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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적 사고로 읽는 세계-나카자와 신이치, 『신화, 인류 최고(最古)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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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적 사고로 읽는 세계나카자와 신이치, 『신화, 인류 최고(最古)의 철학』       나카자와 신이치는 신화를 인류 최고(最古)의 철학으로 보고 있다. ‘최고(最古)’라는 말은 가장 오래된 것이라는 뜻이므로, 그에게 신화는 가장 오래된 철학이 된다. “신화는 대담한 방법으로 우주와 자연 속에서의 인간의 위치와 인생의 의미에 대해 깊이 사고하고자 했습니다.”(14)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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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적 사고로 읽는 세계

나카자와 신이치, 『신화, 인류 최고(最古)의 철학』

 

 

 

나카자와 신이치는 신화를 인류 최고(最古)의 철학으로 보고 있다. ‘최고(最古)’라는 말은 가장 오래된 것이라는 뜻이므로, 그에게 신화는 가장 오래된 철학이 된다. 신화는 대담한 방법으로 우주와 자연 속에서의 인간의 위치와 인생의 의미에 대해 깊이 사고하고자 했습니다.”(14)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신화의 대담한 논리를 지은이는 감각의 논리에서 찾고 있다. 감각의 논리란 보거나, 듣거나, 냄새를 맡거나, 미각으로 맛을 보거나, 피부 접촉에 의해 뽀송뽀송하다거나 끈적끈적하다거나 하는 느낌을 갖는 식의 구체적인 감각을 소재로 해서 전개되는 논리”(20)이다. 신화는 이 감각의 논리로 일상에서는 사고할 수 없는 세계로 여행을 떠난다. 감각은 일상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항상 일상 너머로 나아간다. 이 때문에 신화는 의식 세계를 넘어 무의식 세계와 이어진다.

 

신화는 안과 밖이 완전히 하나로 이어져 있는 장소”(28)를 배경으로 한다. 그곳에서 동물과 인간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인간 세상이 다른 세상에 연결되는 기묘한 사건이 일어나기도 한다. 우리나라 신화인 단군신화만 봐도 환웅(하늘)과 웅녀(동물, 지상)가 결혼을 해서 단군을 낳는 기묘한 사건을 이야기하고 있다. 고대인들은 인간과 동물을 공생 관계로 보았다. 인간이 동물보다 우월하다는 인식을 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주목할 점은, 신화에 나타나는 이러한 인식은 실제 현실을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생겨났다는 사실이다. 신화는 현실 밖에 있는 환상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애써 외면하는 진실을 이야기에 담아 우리가 사는 이 세계에 전달한다.

 

지은이는 신화에서는 철학과 윤리가 일체가 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신화에 나타나는 철학은 이 세계에 부재하는 윤리를 탐구한다. 이를테면 지은이는 이라는 사물과 연관해서 신화적 사고와 피타고라스의 이성적 사유를 대비한다. 피타고라스는 자신의 사유체계에서 콩을 배제하려고 했다. 신화적 의미로 콩은 남성성과 여성성의 중간에 위치한 매개체”(86)이기 때문이다. 또한 콩은 이승과 저승을 잇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사유의 순수성을 추구한 피타고라스는 이렇듯 경계에 놓인 콩을 배제함으로써 남성만으로 결성된 순수집단을 만들려고 했다. 지은이는 오늘날 서구 철학의 뿌리를 형성하는 순수 지향성을 피타고라스의 이런 논리에서 찾고 있다. 신화적 사고는 이와 달리 경계를 오르내린다. 근래 서구 철학에 내포된 문제를 극복할 대안으로 신화적 사고가 대두되는 까닭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신화적 사고는 시대와 장소를 뛰어넘는 보편성을 지향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신데렐라 이야기만 해도 전 세계적으로 그 이야기가 퍼져 있다. 이야기의 세부는 다르지만, 신데렐라라는 재를 뒤집어쓴 아가씨가 계모의 구박을 받거나 초현실적 존재의 도움을 받아 소망을 이루는 내용은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지은이는 신데렐라 이야기에서 자기 변형의 과정을 찾아낸다. 신화적 사고의 핵심인 자기 변형은 전 세계 문화권에 신데렐라와 유사한 이야기가 퍼져 있는 이유를 알려준다. 그만큼 신화적 사고는 인류가 의식적으로 성장해 온 과정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지은이는 신데렐라의 원형을 찾아(4)라는 항목에서 그림형제가 쓴 재를 뒤집어쓴 소녀를 분석하고 있다. 그림형제는 이 동화에서 개암나무, , 아궁이, , 새와 같은 다양한 매개체들을 이용하고 있다. 개암나무는 켈트 신화에서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나무로 인식된다. 아궁이 또한 마찬가지다. 아궁이는 인간이 사는 집 안에서 다른 세계 혹은 저 세상으로의 전환점 역할”(127)을 한다. 아궁이 옆에서 재를 뒤집어쓴 신데렐라의 모습은 바로 이런 매개체들의 상징성을 바탕으로 구현되고 있다. 재를 뒤집어쓴 여인의 모습은 분명 외면적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그녀는 그 마음속에 신화적 순수함을 지니고 있다. 신화 세계에서 은 자연과 문명의 경계를 나누는 신성한 대상이었다. 신데렐라는 계모에게 학대를 당하며 아궁이를 관리하는 상황으로 내몰렸지만, 신화적 맥락으로 보면 그녀는 불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이에게는 없는 특권을 부여받은 거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 지은이는 유럽인들에게 구전되던 신데렐라 이야기를 새롭게 쓴 미크마크족 인디언의 보이지 않는 사람에 주목하고 있다. 그들은 유럽인들이 좋아하는 샤를 페로의 신데렐라이야기가 신화의 정신을 왜곡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곧 여성인 신데렐라는 주체성이 없고, 남성인 왕자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매력적인 아가씨를 만나 결혼할 생각밖에 없다는 게 그들이 비판한 주요 내용이었다. 한마디로 구체적인 현실이 그 이야기에는 빠져 있다고 본 것이다.

 

보이지 않는 사람에는 두 언니에게 학대당하는 막내 동생이 나온다. 큰언니가 벌건 숯으로 막내 동생의 손과 얼굴을 지져 그녀는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다. 그래서 마을사람들은 그녀를 누덕누덕 기운 듯한 피부의 소녀혹은 불에 덴 흉터가 있는 소녀로 불렀다. 이 소녀가 사는 마을에 영혼 세계에서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헤라지카를 모시는 위대한 사냥꾼이 살고 있었다. 그는 보통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이 사람을 돌보는 여동생만이 그를 볼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을 볼 수 있는 소녀라면 누구와도 결혼하리라 마음먹었다. 마을에 사는 수많은 처녀들이 이 사람과 결혼하려고 했지만 아무도 그 사람을 보지는 못했다. 상처투성이 막내 동생의 언니들도 마찬가지였다.

 

드디어 상처투성이 소녀에게도 기회가 왔다. 평소에 맨발로 다니던 그녀는 어느 날 아버지에게 큰 모카신을 받았다. 신발이 너무 커 호수에 담가 크기를 오그라뜨리니 겨우 신을 수 있었다. 언니들에게 몸을 치장할 ‘wampum’을 조금만 달라고 부탁했지만, 작은언니만 말 그대로 조금 나누어주었다. 입을 만한 옷이 없는 소녀는 숲으로 가 자작나무 껍질을 벗겼다. 그것을 대충 손질해 입으니 마치 할머니처럼 보였다. 그 위에 페티코트를 입고 큼직한 가운을 걸쳤다. 모자를 쓰고, 손수건을 챙기고, 무릎까지 덮는 큰 모카신을 신으니 보이지 않는 사람을 만날 준비가 얼추 끝났다. 언니들이 말릴 정도로 볼품이 없는 모습이었지만, 그녀는 이번 기회에 자신의 운명을 시험해 보고 싶었다.

 

막내 동생을 돋보이게 하는 힘은 바로 자신의 운명에 순응하지 않는 이 마음에 있다. 다른 처녀들이 외모를 치장하는데 바빴다면, 상처투성이 동생은 스스로 자신을 꾸미고 보이지 않는 사람앞에 섰다. 고귀한 영혼은 고귀한 영혼을 알아본다. 미드미크족 인디언은 신데렐라 이야기를 고귀한 영혼들이 사랑하는 이야기로 다시 지었다. ‘아궁이에 새겨진 신화적 의미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인디언들이 왜 상처투성이 소녀를 고귀한 영혼으로 생각했는지 알 수 없다. 겉으로는 가장 더러운 여자가 가장 고귀한 영혼으로 뒤바뀌는 이야기를 인디언들은 아궁이라는 매개 장소를 통해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신화적 사고는 이렇듯 일상의 시선으로는 보기 힘든 세계를 다양한 매개 형식에 담아 이야기로 풀어낸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있는 신화를 읽으며 우리는 이야기를 만든 사람들의 고귀한 영혼에 다가간다. 지은이는 무엇보다 이러한 신화의 특성을 통해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를 바라보려고 한다. 신화라는 가장 오래된 철학으로 첨단 문명에 익숙한 사람들과 대면한다고나 할까.

 

그러니 우리는 신화적 사고가 무엇인지 한번쯤은 생각한 후에 이 책을 읽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신화적 사고라는 마약에 휩쓸려 버릴 수도 있다. 지은이의 말마따나 우리는 자연과 문명을 균형 있게 사고하기 위해 신화를 읽는다. 이야기는 주는 매력에 흠뻑 빠져 신화의 진실을 놓친다면, 신화를 읽으면서도 우리는 결국 균형 있는 사고에 이르지 못한다. 구체성 세계의 풍요로움”(245)을 제대로 알려면 신화 현실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요령이 필요하다. 이 책은 그 요령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o*****s 2017.08.2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