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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소설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중학교 3학년인 93년도에 처음 읽었지만, 지금도 이 책은 내 서재에서 가장 아끼는 책이다. 대학에서 어떤 전공을 택하더라도 문학에서 눈을 떼기 어려우리라는 예상을 어린 나이에 어렴풋이 느낄 정도로, 당시에 나에게 준 인상은 매우 강렬한 것이었다. 이 책에 대한 광고는 거의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입소문을 타고 10년 넘게 절판되지 않은 채 개정판까지 내면서 장수하고 있다. 마치 연락이 오래 끊긴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도 침묵이 어색하지 않고 미소 하나로 이해를 하게 되듯이 장수하는 이 책을 보면서 작은 위안을 삼곤 한다.
2.
소설은 한 소설가에 대한 취재로 시작한다. 문학잡지 기자의 질문에 대한 소설가의 어눌한 답변과 함께 소설은 작중 소설가의 과거로 서서히 진입해 들어간다. 과거의 기억이 현재도 고통스럽다면 그것은 아직 현재진행형일 터. 사람은 누구나 상처를 안고 살아가지만 망각했다고 착각을 한다. 그러나, 상처는 현재에 끊임없이 영향을 끼친다. 소설 속의 작가 박부길은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는 나름의 방법을 터득하는데, 그것은 바로 '쓰는 행위' 이다.
'세상은 나를 힘들어 했다. 내가 세상에 대해 그런 것처럼. 그것은 내가 세상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119쪽)
정신질환을 앓는 아버지를 떠나 재가한 어머니에게 버림 받은 박부길은 큰 아버지댁에서 성장하게 된다. 그는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내지만 '버림 받았다'는 의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리고 일상적인 가난과 함께 그에게 사랑이 다가온다. 하지만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그는 타인에게 사랑을 준다는 의미를 모른다. 따라서 사랑이란 위안이 되지 못하고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상처를 입히는 칼날과 같을 뿐이다.
3.
사랑하는 방법에 서투른 그는 알 수 없는 열기에 들떠서 집착과 자학을 반복하게 되고 그러는 과정에서 그에게 책이 다가온다. 소통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 그에게 세상은 늘 오해와 질곡의 덩어리였고, 책은 그가 사소하게나마 세상을 향해 틈입해 들어가는 작은 통로가 된다. 그러나 소통하는 방법과 사랑을 모르는 박부길에게 책은 그의 삐뚤어진 감성을 더욱 예민하게 만들 뿐이다.
'글들은, '내 말'의 대언일 때만, 진실로 의미를 가진다. 그 밖에 다른 글들은 쓰레기거나 허수아비다. 쓰레기는 요오가 폐기되어 버려진 것이고, 허수아비에게는 아무도 말을 걸지 않는다. 삶, 곧 악몽, 눈 뜨고 꾸는, 그래서 더 끔찍한.' (140쪽)
4.
그는 교회에서 자신보다 연상인 종단을 사랑하지만 그녀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끝내 알지 못한다. 제어하지 못하는 욕망만이 가슴을 메울 뿐. 그러나, 그 자학의 과정 속에서 그는 서서히 타인에게 다가가는 법을, 그리고 책이란 창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자폐에서 벗어나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그렇지만 종단은 박부길의 감정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부길은 도망치듯이 신학교에 입학하는 것으로 그녀에게서 힘겹게 도망친다.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던 그는 폐쇄적이며 형식적인 신학교의 교칙에 염증을 느끼고 다시 세상 속으로 나온다. 그가 세상에 다시 나왔을 때 그에게 남은 것은 황폐화된 기억과 홀로 남겨진 초라한 자신 뿐이었다. 사랑하는 사람도, 부모도, 돈도 없는 그가 쥔 것은 펜이었고 그 행위가 자기 자신을 위로하기 위한 몸부림인지를 미처 깨닫지 못하고 글을 쓰기 시작한다. 글을 쓰면서 그는 과거의 실타래를 하나씩 풀게 되면서 자기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는 과정을 '지금까지' 이어간다.
'사랑을 배우지 않을 때, 종종 사랑은 흉기가 되어 사람을 상하게 한다.' (258쪽) '나에게 그녀는 완전해야 했고, 나는 그런 그녀를 절대적으로 사랑해야 했다. 그런 관념을 통해 나는 만족을 얻었다. 그렇게 밖에 사랑하지 못한, 그것이 나의 불행이었고, 나의 사랑의 예정된 비극이었다.' (261쪽)
그는 소설이라는 정화도구를 통해 자신의 고통스러운 과거를 파편화 시키고 여러 소설 속에 그것을 분산시킨다. 그러나, 그 소설들은 모두 하나였다. 바로 박부길, 자기 자신.
5.
책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위안이 무엇인지에 대해, 사랑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다양한 스펙트럼에 대해, 자신을 용서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을 통렬히 되돌아보는 통과의례을 거쳐야 된다는 전언에 대해, 많은 사념이 교차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이 책은 박부길이라는 작중 주인공의 고백과 회상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이 책 또한 작가 이승우의 분산된 자아는 아닐까.
실제로 이승우는 부모와 떨어져 큰집에서 성장했고, 그 역시 신학교를 나왔다. 그러나 그는 목사가 되는 길을 택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을 구원하지 못한 채로 타인의 영혼을 구원한다는 것의 어려움을 알고 있었기에.
작가가 쓴 작가의 이야기는 매우 매력적이다. 그것은 고백이자, 일기이며, 구애의 형식을 지닌 편지이며, 마치 결손가정의 아이가 그린 그림 속에 무의식적으로 투영된 결핍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해준다.
6.
이 작품을 처음 읽었던 시절, 내게 파생되었던 물음이 있다.
'저 풍경은 나와 관계가 없을진대, 왜 나를 아프게 하나.'
추측을 넘어선 확신일진대, 그것은 바로 위안이리라. 작품을 접하고 정의할 수 없는 슬픔에 옆으로 고개를 돌리게 되는 것. 그러다 곁에 있는 누군가에게 '당신에게도 삶은 쓸쓸하지 않은가' 라고 연민과 이해를 던지고 싶은 충동이 드는 것. 그것은 위안이 아니겠는가. 스스로를 위한, 혹은 타인을 위한. 타인과의 연대도 그러한 사랑이 바탕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위안이 될 수 없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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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온전히 사랑하기까지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생의 이면』 소설은 작가인 화자가 '박부길'이라는 작가의 생애를 다루는 글을 의뢰받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뚜렷한 친분관계도 없을 뿐더러 한 작가의 생애를 훑는 과정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는 화자는 박부길의 글과 인터뷰, 그리고 직접적인 만남을 통해 하나씩 큰 줄기를 형성해나간다. 박부길은 정신분열증으로 인해 갇혀 있다 자살을 한 아버지와 한없는 죄스런 마음으로 살아가는 어머니, 그리고 버림 받은 상처를 안은 채 유년기를 보냈고, 다시는 고향에 돌아오지 않기로 다짐하고선 떠난다. 아버지에 이어 판사가 되어 집안을 일으켜주길 바라는 기대를 버리고서. 중화집 배달일부터 시작해서 신학공부를 시작하기까지는 운명적인 만남, 즉 사랑이 큰 계기가 되었다. 어둠이 빛이 되는 동굴같은 안식처, 자취방에서 책속으로 침잠하는 생활을 이어가는 그에게 어떠한 사건을 계기로 그의 삶에도 '사랑'이라는 것을 안착할 수 있게 한 대상을 만나게 된 것이다. 교회 선생님이었던 그녀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신학공부를 시작했고, 조심스러운 관계가 이어져 갔으나, 늘 위태롭고 위험하게만 흘러가고 만다. 박부길의 여러 작품 속에서 자신의 생애의 대한 일면들을 가린 듯 보여줬는데 이를 통해 그의 생의 일종의 불행함과 사랑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서툰 모습들, 상대를 올곧게 바라보지 못한데서 비롯한 예측가능한 이별의 전조들. 이는 자신을 상처주는 것뿐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저 깊은 상처를 입히고 만 것이다. ** 읽는 이로 하여금 어느 부분에 중점을 두고 보느냐에 따라서 이는 신과 인간의 관계를 그리는 종교소설로 읽힐 수도 있으며, 사랑을 다루는 연애소설로도 읽힐 수 있다. 흐름에 따라 읽어나갔을 때는 실존적 성격의 질문이 주 화두가 되는 소설인가 싶었는데, 흘러가 다다른 것은 조금 다른 지점이었다. 이는 사람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까지의 여러 측면을 탐구한 소설처럼 느껴졌다. 박부길의 사랑의 실패로 끝나기 전에 그게 진정 사랑이었는가, 다시 묻고 싶을 만큼 처절하게 외로운 생에 안타까움이 더해지는 일들이 연달아 일어나는데, 그건 모두 본인이 자초한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인용된 구절에서 에리히 프롬의 질문처럼 사랑에도 기술이 필요한 데에는 어느 정도 공감하는 바다. 이는 밀고 당기기 같은 기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상대를 대하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박부길은 그의 외로운 생만큼 자신을 사랑할 줄 몰랐던 인물이다. 동경하고 섬기는 존재로서, 상대를 신격화한 채 주는 애정은 폭력과도 같았고, 이에 자신도 크게 아프게 한 결과에 이른다. 사랑은 저절로 하게 되는 것이고, 자연스러운 감정에서 비롯된다 하더라도 그에 맞는 자연스러움에 대한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단순히 말하자면 사랑도 받아본 사람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주는지 모르고 쏟는 애정은 일방적이며 폭력과도 같이 느껴지기 때문에. 화자가 박부길의 작품과 생애를 차례대로 교차하며 서술하는데, 작품으로 인용된 글들 역시 모두 창작품일텐데 그것 역시 참으로 좋았다. 밀도 있는 문장과 서사에 박부길이라는 작가가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실제로 이승우 작가는 신학도이기도 했기 때문에 종교적인 색채를 띄는 부분에서는 더 묵직하게 와닿았던 것 같다. 작가의 처녀작이라고 설명된 이 작품은 몇 차례 개정판의 서문에서 고백했듯이, 그야말로 작가가 애착을 많이 갖는 작품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당연히 성글게 느껴지는 부분도 군데군데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나이에 이런 묵직하면서도 심도 있는 작품을 창작해내는 작가는 역시 천재가 아닌가 싶다. 개인적으로 추천 도서임에는 분명하나 청소년 추천도서라기엔 너무 어렵지 않은가 싶다. 물리고 물리는 문장의 연속의 진입장벽은 꽤나 높았으나, 확 와닿는 구절도 군데군데 자주 드러나기 때문에, 비유도 그렇고. 처음에 잘 들어가지 못하면 갇히는 듯한 느낌이 들거나 중도 포기하고 싶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분명한 것은 두고두고 읽고 싶고, 계속해서 만나보고 싶은 작가라는 것이다. **기억에 남는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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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도서 목록을 훑어보던 중,이 책의 제목과 작가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 책 앞부분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뭐 이런 기구한 운명이 다 있지.'
하지만 이 이야기는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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