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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의 수준은 어느 정도 그 사회의 문화 레벨을 지표식물처럼 대변하는 바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의 경우, 예전부터 풍자와 해학에 각별히 능한 정신을 지녔던 민족이고, 그게 속 없이 킬킬거리는 바보들의 넋두리 수준을 넘어, 계급, 계층 간의 첨예한, 혹은 첨예할 수 있었던, 갈등을 완화하는 순기능을 야무지게 수행하기도 했지 싶다(양반 지배계급의 허위 의식을 신랄히 조소했던 판소리나 기타 공연 퍼포먼스가, 대원군 이하응처럼 일단 status quo가 한번은 요동을 쳐야 제 활로가 모색되었던 레짐 얼터너티브의 입장이 아니라도, 즉 안동김문의 역대 세도 집정처럼 철두철미 기득권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서도, 이런 스무드한 문화적 포맷의 저항은 용인 내지 방조할 수 있는 아량이 있어야, 차라리 피지배계급의 최소자발적 복종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소위 레퓨테이션 이슈]).
이처럼, 재생 불능이라 할 만큼 시스템이 곪아 있던 상태에서도, 빈발하던 민란(요즘은 지양해야할 term이겠다)에 끝내 체제의 전면적, 총체적 붕괴로까지 치닫지 않은 것은, (예능의 번성이 약하게나마 실증의 기미를 보이듯) 집권층의 마인드에 차라리 자기 생존을 도모할 만큼 백신의 자가접종을 할 '용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민후의 전권 장악 후 도래한 민문 전제의 시절에 곧바로 동학운동이 체제를 엎을 정도의 위협 세력으로 성장한 것은, 불우한 환경의 극복-생존 과정에서 통제불능으로 자라난 탐욕과 잔재주로만 가득했던 집권자의 경륜 결핍에 기인한 바 크다. 민후는 그녀를 설명하는 어느 어카운트에도 유머라는 것과는 거리가 먼 캐릭터로 묘사되는데, 최소한의 유머 감각이 없는 자는 정치인으로서의 자격도 없고, 오히려 관록(일본식 용어라서 될 수 있으면 쓰지 말아야 함)과 유머감각이 비례 관계에 가깝다는 건 '라이트 아너러블' 윈스턴 처칠의 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후~ 자, 요렇게해서 화제를 영국까지 간신히 끌고 왔다. 원래는 해방 이후 1980년대초까지의, 슬랩스틱의 일반적 레벨에도 미치지 못하는 남한의 저질 코미디를 언급하며, 사회의 수준이 낮으면 과연 코미디도 바닥을 빡빡 기게 마련이라는 쪽으로 논지를 펴려 했었다)
영국인의 유머 감각이란 본래 유명하다. 히틀러도 그의 광기 어린 제국의회 연설에서 언급하였듯이, 영국인은 본래 '달변의 민족'이다. 업스타트 독일이 아무리 저만의 장점이 있고, (그 유명한) '후발자의 이익'으로 시행 착오의 오류 없이 영국을 모방, 추격하려 들어도, 오랜 기간 부를 누리며 인성이 멍들지 않은 삶이 풍기는 여유, 운치, 해학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었던 거고, 독일인의 심성에 근본적으로 이쪽이 결여되어 있었음은 그도 통감했던 것이다.
진정 영국이 세상에 자랑할 만한 것은 셰익스피어이며, '인도'가 아니다. 바로 카알라일을 비롯, 숱한 재사와 문학가들이 그들 종족의 (현 시점)우월성을 웅변하는 자산이며, 그 정신적 여유를 마지막 장식으로 빛내는 시그너처는 바로 코미디 장르의 미학적 완성, 혹은 모든 장르에의 마지막 방점으로 코믹 요소의 세공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이 (도미니언)캐나다 출신(ㅎㅎ) 마이크 마이어스라는, '천재'라는 수식어가 조금도 아깝지 않은 이 코미디 배우에 대해, 앞으로 긴 논의를 시작해 보고 싶다. 이 필름은 오스틴 파워즈 시리즈의 시작이며, 앞으로 전개될 화려한 재능의 향연의 서론이자 압축편으로 규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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