별적으로 폭로되고, 이를 즐기는 군중들의 심리는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목격할 수 있는 장면이라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범인의 목적과 의도를 알아챘을 땐 그 무서운 집념과 신념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더불어 이에 못지 않게 처절했던
모성애까지도... 현재 미국 북동부에 살고 있다는 사실 외엔 알려진 바가 없다는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책 속 밑줄>
원래 필요악은 올바르고 적절한 것과 잘 구분이 안 되는 법이야. 필요하다는데, 어찌 악할
수가 있겠어? 그것이 올바르고 적절한 결과로 이어지는 유일한 길이라면, 그게 무엇이 됐든 그 자체로 올바르고 적절할 수밖에. <76페이지>
지금 줄리아는 적막 속에 가만히 서서 텅 빈 침대를 바라보고 있다. 만일 그게 딸을 보는 마지막이었다면, 줄리아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된 거라면, 그날 아침의 인사는 영원한 작별 인사였다. 이런 일은 항상
일어나는 중일 것이다. 전 세계 모든 나라에서 매일같이 사람들은 그게 마지막인 줄도 모르고 사랑하는 이에게 유쾌하게 작별 인사를 할
것이다. <148페이지>
거봐, 내가 그럴 줄 알았다니까. 그러고는 이
사건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어버린 채 출근해서는 자기들 인생을 사느라 바쁠 것이다. 행간에 숨은 의미 따위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도덕관념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부스스한 머리의 남자가 절망에 빠진 엄마를 현관문까지 쫓아와서 상처 줄 목적 외에는 아무런
목적도 없는 질문을 퍼부었다는 사실을 알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동안 언론이란 게 이딴 식으로 운영돼 왔단 말인가?
기사 하나 쓰려면 이런 비열한 짓까지 해야 한단 말인가? 이보다는 덜 잔인한 방법으로는 지면을 채울 수 없단 말인가? <154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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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스런 딸아이가 유괴되고 무사히 엄마 품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진짜 문제는 아이가 돌아오고 나서부터 시작된다. 이야기는 아이를 잃어버린 엄마. 약에 취해 납치된 딸. 그리고 납치범 시점으로 바뀌면서 진행된다 이야기를 읽다보면 범인이 누구이겠구나 짐작이 가지만, 작가의 필력에 긴장감이 넘친다
등장인물들의 관계묘사나 인물묘사가 좋았던 것 같다 종종 스릴러는 초반 진입이 어려운 경우도 있는데 이 책은 그런 점은 없던 것 같다 쓱쓱 페이지 넘기면 재미있게 읽었다
손에 들어오는 좋은 사이즈이긴 한데 단단하거나 튼튼한 느낌은 없는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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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가다가 보면, 엄마가 아이를 돌보다가...잠시 의자에 앉아 가방을 정리하는 사이에.. 도로로 질주하는 아이를 본적이 있는데요.. 그 장면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철렁거려서....그래서 도로쪽에 잠시 방파제가 되어준 기억이 있습니다. 아이를 돌본다는 것은 참 힘듭니다...아직 세상을 모르는 아이에게.. 부모님의 입장에서 너무 위험한 것이 많은데 말입니다.. 그러나 아이는 정말 어디로 튈지 모르니까....더 무서운것이지요.. 1분...아니 10초...잠시라도 아이에게 눈을 돌리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말입니다.. 그래서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는...자기가 잠시 눈을 돌린 그 순간을 기억하며 죄책감에 잃어버린 아이를 찾으려 매달리는데 말이지요.. '애프터 안나'는 두가지 시선에서 그려집니다.. 딸을 잃어버린 '줄리아'와 '유괴범'의 장면.... 변호사인 '줄리아'는 양육권 문제로 다투는 의뢰인때문에 딸을 데리려 가는데 지각을 합니다.. 거기다가 휴대폰 배터리가 방전되어, 학교측에 연락도 못하게 되는데요.. 하교시간보다 30분이나 늦게 도착한 그녀는 자신의 딸 '안나'가 사라졌음을 알게되지요.. 이성적인 그녀지만, 사라진 딸과 자신이 늦게 도착했다는 죄책감에...흥분하고.. 딸을 찾으려 광분하고 돌아다니지만.. 세상의 시선은 그녀를 무책임한 엄마로 몰아가고.. 남편인 '브라이언'은 집을 나가며, 그녀에게 이혼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일곱째날 그녀는 자살을 생각하는데요.. 술이 취해, 수면제를 먹으려 하던날...담당 수사관에서 전화가 옵니다.. 바로 자신의 딸 '안나'를 찾앗다는것입니다.. 일주일만에 멀쩡하게 돌아온 딸....겉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진것 없는 '안나'였지만 기묘한 위화감을 느끼게 되고.... 모든게 끝났다고 생각하는 '줄리아'에게는 악몽의 시작이였는데요...... 소설은 크게...두 부분으로 나눠집니다.. '안나'가 사라지고, 그녀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장면 '안나'가 나타나고, '줄리아'에게 벌여지는 새로운 일들.. 아직 '유괴범'은 잡히지 않았고.... '줄리아'는 '안나'에게 다시 무슨일이 생길까 조마조마해하는데요.. 그렇지만 '줄리아'에게 벌여지는 더 무서운일은 '유괴범'보다.... 그녀를 바라보는 '세상의 눈'인데요..ㅠㅠ 얼굴이 안보이는 '온라인', 저는 온라인에서 반말하는 사람은 '극혐'이라고 보는데요 얼굴이 안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정말 막말하는 사람들 많습니다.. 상대가 존대하는데도...계속 반말로 적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인간인지? 싶기도 해요.. 거기다가 참 사람들은 남의 일은 쉽게 평가하고, 말을 합니다.. 자세한 내막도 모르면서 ..아주 쉽게 남의 일엔 판단을 하는데요.. 그 말들에 다른 사람들이 상처를 입던 말던.. 누군가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버리고, 전혀 죄책감을 못 느낍니다 마치 소시오패스 같지만..실제로 우리는 sns나 온라인에서 쉽게 느끼는 장면입니다.. sns로 통해....졸지에 영국 최악의 엄마가 되어버린 '줄리아' 그녀에 대한 악플은 점점 도가 심해져가고 변호사임에도...자신 역시 죄책감에 대항할 생각도 안하는데요.. '세상의 눈'과 '유괴범'의 함정에 말려들어가는 '줄리아' 그리고 그녀를 함정으로 몰아가는 범인의 정체와 의도.... 소설은.,.처음부터 끝까지 몰입도나 가독성은 좋았는데 말입니다... 유괴범의 정체와, 그가 이런일을 벌이는 이유는... 표지에는 상상치 못한 반전과 놀라운 결말이라고 표지에 적혀있지만.. 저는 좀 눈치를 챘어요...ㅋㅋㅋㅋ 물론 범인의 정체는 제가 생각했던 그 사람은 아니였지만 말입니다... 작가인 '알렉스 레이크'는 베일에 싸여있다는 작가라는데요.. 신인 작가라 그렇게 많이 책을 내진 않앗지만, 내는 작품마다 베스트셀러작가라는데.. 문득....신인이 아니라...우리가 아는 어느작가가 필명으로 냈을수도 있겠다 생각도 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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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2015년 베스트북스, 아마존 킨들 1위로 선정 되었던 인기스릴러 <애프터안나>! 출간 전부터 SNS에서 무척 회자가 되어 바로 읽어보았다.
실종사건은 워킹맘 줄리아가 딸 안나를 픽업하는 데에 30분 늦은 사이 발생한다. 표지를 통해 아이는 일주일 뒤에 돌아온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아이를 잃은 엄마의 모습이 너무나 섬세하게 표현이 되어 있어 엄청난 몰입감을 준다.
또한 대중들의 줄리아에 대한 무차별적인 비난. 아이를 데리러 가는 데에 늦었기 때문에 아이를 방치했다는 누명 아닌 누명은 SNS를 통해 일파만파 퍼져나가고, 줄리아는 어딜 가든 비난에 시달린다. 이런 모습들은 우리네의 사회상과 너무도 닮아 있어 마치 눈앞에 일어난 일들을 보는 듯 했다.
스릴러를 꽤 많이 읽어왔기 때문에 어느정도 범인을 유추하곤 했는데, 범인이 아주 의외의 인물이어서 놀랐다. 하지만 범행의 이유, 권선징악 코드까지 확실해서 오랜만에 본 뒤끝 없는 스릴러였다.
장르는 두말할 것 없는 스릴러이지만 절대 딸을 포기하지 않는 모성애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읽을 만한 스릴러를 찾는다면 이 책을 적극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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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데리러 가야 하는 시간보다 30분을 늦게 갔고, 연락을 못 했는데 딸 아이가 사라졌다. 감쪽같이 사라진 후 아무런 흔적도 없고, 연락도 없었다. 과연 누가 그 아이를 데려갔는지, 무슨 목적이 있었는지 궁금했다. 이야기는 아이가 사라진 후 부터 점점 무너져가는 엄마의 심리를 아주 자세히 잘 묘사하고 있다. 목숨과도 같은 아이가 사라졌고, 그것이 자신때문이라는 자책감에 너무나 괴로워하는 엄마. 더군다나 남편과의 사이도 안 좋은 상황이라 남편에게 의지할 수도 없고, 철부지 같은 남편은 오히려 부인을 몰아간다. 설상가상으로 언론은 그녀를 무책임한 엄마로 몰아가고 그녀는 더 힘들어진다. 그녀의 심리, 상황전개들을 보여주면서 중간중간 누군지모를 화자가 등장한다. 아이를 데려간 범인에게 마치 악마의 속삭임처럼 계속해서 무언가를 지시하고, 말한다. 과연 그 화자는누구인지, 범인은 누구인지, 또 왜 데려갔는지 궁금했다. 아이가 납친된 지 7일 이후 아무탈없이 아이는 부모품으로 돌아왔다. 아이를 품에 안고 행복한 것도 잠시 악몽은 그떄부터 시작되었다. 어렵게 되찮은 아이를 남편과의 이혼으로 뺏기게 생겼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이제 딸과 행복하게 살겠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를 납치해간 범인도 잡지 못했고, 시댁 식구들은 아이를 뻇어가려고 하고, 언론은 그녀에게 점점 불리해져갔다. 그러다 우연히 아이가 기억한 것을 계기로 끔찍한 전말이 밝혀진다. 범인에게 갇혀서 죽을지도 모르는 그녀와 범인의 대치상황은 정말 긴장감이 최고였다. 사람의 잔인함과 목적을 이루기 위한 치밀한 계획성에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들었던 책이였고, 무엇보다 자연스럽고 디테일한 심리묘사때문에 몰입해서 끝까지 빠르게 읽을 수 있었다. 역시 사람이 제일 무섭고, 자신만의 이기적인 욕심이 얼마나 나쁜 결과를 초래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여름밤에 사건의 전개와 심리에 빠져서 절망하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하고, 긴장감도 느끼면서 재밌게 읽었다. 마지막 전화가 참 다행이다.정말 다행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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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작가의 국적을 보면 이 작품의 배경이 어디겠구나 하는 것은 미루어 짐작할수가 있다. 물론 한국 작가가 썼지만 주인공이 외국인이거나 미국이나 다른 나라를 배경으로 한 작품도 있고(후견인) 일본 작가가 썼지만 다른 유럽이 배경이 되는 경우도 있으므로(부러진 용골) 절대적인 진리라고 볼수는 없다. 대부분이 그렇다는 것이다.
호주와 뉴질랜드의 스릴러. 그리고 프랑스와 노르웨이, 스웨덴 스릴러. 가장 유명한 미국과 일본 스릴러들을 읽어왔다. 한국 작품도 빼놓을수 없겠다. 이번엔 영국 스릴러다. 영국적인 배경이 사는 동네를 통해서 드러난다. 익숙하지 못했던 지명을 통해서 영국의 교외 지역을 상상하게 된다. 접하지 못했던 스타일일까 생각했었는데 스릴러의 기본 스타일은 어디 도망가지 않는다.
정확하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 이야기. 앞부분은 5살짜리 아이, 안나가 학교에서 하교길에 사라진 것으로 시작된다. 아이가 없어졌다고 해서 무슨 메모나 협박전화가 오지는 않는다. 그저 그 시간에 맞춰서 데리러 가지 못했던 엄마를 비난하는 기사와 사람들의 입소문만 있을 뿐이다.
우리가 흔하게 사용하고 있는 소셜네트워크가 어떻게 사람을 죽이는지 아주 잘 보여주는 극단적인 케이스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일을 당해서 그 사람에게 힘을 주고 아이를 찾는 용도로 쓰이기 보다는 그저 그 당사자를 비난하기 바쁘다. 온갖 형용사를 붙여서 말이다. 해시태그는 미치듯이 많아져 간다. 어느나라 할것없이 남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있게 마련인가보다.
자신이 변호사이면서도 악플러들을 소송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기 보다는 불가피한 상황이라서 딸을 데리러 가지 못한 엄마는 죄인이 되어 버린다. 이 엄마는 과연 정말 무엇을 그리 잘못한 것일가. 정확히 일주일 후 무사히 돌아온 딸 안나. 어떤 해도 당하지 앟았고 어떤 위해도 가해지지 않았으며 단지 일주일동안의 기억만 사라졌다. 아이가 돌아온 것은 반갑지만 아직도 아이를 데려간 사람이 집밖에 어디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두렵다. 잠을 잘 자지 못한다.
거기다 이제는 또다른 문제가 생겼다. 원래부터 관계가 좋지 않아서 이혼을 결심한 그녀에게 양육권이라는 새로운 문제가 생긴다. 아이는 당연히 엄마가 키우는 것이고 이혼전문변호사로 일을 하고 있는 만큼 그 분야에 더욱 잘 알고 있는 그녀다. 하지만 시어머니가 내어 놓는 결격사유가 모든 것에 자신이 해당된다는 것을 알자 패닉에 빠진다. 어떻게 하다가 이런 일에 얽매이게 되었을까. 그녀를 둘러싼 이 모든 것은 하나의 음모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교묘하게 그녀를 덮고 있다.
전반부는 안나가 없어지는 일 말고는 크게 사건이 벌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약간 느슨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또한 후반부도 어느 정도 짐작을 할 수가 있다. 그녀를 둘러싼 이야기들이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안다고 해서 재미가 반감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함정에 빠진 그녀가 어떤 과정을 통해서 이 모든 상황을 이겨낼지가 중요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을 둘러싼 이 거미줄을 찢고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기는 한 것일까. 엄마의 사랑은 본능적이라고 하지만 너무 깊은 사랑은 자녀의 앞길을 막아 버릴수가 있다. 둥지안의 새는 날아갈 때가 있어야 하는 법이다. 안나가 엄마와 아빠 품에서 잘 자라서 한 사회의 일원으로 잘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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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레이크의 장편 소설 ‘애프터 안나’를 읽었다. 정말 오랜만에 읽은 책이었는데 나름대로 재미있는 책이었다. 소설의 줄거리는 회의로 인해 딸을 늦게 데리러 갔던 줄리아의 5살 딸이 실종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책의 표지 밑에 나와 있는 글 ‘유괴된 딸이 돌아오는 순간, 끔찍한 악몽이 시작된다!’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결국 줄리아의 딸 안나는 일주일 만에 가족의 품으로 되돌아온다. 통상적으로 실종된 아동은 24시간이 지나면 찾기 어렵다는 말이 있는데 그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지난 일주일 후에 딸을 찾은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기적이 일어났는데도 불구하고 왜 끔찍한 악몽이 시작되는지 궁금했다.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그 말에 어느 정도 동의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딸을 잃어버린 후 슬픔과 자기혐오, 분노 등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혀 무너지는 줄리아의 모습은 읽기 괴로웠다. 게다가 ‘유괴된 딸이 돌아오는 순간‘이라는 말이 있었기 때문에 금방 딸을 찾는 장면이 나올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딸이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을 더 세세하게 그리고 있었다. 가족의 균열, 언론의 자극적인 보도, SNS를 통한 비난 등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후반부에 꽤 충격적인 반전이 등장하지만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반전이었다. 오히려 너무 뻔해서 설마 그러한 반전일까 생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반전이 등장하기까지의 줄리아의 감정을 섬세하게 묘사하여 읽으면서 지루함은 없었다. 또한 반전이 나오고 난 후에도 굉장히 스릴 넘치는 장면들이 이어지기 때문에 끝까지 긴장감을 놓을 수 없었다. 새로움은 없었지만 섬세하고 흥미로운 스릴러 소설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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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유괴를 소재로 한 심리스릴러다. 표지에 나온 ‘유괴한 딸이 돌아오는 순간, 끔찍한 악몽이 시작된다.’란 문구는 이 소설의 특징을 잘 표현한다. 실제 분량도 유괴와 그 이후가 비슷하다. 소설은 유괴된 이후 7일간과 아이가 돌아온 이후로 나누어서 진행된다. 유괴된 7일간은 엄마의 실수와 가정의 불화 등을 섬세하게 다룬 심리 묘사가 주 내용이고, 돌아온 이후는 이전까지 쌓였던 감정이 폭발하는 과정과 유괴의 숨겨진 비밀을 다룬다. 개인적으로 속도감 있게 읽은 것은 역시 후반부다. 예상한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정신없이 끝까지 달리게 된다.
표지의 광고 문구를 읽고 잠깐 착각한 부분도 있다. 분량을 잘못 예측한 것이다. 주된 내용이 유괴된 딸이 돌아온 이후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솔직히 말해 유괴된 7일간은 긴장감이 조금 부족했다. 줄리아 가족의 과거와 현실을 적나라하게 파헤치는 부분과 줄리아의 실수를 두고 파고드는 언론과 SNS의 모습은 그렇게 낯선 장면이 아니었다. 다른 작품들에서 자주 보았기에 더욱 그런지 모르겠다. 딸의 실종 이후 몇몇 장면은 나의 정서와도 조금 동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실종을 유괴로 단정한 이후 벌어지는 상황과 이것을 둘러싼 감정은 가슴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다. 아이 가진 부모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 구성에서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유괴된 7일 동안 유괴범의 행동과 감정을 표현한 것이다. 매일 시작하는 도입부에 유괴범의 이야기가 나와 이 유괴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돈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만약 돈이 목적이라면 부모에게 연락을 했을 것이고, 아이를 성매매나 다른 용도로 이용하기 위해서였다면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가면서 이 유괴가 의도한 최종 목표가 누군지 점점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이 모든 것을 위한 장치들이 유괴된 7일 동안 계속해서 이어진다. 진실은 아이가 돌아온 후 은밀하면서 재빠르게 진행된다.
줄리아는 초등학교 교사에 만족하는 남편이 불만이다. 잘생긴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야망이 없는 것이 계속 눈에 걸린다. 자신이 세운 기준에 남편 브라이언이 도달하지 못하자 이혼을 결심한다. 아이의 유괴는 바로 남편에게 이혼을 말한지 며칠 지나지 않아서 일어난다. 문제는 이혼전문변호사인 그녀가 아이를 데리러 가는 시간에 늦었다는 것이다. 사전 연락도 없이. 언제나 아이들은 잠시 한 눈 파는 사이에 사고난다. 방심은 무슨 일을 불러올지 모른다. 아이는 사라졌고, 부모는 공포에 사로잡힌다. 화목한 가정이라면 부부가 서로 위로하고 위로받으면서 이 상황을 이겨나가겠지만 이 부부는 이미 이혼을 결심한 상태다. 그들의 이 상황은 밖으로 드러나고 줄리아에게 더욱 나쁘게 작용한다.
언제나 조작된 진실은 사실 몇 개와 거짓으로 채워져 있다. 언론에 발표된 기사 내용과 SNS 내용들은 줄리아를 공격한다.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언론이 제공한 기사는 진실이기 때문이다. 무자격엄마라는 해시태그가 붙고, 사람들의 악평과 질시를 받는 존재로 전락한다. 모함이 가미된 게시글이지만 이전까지 그녀가 보여준 몇 가지 행동들은 완전히 그녀에게 감정이 이입되는 것을 차단한다. 어떤 대목에서는 현실적일 수 있지만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감정들을 순식간에 날려버리는 순간이 오는데 그것은 안나를 위한 그녀의 아주 처절한 행동 때문이다.
읽으면서 왜 범인은 안나를 돌려보냈을까? 하는 의문이 계속 생겼다. 하지만 유괴 이후가 펼쳐지고, 하나의 가정을 세우면서 점점 사라졌다. 시어머니와 줄리아의 대결 구도로 바뀌면서 누구 더 착한 쪽인가 하는 의문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시어머니가 제대로 된 모습을 보여주지 않지만 줄리아 역시 이기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고부간의 첫 싸움은 누가 더 준비를 잘 했는가로 결판난다. 예상한 결과다. 하지만 반격이 바로 시작된다. 이 반격으로 법정스릴러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순진한 생각을 했는데 빠르게 분위기가 바뀐다. 그리고 하나씩 나오는 숨겨진 과거는 공포를 느끼게 만든다. 읽으면서 계속 설마? 하고 생각했던 부분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마지막 장면이 아쉬웠다. 깔끔한 맛은 있지만 두려움이란 강한 여운을 제거했기 때문이다. 심리스릴러를 좋아한다면, 길리언 플린을 좋아한다면 분명히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