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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 노통브 책은 읽을 그 간결함과 상쾌함이 참 마음에 든다. 따라서, 카트에 담아 두었다가 눈이 피곤할 때 한 권씩 끼워서 보면...독서의 쉬어가는 코너같은 편안함을 준다. 종종 웃음까지.
일단 얼추 짐작되는 일본 회사의 조직문화를 살짝 엿볼 수 있다. 그리고..꼭 일본이 아니더라도, 여전히 우리의 일터에 잔재해 있는, 아니면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는 이런 저런 불합리함, 권위의 폭력에 대해서도...또 여자의 적은 어쨌거나 여자일 수 밖에 없나 싶기도 했고.
후부키의 입장에서 아멜리 같은 직원이 들어와도 많이 당황스럽겠다. 거의 또라이 같은 기질을 보여주는 아멜리 같은 사람을...과연 우리 회사 문화에서는 잘 받아줄 수 있을까? 받아 줄 수 있겠지. 백인여성에 벨기에인이면...그게 또 얼마나 먹혀들어갈까.
여하튼, 현재 기가막힌 조직생활을 하고 있는 처지에서... 그저 남의 나라에 간 외국인이 겪은 조직생활로만 치부하기엔 뭔가 씁쓸하다. 이래 저래 보면, 우리의 그것과 많이 닮아 있기 때문이겠다.
내가 후부키라면...아멜리 같은 직원은 딱 별로일텐데...사실 내 삶의 롤모델은 아멜리 같은 사람이다. 난 종종 단순 반복적인 일이 나한테 딱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으니까.
덧붙이. 이러다 아멜리 노통브의 책도 다 읽어버리겠군. 문고판인데, 책값은 여전히 만족스럽지 못하다. 다른 물가에 비하면..뭐라 할 건 아니지만... 딴 건 몰라도 책값은 좀 저렴했으면 좋겠다. 문고판이 좀 활성화 되었으면 싶기도하고.
어떤 사람의 삶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태도를 발견하는 경우, 들여다보면 어린 시절의 아찔한 기억들이 남아 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어렸을 적, 내가 살던 일본이라는 세계의 아름다움이 그토록 강한 인상을 주었기 때문에, 나는 여전히 이 감정의 주머니를 옆에 끼고 살고 있었다. 그 동안 내가 좋아해 왔던 것을 부정하는 한 제도의 속성인, 끔찍한 경멸이 지금 눈앞에 보였다. - 126쪽 -
어떤 존재든 최초의 외상을 입는 순간이 있게 마련이다. 이런 경험이 삶을 체험 전과 체험 후로 나누어 놓게 된다. 그리고 아주 순간적으로나마 이때의 경험을 떠올리면 사람들은 비이성적이고 동물적이며 치유불가능한 공포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된다. -141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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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 보고는 싶은데 여러 권 다 사느냐는 모호했는데 이건 문고판이 이렇게 있었다. 다섯 번째로 읽은 아멜리 노통브 작품이다. 돌아보니 1년에 하나쯤 보게 된다.
언어 장벽을 넘나든 이름과 단어들, 특유한 유머는 역시 있다. 글쎄, 영화에서는 쿠엔틴 타란티노 같다고 해도 되겠다. 부분은 웃긴데 전체는 웃을 수만은 없는, 분명한 핵심이 있다는 것.
83쪽 "극도로 권위적인 제도는, 이 제도가 적용되는 국가에서, 상상을 뛰어넘는 일탈을 불러일으키는데, 바로 이런 사실 때문에 또, 기가 찬 상식 밖의 행동에 대해서도 상대적으로 관용을 베풀게 되는 것이다." 114쪽 "우리가 한 것처럼 행동(모른 척)하는 게, 이런 비인간적인 장면을 이렇다 저렇다 말도 못하고 보고만 있는 게, 더 나쁜 건 아니었을까? 권위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우리 모습이 더 나쁜 게 아니었을까?" 140쪽 "권위에 대한 나의 복종은 절대적이다. 외국인들을 모욕하는 것에 난 관심 없다. / 상사에게 복종한다고 해서 내가 그들이 내린 결정 중 일부에 대해 비판적인 사고를 견지하지 못하라는 법은 없다. (중략) 이들(외국인)이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면 회사에도 이익이 되는 일이다."
일본 회사를 예로 들었을 뿐 잘못된 조직 문화를 꼬집는 작품으로 여기고 싶었으나, 재밌게도 자전적 소설이란다. 그럼 이건 소설을 통한 복수라고 볼 수도 있다. 그 점은 이번 작품만의 특징일 것이다. 위에 발췌한 문장들을 혹시 나나 내 조직도 문제 있진 않은가 살펴볼 기회로 삼는 것은 좋지만, 일본이 어떻다는 식으로 일반화해버리는 건 경계해야 할 것이다.
구성은 문고판으로서 충실하다. 한편 제목은 어디서 왔는고 하니 162쪽 "과거 일본 황실의 의전에, 천황을 알현할 때는 <두려움과 떨림>의 심정을 느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고 나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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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 노통브의 글들은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날카로운 구석이 있고 애매하고 에둘러 표현하지 않는 명쾌함이 있다. '가차없는 즐거움을 선사하는 소설'이라는 한 언론지의 평가가 그녀에게 딱 어울리는 표현이라고나 할까. 실제 그녀를 본 적은 없지만 그녀의 글들을 통해 그녀를 상상해본다면 작은 체구에 도발적인 인상을 가진 외모일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의 주된 줄거리는 이렇다. 일본의 내노라하는 대기업에 취직한 일본에서 태어난 벨기에인 아멜리. 그녀는 처음에는 자신이 일본어와 외국어에 능통하다는 사실 때문에 취업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보수적인 일본기업에서는 인간으로서의 그녀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고 단지 여자라는 사실로 조직의 희생양이 되고 만다. 자부심 가득했던 첫날의 출근길과는 달리 결국 그녀는 화장실 청소라는 극단의 자리로 내몰리고 만다. 어찌보면 너무나 극단적으로 치우친 면이 있기는 하지만 일본이라는 사회가 워낙 일반화하기 쉬운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 곳인지라, 이 책을 읽다보면 일본이라는 나라의 보수적인 면은 우리나라보다 더하구나 라는 생각을 나도 모르게 하게 된다. 그러니 이 책을 읽은 프랑스인들은 오죽할까 싶다. (그녀는 현재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다)
특히 아멜리가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상하관계, 주종관계가 확실한 기업문화였다. 설사 100퍼센트 잘못된 말을 늘어놓는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나의 상사라면 절대로 '토'를 달지 않는 것이 그들의 기업문화인 것이다. 그 부분의 임팩트는 너무나 강해서 책의 맨 첫머리에 작가는 이렇게 적어놓고 있다.
"미스터 하네다는 미스터 오모치의 상사였고, 미스터 오모치는 미스터 사이토의, 미스터 사이토는 미스 모리의, 미스 모리는 나의 상사였다. 그런데 나는, 나는 누구의 상사도 아니었다....(중략)...그러니까 유미모토사에서, 나는 모든 사람들의 지시 아래 있었다."
그녀의 신랄함이 때로는 그녀의 통찰력이 과장되게 발휘되는 바람에 어처구니 없는 헛웃음이 나오기도 하지만 작품은 어디까지나 소설 아닌가. 소설에서는 그 무엇이든 독자에게 매력적인 작품이라면 용서되는 것이 많은 법이다. 더군다나 일본에서 태어나 자랐던 그녀인만큼 아주 엉뚱한 방향으로의 발상은 아니라고 본다. 이렇게 경직된 기업문화 속에서 과연 우리의 아멜리가 살아남는 법은 무엇이었을까. 그녀의 무사태평적인 유머를 듣고 있노라면 그녀의 태평함의 비법을 전수받고 싶어질만큼 부러워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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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일본 황실의 의전에, 천황을 알현할 때는 <두려움과 떨림>의 심정을 느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나는 사무라이 영화의 인물들이 보여 주는 모습에, 사무라이들의 초인적인 숭배의 감정으로 목소리가 녹아들면서 자신의 두목을 배알하는 모습에 그렇게 딱 부합하는 이 표현을 늘 끔찍이도 좋아했다. 그래서 나는 두려움의 가면을 쓰고 떨기 시작했다. p135
작가 아멜리 노통브가 어떤 감정을 품고 이 소설의 제목을 '두려움과 떨림'이라고 정하였는지를 보여주는 문장이 바로 위에 있다. 자존심을 짓밟고도 모자라 한없이 바닥으로 내치고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코너로만 몰아대는 상사에게 아멜리는 더욱 깊이 고개를 숙이고 상대방에게 극한의 우쭐함을 느끼도록 만든다. 이것이 바로 아멜리가 선택한 복수이다. 나라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나라면 어땠을까. 아멜리의 상황에 내가 처한다면 아마도 나는 내가 당한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복수하려고 했으리라. 아주 지독하게 말이다.
아멜리 노통브는 벨기에 출신이지만 외교관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일본, 중국 등 여러 나라에서 유년기를 보냈다고 한다. 동양의 여러 나라에서 유년기를 보낸 아멜리에게 일본은 동경의 대상이었지만 그 동경은 조직의 복종관계와 비효율성 앞에서 무참히 깨지고 만다. 이 소설 <두려움과 떨림>은 일본의 대기업에 취직한 견습사원이 겪었던 일을 통해 일본 사회의 경직성과 비효율성을 보여주는 자전적 소설인 것이다.
출근하는 첫 날부터 아멜리는 회사에서의 자신의 위치와 필요성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잘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었고 매번 실수만 연발하게 된다. 일본회사 생활이 순탄치 않았지만 후부키가 곁에 있었기에 아멜리는 견딜 수 있었다. 후부키, 미스 모리는 아멜리의 직속상관으로 그녀의 말을 들어주는 유일한 사람이다.
차 심부름, 복사하기 등 능력과는 상관없는 일만 하던 그녀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드디어 그녀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을 맡을 기회가 온 것이었다. 하지만 그 일은 그녀의 상사들은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조심히 진행할 계획이었는데 후부키, 아멜리가 그토록 믿고 의지하던 후부키에 의해 들통이 나서 그녀의 상황은 지금보다 더욱 나빠지고 급기야는 화장실을 관리하는 직무를 맡기에 이른다.
오랜 시간을 참고 견뎌 지금의 자리에 오른 후부키는 상하관계를 무시한 아멜리의 행동을 결코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사정과 형편에 따라 그리고 능력에 따라 바뀌고 달라질 수 있는 여지를 결코 인정하지 않는 일본 사회의 경직성에 아멜리는 질리고 만다. 그러나 그녀는 계약만료일까지 그녀를 무시하고 질타하는 후부키의 시선을 받아낸다.
<두려움과 떨림>에서 아멜리 노통브는 너무하다 싶을 만큼 날카롭고 예리하게 한 사람을 무너뜨린다. 그러나 그녀의 문체는 비굴하거나 초라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도도해 보인다고 할까. 이것이 바로 작가의 힘이라고 느껴진다.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은 <두려움과 떨림>이 처음이다. 좋은 작품과 좋은 작가를 만나 기분이 좋다. 그녀의 다른 작품들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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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페이지를 훌쩍 넘곤 하는 무수한 책들에 비해 굉장히 가볍다. 150페이지는 휘릭휘릭 잘도 넘어간다. 두세시간정도면 독파할 수 있는 책이다. 그리고 두세시간정도는 다른 일을 접어버릴 수 밖에 없다. 시작하면 끝까지 읽어낼 수 밖에 없는 이야기이므로.
아멜리노통은 ’프랑스 문단의 충격’이라 하여 한국에서도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그녀의 이름을 처음 들어본 건 대학교시절이었는데, 책이 퍽 가볍고 부담이 없어보여 등하교시간에 읽기 좋았다.
국제도서전이 열리던 어느 금요일 오후, 열린책들에서 그녀의 책들을 할인하는 것을 보고 뒤적거렸던 것이 그녀와의 진정한 첫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두려움과 떨림>이라는 제목이 눈에 띄었다. 다른 책들보다 마음을 잡아끌었다.
어느 정도가 사실이고 허구인지 구분은 안가지만, 상당히 자전적인 요소가 강하다. 일본의 대기업에 통역사로 취직한 아멜리상은 일본의 경직된 조직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상사와의 대립 끝에 화장실 청소부로 전락하게 된다. 이상이 이 짧은 이야기의 줄거리이다. 그러나 줄거리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이 부족함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작가의 재치와 유머? 혹은 자신을 괴롭히는 것들을 너그럽게 보아넘기는 이면에 엿보이는 시니컬함? 같은 상황에 처했을 수많은 사람들이 취하는 태도-사퇴 혹은 굴욕감을 느끼며 연명하는 것- 대신 아멜리상은 그 상황을 즐기는 방식을 택한다. 그 상황에 자신을 밀어넣기보다 멀찍이 물러서서 관조하며 남의 일처럼 여유롭고 무심하게 상황을 묘사해나간다.
그 무심함이 재미있다. 자신이 주인공이고 행동의 주체임에도 불구하고, 개입자로서의 적극성이나 진정한 내면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않고 있다. 대신 상황을 조롱하고 자신을 조롱하며, 상대를 조롱함으로써 상황을 진지한 현실에서 엉뚱한 상상적 허구로 전환시킨다.
그 허구적 현실 속에서 아멜리는 상황적 약자이지만, 실제로는 최고강자로 군림한다. 남이 굴욕을 주려고 해도 굴욕감을 느끼지 않고 스스로의 세계가 정립되어 있는 인간은 결코 약자일 수 없다. 조직을 좋아하지 않으면서 굴종하고 있는 사람들이야말로 실은 약자인 것이다. 따라서 그들이 아멜리를 강등시키고 무시한다고 할지라도, 그들로부터 자유로운 아멜리는 여전한 강자이다.
그녀와 그녀의 상사 후부키는 정반대의 성격이다. 아멜리는 자유롭고 직선적이며 단순한 반면, 후부키는 아름답고 청초하나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남을 아무렇지 않게 뭉갤 수 있는 인물이다. 후부키에게 화장실 청소를 지시받은 아멜리는 그녀를 미워하기는 커녕 여전히 그녀의 아름다움을 찬미한다. 그리고 속으로는 비웃는다. 일부러 못난 척 연기를 하며 그녀와 자신을 모두 만족시키는 희극을 연출한다. 이 희극의 양상이 참 재미있는게, 후부키는 얌전을 떨지만 실은 아멜리가 자신을 꿰뚫어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아멜리의 장단에 맞추어, 혹은 한술 더 떠 희극적 상황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둘이 주고받는 대화는 겉과 이면이 다르다는 점에서 흥미진진하고, 특히 마지막 장면 아멜리상을 인정한 후부키의 편지는 소설의 마무리로써 훌륭했다. 그녀를 무시했던 사람들은 사실상 그녀가 일부러 그렇게 연극을 했기 때문이며, 그 연극에 썩 잘 동참해준 셈이다.
<두려움과 떨림>이라는 제목에 대해서는 거의 마무리 무렵에 그 유래가 나온다.
과거 일본 황실의 의전에, 쳔황을 알현할 때는 <두려움과 떨림>의 심정을 느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나는 사무라이 영화의 인물들이 보여 주는 모습에, 사무라이들의 초인적인 숭배의 감정으로 목소리가 녹아들면서 자신의 두목을 배알하는 모습에 그렇게 딱 부합하는 이 표현을 늘 끔찍이도 좋아했다 - p.135
이 제목은 일본의 특정시대에 통용되던 어떤 구절을 차용한 것이지만, 실제로 현재까지 이어내려오고 있는 정신과 같은 것이며, 우리 나라 또한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당연히 일본사회에 국한된 비난이라고 속좁게 풀이할 수는 없을 터.
내 눈에는 매일 10시간씩 숫자를 베껴 쓰는 데??진 신의 제단에 바쳐지는 제물로 비쳤다. 오랜 옛날부터, 서민들은 자신들이 이해하지도 못하는 현실에 삶을 바쳐 왔다. 적어도, 과거에는 이렇게 무의하게 삶을 바치면서 어떤 절대적인 대의가 있다고 상정이라도 해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제 더 이상 환상을 가질 수 없었다. 그들은 아무 명분도 없이 자신들의 존재를 던지고 있었다... 그런데 회사 밖에서, 숫자로 뇌가 세척된 경리들을 기다리는 것은 무엇인가? 그들만큼이나 두개골에 구멍이 생긴 동료들과 의무적으로 맥주를 마시고 터질 듯한 지하철을 몇 시간이나 타는 것. 이미 잠든 아내, 벌써 무감각해진 아이들, 물 빠지는 세면대처럼 당신을 빨아들이는 잠, 아무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모르는 드문 휴가. 삶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것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런데 제일 끔찍한 것은, 이 사람들이 지구상에서 특권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데 있다. -p.128~129
그녀는 ’두려움의 가면’을 쓰고 연기를 하며 그 연기는 회사의 높으신 분들을 만족시키며 성공적인 퇴직을 하게 된다.
이 이야기는 세 가지의 단어로 표현할 수 있겠다. 직설적, 노골적, 도발적.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유머라는 이름으로 흡입력있게 녹여낸 작가의 솜씨는 참신하면서도 노련하다. 무엇보다 작가의 구어체적인 신랄한 말투와 상황의 아이러니가 내내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서양작가의 동양적인 세계에 대한 비판이라는 논란의 소지가 될 만한 주제를 이렇게 재미있게 쓰면서 비판의 요점을 쾅 하고 두드려대는 솜씨는 놀랍다. 짧은 만큼 한 페이지도 지루하거나 무의미하지 않다. 그녀의 촌철살인의 재치는 빵빵 쉴새없이 터지며 무엇보다 복종적이며 비효율적인 조직의 일면을 경험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 100%! 그녀의 세밀한 관찰력으로 들여다보는 일본사회는 여전히 한국사회와 일맥상통하고, 그런 면들이 전혀 새로운 가치관을 가진, 서양 세계에서 뚝 떨어진 이방인의 눈으로 그려져 더 생생하게 와 닿는다.
우리들은 모두 <두려움과 떨림>을 가지고 있다. 권위 앞에서 두.떨. 로 배알하는 것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를 막론할 것이고, 따라서 이를 비판하기 위해 사람들은 희극을 택했다. 권력층을 희화하함으로써 비권력층은 즐거움을 느꼈고, 권력층은 이것이 하층민들의 유희로 폄하하여 무시했다. 이 견고한 신분의 차이는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그것을 전복시킬 수 있는 힘이 바로 희극에 있다는 것, 인생이든 사람이든 연극이든 수다든 뭐든지간에. 모든 맥락에 희극이 있고, 희극화함으로써 우리는 상황을 좀 더 여유롭게 볼 수 있게 된다. 마치 아멜리처럼.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아주 효과적인 자기처세술이 될 수도 있겠다.
매혹적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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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들어 왔지만 조금 무섭게 느껴져서 미뤄두었던 작가, 아멜리 노통브.
그녀의 책을 처음으로 펼치게 된 것은 추석 연휴가 이어지던 어느 무료한 날의 저녁이었다. 침대서 뒹굴다 책장에 있는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책의 이름은 <두려움과 떨림>. 한때 구독하던 옛 북 블로거들의 포스팅에서 자주 봤던 제목, 그 익숙함에 한번은 그래도 읽어봐야 겠다며 업어온 책이었다.
그렇게 펼친 책이었는데, 이후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배를 쥐고 깔깔대는 것을 멈출 수 없던 순간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정말이지 오래전 장 폴 뒤부아의 <타네씨, 농담하지 마세요>를 읽은 이후로 처음 있는 경험이었다!
<두려움과 떨림>은 아멜리 노통브가 1990년 일본에서 직장 생활을 했던 일 년간을 그린 자전적 소설이다. 거두절미하고 아멜리 상이 대기업 유미모토사에 입사하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는 직장 생활에 대한 회상이라기보다 거의 신세계 체험기에 가깝다. 그도 그럴것이 그녀는 그 회사에 취직한 유일한 벨기에인 여자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입사 첫날부터 영문 모를 이유로 상사에게 깨진 이후, 일이 주어지지 않아 무료한 나날을 보내게 된다.
이후로 커피를 대접하는 일에서부터 우편물을 전달하는 일, 달력 날짜를 맞추는 일, 복사하는 일 등 시도하지만 회사에서는 그런 그녀를 오히려 거추장스럽게 여긴다. 그 와중 그녀는 자신을 유일하게 인간적으로 대해주는 것 같은 후부키라는 여성에게 끌린다. 하지만 다른 팀의 덴시 부장의 프로젝트에 도움을 준 일로 그것마저 틀어진다. 회사에서는 사업의 효율성 보다는 자리에 맞지 않는 업무를 한 그녀에게 경고를 내린다. 후부키는 그녀가 자신의 일을 가로챘다 생각하여 아멜리상을 괴롭히기 시작하는데, 그때부터 진정한 비극이 시작된다....
<두려움과 떨림>은 실제 자신이 태어났던 일본이라는 나라를 동경하여, 자신이 원하던 일본의 대기업에 취직한 한 벨기에인 여성인 아멜리 노통이 어떻게 최악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아멜리 상이 최후의 나날까지 지키던 그녀의 자리가 44층 남자 화장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찌나 명랑한지, 정말 상을 주고 싶을 정도였다! 자신을 그 지경까지 만들었으나 여전히 일본 여성으로서 제약받는 후부키 상의 처지를 생각하는 그 마음씨는 얼마나 고운지! "내가 또 무슨 짓을 했죠?"라고 밖에 물을 수 없는 그 상황은 얼마나 황당한지!
정말 비참하고 그지 없는, 결국엔 자신을 수녀원에 입회한 수녀로까지 여기는 불쌍한 아멜리 상이 괴로운 상황을 전하는 데도 배가 아플 정도로 웃을 수 밖에 없는 나는 대체 또 왜 그런 건지. 이 책의 재미에 대해서 백 프로 전달할 수는 없으므로 읽어보면 알 것이다. 비록 이것이 일본의 1990년대를 그린 것이지만 우리 사회의 조직의 쓴맛과도 결코 무관하지 않음을. 그것을 아멜리 노통브가 불쾌함을 넘어서지 않은 유쾌함 정도의 선으로 표현해 낸 것이 재밌다.
책의 제목은 사무라이 들이 천황을 알현할 때 '두려움과 떨림'을 가지고 알현해야 한다는 표현에서 나온 제목이라고 했다. 아멜리 상의 경우에는 계약직이 끝나고 사표를 제출하러 가야하는 상황에서 이 두려움과 떨림의 가면을 써야 했다. 마지막으로 의식을 치루듯 상사에게, 또 그의 상사에게, 그리고 그의 상사에게 나아간다... 정말이지 이 책은 마지막까지 기대와 재미가 쏠쏠하니 끝까지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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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 노통브의 작품은 『배고픔의 자서전』에서 처음 접하게 되었다.작가는 일본 고베에서 태어나 성장하면서 일본의 문화,일본인의 의식구조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바,이를 작품 속에 사실적,풍자적인 시선으로 묘사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는데,이번 작품에서도 일본 기업문화의 한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는거 같았다.
일본은 아직까지는 보수적인 수직문화가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기업의 CEO를 중심으로 상하관계가 엄격하기에 조직원의 생각과 감정보다는 기업이 추구하는 경영이념과 CEO의 스타일에 맞춰 가는 문화라고 생각된다.그러하기에 관료적이고 보수적이기에 혁신적이고 진보적인 면에서는 다소 뒤떨어지는 감이 없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글의 주인공 '나'는 작가 아멜리 노통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생생한 사내현장과 그곳에서 벌어지는 인간관계,직무 등이 현장감있게 다가온다.유미토모사 안에서 벌어지는 '나'는 일본인이 아닌 벨기에인으로 등장하고 그곳에서 하는 일은 핵심적인 일이 아닌 심부름,화장실의 화장지 끼워 넣기 등의 허드렛 일이 다반사이다.이러한 일거리,처우를 통해 때론 화가 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유미토모사의 환경에 어느 정도 적응해 나가는 과정을 그려 가고 있다.
하네다,오모치,사이토,모리(후부키),그리고 '나'가 하나의 라인을 이루고 있는데,나는 처음에는 커피 심부름 그리고 경리업무,화장실 화장지 끼워 넣기가 주 업무이다.나의 직속상사는 후부키이고 늘씬한 키에 거만기가 살아있는 여성이다.10주만에 평사원에서 한단계 승진한 당찬 여성이고 한 편으로는 뻣뻣하기까지 하기에 나는 후부키의 눈치 코치를 살펴야 하는 상황이다.
커피 심부름에서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출장경비 명세서'등의 일을 맡기는데 나는 숫자에 둔감하고 자꾸 틀리기 일쑤여서 상사들에게 미움과 호통을 받게 되는데,변명할 수 없을 정도로 분위기는 냉혹하기만 하다.1년간의 계약기간을 마치고 화장실 화장지 끼워 넣기로 배치되면서 말그대로 대기발령의 자리로 전락하고 마는 나는 일본문화에 어느 정도 적응하고 동화가 되었지만,생리적,문화적인 차원에서 오래 있을 곳이 못되었는지 유미토모사를 떠나게 된다.
일본에서는 천황을 알현할 때 약간의 <두려움과 떨림>을 느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고 한다.엄숙하면서도 경건한 자리이고 일본을 상징하는 자리인 만큼 개인이 천황을 알현한다는 것은 개인에게 영광일 수도 있지만 불편한 자리이기도 하다.일본의 조직도 현대화되면서 종신고용제도 없어지고 구조조정의 바람이 커지면서 개인의 생각과 주장이 어느 정도 살아나고 있는 마당에,이 작품은 아직도 군대식 조직문화에 젖어 있는 일부 기업들의 한 단면을 그대로 투시하고 반영하는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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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요네하라 마리의 <대단한 책>에 이 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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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그녀의 글쓰기는 스타일로 가득하다. 참으로 쉽게쓰고, 극도로 쉽게 읽힌다. 이미 죽을때까지 쓸 책들을 모두 써 놓았다고 하니, 그녀의 글쓰기가 얼마나 속전속결인지 알만하다. 미리 써 놓은 작품을 시간 흐름에 맞춰 한권씩 출간한다고 하는데,,, 그런 능력하나는 정말 부럽다. 물론 그것도 하나의 전제조건이 맞춰져야 가능한 얘기겠다. 작품의 완성도와 그에 따른 충분한 독자층 말이다.
'G마켓' 들어갔더니,, 5월특집세일로 50%이상 폭탄세일을 하고 있던 작품들 중에, 낯은 익지만 읽지 못했던 책들을 대거 구입했다. 베르나르베르베르의 작품들, 기욤의 작품 몇권, 레이먼드 카버의 작품까지,, 거기에 함께 장바구니에 딸려온 작품이 바로 '아멜리 노통브'의 '두려움과 떨림'이다.
사실 적을 두고 있는 직장의 성격이 외국인을 많이 접하는 일이라,, 팀원중에도 미국인 팀장 1명, 캐나다인 동료 1명, 외국인은 아니지만 외국에서 대부분의 생을 살아온 동료들까지, 그들의 사고 방식이 우리의 그것과는 상당히 다른다는 것을 새삼 뼈져리게 느끼고 있다. 특히나 책임의 범위를 규정하는 것에 대해서는.
(물론 외국인들을 편하게 느끼는 사람으로써, 절대 인종차별적 입장에서 언급하는 것이 아님을 먼저 얘기해둔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맡은바 일은 무슨일이 있어도 약속된 기일까지 마무리를 하는 것이 책임의 범위이고, 그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상당한 시간의 압박이 있다면 야근이라도 감수하는 것이 우리가 가진 사고방식이 아니지 않은가. 그것도 요즘와서는 조금씩 변화되어가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그 가치관의 틀은 변하지 않지 않은가. 우리 주변국인 일본이나 대만, 홍콩 등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쉽기도 하고. 하지만 이들 외국인들은 그 책임범위에 대해 매정할 정도로 확실한 선을 긋는 경우가 많다. 일은 일, 사는 사. 9 to 6의 업무일과가 나의 책임범위이며, 야근을 하면서까지 그 일을 마쳐야 하는 상황이라면 우리는 인력계획이 잘못된 것이거나, 일정 계획을 미루는 것이 현명하다는 식의 답변을 듣게된다. 듣고보면 논리는 만점짜리이다. 하지만 우리사회와 같이 한명에게 돌아가는 업무량이 많은 나라에서 이런 수시로 발생하는 야근이나, 주말 근무등은 어쩔수 없이 당사자가 짊어지고 가야 할 의무로 받아들였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런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 오히려 윗분(팀장도 아니고 대표이사)께 현 상황을 보고하고 직원 충원이 이루어지도록 해야한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큰 부딪침은 위계 질서다. 이 책에서 언급하는 일본사회의 권위적이고, 직장내의 남성위주의 서열 중심의 계급체계는 우리 한국사회도 비슷하지 않나 싶다. 기존회사에서는 전혀 느끼지 못했지만, 이번 회사에서 외국인 직원도 많고 여성 동료들도 많은 곳에서 일을 하다보니, 간혹 보고체계가 깨어지고 흐트러지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는 것을 경험한다. 사장님은 대리급, 사원급 사원을 직접불러 보고를 받기도 하고, 아래 직원들은 위의 팀장도 모르는 사이에 윗분들과 어떤 업무를 진행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체계가 와해되는 순간이다. 처음에는 매우 당황스러웠지만 이곳에서의 생활이 2년을 넘어가니 이곳 나름대로의 방식이 이해되기도 하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혼란스럽긴 하지만 회사는 굴러가고 있는것을 느끼고. 그것도 나쁘지 않게. 그야말로 새로운 문화에 적응한다는 것이 맞는 말이겠지.
'두려움과 떨림'을 쓴 작가 '아멜리 노통브'도 아마 비슷한(훨씬 더한) 문화충격을 느꼈던 것 같다. 벨기에 출신이지만 일본에 대한 애정으로 꼭 일본 기업에서 일해야 겠다는 생각에 직장생활을 시작한 그녀의 1년여간의 순탄치 않았던 생활을 그리고 있다. 상상하지 못했던 일본 기업이 가진 경직된 위계질서앞에서 경험한 충격과 벽, 그리고 꿈과 현실간의 간극을 염세적이며 위트를 담아 순식간에 후다닥~ 써 내려간 작품이다.
일본과 항상 좋은 감정 가질 일 없었던 우리로써는, 일본이 가진 부정적인 면이 통쾌하게 까발려지는 것을 보며, 그럼 그렇지! 하며 그녀와 동조하는 기분으로 즐겁게 읽어 내려가게 된다. 하지만 끝까지 읽고 나면, 결국 이 이야기는 일본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며, 그 모든 경직된 사회의 비효율성과 비 합리적인 모순을 꼬집고 있음을 알게된다. 거기에 나 스스로도 뜨끔하게 된다. 우리가 그들에게서 느끼는 무책임과 무계획, 무체계 앞에, 그들은 우리에게서 융통성없고 경직된 비효율적인 워커홀릭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을.
점차 국제화되는 사회에서 더이상의 이런 문화적 충격은 극심하지는 않지만,,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와 적응이 그 마찰을 극소화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다시 생각해 본다.
*** PS. 천안함 사태가 점차 심상치않은 분위기로 치닫고 있다. 북한이 진정 그랬을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전쟁만이 능사일까? 전쟁은 결국 그 당사자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고 말 뿐이다. 좋아할 이들은 주변의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들일테고, 그외의 국가는 먼곳에서 발생한 하나의 사건에 불과할 것이다. 이제 전쟁이 난다면,,, 소소한 총싸움 정도도 아닐 것이요. 전쟁선포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시나리오이며,, 지금이야 말로 '서희'의 외교담판 같은 설득의 기치가 필요할 때가 아닌가 한다. 이명박식 '대규모 철거'와 '대규모 재건공사'로 보면, 전쟁후가 걱정되랴? 뭐, 까짓것 붕괴된 것 다시 지으면 되지...라고 생각하겠지. 죽어가는 것은 결국 시민들일테지. 전쟁은 아니다. 이제 우리 '말로 하자'
<Martini M, 2010.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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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본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친구가 몇몇 있다. 그 친구들이 모두 하나같이 하는 이야기는 이렇다. "일본사람들과 직장 생활을 함께 하는 것은 참 편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정이 떨어진다."라고. 이건 몇몇의 약간은 과장이 포함된 표현이 당연하겠지만 그 말을 하기까지 이면에 깔려 있는 시간과 경험에는 <두려움과 떨림>에서 아멜리 노통이 과장하여 풍자하고 있는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만약 두 쪽 다 과장을 별로 한 것이 아니라면? 그건 생각하기 좀 무섭다.
2. 아멜리 노통의 소설은 <살인자의 건강법>과 <이토록 아름다운 세 살>에 이어 세 번째로 <두려움과 떨림>을 접했다. 사실 세 번의 소설을 읽으면서도 '노통을 하나의 현상이라 칭하기 까지 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그리 공감이 가지 않고 그저 궁금할 따름이다. '별볼일이 없다'라기 보다는 '특별함의 이유를 공감할 수 없기 때문'이랄까. 그건 노통의 특별함이 존재하는 여러 이유 중에서 그녀가 사용하는 어휘와 표현이 큰 부분을 차지하는데 나는 늘 번역서로 그녀의 글을 읽기 때문에 전혀 공감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그녀의 글에 익숙해 지기 위해 그녀의 다른 소설을 좀 더 많이 읽어보기로 결심했다.
3. 문고판의 등장은 정말이지 반가운 일이다. 가방에 늘 한두권의 책과 함께 각종 잡다한 물건을 넣어다니는 나같은 사람에게 작고 가볍고 게다가 싸기까지(!)한 문고판은 고맙다 못해 대견하다. 아쉬운건 현재까지는 너무 한정된 책들만이 문고판으로 나왔다는 것. 앞으로 적극적으로 장려되었으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