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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이 생산하는 삶의 힘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 정호승,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수선화 하면 나르시스가 먼저 떠오른다. 제 얼굴에 반한 나르시스가 죽은 자리에서 피어난 꽃이 수선화라고 하던가? 뭇 요정들의 사랑을 받은 나르시스는 왜 다른 이를 바라보지 않았을까? 나르시스에 얽힌 이야기는 한곳에 밀어 두자. 자기 얼굴에서 타자를 본 나르시스는 ‘죽어’ 수선화로 태어났다는 게 중요하니까 말이다. ‘고결, 자존심, 신비’와 같은 꽃말을 지닌 수선화를 보며 시인은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고 외친다. 외롭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라는 이 말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사람이라는 말에는 이미 관계가 내포되어 있다. 사람은 그냥 사람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라는 말이겠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사람이 되는 거라면, 사람은 태생적으로 타자를 지향하는 존재라는 얘기가 성립된다. 타자와 하나가 되고 싶은 마음으로 우리는 타자를 만난다. 타자가 있어 우리는 외로움을 견디는 힘을 얻는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타자와 함께 있는데 왜 우리는 여전히 외로움을 느끼는 것일까? 연애를 해도, 결혼을 해도 외로움은 스러지지 않는다. 타자와 있을수록 외로움이 더 심해진다는 사람들이 있는 걸 보면 관계를 맺는다고 외로움이 사라지는 건 아닌 게 분명해 보인다. 시인은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라고 쓰고 있다. 외로움을 견디며 우리는 사람들을 만난다. 외로운 이들이 만나 벌이는 다양한 사건들은 그럼 외로운 것일까, 아닐까?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도 있듯이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도 우리가 외로움을 절실히 느끼는 까닭은 무엇일까? 사랑할수록 더욱 외로워지는 연인의 심리는 또 어떤가?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며 애달파하는 기억이 있다면, 사랑이 사람을 얼마나 외롭게 하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사랑하는데도 외롭다면 외로움은 인간으로 태어난 존재의 숙명인지도 모르겠다.
시인은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고 이야기한다. 눈이 왔으니 눈길이 생긴 것이고, 비가 왔으니 빗길이 생긴 것이다. 돌려 말하면 사랑(이별)을 했으니 사랑(이별)의 길이 생긴 것이다. 눈길이라고 걷고, 빗길이라고 걷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사랑한다고 만나고 이별한다고 만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또 누군가와 헤어지는 어느 순간에도 갈대숲에 있는 가슴 검은 도요새는 우리를 보고 있다. 타자는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존재이다. 사랑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자기 얼굴에 빠진 나르시스가 생각나지 않는가? 자기 얼굴조차 소유할 수 없는데 어떻게 타자의 얼굴을 소유할 수 있겠는가?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는 진술에 표현되는바, 조물주인 하느님도 외로움이란 정서를 피해갈 수 없다. ‘존재’라는 말과 관계를 맺으면 어김없이 외로움이 찾아드는 법이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모습에서 시인은 외로움을 본다. 물가에 앉아 있는 너에게도 외로움은 깊이 자리하고 있다. 자기 얼굴을 사랑한 나르시스만 외로운 게 아니다. 누구나 가슴에 외로움을 품은 채 타자와 만나고 자기와 만난다. 타자와 만난다고 이 외로움이 풀리고, 자기와 만난다고 이 외로움이 풀리는 건 아니다. 만나면 만날수록 외로움은 더 심해진다. 왜 그럴까? 타자에게서 외로움을 없앨 비책을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있으면 외롭지 않은가? 그럴 리 없다.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으면 외로움의 강도는 더 깊어진다. 더 많은 걸, 더 깊은 걸 원하기 때문이다. 집착이라는 말로 표현하면 어떨까? 나르시스는 자기 얼굴에 집착함으로써 더욱 더 외로운 존재가 되었다. 거울에 비친 ‘나’가 과연 내 것인가? 나르시스가 외로움에 떨고 있던 그 자리에서 지금 우리는 아무렇지 않은 마음으로 있는 셈이다.
그럼 우리는 별 수 없이 외로움을 견디며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시인의 말대로라면 그렇다고 봐야 한다. 그는 외로움을 견디는 게 곧 살아가는 거라고 얘기하지 않는가? 정확히 말하면 외로움을 느낀다는 건 살아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살아 있으니 외로운 것이다.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는 시구는 이런 맥락에서 의미심장한 바가 있다. 외로움은 산그림자도 움직이게 한다. 우리로 하여금 타자를 향해 움직이도록 하는 힘이 외로움에서 나온다는 말이다. 외로워서 우리는 타자와 만난다. 외롭지 않으면 굳이 다른 이와 만날 필요가 없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는 시구를 읽으며 시인이 외로움을 얼마나 지극하게 생각하는지 느낀다. 이리 보면 시인이 시를 쓰는 까닭도 외로움에 있을 것이다. 외로움이 무언가를 생산하는 힘이 된다는 걸 이보다 더 잘 알려주는 사실이 있을까? 사람에게 외로움은 살아야 할 이유인 법도 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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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어머니 장독대 위에 정한수 한 그릇 떠놓고 달님에게 빌으시다 외로운 개들이 짖어대던 정월 대보름 어머니 촛불을 켜놓고 달님에게 빌다가 돌아가시다 정한수 곁에 타다 만 초 한 자루 우수가 지나고 봄비에 젖으시다
정호승 시집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에 나오는 시입니다. 비 오는 날 어울리는 시네요. 워낙 유명하죠. 전체적으로 사랑시를 대표하는 시인이라 그런지 서정적이고 분위기 좋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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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내 나이 18살이 되도록 나는 시에 대한 별다른 흥미가 없었고 나에게 시란 단지 교과서 속에 실린 문학작품에 불구하였다. 내가 그나마 시를 접할 수 있었던 교과서 속에는 대부분 교훈적, 희망적, 자기성찰적인 내용의 시들이 주류를 이루었고 이들을 감상하며 나는 밝은 느낌의 시와는 상반된 느낌의 시를 감상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생각이 내게 시에 대한 흥미를 북돋아주었고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는 다소 어두운 느낌의 제목에 이끌리게 되면서 이 시집을 읽게 되었다. 이 시집의 저자인 정호승 시인은 중학교 1학년 때 은행에 다니던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게 되면서 어린 시절부터 매우 가난한 생활을 하였고 안타깝게도 아내와도 이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시인이 시에서 '가난, 외로움, 사랑'을 주된 소재로 삼는 데에는 이러한 삶이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한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정호승 시인의 시에서 주된 심상은 '슬픔'과 '사랑' 또 '외로움'이다. 이 시집에서 시인은 '외로움'이 인간의 본질임을 강조하며 누군가를 사랑할 때에도 외로움이 공존하고 인간을 포함해 나무, 풀, 꽃 등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은 살아가면서 외로움을 느낀다고 표현한다. 시인은 이러한 정서를 차분하고 담담하게 말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슬픔'과 '외로움'은 극복해야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자체의 보편적인 정서라고 느끼게 해주며 그들에게 위로를 건넨다. 나는 이 시집을 삶에 지친 모든 현대인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이 시집을 통해 나는 삶에서 '외로움'과 '슬픔'을 너무 감정적으로 바라보기보다 오히려 인간의 본질로 느끼게 되었고 시를 통해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시집을 읽고 위로를 받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이 시집을 추천하는 또 다른 이유는 시를 어렵게 표현하기보다는 시를 많이 접해보지 않은 나 또한 가볍고 쉽게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시를 풀어나갔다는 점이다. 가볍게 시를 읽으면서 시 한편 한편에 담긴 의미를 곱씹어 볼 수 있는 점이 맘에 들었다. 이 시집에 실린 '수선화에게'라는 시의 한 구절이 내 머릿 속에 맴돈다. "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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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8
P.21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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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3.21.월요일 '세계 시의 날'이라 오랜만에 시집을 뒤적거려보았다. 여러 장르의 글 중 유독 '시'에 손이 잘 가지 않는 건 첫째, 내 감성이 매말라 있어서... 둘째, 추상화같은 시라 도저히 이해 할 수 없어서... 셋재, 말장난 같은 시에 실망해서... 등등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래도, '정호승'시인의 시는 언제나 내 감성을 촉촉하게 적셔준다. 오늘 같은 날엔 좋아하는 시 한편 외우며 커피한잔의 여유를 즐겨본다.
<풍경 달다> 운주사 와불님을 뵙고 돌아오는 갈에 그대 가슴의 처마 끝에 풍경을 달고 돌아왔다 먼데서 바람 불어와 풍경 소리 들리면 보고 싶은 내 마음이 찾아간 줄 알아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