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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 연구의 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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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아, 권정생!   나는 이 3개월 동안을 일생에서 가장 보람 있었던 인생체험으로 소중히 마음속에 남을 것으로 믿고 있다. 예수님의 40일간 금식 기도만큼 나에게 산 교훈을 일깨워준 기간이기도 했다. 들판에 앉아서 읽었던 성경은 생생하게 몸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머리로 읽는 성경은 자칫하면 환상에 그치고 말지만 실제로 체험하면서 읽으면 성경의 주인공과 대화하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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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아, 권정생!

 

나는 이 3개월 동안을 일생에서 가장 보람 있었던 인생체험으로 소중히 마음속에 남을 것으로 믿고 있다. 예수님의 40일간 금식 기도만큼 나에게 산 교훈을 일깨워준 기간이기도 했다.

들판에 앉아서 읽었던 성경은 생생하게 몸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머리로 읽는 성경은 자칫하면 환상에 그치고 말지만 실제로 체험하면서 읽으면 성경의 주인공과 대화하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나는 몇 번이나 죽음과의 싸움에서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아를 만났고, 아모스를, 엘리야를, 애굽에 팔려간 요셉을, 그리고 세레 요한을, 사도 바울을 만나볼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가깝게 나의 주 예수님을 사귈 수 있었던 기간이기도 했다.

- 권정생, 「오물덩이처럼 뒹굴면서」, 40쪽 

 

방문을 열면 바로 마당이 보인다. 그 문을 열어놓고 둘이서 라면을 끓여 먹었다. 그런데 마당에서 놀고 있던 못생긴 암탉 한 마리가 슬슬 다가오더니 성큼 방 안으로 들어섰다. 무심코 한 손을 뻗어 밖으로 내몰았지만, 암탉은 시큰둥하니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본격적으로 닭을 내쫓기 위하여 자세를 고쳤다. 그때였다. 그는 두 팔로, 마치 유리그릇을 다루듯이 조심스럽게 그 못생긴 암탉을 감싸안더니 앉은걸음으로 주춤거리고 걸어가 문 밖에다 살그머니 내려놓았다.

“전도사님네 닭이야. 세 마리가 있었는데 다 죽고 이놈 혼자 남았어.”

그는 이런 식으로 곧잘 나의 뒤통수를 쳤다.

- 이현주, 「동화작가 권정생과 강아지똥」, 81쪽

 

권정생 선생님의 자전적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큰 감동이다. 선생님 삶과 사상을 직접 만나 수 있거니와 굴곡진 삶이 올곧은 사상으로 단단히 다져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선생님의 대표작에 나오는 강아지똥처럼 눈물겹고 아름답다. 특히 선생님이 겪은 3개월의 거지 생활.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와 남동생과 셋이서 남았을 때. 이대로 나가다가는 집안이 망해버릴 것 같아 동생이라도 우선 결혼시키려고 집을 나가야 할 상황. 선생님은 기꺼이 집을 떠나 거지 생활을 하며 성서에서 말하는 ‘지극히 작은 자’들을 만난다. 열흘 동안 아침마다 찾아갔지만 한 번도 얼굴을 찌푸리지 않고, 깡통에 밥을 꾹꾹 담아준 점촌 조그만 식당집 아주머니, 가로수 나무 밑에 쓰러져 있을 때 두레박에다 물을 길어 헐레벌떡 달려와 먹여주시던 할머니, 뱃삯이 없다니까 그냥 강을 건네주시던 뱃사공 할아버지. 선생님은 거지 생활을 통해 진정 하느님이 기거하는 지극히 작은 자를 겪은 것이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하느님이 있다는 것을 체험한 이에게 모든 생명은 서로 연관되어 있다. 이것은 서로 의지하고 상생하는 생태계의 모습을 의미하는 것인 동시에, 삶의 공동체라는 것이 상호부조를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는 점을 드러내준다. 그리하여 평범한 눈으로 볼 때는 못생긴 암탉일지 모르지만 깨달은 눈으로 볼 때는 형제를 다 잃고 혼자 살아남은 존재로 암탉이 보이는 것이다. 비단 암탉뿐일까. 산과 바다에 어우러져 사는 수많은 동물과 식물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수세식 변소도 없고, 일류 패션 디자이너도 없고, 화장품이 없는데도 그토록 깨끗하고 아름답다. 공기 한 줌도 더럽히지 않는다. 그저 살아갈 만큼 먹으면 되고 조그만 둥지만 있으면 편히 잔다. 절대로 쩨쩨하게 수십 채의 집을 가지거나 수천만원짜리 보석이 있는 것도 아니다. 부처님께 찾아가 빌지 않아도, 예배당에 가서 헌금을 바치고 설교를 듣지 않아도 절대 죄짓지 않고 풍요롭게 산다.

 

 

# 권정생 연구의 발판

 

많은 사람들이 권정생의 삶과 문학을 이야기한다. 그와 동시대에 살고 있음을 축복으로 느끼며 자신의 삶을 겸허하게 돌아보는 글이 있는가 하면, 작가의 무게에 짓눌려 신음하듯 고통스러운 마음을 드러낸 글도 적지 않다. 모두 일리가 있다. 읽는 이의 마음을 정화하고 은혜를 주는 힘이야말로 권정생 문학을 계속 살아남게 하는 바탕이 아닐 텐가.

그러나 권정생의 이름을 면죄부인 양 가져다 쓰는 일은 마땅히 경계해야 한다. 그가 찾아오는 손님을 만나지 않았던 이유, 사람들이 그의 집 방문을 스스로 삼가곤 했던 저간의 사정을 곰곰이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일종의 ‘사적(私的) 영토화’는 그의 뜻과 다르다. 그는 독실한 종교인이었지만, 동시에 철저한 우상 파괴자였다.

- 원종찬, 「엮은이의 말」, 1 - 2쪽

 

권정생에 이르러 우리 어린이문학은 어른문학에 대한 콤플렉스를 벗어날 수 있었다. 어른이문학도 역사성의 도입을 훌륭하게 성공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어린이문학에 있어서도 철저한 민중성을 획득했으며, 앞의 두 가지를 견지하면서도 줄거리 자체의 다양한 변화와 밀도 있는 긴장감으로 흥미를 잃지 않게 해주었다. 그리하여 우리 어린이문학은 권정생에 이르러 비로소 온전한 영역을 확보할 수 있었다. 게다가 권정생은 우리에게 삶과 문학 모두를 전적으로 믿고 존경할 만한 작가이다. 우리 어린이문학계에 얼마나 큰 행복인가. 그러나 이러한 권정생조차도 제대로 된 평전이나 본격 평론집이 없는 상태다. 따라서 이 책은 권정생 연구가 얼마나 필요한지 절실히 느끼게 하는 책으로의 가치가 있다. 연구의 작은 발판 역할을 하며.


YES마니아 : 골드 g*******g 2009.09.1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