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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소감에 "해리포터 읽는 줄"이라고 적은 이유는. 마치 소설을 읽는 것처럼 재밌었기 때문이다. 작가의 위트 넘치는 문장에 미소지었던 순간이 너무 많았다. 나는 책을 천천히 읽는 편이라, 이 책을 읽는데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걸렸는데, 그 일주일 동안 너무 즐겁고 행복했다. 이 책이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 가장 공감이 되었던 건, 정신병을 가진 아내와 살아가며 가졌던, 갈등. 고뇌. 수치심. 그런 것들이 나에게 위로가 되었다. 나에게 동일한 문제가 있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유명하고 대단한 사람도, 고통의 문제와 씨름한다는 것 자체가, 그냥 위로가 되었다. 정말 참 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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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한 3주 전인가? 친한 언니들이랑 점심을 먹고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다가 한 언니가 갑자기 요더의 비폭력 평화주의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평소 요더의 품행에 대해 안 좋게 생각하던 터라 그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냈다.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그 말은 신뢰할 수 없다고 평소에 생각했던 터였다. 그런데 그 날 집에 돌아와서 마침 조금씩 읽고 있었던 이 책, "한나의 아이"를 폈는데, 여기에서 저자 하우어워스가 요더에 대해 칭찬 일색의 평을 늘어 놓는 것이다. 이 책을 거의 다 읽어가는 지금 시점까지 하우어워스는 요더에 대해 좋은 평을 그만두지 않았다. 그의 사상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으며, 그를 알고 나서부터 그의 좋은 친구였던 것이다. 물론 요더의 말년의 인격적 결함도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내세운 비폭력 평화주의까지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러면서 일침을 놓기를 요더를 비난하는 사람 중에 그의 글을 읽어보지도 않고 비난하는 사람이 많다고... 순간 뜨끔했다. 그리고 꼭 기회가 되면 요더의 책들을 읽어보리라 결심했다.
한나의 아이는 읽기 전부터 엄청나게 많은 광고를 들었다. 주위에 아는 사람들이 이 책을 많이 선전했고, 또 사실 그 전부터 인터넷 기사에서 하우어워스의 간증 비슷한 것을 읽어서 큰 감명을 받았던 터라 이 책을 꼭 읽어보고 싶었다. 아직 그의 저서를 읽어본 적이 없고, 그의 자서전부터 읽는 것이 좀 웃긴 일이긴 하지만, 그의 인생이 정말 쉽지 않고, 그 삶을 훌륭하게 살아내고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이 자서전에 관심이 갔다. 정신병이 있는 아내를 24년간 같이 살면서 그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암튼 이 책을 읽으면서 기억에 남는 것은 다음과 같다.
1. 요더의 책은 꼭 읽어보자. 적어도 <예수의 정치학>
2. 앤서니 트롤럽의 소설도 읽어보자. 그의 인생의 책인 듯.
3. "우리의 삶이 우연적이라는 말은 우리의 통제를 벗어나 있다는 의미다" p254 '통제를 벗어난 상태'는 자신의 책 <평화의 나라> 및 그의 저작의 상당 부분을 관통하는 중심 이미지라고
4. 아들 아담이 브로드웨이교회에 입교하게 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참 감동적이었다. 심한 정신병을 앓고 있는 엄마를 둔 아담은, 이미 사는 것이 너무 힘들었고, 자기가 어떻게 책임을 더 맡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며 교회와 언약을 맺는 것을 망설였다. 하우어워스는 이를 자기가 설득하지 않고 담임 목사와 상담토록 하였다. 목사님을 만나고 나서 언약을 맺기로 한 아담이 한 말이다; 목사님이 자기 얘기를 공감하며 들어 주셨고 본인도 그렇게 느낄 때가 종종 있다고, 자신도 사람들의 기대에 다 부응할 수가 없다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존은 아담에게 아버지를 실망시킬까 염려하지 말라며, 그보다 혼자서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교회의 일원이 됨으로써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받는 법을 배워야 줄 수도 있게 된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하우어워스는 지혜로운 목회자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p 265
5.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은 답 없이 사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이렇게 사는 법을 배울 때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은 너무나 멋진 일이 된다. 신앙은 답을 모른 채 계속 나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p375
6. 우리는 흔히 부부관계의 본질을 우정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 결혼의 근거는 우정이 아니라 두 사람이 서로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서로와 하나님 앞에서 한 약속이다. 그런 약속은 우정에 좌우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약속에 힘입어 여러 모험을 감수함으로써 우정이 가능해진다. p400
7. 마지막으로, 아마 가장 감동적인 대목이 될 수 있는 부분이다. 그의 첫번째 아내인 앤이 드디어 그의 곁을 떠나고, 그녀가 아픈 몸으로 혼자 있는 것에 그가 힘들어 하자, 그의 친구 존 웨스터 호프가 한 말이다.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녀와 함께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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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의 아이', 500페이지 정도 분량의 책이라 부담이 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자 스스로 말한 것과 같이 마치 소설처럼, 하나의 이야기처럼 자신의 인생 전반을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서 전달해 주고 있어 끝이 나는게 아쉬웠다. '스탠리 하우어워스'는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자 신학자라는 생각이 든다. 그가 하나님을 만나는 것, 사람을 만나는 것, 학문을 하는 것, 살아가는 것 등 그 모든 것 중에 어느 것하나 '스탠리 하우어워스' 답지 않은 것이 없다. 마치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한 사람으로 사는 것이 아니겠는가하고 도전하는 듯하다. 전체 내용을 관통하는 것은 '스탠리 하우어워스'라는 한 신학자가 그리스도인으로 인식하고 변해가는 한 일련의 이야기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인생에 대한 회고를 통해 정형화된 신학(학문)을 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신학을 해도 괜찮다고 더 넓은 한 지경으로 손짓한다. 그것은 굉장히 강한 유혹이다. 특별히 그가 아내였던 '앤'의 외로운 죽음으로 상기되는 설명하기 어려운(혹은 하지 못하는) 난제들에 대한 생각을 말하는 내용이 인상깊었다. "나는 기독교 신학자다. 사람들은 내가 그런 질문에 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른다. (중략) 그러나 내가 볼 때,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은 답 없이 사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이렇게 사는 법을 배울 떄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은 너무나 멋진 일이 된다. 신앙은 답을 모른 채 계속 나아가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page.375)" 어저면 그는 인생에서 많은 것들을 이룬(또 이루어 내고 있는), 성공한 인물이기에 이렇게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의 이 한 마디에 다시 한 번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가,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이 내 삶에서 어떻게 표현되어 지는가에 대해 강력한 질문을 던지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러한 질문을 통해 위로를 얻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확신한다. 2017년 '스탠리 하우어워스', 한나의 아이를 만나보는 것은 참 의미있는 일이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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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넘나드는 독서를 통해 올바른 신학을 정립하기 위해 노력한 신학자, 벽돌 쌓는 일을 어렸을 때부터 해 오며 부지런한 습관이 몸에 밴 신학자, 정신병을 앓고 있는 아내를 10년 넘게 곁에서 돌보며 계속 해서 책을 읽으며 버터낸 신학자, 계속 해서 글을 쓰면서 믿고 있는 바를 표현한 신학자, 카톨릭과 기독교를 넘나들며 신학을 공부한 신학자, 세계적인 기독교 윤리학자인 스탠리 하우어워스의 신학적 회고록, 에세이 형식의 자서전의 성격을 띤 책이다. 나는 그리스도인들이 수 세기에 걸친 유대인 박해를 통해 쇼아(홀로코스트)로 가는 길을 닦았을 뿐 아니라 유대인 살해에 공모했다는 사실을, 기독교가 진실성의 요구를 만족시키지 못했다는 결정적인 증거로 받아들였다.(109) 어떤 사상가들의 저작을 잘 '사용'하려면 매일 그들과 함께 살 필요가 있는데, 나는 키르케고르가 그런 사상가 중 한 명이라고 진즉에 결정을 내렸다. 그런 뒤에 키르케고르가 아닌 다른 이들과 함께 살기로 결정했다. (113) 나는 논문을 쓰기 시작했다. 많은 시간이 있어야 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30분만 주어지면 나는 뭔가를 끝낼 수 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글을 썼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데, 이것이 나의 방법이다. 나는 조적 일에서 배운 대로 쓴다. 비가 오기 전에 일을 끝내야 하기 때문에 부지런히 일하는 것이다.(168) 내가 계속 쓸 수 있었던 것은 계속 읽었기 때문이다. 앤의 병 때문에 읽기는 내게 더욱 중요한 것이 되었다. 저녁 식사 후, 애덤이 자러 가면 앤도 자기 세계로 들어갔다. 뭔가 일을 벌일 때도 있고 자러 가기도 했다. 그러면 내게 남는 것은 읽는 일뿐이었다.(249) 나의 글쓰기가 탐색적인 이유는, 내가 믿는 바를 글로 표현하기 전에는 나도 내가 무엇을 믿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내게는 글을 쓰는 것이 믿음을 확인하는 방법이다. 나의 글쓰기가 주로 에세이 형태로 이루어지는 것은 내 작업의 탐색적 성격 때문이기도 하고, 내가 맡은 다른 책임들 때문에 에세이 정도가 늘 '적당해'보였기 때문이기도 하다.(253) '복음에 비추어'라는 말은 하나님 예배함을 배우는 것이 내 삶의 관건임을 말해 준다. 어떤 이들은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예배하게 되는 것 같은데, 나의 경우는 그렇지가 않다. 나는 많은 부분에서 마치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살아간다. 하지만 나는 교회의 기도로 기도하는 법을 배운 친구들의 기도가 없었다면 내가 살아남지 못했을 것임을 안다.(292) 교회 앞에 놓인 많은 요구 사항을 고려할 때, 신학이 전문직의 학문으로 규정되는 것을 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344) 하나님의 백성이 모여서 하나님을 예배해야 한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윤리'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에 중요한 의미가 있을 뿐 아니라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고려할 수 있는 적절한 맥락을 제공한다. 이런 면에서 "예배 중 인사를 나누는 것"의 중요성에 대한 하먼의 강의는 고전이라 할 만했다.(354)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은 답 없이 사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이렇게 사는 법을 배울 때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은 너무다 멋진 일이 된다. 신앙은 답을 모른 채 계속 나아가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시킨 것이긴 하지만, 적어도 이런 주장은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이 내게 지독히도 흥미진진하게 다가오는 이유를 이해하게 해 준다.(3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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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의 아이, 정답없는 삶속에서 신학하기> 내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