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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문학에서 정치적인 문제를 다루기는 쉽지 않다. 우리도 요즘은 그런 문제를 다룬 책들이 조금씩 나오고 있지만 그것은 모두에게 알려진 특정한 사건을 주제로 한 것이지 전반적인 문제를 다룬 책은 보질 못했다(5.18이나 4.3사건을 다룬 책은 있으나 군부독재를 다룬 책은 아직 못 보았다. 하긴 아직도 독재를 했던 사람이 국민적 영웅으로 떠받들고 있는 시점에서 그런 책이 나오리라고는 기대도 않는다). 참 민감한 부분이 바로 정치분야다. 그래서 현재 학생상담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데 청소년들에게 정치와 종교 문제는 절대로 다루지 말 것을 부탁받는다.
이 작가의 책 중 <니코 오빠의 비밀>이라는 책에 대해 상당히 관심이 갔으나(정치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었다고 하기에) 어찌어찌 하다보니 아직 읽지 못했다. 그런데 혼자 생각컨대 그 책 못지 않게 이 책도 정치색을 띠고 있을 것이라고 본다. 1890년대 러시아를 다루고 있는데 어떤 특정한 사건을 다룬다기 보다 부패한 권력자들 때문에 고통받는 서민들의 모습과 그에 맞서 싸우고자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다. 어느 시대나 한 시대가 끝나갈 즈음의 모습은 비슷하다. 이 책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시기도 마찬가지다. 계층간 격차가 심해지고 권력자들은 사치를 일삼고 자신의 권력을 놓치지 않기 위해 무리하는 모습, 또한 의식있는 사람들이 나서서 억압받고 핍박받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결국은 혁명을 일이키는 전형적인 모습이 펼쳐진다.
읽는 내내 싸샤의 아버지가 혹시라도 혁명에 깊이 개입했다가 붙잡혀가면 어쩌나 내심 걱정했다. 아무래도 독자는 온 마음을 주인공이며 화자인 싸샤에게 대입하며 읽으니까.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솔직하다. 싸샤의 아버지는 아픈 사람이라면 누구나 치료해 줄 수 있지만 권력에 대항해서 나설 만큼 용기 있지는 않다고 고백한다. 그렇다고 싸샤의 아버지가 비겁한 것은 아니다. 계급을 가리지 않고, 아니 어쩌면 오히려 계급이 높은 사람보다는 돈이 없어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먼저 찾아가고, 위험을 무릅쓰면서 혁명에서 다친 사람들을 치료해 주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주변 분위기가 그래서였을까. 싸샤는 자기도 모르게 마음 속에 불의에 저항하는 힘을 길러간다. 각각의 인물들이 개성이 강하지만 읽어내려가다 보면 모든 인물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특히 무네이 무네비치 선생님을 전과자라고 그토록 싫어했던 두냐가 나중에는 결국 그의 석방을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기도하는 모습을 보며 인간미를 느낌과 동시에 위트가 느껴졌다. 일종의 반전이라고나 할까. 또한 혼란스런 상황 속에서 가치관을 형성해 가는 아이의 모습을 잘 그리고 있다. 열 살짜리 딸에게 진실을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아버지의 모습도 멋있다. 이렇게 좋은 사람 주변에도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짓밟는 친구가 없으라는 법은 없다. 만약 싸샤의 아버지 주변에 모두 좋은 사람들만 있었다면 오히려 평면적인 지루함이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바노비치와 같은 인물을 배치함으로써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 비록 먼 옛날의 이야기지만 언제나 유효한 이야기다. 그러기에 지금 이렇게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것일 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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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반드시 죽어야 하나요?" "겨울이 오면 파리들이 다 어디로 가는 거죠?" 이런 질문을 쉴 새 없이 던지는 열 살 소녀 피핀(아버지가 이 아이를 부르는 애칭)은 마치 <호밀밭의 파수꾼>의 홀든을 떠올리게 하는 아이다. 그 맑고 순수한 영혼. 피핀의 아버지는 부자들을 치료할 줄 모른다고 의심 받는 착한 의사로, 피핀의 정신세계를 떠받쳐주는 지지대이다. 그러나 그 아버지는 길거리 행상을 하는 가여운 할머니가 무자비한 펀처(경찰인 듯)에게 발길질을 당할 때 무기력하게 바라본다. 세상에 널린 펀처에 대항하기보다 그저 치료를 하겠다고 하는 아버지는 미력하지만 그나마 양심적인 어른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이 책에서는 피핀의 눈을 통해 세상의 온갖 부조리가 열 살만큼의 크기로 투영된다. 너무 많이 먹어서 건강을 해칠까 두려워하는 아이들의 식탁과 창 밖에서 그 음식들을 선망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굶주린 남매. 어른들은 그 아이들에게 음식을 나눠주지 못하게 한다. 아마, 자꾸 찾아올까 봐서였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먹을 것을 나누지 않는 어른들. 한번도 배불리 먹어보지 못했을 가난한 아이스크림 장수와 롤빵 행상을 하는 할머니. 그리고 그들에게 발길질을 하는 펀처. 거리에는 숱한 사람들이 있지만 아이스크림 장수와 할머니만이 서로 위로한다. 핀치네 집 건너편의 전당포. 사람들은 값나가는 물건을 맡기고 돈을 받아가지만 그 물건을 다시 찾아가는 사람은 좀처럼 없다. 왜냐하면 "다시는 돈을 구할 희망이 없는 사람들만 거기 가기" 때문이다. 피핀은 묻는다. "왜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있죠?" 피핀의 질문은 지하 골방에 다리를 못쓰고 누워 지내는, 아름다운 노래를 부를 줄 아는 율야를 보고서 또 되풀이되지만 늘 대답은 "너는 이해하지 못할 일이란다."이다. 어느 날 싸쉔까(어머니가 이 아이를 부르는 애칭)를 싸샤 벨리찬스까라고 정식으로 불러주는 가정교사 빠벨 그레고리예비치(애칭은 무네이 무네비치)가 나타남으로써 피핀의 세상을 보는 눈은 더욱 깊어진다. 빠벨은 권력자들 즉, 짜르, 성직자, 경찰(펀처를 포함한) 등의 정부 사람들에게 반대하다 시베리아로 유형을 다녀온 젊은이다. 그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구분되기를 바라지 않아 그런 일을 당했고, 여전히 그 일을 한다. 그는 피핀의 가슴에 뭔지 모를 결심을 심어주고 떠났다. 싸샤는 다친 혁명가들을 치료하고, 빠벨을 구해내온 아버지에게 묻는다. “아버지도 혁명가인가요 ” 아버지는 대답한다. “아버지는 그처럼 용감하거나 그처럼 참을성이 있지는 않단다. 사랑스런 피핀, 반란자가 되려면 용기와 희생정신이 있어야 되고 감옥 생활과 유배를 감수해야 한단다. 아버지는 그만큼 용감하지 않아.” “아버지가 짜르를 죽여버릴 수도 있잖아요.” “그 사람들이 마음만 먹으면 그렇게 못할 것 같니? 하지만 그들에게는 짜르 한 명을 없애 버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있는 거야.” 싸샤는 늘 그랬던 것처럼 땋은 머리가 길게 자라면 알게 될 많은 것들을 기다리고 있다. 이따금 철로에 귀를 대고 용이 걸어오는 소리를 들으며. 먼 곳에서, 언제 올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올 용을 기다리는 싸샤의 마음자락이 감겨온다. 어린이책에서 정치를 다루면서, 이토록 정감 있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정말 감동적인 이야기. <연보랏빛 양산이 날아오를 때>에 이어 이 그리스 작가의 두 번째 책을 대하며 그야말로 팬이 되어 버렸다. 온 세상의 싸샤를 위해, 적어도 그 아버지같이 행동할 수 있기를 스스로에게 기대하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