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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인들에게 불교가 어필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달라이 라마가 도올에게 던진 질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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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대여로는 적합하나 구매하기에는 분량의 아쉬움이 큰 여행집이다. 달라이라마와의 대담은 3권의 일부에 한정되어 아쉬움이 더 크다. 도올의 직설적인 질문에 진솔하게 화답하는 달라이라마의 자세에서 짙은 여운을 느꼈다. 윤회의 과학성을 무리하게 주장하는 점만은 공감이 가지 않았다. 모든 사태에는 정확한 인과관계가 성립하는 시공간적인 장이 있다고 말하는 측면에서는 거시적인 맥락에서 고전물리학과 상통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태가 실체적으로 파악될 수 없으며 관계론적 起滅에 불과하다는 측면에서는 현대물리학과 상통합니다. -- 668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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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달라이라마와 김용옥이라는 두 현인의 대화로 구성되어있는것 같으나 책의 내용을 자세히 보면 1,2,3권을 통해 도올 선생의 불교에 대한 깊은 고찰에서 나오는 지식과 인도 문명에 대한 기행문과 같은 성격이 짙고 또한 석가모니의 삶에 대한 인간적인 모습도 살펴볼 수 있다. 우선 책의 표지 디자인은 심플함 그 자체였다. 그리고 인도에서 도올 선생이 찍은 다양한 사진은 글의 이해를 위해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형식에 구애되지 않고 글을 써나간 도올의 필체는 이미 아는 사람들은 다 알 것이라 생각된다. 크게 1,2권과 3권의 내용이 구분이 되는데 앞의 두 권은 불교에 대한 지식을 폭넓히는데 크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이 된다. 그리고 3권의 내용은 달라이 라마와 도올의 대화 내용인데 상당히 깊은 철학적 내용을 담고 있어서 읽으면서도 고수들의 대화 내용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역시 달라이라마는 불교쪽에 정통한 사람이고 도올은 종교와 학문등에 박학 다식하므로 도올 선생이 자신의 지식을 달라이 라마를 비롯한 우리 읽고 있는 독자들에게 전달해주는 듯한 인상이 강하게 풍긴다. 중간 중간에 달라이라마와 도올이 마치 무협가들이 칼로 대결하듯 자신의 논리로 대결하는 듯한 부분은 상당히 드라마틱한 부분인데 이 역시 도올이 현명하게 이끌어나가고 있는 것 같다. 이 글을 읽고 나는 도올의 해박함에 대해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는데 나는 도올의 숭배하거나 광적인 추종자는 아니다 하지만 그 학문에 대한 끝없는 열의는 높이 사고 싶다. 단 그런 학문적 추구의 끝에 공허함만 남게 되는 것은 아닌 지 새삼 걱정이 되기도 한다. 마지막의 내용은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고 아무튼 종교와 철학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학구적인 갈증을 다소 해결해줄 수 있는 상당히 좋은 책이라고 권해주고 싶다. [인상깊은구절] 모든 부분이기에 따로 쓸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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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벹불교 5백여 년의 역사는 용수 중심의 중관학의 역사다. 티벹 최대의 사상가 쫑카파(1357-1419)는 티벹 4대종파의 하나인 겔룩파의 개종자로, 그가 개종한 겔룩파 계보에서 달라이라마제도가 확립되었다. '달라이'는 '큰바다'라는 뜻을 가진 몽고어이고, '라마'는 스승이라는 뜻을 지닌 인도어 '구루'에 해당하는 티벹어다. 그러나 달라이라마의 설명에 의하면, '달라이'는 제3대 달라이 라마의 이름인 소남 갸초의 '갸초'를 몽고말로 번역한 데서 생겨난 이름일 뿐이라고 한다. 갸초는 티벹어로 바다라는 뜻을 지닌 말이었다.
달라이 라마의 본명은 라모 톤둡이다. '소원을 성취시켜 주는 여신'이란 뜻이다. 그의 고향이름은 탁처인데 티벹의 동북부 변방의 암도 지역에 속한다. 그의 부모는 작은 땅을 임대하여 삶을 영위했던 자작농이었다. 그는 1935년 7월 6일에 태어났다. '텐진 갸초'라는 이름은 1940년 겨울 포탈라궁에서 티벹의 정신적 지도자로서 공식취임한 후에 견습승려로서 득도할 때 받은 이름이다. 그때 타푸라는 삭발의식을 거치게 되는데 당시의 섭정인 레팅 린포체가 베풀었다. 풀네임이 잠펠 가왕 롭상 예쉐 텐진 갸초였다.
도올은 영국학자 티모시 프레케와 피터 간디의 <예수의 신비>라는 책을 토대로 달라이라마에게 역사적 예수의 허구성과 초기기독교의 발전사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사실 내가 보기엔 '대화'가 아닌 일방적인 설교에 가까웠다. 먼저 예수의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신화적 구성에 기반하고 있다. 프레케와 간디는 '예수의 신화'는 지중해 연안 문명에 공통된 신화 이야기를 유대사회적으로 변용한 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나도 역사적 예수의 허구성에 공감하는 편이다. 초기기독교의 원래 모습은 영지주의 운동이고, 마가복음, 마태복음, 누가복음과 같은 공관복음서에서 제시한 예수의 일대기는 그런 영지주의 운동을 구체적인 사건으로 만들기 위한 후대의(그것도 사도바울의 편지 이후) 픽션적 구성이었다고 주장한다. 또한 사도바울의 편지 대부분이 사도바울의 이름을 빌어 날조된 것이라고 얘기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사도바울이야말로 영지주의자였다는 주장이다.
313년 밀란칙령으로 기독교 신앙을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325년 니케아(현 터키의 이즈니크) 종교회의를 주재하게 된다. 여기서 삼위일체설을 부정하는 알렉산드리아 주교 아리우스의 주장이 이단으로 규정되고 영지주의자들이 몰락한다. 기독교를 로마제국을 정당화하는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활용하려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음모가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달라이 라마는 신앙은 반드시 이성에 의하여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티뱉말에 이런 말이 있다. "이성에 바탕을 두지 않은 믿음을 가진 사람은 아무데로나 흘러갈 수 있는 개울물과 같다."
도올은 기독교가 본래 아시아대륙의 종교라고 주장한다. 소아시아, 페르시아, 인도로 걸치는 문명권에 깔려 있는 신비주의의 소산이라고 본다. 원시기독교의 그노스티시즘은 희랍의 올페이즘, 이집트의 헤르메티카,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와 미트라 신앙, 마니교, 그리고 이란과 인도에 공통된 신화적 세계관과 관련있다.
달라이 라마의 모택동과 주은래에 대한 솔직한 평가가 무엇보다 인상에 남는다.
"모택동이나 주은래나 우리 티벹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보다 나은 세계를 위하여 헌신하는 맑스주의자들이 아니었으며 철저한 국가주의자들이었을 뿐입니다. 그들은 공산주의를 가장한 쇼비니스트들이며, 탐욕스러운 제국주의자들이며, 편협한 광신자들이었습니다. 어떻게 서구열강의 제국주의의 마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렇게 고난의 장정의 투쟁을 거친 사람들이, 어떻게 자기들의 꿈이었고 이상이었던 공화국을 세우자마자 갑자기 서구열강의 제국주의보다 더 악랄한 제국주의자들로 표변할 수 있단 말입니까? 모택동은 사람이 좀 무뚝뚝하고 우직하지만 진실한 느낌을 줍니다. 그러나 주은래는 '츄우 앤 라이(Chew and Lie)'라는 별명대로, 항상 생글생글 웃고 친절하지만 차갑고 교활합니다. 그러나 어떻게 두 사람 사이에 우열을 논할 수 있겠습니까? 둘 다 인간세에 참혹한 결과를 초래한 탐욕의 화신들일 뿐이지요."(5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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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1,2권을 읽은 후, 한참이 지나서야 다시 마저 3권을 들어 빨려들어가듯 읽었다. 1.2권은 도올 자신이 인도를 기행하면서 겪은 에피소드,감상문, 그리고 자신의 불교에 대한 연구와 생각을 우리에게 전수한다. 인도에서 본인이 직접 찍은 사진과 곁들인 설명은 감칠맛이 느껴진다.
제목에서 이야기하듯 시리즈의 마지막 3권이 단연 압권이었다. 달라이라마와 도올이 2권 말미에서 만남이 이루어져 본격적인 대담이 3권에서 펼쳐진다.
처음 안 사실인데, 달라이 라마가 도올더러 어떤 호칭으로 불러야 할지를 묻는 대목이 나온다. 도올은 자신을 stone 이라고 불러달라고 한다. 즉 돌선생. 김용옥의 호가 도올인데 stone 이라는 의미였음을. 그 연유가 어릴 때 머리가 딱딱햇서 돌대가리로 불린데 있음을 알고 웃음이 나왔다.
대화의 첫부분과 중간부분까지는 거의 도올 자신의 불교에 대한 이해를 달라이 라마에게 이야기해 주면서 반응과 동의를 구하는 식의 대화가 이루어진다. 물론 도올의 이야기에서도 상당히 공감되는 논설이 많다. 그리고 도올과의 어울림 속에 한마디씩 던지는 달라이 라마의 짦은 대답에서 그의 인간됨과 불교에 대한 그의 생각들을 엿볼 수 있다. 불교는 서양적인 종교 패러다임으로 본다면 종교가 아니요, 오히려 철학,심리학,과학에 가깝다는 그의 명쾌한 이야기에는 울림이 있다.
대화 거의 후반부에서 달라이 라마의 연기에 대한 그의 설명은 참 감동적이었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스스로 존재할 수 없음으로 해서 공이요, 무아라는 사실. 모든 것은 서로 엮이고 의존하여 존재할 수 밖에 없음으로 자신만의 독단적이고 독립적인 실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
태고적부터 내려오는 인류와 조상들로 부터 받은 유전자와 집단무의식, 그리고 깊은 단계의 기운들. 온우주의 기운과 화합물들이 빚어낸 지구의 다양한 동,식물을 비롯한 이웃들의 뒷받침을 발판삼아 생존가능한 나의 환경 나와 직,간접적으로 에너지를 주고 받으며 교통하는 나의 이웃,동료들 이 모든 것이 나를 빚어내고 길러주고 있기 때문에 태어났고, 자랐고, 앞으로도 생존이 가능할 것이다. 결국에는 하나였음으로 죽음을 통해 체험을 하게 될까?
그리고 불교에서는 무아론을 주장하여서, 동일성을 유지하는 실체가 없다고 하면서 어찌 윤회가 가능한가?를 묻는 도올의 집요한 질문에 달라이 라마는 아주 명쾌하게 윤회를 설명을 해 준다. 달라이 라마는 윤회를 하나의 과학적 사실로 자신의 견해를 또렷히 밝히고 있는데.. 이에 대한 답변은 직접 책을 통해 확인하길 바란다.
종교나 문화에 상관없이 불교만큼 포용적으로 그 종교와 문화에 스며들 수 있는 틀도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책 소개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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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라이라마에 관한 책은 시중에 많이 나와 있으면, 몇 권 봤다. 거기서는 아무리 인간적인 달라이라마를 그리려고 해도, 그는 티벳의 왕 달라이라마였다. 뭔가 범접할 수 없는 그런 느낌,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아름다운 여왕이 있다고 하면, 그 아름다움은 여타의 다른 탈렌트와 다른 것... 그런데 이 책에서는 달라이라마가 도올과 대화를 나눔으로 해서, 좀 달라지신다. 마치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오드리 햅번처럼(햅번 팬들에게 죄송하다.) 좀 더 인간미가 느껴진다. 예전부터 도올의 그 과장된 몸돌림과 말투, 책에서 나타나는 자만감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이 번 책은 그나마 좀 덜 해로울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다. 다 달라이라마의 질문과 대답, 도올의 질문과 대답이 빚어낸 것이다. 도올도 초심자적인 질문을 할 때가 있고, 그에 대하여 소상하게 대답하는 달라이라마와, 도올에게서 무언 가를 알고 싶어하는 달라이 라마의 순수한 정신은 참 재미있었다. 이 책의 내용은 달라이라마의 불교에 관한 생각(의외로 배울 것이 있다- 불교의 전반적인 이해를 많이 도와주었다.)과 도올의 역시 그 알 수 없는 그 컴퓨터 정신 (불교미술에 대한 대단한 지식)을 통한 이해를 배울 수 있다. 이런 생각에서 그나마 좀 3권중에서 1권을 사려면 이 책을 사라고 권한다. 도올의 사진실력이나 혹은 불교미술에 관한 내용을 더 알고 싶다면, 다른 1.2권도 사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