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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가 하지 않은 일들에 대해서 용서해야 하네. 했어야 했는데 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 일이 이러저러하게 되지 않았다고 탓할 수만은 없지.” - 213p 12년 전 읽었던 책을 굳이 다시 꺼내든 것은, 무언가 그리웠기 때문이었다. 그 무엇이 정확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었는데, 책을 다 읽고 난 뒤에야 알았다. 용서였다. 그리고 내 자신에 대한 확인이었다.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무슨 행동을 하며 살고 있는지 종잡을 수 없었던 지금의 내가, 본디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리고 왜 후회라는 그리 훌륭하지 못한 감정에 사로잡혀 있는지 알고자 했다. 온통 핑계만 만들어대고 있었다.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 내가 나약한 것이 아니라, 타인이, 이 세상이 잘못된 것이기 때문이라는 변명을, 어느새 중얼거리고 있었다. 또한 나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커다란 존재가 문득 내 앞에 나타나, 어리석은 내 마음을 뒤흔들어, 가르침을 주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분노조차 타성에 젖고, 누군가에 대해 애정을 갖기 보다는 반감과 증오를 품는, 어색해진 내 자신을 애써 외면해오고 있었다. 추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못난 성정조차 내 탓이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모리 교수는 미치에게 일장 연설을 늘어놓은 적이 없었다. 훈계 따위는 생각지도 않았다. 그는 다만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잘 했다고 느낀 부분, 아쉬운 부분, 다시 시간이 주어진다면 되돌리고 싶은 부분까지. 죽음을 앞둔 노 교수는 그렇게 사랑하는 제자에게 온전히 ‘사랑’만을 남기고 떠났다. 그 사랑을, 제자는 온 몸으로 받아들였고, 그렇게 두 사람의 만남은 기록으로 남겨져 많은 이들을 감동케 만들었다. 내가 기다린 초인은 누구였을까. 어떤 존재였을까. 나에게 무엇을 해주길 바란 것일까. 내 어리석음을 크게 꾸짖고, 내 편협함과 오만함과 게으름을 한 번에 바꿔줄 수 있는 그런 존재를 기다린 것일까, 아니면 다만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누군가이길 바랐을까. 가장 위험한 것은 포기와 무관심이다. 때문에 눈을 부릅뜨고 세상을 쳐다보리라 마음먹었다. 하지만 가면 갈수록 점점 희망은 멀어져 가는 것처럼 보였다. 사람들의 눈물과 한숨과 고통이 점점 내 자신을 작고 초라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내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아져만 갈 때, 더 이상 눈을 뜰 수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모든 것에 눈을 감자고, 모든 것에 귀를 닫자고, 이 더러운 세상에 침 한 번 뱉어주고, 그렇게 죽은 듯, 살자고. 하지만 그것은 이룰 수 없는 일이었다. 책을 덮은 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나 따위가 눈을 감는다고, 귀를 막는다고 달라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나만 더 아프고 상처받을 뿐이었다. 모리 교수의 따스한 말 한마디가, 미치의 눈빛 하나하나가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워 주는 것만 같았다. 12년 전 내 마음 속에 들어있던 그 무언가가 다시 조용히 나에게 말을 거는 것만 같았다. ‘죽음은 생명이 끝나는 것이지, 관계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말, 그리고 죽어간다는 것과 화해한다면 살아가는 것과도 화해할 수 있다는 모리 교수의 말은 예전에도, 그리고 지금 이후에도 오랫동안 나에게 남아, 힘이 될 듯하다. 날이면 날마다 철이 들지 않는 스스로에게 감탄하며, 때론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온 듯하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무어 있을까. 내가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불화한다면 과연 누가 나와 화합을 이룰 수 있겠는가. 더 이상 자신과의 불화를 이어갈 필요는 없어 보인다. 책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치 않을 정도로 유명하다. 아마도 수많은 이들이 읽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개인적으로는 언제,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 읽었느냐에 따라 각자의 느낌이 다르리라. 때로는 잊었던 옛 은사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느꼈을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인생의 멘토를 얻고 싶다는 강한 열망을 가졌을지 모르겠다. 12년 전에 읽었던 나와, 지금의 내가 느낀 감정은 사뭇 사르다. 당시엔 막연히 옛 중고교 시절 은사님들이 떠올랐고, 당시 철없던 나의 모습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시간의 소중함과 더불어, 후회를 남기지 않는 삶에 대한 꿈을 꾸었던 것 같다. 지금은 조금, 다르다. 이제는 나와의 화해, 내 자신과의 화합을 생각한다. 그리고 변함없이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그것이 바탕이 된 행동을 이어나가야 함을 느낀다. 진정 나다운 것은 누가 표현해주는 것이 아니라, 누가 판단해주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느껴야 하는 것임을, 다시 한 번 느낀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정말 소중한 사실 한 가지.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점. 그것이 아니면, 우리는 그야말로 맥없이 스러질 존재라는 것. 새삼스럽지만, 다시 한 번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여전히 누군가에게 선물하기 좋은 책이다. |
|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입니다 죽음을 앞두고 있게 된다면 어떻게 삶을 마무리 하고 또 다른이에게 어떠한 이야기를 전해줄 수 있을까 죽음을 저렇게 담담히 받아들이고 인생에 가르침까지 준 모리 교수가 대단하게 느껴지는 책이었습니다 모리 교수는 바쁘게 앞만 보고 달려나가는 현재 우리들에게 인생에 조금의 휴식이라도 가지고 천천히 한 템포 쉬어가라는 소중한 교훈을 줍니다 이제 잠시 쉬어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
| “우린 화요일의 사람들이군.” 치열한 삶을 살아가던 미치는 자신의 은사인 모리 교수를 만나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죽어가는 병을 앓고 있는 모리 교수는 이 병을 통해 사랑을 나눠주는 법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말이 아닌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 책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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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들은 영혼을 채워주고 정화하기도 한다.
모리는 대학시절 미치와 매주 화요일에 식당이든 어느 벤치에든 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했다. 인생과 사회 전반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대화는 모리 교수가 죽어가는 순간에 다시 시작되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통해 가르쳐주고자 했다. 죽음을 알면 삶 또한 알 수 있기에.
'그는 시름시름 앓고 싶지 않았다. 모리 교수 역시 자신이 루게릭 병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 좌절하고 절망했다. 하루가 다르게 신경이 굳고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숨 쉬는 것조차 힘들어지자 그 역시 아침마다 힘들어하고, 우울해하고, 자기 연민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 한순간뿐이었다. 울고 싶을 때는 실컷 울고 나서 다시 그의 인생에서 좋은 것들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사람과 사랑에 대해서 말이다.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멸망하리"
그는 잘못된 문화가 만들어낸 경쟁 사회에서 끊임없이 돈과 명예에 집착하는 우리들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리고 진정 의미 있는 삶을 위한 것과 인생을 가르쳐준다. 자꾸 사라지는 신기루에 집착하는 우리들, 그런 신기루에 집착하여 달려가다 보니 외로워지는 우리들에게 모리 교수 같은 인생 멘토가 필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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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3-2006
미치 앨봄 지음/공경희 옮김
"떠나는 자와 남는자의 마지작 수업!"
죽음 두려움 나이가 든다는 것 탐욕 결혼 가족 사회 용서 의미 있는 삶
<어린 왕자>가 그랬듯 이 책 역시 읽을 때마다 나에게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 주리라 믿는다. 벌써 몇 년전에 이 책을 읽었으나, 워낙 기억력이 안 좋은지라 벌써 까져먹고.. 책 마저 잊어 먹고 속상해 하고 있은지..쫌 몇년.. 윤숙언니네 집에 놀러 가서 이 책을 얻었다. 새로운 마음으로 이 책을 읽을 때 처음 읽을 땐 어떤 마음 가짐으로 읽었는지.. 그 역시 기억 나지 않지만, 지금은 가족과 결혼에 대하여 여러 생각을 하게 하였다. 그래서 그 구절을 기록해 놓고자 한다.
가족
"가족이 지니는 의미는 그냥 단순한 사랑이 아니라, 지켜봐 주는 누군가가 거기 있다는 사실을 상대방에게 알려주는 것이라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내가 가장 아쉬워했던 게 바로 그거였어. 소위 '정신적인 안정감'이 가장 아쉽더군. 가족이 거기서 나를 지켜봐주고 있으리라는 것을 아는 것이 바로 '정신적인 안정감'이지. 가족말고는 그 무엇도 그걸 줄 순 없어. 돈도 명예도 일도."
결혼
"살면서 결혼에 대해 많이 배웠지. 그건 시험보는 것과 같아. 자기가 누구인지, 상대방은 누구인지, 둘이 어떻게 맞춰갈것인지 탐색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어." "결혼 생활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 알아야 될 규칙 같은게 있나요?" 모리 선생님은 미소지었다. "그렇게 간단한게 아니라네, 미치." "저도 알아요." "하지만 사랑과 결혼에 대한 진실이라고 할 만한 몇 가지 규칙은 있네.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으면, 큰 문제가 그들 사이에 닥칠지도 모른다. 타협하는 방법을 모르면 문제가 커진다. 두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일을 터놓고 이야기 하지 못하면 더 큰 문제가 생긴다. 그리고 인생의 가치가 서로 다르면 엄청난 문제가 생긴다는 사실이야. 그래서 두 사람의 가치관이 비슷해야 하네." "그렇군요." "그런데 미치,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뭐라고 생각하세요?" "그것은 결혼의 '중요성'을 믿는 것이라네." 선생님은 코를 훌쩍이더니 잠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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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 미치 앨봄 지음
너무나 유명한 책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은 실화이기 때문에 그만큼 재미와 감동이 있는 책인 것 같다.
찾아가 교수님과 대화를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모은 책이다.
모리는 죽음과 맞닥드렸을 때 맞이하는 일반 사람들과는 다르기에 이 책이 특별하지 않나 싶었다.
죽음을 앞에두고 살아 생전에 모리는 "살아있는 장례식"을 한다. 이거 영화나 드라마에서 몇 번 본 것 같은데 이걸 모태로 하지 않았을 까 싶다.
코펠이라는 아나운서가 모리에게 물었다. "천천히 쇠락하는데 가장 두려운게 뭡니까?" 모리는 "테드,어느날 갑자기 누군가 내 엉덩이를 닦아줘야만 된다는 사실이 가장 두렵소." 라는 말을 하게 되는데 정말 가슴 한구석이 참 모했다. 자신은 그러고 싶지 않지만 현실은 그래야 된다는 거, 참 좀 찡했다.
이 책에서 기억에 남는 멘트들은,
"자기의 인생을 의미있게 살려면 자기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위해 바쳐야 하네"
"사랑을 나눠주는 법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거야"
"죽게 되리란 사실은 누구나 알지만, 자기가 죽는다고 아무도 믿지 않지. 만약 그렇게 믿는다면, 우리는 다름 사람이 될텐데" - 정말 가슴에 팍팍 꼭치는 말들이었다. 세상에 누가 살아가면서 죽을 것처럼 생활을 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 모리의 말처럼 저랬다면 정말 세상이 달라질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 '곧' 그들을 두고 떠나야 하니까" 그는 입술을 꾹 다물고 눈을 감았다. 나는 그의 뺨에 흐르는 눈물을 보았다.
"내가 어떻게 죽고 싶은지 아나?" "평온하게 죽고 싶네. 평화롭게. 방금처럼 그렇게는 아니야. 벗어나기가 힘을 발휘하는 때는 바로 이때야. 방금처럼 기침을 해대다가 죽는다면, 난 그 두려움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어. 그럴 때 '지금 이 순간 나는 이 두려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할 필요가 있지.
"의존하는 걸 즐기기 시작했다는 점이야. 이젠 사람들이 날 옆으로 눕히고 짓무르지 말라고 크림을 엉덩이에 발라주는 게 즐겁단 말일세. 혹은 눈썹을 닦아주거나 다리를 마사지해주는게 좋아. 난 그걸 만끽하지. 눈을 감고 거기에 빠지는 거야. 그럼 아주 익숙한 일로 여겨지거든.
"세상 사람들은 젊음을 강조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잘 들어보게. 젊다는 것이 얼마나 처참할 수 있는지 난 잘 알아. 그러니 젊다는 게 대단히 멋지다고는 말하지 말게. 젊은이들은 갈등과 고민과 부족한 느낌에 늘 시달리고, 인생이 비참하다며 나를 찾아오곤 한다네. 너무 괴로워서 자살하고 싶다면서..."
"미치. 늙은 사람이 젊은이들을 질투하지 않기란 불가능한 일이야. 하지만 자기가 누구인지 받아들이고 그 속에 흠뻑 빠져드는 것이 중요하지. 지금 가제는 30대를 살고 있지. 나도 30대를 살아봤어. 그리고 지금 나는 78살이 되는 때를 맞이했네."
"의미 있는 삶을 찾는 것에 대해 얘기한 것 기억하나? 적어두기도 했지만, 암송할 수 있네.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을 바쳐라. 자기를 둘러싼 지역 사회에 자신을 바쳐라. 그리고 자기에게 목적과 의미를 주는 일을 창조하는데 자신을 바쳐라"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일들을 하라구. 그런 일들을 하게 되면 절대 실망하지 않아. 질투심이 생기지도 않고, 다른 사람의 것을 탐내지도 않게 되지. 오히려 그들에게 베풂으로써 나에게 되돌아오는 것들에 압도당할 거야.
"하지만 여기 비밀이 있네. 아이 때와 죽어갈 때 외에도 즉 그 중간 시기에도 사실 우린 누군가가 필요하네"
"자네도 잘 알 듯이 죽음은 전염되지 않다. 삶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죽음도 자연스럽다네. 그것은 우리가 맺은 계약의 일부라구"
"정말 소박했다. 너무도 평범했다. 사실 난 좀 실망했다. 선생님이 이탈리아로 날아가거나, 대통령과 점심 식사를 하거나, 바닷가를 걷거나, 생각해낼 수 있는 온갖 이색적인 일을 할 걸로 짐작했는데. 이렇게 누워서 한 발자국도 걷지 못한 채 오랜 시간을 보낸 끝에, 어떻게 그리도 평범한 하루에서 완벽함을 찾을 수 있을까? 그때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바로 그것이 핵심임을"
삶에 대해서 소중함을 못 느끼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꼭 권해주고 싶다. 그리고 병과의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이 책을 권해주고 싶다.
모리가 특별한 것 같지만 정말 너무나도 평범했기에 특별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 나오는 명언중 간디가 한말이 있는데 정말 이 책과 딱 어울리는 말이다.
"매일 밤 잠자리에 들 때면 나는 죽는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잠에서 깨면 나는 다시 태어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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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사랑 내곁에>는 10년도 넘은 옛날에 읽은 책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아마 주인공 종우가 치유가 불가능한 루게릭병으로 죽어가는 자신의 삶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http://blog.daum.net/hira-qa/737). 루게릭병은 앞서도 적었지만 우리 몸의 운동을 관장하는 신경세포가 원인 모르게 죽어가는 병입니다. 몇 가지 치료제가 개발되고 있지만 병증의 진행을 늦추는 정도입니다(http://blog.daum.net/hira-qa/728). 미국의 스포츠 칼럼니스트 미치 앨봄이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대학시절 은사님을 매주 화요일 방문해서 그의 마지막 강의를 정리해서 책으로 묶어낸 책이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입니다. 공부를 마치고 스승과 작별하고서 다시 만나게 되는 제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 싶습니다만, 많은 제자들이 투병하고 있는 모리교수를 만나러 오고, 여러 가지로 도움을 드리고 싶어 했다고 합니다. 정말 훌륭한 스승의 표본이 아닐까 싶습니다. 모리교수는 대공황기에 잠깐 경험한 공장에서 노동자를 착취하는 모습을 보고서 다른 사람을 착취하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어 가르침의 길을 택했다고 합니다. 1959년부터 루게릭병으로 더 이상 강의를 할 수 없게 된 1994년까지 35년 동안 브랜다이스 대학에서 사회학을 강의했는데 일방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학생들과 생각을 나누고 있었기 때문에 제자들의 마음에 자리 잡게 된 것 같습니다. 투병과정에서도 삶에 대한 성찰을 게을리 하지 않아 루게릭병과 죽음에 대한 아포리즘을 만들어냈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ABC TV의 ‘나이트라인’에 출연하게 되면서 그의 투병이 미국 전역에 알려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마침 나이트라인을 보게 된 미치 앨봄이 대학을 떠나면서 다시 찾아뵙겠다는 약속을 떠올리게 된 것이 매주 화요일 모리교수를 방문하게 되었고, 방문을 통해서 나눈 인생에 대한 토론을 정리하여 발표한 것이 바로 이 책입니다. 방송은 한 차례로 끝난 것이 아니라 죽음을 앞둔 시점에까지 모두 3차례의 인터뷰가 방송을 탔는데 사실 죽어가는 사람을 인터뷰하기가 쉬운 일이었음에도 흔쾌히 수락한 모리교수의 초연한 삶의 자세를 알게 합니다. 모리교수가 자신의 병을 알게 된 것이 1994년 8월이었고 그가 생을 마감한 것은 이듬해 가을이었으니 투병기간이 1년 정도 되었으니 다른 환자에 비하여 진행이 빨랐던 것 같습니다. 미치는 매주 화요일 디트로이트에서 매사추세츠 웨스턴 뉴턴에 있는 모리교수님의 집에서 듣는 마지막 강의에 출석한 것이 14번이었으니 3개월여 동안 세상, 자기연민, 후회, 죽음, 가족, 감정, 나이 드는 두려움, 돈, 사랑의 지속, 결혼, 문화, 용서 등을 주제로 하여 교수님의 미치의 생각과 모리교수의 언급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보통 책을 읽으면서 눈에 띄는 구절을 표시를 하게 됩니다만, 책을 다 읽고나서 무슨 말을 골라서 소개할까 선뜻 집히지가 않습니다. 제가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구절이 있습니다. “의미없는 생활을 하느라 바삐 뛰어다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아. 자기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느라 분주할 때조차도 반은 자고 있는 것 같다구. 그것은 그들이 엉뚱한 것을 쫓고 있기 때문이지. 자기의 인생을 의미있게 살려면 자기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위해 바쳐야 하네.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 헌신하고, 자신에게 의미와 목적을 주는 일을 창조하는데 헌신해야 하네.” 모리교수가 제자들에게 들려준 말입니다. 책을 읽다보니 영화 <내사랑 내곁에>에서 보여주었으면 좋았겠다 싶은 구절도 있습니다. 바로 미치가 모리교수에게 들려준 루게릭선수의 성대모사입니다. “오오오늘……저저는……이 지구상에서……가장 복많은 사아람이……된 기부운입니다아아…….” 그렇습니다. 루게릭환자는 마지막에 발성마저도 빼앗기게 되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영화에서도 지수가 춤을 추는 동안 종우는 하고 싶은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습니다. 루게릭환자는 운동신경이 죽어나가기 때문에 근육이 밭아지게 됩니다. 결국은 팔다리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누군가의 도움이 있어야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자신의 삶을 남에게 의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존심이 강한 환자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상황이 됩니다. 이 점에서도 모리교수는 특별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의존하는 것을 즐기기 시작했다는 점이야. 이젠 사람들이 날 옆으로 눕히고 짓무르지 말라고 크림을 엉덩이에 발라주는 게 즐겁단 말일세. 혹은 눈썹을 닦아주거나 다리를 마사지해주는 게 좋아. 난 그걸 만끽하지. 눈을 감고 거기에 빠지는 거야. 그럼 아주 익숙한 일로 여겨지거든.” 그런데 저의 선친께서는 그러지 못하셨습니다. 세상을 떠나기 전 길지 않은 시간을 병상에 누워계시면서도 당신의 몸을 남에게 보이는 것을 매우 싫어하셨습니다. 당신의 몸이 구속되는 것에 화를 내셨습니다. 내가 그런 상황이 된다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만, 아마도 선친처럼 하지 않을까도 싶습니다. 마지막 열네 번째 화요일에는 미치가 모리교수께 작별인사를 하는 날이었기 때문에 마지막 강의는 열세 번째 화요일이었습니다. 이날 강의 가운데 가슴을 치는 대목은 바로 화해하는 일에 관한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궁극적으로 죽어가면서 평화로울 수 있다면, 마침내 진짜 어려운 것을 할 수 있겠지. 살아가는 것과 화해하는 일. 죽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야. 우리가 죽음을 두고 소란을 떠는 것은 우리를 자연의 일부로 보지 않기 때문이지. 인간이 자연보다 위에 있다고 생각하니까.” 사람이 죽음을 앞에 두면 착해진다는 우리네 말이 있습니다. 죽음이 예정되면 주변을 정리하게 됩니다. 그것이 해보고 싶었지만 해보지 못한 일이 될 수도 있고, 평소 마음에 걸려있던 인간관계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영화 버킷리스트에서도 마지막까지 남겨 놓은 리스트는 누군가와 화해하는 일이었습니다(http://blog.joins.com/yang412/9472741). 저 역시 먼저 세상을 뜬 누군가와 화해를 했어야 하는데 아직 삶을 정리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지 그러지 못했습니다. 물론 그분은 저와 화해할 생각이 없었던 듯 그냥 떠나셨지요. 죽음을 앞에 두고 초연할 수 있는 마음을 배우게 하는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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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공평할 거라는 기대는 버려. 우리 같은 사람들은 남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해'
영화 [미쓰 홍당무]에서 나오는 말이다. 하지만, 어쩌면 인간은 어떤 면에서는 누구에게나 공평할 수 있다. 탄생과 죽음의 순간을 그 누구도 정할 수도 없고 거부할 수도 없다는 사실에서는 말이다. 그리고, 글을 읽는 순간 제자로 만들어버리는 모리 선생님께서는 탄생과 죽음 사이의 시간을 어떻게 채울 것인지, 아니 어떻게 살아가고 어떻게 죽어가야 하는 것인지를 몸소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아마, 골리앗이 마주한 다윗의 위풍이 이 작은 책과 같지 않았을까? 문체나 구성은 아주 평이하게 쓰여져 있어 읽기에도 어렵지 않고 분량도 많지 않은 얇은 책은 읽으면 읽을 수록 거대하고 육중해진다. 아니, 글을 읽는 독자인 나 자신을 작게 만든다. 허튼 말꾸밈이나 중언부언하는 설명보다 인생에 대한 진지한 가치관과 인생을 대하는 진정성이 읽는 독자의 가슴에 더 강하게 울린다.
(시한부 생명 선고 후..) '이렇게 시름시름 앓다가 사라질 것인가, 아니면 남은 시간을 최선을 다해 쓸 것인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있음을 인정하라". "과거를 부인하거나 버리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자신과 타인을 용서하는 법을 배워라." "너무 늦어서 어떤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이 세상에서 그대로 물러날 것인가? 아니면 계속 보람 있는 삶을 살 것인가?'
그는 숫자 세기를 멈추고 숨을 들이쉬었다. "처음 의사가 시켰을 때는 23까지 셀 수 있었네. 근데 지금은 18까지야"
"미치, 어떻게 죽어야 할지 배우게 되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배울 수 있다네."
"의미 있는 삶을 찾는 것에 대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을 바쳐라. 자기를 둘러싼 지역 사회에 자신을 바쳐라. 그리고 자기에게 목적과 의미를 주는 일을 창조하는 데 자신을 바쳐라."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멸망하리." 이 책은 아직은 생존해 있는 청춘들에게 나침반이 사용될 수 있는 단편과 격언들의 집합소로 느껴진다. 한장 한장 읽으면서 충분히 느끼고 감동한다면 매우 많은 것을 수확할 수 있는 책이다. 슬프지 않지만 감동 깊은 현자의 이야기는 독자로 하여금 충분히 눈물짓게 할 것이니 주의한다. 게다가, 이 글의 가장 놀랍운 점은 실화라는 것이며 이 점이 책을 더욱 감동적이게 한다. 항상 곁에두고 모리 선생님의 목소리에 귀를 귀울이면 보다 알찬 인생을 살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끝으로, 이 내용을 오프라 윈프리가 등장하는 동영상이 있다. 동영상도 함께 청취하게 되면 감동이 배가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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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목전에 둔 스승과 제자의 만남을 그리고 있는 이 소설은 꽤나 오래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작품이다. 그럼에도 늘 내 선택권에서 빗겨나있었다. 괜스럽게 눈물을 쏟아내는 감성적인 소설은 개인적으로 별로 반기지 않는 편이다. 이유인 즉은 왠지 이런 이야기들은 일회성으로 감성만 자극할 뿐이며 교훈조차도 흔하디 흔할 것이라는 오해 때문이었다. 하지만 올해 가을은 내게로 찾아온 새 생명때문이었는지 이상스럽게 감성을 자극하는 소설류에 자꾸만 마음이 당겼다. 그리고 아가 덕분에 말랑말랑한 감성을 키워낼수 있는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은 작가 미치앨봄이 실제로 겪은 일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다. 시들어버린 열정으로 밥벌이에 쫓겨 정신없는 중년을 보낼때 즈음 작가는 루게릭병으로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는 대학의 노은사,모리교수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매주 화요일 모리를 만나는 일상을 통해서 인생에 대한 가슴뜨거운 교훈들을 만나게 된다. 타인의 도움없이는 화장실도 제대로 갈수 없는 처참한 고통속에서도 모리는 생에 대한 참으로 맑고 선명한 메세지를 전해주고 있었다.
작가의 가슴을 달군 그 교훈들은 내 가슴에도 여러개의 파문들을 남겼다. 병때문에 죽음을 준비할 수 있게 된 것에 오히려 감사하다는 그의 말이 가슴에 쿵하고 박혔다. 과연 나라면 모리처럼 담담하게 죽음을 맞을 수 있을까? 그처럼 태연함을 넘어서 즐거운 마음으로 죽어가는 하루하루를 살아갈수 있을까? 자신있게 대답할 수 없었다. 오히려 모리에게 되묻고 싶었다. 남은 생에 대한 그리고 지나간 생에 대한 아쉬움과 억울함에 가슴을 치면서 하늘을 원망하고 내게 찾아온 불행을 원망해야 하는 것이 인간적인 것이 아닌가요? 하고 말이다. 의연한 모리에게서 작가도 그리고 수많은 다른 이들도 뜨거운 찬사와 함께 감동을 받은 것은 아마 그런 인간적인 고뇌를 뛰어넘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길을 걷는 동안에는 숲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것처럼 생을 살아가는 동안에는 생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가보다. 생을 마감하는 모리의 시선은 바쁜 일상을 살아가기에도 벅찬 우리들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그의 눈과 마음으로 바라본 우리의 인생은 생각보다 아름답고 찬란했다. 감사하며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는 일과 시간이 가득찬 선물과 같은 하루가 우리에게 주어져 있었다. 그런 하루가 늘 당연히 있어줄것이라는 대책없는 믿음과 착각으로 망각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모리는 그가 잃어버린 남은 생과 맞바꾸듯 우리에게 새롭고 신나는 생을 선물해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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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순간 가장 평범한 듯 핵을 찌르는 이야기를 들으며 울었습니다.
처음엔 무턱대고 터져 나오는 울음 때문에, '어? 내가 왜 울지?'
머릿속이 하얘졌다, 까매졌다 영문을 몰랐는데, 단지 한 단어만 떠오르는 겁니다.
'감동' '그래, 난 감동한거야. 다른 이유가 있을 리 없잖아?'
사랑을 나눠주는 법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거야
그건 슬픔이었을까요? 아니, 단지 그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그 분이 자신의 죽음을 앞에두고, 제자에게 들려준 이야기들은, 삶을 일상에 지쳐 그저 관성적으로, 혹은 무료하게 보내기 쉬운 우리들에게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 거 맞나?' 되돌아보게 하는 거울입니다.
그 분이 숨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해 쌕쌕거리며, 사랑스러운 눈길로 제자에게 전해주셨을 이야기들이 잔잔하게 내 안에서 물결쳐 옵니다.
나는 오늘 하루만도 잠으로, 밥을 먹는데, 화장실 가는데, 눈요기를 찾아, 들을꺼리를 찾아, 온통 시간을 소비하는데 쓴 건 아닌지...
내가 누리는 이 시간들이 쓸모없이 흥청망청 흘려버려지는 것보다,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간다면, 세상은 좀 더 따뜻하고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하는 반성을 해봅니다.
"내가 줄 수 있는 것을 타인에게 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 스스로에게 만족을 준다는 사실을 이제 저도 압니다.
그러나 안다고 해서 늘 그렇게 살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삶의 여유가 필요하겠지요.
그 여유란, 시간이 많은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성찰하는 힘에서 올테구요.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삶의 여유를 찾고, 관성적인 삶을 성찰하는 힘을 길러줍니다.
아직 읽지 못하신 분들은, 시간 내서 꼭 읽어보시구요,
이미 읽어보신 분들도, 때때로 다시 펼쳐보시면 새로운 가르침이 눈에 들어올 거에요.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가을의 끝자락 한 켠에서 음미하듯 읽어보는 게 어떨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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