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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과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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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인들에게 불교가 어필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달라이 라마가 도올에게 던진 질문이다. 유럽에서 기독교는 멸종 직전이다. 서구에서 기독교의 생명력은 그나마 미국에서 살아남았지만 “미국에서도 상류층이나 지식인이나 지도층보다는 흑인이나 소외된 보수세력의 지지기반 속에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과 같은 샤머니즘적 성향이 강렬한 제3세계나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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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인들에게 불교가 어필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달라이 라마가 도올에게 던진 질문이다.

유럽에서 기독교는 멸종 직전이다. 서구에서 기독교의 생명력은 그나마 미국에서 살아남았지만 “미국에서도 상류층이나 지식인이나 지도층보다는 흑인이나 소외된 보수세력의 지지기반 속에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과 같은 샤머니즘적 성향이 강렬한 제3세계나 기독교 전통을 새롭게 수용한 신생국가에서 오히려 그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에서 개화된 상류층의 트레이드 마크가 기독교일 수는 있어도 불교이기는 어렵다. 그런데 미국사회에서는 오히려 하층부의 사람들은 햄버거나 스테이크를 잔뜩 먹고 뚱뚱하며 기독교의 영성에 사로잡혀 있는 반면, 개명한 상층부의 사람들은 비만형의 인간들이 별로 없고 채식주의자들이 많으며 불교도라는 트레이드 마크를 달고 일본 스시집에를 잘 간다.”

뉴욕 센트럴 파크에 달라이 라마가 나타나면 잔디밭을 “메우는 업숙한 수만의 군중은 75%가 대학원 졸업생들이라고 한다. 현재 미국 불교도의 60%가 박사며 의사며 변호사며 회사고위간부 등이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달라이 라마는 묻는 것이다. 이에 대해 도올은 이렇게 말한다. “미국 사회의 인텔리겐챠들은 더 이상 기독교로부터 새로운 문명의 젖줄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다. 물질적 풍요 속에서 정신적 빈곤이 찾아오게 마련이고 여유로운 정상적 생활의 루틴을 가진 사람일수록 새로운 정신문화를 갈망한다.” 사람은 어쨌든 의미를 찾는 동물이고 그 의미를 영성이라 한다. 더 이상 기독교는 그 영성을 주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과학의 보편화이다.

현대인의 종교는 과학이라 말해진다. 그러나 과학은 삶의 의미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의미는 과학의 대상이 아니다.

맥락은 다르지만 이책 다른 부분에서 언급되는 중국의 상황이 과학으로 인한 의미의 공허와 유사한 예이다. 달라이 라마는 중국의 진정한 문제를 문화와 도덕이라 말한다. “그것은 중국문명의 총체적 위기상황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중국공산당은 맑스주의에 대한 완벽한 믿음의 기초 위에서 완벽하게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신념에 불타있었습니다. 더 이상 유교적, 불교적, 도교적 가치가 새로운 사회건설에 타당성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난 50여년동안 계급투쟁만을 가르쳤고 전통적 가치의 타도를 가르쳤습니다. 그들이 가르친 것은 ‘증오’였습니다. 전통적 仁의 가치, 서로의 인간성을 존중할 줄 알며 약한 자를 도와줄 줄 아는 마음씨, 온유와 사랑, 양보와 희생, 이런 것들이 갑자기 무용지물이 되고 악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우리가 홍위병과 같은 어린애들 장난의 파괴적 광대짓을 보면 얼마나 그 가치전도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지구상의 공산주의의 모든 실험, 무계급사회의 건설은 하나의 춘몽이었다는 사실이 너무도 여실하게 입증되었습니다. 이데올로기의 목표 그 자체가 현실성이 없는 것이라면 그 이데올로기의 정당성 그 자체가 의미를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중국은 갑자기 모든 가치관을 잃어버렷다. 문제는 “아시아에서 자유라는 가치의 최대의 의미는 저는 전통문화의 보존과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어떻게 살려나가느냐 하는 문제와 관련된 창조적 혼돈이라 생각합니다. 중국은 여태까지 그러한 창조적 혼돈이 허용되지 않는 50여년 세월을 살아왔기 때문에 생긴 정신적 공백을 메꿀 길이 없습니다. 그러한 정신적 공백 때문에 범죄, 마약, 이기주의, 물질만능주의, 관료들의 부패, 도덕적 해이, 이러한 문화의 총체적 위기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서구의 문제는 과학혁명의 충격으로 기독교가 무력화되었다는 것이다. 도덕을 정당화해주는 종교가 무력화되면서 중국처럼 정신적 공백이 생긴 것이다. 과학은 도덕을 정당화해주지 못한다. 그러나 “근세과학은 인류에게 무신론과 상식에 대한 무한한 신념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초월적인 창조주에로의 복속을 거부하게 되었다. 기독교로부터 불교에로의 세계사적 전환은 바로 이러한 과학의 보편화란 정신적 토양을 전제로 해서 이루어지는 사건이다. 다시 말해 싯달타의 정신혁명은 2500년후에나 세계 기독교가 성취해놓은 과학문명의 새로운 정신적 토대를 계기로 겨우 드러나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과학과 호환되는 종교는 기독교가 아니라 불교이기 때문이다. “무신론자들에게는 무신론의 종교가 필요하다. 무신론 자체가 과학이라는 인과세계의 신념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영성을 부여할 수 있는 유일한 종교이기 때문에 21세기 인류사의 정신적 패러다임 쉬프트가 불교를 통해 이루어질 수 밖에 없다”

“That’s right” 달라이 라마의 말이다. “불교는 신이 없이도 인간에게 무한한 영성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불교는 엄연한 종교입니다.”

불교의 교리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緣起이다.

“시공간 밖에서 일어나는 사태는 연기론에서는 인정이 안됩니까?”
“인정될 수 없습니다.”
“연기는 과학입니까?”
“그렇습니다. 불교는 과학입니다.”
“불교는 마음의 과학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불교는 심리학이라고 해도 좋겠군요.”
“심리학이라 말 못할 것이 아무 것도 없지요. 불교는 심리학입니다.”

달라이 라마의 답변은 단호하고 간결하다.

“과학적 진리도 상대적 진리일 뿐입니다. 성하께서는 절대적 진리가 잇다고 생각하십니까?”
“절대적 진리는 없습니다. 물론 불경에 보면 절대적이고 영원한 진리 이 따위 말들로 가득합니다. 그런데 불타의 깨달음이 연기인 한 절대적인 진리는 없습니다.”

불교에는 기독교처럼 절대진리를 선포하는 교리가 없다. “마치 절대적 진리가 없으면 살 수 없는 것처럼 그리고 이 우주에는 절대적인 그 무엇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공포감이나 중압감의 포로가 되어버립니다. 이것이 기독교 일신론 사유가 지어낸 서구적 발상의 일대오류라 생각합니다.” 연기론을 확장한 空은 이러한 사유를 절대를 실체로 만든 유아론이라 말한다.

불교에서 절대적인 것은 없기에 지혜와 지식은 같이 가야만 한다. “저는 감정과 본능에 치우친 신앙심과 자비심은 오래갈 수 없다는 것을 누누이 역설해왔습니다. 궁극적으로 감정과 이성은 인간에게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의식쳬게의 소산이며 영적 수행에 지성의 역할은 너무도 중요한 것이비낟. 그리고 물론 지혜와 지식은 이분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혜를 증가시키지 않는 지식은 결코 지식이라 부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이런 말을 한다. “지식이 곧 지혜라는 신념은 나의 체험적 소산이며 그러한 생각에는 동요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불교는 현상적 일원론입니까?”
“물론입니다. 모든 일원론은 현상론일 수 밖에 없습니다. 서양철학의 한계는 현상 그 자체를 무시하고 들어간다는데 있습니다. 이것또한 기독교와 관련된 사유체계가 파생시킨 뿌리 깊은 오류이지요. 우리가 살고 잇는 현상은 허깨비 같은 것이며 가치없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한 뿌리깊은 경시가 모든 오류를 파생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일원론은 현상적 일원론밖에는 성립할 수 없습니다. 불교의 핵심은 不二입니다.”

명쾌하다.

“불교를 심리학이라 하셨는데 그 심리학의 궁극적 목표는 무엇입니까?”
“마음의 평화입니다.”

여기서부터 달라이 라마와 도올의 논쟁이 시작된다. 마음의 평화는 열반을 쉽게 말해준 것이다. 문제는 윤회이다.

“”열반이 마음의 상태라 하신다면 우리가 열반적정의 마음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면 번뇌도 곧 보리가 되는 것이르므로 윤회도 사라져 버릴 것이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마음의 상태에 이르든지 그 마음의 상태가 윤회하는 것입니다. 윤회하는 것은 마음입니다.”
달라이 라마는 윤회를 사라지게 하는 것은 해탈이라 구분한다. 그러면서 “윤회는 사실입니다.”고 선언한다. 그러면서 장시간에 걸쳐 불교교리사에 등장하는 윤회에 대한 복잡한 논쟁이 둘 사이에 재연된다.

도올의 마지막 질문은 깨달음에 관한 것이다. “성하 당신은 정말 깨달으셨습니까? 정말 깨달으셨다면 그것을 저에게 전달해 주실 수 있습니까?” 모두 궁금해할 질문이다.

“지금 내 몸은 예순하고도 일곱해가 된 몸입니다. 그런데 나의 정신, 나의 생각은 항상 맑고 깨끗합니다. 저는 자라나면서 어느 순간엔가 空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갑자기 세계가 넓어지더군요. 뭔가 이 우주와 인생에 대해 조금 알듯햇습니다. 그러면서 시야가 넓어지고 공이라는 진리는 내가 살아가는 데 매우 유용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물 전제를 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자비를 깨달았습니다. 깨달음을 물으신다면 이 공과 자비를 통해 무엇인가 조금 이 우주와 인생에 대해 통찰을 얻었다는 것, 그런 것으 말씀드릴 수 있을 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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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분량의 아쉬움이 큰 여행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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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대여로는 적합하나 구매하기에는 분량의 아쉬움이 큰 여행집이다. 달라이라마와의 대담은 3권의 일부에 한정되어 아쉬움이 더 크다.도올의 직설적인 질문에 진솔하게 화답하는 달라이라마의 자세에서 짙은 여운을 느꼈다. 윤회의 과학성을 무리하게 주장하는 점만은 공감이 가지 않았다.모든 사태에는 정확한 인과관계가 성립하는 시공간적인 장이 있다고 말하는 측면에서는 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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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대여로는 적합하나 구매하기에는 분량의 아쉬움이 큰 여행집이다. 달라이라마와의 대담은 3권의 일부에 한정되어 아쉬움이 더 크다.

도올의 직설적인 질문에 진솔하게 화답하는 달라이라마의 자세에서 짙은 여운을 느꼈다. 윤회의 과학성을 무리하게 주장하는 점만은 공감이 가지 않았다.


모든 사태에는 정확한 인과관계가 성립하는 시공간적인 장이 있다고 말하는 측면에서는 거시적인 맥락에서 고전물리학과 상통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태가 실체적으로 파악될 수 없으며 관계론적 起滅에 불과하다는 측면에서는 현대물리학과 상통합니다. --  668쪽
문화적 사실이나 심리적 사실이나 논리적 사실이 아닌, 물리적 사실이며 과학적 사실입니까? (윤회에 대한 질문) -- 683쪽

k****9 2016.03.0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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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가 있는 사람들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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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달라이라마와 김용옥이라는 두 현인의 대화로 구성되어있는것 같으나 책의 내용을 자세히 보면 1,2,3권을 통해 도올 선생의 불교에 대한 깊은 고찰에서 나오는 지식과 인도 문명에 대한 기행문과 같은 성격이 짙고 또한 석가모니의 삶에 대한 인간적인 모습도 살펴볼 수 있다. 우선 책의 표지 디자인은 심플함 그 자체였다. 그리고 인도에서 도올 선생이 찍은 다양한 사진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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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달라이라마와 김용옥이라는 두 현인의 대화로 구성되어있는것 같으나 책의 내용을 자세히 보면 1,2,3권을 통해 도올 선생의 불교에 대한 깊은 고찰에서 나오는 지식과 인도 문명에 대한 기행문과 같은 성격이 짙고 또한 석가모니의 삶에 대한 인간적인 모습도 살펴볼 수 있다. 우선 책의 표지 디자인은 심플함 그 자체였다. 그리고 인도에서 도올 선생이 찍은 다양한 사진은 글의 이해를 위해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형식에 구애되지 않고 글을 써나간 도올의 필체는 이미 아는 사람들은 다 알 것이라 생각된다. 크게 1,2권과 3권의 내용이 구분이 되는데 앞의 두 권은 불교에 대한 지식을 폭넓히는데 크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이 된다. 그리고 3권의 내용은 달라이 라마와 도올의 대화 내용인데 상당히 깊은 철학적 내용을 담고 있어서 읽으면서도 고수들의 대화 내용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역시 달라이라마는 불교쪽에 정통한 사람이고 도올은 종교와 학문등에 박학 다식하므로 도올 선생이 자신의 지식을 달라이 라마를 비롯한 우리 읽고 있는 독자들에게 전달해주는 듯한 인상이 강하게 풍긴다. 중간 중간에 달라이라마와 도올이 마치 무협가들이 칼로 대결하듯 자신의 논리로 대결하는 듯한 부분은 상당히 드라마틱한 부분인데 이 역시 도올이 현명하게 이끌어나가고 있는 것 같다. 이 글을 읽고 나는 도올의 해박함에 대해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는데 나는 도올의 숭배하거나 광적인 추종자는 아니다 하지만 그 학문에 대한 끝없는 열의는 높이 사고 싶다. 단 그런 학문적 추구의 끝에 공허함만 남게 되는 것은 아닌 지 새삼 걱정이 되기도 한다. 마지막의 내용은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고 아무튼 종교와 철학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학구적인 갈증을 다소 해결해줄 수 있는 상당히 좋은 책이라고 권해주고 싶다.

[인상깊은구절]
모든 부분이기에 따로 쓸 수 없다.
7******m 2003.02.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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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과 달라이라마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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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벹불교 5백여 년의 역사는 용수 중심의 중관학의 역사다. 티벹 최대의 사상가 쫑카파(1357-1419)는 티벹 4대종파의 하나인 겔룩파의 개종자로, 그가 개종한 겔룩파 계보에서 달라이라마제도가 확립되었다. '달라이'는 '큰바다'라는 뜻을 가진 몽고어이고, '라마'는 스승이라는 뜻을 지닌 인도어 '구루'에 해당하는 티벹어다. 그러나 달라이라마의 설명에 의하면, '달라이'는 제3대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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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벹불교 5백여 년의 역사는 용수 중심의 중관학의 역사다. 티벹 최대의 사상가 쫑카파(1357-1419)는 티벹 4대종파의 하나인 겔룩파의 개종자로, 그가 개종한 겔룩파 계보에서 달라이라마제도가 확립되었다. '달라이'는 '큰바다'라는 뜻을 가진 몽고어이고, '라마'는 스승이라는 뜻을 지닌 인도어 '구루'에 해당하는 티벹어다. 그러나 달라이라마의 설명에 의하면, '달라이'는 제3대 달라이 라마의 이름인 소남 갸초의 '갸초'를 몽고말로 번역한 데서 생겨난 이름일 뿐이라고 한다. 갸초는 티벹어로 바다라는 뜻을 지닌 말이었다.

 

달라이 라마의 본명은 라모 톤둡이다. '소원을 성취시켜 주는 여신'이란 뜻이다. 그의 고향이름은 탁처인데 티벹의 동북부 변방의 암도 지역에 속한다. 그의 부모는 작은 땅을 임대하여 삶을 영위했던 자작농이었다. 그는 1935년 7월 6일에 태어났다. '텐진 갸초'라는 이름은 1940년 겨울 포탈라궁에서 티벹의 정신적 지도자로서 공식취임한 후에 견습승려로서 득도할 때 받은 이름이다. 그때 타푸라는 삭발의식을 거치게 되는데 당시의 섭정인 레팅 린포체가 베풀었다. 풀네임이 잠펠 가왕 롭상 예쉐 텐진 갸초였다.

 

도올은 영국학자 티모시 프레케와 피터 간디의 <예수의 신비>라는 책을 토대로 달라이라마에게 역사적 예수의 허구성과 초기기독교의 발전사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사실 내가 보기엔 '대화'가 아닌 일방적인 설교에 가까웠다. 먼저 예수의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신화적 구성에 기반하고 있다. 프레케와 간디는 '예수의 신화'는 지중해 연안 문명에 공통된 신화 이야기를 유대사회적으로 변용한 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나도 역사적 예수의 허구성에 공감하는 편이다. 초기기독교의 원래 모습은 영지주의 운동이고, 마가복음, 마태복음, 누가복음과 같은 공관복음서에서 제시한 예수의 일대기는 그런 영지주의 운동을 구체적인 사건으로 만들기 위한 후대의(그것도 사도바울의 편지 이후) 픽션적 구성이었다고 주장한다. 또한 사도바울의 편지 대부분이 사도바울의 이름을 빌어 날조된 것이라고 얘기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사도바울이야말로 영지주의자였다는 주장이다.

 

313년 밀란칙령으로 기독교 신앙을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325년 니케아(현 터키의 이즈니크) 종교회의를 주재하게 된다. 여기서 삼위일체설을 부정하는 알렉산드리아 주교 아리우스의 주장이 이단으로 규정되고 영지주의자들이 몰락한다. 기독교를 로마제국을 정당화하는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활용하려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음모가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오늘날까지 예수의 신화를 사실로서 믿고 사는 사람들은 암암리에 로마제국의 정치적 권력의 음모를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로마제국은 사라졌지만, 로마제국의 정신적 구속력이 아직도 허깨비로 남아있는 셈입니다."(534-5쪽)

 

달라이 라마는 신앙은 반드시 이성에 의하여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티뱉말에 이런 말이 있다. "이성에 바탕을 두지 않은 믿음을 가진 사람은 아무데로나 흘러갈 수 있는 개울물과 같다."

 

도올은 기독교가 본래 아시아대륙의 종교라고 주장한다. 소아시아, 페르시아, 인도로 걸치는 문명권에 깔려 있는 신비주의의 소산이라고 본다. 원시기독교의 그노스티시즘은 희랍의 올페이즘, 이집트의 헤르메티카,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와 미트라 신앙, 마니교, 그리고 이란과 인도에 공통된 신화적 세계관과 관련있다.

 

달라이 라마의 모택동과 주은래에 대한 솔직한 평가가 무엇보다 인상에 남는다.

 

"모택동이나 주은래나 우리 티벹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보다 나은 세계를 위하여 헌신하는 맑스주의자들이 아니었으며 철저한 국가주의자들이었을 뿐입니다. 그들은 공산주의를 가장한 쇼비니스트들이며, 탐욕스러운 제국주의자들이며, 편협한 광신자들이었습니다. 어떻게 서구열강의 제국주의의 마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렇게 고난의 장정의 투쟁을 거친 사람들이, 어떻게 자기들의 꿈이었고 이상이었던 공화국을 세우자마자 갑자기 서구열강의 제국주의보다 더 악랄한 제국주의자들로 표변할 수 있단 말입니까? 모택동은 사람이 좀 무뚝뚝하고 우직하지만 진실한 느낌을 줍니다. 그러나 주은래는 '츄우 앤 라이(Chew and Lie)'라는 별명대로, 항상 생글생글 웃고 친절하지만 차갑고 교활합니다. 그러나 어떻게 두 사람 사이에 우열을 논할 수 있겠습니까? 둘 다  인간세에 참혹한 결과를 초래한 탐욕의 화신들일 뿐이지요."(565쪽)

 

 

z***a 2013.08.2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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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 라마의 연기와 윤회론에 대한 명쾌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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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1,2권을 읽은 후, 한참이 지나서야 다시 마저 3권을 들어 빨려들어가듯 읽었다. 1.2권은 도올 자신이 인도를 기행하면서 겪은 에피소드,감상문, 그리고 자신의 불교에 대한 연구와 생각을 우리에게 전수한다. 인도에서 본인이 직접 찍은 사진과 곁들인 설명은 감칠맛이 느껴진다.   제목에서 이야기하듯 시리즈의 마지막 3권이 단연 압권이었다. 달라이라마와 도올이 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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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1,2권을 읽은 후, 한참이 지나서야 다시 마저 3권을 들어 빨려들어가듯 읽었다.

1.2권은 도올 자신이 인도를 기행하면서 겪은 에피소드,감상문, 그리고 자신의 불교에 대한 연구와 생각을 우리에게 전수한다.

인도에서 본인이 직접 찍은 사진과 곁들인 설명은 감칠맛이 느껴진다.

 

제목에서 이야기하듯 시리즈의 마지막 3권이 단연 압권이었다.

달라이라마와 도올이 2권 말미에서 만남이 이루어져 본격적인 대담이 3권에서 펼쳐진다.

 

처음 안 사실인데, 달라이 라마가 도올더러 어떤 호칭으로 불러야 할지를 묻는 대목이 나온다.

도올은 자신을 stone 이라고 불러달라고 한다. 즉 돌선생.

김용옥의 호가 도올인데 stone 이라는 의미였음을. 그 연유가 어릴 때 머리가 딱딱햇서 돌대가리로 불린데 있음을 알고 웃음이 나왔다.

 

대화의 첫부분과 중간부분까지는 거의 도올 자신의 불교에 대한 이해를 달라이 라마에게 이야기해 주면서 반응과 동의를 구하는 식의 대화가 이루어진다. 물론 도올의 이야기에서도 상당히 공감되는 논설이 많다. 그리고 도올과의 어울림 속에 한마디씩 던지는 달라이 라마의 짦은 대답에서 그의 인간됨과 불교에 대한 그의 생각들을 엿볼 수 있다.

불교는 서양적인 종교 패러다임으로 본다면 종교가 아니요, 오히려 철학,심리학,과학에 가깝다는 그의 명쾌한 이야기에는 울림이 있다.  

 

대화 거의 후반부에서 달라이 라마의 연기에 대한 그의 설명은 참 감동적이었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스스로 존재할 수 없음으로 해서 공이요, 무아라는 사실. 모든 것은 서로 엮이고 의존하여 존재할 수 밖에 없음으로 자신만의 독단적이고 독립적인 실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

 

태고적부터 내려오는 인류와 조상들로 부터 받은 유전자와 집단무의식, 그리고 깊은 단계의 기운들.

온우주의 기운과 화합물들이 빚어낸 지구의 다양한 동,식물을 비롯한 이웃들의 뒷받침을 발판삼아 생존가능한 나의 환경

나와 직,간접적으로 에너지를 주고 받으며 교통하는 나의 이웃,동료들

이 모든 것이 나를 빚어내고 길러주고 있기 때문에 태어났고, 자랐고, 앞으로도 생존이 가능할 것이다.

결국에는 하나였음으로 죽음을 통해 체험을 하게 될까?

 

그리고 불교에서는 무아론을 주장하여서, 동일성을 유지하는 실체가 없다고 하면서 어찌 윤회가 가능한가?를 묻는 도올의 집요한 질문에 달라이 라마는 아주 명쾌하게 윤회를 설명을 해 준다. 달라이 라마는 윤회를 하나의 과학적 사실로 자신의 견해를 또렷히 밝히고 있는데.. 이에 대한 답변은 직접 책을 통해 확인하길 바란다.

 

종교나 문화에 상관없이 불교만큼 포용적으로 그 종교와 문화에 스며들 수 있는 틀도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책 소개를 마친다.  

 

YES마니아 : 로얄 c*****e 2011.08.1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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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은 책값이 비싸다. 그 중 1개를 산다면 바로 이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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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라마에 관한 책은 시중에 많이 나와 있으면, 몇 권 봤다. 거기서는 아무리 인간적인 달라이라마를 그리려고 해도, 그는 티벳의 왕 달라이라마였다. 뭔가 범접할 수 없는 그런 느낌,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아름다운 여왕이 있다고 하면, 그 아름다움은 여타의 다른 탈렌트와 다른 것... 그런데 이 책에서는 달라이라마가 도올과 대화를 나눔으로 해서, 좀 달라지신다. 마치 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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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라마에 관한 책은 시중에 많이 나와 있으면, 몇 권 봤다. 거기서는 아무리 인간적인 달라이라마를 그리려고 해도, 그는 티벳의 왕 달라이라마였다. 뭔가 범접할 수 없는 그런 느낌,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아름다운 여왕이 있다고 하면, 그 아름다움은 여타의 다른 탈렌트와 다른 것... 그런데 이 책에서는 달라이라마가 도올과 대화를 나눔으로 해서, 좀 달라지신다. 마치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오드리 햅번처럼(햅번 팬들에게 죄송하다.) 좀 더 인간미가 느껴진다. 예전부터 도올의 그 과장된 몸돌림과 말투, 책에서 나타나는 자만감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이 번 책은 그나마 좀 덜 해로울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다. 다 달라이라마의 질문과 대답, 도올의 질문과 대답이 빚어낸 것이다. 도올도 초심자적인 질문을 할 때가 있고, 그에 대하여 소상하게 대답하는 달라이라마와, 도올에게서 무언 가를 알고 싶어하는 달라이 라마의 순수한 정신은 참 재미있었다. 이 책의 내용은 달라이라마의 불교에 관한 생각(의외로 배울 것이 있다- 불교의 전반적인 이해를 많이 도와주었다.)과 도올의 역시 그 알 수 없는 그 컴퓨터 정신 (불교미술에 대한 대단한 지식)을 통한 이해를 배울 수 있다. 이런 생각에서 그나마 좀 3권중에서 1권을 사려면 이 책을 사라고 권한다. 도올의 사진실력이나 혹은 불교미술에 관한 내용을 더 알고 싶다면, 다른 1.2권도 사면 될 것이다.
o****z 2003.02.2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