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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잔잔한 물결의 책을 읽었다. 조이수녀님과 톰 목사님의 여정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숱한 어려움과 인내와 위기의 순간들이 존재했다. 하지만 그 분들을 통해서 전달되어지는 여행의 느낌은 내겐 성난 파도 이후 진정된 평안의 바다와도 같았다. 37일간의 800Km가 넘는 여정이 단순한 순례의 길로만 느껴지지 않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인 것 같다. 이 여행길(순례의 길)은 인생의 축소판과도 같다는 생각을 했다.
- 하룻밤은 대피소에 강풍을 동반한 폭우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이튿날 아침에 길을 나서면서 나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진창길을 걸을 생각에 아찔했다. 그러나 일단 길에 들어서자 진창에서 상큼한 공기와 반짝이는 빗방울로 초점을 얼른 바꾸었다. 그날은 우리에게 가장 멋진 날들 중에 하루가 되었다 -p147-
이 단락처럼 우리 인생 속에는 진창길과도 같은 시기가 분명히 존재한다. 나 역시도... 그러나 그 진창길을 밟는다해도 보이는 현상 만을 볼 것이 아니라 눈을 돌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을 보거나 우리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대상(내겐 하나님)을 바라보자. 그렇게 한다면 이분들처럼 내게 있게될 그런 날이 내 인생에서도 가장 멋진 날 중의 하루가 될 수 있다.
숲을 만들기 위해 어떤 나무를 심을까 고민고민하다 최선이라고 생각한 나무를 심고 가꾸었다. 어느날 멀리서 숲을 바라봤을때 내가 바랬던 그리고 꿈꿨던 그 숲이 아님을 깨닫고 가슴이 답답해지며 다리에 힘이 빠지는 그런 순간, 경험이 내게도 있었다. 그러나 그 때 난 다시 일어나 나무를 심었다. 나무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숲을 보면서...
Walk in a Relaxed Manner. 나의 인생은 끝이 기억될 것이다. 그 끝을 위해 과정을 만들고 길을 닦으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헤아려 그것으로 과정과 길을 만들어 가자. 내 인생의 끝은 어느덧 아름다울 것이고 하나님께서 더 큰것으로 채워주시고 만들어주시며 함께 심히 크게 기뻐하실 것이다. 내 인생은 하나님의 것이기에...
믿음으로 나가며 느긋하게 걷자. Trusting God with all my Hear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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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란치스코 수도회 세르비트 공동체 소속의 수녀님이신 저자가 오랜 친구인 개신교 목사님과 함께 산티아고의 길을 걸으시면서 쓰신 책이다..
순간의 묵상이.. 맘에 와닿는.. 보석같은 책이다..
지금도 힘들 때마다.. 이 책을 읽는다.
나도 모르게 이 책에서 위안을 얻는다..
내 마음이 한참 혼란스러웠을 때 위로가 된 문장...
"내가 뭔가를 아무리 꽉 쥐어도 내가 그것을 그대로 지키거나 영원히 지속시킬 수 없음을 나는 다시금 배웠다. 악착같이 움켜쥔다고 해서 내 소원과 욕망에 맞게 상황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내려놓음에 대한 이 중대한 교훈은 카미노에서 나에게 더욱 확실해졌다. 무엇이든지 귀한 것일수록 움켜쥐지 말고 그것을 든 손을 감사함으로 펴라. 그럴 때 삶은 훨씬 순탄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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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 미국 수녀님의 산티아고 순례기이다. 저자가 수녀님이어서 뭔가 대단한 영적 체험담을 기대했다면, 아마 실망하게 되리라. 그러나 이 책의 장점은 다른 데에 있다.
조이스 럽은 삼십여일간 까미노를 걸으면서 자신이 겪고 느낀 바를 그야말로 솔직하게 풀어놓고 있다. 대피소에서 느낀 실망감과 지저분한 화장실이 주는 고통에 이르기까지 그 구체적이고 소소한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면, 정말 내가 그녀와 함께 그 길을 걷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다.
까미노에 대한 조금의 미화도 없이, 그러나 그 길에서 저자가 만난 아름다움이 생생하게 드러나 있어서 좋았다. 오히려 그녀의 순례는 그녀가 순례에 대해 가졌던 환상이 깨어지면서 실제하는, 녹록찮은 삶의 장면과 하나하나 맞닥뜨리는 과정이었다. 그녀에게 산티아고 순례는 내면으로 향한 여행이 아니라 (수녀이니 이미 충분히 내향적이었다고 본인이 말하고 있다.) 자신의 바깥으로, 넓은 세상으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는 여행이었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자신이 그동안 계발하지 못한 쪽으로 영혼이 쏠린다고 한다. 내향적인 사람은 외향성에, 외향적인 사람은 내향성에 이끌린다는 것이다. 60세를 맞이한 저자의 까미노 순례는 자신의 표현대로 '인류의 웅성거림' 속으로 들어간, 평소에 수용할 수 없었던 것들을 포용하도록 마음을 열어준 '비범한 경험'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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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노(The Camino). 일명‘카미노 데 산티아고'라고 불리는 길은 9세기 이후 수많은 순례자들을 배출한 유서 깊은 곳이다. 순례자들은 보통 프랑스 생장피드포르에서 시작하여 스페인 북부 산티아고(성바오로) 성당까지 장장 8백여 킬로미터에 걸친 긴 순례를 하게 되는데, 우리에겐『연금술사』파울로 코엘료 덕택에 더 친근해졌다. 그리고 이렇게 종교적 동기에서 시작된 이 길이 최근 '인생의 의미'를 묻는 이들의 새로운 명소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 일은 아주 은밀하게 진행되었다. 예순 생일을 며칠 앞둔 어느 날. 노수녀 조이스 럽은 20년지기 은퇴목사인 톰에게 우연히 카미노에로의 순례를 제안한다. 꼭 가고자 한 것도,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도 아니었다. 바로 전날까지만 해도 그녀는 어느 한적한 바닷가에서 한꾸러미의 책과 함께 보낼 생각이었다. 한적한 바닷가는 은둔과 저술, 그리고 강연으로 일관했던 그녀의 삶에 걸맞는 선물이었다. 하지만, 인생의 중요한 결정들이 그렇듯, 카미노의 씨앗은 저홀로 개화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저 작은 갈망에 지나지 않았던 카미노 순례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순례길은 그것 자체로 인생의 축소판이다. 아침마다 새로 꾸려야 하는 배낭도 그렇거니와, 매일매일이 자신과 싸움의 연속이다. 어리석은 자아, 일상의 구차함과 먼저 화해해야 한다. 숱한 사람을 만나지만 결국은 철저히 혼자다. 우리 몸이 얼마나 개인주의와 편의에 길들여져 있었는지 깨닫게 되는 곳도 바로 이곳이다. 끊임없이 걷는 여정이다 보니, 비단 내면의 변화 뿐 아니라 ‘몸’의 반응을 기술하는 저자의 통찰은 거의 ‘꽃 한송이에서 우주를 보는’ 경지다. 맨몸의 순례길은 어쩜 그렇게 복잡다난한 우리의 일상과 닮아있는지- 가령, 연신 어깨를 내리누르는 무거운 배낭 때문에 계속 심기가 뒤틀린 저자가 배낭에 ‘소피시타(작은 지혜)’라는 예쁜 이름을 지어주면서 비로소 반복되는 ‘짜증’과 화해하게 되었다거나, 정확하게 봤다고 생각한 이정표가 전혀 엉뚱한 길을 안내하자 계속 그 오류의 원인에 집착하는 자신을 발견한다거나 하는 길위의 에피소드는 그대로 우리네 일상과 맞닿아 있다. 저자는 시종일관 일상의 소소한 것들을 우주적 사유의 경지로 끌어올리면서 이렇게 우리에게 속삭인다. “내려놓으라”고, 아집도, 경험도, 그리고 내가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을 거라는 태도‘도 버리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