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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음식은 좋은 그릇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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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 아직 이 책의 1/4 밖에는 읽지 못했지만 다른 구매자에게 참고가 되어야겠다는 의무감으로 이 리뷰를 쓴다.     외서의 경우에는 내용도 중요하지만 번역도 매우 중요하다.   불과 100페이지도 못되는 내용을 보면서 같은 문장을 읽고 읽고 또 읽고 음미한 적이 몇번이던지...     역자는 화려한 번역의 경력이 있는 분이기는 하지만 최소한 이번만큼은 능력에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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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 아직 이 책의 1/4 밖에는 읽지 못했지만

다른 구매자에게 참고가 되어야겠다는 의무감으로 이 리뷰를 쓴다.

 

 

외서의 경우에는 내용도 중요하지만 번역도 매우 중요하다.

 

불과 100페이지도 못되는 내용을 보면서

같은 문장을 읽고 읽고 또 읽고 음미한 적이 몇번이던지...

 

 

역자는 화려한 번역의 경력이 있는 분이기는 하지만

최소한 이번만큼은 능력에 부치는 책을 번역했거나

시간에 쫓기며 번역을 한듯 하다.

내용은 거의 직역수준으로써 솔직히 책을 내놓으면서 부끄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을지...

문장 하나 하나가 모래알처럼 따로 놀아서 붙여 놓고 보면

이게 한 사람이 한 소리인지 신문지를 꼴라주해서 모아 놓은 글인지

헷갈린다.

 

 

예전 촘스키의 '숙명의 트라이앵글'보다는 덜 심하지만

이정도면 출판사의 양심을 의심해 볼만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부족한 탓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을 구매하고자 하는 사람은 50페이지정도는

서점에서 읽어보고 판단하시기를 권장한다.

 

b*****t 2008.08.11. 신고 공감 5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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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에서 법인의 성격에 대해서
"자본주의에서 법인의 성격에 대해서" 내용보기
책내용의 상당부분이 시민으로서의 나와 소비자/투자자로서의 나사이에 발생하는 충돌에서, 항상 소비자/투자자부분이 승리하면서 발생하는 현대 자본주의의 문제점에 대한 기술에 대한 내용이지만,   이 책의 핵심은 우리가 지금까지 너무 소비자/투자자로서의 가치에 집중해 온 나머지 공동체 민주주의의 시민으로서 덕성이 부족했다. 따라서 그걸 더욱 가꾸어 나가자.   이런게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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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내용의 상당부분이 시민으로서의 나와 소비자/투자자로서의 나사이에 발생하는 충돌에서, 항상 소비자/투자자부분이 승리하면서 발생하는 현대 자본주의의 문제점에 대한 기술에 대한 내용이지만,

 

이 책의 핵심은 우리가 지금까지 너무 소비자/투자자로서의 가치에 집중해 온 나머지 공동체 민주주의의 시민으로서 덕성이 부족했다. 따라서 그걸 더욱 가꾸어 나가자.

 

이런게 아닙니다!

 

이 정도의 내용이었으면, 일반적으로 흔히 나오는 좌파경제학의 주장과 별반 다를바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 책의 거의 후반부에 나오는 내용을 보면 좌파경제학의 주장과 완전히 상반되는 부분도 다수 있습니다. 특히 법인세 폐지같은 부분은 시카고 학파도 감히 주장하지 못했던 내용입니다.

 

하지만 이 법인세 폐지는 자유주의 관점의 공급경제학에서 말하는 법인세 감면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이 주장의 핵심은 세금에 대한 의무를 법인이 아닌, 법인을 구성하고 있는 주주들에게 직접적으로 물리자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법인들이 현금유보를 유도하는 현행 제도를 바꾸고, 법인이라는 가면뒤에서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투자자들이 납세자로서의 책임을 지우자는 예깁니다.

 

법인은 권리나 의무를 가지고 있는 실체가 될 수 없으며, 이러한 것들은 법인을 구성하는 각 개인에게만 부여될 수 있는 것이라는 거죠. 법인에게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면서, 실제로는 아무것도 가져오지 못하는 쓸데없는 캠페인들을 중단하고, 실질적으로 법인이 사회적으로 기여할 수 있도록 ( 그 법인을 구성하는 주주들에게 개별적으로 납세하고 책임을 지는 제도를 도입함으로서 ) 하는 실질적인 사회제도를 만들자는 겁니다.

 

서구에서는 이미 실질적인 자본주의 개혁차원에서 상당부분 논의되고 있는 내용인데, 한국에서는 좌파경제학과 극우파 공급경제학과의 충돌로 인해, 단순히 세금을 더 걷자 덜 걷자 이상의 논의가 안되는 상황입니다. (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한국의 좌파경제학은 무능하다고 밖에 표현할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공급경제학파의 신자유주의 역시 그 무능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으나, 도덕적 우위를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는 좌파 경제학 조차, 한심한 수준의 신자유주의자들에 비해서 한치도 다르지 않은 수준에서 놀고 있습니다. )

 

그런 측면에서 이책의 전반부 전체 5분의 4을 차지하는 내용이 중요한게 아니라

후반부 5분의 1을 차지하는 법인격에 대한 혁신적인 개혁안에 대해서 한국에서 보다 심도깊은 논의가 필요합니다.

 

법인에게 도덕적/사회적 책임을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되는 예깁니다. 돈을 벌기 위해 제도를 만들어 놓고서, 애초에 고려조차 되어있는 도덕심과 책임감을 요구하다니요. 말도 안되는 예기죠. 변화를 원한다면? 제도를 바꾸는게 정답입니다. 아무런 도움이 안되는 사회적 책임 펀드나 시민단체 캠페인말구요.

a*****z 2008.08.16. 신고 공감 2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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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값 못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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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제값을 하는지 그렇지못하는지도 상당히 중요하다,그런 관점에서 이 책을 평가하자면 한번 읽고 기억 속에서 잊혀질 가벼운 책이라 생각한다,   서프라임모기지론으로 전세계가 경제공황에 시달릴 이때 슈퍼자본주의라는 큰 제목으로 자본주의에 잠식당한 현재 상황을 낱낱이 알려줄 것만 같은 제목을 달고 나왔지만 막상 내용은 별거아닌 그래서 책의 3/1만 읽어도 그 내용이 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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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제값을 하는지 그렇지못하는지도 상당히 중요하다,그런 관점에서 이 책을 평가하자면 한번 읽고 기억 속에서 잊혀질 가벼운 책이라 생각한다,

 

서프라임모기지론으로 전세계가 경제공황에 시달릴 이때 슈퍼자본주의라는 큰 제목으로 자본주의에 잠식당한 현재 상황을 낱낱이 알려줄 것만 같은 제목을 달고 나왔지만 막상 내용은 별거아닌 그래서 책의 3/1만 읽어도 그 내용이 뻔한 별로 추천해주고 싶지않은 책이다,

 

이 책에서의 동어반복적으로 나오는 내용이 2차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1945년도부터

1970년대까지가 미국의 중상층들이 늘어나는 경제황금기였으며 그것은 민주주의적 자본주의의 시스템이 서로 잘 작동해서 거대 독점 몇몇의 기업과 정치인들 그리고 노조가 함께한 결과로인한 안정된 시장을 형성할 수 있었다는 내용이고

 

 1970년도 이후부터는 소련과의 냉전의 산물인 새로운 기술들의 개발로인해 시장을 독점했던 소수의 기업들이 이젠 그 틈새를 끼어드는 작은 기업들로인해서 새로운 경쟁질서가 만들어져 이미 1970년도 후반부터 서서히 현대의 수퍼자본주의가 시작됐다는 주장을 게속펴는데 이게 이책의 내용의 핵심이다,

 

현대처럼 경쟁이 치열한 슈퍼자본주의는 이익만을 취하는 기업들의 잘못도 아니고

정치적 시스템의 오류도 아닌 공공의 사회적 이익에 관심을 두는 시민으로서가 아니라 투자자-소비자로서 더 많은 수익을 올리려는 투자자-소비자로 전락한 우리의 이중적인 모습이 결국은 슈퍼자본주의를 득세하게 만들었다는  그래서 우리 모두 공범이라고 이 책에서 말한다,

 

그렇다 우린 투자자-소비자로 이미 전락해버렸을지도 모른다,음식을 사 먹더라도 깨끗한 패밀리 레스토랑이나 외국계 커피 체인점이나 대형서점 또는 인터넷에서 상품들을 최대한 싼값에 구입하고 돈 몇 천원을 아꼈다고 흐믓해한다,그러는 사이 영세 소매점이나 가격경쟁에서 밀려난 우리 이웃들인 수퍼마켓등은 점점 우리 주위에서 사라지고만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펀드니 주식이니 수익을 크게 올릴 수 있는 금융상품에 돈을 투자하고 자신이 투자한 기업들이 큰 수익을 내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투자하고 있는 기업이 영세업체나 서민들이 살아가기 위한 절박한 소매점,음식점들을 독식하고 있다면? 우리들은 슈퍼자본주의에 이미 공범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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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로얄 w*****d 2009.01.08.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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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은 왕이다. 그럼, 왕을 모시는 하인은 누구지?
"손님은 왕이다. 그럼, 왕을 모시는 하인은 누구지?" 내용보기
<대략적인 내용 정리>    1. 황금기에 가까운 시대 - 두텁고 안정적인 중산층이 존재했고, 거대 기업과 거대 노조가 공존했으며, 예측 가능한 삶이 펼쳐졌던 시대. 대규모 생산은 생산 비용을 혁신적으로 낮추었고 기업에게 높은 수익을 안겨 주었다. 노동력이 절실히 필요했던 기업들은 그 수익을 노동자에게도 일정 부분 나누어 주었다. 노동자들은 안정적인 일자리와 완전고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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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적인 내용 정리> 

 

1. 황금기에 가까운 시대 - 두텁고 안정적인 중산층이 존재했고, 거대 기업과 거대 노조가 공존했으며, 예측 가능한 삶이 펼쳐졌던 시대.

대규모 생산은 생산 비용을 혁신적으로 낮추었고 기업에게 높은 수익을 안겨 주었다. 노동력이 절실히 필요했던 기업들은 그 수익을 노동자에게도 일정 부분 나누어 주었다. 노동자들은 안정적인 일자리와 완전고용의 혜택에 힘입어 소비를 확대했으며 이는 또다시 기업의 성장을 촉진했다. 이 단계에서 경쟁은 그리 치열하지 않았다. 대규모 생산을 할 수 있을 만한 규모의 기업들은 몇 되지 않았으니까.

단, 이 당시 소비자와 투자자들은 상대적으로 손해를 보고 있었다. 반독점에 가까운 체제 속에서는 다양한 상품을 고를 권리도, 주가 상승의 과실을 따 먹을 권리도 가질 수 없었기 때문에.

 

2. 슈퍼 자본주의로 가는 길 - 신기술과 세계화와 탈규제의 결합, 민주주의의 붕괴, 소비자와 투자자는 승리, 무너지는 노조, 전문화와 틈새 시장의 등장.

운송 수단과 통신 기술의 혁신적인 발달은 전지구적 차원의 무한 경쟁 체계를 만들어 냈다. 대형 할인점과 인터넷 시장들은 수많은 소비자의 요구를 모아 기업들을 압박하기 시작했고, 투자자들은 '펀드'라는 공동체를 만들어 기업이 '최대의 이익'만을 추구하도록 위협했다. 투자자들의 돈을 묶어 두기 위해, 기업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생산 비용을 절감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실질 임금은 점차 하락했고, 노조는 파괴되었으며, 완전고용의 꿈은 처참하게 깨져 버렸다.

---> '주가'는 기업의 모든 활동을 결정하는, 신탁과도 같은 대상이다. 하청업체들의 고혈을 쥐어짜고, 제3세계 노동력을 착취하고, 수많은 노동자를 정리해고한 비인간적인 기업들은 주가상승이라는 선물을 받는다. 노조의 활동을 인정하고, 완전고용을 위해 노력하고, 수익과 관계 없이 환경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기업들은 주가하락이라는 철퇴를 맞는다.     

 

3. 우리 안의 두 마음 - 노동자를 착취하는 월마트를 비난하면서도 보다 싼 물건을 사기 위해 월마트로 몰려가는 소비자들.

내가 사 놓은 주식과 펀드가 이익을 얻기 위해서라면, 그리고 한 푼이라도 더 싼 물건을 사기 위해서라면, 기업들이 제 3세계 국민들을 착취하거나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를 짓밟거나 환경파괴를 일삼거나 개의치 않는다. 아니, 어쩌면 무의식 중에 기업들의 그런 행위를 부추기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시민으로서의 힘을 잃고 대신에 소비자와 투자자로서의 힘을 키웠다.

---> 나이키를 신고 값싼 초콜릿을 먹고 이랜드에서 싼 물건을 사고, 이건희 사면으로 급상승한 삼성 주식을 보며 흐뭇해 하는 '나'는 시민으로서 정당한가? 부끄러운 일이다.

 

4. 압도 당하는 민주주의 - 정치계로 쏟아지는 기업의 돈, 기업의 후원을 받는 '전문가'들의 헤게모니 장악.

언젠가부터 기업에서 정치가들에게 쏟아 붓는 '로비' 자금이 천문학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국가가 돈을 들여 키워낸 검사와 판사들과 공무원들은 '변호사' 내지는 '자문가'라는 껍데기를 뒤집어 쓰고 국가가 아닌 기업을 위해 목소리를 높인다. 이들은 정책 결정의 단계에서부터 기업의 이익이 반영되도록 정치가들을 조종한다. 이 경쟁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은 극소수의 거대자본들 뿐이며, '시민'의 목소리는 정치에 반영되지 못한다.

---> 우리나라에서도 '김앤장'과 같은 기업 변호사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공무원이 되어 경제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던 사람들, 판사 검사가 되어 기업 범죄를 처벌하던 사람들이 어마어마한 연봉을 받으며 기업을 위해 일한다. 그들의 조언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정책 결정과 판결들을, 신뢰할 수 있을까?

 

5. 소외되는 정치 -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란 방패 뒤에 숨어 '정치적, 법률적 규제'를 피하는 기업들.

기업의 목적은 높은 수익과 경쟁에서의 승리 뿐이다. 사회적 책임이란 결국 수익을 높이기 위한 하나의 방책일 뿐이다. 투자자들은 수익을 악화시키는 '기업의 착한 행동'을 허용하지 않는다. 기업이 불필요한 자선을 베푸는 순간, 투자자들은 다른 기업으로 돈을 옮겨갈 것이다. 따라서 기업이 자발적으로 '공적인 책임'을 지킬 것이라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강제적인 '규제' 뿐이다. 

 

6. 슈퍼 자본주의에 대한 시민의 자세 - 자본주의의 역할은 경제적인 파이를 키우는 것. 그 파이를 나누고, 사회의 공공재를 지키는 것은 민주주의가 해야 할 역할.

기업이 정치를 장악한 슈퍼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정치인들은 권력을 유지하고 로비스트들은 돈을 번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게임의 규칙을 바꿔야 한다. 기업들이 사회에 긍정적으로 기여하길 원한다면, 모든 기업들이 동시에 지켜야만 하는 '법률적 규제'를 만들어야 한다. 만일 당신이 진심으로 노동자와 제3세계와 환경을 걱정한다면 말이다.

---> 노동자의 임금하락을 걱정하면서, 어떻게 국내 노동자의 임금과 일자리를 위협하는 중국산 제품을 선호하는가? 자영업자의 몰락을 걱정하며 왜 쇼핑은 대형 마트와 인터넷에서 하는가? 지구온난화를 걱정하며 차는 왜 SUV를 구입하는가? 정치인들은 유명 CEO의 악행을 비난하면서, 왜 그들의 행위를 불법화시키는 법률은 만들지 않는가?

 

 

<슈퍼자본주의, 나는 과연 행복한가?>

손님은 왕이다. 소비자로서의 나는 돈을 들고 있는 한, 왕과 같은 대우를 받을 수 있다. 참 좋은 세상이다. 나는 왕이므로, 공공기관과 상점과 기업에서 최고의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다. 조금이라도 서비스를 소홀히 한 하인들에게는 마음대로 큰소리를 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왕인 나를 모시는 하인들은 누구인가? 나의 욕심과 변덕과 신경질을 불평 없이 기꺼이 받아내야 하는 '하찮은' 하인들은 대체 누구인가?

 

그것은 바로 회사에서, 가게에서, 공공기관에서 힘들게 일하고 있는 나와 당신이 아닌가. 결국 나는, 왕인 동시에 하인이다.

 

그래서, 나와 당신은, 지금 행복한가?

s***a 2011.01.3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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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절대 강자가 없다는 것은 득인지 실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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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즐겨보기 시작한 "책을 말하다" 라는 프로그램이 저의 선택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슈퍼자본주의" 역시 "책을 말하다"에서 보고 도서관에서 빌린 책입니다.같이 빌린 "승자의 법칙"(이 책의 리뷰도 곧 올리겠습니다)과 번갈아보다 보니 반납일이 코 앞이라 대충 읽어버렸습니다. -_-;대충 줄거리는,모든 것이 평화롭고 유토피아를 향해 거침없이 나갈것 만 같던 20세기 중반생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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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즐겨보기 시작한 "책을 말하다" 라는 프로그램이 저의 선택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슈퍼자본주의" 역시 "책을 말하다"에서 보고 도서관에서 빌린 책입니다.
같이 빌린 "승자의 법칙"(이 책의 리뷰도 곧 올리겠습니다)과 번갈아보다 보니 반납일이 코 앞이라 대충 읽어버렸습니다. -_-;

대충 줄거리는,
모든 것이 평화롭고 유토피아를 향해 거침없이 나갈것 만 같던 20세기 중반
생활은 풍족했고, 거대 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나의 미래는 어느정도 예측가능했었고, 국가는 거대기업의 독점을 보장해주는 대신 독점의 대가로는 같이 공존하는 거대 노조와 협력으로 균형을 유지해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세상이 갑자기 모든 것이 변해버린 시대가 되었습니다.
더 이상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없으며, 순간 이윤만을 추구하는 엄청난 경쟁의 시대로 돌입하게 되는 "슈퍼자본주의"의 시대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저자는 그 첫번째 원인을 냉전 시대의 붕괴와 기술 발달(컴퓨터, 인터넷, 물류시스템...)에서 찾고 있습니다.

더 이상 노조는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을 잃었고, 경영자와 근로자의 소득 격차는 점점 안드로메다를 향해가고...

이윤 추구를 위해서라면 어떠한 것도 할 수 있는 기업, 내가 투자하는 기업이 범법행위를 저지르고 있다면 나도 공범이 되어버리지 않을까? (책을 말하다에서 패널이 한 말씀을 인용)

하지만 우리가 기업이 그렇게 행동해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왜? 우리 각자도 이윤만을 추구하게 되고 도덕성은 필요없어진거죠.
오히려 이런 기업은 매장당하는게 현실입니다.

투자자와 소비자(혹은 동일인)는 기업에게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이윤을 내도록 쥐어짜게되고 그렇지 않은 기업의 CEO는 가차없이 짤리기 마련입니다. 이에 대한 근거로 옛날에 비해 짧아진 CEO의 임기를 예로 들고 있습니다.

반대로 이윤을 내는 CEO들에겐 엄청난 연봉을 선물로 받을 수 있겠습니다만, 이러한 점들이 오히려 소득격차를 더 심화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즉 기업은 오직 저렴하고 품질 좋은 것을 찾는 소비자와 투자자들은 이런 소비자들이 찾는 기업만 투자하게 되었습니다.

또다른 현상으로 더이상 민주주의로는 자본주의 경제를 제어할 수 없는 지경이 되어 버렸습니다. 반대로 이윤만을 추구하며 살아남은 기업은 더욱 거대해지고 로비력이 강해지면서 민주주의를 지배해버리는 구조로 변했습니다.

...(안 읽은 부분은 통과~)

결론적으로 권력은 이제 시장을 지배하던 거대기업의 시대에서 소비자와 투자자로 옮겨오고 절대 강자는 없어진 사회...

현대 경제의 큰 흐름을 파악하기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논평이라기 보다 책을 말하다에서 지적한 아쉬운 점은 도덕성 회복(?) 이라는 다소 모호하고 무책임한 결론이 흠이긴 합니다만, 좋은 책임에는 틀림없는 사실!

 

* 발로 써놓고보니 독후감이라기 보담 그냥 요약이 되어버렸네요. ^^;

k****t 2008.11.0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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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의식을 다시 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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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세우기 등 오직 무한경쟁을 통해 부를 축적하여 삶의 품질을 올려보려고 하는 사고에 집착하는 현 세상사람들에게 보내는 경고장적 성격의 책이다.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시민과,투자가와,소비자와,근로자로서의 역할이 함께 주어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무한 이익을 추구하는 투자자와 소비자들의 과도한 집착으로 근로자의 삶이 악화되고 시민으로서의 역할 제한으로 함께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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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세우기 등 오직 무한경쟁을 통해 부를 축적하여 삶의 품질을 올려보려고 하는

사고에 집착하는 현 세상사람들에게 보내는 경고장적 성격의 책이다.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시민과,투자가와,소비자와,근로자로서의 역할이 함께 주어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무한 이익을 추구하는 투자자와 소비자들의 과도한 집착으로 근로자의 삶이 악화되고 시민으로서의 역할 제한으로 함께하는 사회의 의미가 퇴색되면서 그야말로 금전만능주의에 의한 공동체 의식의 결여로 삶 전체가 팍팍해져 가는 위기를 맞고 있다고 말한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시민의식을 통한 1인1표의 충실한 시행으로 1원1표의 금전중심적 권력을 제어해야 한다고 말한다.

 

요즘 우리나라 얘길 하는 것 같아 가슴에 많이 와 닿았다!

 

자본주의 앞에 슈퍼라는 말이 붙었다는 게 벌써 균형을 잃었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과점 혹은 독과점기업이 정치를 지배하고 시민을 우롱하며 나아가 소비자를 기만하므로써 오직 홀로 살아 남는 형국이라면 이는 이미 실패한 희망없는 사회의 전형적 한 모습이 된 것일 것이다

 

작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시민의식과 민주주의를 통해 제어되지 못한 자본주의의

폐해를 적나하게 보여주는 정말 좋은 책이라 생각한다!!

k******1 2008.07.1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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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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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많은 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는 체제를 일컬어 우리는 ‘자유 민주주의’라는 말을 사용한다. 자유와 민주. 포기할 수 없는 양자를 모두 수호해야 된다는 우리의 믿음과는 달리 대다수의 사회는 둘 중 어느 하나를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다른 하나를 잃는 누를 범해왔다. 오늘날은 (시장에의) 자유가 가장 중시되고 있다. 되도록 경제의 발전을 저해하는 각종 규제들을 철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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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많은 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는 체제를 일컬어 우리는 ‘자유 민주주의’라는 말을 사용한다. 자유와 민주. 포기할 수 없는 양자를 모두 수호해야 된다는 우리의 믿음과는 달리 대다수의 사회는 둘 중 어느 하나를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다른 하나를 잃는 누를 범해왔다. 오늘날은 (시장에의) 자유가 가장 중시되고 있다. 되도록 경제의 발전을 저해하는 각종 규제들을 철폐하고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는... IMF이후 살아날 줄 모르는 경제의 부흥을 위해서라도 이러한 노력이 필요하긴 하다. 하지만 경제, 성장 등을 위해서라면 희생되어도 좋다는 가치들이 정녕 우리 사회에서 필요하지 않은 것인가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지 싶다.

저자는 오늘날을 슈퍼 자본주의라는 말을 써서 지칭했다. 과거 여느 때보다도 발전한 기술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어쩌면 이는 자본주의 체제를 인류가 택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이와 같은 고도의 자본주의가 존재했던 것은 아니었다. 기업에 나름 사회적 책무를 강조하는 분위기도 있었고, 물질의 성장에 부합하는 정신의 성장도 지난 날엔 이루어졌다고 저자는 보았다. 사실 이 두 요소는 양립하기 힘들어 보일 수도 있다. 기업은 도덕적 주체가 결코 아니다. 생존을 위해서라면 이윤을 극대화해야 하는데, 사회에서 중시하는 환경 보호라든가 노동자의 안정적인 고용 따위가 때론 기업의 생존이라는 목표에 부합하지 않을 수도 있다. 실제로도 많은 기업들이 경기가 어려워질 때면 이제껏 고수해왔던 방침들을 폐기함으로써 사회의 지탄을 받았고, 사실 그러한 결정 덕분에 살아남았다. 일반 소비자라 할 수 있는 우리의 입장도 역시나 모호하긴 마찬가지다. 이왕이면 내가 이용하는 상품의 생산자가 악덕한 기업이 아니었으면 하는 막연한 마음을 가지지 않은 자는 없다. 그렇지만 특정 기업의 못된(!) 행동이 회자된다 하여 당장 그 회사의 제품을 다시는 거들떠보지 않는 단호한 행동을 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만약에 선한 행동을 위해 물건의 가격이 몰라간다면 더더욱, 차라리 더욱 낮은 가격으로 유사한 제품을 공급하는 나쁜 기업을 택하는 것이 적지 않은 소비자들의 행태이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기업들은 기업들대로 머리를 굴린다. 때때로 사회에 이슈가 될 법한 캠페인을 벌이는 기업들도 있는데, 기업의 그러한 행동 이면을 들추어 본다면 우린 더 높은 수익이라는 현실적인 이유와 만나게 된다. 정치인들 역시 법적으로 명문화함으로써 특정 행동을 금지시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나아가지 않고, 급기야 특정 기업의 로비스트가 되어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일도 잦다. 선과 악도 자본의 논리에 의해 재편되는, 자본주의 중에서도 극에 달한 자본주의가 바로 우리가 구현한 세상의 질서인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로 희망은 없는 것일까? 소수의 부자들은 더욱 부유해지는 반면 대다수는 굶주리는, 이러한 질서가 진정 옳단 말인가? 세상을 마비시키는 색깔론, 국가/경제를 위해서라면 당연히 그래야만 한다는 식의 논리. 하지만 경제와 정치는, 중첩되는 영역이 있을지언정 100% 동일한 무언가는 아니다. 많은 이들은 이 둘이 같은 것 혹은 완벽히 배치되어 어느 하나만 택해야 하는 것이라고 착각한다. 그렇지만 경제가 붕괴되면 우리의 물질적 삶이 어려운 것처럼 후자 역시 붕괴되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무언가이며, 양자 모두를 동시에 발전시킬 수 있는 길은 분명 존재한다. 우리 삶의 주체는 우리 자신임을 깨닫고 민주적인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시민인 우리 자신임을 기억하는, 기본에서부터 다시 출발해야 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러고 보면 돈이 된다는 이유로 판을 치는 폭력, 환경오염, 반노동적 정서 등의 만연은 알고 보면 우리 자신이 택한 것이다.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님을 깨닫는 것에서부터 우리의 변화는 시작될 수 있지 않을까? 너무 원론적인 것 같은 이야기임에도 공감을 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잃어버린 민주주의를 향한 향수가 짙기 때문이었다. 우리 사회가 낳은 소외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자 어디 있을까!

이달의 사락 q*****2 2010.04.1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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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투자자, 이익, 그 끊을 수 없는 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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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이라는 말이 금융시장의 약어가 될 정도로 오늘날의 자본주의 사회는 주가가 경영진과 기업의 생명줄과 자금줄을 좌우하고 있다. 그 사이에서 기업과 경영진은 다른 선택은 할 수 없다. 분기보고서나 연차보고서에 드러난 순이익 수치가 순간의 주가를 결정짓는다. 그리고 온갖 시민단체들은 기업이 이익만을 위해 직원의 복리를 짓밟고 있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기업이 이익추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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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이라는 말이 금융시장의 약어가 될 정도로 오늘날의 자본주의 사회는 주가가 경영진과 기업의 생명줄과 자금줄을 좌우하고 있다. 그 사이에서 기업과 경영진은 다른 선택은 할 수 없다. 분기보고서나 연차보고서에 드러난 순이익 수치가 순간의 주가를 결정짓는다. 그리고 온갖 시민단체들은 기업이 이익만을 위해 직원의 복리를 짓밟고 있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기업이 이익추구를 향해 달리게 만든 주범은 과연 경영자들일까?

저자인 로버트 라이시는 절대 아니라고 말한다.

기업이 이익을 추구하고 주가 상승에 목매달게 만든 결정적인 범인은 바로 우리 소비자와 투자자들이다. 우리 안의 소비자는 보다 싸게, 보다 많이, 보다 편리하게를 부르짖으며 대형 마트로 달려간다. 우리 안의 투자자는 더 많은 수익을 부르짖으며 경영자의 숨통을 옥죄인다. 월마트는 더 많은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직원의 월급을 가차없이 깎고, 의료보험 헤택을 축소하며, 공급업체들을 압박해 더 싼 가격에 상품을 공급받는다. 우리 안의 시민정신은 월마트의 비도덕적이라 말할 수 있는 행태에 분노하면서도 우리 안의 투자자는 월마트가 내는 높은 순이익에 만족한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도덕성을 중시하는 시민은 패배하고 이익을 중시하는 소비자와 투자자만이 살아남았다.

 

여느 경제서들이 그러하듯 라이시의 책도 우리 내부의 소비자, 투자자, 시민의 성격과 행태를 분석하는 데에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소제목의 카피는 해법을 제시한다고 말하지만, 빠져나올 수 없는 구렁텅이가 되어 우리를 잡아끄는 슈퍼자본주라는 늪을 벗어나 우리 안의 시민이 지금보다는 나은 힘을 발휘하게 하는 해법 제시에서는 내용이 빈약하기 짝이없다. 그가 내린 결론은 우리가 조금 희생하면 동남아 국가들에서 벌어지는 미성년 자 노동 착취 같은 현상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하는데.. 글쎄.. 내 이익에는 불을 켜고 달려들지만 불리할 것 같으면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려버리는 게 인간의 천성이지 않은가.

 

어떤 사진가가 특이한 사진전을 연 적이 있다. 그냥 주황색, 노란색, 푸른색 만 사진에 등장할 뿐 멀리서 봐서는 무슨 사진인지 전혀 알 수 없다. 그러나 클로즈업해서 보니 그것은 우리가 버린 페트병, 죄수복, 쓰레기더미 등을 공중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그 작가는 사진을 통해 우리 인간은 골치아픈 문제는 원거리에서 내 문제가 아닌듯 바라보기를 원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음을 꼬집고 있었다.

그의 사진이 보여주듯, 소비자와 투자자가 득세하는 지금의 상황에서 시민으로서의 우리가 자기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 든다.

 

해법 제시는 조금 실망스럽지만, 소비자와 투자자가 지배하는 현대의 자본주의사회를 새로운 시각에서 분석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의미는 상당할 것이다.

YES마니아 : 로얄 e*****0 2008.11.1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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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민’으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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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민’으로 돌아가자 -로버트 라이시의 「슈퍼자본주의」를 읽고     공공 정책은 효율성을 높이는가의 효용적 관점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하지만 정책 결정에서 기업이 후원하는 ‘전문가들’의 득세는 일반 대중으로 하여금 전체 사회나 세상의 복지보다는 소비자와 투자자의 이익에 관계되는 문제들만이 중요한 것이라고 믿게 만들어서, 그 같은 혜택의 분배가 시민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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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민’으로 돌아가자 -로버트 라이시의 「슈퍼자본주의」를 읽고

 

 


공공 정책은 효율성을 높이는가의 효용적 관점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하지만 정책 결정에서 기업이 후원하는 ‘전문가들’의 득세는 일반 대중으로 하여금 전체 사회나 세상의 복지보다는 소비자와 투자자의 이익에 관계되는 문제들만이 중요한 것이라고 믿게 만들어서, 그 같은 혜택의 분배가 시민들의 불평등 상태를 확대하는가 줄이는가, 국가나 세계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에게 더 나은 기회를 제공하는가, 경제적 불안정 상태를 확대하는가 축소하는가, 민권이나 인권을 존중하는가 저해하는가, 대중의 건강과 가정의 평안을 높이는가 낮추는가, 공동체를 키우는가 약화시키는가, 더 깨끗한 환경을 만들어 주는가, 관용과 세계 평화의 이상을 촉진하는가 후퇴시키는가, 혹은 더 일반적으로 민주주의를 강화하는가 약화하는가의 여부라는 관점에서 논의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화 회사가 TV프로를 내본다면, 전화 회사들은 소비자들이 매달 30내지 40달러를 절약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케이블 회사들은 그런 주장을 반박하면서 화면이 좋지 않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여기에서 거의 완전히 배제된 것은 사회적 책임성과 공정성이라는 기본적인 문제, 그리고 공동체에 대한 배려이다. 케이블 회사가 아니라 전화 회사가 화면을 보낸다면, 현재 케이블 회사들이 읍과 시에 넘겨주는 요금은 사라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재산세나 다른 공과금을 인상해서 그것을 대체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많은 빈곤 가정들은 전화 회선을 통한 화면 송출로 요금 인화의 혜택을 보지 못할 것이다. 전화 회사들은 케이블 회사들과 달리 빈곤 가정을 우대할 법적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 문제는 규제냐 탈규제냐의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어떤 규제가 효율성과 공정성을 모두 담보하느냐의 문제이다.


이와 같은 예에서 보듯 현재 미국은 기업체들의 경쟁으로 인해 고용된 로비스트들의 로비전쟁은 공공의 이익이 아니라 특정 기업체들만의 이익을 얻기 위한 것이 된다. 로비스트들에게 전문적인 지식을 자문하는 소위 ‘전문가들’은 증인들에게 돈을 주고 그들이 자신들의 명성에 손상이 가질 않을 정도로 적당히 내용을 윤색해 의뢰 기업들에게 유리한 증언을 하도록 만들고 있다. 부끄러움을 잊은 ‘전문가들’이 청문회든, 공청회든, 언론에서든 신념에 반하는 주장을 하는 데는 기업들로부터 얻는 막대한 금전적인 이익 때문이다. 도덕성도 시장의 다른 상품처럼 가격만 맞으면 살 수 있는 것이 현재의 미국이다. 기업이 벌이는 로비 전략은 전직 민주당 의원이 공화당 의원이 세운 로비회사에 들어가 기업 이익을 대변할 정도로, 공화당이냐 민주당이냐를 떠나 초당적이다.


이러한 미국의 모습을 저자인 로버트 라이시는 한마디로 시대가 그렇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라이시에 의하면 1945년대부터 1970년까지는 몇몇 소수 기업들의 과점체제가 용납되고 받아들여졌다. 미국의 민주주의적인 자본주의 중심적 특징들은 상관성이 무척 높은 체제 속에 함께 잘 맞아들어 가면서 경제와 정치를 통합했다. 미국의 거대기업들은 대규모 생산을 계획하고 실행하면서 상당한 규모의 경제를 달성했고 그럼으로써 단위당 생산비용을 낮추었다. 같은 업계의 몇 안 되는 다른 거대기업들과 명시적 및 묵시적으로 협력함으로써, 이들은 상당한 수익을 올리기에 분한 높은 가격을 설정할 수 있었다. 이런 기업들의 이익을 바탕으로 완전 고용을 실시하고 노동자들에게 상당한 임금과 복지혜택을 제공할 수 있었다. 당시 노동자들의 노조 가입률은 노동자의 1/3을 넘어섰으면 의료보장을 받는 이들은 45%를 넘었다. 기업의 이익이 국가의 이익이었고 국가의 이익이 노동자들의 이익인 시대였기에 기업정치가들도 국가의 이익을 위해 한 몸으로 일하던 시대였다. 저자는 이 시대를 ‘황금기에 가까운 시대’라고 불렀고 ‘민주주의적인 자본주의 시대’라고 불렀다.


그랬던 것이 1970년대 이후부터 급속히 변했다는 것이다. 흔히 알고 있듯, 미국에 신자유주의 도입을 불렀던 레이건 대통령이나 속칭 영국병을 고쳤다는 마거릿 대처 수상의 등장은 이런 시대 흐름에 자연스레 동참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적인 자본주의가 오직 ‘슈퍼자본주의’로 변하게 된 것은 기술의 발달 측면이 가장 크다는 것이다. 미국이 구소련과 벌인 군수품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기술 투자의 콩고물이 일반 사회로 넘쳐 나오게 되면서부터, 그런 기술 발전의 수확을 상품화시킨 중소기업들이 거대 독과점 체제가 유지시켜오던 그때까지의 안정 체제를 파고들면서 틈새시장을 공격한 것을 주효한 원인으로 본다. 그러면서 기업들의 각축장으로 세계가 변하게 된 것이다. 과점은 용납되지 않게 되었다. 소송은 줄을 이었고 과점체제의 기업들은 줄줄이 패소하면서 점점 시장이 넓어지고 확대되어갔다. 기업들은 투자자 유치와 그들에게 더 많은 수익을 넘겨주려고 힘을 썼다. 투자한 기업이 그 사명을 다하지 않을 경우 투자자들은 더 많은 수익을 주는 기업으로 금세 말을 바꿔 탈 것이기 때문에 임금비를 줄이기 위해 해고를 잘 하는 이를 서로 CEO로 데려가려는 경쟁을 벌이면서 CEO들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게 되었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의 입장에서 ‘월마트(미국 슈퍼자본주의의 대표적 기업)’는 매력적이다. 같은 물건을 1/2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다는 것은 환상적인 일이다. 월마트는 소비자들의 구매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납품 단가를 낮추어야 한다. 때문에 납품회사들을 쥐어짜야 한다. 월마트에 투자하는 투자자들을 위해서는 수익을 올려야 한다. 지출을 줄이고 이익을 많이 남기기 위해서 고용인들을 해고하고 임금을 낮추어야 한다. 이것이 소비자-투자자로서 우리가 갖는 딜레마다. 그 해고당한 고용인은 바로 우리이기 때문이고 해고당한 고용인은 더 저렴한 물건을 월마트에서 사야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소비자이면서 투자자다. 상품 가격은 값싸기를 원하고 우리가 펀드나 주식에 투자한 것에 대한 이익은 많이 남아야 한다. 이런 속에서 우리는 민주주의적 자본주의 시대의 ‘시민’이 약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공동체의 삶에 관심을 갖고 환경 규제를 바라고, 정크푸드의 범람을 막고 포르노의 방영을 막기를 바라던 ‘시민’은 ‘소비자-투자자’에게 밀려나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클린턴 행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역임했다는 라이시는 ‘투자자’의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사회에서는 기업들이 투자자들에게 더 많은 이익을 가져다주기 위해 슈퍼자본주의화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투자자들의 유치가 필요한 기업들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오직 이익을 추구할 수밖에 없고 그것은 입법기관에 대한 로비나 관련 정부처에 대한 로비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정치는 실종되고, ‘권력은 기업으로 넘어갔다’는 것이다. 워싱턴 시에 등록된 변호사와 로비스트들의 수는, 1970년 초에 17,000명 수준이었던 변호사는 2000년을 넘어섰을 때는 77,000명에 달하고 1970년 초에는 존재하지도 않던 로비스트는 2005년에는 32,890명에 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광우병 파동에서 보듯, 미국은 도축될 소에 대해 광우병 전수 검사를 하지 않는다. 불과 0.1%만이 검사받는다. 미국의 캔사스주의 크릭스톤 팜스라는 축산 회사는 미쇠고기의 수출상품성을 높이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도축될 소의 전수검사를 허용해달라는 재판에서 승소했지만, 미국 농무부는 “쇠고기 업체들이 자체 검사를 하는 짓은 쓸데없는 짓”이라고 하여 항소하였다. 이 배경에는 미국의 수많은 축산 회사의 로비가 있었을 것이다. 전수검사에 들어가는 비용으로 쇠고기 값이 올라가게 되고 그러면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로비스트들은 농무부와 상무부 소속의 의원들에게 엄청난 로비를 해댔을 것이 분명하다. 미국의 소비자 연맹 또한 전수검사를 허용하라는 압력을 가하고 있지만 엄청나게 강해지는 로비의 목소리가 워싱턴을 비롯한 정치 중심지에서 너무 크기 때문에 시민들이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도 정치인들은 그런 소란 속에서 그것에 귀를 기울일 수가 없다. 슈퍼자본주의가 정치로 흘러들어와 민주주의를 익사시키려 하고 있는 것이다.

 

라이시는 클린턴 정부 당시 “전 국민 의료혜택 법안”을 입법하려 했으나 기업인들의 격렬한 반대와 대중들의 협력화된 힘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불발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1963년 의회는 경제적 불평등 개선을 위해 10개의 법안 가운데 6개를 통과시켰고, 1979년에는 7개 가운데 4개였던 것이 1991년에는 7개 가운데 2개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선거에 의한 민주주의는 효율성이 떨어지고 대기업들이 지배하고 있어서 시민적 가치를 다루지 못하게 된 것이다.


라이시는 이런 흐름을 되돌릴 수도 거스를 수도 없다고 본다. 슈퍼자본주의화된 사회에서 우리의 ‘시민’을 회복하는 길만이 그나마 희망이라고 본다. 그 ‘시민’은 소비자로서는 값싼 물건에 대한 욕구를 좀 줄이고 손해를 감수하는 쪽으로 가야한다는 것이다.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사는 우리는 이웃 서점에서 책을 사줘야 하고, 대형마트를 피해 이웃의 소규모 마트나 재래식 상가를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투자자로서는 CEO의 막대한 연봉에서 막대한 세금을 거둬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 막대한 세금에도 불구하고 CEO자리는 매력적이기에 할 사람은 줄을 설 것이기 때문에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거둬들인 세금으로 해고자들을 위한 직업 재교육에 투자해야 하고, 의료 혜택을 못 받는 4천5백만 국민들을 위해 써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판국에 기업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져가고 우리나라 또한 그러하지만, 기업이 실제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할 이유가 없다고 라이시는 목소리를 높인다. 기업은 이익 추구집단이기 때문에 그럴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업이 각종 기부나 여타 선행을 통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 하는 것은 좋은 홍보가 되고 이미지를 개선시키기 때문이다. 부주의한 석유 운반으로 기름을 유출시켰거나 해외에서 인권에 대해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 기업들에 대한 이미지 개선을 위해서이고, 기업은 사회적 책임에 대한 그들의 다짐이 높은 보수와 빠른 승진을 원하면서 동시에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심리적 보상도 받으려는 고급 인재나 특권층 인재를 구하는 데도 편리하다는 것이다. 소위 ‘착한 기업’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커피점 체인 스타벅스는 시간제 직원에게 의료보험을 제공하는데 이는 직원들의 이직률이 줄어들고 그로 인한 수익이 증가했으며 의료보험 제공만큼의 세금을 공제받을 수 있다는 것이지 스타벅스가 직원들을 위해 오로지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투자자인 우리는 수익을 못 내는 착한 기업보다는 수익을 내는 악한 기업을 더 좋아한다는 것이다. 엑손모빌은 비화석 연료의 사용과 지구 온난화의 현실에 가장 뚜렷하게 반대한다는 이유로 환경보호 단체들로부터 ‘무법자’라는 이름을 얻었음에도 주식 투자자들은 이 회사의 주식을 대거 사들였다. 수익을 내는 기업이나 산업이라면 아무리 사회적 책임감이 없어도 벌을 주지 않는다.


때문에 라이시가 제시하는 해법은 ‘게임의 룰을 바꾸자’는 것이다. 그것은 ‘규제’와 ‘법률’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개혁가들이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은 정치에 대한 기업 자금의 영향력을 줄이고 시민의 목소리를 높여주는 것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개혁의 방향은 없다. 정말로 좋은 일을 하려는 기업의 중역들은 정치에 개입하지 않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이 없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어떤 의미가 있다면 그것을 민주주의를 부패시키지 않는 것이라는 라이시의 말이 무겁게 다가온다. 미국에서는 부정적 사회적 결과를 유발한 기업들을 청문회나 언론을 통해 비난하는 정치인들이 있지만 그걸로 끝이기에 그들을 조심하라고 한다. 한바탕의 호통이 끝나면 그것이 면죄부가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또한 기업의 중역들이 ‘공익’을 증진시키기 위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 운운하는 기업들을 조심하라고 한다. 그것은 기업의 이미지를 개선해서 수익을 창출하려는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의 현대나 삼성, 한화같은 기업들이 그 대표적이다. 무슨 문제가 발생하기만 하면 천억을 내놓는다 어쩐다, 사회봉사를 한다 어쩐다 했지만, 결국 그 사태는 그걸로 종결이고 국민들의 관심 속에서 잊혀 버리고 만다.


월마트를 창업한 샘 월턴가의 재산은 900억 달러, 미국의 하위 40%인 약 1억 2000만 명의 재산 합계는 950억 달러. 이런 부의 편중을 어떻게 해야 좋을까. 게으른 이들이 가난하다는 논리는 더 이상 설득력을 잃은 지 오래다. 이런 불평등을 해소하지 않는다면 미국이나 우리사회가 어떻게 될 지 두려워지기까지 한다. 더 늦기 건에 ‘소비자-투자자’로서의 우리가 아니라 ‘시민’으로서의 우리로 돌아가야 한다.

p*******5 2008.06.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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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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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에 있어 한 개인은  소비자로서의 민주주의와  투자자로서의 자본주의에 상반된   입장을 가진다.  특히 지금과 같은 경제 위기에서는 더욱더 그 격차가 커질수 밖에   없다.  최근에 설탕값 인상 문제만 보더라도 소비자로서의 나는 가격 인상에 반대    하겠지만, 설탕사 주주, 직원이라면 반대로 가격 인상을 바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얼마전 여당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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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에 있어 한 개인은  소비자로서의 민주주의와  투자자로서의 자본주의에 상반된

 

입장을 가진다.  특히 지금과 같은 경제 위기에서는 더욱더 그 격차가 커질수 밖에

 

없다.  최근에 설탕값 인상 문제만 보더라도 소비자로서의 나는 가격 인상에 반대

 

 하겠지만, 설탕사 주주, 직원이라면 반대로 가격 인상을 바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얼마전 여당 대표가 대기업에게 유보자금을 쓰라고 말로만 하지 말고,

 

쓰도록 하는 법을 제정하는게 빠른다고 말한다.

 

 

l*****e 2009.03.13. 신고 공감 0 댓글 0