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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저명한 심리학자들의 평전을 즐겨 읽는 편이다. 프로이트, 융, 스키너, 롤로 메이, 매슬로, 아들러, 에리히 프롬 등의 평전을 읽었다. 국내에는 프로이트와 융을 제외하고는 다른 심리학자들의 평전을 찾아보기 힘들다. 꿩 대신 닭이라고, 일본의 아들러 심리학 권위자인 기시미 이치로가 쓴『아들러 심리학을 읽는 밤』(살림, 2015)으로 아들러 평전을 대신할 수 있고, 마찬가지로 프롬의 제자 라이너 풍크(Rainer Funk)의 『내가 에리히 프롬에게 배운 것들』(갤리온, 2008)로 프롬의 평전을 대신할 수 있겠다. 이 한 권으로 프롬의 생애와 사상까지 한눈에 일별할 수 있기에 추천한다. 어려운 전문용어를 남발하지 않고 프롬의 인본주의 심리학을 최대한 쉽게 풀어서 설명하고 있다. 에리히 프롬은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비판적으로 통섭하여 인본주의 사회심리학의 기초를 마련한 '유대계' 정신분석학자다. 내가 특별히 '유대계'를 강조한 이유는 프롬의 사상적 연원을 따지고 들면 마르크스, 프로이트, 스피노자, 아인슈타인 등 유독 유대인 출신의 사상가들이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이들의 영향으로 프롬의 사회심리학은 계몽주의와 인본주의, 그리고 평화적 국제주의와 낙관적인 사회주의 사상 등의 특색을 띤다. 라이너 풍크는 프롬이 강조한 삶의 기술을 '직접적인 만남'으로 요약한다. 직접적인 만남은 소유를 벗어나 존재로 넘어가는, 인간다움을 확보하고 실현하는 기술의 굳건한 발판으로, 자신과 타인, 사물과 세계를 대하는 프롬의 일관된 '아르스 비벤디(ars vivendi)', 즉 인생의 기술이었다. '직접적인 만남'이란 어떤 고정관념이나 선입견, 개념, 상상, 불합리한 느낌, 충동, 격정으로부터 자유로운 만남을 뜻한다. 이런 것들은 만남을 가로막고 속박하는 장애물이다. 직접적인 만남은 자유롭게 아무런 매개 조건 없이 직감하며 순수하게 의지하는 만남이다. 또한 우리 자신 혹은 상대방의 감성과 열정에 충실한 만남이다.(37쪽) 프롬의 사회심리학은 개인 성격과 사회 성격을 구분하고, 개인의 잠재의식과 사회의 잠재의식을 구분한다. 사회 성격은 어떤 사회 그룹의 성원들 대부분이 갖는 성격 구조의 모태이자 핵심이다. 사회 성격 지향성은 그 사회의 경제와 문화 등을 유지하고 존속하는 데 필요한 것들을 욕구하고 요구하는 쪽으로 맟춰진다. 개인의 잠재의식이 특정한 경험을 한사코 감추려 드는 것처럼, 사회 잠재의식은 억압처럼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쉬쉬하며 감추는 것이다. 즉 사회 잠재의식은 한 사회가 그 안에 여러 모순이 있음에도 원활하게 돌아가기 위해 구성원들이 의식하지 말아 줬으면 하고 강제하는 내용들이다. 이런 억압된 내용들은 대개 언어, 논리, 사회금기 같은 사회적 필터로 여과된다. 삶의 길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즉 관건은 지향성이다. 프롬은 어느 쪽으로 가야 우리가 가진 인간적 잠재력이 온전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을지 탐구했다. 그 결과 생산적인 길과 비생산적인 길을 구별하면서 우리로 하여금 생산적인 지향성을 선택하고 비생산적인 지향성은 버릴 것을 주장했다. 생산적인 지향성을 선택해야 성공한 인생을 누릴 수 있다. 프롬이 말하는 성공한 인생이란 자신과의 직접적인 만남을 통해 이성과 사랑을 실천에 옮기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인간 성공의 조건으로 사회 성격 지향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즉 현재의 지배적인 사회 성격 지향성이 인간의 성공에 도움이 되는지 아니면 방해가 되는지를 강조한 것이다. 정리하자면, 직접적인 만남, 사랑과 이성의 힘, 생명애, 존재로의 지향 등이 바로 생산적인 삶의 길을 걸어갈 때 필요한 것들이다. 개인 차원을 떠나서 심리적으로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도 이러한 생산적인 지향성이 사회의 주도적인 성격 지향성으로 작용해야 한다. 비생산적인 길을 걷게 되면 인간의 진정한 성공을 그르치는 이른바 '일상성의 병리학'에 사로잡히게 된다. 프롬은 모든 생명체는 성장하고자 하는 '일차적인 성향'이 있다고 주장했다. 일차적인 성향이란 모든 생명체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내면에서 우러나는 자발적인 능력을 뜻한다. 이런 일차적인 성향이 억눌리거나 좌절될 때 부차적인 성향이 자라나게 되고 인간의 정신은 병이 든다. 부차적인 성향은 무감각, 의욕 상실 등으로 시작해 증오나 폭력 같은 파괴적인 형태로까지 발전한다. 파괴적인 행동은 성장이 방해를 받아 나타나는 필연적인 결과이며, 파괴성의 정도는 인간의 잠재적 가능성이 가로막힌 정도에 비례한다. 신경증, 권위주의, 사디즘, 마조히즘 등이 대표적인 파괴적 행동인데, 프롬은 사회심리학적 측면에서 가학피학적 성향인 사도마조히즘이 권위주의, 파시즘, 나치즘의 토대라고 지적했다. 이런 파괴적 행동은 죽음과 죽임에 이끌리는 파괴적 성향인 '네크로필리에'의 사례이기도 하다. 프롬은 『인간이 갖는 파괴성의 해부학』에서 나치 정권의 이데올로기와 체제, 그 파괴적 성향이 보여주는 다양한 측면들을 네크로필리에의 사례로 분석한 바 있다. 가학을 일삼는 사디즘과 자학을 즐기는 마조히즘은 권위적인 인간 안에 공존한다. 사람들은 어느 한쪽만 의식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디즘과 마조히즘은 서로 역할을 나누어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예컨대 남을 떠받드는 사람은 가혹할 정도로 자기 자신을 몰아 세운다. 그리고 자신보다 밑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사디즘의 칼을 휘두른다. 특히 상대가 상사나 신 혹은 운명 등에 꼼짝하지 못할 때, 사디즘은 더욱 광포해진다.(163쪽) 인간이 가진 고유한 힘은 생각과 감성, 행동에서 각각 생산적 이성, 생산적 사랑, 생산적 노동으로 나타난다. 생산적 이성이란 현실을 이성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이고, 생산적 사랑이란 사랑으로 관계를 이끌어가는 능력이며, 생산적 노동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창조적으로 꾸미는 능력이다. 차례대로 좀더 풀어보자. 생산적 이성은 인간의 주체성이 혼연히 발휘된 가운데 객관적인 현실을 포착하려는 데서 가장 잘 드러난다. 여기서 객관성을 확보한다는 것은 아무런 관심도 없이 냉담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체가 대상을 열정적인 관심을 가지고 존중하고 배려하는 태도를 말한다. 생산적 사랑은 다른 사람을 돌보려는 마음과 책임감, 상대를 향한 존경심과 모든 것을 함께 나누려는 이해심, 이웃 사랑과 자기 사랑의 합치, 서로 나눌 줄 아는 마음과 자신을 열어 보일 줄 아는 자세, 경청할 줄 아는 자세, 상대를 신뢰하는 자세와 같은 성격 특징을 갖는다. 생산적 노동의 원형은 우리가 솜씨나 재주로 여기는 것으로, 돈을 벌기 위한 행동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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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서인만큼, 우선 번역에 대해 말하자면, 상당히 편안하게 읽히는 문체이며 잘 된 번역일 것이라는 신뢰감을 준다. 역자 후기는 2004년으로 돼 있는데, 원서가 그보다 늦은 2007년 발행된 것으로 돼 있다. 원서의 출판사와 출판연대가 스티커로 덧붙여 있는게 좀 이상하다. 원저의 발행연도에 대한 출판사의 별도 설명은 없다. 2004년 번역한 후에 2007년 개정본이 나온 것일까? 그렇다면 개정본이라는 설명이 있어야 할텐데...
내용은 매우 쉬우면서도 유익하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이 책의 큰 장점인 것 같다. 저자가 오래동안 프롬의 비서역을 하고 출판유산 관리를 맡은 사람 답게, 프롬 사상 전반을 쉬운 말로 일목요연하게설명해 놓았다. 프롬 입문서로서나, 프롬의 책들을 여러 권 읽고나서 중간 정리하는 수단으로서나, 프롬 사상 전체의 명료한 맥을 정리하고자 한다면 유익한 방편이 될 것 같다.
번역자 각주가 붙어 있는 것도 유익하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에 대한 소개가 도움이 된다. 또 책 말미에 참고 논문이나 저서의 출전을 밝히는 미주, 참고문헌 목록, 인명 색인 등이 붙어 있어서, 전공자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