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라이마는 열두 살에 이미 전쟁터를 떠돌며 사람을 죽이고 마약을 한다. 사실 자기 나이가 열 살인지 열두 살인지도 확실히 알지 못한다. 그저 그렇다니까 그런 거다. 배불리 먹을 수 있고 내 것을 많이 가질 수 있을 거란 환상에 이끌려 총을 잡게 된 비라이마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겪을 수 있는 참상이란 참상은 고루 겪는다. 독재와 기아, 비인간적인 전통 관습 등이 낳는 고통으로부터 비라이마와 같은 아프리카 소년이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뭘까? <열두살 소령>을 읽는 내내 그것이 궁금해진다. 아직도 독재와 내전 속에 고통 당하는 사람들의 비명을 우리는 다른 대륙에 산다는 이유로 그냥 모른 체해 버려도 되는 걸까?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광산 개발 따위보다 평범한 가족과 교육이 훨씬 간절한 그곳의 수많은 비라이마들의 고통도 좀 들여다봐주자고 말이다. 그곳에 태어나지 않아 감사하고 별탈없이 해올 수 있었음에 다행이라 여기는 것에서 그치지 말고, 그들의 이야기에 조금 더 귀기울여보자고 말이다. |
픽션이길..
아프리카는 만 개가 넘는 정치적 단위체가 서구에 의해 삼십여개로 나뉘어졌다. 그 결과를 시각적으로 확인하려면, 아프리카의 지도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것은 지도가 아니고 잘 만든 바둑판이다.
나는 이럴 때 갈등이 생긴다.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신을 믿지 않는 것이 잘 하는 짓일까. 이 비극을 신 이외에 누가 해결해 줄 수 있을까? 그러나, 독자들이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신도 분명한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을, 아니 신이 이 비극에 한 몫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그 신은 옳바른 신이 아니라 사이비라고 말 할 테지만.
아프리카 내전에 의해 생겨난 소년병에 관한 이야기이다. 한 소년병의 시선으로 아프리키 내전을 바라보고 있다. 소년의 목소리는 담담하다. 아주 자주 어른들의 광기에대해 '제길'이라는 욕을 넣기는 하지만, 그 욕은 체념일 뿐이다. 이 곳에서 어지간한 학살은 학살이라고 부르지도 않는다. 이 곳에 학살이라고 부를 수 있는 정도는, 독재자가 국민들이 투표를 못하도록 불특정 다수의 국민들의 손목을 자른다던지, 적대시하는 부족이기 때문에, 혀와 성기를 도려 낸다던지, '어린이'들에게 마약을 먹여 학살을 도구로 삼는다던지, 아니면.. 이 정도가 되어야 학살이다.그냥, 폭격을 통해 눈깜짝할 사이에 죽는 것이, 너무 덜 비참하여, 학살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비극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광기의 종류는 다양하다. 허나, 그들은 서로 통한다. 정치적, 종교적, 민족적, 또 돈에 의한 광기는 서로 겹쳐져서 광기의 색깔을 짖게 만든다. 정의? 신? 이 소설을 읽고 그것들에 침을 밷지 않는다면, 그는 위선자다.
청소년들에게 이 소설을 읽혀도 될 지 모르겠다. 세상은, 신은, 평등하지 않다는 것을 청소년들에게 알려 줘도 될 지 모르겠다. 그냥, 슬프다. 그리고, 내가 너무 무력하고 무책임하다. |
표지의 강렬함과 제목에 이끌려 책을 사게 되었다. 열두 살 소령... 이 책이 소년병에 관한 것이라는 것을 아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 소설은 주인공 소년이 소년병이 되어 내전 중인 라이베리아와 시에라리온을 떠돌며 겪은 전쟁의 참상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그 내용이 너무 참혹하고 기막혔다. 아이들이 마약에 취해 아무 생각 없이 사람을 죽이고, 부상당한 동료를 버리고 떠나고... 그러나 이 책은 이러한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소년병들이 소년병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얘기하고, 자신들의 이속을 위해 전쟁을 일으킨 무리들의 검은 속내가 드러난다. 지금까지 소년병 문제는 우리와는 아주 먼 나라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진 속의 아이들을 보고 참 안됐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통해 전쟁의 이면을 낱낱이 알게 되었다. 그리고 고통 받고 있는 그들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이 가슴 아팠다. 아프리카 태생인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아프리카의 고통을 고발하고자 했던 절절한 마음이 느껴졌다. 그런 절절한 마음 때문에 우수한 작품이 나오지 않았나 생각된다. |
전에, 그러니까 약 1년 반 전 쯤에 아트 슈피겔만의 <쥐>의 감상문을 썼었죠. 그 글에서 저는 세상을 살아 남는 것은 운도, 실력도, 눈치도 아니고 그저 '그렇게 될' 뿐이다, 라는 느낌으로 말을 했던 것 같습니다.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그와 비슷하지만, 전달하는 분위기는 다릅니다. 코즈믹 호러와 블랙 코메디의 차이점이라고 할까요. 아트 슈피겔만은 시대라는 절대성에 속절없이 쓸려가버리는 한 개인의 절망감을 잘 표현해줬다면 아마두 쿠루마는 사람이 얼마나 산뜻하게 미칠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미친 세계에서 미친 사람은 얼마나 산뜻할 수 있는지 말이죠. |
3.3
276페이지, 22줄, 25자.
코트디부아르의 소년 비라이마의 입을 빌린 서부 아프리카의 소년병 이야기입니다. 앞의 설명에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소년병 문제를 고발한 것'이라는 대목이 있는데, 신문지상에 오르내린 게 12-3년 전에 시작된 것인지 그 전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어떻게 해서 그런 병사들이 생기는지에 대해 '비현실적'으로 그려놓았습니다. 여기서 비현실적이라는 것은 '아프지않게'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책의 뒷면에는 '신랄한 유머' 등으로 기술하였습니다.
유하게 써놓았지만 하나하나의 사실이 다 평소 언론에서 듣던 그 내용임을 깨닫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사실 그런 무정부 상황에서는 민주주의가 꽃을 피울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누군가가 선동 내지는 위협 또는 변조를 하면 그만인 상황이니까요. 어설프게 아는 사람이 뭐라고 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더 이상 뭐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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