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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결산]강남순, 정의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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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는 세계의 영구적 평화를 위한 구상에서 '목적의 나라'라는 이상을 제시한다. 세계의 진정한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이 세계가 '수단의 나라'가 아닌 '목적의 나라'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이 목적의 나라에서는 그 어느 인간도 결코 수단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모든 인간이 존재 자체로서 목적이 되는 것이다. (...) '대한민국 어버이연합(이하 어버이연합)'애서 '어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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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는 세계의 영구적 평화를 위한 구상에서 '목적의 나라'라는 이상을 제시한다. 세계의 진정한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이 세계가 '수단의 나라'가 아닌 '목적의 나라'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이 목적의 나라에서는 그 어느 인간도 결코 수단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모든 인간이 존재 자체로서 목적이 되는 것이다. 
(...) '대한민국 어버이연합(이하 어버이연합)'애서 '어버이들'에게 2만 원의 일당을 주면서 갖가지 집회에 동원하였다고 했다. 이 뉴스가 발표되자 '가스통 할배'라는 별명을 지닌 이들을 항한 비난이 쏟아진다. 그런데 이 '어버이들'을 모두 하나의 집단적 범주 속에 넣어버리고 그들 개개인의 개별성을 보지 않은 이러한 태도는, 사실상 인식론적 폭력이다. 특정 그룹의 사람들을 복수의 표지 아래에서만 보고자 할 때, 우리는 그 사람들을 이미 비인간화시키게 된다. (...) 특정 집단에 속한 사람들의 개별적 얼굴을 외면하고 악마적 표지를 붙이는 것은 쉽다. 그러나 그러한 비인간화와 악마화는 우리 사회에서 파괴적 에너지만을 분출할 뿐, 사회변혁의 힘으로 전환되지는 않는다. 
(...) '어버이연합' 회원들은 '목적의 나라'가 아닌 '수단의 나라'의 시민이 어떤 모습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25p.


그들에게 허용된 공적 세계, 사회경제적 주변부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 어버이들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곳은 그런 극단적 시위 공간일 뿐. (...) 맹목적 반공의식과 폐쇄적 애국심으로 무장한 것 같지만 대부분 '어버이들'이 '어버이연합'에 오는 진짜 속내는 두 가지, 경제적 어려움과 관계에서의 고립감. (...) '잉여적 존재'로서 살아가는 이 어버이들이 하루하루 생존의 가능성과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곳은 없음. 
-26p. 


'낭만화된 기억'을 넘어서야 한다. 낭만화된 기억은 세월호 참사가 지닌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함의들을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문제로만 이해하게 한다. (...) 그 슬픔의 공간을 책임의 공간으로 전이시켜야 하는 과제와 씨름할 뿐이다. 
-33p. 


역사 해석의 다양성을 위험하다고 간주하면서 급기야는 통제의 대상으로 집어넣는 것은, 국민의 의식을 비판적 사유가 부재한 유아기적 단계에 머물게 한다. 
-48p.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표현을 정치적 비전으로 제시하는 정치는 두 가지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 
첫째, '개천'에 대한 절대적 비하이다. 개천은 전적으로 부정해야 하는 삶의 공간일 뿐 아니라 (...) 패자들의 하찮은 삶의 표상으로 전락한다. 개천은 한국의 절대다수가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삶의 공간이다.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적 삶의 정황을 '개천'이라는 말로 비유하는 것은 그 사람들의 삶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기능을 한다. 그 기능은 말하는 사람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작동한다. 
둘째, '용'으로 상징화되는 가치의 문제점과 위험성이다. 용이란 다른 생명과 '공생'하는 삶을 지향하는 표상이 아니다. 오히려 다른 존재들 위에 '군림'하는 막강한 권력을 지닌 승자 또는 지배자의 표상이다. (...) 결국 이를 정치적 목표로 삼는 것은 사회적 지위에 따른 계층적 위계주의를 더욱 강화하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73p. 


사람들은 흔히 분노를 매우 부정적으로 간주한다. (...) 그러나 분노를 하나로 묶어서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다양한 분노들의 양태는 대략 본능적 분노, 성찰적 분노, 그리고 파괴적 분노 등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본능적 분노'란 자신이 겪은 어떤 외적 위협에 반응하는 즉각적 분노이다. (...) 이러한 분노는 자기 보호 본능에서 유발되는 것으로, 윤리적 성찰이 개입되기 이전에 나타난다. 
'성찰적 분노'는 상황을 포괄적으로 분석하고, 그 분석에 근거해서 윤리적으로 판단하며, 그 판단에 근거한 행동의 과정을 거쳐서 얻게 되는 숙고된 분노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파괴적 분노'가 있다. 본능적 분노나 성찰적 분노가 지나치게 될 때 증오, 원한, 복수심으로 전이된 것이다. 즉, 반윤리적 분노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파괴적 분노와 성찰적 분노를 종종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두 종류의 분노는 그 동기, 과정, 결과가 매우 다르다. 둘 사이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분노의 대상이다. 성찰적 분노는 부당한 '행위' 자체에 초점을 두지만 파괴적 분노는 '행위자'를 향하면서 그 사람의 존재 자체를 맹목적으로 부정하고, 증오하고, 급기야는 악마화하는 방식으로 표출된다. 
-85p.


그람시는 이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에 무관심한 사람들은 인간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기생충처럼 '기생하는 것'이라고 했다. 또한 무관심은 인간의 지성을 파괴하면서 역사 속에서 더욱 나은 세계를 향한 최선의 계획들을 뒤틀고 망가뜨리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봤다.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보다 정의롭고, 평등하고, 평화로운 세계를 위한 변화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을 의미한다. 무관심이라는 병을 지니고 살아가는 '기생의 삶'을 거부하고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고자 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성찰적 분노를 배워야 하는 이유이다. 
-87p.


동성애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게 느끼는 혐오와 패닉의 내면에는 성적 지향에 대한 무지와 몰이해가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성적 지향은 한 사람이 스스로 선택하거나 선호한 것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지닌 지향orientation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100p.


'홀로'의 시간과 공간을 가지는 것은 인간으로서 사유하는 데 필연적인 것. 고독의 시간이란 자기가 자신을 사유의 세계로 초대하는 공간. (...) 자신과 대면하는 고독의 시간을 통해서 비로소 자신과 타자의 상호 연관성을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음.
-124p.


인간 너머의 존재를 사유하고 경험하고자 하는 인간은, 그 유한성 때문에 '상징'을 필요로 한다. 무한한 존재에 대한 '사실'적 표현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상징을 만든다는 점에서 다른 동물과 구분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보자면 신에 대한 상징은 종교를 구성하는 결정적인 요소이다.
-151p.


스스로가 유신론자 또는 무신론자라는 정체성을 선언하는 것은 그렇게 커다란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자신이 존재한다고, 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그 신이 '어떠한 신'인가의 물음이 더 우선해야 한다.
-155p.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두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다고 봤다. 하나는 과거의 비극적인 일들로부터 과거를 구해내는 가능성으로서 인간의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이다. 다른 하나는 자기 자신을 '미래에 대한 약속에 연결시켜서 살아가는 능력'이다. 미래의 불확실성을 끌어안으면서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새로운 삶에 자신을 내던지는 약속을 하는 것은, 과거-현재-미래라는 시간 규정으로 구성되고 있는 우리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중요한 밑거름이다. 
-226p.


첫째,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 - 성악설이나 성선설은 인간이 지닌 상충적 패러독스를 담아내지 못한다. 인간은 그 누구나 선한 품성과 악한 품성을 한꺼번에 담고 있는 존재. (...) 그렇기에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자신은 무론 타자의 악한 품성이 작동하는 현실에서 살아가야 함을 의미. 악한 품성이 개인적 또는 제도적으로 작동할 때의 결과는 가해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폭력적.
둘째, 인간은 타자들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
셋째, 인간은 다양한 제도들과 연계되어 살아가는 제도적 존재.
이러한 인간의 세 가지 삶의 조건은 언제나 각기 다른 종류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존재하게 되는 현실을 만들어낸다. 
-229p.


용서란 불의한 일들을 묵인하거나 망각하는 것이 아니며, 또한 용서를 한다고 해서 불의한 일들 때문에 발생하는 분노마저 없애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 
-230p.


1월의 영어 말 'January'는 과거와 미래, 전쟁과 평화, 종국과 시작 등 현실 세계의 다양한 두 축을 상징하는, 두 얼굴의 야누스Janus라는 신의 이름을 담고 있다. 1월은 달력의 크로노스적 시간을 통해서 의미의 시간인 카이로스적 시간을 생각하게 하는 야누스적 시기인 것이다. (...) 달력 속의 새해가 과거의 어둠을 물리치고 전적인 새로움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착각을 하게 만드는 것. 1월의 시작은 이렇게 삶의 기적과 새로움을 향한 막연한 기대 속에 우리를 붙잡아놓는다.
-238p.


달력 속의 크로노스적 새해는 생물학적 탄생처럼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오는 것이지만, 카이로스적 시간인 의미의 새해는 나 자신의 철저한 의지, 개입, 열정으로만 가능할 뿐이다. 나의 새해, 즉 카이로스적인 의미의 새해를 진지하게 성찰해야 하는 이유이다. 
(...)
첫째, 내면적 탄생성에 대한 믿음. 우리는 종종 자신이 자기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 사람 속에는 무수한 결들이 있으며, 그러한 결들을 모두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기에 새로운 존재로의 가능성이 있다. 새로운 시작이 언제나 가능하다는 존재의 탄생성에 대한 믿음을 굳건히 지녀야 하는 이유이다. 
둘째, 가능성을 향한 지순한 열정. 믿음은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님.
셋째, 자신의 새로운 삶을 믿는 것에 근거한 미래를 향한 희망. 미래는 단순히 과거의 반복이 아니다. 미래를 계획하고 추측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미래라는 세계는 나의 계산과 계획에 따라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계산과 예상을 넘어서는 새로운 미래, 새로운 나의 탄생을 끈기 있게 희망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한 이유.
-242p.


'보편적 대안'은 없다. 그 누구도 모든 정황에 맞는 보편적 대안이나 해답을 제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이들은 자신의 개인적 삶에서조차 자신이 아닌 타자가 제시하는 대안에 목말라한다. (...) 보편적 대안이 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이 바로 모더니즘적 사유의 결정적 한계이다. 보편적 대안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 바로 '거대 서사grand narratives'이다. 보편적 대안으로서의 '거대 서사'는 많은 경우 이미 이 세계의 중심부에 있는 사람들의 위치를 강화시키고 그들의 권력과 권위를 강화하고 확장하는 데 기여해왔다. 
(...) 그러나 현대 세계에서 나에 대한 타자의 식민화는 매우 은밀한 방식으로 진행되기에 스스로 인식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스스로 사유하는 '고독의 시간과 공간'을 가지기를 회피한다면 외부 세력이 나를 대신하여 내 삶의 방향과 대안을 결정하게 하는 '식민화'의 문을 열게 된다. 
-276p.




k******5 2017.01.0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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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순의 정의를 위하여를 읽고
"강남순의 정의를 위하여를 읽고" 내용보기
오늘날 정의란 무엇인가? 정의를 위하는 삶은 무엇인가? 에 대해 단순한 관심 뿐아니라 모든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사실 지금까지 내가 읽어본 책들이며 세미나와 같은 강의들은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의 지평만 넓혀 주려는 시도일뿐 그 대안이나 우리가 과연 무엇을 해야하는가에 대해서 시원함은 주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얼마전에 읽은 권석천의 "정의를 부탁해"에서 그는
"강남순의 정의를 위하여를 읽고" 내용보기

오늘날 정의란 무엇인가? 정의를 위하는 삶은 무엇인가? 에 대해 단순한 관심 뿐아니라 모든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사실 지금까지 내가 읽어본 책들이며 세미나와 같은 강의들은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의 지평만 넓혀 주려는 시도일뿐 그 대안이나 우리가 과연 무엇을 해야하는가에 대해서 시원함은 주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얼마전에 읽은 권석천의 "정의를 부탁해"에서 그는 아주 날카로운 필체로 이렇게 적고있다. "정의는 사람이 내세우는 가치중 가장 떳떳한 것에 속한다. 그러나 무서운 무기이기도 하다."(권석천,2015)  

그러나 지금 우리는 정의를 우리가 내세우는 가치중 가장 떳떳한 것이라고 말할수 있는가?

우리가 정의라고 말하는 것에 우리의 마음을 담고 몸을 맡겼을 때 그것이 무서운 무기일수 있는가.

 

필자는 강남순의 "정의를 위하여"라는 책을 통해서 정의를 위한 삶은 무엇인가? 과연, 그것이 우리에게 무서운 무기가 될수 있겠는가? 생각해본다. 저자는 현대 사회가 지닌 가장 위험스러운 악의 양태는 비판적 사유의 결여 라고 말하고 있다. 비판적 사유야 말로 악을 최소화 시키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주어진 관습과 편견 경쟁과 통제적 제도에 끊임없이 저항하는 정치적 행위라고 말한다.

 

이러한 정치적 저항은 결국 자유를 지닌 존재로서 살아있음을 향유하는데, 살아있는 존재야 말로 희망과 소망의 끈을 이어가는 존재이며 정의로운 삶을 사는 존재가 된다. 그러므로 정의로운 삶을 위한 열심은 곧 비판적 사유에서 시작된다. 

무엇을 비판하여 무엇을 사유할것인가? 여전히 우리의 삶 주변에는 갑을론, N포세대, 인권 유린과 학대, 폭력들이 즐비해있다. 어떤이들은 젊은이들을 향하여 달관세대라고 까지 말한다. 청년들이 현실을 여행이나 그들의 즐기는 문화에 빠져 그져 인생을 향유하고 달관한다고 한다. 젊은이들의 절망과 실패의 경험은 이들을 철저히 고립시키고 게토화되어 분노사회가 만들어 지고 있다.

이러한 사회 문제의 중심에서 정의를 위한 삶은 무엇인가?

 

저자는 이러한 삶의 현상들은 결국 '나선형적 소통방식'을 통해서 성숙한 사회로 나아갈수 있음을 제시하고 있다. 즉 서로가 지닌 인식의 한계들을 넘어서고자 하는 비판적 문제제기를 인내심을 가지고 서로 주고 받으며 함께 나아가는 방식말이다. 저자는 표현과 해석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그 다양성속에서 사회적 연대와 책임의 가치를 모색하는 비판적 문제 제기들에 귀를 기울이면서 야만과 지성의 그 정교한 경계를 구분해야한다고 말하고 있다.

 

오늘날 비판적 사유의 결여는 소통의 부재에서 나온다고 볼수 있다. 그러니 점차 우리네 삶은 고립되어 희망보다는 절망과 분노로 치닫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비판적 사유를 함께 존중하고 대화하는 소통의 방식을 제안하고 있다. 사회적 약자와 연대하고, 표현과 해석의 자유를 존중해주는 문화, 사회의 문제들을 풀어감에 있어서 비판적 문제제기를 통해서 좋은 시민사회를 만들어 갈수 있다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저항하는 존재로서 정의를 실현하는 방식이다. 비판적 사유와 소통 그리고 공동체적 연대 비판적 사유와 공동체적 연대를 이어주는 것은 소통인 셈이다. 그것이 저항하는 존재로서 정체성을 갖게한다. 그때 우리의 정의는 '우리에게 있는 가장 떳떳한 가치이며 무서운 무기'가 될것이다.

 

 

YES마니아 : 로얄 c******i 2016.08.2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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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에 대한 다각적 원칙
"정의에 대한 다각적 원칙" 내용보기
정의에 대한 저자의 다양한 시선이 돋보인다. 정의가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의 희생을 배경으로 하는것이라면 단호하게 거부해야 한다는것이 저자의 말. 예컨대 노동문제나 통일문제 해결을 위해 여성의 인권을 억압하는 상황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한다. 근대적인 의미의 평등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인데, 사회적 정황과 상관없이 표면적이고 기계적 균형을 내세울 경우 나타날 수 있는
"정의에 대한 다각적 원칙" 내용보기

정의에 대한 저자의 다양한 시선이 돋보인다. 정의가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의 희생을 배경으로 하는것이라면 단호하게 거부해야 한다는것이 저자의 말. 예컨대 노동문제나 통일문제 해결을 위해 여성의 인권을 억압하는 상황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한다. 근대적인 의미의 평등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인데, 사회적 정황과 상관없이 표면적이고 기계적 균형을 내세울 경우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들에 대하여 지적하고 있다. 


다만 신문에 기고한 칼럼의 모음이라 글의 전체적 일관성과 통일성이 떨어지는 아쉬움이 있다.


p*****5 2016.12.2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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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에 화두를 던지다
"이 시대에 화두를 던지다" 내용보기
책은 인문학적 성찰이 곧 비판적 저항을 낳고, 그 저항이 정의의 확산으로 연결됨을 말한다. 그러면서 우리가 해야 할 저항을 네 가지 차원에서 제시한다. 정치적 저항, 사회적 저항, 종교적 저항, 그리고 윤리적 저항이 바로 그것이다. 정치, 사회, 종교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 우리 삶의 내용이 결정되며, 또 역으로 우리 개개인의 삶이 정치, 사회, 종교의 변화에 영향을
"이 시대에 화두를 던지다" 내용보기
YES마니아 : 로얄 h*****h 2016.12.2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